여행일자: 2008년 10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영상 또는 음악>: - 옛동산에 올라 - 이은상 시, 홍난파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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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미술관을 나와 건너편에 보이는 서울 성곽을 올라가 보았다. 성곽 위에서 보니 성곽 그림자가 드리워진 城北洞(성북동) 계곡 건너편 언덕 숲속으로 뿌연 매연 속에 간송 미술관이 흐릿하게 보였다. 성곽은 옛것도 제법 남아 있었지만 나중에 보수한 것이 상당수 있었다. 잠시 산책을 한 후, 삼선교 쪽으로 내려오다 [최순우 옛집]을 찾아갔다.
‘National Trust(국민신탁) 운동’의 결실 1호
[최순우 옛집]은 삼선교에서 700미터 올라가다 좌측으로 난 샛길 골목 어귀에 있다. 이곳에서 최순우 선생은 많은 藝人(예인)과 문화인들을 만나고 글을 쓰셨다 한다. 대문을 들어 가 집안 구조를 살펴보면 조그만 안뜰을 중심으로 한옥 처마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 같은 ㅁ(미음자)형 집이다.
최순우 옛집 입구 |
[최순우 옛집]은 우리나라의 내셔날 트러스트 운동의 결실 1호로 기록된 곳이다. National Trust(국민신탁) 운동이란 새로운 시민환경 운동으로서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존하자는 사회적 운동을 말한다. 최순우 선생이 돌아가시고 사시던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 헐릴 위기에 놓이자,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이 집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하신 고 최순우 선생은 우리 문화를 가르치시고 알리는 데 많은 일을 하신 분으로,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라는 그의 책을 통해서 그와 만난 일이 있다.
오른쪽 대문채를 지나 담 구석에는 돌로 만든 나지막한 문인석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나그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서 있다. 마루 입구에 전시된 서간들과 전각(특별전시 중인 이기우 님 전각)을 구경하고 안방을 창문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방안에는 전시물들이 있긴 하지만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고, 방안과 마루 내부는 사진 촬영이 안되니 먼 발치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볼 수밖에 없다.
‘배려해 주는 마음’
뒤뜰로 돌아가면 조그만 돌거북을 얹어 놓은 맷돌과 돌확이 눈에 들어온다. 맷돌에서 내려온 물이 돌확에 담겨 있어 식물들의 수반 구실을 하고 있다. 후원 뒤쪽에는 작은 키의 소나무 몇 그루와 발갛게 익은 감나무가 있었고, 바닥에는 도토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후원에는 상사화, 생강나무 등 이름표를 매단 여러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계절마다 다 양한 꽃과 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後園(후원) 오른쪽 구석에는 장독들이 얌전히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앞쪽 장독들은 국화꽃을 안고 서있었다. 돌의자를 몇 개 빙둘러놓아 만들어진 작은 공간에 음료수와 컵이 놓인 작은 탁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차 한 잔을 나누며 다리도 쉬고 있었다. 비록 가옥 내부는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방문한 사람들을 배려해 주는 문화의 향기가 우러나는 한옥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 근대 전각의 대가 철농 이기우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기에, 그의 전각을 모조한 기념 스탬프와 최순우 선생의 얼굴 모습이 담긴 기념 스탬프도 받았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라는 최순우 선생의 책과 한옥 관련 자료를 구입하였다. 관심있는 책을 손에 넣었더니 며칠은 차오르는 행복감에 뿌듯해 질 것 같았다.
쫓겨난 ‘성북동 비둘기’
[최순우 옛집]을 나와 길을 내려오다 보니 비탈에서 발을 뻗어내린 축대가 길을 막았다. 마치 성벽의 석축처럼 생긴 것이 사람 다니는 길을 턱하니 막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에게는 큰 위협이 될 것 같았다. ‘걷고 싶은 거리’가 되려고 하기 전 ‘보행자를 위한 거리’가 먼저 되어야 할 것 같다. 소외된 것은 사람뿐이 아니었다. 쫓겨난 ‘성북동 비둘기’들이 전깃줄에 매달려 있었다.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 <1968년>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鄕愁)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사라진 추억의 장소’
삼선교에 거의 다 왔을 무렵 7~8층 높이의 ‘나폴xx 과자점’ 빌딩이 웅장하게 솟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쪽 벽에 창문이 있었지만 1~2 층을 제외한 건물의 대부분은 검회색 외벽으로 막혀 있었다. 건물 외양에서 대화를 거부하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름은 ‘나폴xx ’그대로였지만 예전 그 모습이 아닐 뿐더러 예전 그 자리도 아니어서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미 사라진 혜화동 로터리의 ‘아카데미 빵집’ 과 ‘동양서림’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사라진 추억의 장소였다.
빠르고 멋지게 생긴 최신식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지나던 옛 전차를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크고 웅장하고 새로운 것이라고 해서 추억인 담긴 옛것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움은 마음속에 담아 둘 수밖에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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