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펌) 출처: http://myspirit.egloos.com/2661249


- 강연을 옮긴 글이라 이 좀 깁니다만, 일독을 권합니다.-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擊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史官)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史草)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雷)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雷)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 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싶다."


저자 소노 아야코는 1931년 생이며,이 저자는 나이 40세가 되던해 부터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들을 메모형식으로 기록하여 계로록(戒老錄)이라는 책을 출간 하여 일본에서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발췌한내용을보고 

1.남이 '주는 것','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이러한 자세는 유아의 상징이고 나이들어서는 노년의 상징이다.

  남이 해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인이라고 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노인이든 젊은이든 철두철미하게 자립해야 한다.

2.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단념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는 점차로 좁아지게 되는데 이것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3.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버스에서 당연히 자리를 양보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자립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4.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오히려 가정안에서 배려,위로의 말이 필요하다.

5.나의 생애를 극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 인생이야 말로 드라마로 쓸만하다고 떠벌이고 다니고 자서전을

   출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판한 책이 과연 국회도서관이나 공립도서관에 보관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6.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더 엄격해져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귀찮아도 많이 걷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7.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외로움은 노인에게는 공통의 운명이자 최대의 고통일 것이다.

  매일 함께 놀아  주거나 말동무를 해 줄 사람을 늘 곁에 둘 수는 없다.

  목표를 설정해서 노후에 즐거움을 주는 방법을 스스로 찿아야 한다.


8.마음에도 없는 말을 거짓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됐어"라고 사양하면 젊은 세대는 주지 않는다,

   "나도 먹고싶은데 하나씩 돌아가니?"라고 말해야 한다.

9.같은 연배끼리 사귀는 것이 노후를 충실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노인에 있어서 정말로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는 상대는 노인 뿐이다.

10.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얻고 싶으면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11.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나이가 들면 친구도 한사람 한사람 줄어든다.

     아무도 없어도 어느날 낯선 동네를 혼자서 산책할 수 있는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12.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천박한 생각이다.

     돈은 노후에 중요하지만 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세상을 너무 황량하고 냉정하게 만든다.

13.노인들은 어떠한 일에도 감사의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훈훈한 노후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중의 하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사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란 없다.


14.노인들은 새로운 기계의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혀야 한다.

   노화의 정도를 명확히 측정해 주는 지표이다.

15.노인들은 몸가짐과 차림새를 단정히 해야 한다.

   체력이 떨어지고 건강이 약화되면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자세가 흐트려 진다.


16.노인들은 매일 적당한 운동을 일과로 해야 한다.몸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17.여행을 많이 할 수록 좋다.여행지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어디서 죽든 마찬가지이다.

     고향에서 죽는다해서 무엇이 좋은가.

     자필의 화장승낙서만 휴대하고 다니면 된다.

18.관혼상제,병문안등의 외출은 일정 시기부터 결례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부터 기도하는 것이다.

19.재미있는 인생을 보내었으므로 나는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심리적 결재를 해 둔다.

20.유언장 등은 편안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 둔다.

   사후에 유산을 둘러싸고 남은 가족들이 다투는 것보다 비참한 일은 없다.


21.병이 정말로 낫지 않는 경우는 오직 한번 있을 뿐이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지만 죽는 것은 한 번 뿐인 것이고 대부분의 병은 낫는다.


22.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 들인다.자연스레 주어진 늙음의 모습에 저항할 필요는 없다.

23.혈육 이외에 끝까지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식이나 부부와 언쟁할 때 "이 집에서 나가"라고 말하지 마라

24.날마다 보살펴 주는 타인에게 항상 감사해 해야 한다.

25.죽는 날까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26.행복한 일생도 불행한 일생도 일장춘몽이다.

27.종교에 대해 마음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28.노년의 가장 멋진 일은 사람들과의 화해이다

아름답고 순수한 100세 시인 시바타 할머니의 글

 

시바타 도요 (しばたとよ 柴田トヨ 101歳の詩人 , Shibata Toyo)
1911년 6월 26일 ~ 2013년 1월 20일


일본을 놀라게한 너무 아름답고 순수한 시
100세 시인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글들을 올립니다.



♤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 저 금 ♤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 살아갈 힘 ♤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
제각각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 말 ♤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 하 늘 ♤

외로워지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족 같은 구름
지도 같은 구름
술래잡기에 한창인
구름도 있다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
너도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 나 ♤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 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 비 밀 ♤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 화 장 ♤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듯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 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 어머니 ♤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
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
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 나에게 ♤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 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흘려 버리는 거야
자, 새 컵으로
커피를 마시자




♤ 잊는다는 것 ♤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 가는 것의 행복
잊어 가는 것에 대한
포기
매미 소리가
들려오네



♤ 너에게 ♤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 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나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아침은 올 거야♤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 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 거야



시바타 도요는 올해 100세
할머니이다


도요가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둔 100만엔을 털어
첫시집 '약해 지지마'를 출판
100만부가 돌파되어
지금 일본열도를 감동시키고 있다

1911년 도치기시에서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난 도요는 열 살 무렵
가세가 기울어져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두었다
이후 전통 료칸과 요리점 등
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더부살이를 했다



그런 와중에 20대에 결혼과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33세에 요리사 시바타
에이키치와 다시 결혼해
외아들을 낳았다.
그 후 재봉일 등 부업을 해
가며 정직하게 살아왔다

1992년 남편과 사별한 후
그녀는 우쓰노미야 시내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생활 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말한다.



그 손으로 써낸
평범한 이야기가 지금
초 고령사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위로가
현해탄을 건너와
한국사람들에게
그리고 미국에도 전해져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 했네
배운 것도 없이
늘 가난했던 일생
결혼에 한번 실패 했고
두 번째 남편과도 사별한 후
20년 가까이 혼자 살면서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던 노파

하지만 그 질곡 같은
인생을 헤쳐 살아오면서
100년을 살아온 그녀가
잔잔하게 들려주는 얘기에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
저마다의 삶을 추스르는
힘을 얻는다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옮겨온글

 

人生無根蔕   飄如陌上塵   인생무근체  표여맥상진
分散逐風轉   此已非常身   분산수풍전  차이비상신
落地成兄弟   何必骨肉親   낙지성형제  하필골육친  
得歡當作樂   斗酒聚比린   득환당작락  두주취비린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  陶 淵明   도 연명 - 

  

인생은
뿌리 없는  밭 두렁의 먼지같이
의연한 것
바람 따라
이리 저리 흐르는
인간의 삶은 본래가
무상한 몸
땅 위에
살고있는 모두는
형제이지
피를 나눈 가족만이
형제는 아니다 

 

기쁨은
서로 즐기고
많은 술 이웃과 나누어 마셔야지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아침은 한번뿐이다
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일해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행복의 기술
-보다 더 행복해지는법-

 


하버드대에서 ‘행복’강의를 하는 탈 벤-샤하르 교수god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3대 명강의 ‘행복’속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긍정심리학자 <탈 벤 샤하르> 교수입니다.

 

지금부터 ‘보다 더 행복해 지는 법’ 함께 하시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행복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행복합니까? 이럴 때 어떤 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왜냐하면 행복이란 것이 ‘0’이나 ‘1’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행복은 한순간 행복했다가 갑자기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고 노력의 과정인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20여 년간 긍정심리학을 공부하고 실천한 지금, 예전보다 행복해졌다. 그런데 지금부터 10년 후가 되면 오늘보다 더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행복은 인생과 함께 가는 여정이고 그 길에 함께하는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그런데 사실 ‘행복하다’란 것이 무엇이냐고 정의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행복이란 영역 안에 역설(the Paradox of Happiness)이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역설일까요?

 

행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삶의 질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높여도 창의성이 높아집니다. |행복한 조직을 운영하면 직원의 창의성이 높아지고 또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다른 좋은 일들이 생깁니다. 동기부여도 더 많이 되고요. 학교가 되었건 회사가 되었건 사람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인간관계도 개선됩니다. 연인과의 관계건 자식과 부모간의 관계건 말입니다. 또 직장에서의 팀웍도 더 좋아집니다. 그리고 삶의 질을 조금만 높여도 우리는 훨씬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몸의 면역체계가 강해지는 것이지요. 행복한 것은 정말 좋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글쎄요, 다른 연구에서는 “난 행복해 지고 싶어”라고 행복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낸다고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러한 역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정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간접적으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즉,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요소를 추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빛나는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면 너무 눈이 부시지요. 그러면 어떻게 태양을 볼 수 있죠? 태양빛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보면 됩니다. 자, 무지개를 생각해보세요. 무지개는 우리가 볼 수 있고 그 일곱 색깔을 합쳐보면 태양빛이 되는 겁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이란 것을 직접 추구하면 안 됩니다. 무지개를 구성하는 여러 색깔들이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런 요소들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행복을 구성하는 4가지 요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4가지의 행동. 일상에서 할 수 있는 4가지가 있는데요.

그중의 첫 번째는 바로 관계맺기(Socializing)입니다. 바로 인간관계이지요. 연인이 되었건 부모자식간이건 학생이나 동료의 관계이건 말입니다.

두 번째는 베풀기(Giving)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친절함을 베푸는 것. 이것이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소는 바로 집중하는 것(Focusing)입니다. 즉 그 순간에 마음을 다해서 집중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행복의 요소는 바로 어려움을 극복하기(Coping)입니다. 역경과 고난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것입니다. 역경을 극복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기 쉬운데,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그러면 첫 번째 무지개 빛깔인 관계맺기(Socializing)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종류의 관계를 말하는 건데요. 사회적인 관계야말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요.

이 내용을 보여주는 2가지 연구결과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과 <에드 디너>간 연구결과입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을 조사한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행복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받고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의 예를 조사해본 것이지요.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점은 긍정적이고 강력한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덜 행복한 사람들과 구별되는 첫 번째 요인이었습니다.

 

관계맺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연구가 있습니다. 바로 국가에 대한 것입니다.

행복할 것 같은 나라들이 있죠. 그런데 부유하고 성공적인 나라들이 행복하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 한국, 일본, 영국 그리고 독일. 이런 나라들의 행복지수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나라가 높은 점수를 받았을까요? 어떤 나라들인지 살펴보면 덴마크, 네델란드 또는 이스라엘이나 콜롬비아 그리고 코스타리카, 호주 등이지요. 물론 어떤 나라는 행복할 거라고 생각이 들죠. 자, 호주를 보세요. 매일 써핑을 하지 않습니까.(웃음) 그런데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국가들도 있습니다. 콜롬비아 같은 경우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구요. 제 모국인 이스라엘 같은 경우에도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 나라들이 행복한 것일까요?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바로 강력한 관계맺기 라는 겁니다.

 

덴마크의 예를 들어볼까요. 덴마크 사람들의 92%가 다양한 사교클럽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취미활동이건 스포츠건 클럽에 소속돼 지속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이지요. 인구의 92%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콜롬비아는 가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족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

호주나 네델란드는 친구와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별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에 행복한 국가가 되는 것이지요.

 

인간관계, 특히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실제하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상의 관계가 아닌 진정한 관계여야 합니다. 페이스북이 실제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화면 앞에서 시간을 점점 더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기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여동생은 온라인으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구요. 네, 기술은 좋죠. 어느 선까지는요.

기술과 행복에 대한 연구가 보여주는 게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감능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입니다. 공감능력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죠. 그런데 이 공감능력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실제 인간관계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공감능력은 언제 생기나요? 같이 모래장난을 하거나, 같이 울거나, 같이 웃거나 남을 상처주거나, 상처를 받을 때 공감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상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감능력이 줄어드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공감능력은 건강한 사회의 근간이기 때문이지요.

 

  컴퓨터 사용이 늘면서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외로움의 증가입니다.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친구를 더 많이 사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외로움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불행과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것은 인간관계 회복을 위해 접속을 끊는 것입니다. 접속을 끊음으로 해서 사람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또 소개해드릴 연구가 있는데요.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입니다. 프린스턴대학 심리학과 교수이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지요. 카너먼의 연구가 무슨 내용이었느냐 하면, 여성들이 하루 동안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자녀와 보내는 시간을 특별히 즐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네, 정말 놀라운 결과이지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이 여성들은 물론 자녀들을 사랑했습니다. 자녀들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자녀와 함께 있을 때 집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몸은 아이들과 있었지만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일을 하거나, 아까 했던 일, 오늘 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몸만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의 첫 번째 요소가 바로 관계이구요.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기술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합니다. 저희 집에선 저녁식사를 할 때 아무도 휴대폰을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놀 때도 휴대폰을 쓰거나 일하지 않습니다. 제가 통화를 하면 아이들과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없잖아요. 그리고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도 문자를 보내거나 핸드폰을 쓰지 않습니다. 얼굴을 보고 서로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관계맺기이자, 행복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행복의 두 번째 구성요소는 바로 베풀기(Giving)입니다.

행복한 삶의 지표 중 하나는 베푸는 것이고 남을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거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남을 돕거나 베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잠시 후에 말씀드리고, 또 내가 베푼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요.

한 사람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책,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북미지역 사람이 멕시코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멕시코의 해변을 걷고 있었는데, 조류가 굉장히 낮았습니다. 해변을 보니 파도에 밀려온 수많은 불가사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 있던 멕시코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불가사리를 다시 바닷물로 던져주는 것입니다. 또 잡아서 던져주고요. 한 마리씩 한 마리씩요. 이 사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해변에 수천 마리가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까? 이 해변에만 수천 개가 있고 인근 해변도 10개가 넘는데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러자 그 멕시코 사람은 다시 한 마리를 던져주며 말했습니다. 적어도 이 한 마리에게는 차이를 만들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소수에게라도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차이인 것입니다. 조금 있다 보겠지만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작은 차이를 만드는 것, 베풀기의 장점을 보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가사리 1마리를 물에 던지는 것, 친절을 베푸는 것 모두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번 실험해볼까요. 제가 3명에게 웃고 그 3명도 웃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3분이 각각 또 다른 3분에게 웃어보세요. 그러면 9명이 웃게 되겠지요. 그 9명이 3명에게 웃고요. 이렇게 21번만 하면 전 세계가 미소를 짓고 있을 겁니다. 3의 21제곱이니까요.

그러니까 작은 선행 하나가 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을 보기만 해도 행복해 질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베푸는 선행을 보고 내가 좋은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베푸는 것은 자존감을 높힙니다.

도시의 빈곤지역 아이를 돕기 위한 좋은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아동들을 돕는 프로그램은 이 아동들을 직접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다른 아이를 돕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이지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직접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 그 아이들의 자존감이 엄청난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이 아이들 중 상당수는 삶에서 상당한 무기력을 느낍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사람들을 돕는 역량을 갖추게 됩니다. 전혀 희망이 없던 아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죠.

 

 베풀기의 또 다른 효과는 성공입니다.

와튼 경영대학원 교수 <애덤 그랜트>의 연구를 봅시다. 베푸는 사람들, 즉 다른 이의 성공에 기여하는 사람들과 받기만 하는 사람들을 비교했는데, 자신을 희생하거나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성공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베푸는 사람이 받기만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말이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풀기의 효과는) 행복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과 하바드 경영대학원의 공동연구였는데, 참가자들을 연구소로 불러서 행복의 수준을 측정했습니다. 행복의 수준을 측정한 다음에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었습니다. 이 돈을 마음껏 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이런 실험이라면 여러분도 참여하고 싶으시겠지요.

참가자들은 전자기기나 신발이나 원하는 것을 샀습니다. 그리고 연구소로 돌아와 행복의 수준을 다시 측정했는데요. 자,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행복의 수준이 올라갔습니다. 굉장히 많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다음날 다시 실험실을 찾아 측정했는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다시 원래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수준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쇼핑을 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연구의 결과는 뭘까요? 매일 신발을 사야한다는 걸까요? 어떤 분들은 웃는데 어떤 분들은 우시네요.

이 연구의 두 번째 실험이 있습니다. 두 번째 실험을 볼까요. 또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의 수준을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똑같은 액수의 돈을 지급 했구요. 그리고 이 돈을 마음껏 쓰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남을 위해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선단체에 기부도 하고, 선물을 사기도 하고, 노숙자에게 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원하는 대로 남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구소에 돌아와서 행복의 수준을 측정했을 때, 쇼핑을 해서 올라간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행복의 수준이 상승했습니다.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었다면, 다음날 행복의 수준을 측정했을 때 조금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처음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이후로도 행복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 모국어는 히브리어인데요. 성경을 쓴 언어로 많은 지혜가 담겨있죠. 히브리어에서 저는 ‘베풀다’는 단어를 가장 좋아합니다. 나탄(NATAN)이라는 단어인데요 ‘베풀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조금 특별해 보이시나요? 맞습니다. 양쪽방향으로 앞으로 읽든, 뒤로 읽든 똑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지요. 고대의 지혜입니다. 오늘날 과학으로 입증된 지혜인 것이지요. 내가 주는 만큼 혹은 그 이상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쌍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회문(回文)이라고 하지요. 앞에서부터 읽으나 뒤에서부터 읽으나 똑같이 읽을 수 있는 단어인데요. 베풀다라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베푸는 것이 곧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없어서 베풀지 못하는 경우를 살펴볼까요?

사실 많은 시간이 필요 없습니다. 친절이라는 것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네 프랑크>가 일기에 썼다시피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작은 친절뿐일지라도 말입니다.”

하루에 한번이나 일주일에 한번, 10분씩 30분씩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결심해 보십시오. 베풀고 3사람에게 웃어주세요. 겨우 10분이 가져올 변화를 생각해보세요!

 

세 번째 행복의 구성요소는 바로 집중하기(Focusing)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몰입하고 그 자리에 정말 있는 것입니다.

집중해서 명상할 때의 이점(利點)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존 캐벗츤>과 <리차드 데이비슨>의 연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연구에서 참가자들이 8주동안 명상을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1주일에 한번씩 서로가 만났는데 또 하루에 45분씩 명상하도록 했습니다.

8주간의 실험은 또 어떠한 결과를 만들었을까요?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그룹은, 즉 8주동안 명상에 참가했던 그룹은 명상을 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서 실제로 두뇌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뇌는 훨씬 더 행복한 뇌로 변했습니다. 면역력도 더 강해졌습니다.

또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참가자들에게 8주가 지난 후에 실제로 얼마나 명상을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어떤 참가자들은 매일 45분씩 꼬박꼬박 명상을 했습니다. 적게 명상을 한 사람도 있었지요. 30분만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45분이든 10분이든 상관없이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습니다.

이 프로그램 상에서 1주일에 한번씩 만난다고 했는데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몰입의 중요성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에 명상할 때가 아닌 평소에도 명상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참가자들이 실제 얼마나 명상을 했는가와 관계없이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것이지요.

 

다시 말해 집중하고 마음을 다해서 현재를 살았던 것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도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집중해서 경청할 수 있겠지요.

집중해서 듣는 것의 효과는 놀랍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경청할 때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상대방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또 음식을 먹을 때도 5분, 하루에 한끼만이라도 조용하게 맛이나 향이나 색깔을 음미해보세요. 순간순간에 집중하면 우리 일상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죠.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레슬리 펄로> 교수는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일에만 집중했을 때의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요새 직장에서는 멀티태스킹을 많이 요구하는데요. 1~2시간 할애해서 업무에만 집중하는 경우, 근무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니면, 설거지를 하거나 바닥청소를 할 때, 샤워를 하는 그 순간에도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 오해하는 게 뭐냐 하면, 정말 놀라운 경험이라는 것은 일생에 한번 올까말까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매순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집중을 하게 되면 현재의 순간에서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되는 것이지요.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집중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행복의 첫 번째 척도라는 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행복의 요소 중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Coping)이지요. 실패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를 하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문제에 맞서거나 도망갈 수 있습니다. 실패와 어려운 경험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문제를 외면하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욱더 강해질 수 있는 것이지요. 운동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운동하러 가면 근력운동을 하시지요? 중량을 늘리면 힘든 만큼 체력이 좋아지게 됩니다. 이론만으론 강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자꾸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기 위해선 육체적, 정신적 근육을 키워야 하는 것이지요.

어려움 극복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습니다. 저의 스승 중의 한 명인 <워렌 베니스> 교수님은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었는데, 이런 연구를 했습니다.

젊은 리더와 나이 많은 리더를 비교했습니다. 20~30대와 이미 은퇴한 80~90대, 두 그룹을 비교분석했습니다. 나이든 리더들은 일과 삶의 균형들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지만, 젊은 세대들엔 중요했습니다. 나이 많은 리더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젊은 리더들은 여성들도 있었지요. 이런 흥미로운 차이가 있었구요. 그 다음에, 공통적인 재미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이 공통점을 가지고 책 한권이 나왔는데요.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30대건 90대건 모두가 큰 시련을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련은 치명적인 어려움을 말하는 것인데요, 하루이틀만에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이 아닌 것이지요. 정체성이 무너질 정도의 큰 도전, 예를 들어 헌신했던 직장에서 해고가 되는 것,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그런 일을 당했죠. 아니면,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상실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시련을 극복해서 더 강해졌습니다. 우리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요. 많은 리더들은 그러한 시련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꼽았습니다.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한 긍정적인 사례가 있지요.

대인관계의 전문가 <데이비드 슈나츠>는 흥미로운 발견을 했습니다. 모든 연인관계나 부부관계는 4~6년이 되면 교착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이 교착상태는 갈등상황을 말하는 데요. 그런데 우리가 의견이 달라서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좋아지는 종류의 작은 갈등이 아닙니다. 굉장히 깊고 근본적인 갈등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어떤 커플은 5년동안 같이 지내고 사랑하다가 교착상태에 부딪쳐 헤어지게 됩니다.

세 번째 집단은 포기하지 않고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교착상태를 붙들고 노력합니다. 갈등을 해결하는데 1달, 여섯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어려운 과정을 극복합니다. 그 결과로 더 강력한 관계로 거듭 납니다. 극복하느냐 피하느냐,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저의 하버드 동료 중의 한 명인 <앤 아비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위기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위기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정말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지요. 그들에게 그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것을 적으라고 했습니다.

질병을 앓았던 경우에는 그 질병을 통해 가족과 더 가까워졌다고 썼고, 혹은 트라우마를 통해 훨씬 더 강해졌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에 대해 더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고 쓴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얻은 긍정적인 것을 발견하면서 실제로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강해지고,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시련이나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 모두 살다보면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대응하는 방법입니다. 나의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을 것이냐? 외면하고 포기할 것이냐? 이것은 행복의 중요한 갈림길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과학자건 예술가건 사업가건 말이지요. 제가 학생들이나 저 자신 그리고 아이들이나 동료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실패를 배워라. 아니면 배우는 것을 실패할 것이다.” 가장 창의적인 발명가 중의 한 명인 <토마스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실패를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안락함의 덫(the Trap of Luxury)에 빠져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제 교훈을 8년전에 얻었습니다. 저의 큰아이 데이빗이 당시 3살이었는데, 저의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인형이 있었습니다. 슈퍼맨 인형이었지요. 인형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밤에 잘 때 베개 옆에 슈퍼맨 인형을 눕혀놓고 자고요. 얘기도 많이 나눴습니다. 그리고 슈퍼맨은 정말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날, 저와 제 아내가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집으로 올라갔습니다. 데이빗은 내내 슈퍼맨을 들기도 하고, 얘기를 하기도 하고, 가슴에 품기도 하고 그랬죠. 그러다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 데이빗이 슈퍼맨 인형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아세요? 네, 맞습니다. 엘리베이터 틈 사이로 떨어져서 아빠인 저조차도 가져올 수가 없었습니다. 데이빗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아들 데이빗이 우는 것을 보고 한마디 꺼내려는 순간, 제 아내 카미가 - 제가 무슨 얘기를 할려고 하는지 저보다 먼저 알거든요- 제 손을 살포시 잡으면서 저를 말렸습니다.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은 ‘데이빗, 걱정하지마. 내가 새로운 슈퍼맨 인형을 사줄게. 1불도 안되는데 내가 10개 사줄게.’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저를 말린 거죠.

집에 들어와 데이빗은 자기 방에 들어가 계속 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얘기했습니다. “왜 말을 못하게 했어요? 저 봐요. 아들이 저렇게 슬피 울고 있잖아요?”라고 했더니, 아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데이빗이 상실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말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큰 교훈을 그날 얻었습니다.

 

 아이들이 상실에 대해 배우는 중요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 크리스천슨>은 아동기의 여러 가지 어려움과 관련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아동기에 겪게 되는 어려움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키고 개발해 줍니다. 까다로운 선생님을 만나는 것, 스포츠경기에서 패배하는 것, 학교의 여러 패거리 문화를 경험하는 것. 모두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수학이나 언어나 역사만큼 중요합니다.’

 

 행복한 삶은 어려움이 없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 고통이나 실망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딱 두 부류 밖에 없습니다. 분노와 슬픔, 질투, 실망, 불안. 이런 것을 못 느끼는 사람은 딱 2부류 이지요.

이런 감정을 못 느끼는 첫 번째 부류는 사이코패스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두 번째 부류는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통과 괴로움을 느낀다 라는 것은 좋은 거겠죠.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살아있다는 것이니까요. 네, 좋은 출발점입니다.

 

 긍정심리학이나 행복학은 어려운 감정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감정에 대처하도록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제 강의를 다 이해하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게 되셨더라도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실천에 옮겨야해요. 실천에 옮겨야만 훨씬 더 많은 행복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질의 응답

 

☆먼저 좋은 강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과 관련된 유전, 환경적인 요인이 부족한 경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유전자는 큰 차이를 만드는데요. 평균적으로 우리 행복수준의 50%가 유전에 의해 결정됩니다. 50%면 굉장히 큰 비중인데요. 왜 평균적이라고 말하는지는 잠시 후에 설명드리겠습니다.

행복의 수준 중 10%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평균적으로 10%라는 것이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분쟁지역 등에서는 외부적인 요인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안전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됐을 때 10%인 거죠.

남은 40%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 좌우됩니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것인가, 아니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런 고민이 행복하기 위한 선택인 것이지요.

제가 피하는 대신 대처하고 베풀기로 결정을 하고 사람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을 한다면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기로 결정을 한다면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전반적인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40%가 우리 선택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매순간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우리의 선택이 행복 수준의 40%이상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행복을 가르쳐야 할까요?

사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교사나 부모에게 강의를 할 때마다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좋을 지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러면 하는 대답들이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회복하길 바란다” “좋은 사람으로 자라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으면 좋겠다” “삶에 평온함을 느끼며 자라길 바란다” 등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셀리그만은 이것을 가지고 첫 번째 목록을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목록을 만듭니다. 여기서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 적습니다. 언어 지리 역사 수학을 배운다고 대답합니다.

 

 이 두 목록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언어 수학 역사 지리를 배우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왜 학교에서는 첫 번째 목록을 소홀히 하는 것일까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행복에 대해서 가르친다고 한다면 더 나은, 더 창의적인 학생이나 직장인이 될 것입니다.

왜 우리는 첫 번째 목록을 외면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학교가 긍정심리학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행복학을 배운다면 우리 사회에 큰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한 취업 준비생인데 원하는 직장을 얻기 힘듭니다. 어려움이 많은 시기에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우선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든 일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세요. 사람이기 때문에 힘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실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습니다. 한 집단은 평소처럼 생활을 했습니다.

다른 집단은 이 경험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게 했습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과 어려움을 글로 표현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불안감도 줄었습니다. 특히 6개월이 지난 후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습니다. 어려움에 대해서 글로 표현한 것이 도움이 된 것입니다. 친구나 심리치료사에게 털어놓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로 평소에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계속해야 합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취업 준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친구를 만나지 않거나 운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려운 때일수록 행복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소통을 하게 되어 자존감을 높이게 되고 긍극적으로 구직을 하기에 훨씬 더 유리해집니다.

 

 ☆ 행복을 실천하기 위한 비법은?

비법을 말하겠습니다. 사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지요.

새해가 되면 여러분은 할 일에 대한 목록을 만드시지요? 다양한 새해 결심을 하고 모두 지킨 분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아무도 없네요, 그렇죠?

질문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양치를 했으면 손을 들어주세요. 양치 안한 분이 있다면 손들어주세요. 농담입니다.

왜 그럴까요? 새해 결심은 못 지켜도 모두 양치는 합니다. 새해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굳은 의지와 자기훈련이 필요합니다. 양치를 하는 것은 습관인데 말이지요. 이것이 지속되는 변화에 대한 비밀입니다.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습관을 형성하려면 의지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30번 반복하면 수월해집니다. 양치를 하기 위해서 의지가 필요하진 않잖아요? 저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굳은 의지를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그랬죠, 이제는 아니에요. 습관이 됐기 때문입니다. 양치를 하는 것처럼요.

한 가지나 두 가지 습관을 들이는 것을 목표로 삼으세요. 나를 행복하게 할 새로운 것들 말이죠. 운동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정기적으로 남들에게 베푸는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감사함을 자주 표현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요. 배우자, 자녀나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습관을 들이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실제로 관련된 연구가 있습니다. 14번을 반복한 이후에는 새로운 뉴런이 형성됩니다. 30번 정도 반복하면 충분하고요. 처음 30번까지는 어렵지만 점점 쉬워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진 마시고요. 신년 목록을 보면 20개씩 결심을 써놓잖아요. 20개 있으면 한 가지도 못해요. 한 가지나 두 가지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보세요.

 

  ☆ 정말 대단한 비법이군요.(하하)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비법입니다.(하하)

 

 감사합니다

 


죽음에 대한 금언

아래 명언을 반복하여 읽으라

그러면 누구나 다 맞이할 죽음에 대하여 좀더 알게 되리라. 
모든 일은 준비(準備)하고 사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自明하게 아는 것은 다음 다섯 가지다.

1, 누구나 죽는다. 
2, 순서가 없다. 
3,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4, 대신할 수 없다. 
5, 경험할 수 없다.

♣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 다. 
-(톨스토이)


♣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


♣ 사람들은 죽는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듯 미친 듯이 산다.
-(리챠드 박스터)


♣ 죽음은 사람을 슬프게 한다. 
삶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면서도.
-(바이런)

 

♣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 
그는 휴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 오듯이 
잘 산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인 채로 남는다. 
그러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스탈린)


♣ 황금이 귀한 것이 아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삶이 값진 것이다.

-(명심보감)


♣ 훌륭하게 죽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한 마디로 살았을 때도 사는 법이 나빴던 사람이다.
-(토마스 풀러)


♣ 참된 삶을 맛보지 못한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제이메이)


♣ 잠 못 드는 사람에게는 밤이 길고

피곤한 사람에게는 길이 멀다.


♣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삶과 죽음의 길 또한 길고 멀다.
-(법구경)

 

♣ 죽음을 찾지 말라. 죽음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완성으로 만드는 길을 찾아라.
-(함마슐트)


♣ 죽음은 한 순간이며, 삶은 많은 순간이다

♣ 죽음이란 영원히 잠을 자는 것과 같다.
-(소크라테스)


♣ 정당하게 사는 자에게는 어느 곳이든 안전하다.
-(에픽테투스)


♣ 진실로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
-(부처)


♣ 아직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논어)


♣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일이다.
-(루소)


♣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로 하여금 헛되이 살지 않게 하라.
-(에머슨)


♣ 봄철이 찾아들어 시절이 화창하면 꽃들도

한결 빛을 땅에 깔고 새 들도 또한 아름답게 지저귀나니, 
선비가 다행히 이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어

편안하게 지내면서도 좋은 말과 좋은 일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다면 비록 이 세상에서 백 년을 산다해도

하루도 살지 않음과 같으니라.
-(채근담)

 


♣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며, 
모 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 
-(위고)


♣ 석 자 흙 속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백 년의 몸을 보전하기 어렵고, 
이미 석 자 흙 속으로 돌아간 뒤에는

백 년의 무덤을 보전하기 어렵다.
-(명심보감)


♣ 사람은 혼자 나서 혼자 죽고, 혼자 가고 혼자 운다.
-(무량수경)


♣ 인간은 울면서 태어나서, 불평하면서 살고,

실망하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토마스 풀러)

 


♣ 삶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톨스토이)


♣ 하느님이 부르실 때는 당신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
-(동유럽 유대인 격언)


♣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달려있지 않다.
-(동유럽 유대인 격언)


♣ 죽음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평등하게 만든다.


♣ 우리는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왔으니 벌거숭이로 
이 세상을 떠나 리라.
-(이솝 우화)


♣ 이별의 시간이 왔다. 우린 자기 길을 간다. 
나는 죽고 너는 산다. 
어느 것이 더 좋은 가는 하느님 만이 아신다.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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