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01)-브뤼헤(브뤼허),안트베르펜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벨기에,브뤼헤(브뤼허),플랑드르,플랑드르회화,반 에이크 형제,카리용,                 

             안트베르펜-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대성당 제단화,루벤스, 

 

 (배경 영상,음악)  플란다스의 개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or 동영상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QIuRjoicafU<=요걸 클릭

 

 


벨기에(Belgium 벨지움) 개관       위키백과: Belgium

벨기에의 정식 명칭은 벨기에왕국(Kingdom of Belgium)으로 입헌 군주국이다. 유럽의 북서 부, 북해 연안에 있어 온대 해양성의 기후를 보이며,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베네룩스 3국 중 하나다.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벨기에

 

벨기에의 면적은 약 3만㎢로 경상 남, 북도를 합친 정도인데, 인구는 약 1,132만 명으로 인구

밀도가 높다. 종교는 75%가 가톨릭교를 믿으나, 도시나 공업지역에서는 개신교가 증가되는 

분포이다. 전 국민의 약 58%를 차지하는 북쪽 플랑드르 지역의 플라망족(스스로는 '플라밍 

Vlaming’이라 함)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31%를 차지하는 남쪽의 왈로니 지역의 왈롱인 

(wallons)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참조: 민족문화대백과 벨기에 (벨기에왕국) [Belgium]

 

벨기에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이다. 또한 국제기구들은 수도 브뤼셀이나 그 근교에

본부를 두고 있다.

 

벨기에의 역사 

     위키백과: Belgium ,민족문화대백과: 벨기에 (벨기에왕국) [Belgium] 

 

기원전 3세기부터 겔트족과 게르만족이 라인강을 건너 이곳에 이주해 와 ‘벨그’라는 종족을

이루었다. 벨기에는 본래 네덜란드의 남부 지역이었으나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8~1648년)

이후 북부와 분열되면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793년 프랑스가 벨기에를 합병하였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벨기에는 북부의 네덜란드 연합 왕국과 합쳐지게 되었지만 절대주의 통

치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신앙적인 차이로 인해 왈롱인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

했다.

 

1830년 7월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이 혁명에 자극받은 왈롱인들이 1830년 8월에 벨

기에 혁명을 일으켰다. 1831년 7월 21일 레오폴드(Leopold) 1세를 국왕으로 하는 벨기에

왕국을 세우면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고 헌법을 제정하였다.

 

벨기에의 요즘  

벨기에는 1993년에 연방 국가로 탈바꿈했으나,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 심화되어 전 국왕이

었던 알베르 2세(Albert Ⅱ)의 중재아래 2008년 3월에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2010년 6

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540일 가량 무정부 상태였는데, 500일 이상 지속된 벨기에 무정

부 상태는 이라크를 제치고 ‘최장 기간 무정부 상태 지속’이라는 불명예스런 세계 신기록

(기네스북 신기록)을 세웠다.

 

2013년 7월 알베르 2세의 양위로 새로운 벨기에 국왕이 된 필리프 1세는 1960년생(금년56

세)으로 알베르 2세와 파올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다. 한편 2014년 10월 새로 출

범한 벨기에 연립정부의 샤를 미셸 신임 총리는 나이도 금년 40세로 젊은 총리이다.

 

플랑드르(Flandre  영어:플랜더스 Flanders)란?   

      내용출처: 다음 백과 플랑드르 [Flandre]

오리가 놀고 있는 운하 옆 교회 풍경(브뤼헤 근교)

 

플랑드르(Flandre)란 벨기에 말(語)로 ‘블렌데렌(Vleanderen)’, 영어로 ‘플랜더스(Flanders)’

인데 '저지대' 또는 '물이 범람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오늘날 프랑스의 노르 주

와 벨기에의 동플랑드르·서플랑드르 주, 네덜란드의 젤란트 주로 나뉘어 있다.

 

과거 플랑드르(Flandre) 지역은 벨기에 서쪽을 중심으로 네덜란드 서쪽에서부터 프랑스 북

쪽까지를 포함한 지방으로 11세기 이후 모직물업으로 도시가 번성했고, 벨기에가 독립하여

분리될 때까지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의 지배를 받았다. 

 

‘플랜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

      참고 링크: 플랜더스의 개 [A Dog of Flanders])

‘플랜더스의 개는 네로(Nello)와개 파트라슈(Patrasche)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위다(Ouida)의

소설로 1872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1975년에 쿠로다 요시오 감독이 TV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로 각색했다.  

  

플랑드르(Flandre) 회화      내용 참조 링크: 두산백과 플랑드르의 회화

플랑드르 회화가 융성한 시기는 15세기 초이지만 일반적으로 16세기까지 네덜란드와 벨기

에서 발전한 미술을 가리키며, 17세기 초 네덜란드가 독립한 후에는 벨기에 지방 미술의 대

명사로도 쓰이고 있다.

 

15세기에 들어서 네덜란드의 형제 화가 반 에이크(Van Eyck) 형제가 출현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화려한 북방 르네상스의 회화를 전개하였다. 형은 후베르

트(Hubert, 1370년 경 ~ 1426년)이고 동생은 얀(Jan, 1390년경 ~ 1441년)이다. 플랑드르

르네상스(북방 르네상스)라고 할 경우에는 독일 르네상스도 포함된다. 그들이 그린 벨기에

헨트(Gent) 대성당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 Adoration of the Lamb〉(1432)는 플

랑드르 르네상스의 최고 걸작이다. 그들의 사실주의 기법은 재질감과 빛 그리고 자연의 공

간 효과를 충실히 묘사하는 기법을 완성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링크: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는 플랑드르 회화의 창시자로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정교한 세부묘사와 중세 말 부르고뉴 궁정의 호화로움을 묘사한

그림들을 그렸다. 또한 얀 반 에이크는 거의 모든 작품에 서명을 한 최초의 플랑드르 미술

가 중 한 명이다.

 

플랑드르 회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생동하는 감각적 표현과

뛰어난 회화 기법으로 유명하다.

 

15세기에는 반 에이크형제 외에도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한스 멤링, 휘호 판 데르 휘스, 디르크 보우츠, 히에로니무스 보슈 등 개성있는 화가들이 활약

으며, 16세기에는 농민생활을 그린 화가 브뤼헐(대 피터르 브뤼헐 1525~1569)하다. 

 

17세기에는 호화찬란한 회화를 탄생시킨 거장 루벤스가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8년간의

이탈리아 체재 중에, 당시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카라바조의 새로운 자연주의와 카라치 일파

의 절충주의를 배움과 동시에 르네상스회화, 고대의 미술 등에서도 많은 것을 배워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다. 17세기 벨기에(플랑드르)에는 루벤스 외에도 후반생(後半生)을 이탈리아

에서 활약하고 영국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안톤 반 다이크(안토니 반 다이크)를 비롯하여,

야콥 요르단스, 아드리엔 브로우베르, 다비드 테니르스 등 훌륭한 화가가 배출되었다.

 

그러나 18세기부터 19세기 전반에 이 지역은 한갓 프랑스회화의 지방화단으로 전락하였고,

겨우 19세기 중엽 제임스 엔소르가 나와 플랑드르 회화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그 후에도 새

로운 표현주의와 쉬르레알리슴 회화에 상당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오늘날에는 유럽 화단의

커다란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플랑드르 지방의 독특한 계단식 지붕  

브뤼헤 종탑이 있는 마르크트 광장에는 플랑드르 지방의 독특한 계단식 지붕선들이 보인다.

엄격히 말하자면 지붕이라기보다 지붕 옆의 계단형 끝처리이다. 대개 벽돌로 쌓은 벽에다

지붕을 마감할 때 이렇게 계단식으로 처리했다. 동화(童話) 속에 나오는 풍경을 연상케 하

는 이 독특한 지붕 모양은 과거 플랑드르로 불렸던 벨기에 북부와 네덜란드 북서부 지역에

서 많이 볼 수 있다.

 

방문했던 벨기에 도시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브뤼헤(Brugge)

홈피:www.brugge.be  다음백과:브뤼헤  ,  위키백과:브뤼허

멀리 종탑이 보이는 브뤼헤 운하

 브뤼셀 서쪽 약100km에 있는 브뤼헤는 벨기에 서(西) 플랑드르주의 주도(州都)이다. 브뤼헤

는 13세기에 한자 동맹의 중심지였고 플랑드르 지방에 대한 실제적 통치권을 갖고 있었다.

14세기에 상업의 전성기를 맞았으나 15세기 이후 운하와 즈윈 만에 토사가 퇴적되어 대형

선박의 항행에 지장이 있자 교역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쇠퇴하였다.

 

그러나 부르고뉴 공작(부르고뉴 공작)가의 거주지이자 플랑드르 학파 미술의 중심지로서의 영향력

은 16세기까지 계속되었고, 시내에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의

동상이 있다.

 

19세기에 운하가 재건되고 중세의 건물을 보수하여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다시 탄생되었다.

‘벨기에의 베니스’로 불릴 만큼 운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구시가지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

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브뤼헤를 둘러싸고 있는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시내 구경하는 보트투어 가격은 7.6유로며 배로 한 바퀴 도는 데 약 40~50분 소요

된다. 구시가지에서 북해 해안의 브뤼허-제이브뤼허 항구까지는 15km로 작은 배는 다닐 수 있다.

 

베긴회(Béguinage) 수도원과 사랑의 호수   위키백과: Béguinage

지붕끝이 계단형인 브뤼헤 베긴회수도원(Begijnhof)

 

베긴회 수도원은 12세기경 벨기에 리에주 지역의 수도사였던 램버트 베그가 생을 마감하면

서 자신의 재산을 고아들을 위한 수도원으로 바친 것에서 시작되었다. 베긴회 수도원은 벨

기에의 다른 도시뿐만아니라,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지에도 수도원이 있다. 그중 브뤼헤의

베긴회 수도원은 벨기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이 수도원 앞에는 오리들이 평화로이 노니는 ‘사랑의 호수’가 있다. 

 

브뤼헤 마르크트광장(Markt Platz 시장 광장)과 종탑(Belfry)

시청사와 길드하우스들이 둘러싼 마르크트광장

 

브뤼헤의 중심인 마르크트광장에는 시청사와 13세기에 지어진 길드하우스(guild house) 건

물들이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히스토리움은 브뤼헤의 역사를 둘러 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

이며, 광장 북쪽의 법원 건물은 1878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네오고딕 스타일로

1892년 다시 완공되었다. 다양한 창틀과 여러 가지 모양의 벽체를 가진 길드하우스 등 여

러 건물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지붕 옆을 계단식으로 처리한 것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흔

히 볼 수 있다.

1240년에 세워진 높이 83m의 종탑(Belfry)

 

마르크트 광장 한쪽에 1240년에 세워진 종탑(Belfry)은 높이 83m로, 종탑에 올라가면 운하

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를 잘 조망할 수 있다. 종탑은 브뤼헤의 상징으로 종루 꼭

대기에는 거대한 1개의 종과 46개의 또 다른 종들이 있다. 각 종은 크기에 따라 다양한 음

색과 파장의 종소리를 들려주는데, 이 브뤼헤 종탑의 종소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

끗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브뤼헤의 종탑(Belfry)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종탑 중

하나이며, 매주 3번 종소리를 이용한 카리용 콘서트가 열린다. 이 종탑은 안트베르펜의 성

모마리아 성당 종탑과 함께 플랑드르지역의 31개의 종탑을 묶어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탑

들’이라는 이름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카리용(Carillon)   참조 다음백과: 카리용 [carillon]

카리용은 성당이나 관청의 종을 말하는 데, 스무 개 이상의 종을 달아 멜로디와 다양한 화

음을 만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종탑에 설치되며 종의 추에 줄로 연결된 나무 레버(lever)나

페달(Pedal)이 달린 클라비어(Klavier 건반)로 연주하며, 근대에 들어와 전기로 추를 움직여

연주하는 것도 있다.

 

유럽의 카리용은 14세기에 추(錘) 회전장치가 발명되어, 해머(망치)와 줄에 연결된 레버의

물림쇠를 벗기면 해머가 종을 치게 된다. 카리용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기술자 프랑수

아 에모니와 피에르 에모니에 의해 그 정점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종을 정확한 음정으로 조

율한 최초의 인물들이다. 특히 종의 내부 조율(종의 복합적 음향을 구성하는 배음(倍音)들의

조율) 방법을 완성함으로써 200년 동안의 숙제를 해결하였다.

 

벨기에의 메헬렌은 16세기부터 카리용의 중심지였으며 1557년에 그곳의 생롬볼 성당에서

최초의 시(市) 카리용 연주자의 지위가 주어졌고 그 성당의 카리용은 세계에서 유명해졌다.

 

브뤼헤(Brugge)의 성모마리아(Notre Dame 노트르담) 대성당과 성혈성당(聖血聖堂)

브뤼헤의 성모마리아(노트르담성당) 대성당에는 반 다이크의 회화가 있어 플랑드르 미술의

면모를 볼 수 있으며 미켈란젤로의 ‘성 모자상(母子像)’ 조각이 있다.

 


  브뤼헤 성모 마리아(노트르담) 성당
 성혈성당 입구

 

성혈성당(聖血聖堂 Basilica of Holy Blood 14~16세기)은 1150년 제2차 십자군전쟁에 참가한 

플랑드르 백작 브랜들리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예수의 성혈(聖血)을 모신 예배당으로 유명

하다. 이 일을 기념하여 매년 5월 승천제 행렬이 여기서 출발하는데, 중세 풍속을 재현하는

다양한 행렬이 이루어진다. 이 보혈의 행렬은 200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뢰닝 박물관 Groeninge museum  홈페이지: Groeningemuseum

이곳은 플랑드르 지역에서 왕성했던 플랑드르 미술부터 현대 미술(모던 아트)과 수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18-19세기의 네오클레식과 리얼리티, 상징주의와 관련한 작품

들이 유명하며,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볼만하다.

 

안트베르펜(네: Antwerpen,  불어: Anvers 앙베르, 영어: Antwerp 앤트워프)

  홈피: www.antwerpen.be  내용 참조-다음백과: 안트웨르펜 [Antwerpen], 위키백과: 안트베르펜

안트베르펜은 벨기에 제2의 도시로 19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였다. 북쪽으로 네덜란드와

국경에 접한 안트베르펜은 스헬데·데일레·네테·루펠 강이 흐른다. 이전에는 브라반트 공국에

속했으며 켐펜란트에서 이곳과 리에주를 잇는 알베르 운하(1930~39)가 개통됨으로써 아연,

구리, 핵에너지 산업이 확장되었다. 북부 및 중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켐펜란트 고원 지역

은 사구(砂丘), 금작화 자생지, 황무지, 메마른 목초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침엽수 조림

지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Notre Dame 노트르담) 대성당

안트베르펜의 성모 마리아대성당의 종탑은 높이가 123m로 멀리서도 잘 보이는데, 이 성당의

제단화는 플랑드르 미술의 대가인 루벤스의 작품이다.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림'-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성당

 

새로운 감각으로 지어진 안트베르펜 중앙역(中央驛) 

아르 누보(Art Nouveau) 양식의 '안트베르펜 중앙역사'

 

‘안트베르펜 중앙역사(驛舍)’는 규모도 엄청나지만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으로 지어졌다.

보통 역사들의 플랫폼은 지상에 있지만 이곳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플랫폼은 수직으로 지하

5~6층 구조이다. 이 역사와 연결된 아케이드에는 다이아몬드 가게들이 즐비한데, 사실 앤트

워프는 500년이 넘는 다이아몬드 상거래 지역으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의 80%가 거래되는

다이아몬드의 도시이다.

 

(계속) 

 

네덜란드(2)-네덜란드의 화가들-고흐,고흐미술관,크뢸러뮐러미술관,렘브란트,루벤스,반다이크,베르메르,데 스틸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 Vincent" -고흐를 생각하며

                음악을 Play(연주)하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클릭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음.

                 만약, 아래 영상이 안 보이면  다음 유튜브 주소

                     http://www.youtube.com/embed/dipFMJckZO <= 요걸 클릭!

 

네덜란드는 스포츠 강국        

      네덜란드가 스포츠 강국인 이유는 네덜란드인들이 키(신장 身長)가 크고 체력이 강해서 일

것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타서 허벅지 근육과 다리 힘이 강해진 것도 한 요인일

테다. 자전거 대회의 인기는 축구보다 더할 정도이며, 구기 종목인 배구뿐만 아니라 겨울

스포츠인 스케이트 종목도 강하다. 운하가 얼어붙는 해에는 전국 11개 도시를 완주하는 엘

프스테덴토흐트(Elfstedentocht) 대회가 열린다. 한편 축구 실력은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

을 3번 달성한 축구 강국이지만 아직 우승한 적은 없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1988년

우승하였다. 

 

네덜란드는 미술(美術) 강국  

네덜란드의 관문 스키폴(Schipol = 스히폴) 국제공항 환승구역에는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컵과 나막신들이 있어 이 나라가 도자기의 나라임을 은근 과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공예

품으로는 델프트(Delft) 도자기와 붉은 색의 아름다운 마쿰(Makkum) 도자기를 들 수 있다.

도자기는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하였고, 17세기부터 중국 등

의 영향을 받아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네덜란드에는 국립미술관(http://www.rijksmuseum.nl/)

   반 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렘브란트 미술관(http://www.rembrandthuis.nl/en/)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4개의 큰 미술관이 있고, 개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외에도 각 시의 시립 미술관에 수많은 미술품

들을 소장하고 있어 미술 강국임을 알 수 있다.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할스, 수틴 등의 작품이 전시된 국립미술관이 17세기 미술을 보여준

다면, 반 고흐 미술관은 19세기 미술을 보여주는 미술관이다. 시립 미술관인 스테델릭 미술

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트위터: >https://twitter.com/stedelijk )은 19세기부터 21세기

까지 가장 최근의 미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네덜란드의 미술(회화) 분야에서는 17세기 초 유화 기법의 선구자 프란스 할스가 활약했고,

중엽에는 유화 기법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렘브란트 판 레인(렘브란트 판 레인)이 나타났다.

 

중산 계급이나 농민의 생활을 주로 그린 얀 스테인, 풍경화가 로이스달 등도 유명한데,  그중 

로이스달(로이스달 [Salomon van Ruysdael])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로 여겨진다.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 위키백과:  안토니 반다이크 - 위키피디아

루벤스에게 배우고 그의 조수로 있었던 반 다이크는 '플랑드르 그림'의 대표적 초상화가로

유명하며,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티치아노 · 베로네세 등 베네치아 대가의 감화를 받았다.

부드러운 구도와 아름다운 색채로 종교, 신화, 우의적인 제재도 취급하였으나 초상화가로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영국 화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1632년부터 찰스 1세

의 궁정 화가로서 죽을 때까지 2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십자가 강하>,

<찰스 1세의 초상> 등이 있다.

 

루벤스(Rubens 1577~ 1640)    참조 두산백과: 페테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십자가에서 내림(루벤스)-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성당

루벤스(Rubens)는 에스파냐의 벨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최대의 화

가로 당시 왕후, 귀족의 호화로운 취미와 현실주의를 가장 잘 표현하는 화가이다. 그의 역

량과 작풍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작으로는 1621∼25년에 제작한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왕

비의 생애를 그리스 신화와 교묘하게 연관시켜서 그려낸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바로크 회화의 진수이다.

 

반 다이크 - ‘찰스 1세의 초상’ –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Vermeer, Jan, 1632~1675)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황금시

대인 17세기를 대표하는 세 명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뛰어난 색조,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靜密感)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델프트 풍경>,

<레이스를 뜨는 여인>, <우유 따르는 여인>등이 있다.

  참고 두산백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Jan Vermeer]                           

베르메르가 고향 풍경을 그린 '델프트의 풍경'

명암 대비의 대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 ~ 1669)

    위키백과: 렘브란트 판 레인, 내용 참조: 렘브란트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인 렘브란트는 빛의 명암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한 화가로 유명하다. 제분업자의 아홉째 아들로 출생한 렘브란트는 역사화가

스바넨부르흐(Jacob Isaacsz Swanenburgh)로부터 배운 후, 암스테르담의 피테르 라스트만

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 후 출생지였던 라이덴에서 중진(重鎭) 초상화가로 인정받았고 1631

년 가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에 일약 초상화의 제일인자로 부상했다.

 

렘브란트의 걸작: 야경(夜警 야간 순찰하는 사람)-1642

 

      렘브란트의 화풍은 전기(1650 이전)에는 카라바조의 명암과 바로크적인 구도의 내면화에서

출발했으나, 후기에는 인간 심리의 심층을 조사(照射)하여 깊은 정신구조를 조형화한 신비

로운 화면이 되었다. 전기의 대표작으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다나에>, <야경(夜

警)>(1642), 후기에는 <바테시아>, <바다비아인의 모의>, <유태인의 신부>(1668~1669경)

등이 있다.

 

렘브란트는 많은 자화상 외에도 그의 데생(dessin) 작품 역시 또한 높이 평가되며 약 1300

점이 남아 있다. 데생(dessin)이란 채색을 하지 않고 주로 선으로 형태나 명암을 나타내는

회화 표현 방법이다.

 

판화에도 조예가 깊었던 렘브란트  

렘브란트는 판화(版畫)에도 조예가 깊어 판화의 에칭 기법을 개발하였고, 질적으로도 뛰어

난 작품을 전 생애에 걸쳐 300 점을 제작하여 판화가로서도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다. 에칭

(링크:에칭 [etching])이란 동판(銅版 구리판)에 긁힌 자국을 만들어 판화를 찍어 내는 기법이

다. 즉 동판에 밀랍·역청·송진의 혼합물로 된 바탕(그라운드)을 입히고 그 위를 뾰족한 도구

로 밑그림을 그린 후 동판을 부식액에 넣으면 동판에 홈이 파이고 형태가 새겨진다. 홈이

새겨진 동판에 잉크를 발라 종이를 압착시키면 판화가 만들어진다.


렘브란트의 박물관 (http://www.rembrandthuis.nl/en/)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박물관은 렘브란트가 1639년에서 1660년까지 살았던 집

으로 렘브란트의 판화 작품과 원본 에칭 전시 외에도 그의 판화 기법을 시연해 보여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생 2백90점의 판화를 제작했던 렘브란트는 15세기 네덜란드 동판화의 거장 마르틴 숀가

우어, 16세기 독일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뒤를 이어 판화를 독립된 예술장르로 격상시키

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드라이포인트 같은 기존의 판화기법에 제작과정이 간편한 부식동판

화 에칭을 접목해 선의 강약과 미묘한 명암변화를 자유자재로 다룬 그의 판화는 어둠과 빛

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대상을 부각시키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이 특징이다.

이 기법은 화면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하고 중심과 강조점만 밝게 처리하여 드라마틱한 효과

를 나타내는 기법이다. 흑백의 명암으로만 대상을 표현하는 단색판화는 이 같은 렘브란트의

특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매체였다.

 

 
렘브란트 판화, <설교하는 예수> (1643∼49)
그림 출처:
http://blog.daum.net/jinapower/13318824
렘브란트 판화, <목자들의 경배> (에칭, 1652)
그림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files/cul/cul_20061223010926_seo2222.jpg

 

렘브란트의 판화는 유독 구약·신약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은 데, 그가 묘사한 빛

이 고요하면서도 강렬해 극적인 사건들을 묘사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대

표작 <설교하는 예수>(1643∼49)는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사건들을 표현한 것으로, 손을

하늘로 향하고 설교하는 예수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두드러져 보인

다. 

 

그의 또 다른 판화 <목자들의 경배>(에칭, 드라이포인트, 1652)는 들판에서 천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오른쪽 구석에서 나오는 불빛은 호롱불이 아니라 아기 예수에게 서 나오는 신성의 광채거나

은혜의 불빛으로 풀이된다. 렘브란트는 인공의 호롱불과 은혜의 불빛을 대조시켜 그분의 신

성을 강조한다. 서성록 교수의 평이다. 내용 출처:

http://cafe.daum.net/logos/8jq/2229?q=%B7%BD%BA%EA%B6%F5%C6%AE%20%C6%C7%C8%AD%20%B8%F1%C0%DA%B5%E9%C0%C7%20%B0%E6%B9%E8&re=1

 

네덜란드의 국민 화가 빈센트 반 고흐(van Gogh) 

       내용참조: 다음백과: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D%9D%90 

 

네덜란드에 와서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그림을 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19세기에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등장하여 네덜란드의

미술계를 꽃피웠다.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고흐

는 그의 생존기간 동안에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 명성은 급속도로 커

졌다.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에 끼친 반 고흐의 영향은 막대하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과 그의 同시대인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

며, 암스테르담 남동쪽 80km에 있는 크뢸러-뮐러 박물관(krollermuller.nl/visit)도 반 고흐

그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강력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그의 수많은 걸작은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 단 10년(1880~90년) 동안 만들어냈다.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해바라기>등이  대표작이다. <베 짜는 사람들 Weavers>, <감자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안타까운 일생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였다. 고흐는 어린 시

절 형의 죽음을 보았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을 싫어하여 기숙사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16살에 (빈센트) 고흐는 삼촌 빈센트의 권유로 헤이그에 있는 구필 화랑에 근무하게 되었는

데 1873년에 그의 회사는 그를 런던으로, 다음에는 파리로 발령했다. 그즈음 그는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잉글랜드 켄트 주의 감리교학교 램스게이트에서 견습교사가 된 다음

1877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1878년에 신학교를 그만둔 그는

보리나주로 알려진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평신도 설교자가 되었지만 곧 해고 되었고,

1880년에, 빈센트는 동생 테오의 제안을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85년과 1886년 사이 겨울에 반 고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미술 학교에 등록했지만 퇴

학당했다. 이즈음 고흐는 일본화의 밝은 색채와 캔버스 공간의 사용, 그림에서 보인 선의

역할에 감탄했으며, 일본화의 단순하고 솔직한 표현 방법, 색채들을 결합하여 분위기를 표

현하는 일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 창녀나 과부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상처 받고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소용돌이와

원색의 노란색으로 표현하여,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

> 등의 걸작들을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가 남프랑스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는 1888년 2월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Arles)로 갔는데,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을 유지하면서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표현하려 했다. 1888년 크리스마스이

브에 반 고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일으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랐으며, 1889년 4월말 정

신병원에 입원하였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있는 동안, 되풀이되는 발작에 시달리고 평온한

기분과 절망적인 기분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정신병원의 정원 Garden

of the Asylum>, <삼나무 Cypresses>, <올리브 나무 Olive Trees>가 이때의 작품이다.   

 

고흐가 조카 탄생을 축하해 동생 테오에게 그려준'아몬드꽃 Almond Blossom' -1890년 작품-

아몬드꽃은 매화처럼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꽃이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

의 불화 끝에 귀를 자르고, 자발적으로 들어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랑

하는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자, 조카의 탄생을 기념하는 선물로 주려고 그린 것이다. 이른

봄에 피는 아몬드 꽃처럼 조카가 고통을 잘 극복하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자살한 해의 마지막 봄에 그려진 그림이다.

 

1890년 그는 파리 북쪽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돌아가 <옥수수밭>, <강이 흐르는 골짜기>,

<농부들의 오두막>, <교회> 등 시골마을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결국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에 세

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그가 살아 있는 동

안 팔린 작품은 데생 1점뿐이었다. 그를 무조건 믿었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활

을 유지했다. 1872년부터 테오와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은 그의 목표와 믿음, 희망과 절망,

수시로 달라지는 건강상태와 정신상태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서, 진실한 인간기록이라 할 수

있으며 독특하고 감동적인 전기(傳記) 자료이다.   

 

다음 링크들은 고흐의 그림이 소장된 곳으로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거나 다운 받을 수 있다. 

1) 반 고흐 뮤지엄 홈페이지:

    http://www.vangoghmuseum.nl/en/

2) 반 고흐 그림이 있는 사이트:

    http://www.vangoghmuseum.nl/en/search/collection

3) 크뢸러 뮐러(Kroller Muller)미술관 홈페이지: krollermuller.nl/visit

 

고흐의 그림을 많이 소장한 크뢸러 뮐러(Kroller Muller)미술관 

홈페이지: krollermuller.nl/visit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아를의 다리(跳開橋 도개교-고흐-

 

크뢸러뮐러(Kroller Muller)미술관은 암스테르담에서 남동쪽으로 80km 쯤 떨어진 호헤 벨뤼베

국립공원(De Hoge Veluwe)안에 있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네송이의 해바라기

Four Sunflowers Gone Seed>, <씨뿌리는 사람>, <밤의 카페 테라스 Terrace of a Cafe

at Night> 등 고흐 그림 90여 점이 있다. 고흐의 작품 외에도 모네, 르누와르, 세잔느, 피카

소, 몬드리안, 칸딘스키, 쿠르베, 밀레, 도미에 등 유명 작가의 작품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전개된 신조형주의(De Stijl 데 스틸-링크:더 스테일) 운동의 주요 작가인 몬드리안

(Mondrian)과 반데어레크(Van der Leck)의 작품들이 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자체도 훌륭한 건축 작품이며, 미술관 바깥의 조각공원에는 로뎅의 작

품 등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계속)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