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기3-압사라,바이욘사원,똔레삽호수
여행일자: 2007년 9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돌이끼가 끼어 있는 바이욘 사원의 돌부처-‘크메르의 미소’
앙코르 톰은 '거대한 도시'라는 의미로 입구부터 四面(사면)이 돌부처 얼굴로 조각된 많은 塔像(탑상)들로 가득한 바이욘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앙코르 왓보다 100년 뒤 건축된 이 바이욘 사원은 처음엔 54개의 탑에 200여개의 얼굴상이 조각됐다지만 지금은 많이 붕괴되고 36개의 탑상만 남아 있다고 한다. 돌이끼가 끼어 있는 바이욘 사원의 돌부처는 깨어지고 풍화작용에 의해 부서진 모습들이지만, 웅장함과 섬세함이 깃든 조용한 미소에는 따뜻한 반가움을 느끼게 된다. 부처상들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서 있으면 엄숙한 분위기와 숙연함이 느껴진다. 이 바이욘 사원의 돌부처의 미소는 ‘크메르의 미소’로 불린다. 알려지기로는 관음보살상이라고 하지만 왕의 자화상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바이욘 사원의 회랑에는 연꽃 밭 위에서 춤추는 舞姬(무희)의 모습들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는데 특유의 춤 모습과 손동작을 한 이것들을 ‘압사라’라고 부른다.
<압사러 동영상>: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동영상 보려면 ▷클릭
이 압사라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Erbp1Isk96M <=요걸 클릭
다른 회랑에는 그들의 일상생활 모습이 그려진 풍속도가 사실적으로 부조되어 있어 그네들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압사라의 모습과 신비한 바이욘 부처의 미소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 최대의 호수 똔레삽 호수와 수상 가옥촌
이 나라 사람의 대부분은 프놈펜과 바탕방 주변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주민들도 거의 똔레삽 호수와 메콩강 주변 등 강을 끼고 살고 있다고 한다. 똔레삽 호수에서의 연간 어획고는 우리나라 근해 수산업의 연간 어획고에 맞먹는다고 하니, 이 나라 사람에게선 똔레삽 호수와 메콩강이 삶의 터전인 셈이다.
시앰립 근처의 똔레삽 호수와 수상 마을을 보기 위해 한 마을의 선착장을 찾아갔다. 지역 군인인지 경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입구를 차단기로 막고 소위 ‘통행료’를 받고 있었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봉이 김선달의 모습은 없었다하나 관광객들이 늘자 이런 식의 '삥 뜯기'가 생겼다 한다. 관계 당국에서도 이들의 행태를 알지만 방치하고 있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배로 오르는데 어떤 젊은이가 카메라로 우리들의 모습을 찍는다. 처음에는 혹시 모를 수상사고에 대비하여 인적 사항을 기록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배에서 내릴 때 보니 찍힌 사람의 사진을 도자기 접시에 인쇄하여 ‘5달러’에 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들 중엔 어른들도 있었지만 열 살 내외의 어린이들이 물건을 팔아달라고 졸라대었다. 이런 어린이들은 부모가 시켜서 나온 애들도 있지만, 소위 어른(물주)이 물건을 팔아 오도록 시켜서 나온 '앵벌이'도 많다고 한다. 손님에게 5달러를 받아도 실제 그네들은 판매 수수료 명목으로 몇 센트만을 받을 뿐이라는 것이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일행 중 어떤 이가 한국에서 이 사람들에게 주려고 옷가지를 준비해 왔는데, 물건을 나누어 주는 순간 물건 쟁탈전이 벌어지는 아귀다툼이 일어났다.
똔레삽 호수로 움직여 나가는 배는 자동차 엔진 부품들을 뜯어 맞추어 개조한 것이었다. 배를 타고 가다 보면 강변에 그네들의 수상가옥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얼기설기 설치한 것이 무너지기 직전인 것처럼 느껴졌다. 수상주택 사이에 한국에서 세워 준 수상학교와 교회들이 있었는데, 공부를 하고 있거나 교회의 돌봄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이 곳 학교와 교회에서 일부나마 아이들을 돌본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장사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작은 보트와 관광객이 탄 배 사이를 위험천만하게 옮겨타는 아이들
우리들이 탄 배가 호수 쪽으로 한참 나갔을 때쯤이었다. 어떤 아이와 여인이 탄 조그만 (모터)보트가 우리 배를 좇아오더니 그 보트에서 채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우리 배로 건너뛰어 왔다. 마치 서커스의 그네타기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람을 던져받듯이, 저쪽 배에서 이쪽 배로 점프하듯이 옮겨타는 위험천만한 재주(?)를 보여 주었다. 우리 배에 올라와서는 바나나 등 열대과일을 팔았다. 우리 배에서의 장사가 끝나자 엄마로 보이는 여인의 보트로 다시 옮겨타는 위험천만한 곡예를 다시한번 하였다. 매상이 만족스러웠는지 자신의 배 옮겨타는 기술이 만족스러웠는지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장사용 보트를 가진 사람은 그나마 좀 낫게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에필로그
킬링필드로 상징되는 캄보디아 내전 30년 동안의 살육전으로 어른들이 많이 죽었다. 요즘(2007년 경) 이 나라의 평균 연령은 20세가 안 되고 인구의 65%가 여자로 이 중 41%가 과부라고 한다. 낙후된 의료 시설, 영양과 위생 상태의 불량으로 신생아 사망률(신생아가 1년 안에 사망하는 비율)은 20% 정도이며 평균 수명은 50세가 채 안 된다고 한다. 많은 고아들이 길거리를 떠돌고, 나이 어린 소녀들이 성매매 대상이 되어 늘어가는 AIDS 환자들 속에서 이리저리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아들은 절(사원)에서 돌보고 있으며, 태권도 교관을 하던 한국인“지미 링”씨는 약 450명의 고아를 돌보고 있다 한다.
캄보디아는 장기간의 내전의 끝에 연간 국민 소득이 400불 정도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하였다. 국제사회의 원조가 없다면 이 나라 사람들의 살림이 어떨 것인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쟁동안 매설된 많은 량의 대인지뢰로 인하여 확인되지 않은 곳의 출입은 위험하다고 한다. 또한 파괴된 관개시설의 개보수가 아직도 미흡하고 새로운 관개 건설도 부족하여 2모작이 가능하던 농업 생산성은 아직 낮은 상태라고 한다. 그 외에도 아직도 높은 문맹률, 낮은 노동 생산성 등 풀어야 할 많은 숙제를 가지고 있다.
(2007년 당시) 최근 몇 년 사이 앙코르 왓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한국인들에 의한 이곳 캄보디아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부동산업, 식당 등 서비스업)들도 팽창일로라고 한다. 한편 한국인들에 의한 선교활동이나 고아 입양, 학교 건설, 도서관 건설 등 각종 사회사업과 종교 구제사업의 활동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내일이면 보다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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