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기05-이스탄불,보스포루스 해협,톱카피 궁전,돌마바체 궁전,아타튀르크,그랜드바자르
여행일자: 2007년 05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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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접점 보스포루스 해협
우리는 카파토끼아 근처 카이세리 공항으로 이동하여 이스탄불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참고로 여행 일정에 따라 이스탄불을 먼저 구경하고 카파토끼아로 날아오는 일정도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고 있다. 길이가 약 30km 정도이며 넓은 곳은 폭이 3500m이지만 700m로 좁은 곳은 물 흐름이 세차서 배 운항에 위험할 정도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는 중간 교각 없이 여러 개의 줄에 매달려(현수교)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저 터널도 공사하는 중이라고 한다.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관광선을 탑승하여 양측 해안을 따라 가다 보면, 경치 좋은 곳에는 별궁과 귀족들의 저택들이 도열해 있고 부자들의 무덤자리도 보였다. 한편 이런 거대하고 고전적인 건축물 사이로 오늘날의 유행에 맞게 해변 카페, 음식점, 찻집, 별장 등 그림같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도처에 깔려 있다.
비잔틴 문화의 중심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Konstantinopolis)이며 콘스탄티누스 황제(Constantinus I) 이름에서 따왔다. 지리적으로 터키 땅의 98%가 아시아 쪽에 나머지는 2%는 유럽 쪽에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그 무게 중심에 있어 저울의 balance를 맞추듯이 균형을 잡고 있는 형상이다. 2%의 이스탄불이 98%의 아나톨리아와 균형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 인류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이스탄불을 두고 '인류 문명이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유럽에 위치한 이스탄불은 2000년이 훨씬 넘는 그 역사에 걸맞게 양 문화의 접점이자 상업의 교류지였다. 세계를 지배한 강국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이기도 하였던 이곳은 과거 번영의 흔적들이 혼재되어 있다. 특히 14세기 비잔틴 제국 멸망 이후부터 1922년 터키 공화국이 건설될 때까지 오랜 역사를 지녀온 오스만 제국은, 한때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영역까지 지배했던 지중해 지방의 맹주였고 그 중심 도시가 이스탄불이었다. 오늘날 이곳은 터키에서 제일 큰 도시(약 5,200㎢)이자 터키인들엔 자랑스럽고 화려한 신-구 문화의 중심 도시이다.
여기서 잠깐 퀴즈! 이스탄불의 공항 이름은 무엇일까?
짐작하시겠지만 이스탄불의 공항 이름은 ‘아타튀르크’ 공항이다. 터키의 고대 도시를 둘러 보는 동안 이 이름을 잠시 잊고 지냈지만, 이곳 이스탄불에서는 아타튀르크의 이름과 얼굴(그의 모습을 그린 깃발)을 단 하루도 보지 않고서는 지낼 수 없다.
오늘날은 12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터키의 도시중 가장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도시이지만, 근세 이전의 국제 중심도시로서의 면모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구렛나루를 기른 큰 덩치의 터키인들 제외하고선, 관광객 대부분이 유럽 각지에서 찾아온 외국 관광객들이고 동양인들 대부분은 중국인과 한국 관광객들이었다.
톱카피 궁전과 돌마바체 궁전
이스탄불엔 두개의 유명한 궁전이 있는데, 톱카피와 돌마바체가 그것이다.
톱카피 궁전은 1459년에 세워져 6세기 동안 3개 대륙을 통치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오스만 터키 제국이 400여 년간 행정 궁전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24명의 술탄(황제)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궁녀와 하인들이 사용했던 곳으로 이곳에 소장된 유물은 86,000여점으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한다.
톱카피 궁전 안에는 오스만 시대의 휘황 찬란한 유물관과 보석관이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궁전內 보석관에 있는 3kg의 에메랄드로 장식된 톱카피 단검과 89캐럿의 스푼 다이아몬드 앞에서는 발등을 밟히지 않을 수 없다.
화려함의 극치 돌마바체 궁전
돌마바체 궁전은 보스포루스 해협 바닷가에 있어 바다에서 외국 사신들이 바로 이리로 들어 올 수도 있다. 이 돌마바체 궁전은 1843∼1856 사이에 압둘 메짓 1세(Abdull Meciti)가 베르사유 궁전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을 꿈꾸며 만든 궁이다.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지만 오스만 제국 멸망의 한 단초가 되었다.
이곳에는 진짜 대리석 만큼이나 우아한 기둥들과 285개의 방에 43개의 홀이 있고 280개의 화병, 156개의 시계, 58개의 수정 촛대, 560점 이상의 그림있으며 보석(영국제 수정)으로 된 36개의 샹들리에가 있다고 한다. 내부 중앙에 있는 4.5톤이나 나가는 수정 샹들리에는 750개의 촛대가 있으며 세계 최대의 것으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선물이라 한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수정 제품과 도자기, 훌륭한 카펫들, 그리고 곳곳에 걸린 수 많은 태엽 시계와 거울은 각각의 박물관을 세울 정도로 많다고 한다.
복도 거울은 2짝씩 전면과 후면에 설치되어 자객이 뒤에서 오는지 감시할 수 있도록 걸어 두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 하나는 방마다 크고 작은 시계가 한 두개씩 있었는데 시계들이 모두 9시 5분으로 정지되어 있었다. 이것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이곳을 대통령관저로 사용하다가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집무 중에 사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내부 장식과 방을 꾸미기 위해 금 14t, 은 40t을 사용하였고 건축경비로 500만 금화(현재 돈으로 5억$)가 들었다는 등의 얘기는 얼른 계산이 안 될 정도이다. 궁전에 소장하고 있던 세계 각처에서 온 진귀한 도자기와 장식품들 등등 모든 것이 돌마바체 궁전과 더불어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궁전과 온갖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물건중엔 다른 나라의 오스만 왕국에 대한 선물과 조공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술탄들의 자기 과시와 사치를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결국 이런 사치 낭비가 오스만 왕국의 멸망의 한 축이었다는 것을 술탄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거대한 왕국의 통치물은 오늘날 터키의 화려했던 과거를 보여 주는 자료로 남아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랜드 바자르에선 물건 값을 깍아야...
그랜드 바자르는 이름 그대로 지붕이 있는 단일시장으로 가장 큰 시장이다. 이스탄불의 ‘남대문 시장’이랄까? 사람 구경, 물건 구경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들어 왔던 곳을 잃기 십상이다. 이 곳의 특산품인 카펫, 양모제품, 가죽 제품, 고전적 실내 장식품인 촛대나, 은그릇 등 금은 세공, 유리 제품, 타일, 보석, 수공예품 등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다.
다른 시장에서도 그러하겠지만 이 곳에선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면 손해본다. 깍는 흥정을 하다 가게를 나올 듯이 하면 최하 가격이라며 가격을 제시하는 데, 그것마저 뿌리치고 가게를 나오면 가게 밖에까지 따라 나와 다시 최저 가격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상술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사려는 사람이 구매 의지를 그 사람들에게 보였고 그네들이 남는 이문이 있을 때 그리하겠지만, 이 사람들은 미소를 띄며 끝까지 고객에게 들러붙는다. 마치 찰거머리처럼 악착같이 따라 붙으며 물건을 파는 놀라운(?) 상술을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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