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마지막 - 끝은 또 다른 시작 -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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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았던 흥겨운 축제

베네치아에서 인스부르크까지의 旅程은 이번 여행에서 최장 시간의 버스 여행길이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노을 저물어 가는 알프스 산의 모습과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없었더라면 지루한 여행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북으로 올라 갈수록 이제까지 보기 힘들었던 눈 덮인 산과 계곡, 마을들이 나타났다.

  
인스부르크의 상징인 '황금 지붕'

 
         Bierwirt 호텔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
 
          
Bierwirt 호텔 복도 통로에서

 

인스부르크에 도착하였을 때는 깜깜한 저녁이었다. 인스브루크는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알프스의 중심 도시로 2회에 걸친 동계 올림픽 개최지이자 스키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겨울 밤바람이 寒氣(한기)를 느끼게 하여 장갑을 꺼내 끼었다. 건물 지붕에는 눈이 쌓인 곳도 있었고 길바닥은 얼어 있는지 걸을 때마다 자박자박 소리가 났다. 시내에서는 전차 철로가 자동차 도로 위에 깔려 있고 전차용 전선이 흡사 거미줄처럼 하늘에 걸려 있었다. 마치 路面(노면) 전차가 다니는 오래된 도시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정상 내일 아침 일찍 독일로 출발해야 하므로 늦은 시간에 황금지붕(Golden Dachl)을 찾았다. 햇빛이라도 비추어졌더라면 그야말로 황금색의 지붕을 볼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깜깜한 밤에 본 황금 지붕은 더 이상의 황금 지붕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이 곳이 유럽 여행의 4대 썰렁(?)한 곳 중의 하나임을 확인해야 했다.  ‘유럽 여행의 4대 썰렁(?)한 곳’이란  유명세에 비해 규모나 감동(?)이 별로인 장소를 말하는 데,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독일 라인 강의 로렐라이 언덕,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황금 지붕을 흔히 말한다.

 

뜻하지 않게 참여했던 오스트리아 민속 공연(?)

우리가 묵은 호텔(inns and restaurants)은 1615년부터 여행객을 받아온 Bierwirt 라는 곳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칠 즈음 식당 통로쪽 어디선가 발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들려 왔다. 잠시 후 깃털 모자를 쓰고 흰 색 셔츠 옷에 갈기가 너덜너덜한 숄을 두른 사람들이 식당으로 들어 왔다. 동물 모습으로 분장한 것 같았다. 이어서 코가 꼬부라지고 검은 속옷에 하얀 스웨터 복장을 하고 붉은 두건을 쓴 마녀와, 사냥꾼 복장에 채찍을 든 포수가 가면을 쓴 채 들어왔다.

마녀로 분장한 사람  
   민속 공연을 한 사람들과 함께
 

 

이들은 사냥하는 모습을 표현하는지 흥겨운 몸동작으로 춤을 추며 요란한 발 구르는 소리를 내었다. 일순 식당 안은 흥겨운 아코디언 소리와 장단을 맞춘 발 구르는 소리로 인해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장소가 그리 넓지 않은 식당이었지만 식탁과 의자를 한쪽으로 치운 약간의 공간이 플로어 스테이지가 되어 손님(여행객)과 공연단과의 오스트리아 민속춤이 벌어졌다. 흡사 삼삼칠박수를 연상케 하는 리듬과 손님들의 박수가 호흡을 맞춘다. “쿵짝짝! 쿵짝짝! 짝짝짝짝 쿵짝짝!”

 

유치원 아이들처럼 무릎 아래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흰 제복에 멜방을 한 것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그네들과, 오스트리아 춤을 모르던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함께 플로어에서 폴짝폴짝, 빙글빙글 돌아가며 圓舞(원무)를 추고 장단을 맞추며 흥을 즐겼다. 나도 플로어로 뛰어 나가 어설픈 손짓과 몸짓으로 이들의 공연에 참여하였지만, 몇 번 춤추며 빙글빙글 돌아가니 공연단의 모습이 불꽃놀이 때 떨어지는 불꽃 실처럼 보이며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리나요? ‘쿵짝짝 쿵짝짝 짝짝짝짝 쿵짝짝’  눈이 온 Bierwirt 호텔 앞의 예쁜 눈사람 장식

 

춤을 배우지 못한 것이 분명한 우리 여행팀 여자가 그네들에게 손을 내밀어 춤을 청해도 그들은 기꺼이 청을 들어 주었다. 무도회는 어느새 다 같이 빙글빙글 돌며 좁은 식당 안을 한바탕 축제의 자리로 만들었다. 잠시의 휴식을 하던 그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우리들이 고맙다고 치는 박수에도 다시 한번 음악을 연주하며 앙코르 공연과 춤을 보여 주었다.

                  

                   당시의 음악과 춤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려면 [춤 잠깐 보려면] 동영상 클릭!

 

어느 누가 초빙한 팀도 아니고 호텔에서 미리 계획한 공연도 아니었다. 이들은 이 지방의 청년들로 가면 축제를 며칠 앞두고 토요일 저녁 한바탕의 마당놀이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들의 놀이에(축제 준비 연습 공연이었는데) 우리가 끼어들기 한 것이었다.

 

공연을 마친 그들과 기념 촬영을 마치고 아쉬움이 남아 호텔 밖을 나오니, 바닥엔 흰 눈이 쌓여 있고 호텔 입구엔 눈사람 장식이 보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가질 수 있었다. 또다시 이런 즐거운 추억의 시간을 어찌 가질 수 있을까? 또 다시 어느 때 이곳을 다시 찾아온들 오늘 같은 즐거운 한바탕의 춤 소동을 즐길 수 있을까? 이들과의 민속춤 축제 이벤트는 한마디로 각본 없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뜻밖의 흥겨운 오스트리아 민속 공연은 이번 여행의 白眉(백미)였다.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원래 오스트리아와 독일 코스는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한 두 군데 정도 관광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다음날은 마지막 일정인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가는 도중 보이는 주위 풍경은 온통 눈 덮인 산지와 구릉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하는 트리처럼 뾰족하게 생긴 검초록색 나무들이 삼림을 이루어 질서 정연하게 빼곡히 심어져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까지 버스로 가는 동안 여행 인솔자는 우리가 지나온 일정을 되짚어 주며 정리해 주었다.

 
 
프리드리히의 가족묘로 사용된 성령교회 
 


  눈위에 새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아
 고즈녁하다 못해 시간이 정지된 듯한 왕궁의 안뜰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는 짙은 녹색의 숲을 배경으로 한 고풍스러운 옛 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도시인데,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 겨울은 다른 남부 지역에 비해 기간이 길고 추운 날씨들이 많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까닭에 이곳에서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과 사색을 추구하는 철학이 발달했을지도 모르겠다. 네카강 건너 언덕에는 ‘철학자의 길’이라고 이름 붙은 숲길이 있을 정도로 많은 예술가와 철학가, 신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古城에서 내려다 본 하이델베르크의 모습

  네카 강의 옛 다리에서 본 古城의 모습

 

눈 덮인 하이델베르크 古城(고성)에 올랐다. 겨울 날씨에 코끝이 시큰하였지만, 눈 위에 새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고 바람도 미동(微動)하지 않았다. 고즈넉하다 못해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성 안에는 연분홍색의 왕궁들이 우리들을 맞이했다. 이 지역에는 붉은 砂巖(사암)이 많아 지붕과 벽돌 등이 붉은색을 띈 건축물이 많다고 한다. 시원한 겨울 공기를 마신 다음 프리드리히 궁 지하에 있는 세계 최대의 맥주통을 둘러보았다. 포도주를 시음하고 기념으로 포도주잔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었다. 궁 안 다른 쪽에는 醫藥史(의약사) 박물관이 있었다고 하나 일정이 촉박하여 방문하지 못하여 아쉬웠다.  

 

프리드리히 5세가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 세운
엘리자베스 문
  
 

 

세계 대전으로 파괴되고 남은 왕궁 모습


古城(고성) 전망대에서 갈색 지붕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내려다보니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도시 군데군데가 하얀 눈에 쌓여 있는 가운데, 네카 강의 옛 다리와 특히 다리 입구 쪽에 있는 쌍둥이 탑은 우리들을 동화의 나라 온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古城에서 시내로 걸어 내려오는 데  길이 얼어 있었다.  미끄러워 발에 힘을 주며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장단지가 땅겼다.  고성을 내려 와 시내에 있는 면세점을 들렀다. 우리 일행들은 쌍둥이 칼과 휘슬러 밥솥 등 독일의 명품(?)을 사는 등 여러 기념품들을 샀다. 성수기 때에는 두 세 팀만 몰려도 좁게 느껴질 것 같은 매장 크기였다.

   

네카 강 옛 다리 입구의 쌍둥이 탑문  
   

하이델 베르그 성 아래에 있는 마리아상(마돈나상)   
 

 

이번 여행의 마무리는 네카 강의 옛 다리로 걸어나가, 쌀쌀하지만 시원한 강바람을 마시며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여행 인솔자는 좋은 일행을 만난 것과 우리들이 아무 탈없이 여행을 마쳐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 일행들도 능력있는 인솔자를 만나 여행의 모든 과정이 차질없이 잘 진행되었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던 것에 대해 박수로써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인솔자의 노련함을 볼 수 있었던 한 예를 보면, 같은 지역에 다른 한국 여행 팀이 있을 경우 남보다 한 박자 먼저 식당을 찾아가 식사를 하거나 먼저 관광을 시작하는 소위 ‘치고 빠지는 스타일’의 스케줄로 움직였다. 이 때문에 식사 대기시간이나 관광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갔다. 이탈리아에 들어오며 지금까지 줄곳 운전을 해준 기사에게 무사고 운전과 그간의 수고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운전기사는 이탈리아 남쪽 섬 시칠리아 출신이며 50세가 넘었다. 운전하면서도 휘파람을 부르고, 수시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수다를 떨며 얘기하는 활달한 사람이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

비행기가 이륙하여 그간을 일정들을 머리 속에서 되돌려 보는 동안 어느 듯 잠이 들었다. 기내식을 주는 시간이 되어 소란스러움 때문에 잠시 꿈꾸었던 회상 테이프는 끊어졌다. 회상이 끝났다고 꿈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있지만, 언젠가 다시 그곳을 찾아 가고 싶다하는 꿈(마음)이 슬슬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두고두고 꺼내 봐도 행복한 순간순간들은 어느 새 그리움이 되어 내 마음속에 남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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