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에 얽힌 시시콜콜한 이야기


약 6000년 바퀴 역사 속 가장 찬란한 발명품은 단연 타이어다. 동그라미를 둘러싼 고무,

타이어는 바퀴를 넘어 땅 위의 모든 탈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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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42초 만에 시속 400km까지 가속 후 정지하는 부가티 시론을 보며 가장 놀라웠던 건, 다름 아닌 타이어였다. 쏜살같이 튀어나가는 가속을 버티는 것도 놀라웠지만, 시속 400km로 질주하는 2톤의 덩치를 단 10초 만에 정지시키는 모습엔 오늘날 타이어 기술의 정점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언론의 반응은 어땠던가. 1,500마력 부가티의 힘을 찬양하는 수많은 기사들 속에 타이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이처럼 타이어는 그 역할에 비해 비교적 조명받지 못하는 게 현실. 오늘날 자동차 발전의 숨은 공신 타이어에 얽힌 이야기를 한데 모았다. 참고로 시론에 들어간 타이어는 미쉐린과 부가티가 함께 만들어 최대 510.2kg·m(5000Nm)의 힘을 버티는 특수 타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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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km/h→0을 42초 만에 끊는 하이퍼카 부가티 시론. 미쉐린과 함께 개발한 특수 타이어를 쓴다


가난과 조롱 속에서 태어나다
굿이어, 던롭, 그리고 미쉐린…. 오늘날 거대 타이어 브랜드로 성장한 이들의 시작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획기적인 발상은 가난에 묻힐 뻔하거나 괴짜 취급받기 일쑤였다.


타이어 역사는 파산의 위기 속에서 극적으로 시작됐다. 1839년 찰스 굿이어는 10여 년 연구 끝에 무른 천연고무를 단단히 굳히는 방법을 알아냈지만, 연구비가 부족해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채무가 쌓여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을 정도. 그러던 그에게 천운이 따랐다. 우연히 유황이 배합된 고무공이 화로에 눌어붙어, 가열로 속까지 탄력 있게 굳히는 가황처리법을 발견한 것이다. 고무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 그리고 굿이어의 역사는 이렇듯 피나는 노력에 운이 더해져 시작됐다. 단단히 굳힌 고무는 곧 1844년 세계 최초의 타이어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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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가황 처리법을 발견해 고무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찰스 굿이어. 타이어 브랜드 굿이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타이어 탄생 이듬해인 1845년엔 곧바로 타이어에 공기를 넣는 시도가 이어진다. 영국 로버트 윌리엄 톰슨이 최초로 공기를 넣은 타이어를 개발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다. ‘걸핏하면 펑크가 나 마차를 끌던 말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바람에 주변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다’는 씁쓸한 기록만 남긴 채 역사 속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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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윌리엄 톰슨이 최초로 개발한 공기 타이어


공기 타이어는 이후 43년이 지난 1888년 보이드 던롭이 자전거 바퀴를 통해 선보이고, 1895년 미슐랭 형제에 의해 자동차에 적용된다. 그러나 미슐랭 형제 역시 세간의 조롱을 면치 못했다. 그들은 공기 타이어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파리-보르도 레이스에 참가했으나, 약 560km를 달리는 동안 펑크 때문에 무려 22개의 타이어를 갈아 끼웠음에도 완주에 실패한다. 당시 1등 했던 우승자는 “타이어 속에 건초를 채우는 게 더 낫겠다”며 그를 비웃었다. 이후 16년간 공기 타이어는 차에 쓰이지 못하다가 1911년에 이르러 미국 필립 스트라우스가 상용화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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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형제는 최초로 공기 타이어를 적용한 자동차로 파리-보르도 레이스에 출전했다

고성능화의 주춧돌, 래디얼 타이어
‘225/40R 17.’ 타이어 옆구리마다 붙은 규격이다. 225는 너비(mm), 40은 옆구리 두께 비율, 즉 편평비(225mm의 40%), 그리고 17은 휠 직경(inch)인데, 중간에 붙은 'R'은 뭘까? 모든 타이어마다 당연히 붙어 있어 신경 쓸 일 없었겠지만, R은 오늘날 자동차 발전을 비약적으로 앞당긴 영광의 알파벳. 바로 래디얼(Radial) 타이어의 이니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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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옆구리에 적힌 규격. 보통 R이 적혀 있으며, 사진 속 타이어는 시속 300km 이상을 달리는

고성능 래디얼 타이어라 ZR이 표시됐다


래디얼 타이어가 혁명을 불어온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타이어 속 골격으로 이전 타이어보다 바닥을 끈끈하게 붙들었기 때문. 타이어 성능이 높아지자, 서스펜션이 이를 견디기 위해 강성을 높이고 지오메트리가 개선됐으며, 이어 팽팽해진 하체를 따라 차체 강성이 보강됐다. 래디얼 타이어가 오늘날 자동차의 쫀득한 주행감을 이끈 셈이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점은 1946년 미쉐린이 출시한 세계 최초 래디얼 타이어 ‘미쉐린 X’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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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래디얼 타이어 미쉐린 X

 

그래서 래디얼 타이어가 좋은 이유가 뭐냐고? 지금부터는 조금 복잡한 얘기가 시작된다. 래디얼은 타이어 골격 구조 중 하나로, 회전 방향과 수직 교차된 골격(카커스)에 철제 보호층(벨트)을 덧댄 구조다. 이전 바이어스 타이어는 섬유를 회전 방향 대각선으로 겹겹이 교차시켜 강성을 높이는 방식. 두 바퀴의 구조에서 래디얼 타이어의 강점을 엿볼 수 있다. 래디얼 타이어는 비교적 얇은 골격에 철제 보호층을 덧댄 덕분에 섬유를 여러 겹 감싼 바이어스 타이어보다 탄성이 좋다. 탄성이 좋다는 건 곧 주행 압력에 따른 변형이 적다는 얘기로, 회전 저항과 발열이 모두 줄어든다. 처음 등장할 당시 발열에 취약한 고속 주행 전용 타이어로 보급된 이유다. 결국 탄성, 회전 저항, 발열에 대한 강점으로 접지력, 효율, 내구성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래디얼 타이어가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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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디얼 타이어(왼쪽)와 바이어스 타이어(오른쪽) 구조. 대각선으로 섬유를 겹겹이 감싼 바이어스 타이어와

달리 래디얼 타이어는 수직 방향으로 촘촘하게 싸여 있다


그렇다고 바이어스 타이어가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쉽게 변형되는 만큼 탱탱한 래디얼 타이어보다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하며, 제작 공정이 간단해 저렴하다. 물론 지금은 서스펜션이 래디얼 타이어에 맞춰져 그마저도 퇴색됐지만.

타이어는 조립된다
이 글을 읽고 타이어에 대한 신뢰가 조금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생명을 짊어진 타이어는 당연히 한 덩어리의 통고무로 한번에 찍어낼 것 같지만 타이어는 엄연히 조립된다. 여러 개의 고무를 덧붙여 만든다는 얘기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냐고? 천만의 말씀. 각 부위마다 알맞은 고무를 사용해, 유연하면서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타이어 조립은 고무를 섞는 정련 공정부터 시작된다. 천연고무 또는 합성고무에 이것저것(카본블랙이나 황 등) 넣어 타이어용 고무를 만드는 과정으로, 여기서부터 이미 각 부위에 따라 섞는 비율이 다르다. 땅과 닿는 부위(트레드)는 충격에도 버티도록 탄성 있고 끈끈한 고무로, 옆구리(사이드월)는 잦은 굽힘을 버티도록 유연하면서도 질긴 고무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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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는 여러 부품이 조립되어 만들어진다


이어 각각의 고무는 자동차 문짝과 보닛처럼 조립되기 전 부품 형태를 갖춘다. 바닥면과 옆구리가 제 모양을 찾고, 앞서 설명한 래디얼 타이어 속 뼈대도 이때 고무에 덮여 부품처럼 준비된다. 이를 반제품 공정이라 부른다.


이제 재밌는 부품 조립 시간. 뼈대와 옆구리, 그리고 휠과 닿는 면인 ‘비드’를 하나로 합쳐 기본 토대를 만들고, 그 위에 트레드와 벨트를 올려 고무 원통을 완성한다. 이 고무 원통이 바로 ‘그린 타이어’(또는 그린 케이스)다. 아직은 트레드 패턴이 없고 말랑말랑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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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품이 조립된 그린 타이어. 열로 찌는 가류 공정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열로 꾹 눌러 쪄내는 ‘가류 공정’을 거치면 비로소 타이어 모양을 갖춘다. 이 과정에서 트레드 패턴과 각종 글씨가 표시되며 고무 속 화학약품이 반응을 일으켜 탄탄하게 굳어진다. 이후 자잘한 마무리 과정과 검사를 통과하면 타이어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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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류 공정을 끝내면, 검사를 거쳐 타이어가 완성된다

타이어 관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 
기자가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때의 얘기다. 운행 중 군용 트럭 바퀴 바람이 빠져 가까운 정비소에 들렀는데, 정비사가 공기 넣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기압을 무려 80psi나 채워 넣은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적정 공기압으로 맞춰달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더 가관이다. “타이어에 적힌 숫자만큼 넣는 게 맞다”고. 그렇다. 그는 타이어 옆구리에 적힌 그 타이어가 버틸 수 있는 (이 이상 넣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표시한) 최대 공기압을 넣어왔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최대 공기압이라고 알려줬지만 그의 신념은 굳건했고, 기자는 그 뒤로 정비사 의심병에 걸렸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사실 공기압과 관련된 그릇된 편견은 주변에도 파다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남들보다 빠르게 달린다면 적정 공기압보다 더 많이 넣어야 한다’는 것. 대단한 헛소리가 아닐 수 없다. 격하게 주행할수록 타이어는 변형에 따라 온도가 오르기 때문에 공기압이 더욱 치솟기 마련이다. 결국 승차 정원 가득 채운 때를 가정한 적정 공기압보다 압력을 더 높인다는 건, 타이어를 빵빵하게 부풀려 접지력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참고로 더 가혹한 조건으로 달리는 GT 클래스 경주차 타이어 공기압은 약 26~27psi 정도에 불과하며, 무게가 가벼운 포뮬러 원 경주차는 약 17~20psi 수준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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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공기압은 자동차 제조사가 발표한 적정 공기압에 맞추는 게 가장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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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차의 공기압은 결코 높지 않다. 사진은 DTM에 출전한 벤츠 경주차


타이어를 자주 닦으면 오히려 안 좋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원래 타이어 고무엔 자외선흡수제와 열화 방지제 등 약품이 들어 있어 스스로 고무를 보호한다. 그런데 타이어를 세제로 박박 닦아내버리면 이런 보호제가 씻겨나간다. 결국 열심히 노력해서 타이어 수명만 갉아먹는 셈이다. 타이어 보호제도 신중하게 써야 한다. 겉으로 보기 좋게 광을 내주는 몇몇 제품들은 고무 표면 속 약품이 배출되는 걸 막아 자칫하면 열화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타이어 관리는 더러워졌을 때 물로 가볍게 씻어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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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겉표면을 자주 닦는 건 타이어 수명에 좋지 않다

 


마지막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타이어 위치 교환에 대한 얘기다. 이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속적인 위치 교환이 타이어 유지관리에 좋다는 게 정설이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반대 의견을 살펴보면, 위치 교환으로 타이어 수명이 늘어나더라도 잦은 위치교환에 따른 정비비가 그보다 더 비싸다는 점, 각 위치에 적응된 타이어 위치를 바꾸면 밸런스가 망가진다는 점 등을 든다. 찬성 의견은 네 바퀴를 동시에 교체하기 위해선 위치교환이 필수라는 점, 전륜구동 차는 뒷바퀴가 닳지 않아 위치교환이 없으면 트레드가 닳기 전 타이어 수명이 먼저 끝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섣불리 결론 내리기 힘든 문제. 결국 결정은 소비자 몫이다. 참고로 FF 쿠페를 타는 기자는 위치교환 없이 타다가 앞쪽이 다 닳으면 뒷바퀴를 앞으로 보내고 뒤쪽에 새 타이어를 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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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위치 교환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타이어의 미래, 촉각을 세운다 
성능 개발에만 꿋꿋이 매진했던 타이어 연구원들이 어깨를 펼 날이 다가왔다. 여태까지 타이어 진화는 심심했으나 앞으로의 변화는 자동차 시장의 격동만큼이나 화려할 것이다.


시작은 공기 없는 타이어(이하 에어리스 타이어)다. 지금껏 타이어는 제아무리 좋아봤자 송곳 한방이면 순식간에 폐품이 됐지만, 미래 타이어는 아마 절단기 정도는 가져와야 할 거다. 공기가 아닌 타이어 속 구조물이 무게를 지탱하기 때문. 당연히 공기압을 채울 필요도, 펑크를 때울 필요도 없다. 미쉐린이 이미 작업용 장비 전용 타이어 X 트윌을 판매 중일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으며, 지난해엔 에어리스 타이어에 3D 프린팅 기술까지 접목시키기도 했다.


검은색 일색의 아스팔트 도로도 형형색색으로 물들 전망이다. 그간 타이어가 검은색이었던 이유는 고무 내구성을 높이는 카본블랙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는데, 그 역할을 신소재 실리카가 대신하면 검은색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다. 아스팔트 위에 노란색 타이어 자국을 남길 수도 있는 셈. 그러나 지금 당장 카본 블랙을 대체하기엔 실리카 타이어 제조공정이 복잡해 현실적으로 양산이 힘들다. 아스팔트 위에 총천연색 그림을 그릴 날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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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타이어를 신은 오펠 GT 컨셉트. 한국타이어 제품이다


‘촉감’을 느끼는 타이어도 개발 중이다. 물론 진짜 감각을 느끼는 건 아니고, 타이어에 심은 센서를 통해 노면 정보를 읽는 기술이다. 도로 상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해 더 안전한 주행을 도모하며, 타이어 상태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고.


이 외에도 어디로든 방향 전환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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