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澗松) 미술관’에서 보았던 것.

여행일자: 2008년 10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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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澗松) 미술관    참조링크: 간송미술관 - 나무위키

간송 미술관은 간단히 말해 우리문화재의 寶庫(보고=보물창고)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귀중한 문화재의 상당수가 여기에 있다. 국보급 문화재만도 10여 점이 넘고 우표에도 등장하는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과 훈민정음 해례본, 동국정운 원본, 신윤복의 미인도와 김득신의 파적도, 겸재 정선의 작품 등 국보 12점, 보물 32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 등 한국의 그 어느 박물관에 못지않은 준 높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입구를 들어가는 모퉁이에 다다를 즈음 뱀꼬리처럼 늘어선 사람들의 줄이 보였다. 마침 모 방송국에 ‘바람의 화원’이라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있어서인지 이 전시회에 구경꾼이 더 많이 모인 듯하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이렇게 줄을 많이 섰다니... ‘아! 미술관쪽을 먼저 보고, 동네 구경은 나중에 할 걸…….’ 하는 때늦은 후회가 들었다. 뱀꼬리 같던 긴 줄이 줄어들며 미술관에 입장하기까지는 한 시간 남짓 시간이 더 걸렸다.

 

.智拳印(지권인=손가락을 말아쥐고 있는 수인(手印)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 불상
.서울 도 심 속이지만 깊은 숲속에 온듯한 간송 박물관 내부

간송 미술관 경내는 숲이 제법 우거져 있어 도심 속 別天地(별천지)인 듯 했다. 숲속 이곳저곳에는 보물찾기할 때 보물을 숨겨 놓듯이 文人石, 호랑이 石物, 石座佛(석좌불-앉아 있는 모습의 돌부처), 삼층석탑 등 몇 가지 石物들이 감춰진 듯 서 있었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는 듯하다. 

 

작고 소박하지만 우리문화재의 걸작들을 수장하고 있는 ‘보화각’  참조링크:간송미술관 - 나무위키

전시가 열리고 있는 보화각은 70년 전인 1938년에 지어진 2층 콘크리트 건물이다. 한쪽에 둥근 테라스가 살짝 달려있는 직사각형 건물인데, 창은 직사각형으로 큼지막하게 뚫려 있고 도난과 방습에 도움이 되게끔 아래층 창에는 바깥쪽으로 철문을 덧대었다. 건물 외벽은 누리끼리한 데다 빗물 흘러내린 자국이 묻어 거무튀튀하였고, 구석진 곳은 거미들이 집을 지어 놓았다. 알록달록 단풍이 든 담쟁이가 건물 외벽을 감싸고 올라가 소박한 건물의 모습에 고풍스러운 맛을 더해 주었다.

 

.귀여운 호랑이상이 궁금한 듯 얼굴을 내 밀었다.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르고 있는 보화각 외벽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어려운 여건이었던 일제 강점기 하에서도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를 수집 보관한 곳으로, 작고 소박하지만 우리나라의 보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書畵大展(서화 대전)]의 전시 의도는 세종대왕 시대부터 고종에 이르는 약 오백년간의 書畵 중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라고 한다. 글씨를 볼 줄 모르는 나로서는 그림에만 중점을 두었는데, 畵題(화제)라든지 작품에 대한 설명은 구입한 圖錄(도록)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험 전날 벼락공부하는 학생처럼  이 전시회를 보러가기 전에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이런 한국 미술 전시회를 보러 가기 전에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전시된 ‘보화각’의 작품 중 - 미인도, 마상청앵도, 풍죽 

전시장(보화각)은 전시된 작품의 무게나 방문한 사람 수에 비해서 너무나 좁았다. 작품이 걸린 벽쪽 외에 전시장 가운데에도 진열장이 배치되어 관람 통로가 좁아진데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 한편, 전시된 대분의 그림의 크기가 노트 크기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아서, 서너 사람이 그림을 보느라 진열장 앞을 가로막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깨 너머로 보거나 진열장 측면에서 흘낏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제대로 그림 감상하기가 어려웠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그림이 다소 큰 그림인 신윤복 ‘미인도’ 앞에서는 감상을 대기하는 줄이 밀려 있다. 역시나 사람들은 보아서 알기 쉽고 자주 본 것에 관심과 흥미가 있게 마련이다. ‘미인도’에 그려져 있는 미인은 요즘의 미적 기준으로 보아도 미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미인상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요즘은 큰 눈에 쌍꺼풀, 짙은 눈썹, 거기에다 짙은 화장에다 요란한 귀걸이를 걸치는 게 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나, 만약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미인의 모습을 보았다면 오히려 ‘복 없는 여인’이나 ‘惡女(악녀)’라고 손가락질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단원 김홍도의 ‘馬上聽鶯(마상청앵-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단원 김홍도의 ‘馬上聽鶯(마상청앵-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은 봄나들이 나섰던 젊은 선비가 말을 타고 가다가 길가 버드나무에서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 것을 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꾀꼬리 소리에 취한 선비가 문득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쪽을 올려다보고, 말구종 총각도 덩달아 멈춰 그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우상에서 좌하로 내리 꽂히는 대각선 구도 속에 버드나무가지와 꾀꼬리가 상하로 배치되어 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진 배치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이랄 수 있는 畵題(화제)는 단원 친구 이인문이 지은 글로 알려져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리따운 사람이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하고

 시인의 술동이 앞에 황금 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어지러운 금북(북은 베 짜는 도구)이 버드나무 언덕 누비니,

 아지랑이 비 섞어 봄 강을 짜낸다.“

 출처: 간송문화 도록 해설에서


꾀꼬리 소리를 생황의 봄노래로, 황금빛 귤은 꾀꼬리에 비유한 것이다. 거기에다 버들가지 사이로 오르내리는 새의 움직임을 비단을 짜는 북의 움직임으로 묘사한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이 그림을 제대로 읽어낸 사람의 畵題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肝膽相照(간담상조), 以心傳心(이심전심)의 세계이다. 

 

.이정의 ‘風竹(풍죽)’-그림출처:인터넷

조선 최고의 묵죽화가인 이정의 ‘風竹(풍죽)’은 강한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그림 앞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람 맞고 있는 대나무 잎들의 절묘한 표현과 배경으로 옅게 처리된 대나무 줄기들이 현장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황집중의 ‘포도'-그림출처:인터넷

‘文人畵(문인화)’는 그림을 읽어야 한다.

위에 언급한 작품 외에도 ‘포도’ ‘괴석 ’산수도‘ 등 조선시대 중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그림들을 훑어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圖式的으로 느껴지는 文人畵(문인화)는 그림 속에 나오는 그림이 상징하는 바를 알아야 이해가 되었다. 예를 들어 ‘오이와 고슴도치’는 ‘대대손손 자손이 이어지번영하라’는 의미이고 ‘포도’ 역시 자손을 상징한다. 그 외에도 ‘나비’는 장수를, ‘여치’는 부지런한 아낙네를 상징한다고 한다. 문인화는 그림을 읽어 내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우리나라 오천원권에도 이런 대나무, 수박, 여치, 도라지꽃 등 문인화가 등장한다.

.정선의 '草田舂黍(초전용서-풀밭의 방아깨비)'

안타깝게도 정선의‘초전용서-풀밭의 방아깨비)’에 보이는 것처럼 습기에 그림들이 눌어붙거나 벌레 먹은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전시회를 보러온 사람들이 밀려오므로 나만 조금 더 오래 보겠다고 그 자리를 고수할 수 없었기에  模寫畵(모사화)라도 살 요량으로 입구로 빠져 나왔다. 사고자 했던 [마상청앵도]는 품절이라 구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림의 어려운(?) 한자 제목은 누가 붙였나’

그림에 붙여진 제목들은 한자가 대부분으로 작가가 붙인 것은 드물다 한다. 예를 들어 ‘馬上聽鶯(마상청앵)‘, ‘林間急灘(임간급탄- 숲속 시내의 급한 여울’)처럼 이런 제목들은 후대의 소장가나 학자들이 그림 속의 화제나 내용 등과 관련하여 붙인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 나마 다행스럽게  한자 제목 옆에 한글 설명을 달아 놓았다.

 

‘간송미술관’에서 느낀 관람의 불편함과 아쉬움   참조 링크: 간송미술관 |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시 장소의 협소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 입장객들의 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인터넷 사전 예약제 등을 통해 입장 시간을 안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편, 전시관인 보화각 입구의 좁은 골목에 있던 공작새 새장과 보화각 현관 앞에 떡 버티고 있던 중국풍 사자상은 이 곳 간송 미술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보화각 입구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중국풍(?)의 사자상
.정원에 있는 또 다른  사자상

(사족) 
미술관 내부는 촬영금지라, 옛그림들은 인터넷 서핑으로 가져 온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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