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룩스 3국 돌아보기]의 글 링크로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음-

 

네덜란드(01)암스테르담,에이설호,볼렌담,에담,잔세스칸스,킨더다이크

네덜란드(02-),고흐,고흐미술관,크뢸러뮐러미술관,렘브란트,루벤스,반다이크,베르메르,데 스틸

네덜란드(3)-네델란드 음식과축제,맥주, 도개교,/헤이그.가우다(하우다),바를러  

 

(벨기에 01)-과거 플랑드르 지역으로 불렸던 브뤼헤(브뤼허),안트베르펜

(벨기에 02)-브뤼셀,루뱅,

(벨기에 03)-헨트,리에주+ Rayonnant(레요낭 양식),Flamboyant(화염식 양식)

 

룩셈부르크,에슈쉬르쉬르(Esch-sur-Sure),비앙덴성,에히터나흐 Echternach

추가로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방의 두 도시 메스(Metz)와 낭시(Nancy)

 

(벨기에 03)-헨트,리에주+ Rayonnant(레요낭 양식),Flamboyant(화염식 양식)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벨기에,헨트-헨트의 종탑,반 에이크의 제단화,Feestfiets
            리에주-생 자크성당(성 야곱 성당),생폴(St.Paul 성바오로)성당,

            Rayonnant(레요낭 양식), 후기고딕양식,Flamboyant(화염식 양식)

 

(배경 영상,음악)  [하얀 연인들] Main theme from '13 Jours En France'-연주 노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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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웠던 운하 도시 헨트(Ghent, Gent) 홈피링크: www.gent.be  다음백과: 헨트 [Gent]

헨트의 photo point 생 미셸 성당(우측)과 운하

브뤼셀 서쪽 50km 쯤 떨어진 헨트는 벨기에 북서부에 있는 동(東)플랑드르 주의 주도(州都)이다.

기에어와 불어로 헨트(Ghent, Gent)는 영어 발음으로 겐트인데 라이에 강과 스헬데 강의 합류지

에 있다. 이들 강 주변에는 섬유풀이 많이 자랐기 때문에 헨트가 섬유, 방직산업의 중심지로 발전

할 수 있었다. 7세기에 세워진 헨트는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중세 때는 플랑드르

지방의 중심지로 파리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고 풍요롭고 부유한 도시였으며, 오늘날은 벨기에 제

2의 항구도시이다.

헨트 시청사와 성 바프 대성당의 종탑

 

시청건물은 여러 건축양식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1518~35년에 세워진 북쪽 정면은 화려한 고딕

양식의 훌륭한 표본이고, 이보다 약 1세기 후에 완성된 동쪽 정면은 르네상스 양식이다.

 

반 에이크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

                                      그림출처: 위키백과-Ghent Altarpiece

 

고딕 양식으로 12세기에 지은 성 바프 대성당(Sint Baafskathedraal)에는 얀 반 에이크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 The Adoration of the Lamb〉가 있는데, 이 그림은 플랑드르 회화의 명작

이자 15세기 유럽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제단화는 ‘인간 구원의

역사’를 표현한 작품으로, 100여 명의 인물과 50여 가지의 식물이 묘사돼 있다.

 

세계문화유산 헨트의 종탑(Belfry)

헨트의 종탑(Belfry)은 14세기(1314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맨 꼭대기 종루는 나중에 증축한 것이

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종탑의 높이는 약 90m로 53개의 종이 매달려 있고, 종루 첨탑 끝에

는 겐트의 감시와 수호를 상징하는 3.5m의 황금 독수리상이 있다. 중세시대에는 종탑이 그 도시의

위상과 번영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었는데 잘 사는 도시일수록 종탑은 더 높고 화려했다.

 

성 니콜라스 성당(Saint Nicholas' church)

니콜라스 성당은 13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전체적으로는 고딕 양식을 띠고 있으며, 내부의 장식은

바로크 양식이 가미되었다.

헨트의 성 니콜라스 성당 Saint Nicholas' church

 

중세시대의 온전한 모습을 느껴보려면 운하 보트를 타야...

중세나 지금이나 헨트의 중심은 운하이다.
운하 옆에 자리한 생 미셸(St. Micheal)성당

 

중세 시대의 항구였던 곳에서 출발하는 보트투어(Boat-Tour)를 하면 운하를 따라 계단식 지붕이

있는 오래된 길드하우스와 성(城)과 교회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과 헨트의 아름다운 풍경

들을 볼 수 있다. 외관이 아름다운 성 야곱(St. Jacob's) 성당과 운하 바로 옆에 자리한 생 미셸

(St. Micheal's) 성당이 볼만하다. 니콜라스 성당에서 생 미셸 성당으로 넘어가는 생 미셸 다리는

헨트의 수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며, 생 미셸 다리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헨트 제1경이다.

 

헨트의 시가지에는 자동차, 전차, 마차, 자전거, 사람이 뒤섞여 다닌다.

 

한편 시가지는 자동차와 트램(tram 지상전차)이 공유하며 다니는데, 도로는 인도와 구분이 안 되어

있고 자전거와 관광객을 위한 마차까지 그 위로 뒤섞여 다닌다.

 

헨트에는 중세 상인들의 길드하우스 외에도 유명한 수도원과 성당들이 많다. 13세기에 건축한

'악마의 제라르 성'은 현재 주립문서보관소로 쓰이고, 14세기의 직물회관과 중세 도시생활의

중심지였던 금요시장이 남아 있다. 1180년 플랑드르 백작 필립이 건축한 The Gravensteen(백작의

성)도 볼만하다.

지붕 옆선이 계단식인 플랑드르 지방의 건축물

 

<파랑새>의 작가 마테를링크의 고향 헨트

헨트는 벨기에 시인이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고향이다.

그는 틸틸과 미틸 남매가 주인공인 <파랑새>를 쓴 작가로 191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파랑새’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믿을 수만 있다면...

<파랑새>는 '파랑새를 찾아 헤맸으나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거기 있더라'

는 내용으로,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전야에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나선 남매(틸틸과

미틸)가 요정과 함께 꿈속을 헤매며, 추억의 나라와 밤의 궁전, 행복의 왕국과 미래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파랑새를 찾지만 결국 못 찾고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문득 자기들이 기르던 새장

속의 새가 바로 그 파랑새라는 것을 알게 되고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벨기에의 고도(古都) 리에주   홈피링크: www.liege.be  다음백과: 리에주 [Liege]

벨기에 남동부 독일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리에주는 우르트 강과 뫼즈 강이 만나는 곳에 있

는데, 서유럽에서 3번째로 중요한 하항이며 벨기에에서 2번째로 큰 철도중심지이다. 벨기에

왈롱 지역의 중심지이므로 프랑스어를 많이 쓰며 오래된 성당들이 많이 남아 있다.

 

721년 성 후베르트가 자신의 관구를 이곳으로 이전해옴에 따라 도시를 이루게 되었으며,

약 1,000년 동안 주교들이 다스리던 지역이었다. 그 당시 주교들의 보호령은 헬데를란트 상

부에서 프랑스 접경지대인 샹파뉴까지 이르렀다.

 

17세기에 프랑스인들이 이 지역을 침략하여 1795년 이곳을 합병했으나, 1815년 네덜란드

로 넘어갔다. 1830년 벨기에 혁명 후 벨기에 영토가 되었으며 1891년 뫼즈 강 방어를 위한

중요한 성채가 만들어졌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 독일에게 점령당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심한 공중폭격을 받기도 했다.

 

리에주의 주교 궁전 - 프랭스 에베크 궁전(Palais des Princes-Évêques)

아름다운 리에주 주교궁 회랑 아치(arch)와 돌기둥

 

Palais des Princes-Évêques는 Palais(궁전) Princes(군주) Évêques(주교)의 뜻이다. 리에

주의 중심가 생 랑베르 광장에 있는 프랭스 에베크 궁전은 현재 리에주에서 가장 큰 건물로

주청사와 법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11세기에 이곳을 다스렸던 주교 스와브 노제

의 거주지로 지어졌는데,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하지만 주교궁에 장식된

나뭇잎 조각 등이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어, 16세기 이전의 고딕 조각(링크:고딕 조각) 양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생 자크 (Saint Jacques) = 성 제임스(St. James) = 성 야고보(야곱)

   참고 Daum 백과사전: 야고보 [Saint James]

프랑스어 생 자크(Saint Jacques)는 스페인어로 산티아고, 영어로 성 제임스(St. James)인

데 우리말로는 야고보라고 한다. 사도 바울로(Paul 바울, 바오로)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도교

사도 중 한 사람이었지만 원래의 12사도에는 들지 않는다. 베드로와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

과 함께 '교회의 기둥’이었다.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혼선이 있는데, 예수와 야고보의 관계에 대해 형제였다는 설, 이

복형제였다는 설, 사촌 간이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그가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예수를

따르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바울로에 따르면, 야고보가 나중에 회심한 것은 부활

한 그리스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리에주의 성 야곱 성당(Eglise Saint Jacques 생 자크 성당)

벌집 모양의 천정-(오르간 쪽)
아름다운 천정-(익랑 쪽 확대)
성인이 조각된 중앙 천정쪽(확대)

 

성 야곱 성당의 불꽃장식 아치와 스테인드글라스

 

리에주의 성 야곱 성당(Eglise Saint Jacques)은 리에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일반

적인 성당과 달리 성인 조각들이 벌집 모양의 천정에 장식되어 있다. 생 야곱 성당의 파사

드(Facade 정면)와 종탑은 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이지만, 성당 측면은 15~16

세기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이라 후기 고딕양식(레요낭 양식 참고:Rayonnant , 후기 고딕 양식)

이다. 

 

생 폴(St. Paul) 성당

생 폴(St. Paul) 성당의 제단부와 불꽃장식 아치
생 폴 성당(St, Paul Cathedrale)의 매력적인 회랑&amp;amp;nbsp;

 

후기 고딕양식(Rayonnant style)   위키백과:Rayonnant, 다음백과: 후기 고딕 양식 

고딕 양식이 세월이 좀 지나자 1240년~1350년 사이 건물 규모나 크기보다는 장식에 더 관

심을 갖게 되어 레요낭 양식(Rayonnant style)이 나타났다. 이 레요낭 양식은 프랑스에서

한층 더 장식적인 플랑부아양(Flamboyant 火炎式 화염식) 양식으로 발전했는데, 이 건축양

식은 150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영국에서는 수직양식(Perpendicular style)이라고 부르는 건

축양식이 1375년경부터 1500년경까지 사용되었다.  

  
  
 
 



레요낭 방식의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장미창  

    그림 출처: 위키백과 Rayonnant
   
  


레요낭 방식의 facade(전면부)-프랑스 뜨루와 성당
   그림출처: Church of St Urbain, Troyes

   

Flamboyant(화염식 양식)의 벽체와 기둥 
   그림출처: 위키백과 Flamboyant

   

Flamboyant(화염식 양식)의 창과 장식 격자창&amp;amp;nbsp; &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 예: Facade of Sainte-Chapelle de Vincennes &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 출처: 위키백과&amp;amp;nbsp;Flamboyant


Flamboyant(화염식 양식)의 창과 장식격자창 
Sainte-Chapelle de Vincennes
출처: 위키백과 Flamboyant

 

플랑부아양(Flamboyant 火炎式 화염식) 양식

     참조:두산백과 플랑부아양 양식 [Flamboyant style])

Flamboyant(화염식 火炎式) 양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고딕 건축의 개구부(開口部)나 창

을 S자 모양의 불꽃무늬로 장식된 창살이나 장식 격자로 꾸민다는 것이다. 플랑부아양 양식

에서는 벽의 면적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어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수직기둥 형태로 변했고,

그 결과 유리와 장식격자(트레이서리)만 남게 되었다. 

 

장식격자(참조: 트레이서리 [tracery], 장식격자 [裝飾格子, tracery])란 건축에서 창이나 그밖에

개구부(開口部)를 꾸미는 데 쓰는 장식창살을 말한다. 

 

이에 반해 영국의 수직양식은 창문의 장식격자(트레이서리)에 수직선을 많이 사용하고 창문

크기를 최대한 확대했으며 내부의 여러 층을 합해 하나의 통일된 수직면으로 만들었다는 것

이 특징이다.

 

리에주의 생 폴(St. Paul 성 바오로) 대성당(Cathedrale St. Paul)

 17세기 벨기에 조각가 델쿠르 작품 –생 폴 대성당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생 폴 대성당 제단부 

 

과거 리에주의 주성당 역할을 하던 생 랑베르 대성당이 프랑스 혁명 때 붕괴되면서 1812년

부터 생 폴 대성당이 리에주의 주성당이 되었다. 성당 파이프 오르간 앞의 성(聖) 장 밥티

스트(Saint Jean-Baptiste) 조각은 1682년 제작된 것으로 벨기에의 대표 조각가 길 델쿠르

의 작품이다.

 

후기 고딕 양식인 레요낭(rayonnant) 양식의 특징 중 하나인 S자 모양이 중복된 불꽃무늬의

장식을 제단부나, 설교단, 창틀에서 볼 수 있으며, 우아하면서도 화려함을 뽐내는 천정 장식

과 천정 그림은 탄성을 지르게 한다.

 

지난 번 퀴즈 (Quiz): 이것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의 (답과 설명) 

 

우리나라의 포장마차처럼 생긴 Feestfiets(네델란드어)는 Festival(축제)+Bicycle(자전거)의

뜻으로 지붕이 달린 이동식 bar(酒店 주점)인데 총각파티를 하기 위해 빌린 것이다.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대면서 먹고 마시고 떠들썩하게 거리를 돌아다닌다. 술 취하지 않은 한 사람

이 운전을 하고 안에 탄 사람들이 페달을 밟아 이동하는데, 언덕을 만나면 몇 사람이 내려

뒤를 밀어줘야 한다.  

 

-벨기에 편은 이걸로 마치고 다음은 ‘룩셈부르크’와 프랑스의 ‘메스’, ‘낭시’로 간다.-

 

(계속)  

 

(벨기에 02)-브뤼셀,루뱅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벨기에,그랑플라스,플랑부아양 양식,루뱅,꽃카페축제,옴메강축제,겨울축제,

                   브뤼셀 왕립 미술관, 아르누보,빅토르오르타.알폰소무하,오줌싸개동상,

                   벨기에 와플과 맥주,홍합요리 물르.
                   루뱅,루뱅대학교 기록물,루뱅학살 사건

 

 아래 비디오(옴메강 축제 장면)을 보려면아래 화면 중앙의 ▷ 를 클릭

 만약, 아래 화면(창)이 안 보이면 다음 링크를 클릭~ 

        https://www.youtube.com/watch?v=8abZeZsjJ_M&feature=youtu.be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EU)의 수도인 브뤼셀(Brussels)  

             홈피:  be.brussels  , 위키 백과: 뤼셀

브라반트 公(1229 이후), 부르고뉴 公(1430, 브라반트 공령 병합)치하에서 15~16세기에 번
영한 브뤼셀은 벨기에 북서부의 브뤼헤와 독일 쾰른을 연결하는 중계지로 발달하였다. 모직
물, 마(麻)직물, 타피스리(tapisserie 벽에 거는 융단], 레이스(lace 뜨개질한 수공품]가 이
도시의 특산물이었다.  

 

벨기에의 최대 도시인 브뤼셀은 스헬데 강의 지류인 센(젠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는 국
제경제 및 정치의 중심지이다.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네덜란드어)를 공용어로 쓰는 벨기에
내에서, 브뤼셀은 플라망어 사용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대도시 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시청사 건너편에 있는 길드하우스와 왕의 집(우측)

 

브뤼셀의 중심부에 위치한 큰 광장 그랑플라스(La Grand-Place) 

     홈페이지: http://www.brussels.be/artdet.cfm? id=5757&

     참조- 위키백과: 그랑플라스 [Grand Place] , 두산백과: 그랑플라스 [La Grand-Place]

 

브뤼셀의 시가지는 크게 로얄팔라스와 그랑플라스로 나뉜다. 로얄팔라스는 왕궁과 관청, 왕
립미술관 등이 모여 있으며 그랑플라스에는 길드하우스, 왕의 집, 시청사 등 규모가 큰 건
물들이 있다. 그랑플라스 근처에는 오줌싸게 동상과 해산물 요리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
는 부셰거리(Rue des Bouchers)와 생 튀베르 갤러리(Galeries St. Hubert)가 있다.

휘황찬란한 그랑플라스의 야경(우측이 시청사)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한 그랑플라스(Grand Place

큰 광장)는 가로 70미터, 세로 110미터의 광장으로, 12세기부터 벨기에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흐로터 마르크트(Grote Markt ‘큰 시장’이란 뜻)로도 불렸던 이 광장은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시청사,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로 둘러싸여 있어 유럽에 와 있다는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진다.

그랑플라스의 남서쪽에 있는 브뤼셀 시청사와 종탑

 

광장의 남서쪽에 1444년에 완성된 시청사(브뤼셀 시청사 [Brussels Town Hall]) 는 브라반트

고딕 양식으로 브뤼셀에서 가장 높고 큰 건축물 중 하나다. 시청 종탑은 얀 판 루이스브로크

(Jan van Ruysbroeck)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종탑 정상에는 금빛의 미카엘 대천사 동상이

있다. 중세시대 상업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해주는 길드 하우스(17세기 말)는  플랑부아양

양식(플랑부아양 양식 [Flamboyant style])의 건축물로 맥주박물관(홈피: Brewers Museum)

으로 이용되고 있다.

 

1515년에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왕의 집(la Maison du Roi)은 현재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

고 있는데 오줌싸개 동상이 입었던 옷도 전시하고 있다. 초콜릿 박물관이 있는 브라반트

(Brabant) 공작의 집은 브라반트 공작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곳이지만 건물 앞에 브라반트

공작의 흉상(胸像)이 놓여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16세기에 르네상스 또는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건물 앞면)로 바뀌었는데 금

빛 칠을 더하였기에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이곳은 이 지역의 문화와 사회를 특징짓는 건

축 및 예술 양식을 절충적이고 성공적으로 혼합한 훌륭한 본보기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그랑플라스 광장에서는 수시로 행사가 펼쳐지는 데, 꽃 카펫축제(http://www.flowercarpet.be/)

때는 이 광장이 꽃으로 도배되고, 옴메강 축제(링크:Ommegang)때는 행렬(퍼레이드)로 광장이

가득 찬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전등 장식이 화려한 겨울축제(Winter Wonders)가 펼쳐진다.  

 

그랑플라스 광장에 조명이 켜지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하지

(夏至) 바로 지난 시기라 밤 10시가 지나서야 야경(夜景) 분위기가 났다.

 

브뤼셀 왕립 미술관(Musée Roayl des Beaux-Arts) 

         홈페이지: www.fine-arts-museum.be

1838년에 세워진 이 미술관은 고대와 근대 미술 특히 플랑드르화파(링크:플랑드르의 회화)작가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1464), 루벤스(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 멤링크(Hans Memling, 1435∼1494) 등의 작품과 만날 수 있다. 마그리트 미술

관(Musée René Magritte http://www.magrittemuseum.be/)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마그리트의

작품들이 있어,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관람해야 할 곳이다.

 

아르누보(Art Nouveau)의 본고장 벨기에 브뤼셀

아르누보 양식은 19세기말-20세기 초에 걸쳐 기존의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

형태에서 모티프를 빌려 새로운 표현을 하고자 하였는데, 유동적인 곡선을 즐겨 사용한 것

이 특징이다. 보통 꽃과 식물의 줄기, 휘몰아치는 물결 등을 소재나 모티브로 하여 형태와

선을 만들고 리듬감을 형성한다.  참조: 두산백과 아르누보  

 

1890년에서 1905년까지 15년간의 아르누보의 전성기 동안 유럽 전역과 전 세계에 큰 영향 

력을 미쳤으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벨기에에서는

아르누보(Art Nouveau 새로운 예술)라 불렸지만 영국, 미국은 ‘modern style 현대 양식’,

독일은 유겐트 양식(Jugendstil 젊은 양식), 이탈리아에서는 ‘스틸레 리버티(Stile Liberty 자

유 스타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에서는 ‘제체시온슈틸(Secessionsti 분리 양식, 빈 분리파 )’로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데르니스타(Modernista 현대운동)‘로 불렸다. 참고:[문화예술] 아르누보

 

프랑스의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는 아르누보 양식을 지하철 입구 건축에 도입해 새로운 파

리의 경치를 만들었고, 공예가였던 에밀 갈레는 낭시에 있는 예술 학파의 중심에 있었다.

빅토르 오르타는 베를린의 아르누보 양식 건축에 큰 영향을 행사했다. 유겐트와 같은 잡지

도 독일에서 이 스타일의 확산을 도왔다. 오스트리아 빈의 분리파 예술가들은 예술과 건축

에 있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체코 전역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 아르누보는 또한 구스타

클림트와 찰스 레니 매킨토시, 알폰스 무하, 르네 랄리크, 안토니오 가우디, 루이스 컴포트 

파니와 같은 예술가들 개개인들의 움직임이기도 하였다. 

 

‘아르누보’ 건축양식은

      내용출처:19세기 말 변혁의 시대 ‘아르누보’ 건축양식…철과 유리, 화려한 장식의 심미적...

아르누보의 양식적 기원은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을 처음 촉발한 영국의 월리엄 모리스였고 ,

이 조류를 주도한 대표자는 벨기에의 알리 반 델 벨데이다. 아르누보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통해 유럽 미술의 전면에 자리잡았다. 19세기 로코로양식의 부활, 고딕 부활, 미술

공예운동, 심미주의운동, 그리고 상징주의 회화와 문학에서 특히 크게 영향 받았다. 따라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 파사드(앞면)는 화려한 조각이나 테라스로 장식되며. 내부는 물결무늬

의 철골 구조와 유리 장식품으로 채워져 로코코의 화려함에 견줄 만하다.

 

아르누보 건축가로는 ‘요제프 마리아 올리브히‘, ‘빅토르 오르타’, ‘찰스 레니 맥킨토시’와
아르누보 건축의 창시자라 불리는 ‘앙리 반 데밸데’와 시대를 넘어서는 건축적 가치와 정신
을 실현한 ‘안토니오 가우디’가 있다.

 

아르누보의 두 거장들 - 빅토르 오르타와 알폰소 무하

벨기에는 ‘아르누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고 이 양식이 완성된 곳이다. ‘아르누보’ 거장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 1861~1947)는 벨기에의 건축학자이자 아르누보를 확장한 인

물이다. 브뤼셀에 있는 타셀 저택(Hôtel Tassel), 솔베이 저택(Hôtel Solvay), 반에드벨데 저

택(Hôtel van Eetvelde), 오르타 저택 및 아틀리에(Maison & Atelier Horta)은 빅토르 오르

타가 설계한 저택으로 19세기말 아르누보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꼽히며, 2000년 유

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urojournals&logNo=110112571624

 

알폰소 무하 (참고: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알폰스 무하(1860~1939)는 체코의 화가이며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

다. 1894년 Théâtre de la Renaissance에서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알리기 위한 석판 포

스터 Gismonda를 만들었는데, 무하의 아름다운 포스터는 큰 호평을 받아 유명해졌다.

 

F.Champenois  광고 -알폰소 무하의 작품-

알폰소 무하의 출세작 ‘Gismonda’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바트요(Casabatllo)

 

하지만 아르누보는 유미주의 및 상징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다방면에 걸쳐 전개되었지

만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미적 감각을 추구하려는 애초 의도는 아쉽게도 사회적 경

제적 제약들과 장식 과잉의 매너리즘에 빠졌다. 또한 아르누보가 추구하는 수준 높은 생산

물은 대량생산의 어려움 등으로 대중화를 어렵게 했다. 이것은 아르누보가 비교적 단명하게

끝난 이유이기도 하다.

 

브뤼셀의 생미셀 대성당(Cathedrale St-Michel 성 미카엘 성당)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닮은 생미셀 대성당
생미셀 대성당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이 성당은 정식 이름이 Cathedrale Saints-Michel-et-Gudule 이므로 성 미카엘 대천사(St.

Michel 미카엘 [미카엘 (대천사)])와 성녀 구둘라(St. Gudula, Gudula)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122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7세기까지 4세기에 걸쳐 지어진 벨기에를 대표하는 최고의

성당으로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이 치러진 곳이다. 현재 국왕인 필리프 1세의 국왕

즉위식도 2013년 7월 이곳에서 열렸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닮은 이 고딕양식의 성당은 두 탑의 높이가 69m나 되며, 내부

의 크기도 대단하다. 특히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답기가 세계적

으로 명성이 나 있다.  
 

브뤼셀의 아이콘 중 하나인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 오줌싸는 마네킹)

뉴욕에 ‘자유 여신상’, 코펜하겐에 ‘인어 조각상’이 있다면 벨기에 브뤼셀에는 ‘오줌싸개 동

상’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어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크기가 작아(높이 60Cm) 실망

할 수도 있다.  참고: 위키백과 Manneken Pis 

 

오줌싸개 소년은 방뇨하는 소년을 본뜬 동상분수(銅像噴水)로, 세계 다른 나라에도 유사품

이 많이 있지만 여기가 원조다. 1619년 제롬 듀케뉴아가 낡은 옛 청동상을 대체해 만든 높이

약 60㎝의 청동상인데, 1960년대에 분실하여 현재 설치 되어 있는 것은 복제본이다. 맥주의

고장답게 이 꼬마 분수에선 때로 물대신 맥주가 나오기도 한다.

 

이 동상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는데, 14세기에 프라방드 제후의 왕자가 소변을 보고 적군을

모욕했다는 설과,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분수대에서 오줌싸는 아들을 발견한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외에도 마녀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소년

이 오줌을 싸자 화가 난 마녀가 소년을 동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와 프랑스군이 브

뤼셀을 방화하려고 하자 이를 지켜보던 소년이 오줌을 싸서 그 불을 껐다는 얘기가 전해진

다.

 

7월4일이라 미국 국기 옷을 입은 오줌싸개 동상
 
 초콜릿으로 만든 오줌싸개 동상(발부분)과 와플
 
벨기에의 국민 음식 moules(물르)과 프리트(frites)

 

오줌싸개 동상은 전쟁이 났을 때 숨겨져 특별 보호를 받았지만 적군들에게 수차례 약탈되기

도 했다. 프랑스가 약탈해갔다가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다시 돌려주었는데, 그냥 돌려주기가

뭣하여 오줌싸개 동상에 옷을 입혀서 돌려주었다 한다. 그 후로 여러 나라 국빈이나 유명 인

들이 옷을 기증하는 관습이 이어지게 되었고, 그동안 이 오줌싸개 소년이 갈아입은 의상만

칠백 여 벌이 넘는다. 그동안 입었던 의상 중에는 우리나라 색동옷뿐 만아니라 각 나라의 민속

의상과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과 미키 마우스 복장도 포함되어 있다.

 

초콜릿, 맥주, 홍합이 있는 동화의 나라 벨기에   링크: www.visitbelgium.com

벨기에를 동화같은 나라로 표현하는데, 도시나 마을 풍경이 중세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운하

를 따라 펼쳐지는 경치는 동화의 그것처럼 아름답다. 초콜릿과 벨기에 와플(벨기에 와플)등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 만화 ‘개

구장이 스머프’, ‘땡땡의 모험(틴틴의 모험)’의 고장이기도 하거니와, 만화 강국답게 전 세계

로 만화를 수출하고 있으며 만화 박물관(www.cbbd.be)도 있다. 또한 악기박물관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인데. 이곳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악기 박물관으로 악기 약 2000여점이 있으

며 각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쉐거리엔 홍합 찜이 유명한 &lsquo;레옹 Leon&rsquo;이&nbsp;있다
여러 가지 벨기에 맥주들과 그중 하나인 Judas

 

벨기에에서 홍합을 먹지 않고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벨기에 홈페이지에서 선전하는 ‘음

식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꿈을,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국을’ 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

할 것이다. 

 

벨기에의 대중적이고 국민 요리인 홍합 요리는 우리 같은 관광객의 입맛에도 썩 잘 맞는다.

바닷가에 위치한 벨기에는 다양한 해물요리가 발달하였는데 홍합 찜 요리인 물르(Moules)

가 유명하다. 화이트와인이 배어 있는 물르(Moules)는 짭짤한 바다맛과 특유의 홍합향이 입

맛에 달라붙는다. 브뤼셀의 먹자골목 부쉐거리(Butcher's Street)에는 유명 홍합 요리 맛집

들이 많이 있는데 유럽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삐끼(引 hiki 손님 호객 행위자)’를 볼 수 있

다. 1893년에 최초로 문을 연, 홍합 전문점의 원조 ‘셰 레옹 Chez Leon’이 특히 유명하다.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등록 상표만 해도 490 여 개로 국민 1인당 맥주 생산율이 가

장 높다. 맥주는 에일, 라거, 흑맥주 등이 있는데, 과일 맛(복숭아 맛, 체리 맛) 나는 것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제조사마다 전용 유리잔이 따로 있다. 안주는 대개 프리트(Frites 감자

튀김)이다.

 

벨기에는 초콜릿의 본고장답게 어디를 가든 초콜릿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오

줌싸개 동상 초콜릿은 어느 가게나 하나씩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벨기에 초콜릿을 대표하

는 브랜드(상표)로는 고디바, 길리안, 노이하우스, 레오니다스, 피에르 마르꼴리니가 유명하

다. ‘Guylian 길리안’은 세계 식음료 품평회에서 ‘2010 Superior taste AWARD’를 수상했다. 

 

작은 도시지만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한 루뱅(Louvain)

       다음백과:루뱅 [Louvain]  위키백과:뢰번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불과 동쪽 24km 지점에 위치한 루뱅(Louvain)은 네덜란드어 뢰

번(Leuven)이나, 흔히 프랑스어 명칭인 루뱅으로 불린다. 루뱅은 벨기에에서 가장 유명한

교육도시인데,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의 인가를 받아 네덜란드 최초의 가톨릭 대학이

설립되어 학술, 문화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알프스 이북(以北)의 대학 중 파리대학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학이었다. D.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G. 메

르카토르(Gerard Mercator, 1512~1594), J. 립시위스(Justus Lipsius, 1547~1606) 등과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이 이곳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가톨릭 개혁을 시도한 곳으로 세계사적

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많은 인물 조각이 새겨진 화려한 루뱅 시청사
15C~18C 대학 모습이 기록된 ‘루뱅대학교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근대 초기 대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루뱅대학교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기록물의 내용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루뱅대학교가 어떻게 학생들과
관련된 장학제도를 운영하였고, 대학 내 부속기관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성직자들만의
영역이었던 대학교가 국가 기관으로 변신하면서 종교개혁 과정에 대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
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가 진행되던 시기에 중세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인본주의 사
상이 갈등하게 되었을 때 대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루뱅 학살 사건’

1914년 8월 25일 독일군이 루뱅으로 진격하면서 고의적으로 루뱅대학교 도서관에 불을 질렀다.

당시 진격 일정을 맞추기에 혈안이 된 독일군이 벨기에 루뱅에서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 및 도시

 파괴를 저질렀다. 때문에 아직도 루뱅 시에서는 독일 국기를 게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

다. 내용참조: 제1차 세계대전 (엔하위키 미러)

 

(Quiz) 다음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Quiz) 다음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해답은 다음 편에...

(계속)

(벨기에 01)-브뤼헤(브뤼허),안트베르펜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벨기에,브뤼헤(브뤼허),플랑드르,플랑드르회화,반 에이크 형제,카리용,                 

             안트베르펜-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대성당 제단화,루벤스, 

 

 (배경 영상,음악)  플란다스의 개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or 동영상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QIuRjoicafU<=요걸 클릭

 

 


벨기에(Belgium 벨지움) 개관       위키백과: Belgium

벨기에의 정식 명칭은 벨기에왕국(Kingdom of Belgium)으로 입헌 군주국이다. 유럽의 북서 부, 북해 연안에 있어 온대 해양성의 기후를 보이며,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베네룩스 3국 중 하나다.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벨기에

 

벨기에의 면적은 약 3만㎢로 경상 남, 북도를 합친 정도인데, 인구는 약 1,132만 명으로 인구

밀도가 높다. 종교는 75%가 가톨릭교를 믿으나, 도시나 공업지역에서는 개신교가 증가되는 

분포이다. 전 국민의 약 58%를 차지하는 북쪽 플랑드르 지역의 플라망족(스스로는 '플라밍 

Vlaming’이라 함)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31%를 차지하는 남쪽의 왈로니 지역의 왈롱인 

(wallons)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참조: 민족문화대백과 벨기에 (벨기에왕국) [Belgium]

 

벨기에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이다. 또한 국제기구들은 수도 브뤼셀이나 그 근교에

본부를 두고 있다.

 

벨기에의 역사 

     위키백과: Belgium ,민족문화대백과: 벨기에 (벨기에왕국) [Belgium] 

 

기원전 3세기부터 겔트족과 게르만족이 라인강을 건너 이곳에 이주해 와 ‘벨그’라는 종족을

이루었다. 벨기에는 본래 네덜란드의 남부 지역이었으나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8~1648년)

이후 북부와 분열되면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793년 프랑스가 벨기에를 합병하였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벨기에는 북부의 네덜란드 연합 왕국과 합쳐지게 되었지만 절대주의 통

치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신앙적인 차이로 인해 왈롱인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

했다.

 

1830년 7월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이 혁명에 자극받은 왈롱인들이 1830년 8월에 벨

기에 혁명을 일으켰다. 1831년 7월 21일 레오폴드(Leopold) 1세를 국왕으로 하는 벨기에

왕국을 세우면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고 헌법을 제정하였다.

 

벨기에의 요즘  

벨기에는 1993년에 연방 국가로 탈바꿈했으나,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 심화되어 전 국왕이

었던 알베르 2세(Albert Ⅱ)의 중재아래 2008년 3월에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2010년 6

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540일 가량 무정부 상태였는데, 500일 이상 지속된 벨기에 무정

부 상태는 이라크를 제치고 ‘최장 기간 무정부 상태 지속’이라는 불명예스런 세계 신기록

(기네스북 신기록)을 세웠다.

 

2013년 7월 알베르 2세의 양위로 새로운 벨기에 국왕이 된 필리프 1세는 1960년생(금년56

세)으로 알베르 2세와 파올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다. 한편 2014년 10월 새로 출

범한 벨기에 연립정부의 샤를 미셸 신임 총리는 나이도 금년 40세로 젊은 총리이다.

 

플랑드르(Flandre  영어:플랜더스 Flanders)란?   

      내용출처: 다음 백과 플랑드르 [Flandre]

오리가 놀고 있는 운하 옆 교회 풍경(브뤼헤 근교)

 

플랑드르(Flandre)란 벨기에 말(語)로 ‘블렌데렌(Vleanderen)’, 영어로 ‘플랜더스(Flanders)’

인데 '저지대' 또는 '물이 범람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오늘날 프랑스의 노르 주

와 벨기에의 동플랑드르·서플랑드르 주, 네덜란드의 젤란트 주로 나뉘어 있다.

 

과거 플랑드르(Flandre) 지역은 벨기에 서쪽을 중심으로 네덜란드 서쪽에서부터 프랑스 북

쪽까지를 포함한 지방으로 11세기 이후 모직물업으로 도시가 번성했고, 벨기에가 독립하여

분리될 때까지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의 지배를 받았다. 

 

‘플랜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

      참고 링크: 플랜더스의 개 [A Dog of Flanders])

‘플랜더스의 개는 네로(Nello)와개 파트라슈(Patrasche)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위다(Ouida)의

소설로 1872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1975년에 쿠로다 요시오 감독이 TV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로 각색했다.  

  

플랑드르(Flandre) 회화      내용 참조 링크: 두산백과 플랑드르의 회화

플랑드르 회화가 융성한 시기는 15세기 초이지만 일반적으로 16세기까지 네덜란드와 벨기

에서 발전한 미술을 가리키며, 17세기 초 네덜란드가 독립한 후에는 벨기에 지방 미술의 대

명사로도 쓰이고 있다.

 

15세기에 들어서 네덜란드의 형제 화가 반 에이크(Van Eyck) 형제가 출현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화려한 북방 르네상스의 회화를 전개하였다. 형은 후베르

트(Hubert, 1370년 경 ~ 1426년)이고 동생은 얀(Jan, 1390년경 ~ 1441년)이다. 플랑드르

르네상스(북방 르네상스)라고 할 경우에는 독일 르네상스도 포함된다. 그들이 그린 벨기에

헨트(Gent) 대성당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 Adoration of the Lamb〉(1432)는 플

랑드르 르네상스의 최고 걸작이다. 그들의 사실주의 기법은 재질감과 빛 그리고 자연의 공

간 효과를 충실히 묘사하는 기법을 완성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링크: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는 플랑드르 회화의 창시자로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정교한 세부묘사와 중세 말 부르고뉴 궁정의 호화로움을 묘사한

그림들을 그렸다. 또한 얀 반 에이크는 거의 모든 작품에 서명을 한 최초의 플랑드르 미술

가 중 한 명이다.

 

플랑드르 회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생동하는 감각적 표현과

뛰어난 회화 기법으로 유명하다.

 

15세기에는 반 에이크형제 외에도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한스 멤링, 휘호 판 데르 휘스, 디르크 보우츠, 히에로니무스 보슈 등 개성있는 화가들이 활약

으며, 16세기에는 농민생활을 그린 화가 브뤼헐(대 피터르 브뤼헐 1525~1569)하다. 

 

17세기에는 호화찬란한 회화를 탄생시킨 거장 루벤스가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8년간의

이탈리아 체재 중에, 당시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카라바조의 새로운 자연주의와 카라치 일파

의 절충주의를 배움과 동시에 르네상스회화, 고대의 미술 등에서도 많은 것을 배워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다. 17세기 벨기에(플랑드르)에는 루벤스 외에도 후반생(後半生)을 이탈리아

에서 활약하고 영국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안톤 반 다이크(안토니 반 다이크)를 비롯하여,

야콥 요르단스, 아드리엔 브로우베르, 다비드 테니르스 등 훌륭한 화가가 배출되었다.

 

그러나 18세기부터 19세기 전반에 이 지역은 한갓 프랑스회화의 지방화단으로 전락하였고,

겨우 19세기 중엽 제임스 엔소르가 나와 플랑드르 회화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그 후에도 새

로운 표현주의와 쉬르레알리슴 회화에 상당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오늘날에는 유럽 화단의

커다란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플랑드르 지방의 독특한 계단식 지붕  

브뤼헤 종탑이 있는 마르크트 광장에는 플랑드르 지방의 독특한 계단식 지붕선들이 보인다.

엄격히 말하자면 지붕이라기보다 지붕 옆의 계단형 끝처리이다. 대개 벽돌로 쌓은 벽에다

지붕을 마감할 때 이렇게 계단식으로 처리했다. 동화(童話) 속에 나오는 풍경을 연상케 하

는 이 독특한 지붕 모양은 과거 플랑드르로 불렸던 벨기에 북부와 네덜란드 북서부 지역에

서 많이 볼 수 있다.

 

방문했던 벨기에 도시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브뤼헤(Brugge)

홈피:www.brugge.be  다음백과:브뤼헤  ,  위키백과:브뤼허

멀리 종탑이 보이는 브뤼헤 운하

 브뤼셀 서쪽 약100km에 있는 브뤼헤는 벨기에 서(西) 플랑드르주의 주도(州都)이다. 브뤼헤

는 13세기에 한자 동맹의 중심지였고 플랑드르 지방에 대한 실제적 통치권을 갖고 있었다.

14세기에 상업의 전성기를 맞았으나 15세기 이후 운하와 즈윈 만에 토사가 퇴적되어 대형

선박의 항행에 지장이 있자 교역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쇠퇴하였다.

 

그러나 부르고뉴 공작(부르고뉴 공작)가의 거주지이자 플랑드르 학파 미술의 중심지로서의 영향력

은 16세기까지 계속되었고, 시내에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의

동상이 있다.

 

19세기에 운하가 재건되고 중세의 건물을 보수하여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다시 탄생되었다.

‘벨기에의 베니스’로 불릴 만큼 운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구시가지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

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브뤼헤를 둘러싸고 있는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시내 구경하는 보트투어 가격은 7.6유로며 배로 한 바퀴 도는 데 약 40~50분 소요

된다. 구시가지에서 북해 해안의 브뤼허-제이브뤼허 항구까지는 15km로 작은 배는 다닐 수 있다.

 

베긴회(Béguinage) 수도원과 사랑의 호수   위키백과: Béguinage

지붕끝이 계단형인 브뤼헤 베긴회수도원(Begijnhof)

 

베긴회 수도원은 12세기경 벨기에 리에주 지역의 수도사였던 램버트 베그가 생을 마감하면

서 자신의 재산을 고아들을 위한 수도원으로 바친 것에서 시작되었다. 베긴회 수도원은 벨

기에의 다른 도시뿐만아니라,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지에도 수도원이 있다. 그중 브뤼헤의

베긴회 수도원은 벨기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이 수도원 앞에는 오리들이 평화로이 노니는 ‘사랑의 호수’가 있다. 

 

브뤼헤 마르크트광장(Markt Platz 시장 광장)과 종탑(Belfry)

시청사와 길드하우스들이 둘러싼 마르크트광장

 

브뤼헤의 중심인 마르크트광장에는 시청사와 13세기에 지어진 길드하우스(guild house) 건

물들이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히스토리움은 브뤼헤의 역사를 둘러 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

이며, 광장 북쪽의 법원 건물은 1878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네오고딕 스타일로

1892년 다시 완공되었다. 다양한 창틀과 여러 가지 모양의 벽체를 가진 길드하우스 등 여

러 건물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지붕 옆을 계단식으로 처리한 것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흔

히 볼 수 있다.

1240년에 세워진 높이 83m의 종탑(Belfry)

 

마르크트 광장 한쪽에 1240년에 세워진 종탑(Belfry)은 높이 83m로, 종탑에 올라가면 운하

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를 잘 조망할 수 있다. 종탑은 브뤼헤의 상징으로 종루 꼭

대기에는 거대한 1개의 종과 46개의 또 다른 종들이 있다. 각 종은 크기에 따라 다양한 음

색과 파장의 종소리를 들려주는데, 이 브뤼헤 종탑의 종소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

끗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브뤼헤의 종탑(Belfry)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종탑 중

하나이며, 매주 3번 종소리를 이용한 카리용 콘서트가 열린다. 이 종탑은 안트베르펜의 성

모마리아 성당 종탑과 함께 플랑드르지역의 31개의 종탑을 묶어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탑

들’이라는 이름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카리용(Carillon)   참조 다음백과: 카리용 [carillon]

카리용은 성당이나 관청의 종을 말하는 데, 스무 개 이상의 종을 달아 멜로디와 다양한 화

음을 만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종탑에 설치되며 종의 추에 줄로 연결된 나무 레버(lever)나

페달(Pedal)이 달린 클라비어(Klavier 건반)로 연주하며, 근대에 들어와 전기로 추를 움직여

연주하는 것도 있다.

 

유럽의 카리용은 14세기에 추(錘) 회전장치가 발명되어, 해머(망치)와 줄에 연결된 레버의

물림쇠를 벗기면 해머가 종을 치게 된다. 카리용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기술자 프랑수

아 에모니와 피에르 에모니에 의해 그 정점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종을 정확한 음정으로 조

율한 최초의 인물들이다. 특히 종의 내부 조율(종의 복합적 음향을 구성하는 배음(倍音)들의

조율) 방법을 완성함으로써 200년 동안의 숙제를 해결하였다.

 

벨기에의 메헬렌은 16세기부터 카리용의 중심지였으며 1557년에 그곳의 생롬볼 성당에서

최초의 시(市) 카리용 연주자의 지위가 주어졌고 그 성당의 카리용은 세계에서 유명해졌다.

 

브뤼헤(Brugge)의 성모마리아(Notre Dame 노트르담) 대성당과 성혈성당(聖血聖堂)

브뤼헤의 성모마리아(노트르담성당) 대성당에는 반 다이크의 회화가 있어 플랑드르 미술의

면모를 볼 수 있으며 미켈란젤로의 ‘성 모자상(母子像)’ 조각이 있다.

 


  브뤼헤 성모 마리아(노트르담) 성당
 성혈성당 입구

 

성혈성당(聖血聖堂 Basilica of Holy Blood 14~16세기)은 1150년 제2차 십자군전쟁에 참가한 

플랑드르 백작 브랜들리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예수의 성혈(聖血)을 모신 예배당으로 유명

하다. 이 일을 기념하여 매년 5월 승천제 행렬이 여기서 출발하는데, 중세 풍속을 재현하는

다양한 행렬이 이루어진다. 이 보혈의 행렬은 200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뢰닝 박물관 Groeninge museum  홈페이지: Groeningemuseum

이곳은 플랑드르 지역에서 왕성했던 플랑드르 미술부터 현대 미술(모던 아트)과 수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18-19세기의 네오클레식과 리얼리티, 상징주의와 관련한 작품

들이 유명하며,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볼만하다.

 

안트베르펜(네: Antwerpen,  불어: Anvers 앙베르, 영어: Antwerp 앤트워프)

  홈피: www.antwerpen.be  내용 참조-다음백과: 안트웨르펜 [Antwerpen], 위키백과: 안트베르펜

안트베르펜은 벨기에 제2의 도시로 19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였다. 북쪽으로 네덜란드와

국경에 접한 안트베르펜은 스헬데·데일레·네테·루펠 강이 흐른다. 이전에는 브라반트 공국에

속했으며 켐펜란트에서 이곳과 리에주를 잇는 알베르 운하(1930~39)가 개통됨으로써 아연,

구리, 핵에너지 산업이 확장되었다. 북부 및 중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켐펜란트 고원 지역

은 사구(砂丘), 금작화 자생지, 황무지, 메마른 목초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침엽수 조림

지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Notre Dame 노트르담) 대성당

안트베르펜의 성모 마리아대성당의 종탑은 높이가 123m로 멀리서도 잘 보이는데, 이 성당의

제단화는 플랑드르 미술의 대가인 루벤스의 작품이다.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림'-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성당

 

새로운 감각으로 지어진 안트베르펜 중앙역(中央驛) 

아르 누보(Art Nouveau) 양식의 '안트베르펜 중앙역사'

 

‘안트베르펜 중앙역사(驛舍)’는 규모도 엄청나지만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으로 지어졌다.

보통 역사들의 플랫폼은 지상에 있지만 이곳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플랫폼은 수직으로 지하

5~6층 구조이다. 이 역사와 연결된 아케이드에는 다이아몬드 가게들이 즐비한데, 사실 앤트

워프는 500년이 넘는 다이아몬드 상거래 지역으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의 80%가 거래되는

다이아몬드의 도시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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