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 독일(1) 괴테의 도시-푸랑크푸르트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클래식기타 명곡 모음(연주시간 2시간30분)

                   추후 링크가 끊어 지면 음악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아래 음악(영상)이 안 보이면 https://youtu.be/LllrmRuUW3A?t=7<=요걸 클릭

 

지난 2015년 02월 남부 독일에 이어 2015년 6월 말에는 라인강을 따라 北西(북서) 독일과

베네룩스 3국을 돌아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서 라인가도(Rhine-Romantic Route)

따라 주변 도시들을 보고 독일 쾰른, 뒤셀도르프, 뮌스터를 거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헤이그, 벨기에의 브뤼헤, 브뤼셀 그리고 룩셈부르크시티를 구경했다. 돌아오는 길에 프랑

스 북동 지역인 론(Rhone)주의 낭시와 모젤(Moselle)주의 메스를 둘러보고 독일의 트리어,  

슈파이어를 거쳐,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편의상 같은 권역인 같은

권역의 도시들은 방문 일정이 다른 날이더라도 같이 묶어서 서술하였다.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자료 정리를 위해 이번 여행 지역 관련 명소나 관련 지식을 인터넷으

로 모은 내용이며, 필요시 직접 찍은 사진과 간략한 소감을 덧붙였다. 링크 밑줄 링크를 클릭

하면 해당 관련 정보를 더 볼 수 있다. 

 

나의 여행 경로: 프랑크푸르트-마인츠-라인가도(로렐라이 등)-보파르드-엘츠성-코블렌츠-쾰른-아헨-(벨)리에주-

(네)마스트리히트-(독)뒤셀도르프-도르트문트-뮌스터-(네)아른햄-암스테르담-볼렌담-잔스칸스-헤이그-(벨)안트워프

-브뤼헤-브뤼셀-(룩)에슈쉬르쉬르-(독)트리어-(룩)룩셈부르크시티-(프) 메스-낭시-(독)슈파이어-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      

      프랑크푸르트 홈피: www.frankfurt.de,   Frankfurt 관광카드: www.frankfurt- tourismus.de

      참고: Daum백과사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  한국어 위키백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마인강(링크:마인 강)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서 발원하는 524 Km 길이의 강으로, 라인강에

합류하는 가장 중요한 지류 가운데 하나다 마인 강변의 Frankfurt(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5번

째로 큰 도시로 8세기 말 카를 대제가 이곳을 프랑크왕국의 수도로 정한데서 Frank라는 이름을 

얻었다. 독일 헤센州의 주도(州都)는 비스바덴이지만, 최대 도시는 프랑크푸르트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정식 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마인강의 프랑크푸르크')

이지만 줄여서 Frankfurt로 줄여 부르며, 브란덴부르크 주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

(Frankfurt an der Oder ‘오데르 강의 프랑크푸르트’)와는 다른 도시이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는 독일의 중요한 운하 내륙항(內陸港)이자 철도와 도로

교통의 중추이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공항(프랑크푸르트공항 http://www.frankfurt-airport.co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스히폴) 공항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의 하나

로 유럽의 관문 공항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는 전철이 편리한데 1일권을 사거나,

여럿일 경우 group 티켓으로 끊는 게 좋다(티켓 참고: http://www.rmv.de/en/). 프랑크푸르트

관광카드(www.frankfurt-tourismus.de)는 기간 내 무료 대중교통 이용과 함께 시내 일주 버스투

어, 보트 투어 할인과 박물관, 미술관, opera 관람 등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높은 빌딩이 즐비한 프랑크푸르트 중심가
프랑크푸르트 중심가 괴테거리

프랑푸르트는 독일의 상업, 금융의 경제적 중심지이자, 유럽중앙은행(ECB)이 들어와 있어서 

영국의 런던과 함께 유럽의 금융 중심지이다. 시내 중심지는'독일의 맨해튼'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빌딩들이 많이 있는데 거의가 은행 건물이다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은 1993년 11월 발효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거해

설립된 유로화 단일통화정책 및 외환정책을 담당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1998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본부가 설치됐다.

 

프랑크푸르트의 옛 시가지 중심이었던 뢰머 광장(Roemerplatz)

프랑크푸르트의 관광지는 괴테하우스, 뢰머 광장,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등이 있는 마인강

북쪽 지구와 박물관, 작센하우젠 지역이 있는 마인강 남쪽 지구로 나눌 수 있다.

 

뢰머 광장의 오스트챠일레와 니콜라이교회

과거 프랑크푸르트의 심장이었던 뢰머 광장의 정식 명칭은 뢰머베르크(Römerberg =Roman

Mountain의 뜻) 광장인데 로마군이 주둔한데서 비롯되었다. 뢰머 광장 한편에는 니콜라이

교회(Frankfurt am Main Nikolaikirche)와 신성로마제국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 문장(紋章)이

새겨진 시청(Rathaus) 건물이 있다. 이 시청사 건물에는 9세기 샤를마뉴 대제부터 1809년

프리드리히 2세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광장의 동쪽에는

15~18세기에 지어진 목조건물 오스트차일레(Ostzeile '동쪽의 줄'이란 뜻)가 몰려 있다. 이

오스트차일레는 나무 골조가 드러나는 건물 구조인데 마치 띠로 묶어 놓은 모습 같다.

쌍두 독수리 문장(紋章)이 박혀있는 시청사(Rathaus)

뢰머 광장 옆에는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있는데 성 바르

토로메오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성당은 카롤링거 왕조의 루트비히 대제

때인 852년에 완공되어 왕실의 예배당 겸 주교구 성당으로 사용되다가, 1562년부터 1792

년까지 230년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어 바르톨로메오 카이저돔

(Kaiserdom St. Bartholomäus)으로 불린다.   

뢰머 광장의 정의의 여신상

‘정의의 여신(라틴어: Justitia)’         내용 출처: 정의의 여신상  

시청사(Rathaus) 앞 뢰머 광장에는 정의의 분수(Justitia-Brunnen)가 있는데, 분수 위에 ‘정

의의 여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질서와 계

율의 상징인 테미스(Themis)의 딸이다. 이 후 로마 시대에 들어와서 디케(Dike)에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Justitia)가 탄생하였다. Justice(정의)란 말은

Justitia에서 유래됐다.

 

정의의 여신 모습은 한 손에 칼을, 다른 손에는 천칭(저울)을 들고 있으며, 대개 두 눈을

안대(眼帶 눈가리개)로 가리고 있다. 경우에 따라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는 힘과 엄격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한다,

 

저울은 개인 간의 권리 관계에 대한 다툼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고, 칼은 사회 질서를 파

괴하는 자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정의의 여신상이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자세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

다.  

 

마인강 남쪽의 알트 작센하우젠(Alt Sachsenhausen. ‘Alt 알트=old 오래된‘)에선 독일식 목

조 구조 가옥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돌로 된 보도블록 사이에는 사과가 새겨져 있어 이곳이

프랑크푸르트 전통주'아펠봐인(Apfel Wein 영:apple wine 사과주)'의 명소임을 말해준다. 

오래된 맥줏집과 음식점들이 옛 시절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작센하우센 술집 골목의 사과주를 뿜어대는 분수

괴테의 도시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에는 괴테 거리(Goethestrasse), 괴테의 집(Geothehaus), 괴테 박물관 및 도

서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대학교(1914) 등 괴테의 이름이 곳곳에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위대한 작품을 남긴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프랑크

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티슈바인이 그린 캄파니아의 괴테-슈테델 미술관-

한편, 관광가도(街道) 괴테가도(Goethe Strasse 링크:http://www.goethestrasse.info/)는 독

일의 유명 관광가도(街道)중 하나인데, 괴테가 태어난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이제나흐, 바이마

르, 라이프치히를 거쳐 드레스덴까지 약 600km 구간에 걸쳐 괴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로 동독과 서독을 횡단하는 길이다.

 

슈테델 미술관 1층 정면에는 1787년에 티슈바인이 그린 <캄파니아의 괴테(Goethe in the

Campagna)>라는 괴테의 초상을 전시하여 그를 자랑하고 있다. 티슈바인은 괴테의 친우로

함께 여행을 하던 중 로마 근교의 황야를 배경으로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괴테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슈테델 미술관(Städel Museum)   

홈페이지: http://newsroom.staedelmuseum.de/en    내용 참고 두산백과: 슈테델 미술관 [Staedel Museum]

 

슈테델 미술관은 14세기부터 현대까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회화를 광범위하게 수

집, 총 2,700점의 회화를 비롯하여 600점의 조각, 드로잉과 판화 약 10만 점 등을 소장, 전

시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슈테델 미술관은 렘브란트, 모네,

르누아르, 뒤러 등 중세 독일·네덜란드 회화, 14~18세기 이탈리아 회화, 17세기의 낭만파

와 나자레파, 인상파, 표현주의파 등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강물이 일렁대고 반짝이는 모습이 느껴지는 모네의 작품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는 마침 모네의 특별전시 “Monet and the Birth of Impressionism(모

네와 인상파의 탄생)”가 열리고 있었다. 모네 작품에서 강물이 일렁대고 반짝이는 느낌을

제대로 느끼려면 미술 작품 앞에 서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번 모네 특별 전시에 나온 모네 작품 소개 영상을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

http://www.staedelmuseum.de/de/ausstellungen/monet-und-die-geburt-des-impressionismus

 

낭만주의 (浪漫~ romanticism)  내용 참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낭만주의 [浪漫主義]

18세기 후반에 발생하여 19세기 전반 사이의 유럽을 지배한 모든 문화영역의 사조이며, 정신적인 태도이다. 이것은 감정을 억압하여 이성(理性) 중심의 보편적 인간성을 존중한다는 고전주의(古典主義, classicism)에 반대하고, 자아의 감정을 해방하되 인간과 공동체와 문화의 성장에 맞는 전체성 을 추구했다. 넓은 의미로는 자연으로 돌아가 현실을 도피한 주관적 공상적인 세계로의 비약을 강조하였던 탓으로, 민족정신 또는 민족문화에 대하여 자신의 이념을 정치적으로 관철하는 현실감과 실행력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낭만파는 이러한 계몽주의와 고전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나 유럽 전역을 풍미한 예술적(문학, 미술, 음악, 문예) 사조를 추구하는 예술가 또는 그런 유파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는 음악·미술·건축·정치·사회의 전반에 걸쳐서 한때를 풍미한 사조이기도 하다.

 

자연 상태로서의 인간의 ‘선성(善性)과 완전성(完全性)’을 제창하면서 기성의 전통과 문명에 대하여 맹격을 가한 루소(Rousseau,J.J.)를 낭만 주의의 시조로 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낭만적’이란 말은 고대 불어의 ‘로망(roman)’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로망’의 고형(古形)인 ‘로망스(romans)’와 ‘로망(romant)’은 라틴어의 부사 ‘로마니스(romanice)’에서 기원하고 있다. ‘로망’이 처음에는 ‘기이(奇異)’·‘가공(架空)’·‘경이(驚異)’·‘환상(幻想)’ 등 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18세기말을 전환점으로 하여 비로소 고전주의에 대립된 개념으로 ‘낭만주의(romanticism)’란 특정의 문예사조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낭만(浪漫  Romance 로망스, Roamantic 낭만적)의 어원에 대해서

                  출처: 교실밖 국어여행 - 낭만(浪漫)의 어원에 관하여

"낭만이 가득한 젊은이들","낭만이 넘치는 대학가" 따위로 오늘날 흔히, 또 자연스레 쓰고 있는 "낭만(浪漫)"의 어원에 관하여 알아본다. 낭만( 浪漫)이란 말은 실상 아무런 뜻도 지니지 못한 말이다. 한자로 해석해 봐도 그 뜻을 알 수 없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상의 한 경향에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까다로운 고전주의 전통에 반대하여 자유, 개성, 공상, 모험, 자연의 감정 따위를 소중하게 여기는 예술 경향이다. 한자 쓰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이 로맨티시즘을 "浪漫" 主義로 옮겨 적었다. "浪漫"을 일본의 한자발음으로 읽으면 "로망(ろうまん; ロマン)"이 된다. 그러니까 "낭만(浪漫)"은 서양말 "로망(roman)"을 그저 소리대로 적은 일본인들의 한자표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에서 ‘로맨틱(romantic)’이나 ‘로맨티시즘(romanticism)’은 그 이입의 초기(일제시대)에 ‘낭만적(浪漫的)’ 또는 ‘노만적(魯漫的) ’과 ‘낭만주의(浪漫主義)’ 또는 ‘노만주의(魯漫主義)’로 각각 번역되고 있었으나, 오늘날은 대부분 ‘낭만적’과 ‘낭만주의’로 사용하고 있다.

 

"浪漫"을 우리의 한자음으로 읽으면 "낭만"이 되니까, 결국 원래 말인 "로망"과는 영 동떨어진 이상한 말이 생겨나고 만 것이다. 이래서 처음 들어서는 그 뜻을 제대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낭만","낭만주의,"낭만적"이란 말들이 널리 쓰이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버젓이 국어사전에 올라 우리말 행세를 하게 되었다.

 

로맨스(romance)는 어쩌다가 낭만, 사랑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출처: [조승연의 이야기인문학]-단어의 어원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에서

‘낭만’의 어원인 ‘로망스’는 원래 기사도와 모험, 그리고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한 중세문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십자군 원정 당시에 대학 물을 먹은 귀족 부랑아들이 엔터테이너처럼 이야기꾼이 되어 무료한 귀부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돈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트로바도르'라 불리는 이 남자들의 이야기에 귀부인들은 홀렸고 이들의 매너에 빠져 버렸다. 트로바도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주로 사랑이야기였고 '로맨스어로 된 작품'이라고 해서 '로맨스'라 부르게 되었다. 때로는 사랑이야기를 듣는 자리의 트로바도르와 귀부인 사이의 분위기는 점차 야릇하게 흘렀고 로맨 틱한 분위기라고 하게 되었다.

 

한편 로망(Roman)은 라틴어로 어려운 논문이나 방대한 역사적 기록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점차 사사로운 감정을 다룬 문학작품인 소설을 의미하게 되고,19세기 낭만주의 시대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녀들의 한심한 사랑에 빗대어 로망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라고 낮춰 부르게 되면서 시작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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