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광을 위해 예술가들은 자신의 혼을 바치고...-바티칸-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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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냐정원(바티칸 박물관 앞뜰)과 귀족의 상징인 솔방울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성당, 베드로 성당
어제는 폼페이에서 고대를 만났지만 오늘은 로마에서 중세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로마 시내와 바티칸을 하루에 관광할 때는 반드시 바티칸을 먼저 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여름철에는 바티칸 박물관 입장 대기에만 몇 시간 소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람 순서는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성당, 베드로 성당 순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티칸 박물관 역시 세계적 박물관이다 보니 자세히 보려면 하루라도 모자랄 것이지만, 몇 시간 내에 관람을 끝내야 하는 우리 같은 단체 관람객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몇 가지만 골라 관람 할 수밖에 없다. 우리말로 인쇄된 박물관 안내장이 있었는데 국력 신장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의 사회 문화 기부의 덕택이다. 작지만 자긍심과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피에타 상의 성모 마리아는 너무 젊다
Pieta(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의 뜻)는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은 구도의 작품을 말한다. 종교적, 예술적 의미가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예수에 비해 너무나 젊은 성모 마리아이다.
미켈란젤로의 Pieta 像
꿈틀대는 대리석 라오콘의 군상
바티칸 박물관에서 라오콘의 군상과 카라칼라 황제 목욕탕에서 가져온 조각품 등을 둘러 본 다음, 미켈란젤로의 역작인 [천지창조]와 시스티나 성당 제단 벽화를 감상하였다.
살아 꿈틀대는 근육이 인상적인 라오콘의 群像
라오콘의 군상에 대해서는 미술 사학자 노성두 님의 글 중 일부를 옮겨 본다.
참고 사이트: http://www.royalwine.net/cgi-bin/ez/ezboard.cgi?db=db03&action=read&dbf=2&page=3&depth=1
(앞부분 생략)
부풀어 오른 사지의 근육과 제멋대로 표류하는 뼈대의 긴장을 꿈틀대는 대리석으로 옮겨낸 헬레니즘 바로크의 표현적 수사학 앞에서 그들은 말을 잃고 말았다. 고대 미술은 오직 優美로운 조화와 절제된 崇嚴의 형식이라고 알았던 그들에게 라오콘의 격정 형식은 사뭇 생소할 수밖에. 하루아침에 아프로디테의 감미로운 이념으로부터 라오콘의 절박한 사상으로 건너뛰기란 스튁스 강의 이편과 저편보다 더 까마득했을 것이다.
라오콘 군상은 소용돌이치는 피라미드 구성으로 짜였다. 활처럼 긴장한 아버지의 척추가 소용돌이의 종축이다. 차가운 바다뱀의 공격을 받은 인간의 뜨거운 절망이 가망 없는 사투를 벌인다. 조형의 이분법은 안으로 조여드는 뱀들의 내향적 공세와 가망 없는 탈출을 꿈꾸는 외향적 수세의 균형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왼편에 선 작은아들은 옆구리가 물렸다. 큰아들은 살아날 수 있을까? 아버지가 큰아들을 돌아보는 순간 뱀은 공격방향을 선회한다. 사제가 뱀 머리를 움켜쥐었으나 손아귀를 미끄럽게 빠져 나온 뱀이 그의 옆구리에 독니를 박아 넣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은 목신의 그것처럼 헝클어진 수세미가 되고 죽음을 예감하는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때였을 것이다. 라오콘의 힘없이 내뻗은 왼발이 경직되고 근육과 힘살이 간단없이 얼어붙은 것은. 또 하늘을 올려보는 그의 눈에서 빛이 사그라든 것은...
(이하 생략)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는 세계 최대의 천장 벽화라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하는 작업을 하여 완성하였다 한다. 이로 인해 미켈란젤로는 작업대에서 떨어지기도 하였고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많은 신체적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한다. 이 작품에서 그의 신앙에 대한 충성심과 예술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처음에 천지창조를 비교적 세밀하게 그렸으나 나중에는 그림을 단순화 시켜 그렸다 한다. 불편한 자세로 오랫동안 그림을 계속 그리기 힘든 점도 있었겠지만, 천장에 있는 그림과 바닥에서 그것을 보는 사람 눈과의 거리가 먼 관계로 세부 내용을 단순화 시켜야 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천지창조 천장화의 일부분과 중앙 확대(부분) 사진 출처: 인터넷
예술가로서의 긍지와 자존심
한편 시스티나 성당 제단 벽화 [최후의 심판圖]는 작품 속의 인물들이 처음에는 모두 나체로 그려졌다 한다.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작업 현장을 방문한 비아지오 체세나라라는 추기경이 벌거벗은 인물들에 대해 나쁘게 평하자 미켈란젤로는 그를 지옥의 使臣 미노스로 응징(?)해 그려 놓았다. 한편 이 그림 속에는 자신이 핍박 받을 것을 암시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또 교황 율리우스 2세가 핑계를 대며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작업을 팽개치고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내려 가버렸다. 교황이 다시 그를 부르기 위해 돈과 선물 등 온갖 선심 공세와 회유 끝에 그를 다시 불러 왔다는 얘기는 권력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의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보여준다.
시스티나 성당을 관람하는 하는 중에는 세 가지를 금하고 있다. ‘떠들지 말 것, 사진이나 비디오 찍지 말 것, 바닥에 드러눕지 말 것’이 그것이다. 천장화는 목덜미가 아파 3분도 계속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정말이지 누울 수 있다면 누워서 감상하고픈 심정이었다. 시스티나 성당은 크기나 규모에 비해 베드로 성당에 비해 턱없이 작았지만 이 두 작품이 있음으로써 이 성당의 중요성이나 비중이 그에 못지않은 것 같았다. 예배를 보는 거룩한 성소인 성당에서 함부로 행동해서도 안 되겠지만,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눈으로 마음만으로 감상하기에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부족한 영상 자료에 대한 아쉬움은 나중에 로마 시내에서 DVD와 책자를 구입하여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최후의 심판圖 -미켈란젤로- 사진 출처: 인터넷
한편 시스티나 성당 옆에 있는 베드로 성당은 그 규모가 가히 세계 최대라고 한다.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교황님이 계시고, 성당내의 많은 보물, 성물, 역대 교황님의 무덤과 자취들이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성당의 최고 우두머리라는 것에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 성당의 형식적인 내용을 보더라도 천정은 금덩이로 되어 있고 성당 제대 뒤쪽 창문에 표현된 성령의 비둘기는 빛을 통과 시키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내부에는 청동 주조로 만들어진 베르니니의 天蓋(천개를 비롯하여 피에타 상, 베드로상 등 유명 걸작품이 성당 내부 이곳저곳에 보석처럼 자리하고 있다. 성당이라 기다 보다 오히려 예술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대리석으로 가공된 아름다운 光窓과 성령의 비둘기
베드로 성당 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과 天蓋(천개)
예술가들의 끼는 통한다.
베드로 성당 안에 있는 사자 石像 2마리를 보다가 재미있는 대조적인 점을 발견 했다. 그것은 우측 사자와 좌측 사자가 서로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 마리는 입을 벌린 채 눈을 뜨고 앞발은 벌리고 꼬리를 감고 있지만,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다문 채 눈을 감고 앞발은 모으고 꼬리를 펴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조형을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속리산 쌍사자 석등의 두 마리 사자와 토함산 석굴암 앞쪽의 金剛力士(금강역사)의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입을 벌린 모습의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와 입을 다문 모습의 '훔금강 力士'
이 사진은 법주사 청동 대불 아래에 조각된 ‘금강역사’로 석굴암의 금각역사를 모조한 것이다.
금강역사는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하며, 입을 벌리고 오른쪽을 지키시는 분이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입을 다물고 왼쪽을 지키시는 분이 밀적금강(密蹟金剛)이다. ‘나라연’은 힘이 몹시 세다는 뜻이며 ‘밀적’은 자취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동양 서양을 불문하고 공통적인 현상이 아닌가 한다. 양측의 조형이 비슷하지만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다르듯이, 작가가 똑같은 모습으로 조각하는 것을 피한다는 점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둘 다 똑 같으면 재미(?)없을 테니까 말이다.
성 베드로 성당 정면 테라스 위의 聖人(성인) 조각상 들
베드로 광장은 몸통, 성당 돔은 성인의 머리, 광장 회랑은 팔에 해당하며 전체적으로 열쇠(KEY) 모양이라고 한다. 이 얘기는 성당이 지어질 때 성당 구조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처음부터 의도된 내용이었는지, 후세 사람들이 얘기를 갖다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재미있게 생각되었다.
베드로 성당 광장의 列柱
이에 덧붙여 바울과 베드로의 비교도 알아 둘 만 하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 자였으며 참수 당하였고, 말씀의 검, 성령의 검으로 상징된다. 한편 베드로는 로마 시민권자가 아니었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으며, 천국의 열쇠, 성령의 비둘기로 상징 묘사된다.
스위스 용병이 지키고 있는 베드로 성당을 조금만 걸어 나오면 바티칸을 벗어나 이탈리아 영토로 들어가게 된다. 검문이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국경 표시도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 로마 시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로마를 보게 된다. 현대 오늘과 중세가 공존하는 로마를 둘러보러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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