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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시간 여행-폼페이-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태양의 도로 A1 고속도로
오늘은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있는 나폴리와 폼페이를 가는 날이라 다른 때보다 더 일찍 모닝콜이 왔다. 졸린 눈을 비비며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호텔 식당에서도 이른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 주었다. 서두른다고는 하였지만 그래도 출발할 때는 이미 해가 떠올라 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A1 고속도로를 타고 남으로 내려갔다. 앞쪽에서 비치는 햇빛 때문에 앞자리에 있던 나는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못 뜰 정도였다. 전망 좋은 자리로 생각하여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았던 것이 실수였다. 마침 좌석에 여유가 있어 약간 뒷자리로 했던 이동하였다. 나폴리까지 내려가는 동안 소위 ‘태양의 가도’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고속도로에는 끝없이 햇빛이 쏟아 내려 반짝거렸고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도로에 반사되고 산란되는 햇빛 때문에 그것을 보고 있는 나까지도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두 시간 마다 운전기사는 휴식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휴게소에 들렀다. 차에서 내려 바깥에 나가 보니 잠시만 더 오래 있으면 일광 화상을 입을 것 같아 용무만 보고 얼른 차로 돌아 왔다.
갈색 지붕을 가진 성냥갑 모양의 집과 대조를 이루는 푸른 바다
파란 하늘, 푸른 바다와 절묘한 대조를 이루는 노란 오렌지, 붉은 지붕의 집
빛나는 햇빛 속을 몇 시간 동안이나 달리다가 오렌지 나무가 길가나 밭 여기저기에 많이 보일 때쯤 버스에서 내린 후, 폼페이로 가는 소렌토 행 기차로 갈아탔다. 기차 내부 출입구 문 위에는 다음 행선지와 타고 있는 기차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LED 패널이 설치되어 있는 걸로 보아 제법 현대식 운행 안내 시스템을 갖춘 것 같았다. 하지만 기차 유리창은 바깥 풍경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온통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투성이였다.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오렌지 밭엔 노란 오렌지들이 달려 있고 좀 멀리 둥그런 활모양의 바다가 보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산타 루치아 만이었다. 소렌토까지 가는 중간 기차역 주변의 시가지 벽에도 온갖 낙서가 보였다. 과연 이탈리아는 낙서 천국(?)이었다. 소렌토 시가지의 가로수는 노랗게 익은 오렌지 나무였다. 대개의 주택은 붉은 갈색의 지붕으로 되어 있어 푸른색의 바다와 파란 하늘색에 절묘한 대조를 보였다.
귤이 달린 오렌지 나무와 푸른 산타 루치아 만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비참한 현장을 찾아서
폼페이 매표소를 지나면 시간은 2000 여 년 전의 폼페이로 돌아가게 된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서기 79년 8월24일 2만 인구가 살던 폼페이가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로 화산재 등 화산 분출물에 묻혔다. 먹고 춤추고 노래하던 삶의 터전이 화산재로 묻혀 버리는 천지 재앙이 일어난 것이었다. 엎드려 꼬꾸라진 채 묻혀 죽은 사람, 아이를 끌어안고 죽은 엄마 등 비참한 현장은 그대로 박제가 되어버린 듯 그 당시 시각에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화산 분출물에 묻혀 있던 사람(석고로 뜬 형태) |
엎어진 채로 묻힌 사람 모습(석고로 재현한 형태) |
화산 폭발이 멈추었을 때 폼페이는 화산재 등 화산에서 흘러나온 물질 더미가 깊이 6~7m 두께로 도시 곳곳을 뒤덮으면서 일종의 진흙 용암으로 굳어졌다. 폼페이의 유적은 16세기말에 라치비타라고 알려진 구릉 밑에 터널을 팠던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폼페이에서 벌어졌던 화산 참사의 목격담은 대(大)플리니우스의 조카 소(小)플리니우스가 미네눔의 로마 함대 사령관이었던 대플리니우스의 죽음에 대해서 묻고 있는 타키투스에게 쓴 2통의 서신에 생생하게 기록되었다고 한다.
곡물의 부피를 측정하기 위한 당시의 계량기(計量器)
사람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 같다.
폼페이를 둘러보면 급수시설, 배수 시설은 물론 공회당, 재판소, 신전. 목욕탕, 여관, 유곽(여인의 집), 시장, 공정 거래소, 원형극장 등이 있고 빵 가게, 곡물 가게 등 오늘날에 보아도 대단할 정도였다. 야광 돌을 마차가 다니던 길바닥에 박아 두어 밤중에 길을 표시하도록 하였다던 지, 비가와도 발이 젖지 않도록 징검다리 모양의 도로 건널목을 만들었던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도로의 징검다리-비가 오더라도 발이 안 젖게..
이 폼페이는 무역항이라 다른 나라에서 오는 이방인도 많이 드나들었다 한다. 항구에는 여관, 유곽(여인의 집),요릿집(식당)이 있기 마련이다. 식당 대문 옆에는 숟갈과 포크, 칼이 그려진 표시가 있어 글씨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방인에게 간판 구실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유곽(여인의 집) 방안에는 각 종 성행위 포즈를 그려 두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꾀 쓸모가 있었으리라.
최고의 단열재는 공기 벽(목욕탕)
공기는 최고의 단열재 / 전염병(역병)의 원인이 된 하수 시설
또한 목욕탕에서는 엷은 판자 형태의 두개의 벽을 막아 벽과 벽 사이에 공기층 만들어 단열 효과를 얻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응결된 물이 사람 머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고안한 천정과 목욕탕 창문을 보니 당시 사람들의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지혜가 느껴졌다. 그러나 배수시설은 집에서 길가 쪽으로 배수토록 되어 있어 오물들이 길 바닥으로 그냥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배수 처리 시설의 이런 취약점이 중세까지 잘 해결되지 못해 사람들이 페스트나 전염병에 많이 희생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납으로 만들어진 당시 상수도 관(pipe) |
토관으로 만들어진 배수구-오물이 도로로 그냥 버려진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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