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사찰) 구경의 기본 상식 (펌)

 

1.부처님의 뜻 : ‘깨달은 사람’의 뜻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진리를 밝게 깨달아 온갖 복과 덕을 모두

                갖추신 분.

 

① 부처의 성은 싯다르타, 이름은 고타마이며, 석가는 부족국가이름이고, 모니는 깨달 은자 ⇒석가족의 성자⇒석존

 

2. 공양이란 : 깨끗한 마음으로 음식과 꽃, 향, 촛불, 쌀, 물 등을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며 또한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들

              에게 필요한 어떤 물건이나 참다운 가르침을 베풀어 주는 것을 말함.

 

3.불교의 명절

1) 4월초파일(8일) -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출가하고, 깨닫고, 입멸한 날(부처님 오신 날)

2) 2월 8일 - 출가 재일

3) 2월15일 - 열반 재일

4) 7월15일 - 백중 재일(우란분재일)

5) 12월8일 - 성도 재일

 

4.불교에서의 호칭

1) 승려 : 출가 수행자 ,일명 중(衆)

2) 스님 : 스승님의 준말, 일반대중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스승님, 승님, 등으로

          불리다가 스님이 되었음.

3) 국사,왕사 : 승려에게 국가에서 준 칭호. 왕사는 덕행이 높은 승려로 왕의 스승 역할를 하였음.

4) 대사 : 승과에 합격한 승려나 덕이 높은 승려, 요즘은 큰스님이라 호칭.

5) 조사(祖師) : 불교의 한 종파를 세우고 그 종지를 열어 주창한 승려

6) 비구(남), 비구니(여) : 정식으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수도자로 구족계를 받은 스님.

7) 사미(남), 사미니(여) : 일정한 행자 수행을 마치고 사미십계를 받은 예비스님.

8) 행자 : 사미계를 받을 때까지, 사찰에서 필요한 기본의식과 계행을 배우는 자

9) 남자신도- 거사, 처사, 우바새, 여자신도- 보살, 우바이

 

5.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

1) 소승불교 : 전통과 형식에 중요성을 두고 계율과 교법을 통한 출가승 중심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처는 될 수 없고 아라한(阿羅漢)이 최종목표 - 개인해탈 최고성자-아라한

2) 대승불교 : 누구나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부처의 자비와 지혜를 믿고 수도정진 한다면 부처가

               될 수 있다.- 대중구현 - 보살(菩薩)

 

6.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

1) 고구려:소수림왕 2년(372년)-중국 전진-순도-초문사(肖門寺), 374년 아도-이불란사(伊弗蘭寺).

2) 백제:침류왕 1년(384년)- 중국 동진 - 인도승 마라난타 - 불갑사(佛甲寺)

3) 신라:민간신앙과 귀족세력의 반대로 공인이 늦음. 눌지왕(472년) 고구려승 아도화상(묵호자)이 경북 선산의 모례의

         초가집에서 시작 - 구미의 도리사가 최초의 절- 법흥왕 14년(527년)에 이차돈의 순교 후 공인으로 세운 경주의

         흥륜사(興輪寺)를 신라의 최초의 절로 봄

 

         최초의 절은 빔비사라왕이 인도의 왕사성 옆 대나무 숲 동산에 세운 [죽림정사]이다.

 

[ 우리나라 절 ]

'불상을 봉안하고, 승려가 머물며 수도. 의식 등을 행하는 장소' (대체로 산수가 수려한 곳에 건축)

 

7. 절 이름의 별칭(유래)

1)절.....[절]이라는 우리말은 불상에 예배할 때 절을 많이 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

2)精舍(정사).....청정한 승려들이 수행하는 집이란 뜻

3)가람.....산스크리트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것(승가람마에서 가람)

4) ○○寺.....본래 공공기관을 뜻하는 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서역의 승려들이 홍로寺라는 중국의

              외국인 접대관사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후대에 승려가 머무는 곳에는 모두 [寺]자를 붙이게 됨)

5)寺刹(사찰).....[刹]이라는 말은 절 앞에 세우는 깃발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표기해 [寺]자와 결합한  

                  말이다.

5)사원...당과 송에서는 절이 관공서처럼 사용되어서 사원이라고 함

6)총림(叢林).....선종에서는 수행자들이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을 숲 속의 나무들이 곧게 자라는 것에

                  비유해 총림이라 함

7)도량.....단순히 수행 장소라는 의미에서 도량이라 함. (석가모니가 깨달은 지 얼마 안되어서 많은 제자가

           모이자,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석 달 동안 바깥 출입을 삼가고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8. 절의 구조 :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절의 전통 양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1)일주문....절에 들어가기 위해서 맨 처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한마음으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음.

            기둥을 한 줄로 세운 문이다. - 속세와 불계를 구분 짓는 경계역할

 

2)금강문....부처님과 사찰을 수호하는 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가 서있는 문-사찰의 수문장역할

             아! 하고 입을 벌린 밀적역사는 나쁜 세력을 공격하는 자세(生成)이고,

             훔! 하고 입을 다문 나라연역사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자세임(消滅).

             두 금강역사의 공존은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불교의 가르침.

 

3)천왕문.....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모셔 놓은 곳으로 속세의 잡귀가 불세계로 들어오지 못하 도록

             한다. - 불가의 세계인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 궁궐을 형상화 한 것.

 

       동쪽-지국천왕(持國天王)-칼(주먹)-청색-다문입-착한 이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리라.

       서쪽-광목천왕(廣目天王)-삼지창(보탑)-백색-벌린입-악인에게 고통을 주어 道心을 일으키게 함

       남쪽-증장천왕(增長天王)-용(여의주)-적색-성난눈-만물을 소생시키리라.

       북쪽-다문천왕(多聞天王)-비파-흑색-치아보임-어리석음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인도하리라.

 

4)불이문(해탈문).....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문

                      불이(不二)는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세속과 불가의 세계도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의미.

 

5)당간지주...절 입구에 절 깃발을 거는 대

 

6)범종각..... 보통 범종각에 불전사물(佛前四物)을 달아놓은 놓음.

              범종(지옥중생구제), 법고(짐승구제), 운판(날짐승구제), 목어(수중생물 구제) 

              범종(아침28번, 저녁33번),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

 

7)만세루(보제루 또는 우화루)....실내대중법회강당

 

8)괘불대...법당앞 돌계단 양옆의 돌기둥에 불화를 거는 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법당 바깥에서 법회를 열 때 커다란 불화(부처가 그려진 그림)를 걸기 위한 받침대이다. 

            참고로 야외법회를 야단법석이라고 함.

 

9. 절에서 봉안한 주불에 따라 붙여진 전각 명칭

1)대웅전(大雄殿)-일반적으로 석가모니를 주불로 봉안한 전각(협시불-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웅보전(大雄寶殿)-주불-석가모니, 협시불-아미타불, 약사여래불

 

2)대적광전(大寂光殿)-화엄종 계통의 절에서 광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봉안한 전

 (화엄전 또는 비로전 이라고도 함)-불성과 진리로 가득 한 곳

 

3)극락전(極樂殿)-정토정 계통의 절에서 극락세계 관장 부처인 아미타불을 주불로 봉안한 전각

  (무량수전 또는 아미타전 이라고도 함)-극락소원 성취 할 수 있는 곳

 

4)미륵전(彌勒殿)-미륵신앙이 있는 곳에는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 전각

  (용화전 또는 자씨전(慈氏殿)이라고도 함)

  미륵신앙은 우리의 전통 민간신앙과 밀접한관계로 일반인이 가장 많이 찾는 법당

 

5)원통전-현세적 이익을 해탈케 해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전각(부속건물에 봉안할 경우에는 관음전이라고 함). 

          현실세계의 고통을 겪는 인간의 소리를 들어주는 구세주 보살(관세음보살)을 모심.

 

6)약사전-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인 약사여래를 주불로 봉안한 전각

 

7)팔상전-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가지 그림으로 그려 봉안한 전각

           (영산전 이라고도 함. 대부분의 절에서는 이 여덟가지 그림을 대웅전 외벽에 그리는 경우가 많다.)

 

8)나한전-석가모니의 뛰어난 제자였던 16나한이나, 또는 500나한을 봉안한 전각(응진전이라고도 함)

           (나한전은 대부분 주불전과 떨어진 곳에 있다)-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성자(聖子)를 의미함.

 

9)명부전(冥府殿)-저승의 세계를 사찰 속으로 옮겨온 전각으로지옥세계 관장부처인 지장보살을 봉안

                   (지장전, 시왕전, 무사전 이라고도 함).

                   염라대왕은 ‘업경대’라는 거울로 평생에 지은 죄를 비쳐 봄.

 

10)조사당(조사전,조사각,국사전,영각(진영각)-선종계통의 절에서는 스승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

 

11)삼성각- 절 뒤쪽에 우리 민족의 토속신인 산신(산신각), 독성(나반존자), 칠성(칠성각)을 하나의 전각 안에 봉안한 곳.

             지혜가 밝아 많은 능력을 지녔다는 나반존자를 모시면 독성각.

 

12)요사채-사찰에서 스님들의 생활과 관련된 공간(승각;정목당...거처하는 곳, 심검당; 종무소..사찰행정)

 

13)건물 이외에 돌다리인 석교, 연꽃을 심은 연지, 탑, 석등, 비림과 부도밭, 강원, 율원 선원 등이 있다.

 

14)절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는 어른 스님을 방장 또는 조실이라 하고, 실질적인 운영은 주지나 원주가 맡으며 그 밑에

   승려나 신도가 각각의 소임을 맡아서 일을 한다.

 

☆ 적멸보궁(寂滅寶宮)-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예배하는 법당.

    5대적멸보궁-양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10. 교종(敎宗)과 선종(禪宗)- 5교 9산(五敎九山)

1) 교종-교학(經典) 연구를 중시-5교

①열반종(涅槃宗)-고려승 보덕(普德)-전북 완주 경복사(景福寺)

②계율종(戒律宗)-자장(慈藏,590-658)-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③법성종(法性宗)-원효대사(元曉大師)-경주 분황사(芬皇寺)

④화엄종(華嚴宗)-의상(義湘,625-702)-경북영주부석사(浮石寺), 전남 구례화엄사(華嚴寺)

⑤법상종(法相宗)-진표(眞表,718-762)-전북 김제 금산사(金山寺)

 

2) 선종-참선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6대제자육조 혜능-9산문

①실상(實相)산문-남원 실상사-흥척국사

②가지(迦智)산문-장흥 보림사-도의국사

③사굴(사崛)산문-강릉 굴산사-범일국사

④동리(桐裡)산문-곡성 태안사-혜철국사-도선국사

⑤성주(聖住)산문-보령 성주사-무염국사

⑥사자(師子)산문-영월 흥녕사-도윤국사

⑦희양(曦陽)산문-문경 봉암사-도헌국사

⑧봉림(鳳林)산문-창원 봉림사-현욱국사-제자 심희

⑨수미(須彌)산문-황해도 해주 광조사-이엄국사

 

☆ 참고 : 통일신라∼고려초기-5교9산

          고려중기∼조선초기-5교 양종(조계종,천태종)

          조선세종(7년,1424년)-선교양종-선종(서울 봉은사),교종(남양주 봉선사)

 

11. 총림(叢林)이란? : 부처님의 경전을 배우는 강원(講院), 계율을 배우는 율원(律院),

                       참선 수행하는 선원(禪院)이 모두 갖추어진 불교의 종합수도원- 6대 총림

       ①가야총림- 합천 해인사 ②영축총림- 양산 통도사 ③덕숭총림- 예산 수덕사

       ④조계총림- 순천 송광사 ⑤고불총림- 장성 백양사 ⑥태고총림- 순천 선암사

 

12. 삼보(三寶)사찰이란? : 깨달은 사람인 부처(佛寶),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불경(法寶),

     부처를 따르는 제자인 승려(僧寶)를 모두 갖춰진 사찰.-선원, 강원, 율원을 갖추고 있음.

 

①불보사찰(佛寶寺刹)-양산통도사-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가 있음.

   (대웅전에 부처님이 없고 밖의 진신사리탑이 보이는 곳을 유리로 만들어 두고 적멸보궁이라 한다)

 

②법보사찰(法寶寺刹)-합천해인사-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을 봉안.

 

③승보사찰(僧寶寺刹)-순천송광사-지눌을 비롯한 16국사가 연이어 배출 된 곳.

 

13. 탑(塔)-부처님 사리봉안-석가모니의 신골을 봉안-석가모니의 분총(墳塚)-범어로‘스투파’

① 목탑-우리나라, 일본 탑의 시원(始原)

    황룡사지9층탑, 보은 법주사의 팔상전(국보55호,5층), 화순 쌍봉사 대웅전

 

② 전탑(塼塔)-벽돌로 만든 탑 - 안동신세동7층전탑(국보16호), 동부동5층전탑(보물56호),

    조탑동5층전탑(보물57호), 여주신륵사다층전탑(보물226호)

 

③ 모전석탑(模塼石塔)-벽돌모양으로 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쌓은 탑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30호), 제천 장락리 7층 모전석탑(보물459호)

 

④석탑-현재 1,300여기 중 대부분이 석탑,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경으로 추정, 화강암 사용.

   백제에서 시작-익산 미륵사지9층석탑,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

 

백제탑은 목탑을 모방한 석탑이라면, 신라탑의 특징은 모전석탑임.

 

14. 부도(浮屠)- 일반스님들의 사리와 유골을 안치한 구조물

①팔각 원당형 :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초까지 유행

②석종(石鐘)형 : 고려후기

③복발(覆鉢)형 : 조선시대-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모양.

 

-끝-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싶다."


저자 소노 아야코는 1931년 생이며,이 저자는 나이 40세가 되던해 부터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들을 메모형식으로 기록하여 계로록(戒老錄)이라는 책을 출간 하여 일본에서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발췌한내용을보고 

1.남이 '주는 것','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이러한 자세는 유아의 상징이고 나이들어서는 노년의 상징이다.

  남이 해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인이라고 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노인이든 젊은이든 철두철미하게 자립해야 한다.

2.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단념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는 점차로 좁아지게 되는데 이것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3.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버스에서 당연히 자리를 양보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자립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4.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오히려 가정안에서 배려,위로의 말이 필요하다.

5.나의 생애를 극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 인생이야 말로 드라마로 쓸만하다고 떠벌이고 다니고 자서전을

   출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판한 책이 과연 국회도서관이나 공립도서관에 보관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6.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더 엄격해져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귀찮아도 많이 걷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7.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외로움은 노인에게는 공통의 운명이자 최대의 고통일 것이다.

  매일 함께 놀아  주거나 말동무를 해 줄 사람을 늘 곁에 둘 수는 없다.

  목표를 설정해서 노후에 즐거움을 주는 방법을 스스로 찿아야 한다.


8.마음에도 없는 말을 거짓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됐어"라고 사양하면 젊은 세대는 주지 않는다,

   "나도 먹고싶은데 하나씩 돌아가니?"라고 말해야 한다.

9.같은 연배끼리 사귀는 것이 노후를 충실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노인에 있어서 정말로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는 상대는 노인 뿐이다.

10.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얻고 싶으면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11.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나이가 들면 친구도 한사람 한사람 줄어든다.

     아무도 없어도 어느날 낯선 동네를 혼자서 산책할 수 있는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12.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천박한 생각이다.

     돈은 노후에 중요하지만 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세상을 너무 황량하고 냉정하게 만든다.

13.노인들은 어떠한 일에도 감사의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훈훈한 노후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중의 하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사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란 없다.


14.노인들은 새로운 기계의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혀야 한다.

   노화의 정도를 명확히 측정해 주는 지표이다.

15.노인들은 몸가짐과 차림새를 단정히 해야 한다.

   체력이 떨어지고 건강이 약화되면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자세가 흐트려 진다.


16.노인들은 매일 적당한 운동을 일과로 해야 한다.몸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17.여행을 많이 할 수록 좋다.여행지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어디서 죽든 마찬가지이다.

     고향에서 죽는다해서 무엇이 좋은가.

     자필의 화장승낙서만 휴대하고 다니면 된다.

18.관혼상제,병문안등의 외출은 일정 시기부터 결례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부터 기도하는 것이다.

19.재미있는 인생을 보내었으므로 나는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심리적 결재를 해 둔다.

20.유언장 등은 편안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 둔다.

   사후에 유산을 둘러싸고 남은 가족들이 다투는 것보다 비참한 일은 없다.


21.병이 정말로 낫지 않는 경우는 오직 한번 있을 뿐이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지만 죽는 것은 한 번 뿐인 것이고 대부분의 병은 낫는다.


22.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 들인다.자연스레 주어진 늙음의 모습에 저항할 필요는 없다.

23.혈육 이외에 끝까지 돌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식이나 부부와 언쟁할 때 "이 집에서 나가"라고 말하지 마라

24.날마다 보살펴 주는 타인에게 항상 감사해 해야 한다.

25.죽는 날까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26.행복한 일생도 불행한 일생도 일장춘몽이다.

27.종교에 대해 마음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28.노년의 가장 멋진 일은 사람들과의 화해이다

장충단공원(奬忠壇公園)의 기막힌 역사(歷史)

 


안개낀 장충단공원/배호(1967)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달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지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배경음악 배호 노래>: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동영상을 보려면 Play▷클릭, 멈추려면 stop □클릭
  아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watch?v=PS1wyCWu1o0  <=요걸 클릭


           奬忠壇  ( 장충단 )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살해된 지 5년 뒤인 1900년 9월, 고종은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장충단을 꾸며 사전(祠殿)과 부속건물을 건립,

을미사변 때 순사한 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처음에는 을미사변 때 전사한 시위대장 홍계훈(洪啓薰),

 영관(領官) 염도희(廉道希)·이경호(李璟鎬)를 주신으로

 제향하고 대관(隊官) 김홍제(金鴻濟)·이학승(李學承)·

이종구(李鍾九) 등 장병들을 배향하여 제사지냈다.

 

그러나 ‘창선(彰善)·표충(表忠)의 일이 어찌 군인에게만 한할 것이랴.’는

육군법원장(陸軍法院長)백성기(白性基)의 제청에 의해

다음 해부터 을미사변 때 순국한 궁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을 비롯,

임오군란· 갑신정변 당시에 순의(殉義), 사절(死節)한 문신들도 추가, 

문무의 많은 열사들이 장충단제향신위(奬忠壇祭享神位)에 포함되었다.

 

당시 이 같은 항일 ·배일(排日)의 인물들을 장충단에 제향한 일은

장병들을 크게 감격 고무시켰으며 일제의 횡포가 극심함에 따라

일반의 장충단에 대한 경모심도 더욱 커졌다.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전후하여 애창된한양가(漢陽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어 그러한 일면을 말하여 준다.

 

"남산 밑에 지은 장충단 저 집 
나라 위해 몸바친 신령 뫼시네/
태산 같은 의리에 
목숨 보기를 터럭같이 하도다/
장한 그분네."

 

제사를 지낼 때에는 군악을 연주하고 군인들이조총(弔銃)을 쏘았다.

그러나 1910년 8월 장충단은일제에 의해 폐사되고 말았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이 곳을 장충단공원으로 이름하여,  벚꽃을 심고 공원시설을

설치하였으며, 상해사변(上海事變) 당시 일본군인 결사대로 전사한 육탄삼용사의동상과

이토(伊藤博文)의 보리사(菩提寺)인박문사(博文寺)를 건립하였다.

 

광복 후 육탄삼용사의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되었다.

6·25전쟁으로 장충단 사전과 부속 건물은 손되었으나,

장충단비(奬忠壇碑: 서울특별 지방유형문화재 제1호)는 남아 있다.

 

이 비는 원래 영빈관 내에 있었는데,

1969년 지금의 수표교(水標橋: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제18호) 서편으로 옮겼다.

 

비의 ‘奬忠壇(장충단)’ 세 글자는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쓴 글씨이며,

뒷면에는 민영환(閔泳煥)이 쓴 143자의  찬문(撰文)이 새겨져 있다.


정부수립 후 장충단공원 경내에는 여러 공원시설이 들어섰다.
장충단은 지금의 신라호텔내의 영빈관자리가
 유력하고  

그 남쪽의 타워호텔에 이르는 터는 南小營으로

 대한제국육군의 병영으로 군의 주둔지였으며, 

 서쪽으로는 국립극장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였다.

 


                     

  

 


 


 

                                       

  

 


 

 

 

 

 

 

                                                        

 

 

 

 

가객(歌客) 배 호

1967년 3월 장충동 녹음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한 가수가 힘겹게 녹음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신장염 투병 중이었다. 
한 소절 부르고는 의자에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한 소절 부르고... 

한 시간 여 만에 힘겨운 녹음을 마치고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녹음실을 빠져나간 그 사람. 가수 배호다. 
이 날 녹음된 곡은 <돌아가는 삼각지>

  

196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기로 기존의 남인수 등 전통방식의 트로트에서부터

패티김, 최희준 등의 스탠다드 팝에 기반을 둔 노래들이공존하고 있었다.

배호는 전통과 현대 음악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그 자신만의

창법으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배호 창법의 바탕에는 나름의 음악적 배경이 있었다.


배호의 외삼촌인 김광수, 김광빈은 KBS와 MBC악단장을 역임하였다. 

이들은 서울음대 교수로 재직했던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었고,

그들에게 음악수업을 받은 배호는 그 자신이드러머이면서 12인조 악단을 이끌던

밴드마스터였던 것이다.

그의 창법은충실한 음악수업과 드러머의 정확한 리듬감을 바탕으로 창조된 것이다.

  

배호가 <돌아가는 삼각지>로 공전의히트를 기록한 것은 1967년. 

그러나 배호는 1966년 이미 당시로는 불치의 병이었던 신장염으로투병 중이었다. 

1971년 그가 사망하기까지 그가 취입한 곡은 무려 200여곡, 

동료의 부축을 받아야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그가 항상 하던 말은

 “죽어도 무대에서 죽겠다”였다.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 속에서도 무대에올라 노래했던 그의 가수혼을 담는다.

 
죽은 지 35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인의 애창가요

 다수가 그의 노래이고 300여개가 넘는

팬클럽이 사이버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낸 가짜 배호가

 떠돌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했다가 사라지는 지금, 
사후 35년인 지금에도 배호의 노래는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왜 그를 떠나보내지 않는 것일까?

 

29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가수 배호.

 (1971년 11월 7일 타계) 그러나 그의 노래는

44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다. 
이제 낡은 LP디스크 한 장이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고 오래도록 참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 목소리에 담긴

가객의 회한과 가락에 실린 그 시절의

자화상, 그리고 그에게 소리 없이 빚져온

우리 노래의 역사까지...

 

가수 배호는 60년대 후반 이미자, 최희준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다.

당시 배호는 독특한 창법, 중절모와 안경을 쓴 특이한 외모로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71년 11월 7일 신장염으로 사망한 후 44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다. 

2000년에는대중가수 최초로 그의 이름을 딴 행정도로가 용산 삼각지에 생겼으며,

2003년에는 정부에서 옥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