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 03-폼페이,에르콜라노,카세르타+티볼리

   여행일자: 2014년 11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물망초(Non ti scorda di me 나를 잊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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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망초(Non ti scorda di me 나를 잊지 마오)
    
화산재로 덮여 있던 고대 도시 폼페이
      관련 링크:  http://www.comune.pompei.na.it/ 
      위키 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D%8F%BC%ED%8E%98%EC%9D% B4

베수비오 화산에 걸린 구름이 화산 연기로 연상되었다. – 폼페이 Forum(광장)에서 -

 

서기 79년 8 월24일 베수비오 화산(Vesuvio 영:베수비우스 Vesuvius)의 폭발로 폼페이(Pompei)는 ‘화산재’에 묻혀 버렸다. 여기서 ‘화산재’의 정확한 표현은 ‘ 화산쇄설물’이 맞지만 일반인들이 많이 쓰는 ‘화산재’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화산쇄설물( 火山碎屑物)’이란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용암이나 기존 산에 있던 암석 부스러기(바위 조각)들이 분출되어 땅에 떨어진 것을 말하는데, 크기에 따라 화산암괴(크기 32mm이상), 화산력(火山礫 크기 4-32mm 화산 자갈), 4mm 이하는 화산재(火山災 화산 가루)라 하는 데 특히 0.25mm 이하인 것을 화산진(火山塵 화산 먼지)이라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의 내용을 보다 알기 쉽게 수정함.)

  
당시 폼페이는 잘 나가던 항구 도시였다. 그런데 먹고 춤추고 노래하던 삶의 터전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하루아침에 천지 재앙이 덮친 것이었다. 엎드려 꼬꾸라진 채 묻혀 죽거나 연인과 껴안은 채, 아이를 끌어안고 죽은 엄마 등 비참한 현장은 박제가 되어버린 듯 그 당시 시각에 정지되어 버렸다.

 
꽃을 집는 여인 Flora -폼페이 벽화

              
                화산 분출물에 묻혀 있던 사람의 형태를 석고로 떴다.
폼페이를 상징하는 붉은 색 바탕의 벽화

 

      화산 폭발이 멈추었을 때 폼페이는 화산재 등 화산에서 흘러나온 물질 더미가 6~7m 두께로 도시 곳곳을 뒤덮으면서 일종의 진흙 용암으로 굳어졌다. 폼페이의 유적은 16세기말에 라치비타라고 알려진 언덕 밑에 터널을 팠던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한다. 폼페이에서 벌어졌던 화산 참사의 목격담은 대(大)플리니우스의 조카 소(小)플리니우스가 타키투스에게 미네눔의 로마 함대 사령관이었던 대(大)플리니우스의 죽음에 대해서 묻고 있는 2통의 서신에 생생하게 기록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에드워드 조지 불워 리턴 소설(1934년)과 同名(동명)의 영화와 TV 드라마가 있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폼페이의 유적

폼페이의 유적은 로마시대의 광장(Forum)과 공회당, 바실리카(Basilica), 신전(神殿), 원형극장(Arena), 공중목욕탕 등의 공공건물뿐만 아니라, 귀족과 서민들의 집, 사창가, 시장 등이 그대로 발굴되었다. 건물들에 장식된 조각, 모자이크나 벽화가 당시 사회상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훌륭하여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람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 같다.

폼페이를 둘러보면 공회당, 재판소, 신전. 목욕탕, 여관, 유곽(여인의 집), 시장, 공정 거래소, 원형극장 등  공공시설 등이 있고 빵 가게, 곡물 가게, 주점 등 상가들이 길을 따라 도열하고 있다. 마차가 다니던 도로는 밤중에도 길을 알아볼 수 있게 길바닥에 야광 돌을 박았고, 비가 와도 발이 젖지 않도록 징검다리 모양의 도로 건널목을 만들어 두었다. 상점 앞에는 아마도 해를 가리기 위해 차일(遮日) 천막을 쳤을 것이며, 공중화장실이나 급수(공동수도)시설을 설치한 것을 보면 당시의 폼페이의 도시 기반 시설은 오늘날과 비교해 보아도 잘 정비되어 있었고 당시 사람들의 지혜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토관으로 만들어진 배수구:
   오물이 도로로 그냥 버려진다.
 
도로의 징검다리-비가 오더라도 발이 안 젖게...
 
곡물의 부피를 측정하기 위한 계량기(計量器)

 

폼페이는 무역항이라 다른 나라에서 오는 이방인도 많이 드나들었다 한다. 항구에는 여관, 유곽(여인의 집), 요릿집(식당)이 있기 마련이다. 식당 대문 옆에는 숟갈과 포크, 칼이 그려진 표시가 있어 글씨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방인에게 간판 구실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매춘부의 집 방안에는 각종 성행위 모습을 붙여 두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꾀 쓸모가 있었으리라.

 

공기는 최고의 단열재 / 전염병(역병)의 원인이 된 하수 시설

목욕탕에는 엷은 판자 형태의 두 개의 벽을 막아 벽과 벽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어 단열 효과를 얻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천정은 응결된 물이 사람 머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고안한 주름을 붙였다. 목욕탕 벽과 천정, 창문을 보니 당시 사람들의 과학적이고 슬기로운 지혜가 느껴졌다. 그러나 배수시설은 되어 있었지만 집에서 길가 쪽으로 배수관이 노출되어 있어 오물들이 길 바닥으로 그냥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배수 처리 시설의 미비점 탓에 전염병이나 페스트(흑사병)에 취약했을 것이다. 또한 급수 파이프는 납으로 되어 있었기에 납중독의 발생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수비오(Vesuvio) 화산 바로 아래 마을 에르콜라노(Ercolano, Herculaneum)

       홈페이지 : http://www.comune.ercolano.na.it/erc/internet/home ,

       위키 백과: 에르콜라노 

주위 지대보다 낮아 화산재에 그대로 묻혀버린 에르콜라노

 

나폴리와 폼페이 중간 쯤 나폴리에서 8km 떨어진 바닷가(나폴리 만)에 있는 에르콜라노는 베수비오(Vesuvio) 화산 바로 아랫마을로, 폼페이 최후의 날에 화산재에 묻힌 마을이다. 폼페이보다 규모가 작은 마을이라 공공건물들은 적지만 화산재에 묻힌 유적이 폼페이보다 온전히 보전되어 있어 당시 살았던 귀족이나 서민들의 삶의 흔적을 더 잘 볼 수 있다. 에르콜라노와 폼페이의 유적 중 모자이크와 조각 등 훌륭하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나 훼손되기 쉬운 작품들은 나폴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에르콜라노 한 저택을 장식하고 있는 생생한 벽화(上)

 

에르콜라노 한 저택을 장식하고 있는 멋진 타일(下)

 

이탈리아의 베르사이유 ‘카세르타 궁전’

      관련 링크: http://www.comune.caserta.it/     관련 위키 백과 링크: 카세르타 궁전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 카세르타州의 州都(주도) 카세르타에 카세르타 궁전을 보러 갔다. 이 궁전  건설은 1752년 나폴리의 찰스 7세 때 루이기 반비텔리가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완성은 왕의 세 번째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페르디난드 4세 때 완성되었다.

이탈리아의 베르사이유로 불리는 광활한 ‘카세르타’의 정원

 

카세르타 궁전은 나폴리의 부르봉 왕가를 위해 지은 궁전으로, 18세기에 지어진 궁전 중 전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궁전이며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이 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미를 살려 백조와 같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사령부로 사용되었고, 1945년 4월 29일 독일군의 항복 서명을 받은 장소이다.

‘카세르타 궁전’의 왕궁 예배당

 

이 궁전은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서 나부 왕국의 아미달라 여왕이 머물던 궁전이었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II’ 의 배경과 ‘미션 임파서블 3’에서 람보르기니 광장으로도 쓰였다 한다.

출처:위키 백과: 카세르타 궁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1k1035a

호화로운 예배당 겸 극장을 비롯하여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의 내부를 구경하는 데 수 시간이 걸리고, 카세르타 궁전 정원도 상당히 넓기 때문에(120 ha), 공원처럼 잘 정돈된 숲과 분수, 인공 폭포 등을 걸어서 다 돌아보려면 반나절이상 걸린다.

-[남부 이탈리아 주마 간산기]는 여기까지로 일단 마무리 한다. -

*** 로마로 돌아오기 전 로마 옆에 있는 티볼리(Tivoli)를 들렀다. ***

로마 황제의 별장이 있는 티볼리(Tivoli)  위키 백과: 티볼리

        관련 링크: www.tibursuperbum.it , 티볼리( http://www.comune.tivoli.rm.it/intro/ )

로마 북동쪽 30km 언덕에 있는 티볼리는 지정학(地政學)적으로 로마에서 동쪽으로  가는 길

목이라 선사시대부터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렸다. 티볼리는 원래 독립적인 도시국가였으며

로마의 경쟁 도시이기도 했으나 BC 4세기경 로마 세력권에 들어갔다. 로마 공화정 후기와

로마 제국 초기에 여름 휴양지로 각광을 받아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등 당시 부유한 로

마인들이 티볼리 근처에 별장과 소규모 신전을 지었다.

     티볼리는 건축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유적지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1 세기경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별장(Via di Villa Adriana)은 어느 황제의 별장보다도 웅장하고

화려하다. 이 별장은 티볼리의 언덕 아래의 평원에 118년경 짓기 시작하여 10년이나 걸려

완공되었는데 궁전, 도서관, 손님 숙소, 공공 목욕탕, 2개의 극장이 있다. 많은 벽돌 파편들

이 널려져 있고, (로마식) 콘크리트 구조의 잔해도 남아 있어 고대 로마의 건축 도감을 보는

듯하다.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이자 이탈리아 정원의 진수(眞髓) 빌라 데스테(Villa d'Este)

        관련 링크: 티볼리의 빌라데스테 [Villa d'Este, Tivoli] -두산 백과  

이탈리아 정원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빌라 데스테(Vila d'Este)

 

백 개의 분수와 계단식 정원이 있는 빌라 데스테(Vila d'Este)는 이탈리아 정원예술의 걸작

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별장(Via di Villa Adriana)이 광활하고 남성적이라면, 빌라

데스테는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하다. 추기경이었던 에스테 家의 이폴리토 2세(Ippolito II)가 교

황에 선출되지 못한 슬픔을 달래고자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라 하는데, 1550년에 축조하기 

시작한 빌라 데스테의 정원은 추기경이 죽음을 맞이하는 1572년에야 마무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빌라 데스테는 로마시대 수력학(水力學)을 활용하여 만

든 수 백 개의 분수와 수많은 계단식 정원이 있는데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별장

으로 르네상스 문화의 진수요, 이탈리아 정원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되며 유럽 정원 발전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다.  출처: 티볼리의 빌라데스테 [Villa d'Este, Tivoli] -두산 백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이탈리아 북부, 남부, 시칠리아를 돌아보았다

서양 문명의 뿌리는 기독교와 헬레니즘(Hellenism) 문화인데, 헬레니즘 문화는 그리스 문화

와 Orient문화가 융합한 것으로 그리스 문화를 로마 문화로 연결시켜 주는 교량적인 역할을

한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로마 시대의 자취(고대 문명)뿐만 아니라, 중세의 기독교

문화와 르네상스 이후의 문화의 자취와 한 단면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시칠리아에서는 그

리스 문화의 흔적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의 흔적도 느낄 수 있었다.

 

말(馬)대신 자동차를 타고 봄에는 이탈리아 북부를, 늦가을에는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를 훑어보았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가톨릭 성지 순례의 느낌이었고,

이탈리아의 남부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보다 가슴에 남는다.

 

우리가 여행지를 결정했던 방법은... 

가고 싶은 곳과 보고 싶은 곳을 정한 방법은 일단 방문할 주요 도시를 결정한 다음 그 도시

나 해당 도시 주변에서 관광 명소나 유적을 찾아보았다. 주로 관광 책자에 소개된 내용을

참고하였지만 가능하면 UNESCO 세계 유산은 꼭 찾아보도록 하였다. UNESCO 세계 유산에

는 특징에 따라 UNESCO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 유산으로 나뉜다.

 

UNESCO 세계 유산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지방 특유의 자랑거리나 문화유산, 자연 풍광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 등은 각 지방의 관광 안내소(Info)나 관광 소개서에 소개되어 있다. 더구

나 관련 정보들은 첨단 정보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으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도 있다. 다만, 관련 홈페이지의 내용(개장, 마감시간 등)이 제때 update 안된 곳도 있었다.

           

여행(관광)하는 것은 아무래도 낮 시간에 해야 되는데 이탈리아는 위도가 높아 봄에는 큰 

영향이 없었지만 늦가을이나 겨울에는 일조 시간이 짧아 관광지의 개방 시간이 짧다. 이처

럼 계절에 따른 여행 준비나 여행 계획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별도의 꼭지로 얘기해 볼 것

이다.

 

- 이탈리아 북부, 남부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 () -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여행기를 볼 수 있다.

        北部 이탈리아(1)-피사,루까,시에나,산지미냐노

        北部 이탈리아(2)-오르비에또,몬테피아스코네,비테르보,아시시

        北部 이탈리아(3)-피렌체,볼로냐,라벤나

        北部 이탈리아(4)-페라라,베로나,베르가모,꼬모 호수,친퀘테레

 

        南部 이탈리아(01)-뽀쭈올리,바이아, 나폴리, 폼페이

        南部 이탈리아(02)-소렌토,아말피,라벨로,카프리

        南部 이탈리아(03)-폼페이,에르콜라노,카세르타+티볼리

 

        시칠리아(1)- 팔레르모,몬레알레

        시칠리아(2)-아그리젠토-콘코르디아 신전/시라쿠사-고대그리스 극장

        시칠리아(3)-타오르미나,카타니아,Villa Romana del Casale  

이탈리아 남부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 02-소렌토,아말피,라벨로,카프리

여행일자: 2014년 11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나폴리 만, 아말피 해변, 카프리 섬  

소렌토(Sorrento)   참조링크: 위키백과   http://en.wikipedia.org/wiki/Sorrento

 

현지인들은 ‘쑤리엔토’라 발음하는 소렌토는 해안 절벽 위에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나폴리

에서 소렌토를 자동차로 가려면, 해변을 따라 꼬불꼬불 돌아가야 하고 절벽 산길을 가야 하

기 때문에 자동차보다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빌린 자동차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므로 자동차를 이용하였다.

 

크지 않은 도시인 소렌토는 나폴리 만을 끼고 나폴리와 마주하며 있으며 카프리로 가는 가

장 가까운 항구이자 아말피 해변(Amalfi Coast)이 시작되는 도시다. 소렌토의 가로수는 레

몬 나무인데 열매의 노란색이 적갈색 집 지붕과 파란 하늘, 바다색과 잘 대비된다. 구시가

중심인 타소광장(Piazza Tasso),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 ‘큰 항구’), 마리나 피콜라

(Marina Piccola ‘작은 항구’),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Convento di San Francesco), 테라노

바 박물관(Museo Correale di Terranova) 등의 볼거리가 있다.  

 

소렌토 Marina Piccola(작은 항구) 옆 언덕의 비토리아 호텔에서는 카루소의 사연이...  

 

20세기 최고의 성악가 카루소와 비토리아 호텔(Excelsior Vittoria Hotel)

소렌토行 배가 떠나는 Marina Piccola(‘작은 항구’)옆 언덕에는 엑셀시어 비토리아 호텔

(Excelsior Vittoria Hotel)이 있다. 이 호텔은 170 여 년 전에 지어진 유서 깊은 호텔로 지

해 바다 너머로 베수비오 화산이 보이는 등 전망이 좋다. 20세기 최고의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는 48세에 건강악화로 나폴리와 소렌토에서 요양하다

생을 마감했는데 지금도 그가 머물던 방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가 못다 부른 노래는 후일

루치오 달라, 루아노 파파로티가 그를 기리며 깐소네(이탈리아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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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라 소렌토로  ♩♪♬

많은 이가 ‘소렌토’하면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깐소네를 떠올릴 것이다. 1902년 9월 수

상이던차나르델리가 소렌토에 와서 머물고 있었는데, 원래 이 노래는 소렌토 우체국을 세

워 달라는 청원 노래였다 한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고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벗이여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시인 겸 화가였던 잠바티스타 쿠르티스가 가사를 쓰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그의 동생

에르네스토 쿠르티스가 곡을 썼다. 소렌토의 호텔 임페리얼 트라몬타노의 안내판에는

잠바티스타 쿠르티스(Giambattista de Curtis, 1860~1926)가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호텔에서 작곡했다고 쓰여 있으며, 소렌토 역 가까이에 잠바티스타의 흉상이 있고 맞은

에는 ‘돌아오라 소렌토로’ 노래 비석이 있다.  

 

일생동안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아말피 해안(Costiera Amalfitana 영: Amalfi Coast)
                                         관련 링크: http://www.amalficoastsite.com/

아말피 해변(Amalfi coast) 드라이브 길은 바다와 접한 절벽 위로 난 길을 달린다. 

 

불과 100 여 년 전만 하더라도 아말피 해안의 작은 도시를 잇는 도로는 없었으며, 각 소도시의

사람들은 배를 통해서만 왕래를 했다. 그때까지 이 지역은 각자 고립된 그들만의 문화를 만

들며 살았다. 현재의 아말피 해안도로는 무솔리니 시절에 만들기 시작했는데, 해발 1000m 가

넘는 산이 바다(지중해)에 닿는 해안 절벽에 건설됐다.

아말피 해변(Amalfi Coast)은 소렌토(Sorrento)-포지타노(Positano)-아말피(Amalfi)-라벨로

(Ravello)-살레르노(Salerno)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

코스 중 하나인 아말피 해변(Amalfi Coast) 도로는 해발 200~300m 산기슭에 해변을 따라 길이

꾸불꾸불 나있는데, 해변 길 중간 중간 주차할 곳(parking bay)을 만들어 두어 바다 풍경과 절벽,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드라이브 길은 산기슭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거나 급경사

 커브나 180도를 회전하기도 하고, 터널을 지나가기도 간다. 예쁜 담과 꽃이 핀 길을 지나가기도

하며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갈 정도의 좁은 마을 골목길도 지나간다. 해변 가까운 어떤 곳에서는

길이 바다에 닿을 듯하여 바로 옆 파도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이 아말피 해변(Amalfi Coast)

도로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 한번은 드라이브 해보싶어 하는 도로이다.

아말피 해변(Amalfi Coast) 도로를 가다 보면 포지타노 마을이 나타나는데, 마을 언덕 위쪽의

도로에서 내려다보면 파란 바다 옆에 아이들 장난감같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포지타노는 마을 크기도 작고 주차하기도 어려워, 마을 둘러보는 것은 생략하고 보다 큰 도시인

아말피로 달려갔다.  

 

한 때 강력한 해양 왕국이었던 아말피(Amalfi)  링크: http://www.comune.amalfi.sa.it/ 

아말피의 바닷가 풍경  

 

나폴리 남동쪽에 있는 아말피 해변(Amalfi Coast)의 주요 도시인 아말피는 6세기 중엽 비잔틴

人들의 지배를 받았지만, 9세기엔 이탈리아 최초의 해양 고대국가 중 하나로서 성장하였다.

10-11세기에 아말피를 중심으로 한 아말피 公爵領(공작령)이 있었는데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

으로 동방과의 무역을 활발히 하였고 피사·제노바·베네치아·가에타 등과 경쟁하기도 했다.

그 후 살레르노 공국의 지배를 받다가 1131년에 시칠리아의 루제로 2세에게 정복·합병당하고

1135, 1137년에는 피사(Pisa)인들에게 약탈당한 후 아말피는 급격히 쇠퇴해갔다.

그러나 이 시의 해양법이었던 '타볼라 아말피타나(아말피의 법전)'는 1570년까지 지중해에

서 통용되었다. 이 도시에 우뚝 솟아 있는 산안드레아 대성당(9세기에 축조 후 여러 차례 복구)

에는 종루(1180~1276)와 1065년 경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해온 웅장한 靑銅門(청동문)이 있다.

(내용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요약)  

 

예수의 첫 번째 제자 안드레를 모신 산안드레아 대성당(Duomo Cattedralle St. Andrea)

성 안드레를 모신 아말피의 두오모(Cattedralle St. Andrea)

아말피의 두오모인 산안드레아 성당은 예수의 첫 번째 제자 성 안드레의 유해가 중앙 제단

에 모셔져 있다.  참조링크: 성 안드레아 관련 링크(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5%88%EB%93%9C%EB%A0%88%EC%95%84

 

본당은 여러 시기에 지어진 결과 아랍-노르만 로마네스크식 양식이 섞여 있는데 1891년에

만든 정면 파사드는 대리석으로 만든 줄무늬가 인상적이며, 로마네스크식 종탑은 100년에

걸쳐 완성했다.

 

아말피로 들어가기 직전의 이 터널을 지나가면 새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50곳’ 중 1위로 뽑힌 지상 낙원 아말피(Amalfi)

아말피 해안을 드라이브하다 보면 아말피를 들어가기 직전 두 대의 차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이 터널을 지나면 가파른 해안 절벽에 다닥다닥 붙은 아기자기한 집과 역사 깊은 교회가 있는 아말피가 나오는 데 버스 종점(terminal)은 바닷가에 바로 붙어 있다.

 

바다 반대편 계곡 경사지에는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인 레몬이 심어져 있는데 이 레몬으로 만든 레몬첼로, 레몬 샤벳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아말피의 온화한 기후와 옥빛 지중해를 품은 해안 경치와 아름다운 도자기 공예품은 사람들을 아말피로 불러들이고 있으며,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관광지의 하나이다. 아말피는 199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 지상낙원 첫 번째로 뽑힌 곳이기도 하다.
 

아말피 두오모가 있는 상점 골목을 지나 산속으로 올라가면 다른 마을로 이어 지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한가한 숲길을 올라가 작은 산(언덕)에 있는 폰테네(Phontene)마을을 거쳐 라벨로(Ravello)로 가거나,  해안 쪽인 아트라니(Atrani)로 내려올 수도 있다. 계곡과 산중턱에는  레몬 밭과 포도밭들이 있고  바다 쪽은 Amalfi해안과 지중해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라벨로에서 시작하는 트레킹(trekking) 코스가 내려오며 걷는 거라 다소 쉬울 것이다.  

아말피 해안의 또 다른 지상낙원 라벨로(Ravello) 

관련 링크: http://www.comune.ravello.sa.it/ 
              http://www.ravellosense.com
ticket 관련 링크: http://www.ravellofestival.com/

이상향(理想鄕 Utopia)을 가리키는 무릉도원(武陵桃源)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중국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곳으로 지상낙원(地上樂園 Paradise), 이상향(理想鄕 Utopia)를 의미하기도 한다.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진 太元年間(태원연간 376~395)에 무릉(지금의 후난 성 타오위안 현)에 살던 어느 어부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중 복사꽃이 피어 있는 수풀 속으로 잘못 들어갔다. 숲의 끝에 이르러 강물의 수원이 되는 깊은 동굴을 발견했는데 그 동굴을 빠져나오니 평화롭고 아름다운 별천지가 펼쳐졌다. 그곳의 사람들은 진대의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왔는데 그때 이후 수백 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노자의 이상국가론) 사상에 기초하여 고대의 자연주의적 유토피아를 묘사한 것으로, 당대 전기소설의 원조가 되었다. 출처: 브리태니커

 

Ravello Festival 이  쓰인  라벨로 마을 입구의 터널

 

라벨로(Ravello)를 들어가려면 입구에 Ravello Festival 이라 써진 터널을 지나가게 된다. 아말피를 들어갈 때도 이런 터널이 있었다. 이 두 도시는 많은 이들이 지상낙원(Paradise)이라 칭송하는 곳인데 우연히도 터널을 지나야 다른 풍경(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마치 도화원기에 나오듯 이상향을 찾아가려면 어떤 비밀의 입구나 통로인 동굴이나 터널을 지나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라벨로 소개 영상 링크 1 : http://vimeo.com/8153084
라벨로 소개 영상 링크 2 : http://vimeo.com/113718092

라벨로(Ravello)는 아말피에서 북쪽으로 6.8Km 떨어진 산 중턱에 있는데, 산으로 올라가다  Ravello  Festival 이라 쓰인 터널을 지나면 아담한 광장과 두오모(Duomo di Ravello)가 나온다. 이 라벨로 두오모(성당)은 1086년에 세웠다는데 13세기에 만든 3층 종탑이 붙어있다. 성당 건물의 파사드(전면부)는 퍽 소박하고 단순한 모양이지만 12세기에 만든 靑銅門에는 54개의 양각된 부조가 있다. 이 성당에서는 매년 7월 27일 작은 유리병에 담겨 있던 聖人(성인)의 굳어진 피가 성당의 대리석 제단 위로 흐르면 피가 물이 되어 맑아지는 기적이 나타난다고 한다.


빌라 루폴로 (Villa Rufolo) 관련 링크: http://en.wikipedia.org/wiki/Villa_Rufolo

라벨로 중앙 광장 한쪽 끝에 있는 城門(성문)으로 들어가면 빌라 루폴로 (Villa Rufolo)와 탑이 나온다. 루폴로 빌라의 건물들은 군데군데 이끼가 끼어 있어 건물의 역사를 말해 준다. 중세시대 초기에는 아말피 해안 일대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권의 영향을 받았는데, 뾰족한 아치와 독특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이슬람 건축 양식의 특징을 보여 주는 건물들이 있다.

 

루폴로 빌라의 바닷가 쪽에 있는 전망 좋은 절벽 위에서는 지중해와 아말피 해안이 내려다보이고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불어온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 절벽 위 정원에서는 매년 바그너 음악 축제인 Ravello Music Festival 이 열린다. 바그너는 이곳에서 그의 최후의 오페라인 '파르지팔'을 작곡하였고, 작곡 외에도 일련의 종교와 예술에 대한 수필을 썼다.  

 

침부로네(Villa Cimbrone)

관련 링크: http://www.villacimbrone.com/en/home.php , Villa Cimbrone(위키백과)

 

비밀의 花園(화원) 입구인 듯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빌라 침부로네 입구 

 

라벨로 마을 서쪽으로 구불거리고 경사진 골목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발아래에 펼쳐진 마을과 푸른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침부로네에 닿는다. 침부로네 입구에 이르자 빨간 담쟁이 잎을 매단 담장과 정원이 있는 굽은 골목길이 나오는데, 이 villa(대저택) 속에는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는 듯 호기심과 궁금증을 일으키게 한다.   

아말피 해안이 잘 조망되는 침부로네 별장의 바닷가 쪽 테라스

 

침부로네는 11세기부터 집이 있었고 17세기에는 수도원이었다가 20세기 초에 영국 남작이 사서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한다. 아름다운 정원 속에 조각 작품이 많이 설치되어 있으며, 흉상 조각들이 사열하는 바닷가 쪽 절벽 위에서는 아말피 해안을 비롯한 지중해 바다 경치와 아랫마을을 조망하기에 더 없이 좋다. 세계적인 명사들이 많이 찾아와서 어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하는데, 조용히 쉬거나 마음의 안식을 취하기 좋은 villa인 것 같다.  

지중해의 푸른 보석 카프리 섬(Capri) 관련 링크: www.capri.net 

카프리의 서쪽 마을인 아나카프리에서 내려다 본 카프리의 큰 항구(Marina Grande) 

 

카프리는 맑고 푸른 지중해의 보석 같은 섬으로 파란 바다와 산과 절벽 풍경이 아름답다.
로마 황제의 별장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부호들의 별장들이 많이 있다. 카프리까지 배(페리)로는 
나폴리(1시간), 소렌토(40분), 포지타노(50분) 걸리는데, 계절에 따라 운행 시간과 운행 간격, 요금 
차이가 있고, 날씨에 따라 운항을 안할 수도 있으니 카프리 승선 계획은 여유 있게 잡아야 할 것이다.

카프리에는 자동차를 싣고 갈 수도 있지만, 운임도 상당하거니와 카프리의 도로가 협소하고 급경사가

 많아 차를 안 가지고 가는 게 좋다. 후니쿨라(톱니 열차)와 카프리 마을 사이를 오가는 마을버스

통합권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카프리 큰 마을들(동쪽-카프리, 서쪽-아나카프리)은 벼랑 위에 있는데 예쁘고 아기자기한

건물과 성당도 볼만하다. 동쪽의 카프리의 황제의 별장과 서쪽의 아나카프리에서는 솔라로 산

(Monte Solaro)를 꼭 가봐야 한다. 동굴 속 바다에서 물속에 비치는 푸른 햇빛을 구경하는

이색 체험 장소인 푸른동굴(Grotta Azzurra)도 인기이다.   

 

몬테 솔라로(Mt. Solaro) 정상에서 바라본 동쪽 마을 카프리와 파라글리오니 섬(I. Faraglioni) 

 

카프리 서쪽 마을 아나카프리에서 이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 몬테 솔라로(Monte Solaro

589M)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밭 밑은 낭떠러지(계곡)이고 안전장치라곤 무릎

위로 철컥하며 채워준 쇠막대기 하나뿐이었다. 리프트는 흔들흔들 거리며 올라가는데 바람

이 불어와 더 흔들거렸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엉덩이 쪽에 힘을 더 주며 얌전히 앉아

있어야 했는데, 사람이 맨 몸으로 줄에 매달려 하늘로 끌려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케이블카

처럼 사람 타는 곳에 바깥을 막아 주는 창이 있는 상자 형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리프트는 

들어올리는(lift) 장치일뿐이었다. 고소 공포증 환자는 이 리프트는 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몬테

솔라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카프리의 풍광과 시원한 바람은 잊지 못할 것 같다.         

 

파도에 자갈이 씻기며 나는 소리가 들리는 Piccola 해변과 멀리 보이는  파라글리오니 섬(I. Faraglioni)

 

풍랑이 심한 날씨라 푸른 동굴을 못간 대신 카프리의 남쪽 해변의 작은 마을인 Piccola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카프리의 아이콘인 남동쪽의 섬 파라글리오니(I. Faraglioni)의 조망도

좋을 뿐 아니라, 해변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고, 밀려오는 파도에 쓸리는 자갈과

모래의 사각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계속)

 

 이탈리아 남부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 01  -뽀쭈올리,바이아, 나폴리, 폼페이

  여행일자: 2014년 11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Santa Lucia- Tino Rossi 산타 루치아" 파바로티 노래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watch?v=S7WtpYrM1dU<=요걸 클릭

 



 

 

자유 여행 스케줄을 짤 때는 융통성이 필요해

이태리 남부 일정:뽀쭈올리-나폴리-소렌토-아말피-라벨로-카프리-폼페이-에르꼴라노-카세레타-(티볼리)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기 위한 우리의 계획은 시칠리아에서 나폴리로 비행기로 이동한 후,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 아말피 해변, 살레르노 등을 살펴볼 요량이었다. 또한 나폴

리 서쪽에 있는 이스키아(Ischia) 섬을 관광하기 위해 뽀쭈올리(pozzuoli)에 있는 숙소를 잡

았다.


그러나 우기인 11월은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안 좋은 경우가 많고 비수기라 섬으로 가는 배

운항 횟수가 적었다. Ischia 섬을 제대로 보려면 하루 온종일이 걸리고 본토로 당일 귀환하

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Ischia 섬 여행을 포기했다. 대신 우리는 이런 날씨 변수를 고려하여

소렌토에서 이틀 밤을 묵으며 카프리 행 승선 기회를 더 많이 갖기로 했다. 그 결과 첫 날

은 날씨가 나빠 카프리로 가는 배가 결항되었고, 다음 날엔 배가 운행되어 카프리 섬을 갈

수 있었다. 이처럼 여행 계획을 짤 때는 이런 저런 변수를 고려하여 융통성이 있도록 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캄파니아 주(州都: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 관광지의 핵심지역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한다는 것은 캄파니아 주를 여행하는 것 

이탈리아 전체 링크 : http://www.italyguides.it/en/

캄파니아 주 링크(교통, 날씨 정보) :  http://www.unicocampania.it/index.php?lang=en

아르테카드 정보 : www.artecard.it

 

이탈리아 남쪽에 있는 캄파니아 州(Regione Campania 州都:나폴리)는 지중해(티레니아 해)

에 면한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전라북도에 해당되는데,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약 580만 명, 면적:13,590 km2)이며 이탈리아 내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다. 주요 관광지로는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 아말피 해변, 살레르노가 포함되며,

州都(주도)는 나폴리이다.

 

아르테카드 Arte Card

이 캄파니아 지방을 구경할 때는 이 지역 전체에서 통용되는 교통 및 관광지 입장료 통합

카드를 이용하는 게 좋다. 교통 card와 관광지 입장권을 통합한 Arte card나 교통 통합권

(Unico Costiera, Unico Campania 티켓)을 팔기도 하는데, 유명 관광지 매표소나 주요

도시(예: 나폴리)의 관광 안내소 등에서 판다.

 

나폴리 아르테카드 : 나폴리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 + 명소 3곳 입장 무료,

                          나머지 명소 입장료 10-50% 할인. 3일 권 21유로

캄파니아 아르테카드 : 나폴리의 모든 교통수단 + 캄파니아 지방의 모든 버스와 私鐵(사철)

                             무료 이용 + 명소 2곳 입장 무료, 나머지 명소 입장료 10-50%.

                             3일 권  32유로 / 7일 권 34유로

 

관광지 무료입장권 사용 요령은 입장료가 비싼 곳(폼페이, 에르꼴라노, 카세르타 왕궁 등)

입장할 때 무료 card를 우선 이용한다.

          

캄파니아 지역은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로마시기에 캄파니아 펠릭스(Campania

felix ‘비옥한 캄파니아’)라고 불렸다. 이 시기를 거치며 두 문화가 혼합, 절충되어 그레코로

만(Greco-Roman 그리스 로마식)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요리, 음악, 건축 등에서 두

문화의 자취가 풍부하며, 폼페이, 헤르쿨라네움(에르꼴라노), 파에스툼, 벨리아 같은 고대 지

역에서 잘 볼 수 있다. 또한 캄파니아 지역의 다양하고 독특한 자연 풍경(아말피 해안, 베수

비오 화산, 카프리 섬)은 이 지역의 고고학 유적(폼페이, 에르꼴라노)과 더불어 관광 산업의

핵심을 이룬다.

 

뽀쭈올리(Pozzuoli) 

나폴리 서쪽 뽀쭈올리만(나폴리 만의 위쪽 끝부분)에 있는 뽀쭈올리는 BC 529년경 그리스

이주민들이 세웠다. BC 194년부터 로마인들이 지배하여 이곳을 ‘푸테올리’라 불렀으며 당시

에는 항구시설 때문에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자 큰 도시였다. 로마 제국이 몰락하면서 쇠퇴

하였으며 화산 폭발과 지진활동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이 나폴리로 이주했다. 잘 보존된 원

형극장(1세기)과 목욕탕, 회반죽 및 그림으로 장식한 지하 납골당 등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엄마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가의 손(바이아 城 고고학 박물관에서)

뽀쭈올리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바이아(Baia)에 있는 바이아 城(Castello di Baia)은 고

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dei Campi Flegrei Nel Castello Aragonese)으로 이용하

고 있는데 그리스, 로마시대 유물뿐만 아니라 아라곤 왕국의 문화를 보존 전시하고 있다.

고대 시대 조각과, 자기 공예품, 모자이크, 유리제품, 석관, 건물의 잔재(테라스, 기둥) 등

다양한 유물들이 있었지만 엄마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가의 손을 보자 가슴이 뭉클해졌

다. 관련 링크:(http://www.napolike.it/museo-archeologico-dei-campi-flegrei-baia-napoli)

 

나폴리 민요 산타 루치아(Santa Lucia)의 고향 나폴리(Napoli)

나폴리 관련 링크:  나폴리 관광청: http://www.inaples.it/eng/home.asp

                         나폴리 기타: http://www.napoli.com/english/blog27.php#oct1

                         나폴리 구글 지도: http://goo.gl/maps/RTZX  

 

나폴리 만은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의 남서쪽 지중해(티레니아 해)에 면해 있는데, 너비가  

16㎞이며 카페미세노 곶에서 캄파넬라포인트 곶까지 남동쪽으로 32㎞ 길이로 펼쳐져 있다.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은 활화산인 베수비오 산을 비롯하여 화산으로 인해 생긴

가파른 언덕들에 둘러싸여 있어 그 경관이 한층 돋보인다.(출처: 위키 백과)

 

나폴리 항구가 중심이며 만을 따라 뽀쭈올리, 토레아눈치아타, 카스텔람 마레 디 스타비아,

소렌토 등의 해안도시와 고대도시 폼페이, 헤르쿨라네움이 해안선을 따라 있다. 만의 입구

에는 이스키아·프로치다·카프리 섬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여 파도가 잔잔하다 한다.

[산타 루치아]는 바로 이곳의 정경을 노래한 깐소네(이태리 노래)이다.

 

“베디 나폴리 에 포이 무오리 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를 보고 죽으라.”는 말이 있

다. 세계 3대 미항(美港)중 하나인 나폴리는 지중해(산타 루치아)와 베수비오 화산과 주변

의 아름다운 풍경 등 천혜의 관광자원 외에도 고대 유적과 중세 건축물, 나폴리 민요와 음

식이 있는 세계적인 여행지이다.   

 

외벽이 벌집 모양인 제수 누오보 교회(Chiesa di Gesu Nuovo) 입구의 조각

나폴리의 두오모 산 제나로 성당(Naples Cathedral Duomo di San Gennaro),  제수 누오

보 교회(Chiesa di Gesu Nuovo), 산타 치아라 교회(Chiesa di Santa Chiara) 등 교회와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갈레리아 움베르토(Galleria UmbertoⅠ-움베르토 1세가 1890

년에 세운 웅장한 십자가형 아케이드), 플레비쉬토 광장(Piazza del Plebiscito), 카스텔 델

오보(Castel Dell' Ovo 오보 城), 산 엘모 城(Castel San Elmo) 등이 주요 볼거리이다.  

 

돌과 유리 타일로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 -폼페이 유적

 

폼페이 유적과 에르꼴라노 유적의 진품을 볼 수 있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선, 그리스, 로마 유물뿐만 아니라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나

에르꼴라노의 유적을 눈앞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특이 폼페이나 에르꼴라노의 타일 모자이

크는 옷감으로 수를 놓은 듯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가장 큰 전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폼

페이 유적의 하이라이트인 ‘Darius in Battle 모자이크’ 는  알렉산더와 다리우스의 대결을

보여주는 데 그 생생함이 벽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   

 

가장 큰 전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알렉산더와 다리우스의 대결 모자이크 - 폼페이 유적

한편 폼페이 유적 중 창녀 집에 걸려 있던 적나라하고 다양한 체위로 묘사된 성행위 모자이

크와 변태 성행위(동물과 성행위, 동성애)를 묘사한 모자이크나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고,

남성 성기 숭배 사상을 보여 주는 남성 성기 조각이나 포르노 수준의 작품들이 있으므로 어

학생들과 관람하게 될 보호자는 이런 점도 미리 감안해 둬야 할 것이다.  

 

동물과의 변태 성행위를 묘사한 작품

 

주차난과 난폭 운전자가 많은 나폴리 

구도심(舊都心)의 스파카나폴리( Spaccanapoli)는 단테 광장에서 중앙역까지의 좁은 골목길

인데 집과 집 사이의 빨랫줄에 빨래가 걸려 있고 이웃집이 건너 다 보일 정도이다. 나폴리

의 구 도심은 주차난도 심하고, 난폭 운전자와 오토바이가 많아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운전

하기엔 힘든 곳이었다. 해변 쪽이 주차할 공간이 많긴 한데, 나폴리 두오모나 박물관이 있

는 구도심까지는 꽤 걸어 올라가야 한다.   

 

주차난과 난폭 운전과 경적 소리가 요란한 나폴리 시내

 

피자의 원조 나폴리 피자

1830년 나폴리 지역에 최초의 피자 가게가 문을 열었는데, 초기엔 상하기 직전의 생선으로

만들었다 한다. ‘나폴레타나’라고 부르는 피자에는 안초비(anchovy 멸칫과의 바닷물고기를

절여서 발효시킨 젓갈)가 통째로 서너 마리 토핑으로 올라가는 데 보통 짠 게 아니다. 또한

피자의 토핑도 짜게 양념하기 때문에 덜 짜게 먹으려면 감자나 토마토 토핑을 주문할 때

“뽀꾸 디 쌀레 (Un poco di sale 소금 조금만)"를 부탁해야 한다.

다.

 

 

 



버섯 토핑 피자(좌)와 3색의 마르게리타 피자(우)
 


카페 감브리누스의 커피 볼케이노(베수비오 산을 상징)


해물(문어)에는 새콤한 레몬을 쳐야 제 맛이 난다.

 

나폴리에서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어 봐야 하는데 원조는 Brandi라는 피자 가게이다. 18

89년 프랑스 사보이 왕국의 마르게리타 여왕이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나폴리 피자 요리사

돈 라파엘 에스폰트가 초록색 바질ㆍ흰색 모차렐라 치즈ㆍ붉은 토마토를 이용해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피자를 구워 여왕에게 대접했다. 이때 여왕이 크게 기뻐했으며 이후 이 피

자는 여왕의 이름을 따 ‘마르게리타 피자’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마르게리따 피자의 원조인 피쩨리아 브란디(Pizzeria Brandi) 가게 말고도 피쩨리아 디 마테

오(Pizzeria di Matteo),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피자를 먹던

피쩨리아 다 미켈레(Pizzeria da Michele)가 유명하다. 이들 맛집들은 참나무 장작과 화덕을

이용해 피자를 굽는데, 좌석 예약하지 않은 경우 자리에 앉으려면 한두 시간은 줄서서 기다

려야하며, take out하는 줄도 30~40분은 기다려야 한다.

 

나폴리에 왔다면 Gran Caffe Gambrinus(그란 카페 감브리누스)에서 커피 한잔을 안 마실

수 없다. 이 곳 역시 교황이나 각국의 정상들이 방문했다는 사진들이 걸려 있고, 메인 홀

입구에는 고급 사교장임을 은근히 자랑하는 듯이 프랑스 말을 할 줄 아는 Boy(웨이터)가

있다는 안내판이 붙여져 있다. 이곳의 자랑이 과장이 아님은 커피 한잔을 먹어 보면 알 수

있다. 한 잔의 커피가 나의 여행 피로회복제(요즘 말로 ‘힐링’)가 되었다!!! 이탈리아 여행

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어딜 가나 맛좋은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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