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룩스 3국 돌아보기]의 글 링크로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음-

 

네덜란드(01)암스테르담,에이설호,볼렌담,에담,잔세스칸스,킨더다이크

네덜란드(02-),고흐,고흐미술관,크뢸러뮐러미술관,렘브란트,루벤스,반다이크,베르메르,데 스틸

네덜란드(3)-네델란드 음식과축제,맥주, 도개교,/헤이그.가우다(하우다),바를러  

 

(벨기에 01)-과거 플랑드르 지역으로 불렸던 브뤼헤(브뤼허),안트베르펜

(벨기에 02)-브뤼셀,루뱅,

(벨기에 03)-헨트,리에주+ Rayonnant(레요낭 양식),Flamboyant(화염식 양식)

 

룩셈부르크,에슈쉬르쉬르(Esch-sur-Sure),비앙덴성,에히터나흐 Echternach

추가로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방의 두 도시 메스(Metz)와 낭시(Nancy)

 

 

네덜란드(3)-네델란드 음식과축제,맥주, 도개교,/헤이그.가우다(하우다),바를러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네덜란드,헤이그.가우다(하우다)치즈,바를러,도개교,Dutch pay(더치패이),

Holland Festival,튤립축제,게이축제,홍합찜-물르,

청어,프리트,하이네켄,바바리안맥주,그롤쉬맥주

 

(배경 영상,음악)  'Time' · Nancy Sinatra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or 동영상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JQloFxqs6qA<=요걸 클릭

 

 

나의 베네룩스 루트(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나 의 베네룩스 3국 루트

의 베네룩스 3국 루트: (네덜란드)암스테르담-헤이그(덴하흐)-하우다(gouda)-킨더다이크(풍차공원)-바를로-   

(벨기에)안트베르펜-헨트(Gent)-브뤼허(Brugge)-브뤼셀-(룩셈부르크)에슈 쉬르 쉬르

 

네덜란드의 행정수도 헤이그(네:덴하흐 Den Haag) 

      홈피:http://www.denhaag.nl/home.htm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둘러보고, 헤이그(네: Den Haag 덴하흐)를 보러 갔다. 참고

로 네덜란드 단어엔 aa처럼 같은 a를 겹쳐 쓰는 경우가 많고, g 는 [h] , ’ㅎ‘ 발음이다.

 

네덜란드 행정의 중심지 헤이그는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데,  헤

이그(영어:The Hague, 네덜란드어: 덴하흐 Den Haag)는 ‘백작가의 사유지’라는 뜻이다. 네

덜란드의 정부 부서와 대법원, 네덜란드에 주재하는 각국 공관이 헤이그에 있으며, 국제사

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화학무기금지기구 같은 여러 유엔 기구가 소재하고 있다.

 

헤이그 밀사사건(헤이그 密使事件)  내용 참조: 헤이그특사사건 [─特使事件]

고종(高宗)의 밀사(密使) 이준 열사의 ‘헤이그 밀사 사건’이 있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 이

곳 헤이그에 있다. 당시 이준열사가 묶었던 용 호텔(de Jong)을 한 네덜란드 교민이 사들

여 [이준열사 기념관]으로 열었다. 참고 링크: 문화재청,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개최

 

헤이그 특사사건(特使事件) 또는 헤이그 密使사건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파견했던 사건이다. 1907년 고종

은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소집하는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을사조약이 대한제국 황제의 뜻에 반하여 일본제국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조약임을 폭

로하고 을사조약을 파기하고자 했다. 

 

한국 대표들은 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이위종이 유창한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실력으로 대한제국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하는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

었다. '조선을 위해 호소한다!'는 제목의 연설 내용은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

었으나 대한제국의 처지를 불쌍히 여길 뿐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후 이준은 헤이

그 특사활동 20일 만에 머물던 호텔(de Jong 용 호텔)에서 사망하는데 이준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7월 20일 양위식을 강행하였다. 그리고 이어 순종이 즉위하고 4일 후 한일신협약이 체결되

었다.

 

 
헤이그에 있는 이준열사 기념관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 사법 재판소(國際司法裁判所, 국제사법재판소)

영어: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ICJ), 프랑스어: Cour internationale de Justice(CIJ))는

상설 국제 법원으로서 유엔헌장에 근거하여 1945년에 설립된 유엔 자체의 사법 기관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Vredespaleis)에 소재한다. 분쟁 당사국들의 분쟁을 국제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유엔 총회 또는 안전보장이사회는 법적 문제에 대해 재판소에

유권 해석을 내려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하우다 치즈’ 의 고향 하우다(Gouda)  위키백과: 하우다

속칭 ‘고다(Gouda 네덜란드 발음:하우다) 치즈(링크:하우다 (치즈) - Wikipedia)의 고향 하우다(Gouda)는

암스테르담 남쪽 50Km에 있는 작은 도시로 1272년 도시권이 주어졌으며 하우다 치즈, 파이프 담배,

15세기 시청으로 유명하다. 

 

우다 치즈는 네덜란드의 남부 하우다(Gouda)지방이 유명하여 그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지금은

우유의 카세인으로 만든 노란 치즈를 흔히 ‘하우다 치즈’라고 부른다. 치즈 모양은 동그란 쿠션(방석)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국경이 퍼즐 조각처럼 얽힌 바를러    위키백과 참조: 바를러 (Baarle)

 

 
퍼즐 조각 같은 바를러. 짙은 갈색이 벨기에 땅이다
 
+로 표시된 국경선과 NL(네)과 B(벨)로 국가 표시

 

바를러는 네덜란드 남쪽 국경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국경이 찢어진

조각처럼 얽혀 있다. 13세기에 브라반트의 공작이 브레다(Breda)에 땅을 줄 때 비옥한 곳을

군데군데 자신의 것으로 남겨 두고 죽었는데, 1403년에 브레다의 남작이 이곳 나사우의 백

작이 되면서 그의 영지는 바를러나사우, 브라반트 쪽의 땅은 바를러헤르토흐로 불리게 되었

다. 그 결과 바를러는 국경이 이쪽저쪽으로 복잡하게 갈라지게 되었다.

 

네덜란드 쪽을 바를러나사우(Baarle-Nassau),벨기에 쪽을 바를러헤르토흐(Baarle-Hertog)

라 한다. 바를러헤르토흐는 존더레이헌(Zondereigen)이라 불리는 ‘본토’와 네덜란드 쪽 땅

에 둘러싸인 20개의 위요지(圍繞地:일정한 토지를 둘러싸는 둘레의 땅)로 나뉘어 있다. 벨

기에 땅 안에 네덜란드 땅이 있는데, 가장 큰 땅(영역) 안에 여섯 개, 두 번째로 큰 땅(영

역) 안에 한 개의 네덜란드 위요지가 있다.

 

이곳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에 걸쳐 있는 집도 있는데, 그럴 땐 대문을 기준으로 국

적이 결정된다. 심지어 안방과 건넌방이 소속 국가가 다른 경우도 있으며, 가족들의 국적이

다른 경우도 있다 한다. 하지만 국가가 다르고 세금 내는 곳이 달라도 이들은 평화롭게 살

아 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운하와 배, 자전거와 풍차, 튤립 꽃밭과 넓은 목축지

의 가축일 것이다. 목축지의 경계는 대개 물(운하)이므로 따로 철망을 치거나 담을 쌓지는

않았다. 운하에는 사람과 자동차도 건너가야 하므로 특수하게 설계된 도개교(跳開橋)를 많

이 볼 수 있다. 작은 도개교(跳開橋)는 사람과 자전거만 건너지만, 자동차가 지나가는 큰 규

모의 도개교에는 철도 건널목처럼 신호등과 함께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물건 올리고 내

리는 도르래가 설치된 전원주택에는 잘 가꿔진 장미꽃이나 예쁜 정원을 볼 수 있다.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하는 도개교((跳開橋)
물건 오르내리는 도르래가 설치된 주택
자동차가 건너는 도개교((跳開橋)에는 차단기가 ...

 

    Dutch에 대해      참조: 네덜란드어 (Netherlandic language)

네덜란드 언어를 영어로 더치(Dutch)라 쓰는데 중세엔 'Dietsc', 'Duutsc'였다.

독일어 'Deutsch'도 같은 것으로, 종교와 학문의 언어인 라틴어와 비교해서 단순한 ‘

민중의 언어'라는 뜻을 지녔다. 공식 명칭은 'Nederlands' 또는 'Netherlandic'이

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홀란트어(Hollands)라고도 한다.

 

Dutch coffee(더치커피)      (내용 참조 위키백과: 커피 )

더치커피(Dutch coffee 네덜란드풍의 커피)란 말은 일본에서 마케팅을 위해 만든 말이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 ‘더치커피'라 하면 알아듣지 못하며 Drip coffee(드립 커피)와 대조되

는 단어인 Cold brew(콜드 브류)로 표기하고 있다. 

 

더치커피(dutch coffee)의 유래는 대항해(大航海) 시절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동남아 지역

에서 커피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장기간의 항해 중에 커피를 먹기 위해서 고안했다고 전

해지지만, 관련된 문헌은 전혀 없으며 사실상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다.

 

다른 커피 추출법과 달리 찬물로 추출하기 때문에 카페인이 적거나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 커피보다 카페인이 많을 수도 있다. 카페인의 특성상 70도 이상에서 추출이

활발히 일어나지만 그 이하 온도에서도 추출이 일어나기 때문에 장시간 추출되는 더치커피

의 특성상 많은 량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디카페인 커피(Decaffeine

coffee)로 더치커피(Dutch coffee)를 추천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지식이다.

 

Dutch pay(더치패이)

비용(費用)을 각자 부담하거나 돈 계산을 할 때 자기 몫을 각자 계산하는 방식을 더치패이

(Dutch pay)라고 하나, 콩글리시며 Dutch treat / go Dutch 등이 올바른 영어 표현이다.

더치패이의 우리말은 ‘추렴’이다. 원래 네덜란드와 식민지를 놓고 경쟁했던 영국인들이 네

덜란드인들의 접대 문화를 낮추어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출처: http://kids.hankooki.com/lpage/edu/201304/kd20130415155937118750.htm

 

네덜란드의 축제

Holland Festival(http://www.hollandfestival.nl/nl/)은 국제적 페스티발로 1947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국제 공연 예술을 이끌고 있는 축제로 음악, 오페라, 댄스, 연극 관련

로그램이 6월 내내 열린다. 여왕 탄신일(Koninginnedag 4월30일)도 큰 행사로 손꼽히는

데, 이때에는 온 시가지가 오렌지 빛깔로 바뀌며, 사람들은 집에서 만든 물건이나 골동품

내와서 팔거나,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떠들썩하게 지낸다.

 

매년 3월에 열리는 큐켄호프(Keukenhof) 튤립축제(www.keukenhof.nl) 역시 이름난 축제다.

또한 1975년부터 5년마다 5일 동안 개최되는 유럽 최대의 해상축제인 암스테르담 항해

제(Sail Amsterdam Event)는 암스테르담 설립 7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세

계 각국에서 온 수백 척의 배가 참가한다.

 

게이프라이드(Gay Pride)는 세계적인 게이축제인데, 이름그대로 게이를 중심으로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의 참가 외에도, 개방적인 나라답게 더 많은 일반인(이성애자)들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이때에는 암스테르담 시내가 무지갯빛으로 출렁인다. 사육제(사순

절 직전의 축제)같은 종교 행사는 가톨릭 세력이 큰 남쪽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다.

 

네덜란드의 음식

홍합 찜(네:mosselen 모썰른)
비린내 나는 청어(Haring)
약방의 감초 같은 프리트(frite)

 

네덜란드의 음식 중에서 홍합찜(네덜란드선 mosselen 모썰른 / 벨기에선 moule 물르) 요리

는 먹을 만하지만 청어요리는 비린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팬케이크와 프리트(frite 감자튀

김), 맥주는 꼭 먹어 봐야 한다.

 

네덜란드 팬케이크는 크레페(Crêpe)와 유사한데, 밀가루 반죽을 넓적하게 부친 후 그 위에

설탕, 잼, 시럽 등을 올리고 뜨거운 생강 즙을 뿌리기도 한다. 포퍼처스(Poffertjes)는 작은

크기의 팬케이크를 바삭해질 때까지 구운 다음 설탕이나 시럽을 뿌려 먹는 스낵으로 암스테

르담의 팬케이크 베이커리(Pancake Bakery http://www.pancake.nl)가 유명하다.

 

무엇보다 네덜란드 음식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프리트(friet 감자튀

김)인데, 이것만 전문으로 파는 곳도 많다. 이 프리트(감자튀김)는 그냥 먹기도 하고 마요네

즈에 찍어 먹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맥주 안주로 많이 먹는다.

 

네덜란드의 맥주

 
맥주의 왕 ‘하이네켄’
바바리아 맥주
초록 숲에선 나온 맥주 ‘그롤쉬’

 

네덜란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는 4개의 대형 양조장(하이네켄, 바바리아, 그롤쉬, 인

베브)에서 생산되며, 네덜란드의 맥주 시장의 50%를 하이네켄이 차지하고 나머지 세 회사

가 각각 15%씩 점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맥주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유럽인 등 세계 사람들

에게 사랑받고 있다. 실제 네덜란드 맥주가 독일 맥주보다 유럽 시장을 더 장악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맥주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하이네켄(www.heineken.com/kr)맥주는

1873 년 ‘하이네켄 맥주회사’가 설립되어 약 140년의 역사를 지녔다. 투명하고 시원스런 녹색

에 톡 쏘는 맛과 거칠고 쌉쌀한 느낌이 라벨의 붉은 별 만큼이나 상큼하다. 암스테르담에는

과거 하이네켄 맥주 공장이었던 건물을 하이네켄 체험관으로 개방하여 관광들을 불러 모으

고 있다.

 

네덜란드의 맥주 회사 바바리아(Bavaria)는 1719년 창립 이래 3백년간 맥주를 생산해 오고

있는 유럽 내에서 가장 큰 맥주 제조 회사인데, 1978년에 무알콜 맥주를 처음 만들었다. 바

바리아는 독일 남동부 지방 바이에른(Bayern)의 영어 이름이다.

 

'초록 숲서 나온 술'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롤쉬(Grolsch) 맥주

       내용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10708550589051

‘그롤쉬 Grolle(그롤)’은 초록 나무란 의미로 1615년 피터 꾸페이(Peter Cuyper)가 맥주 공

장을 설립한 이래 400년 전통을 가진 맥주로, 하이네켄과 함께 네덜란드의 대표 맥주이다.

재활용 가능한 코르크 마개가 독특하고 병에 새겨진 맥주의 원료인 맥아 그림과 grolsch라

는 돋을새김이 이채롭다.

 

그롤쉬맥주는 야채맥주로 알려진 환경 친화적 맥주로 무려 36종류나 된다. 그롤쉬는 청량

하면서도 깊이 있는 씁쓸한 맛을 내는데, 이 독특한 맛과 향의 비결은 맥아, 호프, 물 등 엄

선된 최상의 천연원료와 함께 사용되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홉과 숙성 시간에 기인한다.

 

그롤쉬는 세계 각지에서 열린 유수의 주류 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았을 만큼 최상의 성분과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샴페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윙탑(Swingtop)' 뚜껑을 장착하고 있

어, 보는 재미도 있지만 병을 열 때 '뻥∼'하는 소리가 나서 듣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그 외의 술로는 네덜란드 Gin(진)인 Bols Genever(제네버)는 쥬니퍼베리(Juniper berry 노

간주나무)로 만든다. 제네버는 Gin의 원류로 네덜란드에서 생산되어 영국으로 넘어가 Gin

으로 변형되었다. 머리가 돌 정도로 독한 술로 이걸 한잔 한 뒤 맥주를 마신다.

 

네덜란드 전통주로는 설탕과 달걀로 만든 달걀술 에드보카트(advocaat)와 약초로 만든 베

렌버그(네: 베이렌뷔르흐 Beerenburg ‘맛이 쓰다는 뜻‘)가 있다.

 

유럽(네덜란드)에서 숙박, 주차하기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호텔비뿐만 아니라 음식비, 주차료, 자동차 기름값 등 물가가 무척 비

쌌다.  암스테르담이나 헤이그 같은 경우는 호텔비, 시내 주차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자동차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신경 써야할 것 중의 하나가 ‘어디서 먹고 자는가’와 ‘차를 어

디에다 주차해야 되는가‘라는 것이다. 유적지나 볼거리가 몰려 있는 구도시의 도심(Center

/ 이탈리아:Centro)의 경우 호텔비도 비싸고, 자동차 차고 사용료를 추가로 내야하는 경우

가 많지만, 도시 근교의 호텔은 방값도 싸거니와 따로 차고 주차료도 받지 않는다.

 

구도시(old city)에는 주차할 곳이 많지 않으며, 심지어 이탈리아의 경우 도심통행제한

ZTL(Zona Traffico Limitato)이 있다. 공공주차장이 사설주차장보다 비교적 주차 가격이 싸

므로 유적지 근처의 공공 주차장이나 노상 주차장을 이용하게 된다. 참고로 대부분의 유럽

에서는 일요일이나 국가 공휴일의 공공 주차장의 주차료는 무료이며, 밤 시간 주차도 무료

이다. 다만, 야외 무료주차장의 방범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묵었던 네덜란드 농장&amp;nbsp;&amp;nbsp;
이 농장에서는 여러 사람이 자동차 캠핑 중이었다

 

우리는 도시 외곽에 호텔을 잡아서 숙박비와 주차비를 아꼈고, 시내에 나가서 어디에 주차

할 것인가에 대해선 미리 연구(고민)가 필요했다. 내비게이션이 있다 해도 외지인이 편하게

몇 시간씩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내비게이션에서 바로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 가족 같은 경우는 보다 저렴한 공공 주차장이나 노상 주차장을 주로 이용하였는데, 아

래의 방법도 주차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우선 해당 도시의 홈페이지에서 주차관련 내용을 알아보거나, 먼저 다녀간 이의 경험담

   을 인터넷으로 조사(surfing 서핑)하였다.

2. http://www.interparking.com/ , http://www.q-park.com/ 같은 유럽의 주차 체인 회사

  의 웹페이지를 통해 방문하려는 도시의 주차 관련 정보(장소, 비용)를 알아본다. 유럽 도

  시 주차비는 무조건 비쌀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유적지나 볼거리에 가까우면서도 생각보

  다 싼 대형 주차장들이 이런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다. 암스테르담, 브뤼헤, 브뤼셀, 룩셈

  부르크를 구경할 때 이런 주차장을 미리 검색해 보았다. 하루 종일 주차해도 10유로 미

  만의 주차비를 받는 곳도 있다.

 

(계속) 

-참고- 이전 네란드 여행기 바로가기.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여행기로 연결됨.

 

  (네덜01)-운하와 풍차,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 돌아보기 02) - 네덜란드의 화가들

  

  네덜란드(3)-네델란드 음식과축제,맥주, 도개교,/헤이그.가우다(하우다),바를러

 

네덜란드(2)-네덜란드의 화가들-고흐,고흐미술관,크뢸러뮐러미술관,렘브란트,루벤스,반다이크,베르메르,데 스틸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 Vincent" -고흐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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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스포츠 강국        

      네덜란드가 스포츠 강국인 이유는 네덜란드인들이 키(신장 身長)가 크고 체력이 강해서 일

것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타서 허벅지 근육과 다리 힘이 강해진 것도 한 요인일

테다. 자전거 대회의 인기는 축구보다 더할 정도이며, 구기 종목인 배구뿐만 아니라 겨울

스포츠인 스케이트 종목도 강하다. 운하가 얼어붙는 해에는 전국 11개 도시를 완주하는 엘

프스테덴토흐트(Elfstedentocht) 대회가 열린다. 한편 축구 실력은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

을 3번 달성한 축구 강국이지만 아직 우승한 적은 없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1988년

우승하였다. 

 

네덜란드는 미술(美術) 강국  

네덜란드의 관문 스키폴(Schipol = 스히폴) 국제공항 환승구역에는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컵과 나막신들이 있어 이 나라가 도자기의 나라임을 은근 과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공예

품으로는 델프트(Delft) 도자기와 붉은 색의 아름다운 마쿰(Makkum) 도자기를 들 수 있다.

도자기는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하였고, 17세기부터 중국 등

의 영향을 받아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네덜란드에는 국립미술관(http://www.rijksmuseum.nl/)

   반 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렘브란트 미술관(http://www.rembrandthuis.nl/en/)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4개의 큰 미술관이 있고, 개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외에도 각 시의 시립 미술관에 수많은 미술품

들을 소장하고 있어 미술 강국임을 알 수 있다.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할스, 수틴 등의 작품이 전시된 국립미술관이 17세기 미술을 보여준

다면, 반 고흐 미술관은 19세기 미술을 보여주는 미술관이다. 시립 미술관인 스테델릭 미술

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트위터: >https://twitter.com/stedelijk )은 19세기부터 21세기

까지 가장 최근의 미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네덜란드의 미술(회화) 분야에서는 17세기 초 유화 기법의 선구자 프란스 할스가 활약했고,

중엽에는 유화 기법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렘브란트 판 레인(렘브란트 판 레인)이 나타났다.

 

중산 계급이나 농민의 생활을 주로 그린 얀 스테인, 풍경화가 로이스달 등도 유명한데,  그중 

로이스달(로이스달 [Salomon van Ruysdael])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로 여겨진다.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 위키백과:  안토니 반다이크 - 위키피디아

루벤스에게 배우고 그의 조수로 있었던 반 다이크는 '플랑드르 그림'의 대표적 초상화가로

유명하며,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티치아노 · 베로네세 등 베네치아 대가의 감화를 받았다.

부드러운 구도와 아름다운 색채로 종교, 신화, 우의적인 제재도 취급하였으나 초상화가로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영국 화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1632년부터 찰스 1세

의 궁정 화가로서 죽을 때까지 2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십자가 강하>,

<찰스 1세의 초상> 등이 있다.

 

루벤스(Rubens 1577~ 1640)    참조 두산백과: 페테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십자가에서 내림(루벤스)-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성당

루벤스(Rubens)는 에스파냐의 벨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최대의 화

가로 당시 왕후, 귀족의 호화로운 취미와 현실주의를 가장 잘 표현하는 화가이다. 그의 역

량과 작풍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작으로는 1621∼25년에 제작한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왕

비의 생애를 그리스 신화와 교묘하게 연관시켜서 그려낸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바로크 회화의 진수이다.

 

반 다이크 - ‘찰스 1세의 초상’ –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Vermeer, Jan, 1632~1675)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황금시

대인 17세기를 대표하는 세 명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뛰어난 색조,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靜密感)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델프트 풍경>,

<레이스를 뜨는 여인>, <우유 따르는 여인>등이 있다.

  참고 두산백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Jan Vermeer]                           

베르메르가 고향 풍경을 그린 '델프트의 풍경'

명암 대비의 대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 ~ 1669)

    위키백과: 렘브란트 판 레인, 내용 참조: 렘브란트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인 렘브란트는 빛의 명암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한 화가로 유명하다. 제분업자의 아홉째 아들로 출생한 렘브란트는 역사화가

스바넨부르흐(Jacob Isaacsz Swanenburgh)로부터 배운 후, 암스테르담의 피테르 라스트만

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 후 출생지였던 라이덴에서 중진(重鎭) 초상화가로 인정받았고 1631

년 가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에 일약 초상화의 제일인자로 부상했다.

 

렘브란트의 걸작: 야경(夜警 야간 순찰하는 사람)-1642

 

      렘브란트의 화풍은 전기(1650 이전)에는 카라바조의 명암과 바로크적인 구도의 내면화에서

출발했으나, 후기에는 인간 심리의 심층을 조사(照射)하여 깊은 정신구조를 조형화한 신비

로운 화면이 되었다. 전기의 대표작으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다나에>, <야경(夜

警)>(1642), 후기에는 <바테시아>, <바다비아인의 모의>, <유태인의 신부>(1668~1669경)

등이 있다.

 

렘브란트는 많은 자화상 외에도 그의 데생(dessin) 작품 역시 또한 높이 평가되며 약 1300

점이 남아 있다. 데생(dessin)이란 채색을 하지 않고 주로 선으로 형태나 명암을 나타내는

회화 표현 방법이다.

 

판화에도 조예가 깊었던 렘브란트  

렘브란트는 판화(版畫)에도 조예가 깊어 판화의 에칭 기법을 개발하였고, 질적으로도 뛰어

난 작품을 전 생애에 걸쳐 300 점을 제작하여 판화가로서도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다. 에칭

(링크:에칭 [etching])이란 동판(銅版 구리판)에 긁힌 자국을 만들어 판화를 찍어 내는 기법이

다. 즉 동판에 밀랍·역청·송진의 혼합물로 된 바탕(그라운드)을 입히고 그 위를 뾰족한 도구

로 밑그림을 그린 후 동판을 부식액에 넣으면 동판에 홈이 파이고 형태가 새겨진다. 홈이

새겨진 동판에 잉크를 발라 종이를 압착시키면 판화가 만들어진다.


렘브란트의 박물관 (http://www.rembrandthuis.nl/en/)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박물관은 렘브란트가 1639년에서 1660년까지 살았던 집

으로 렘브란트의 판화 작품과 원본 에칭 전시 외에도 그의 판화 기법을 시연해 보여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생 2백90점의 판화를 제작했던 렘브란트는 15세기 네덜란드 동판화의 거장 마르틴 숀가

우어, 16세기 독일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뒤를 이어 판화를 독립된 예술장르로 격상시키

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드라이포인트 같은 기존의 판화기법에 제작과정이 간편한 부식동판

화 에칭을 접목해 선의 강약과 미묘한 명암변화를 자유자재로 다룬 그의 판화는 어둠과 빛

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대상을 부각시키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이 특징이다.

이 기법은 화면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하고 중심과 강조점만 밝게 처리하여 드라마틱한 효과

를 나타내는 기법이다. 흑백의 명암으로만 대상을 표현하는 단색판화는 이 같은 렘브란트의

특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매체였다.

 

 
렘브란트 판화, <설교하는 예수> (1643∼49)
그림 출처:
http://blog.daum.net/jinapower/13318824
렘브란트 판화, <목자들의 경배> (에칭, 1652)
그림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files/cul/cul_20061223010926_seo2222.jpg

 

렘브란트의 판화는 유독 구약·신약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은 데, 그가 묘사한 빛

이 고요하면서도 강렬해 극적인 사건들을 묘사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대

표작 <설교하는 예수>(1643∼49)는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사건들을 표현한 것으로, 손을

하늘로 향하고 설교하는 예수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두드러져 보인

다. 

 

그의 또 다른 판화 <목자들의 경배>(에칭, 드라이포인트, 1652)는 들판에서 천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오른쪽 구석에서 나오는 불빛은 호롱불이 아니라 아기 예수에게 서 나오는 신성의 광채거나

은혜의 불빛으로 풀이된다. 렘브란트는 인공의 호롱불과 은혜의 불빛을 대조시켜 그분의 신

성을 강조한다. 서성록 교수의 평이다. 내용 출처:

http://cafe.daum.net/logos/8jq/2229?q=%B7%BD%BA%EA%B6%F5%C6%AE%20%C6%C7%C8%AD%20%B8%F1%C0%DA%B5%E9%C0%C7%20%B0%E6%B9%E8&re=1

 

네덜란드의 국민 화가 빈센트 반 고흐(van Gogh) 

       내용참조: 다음백과: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D%9D%90 

 

네덜란드에 와서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그림을 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19세기에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등장하여 네덜란드의

미술계를 꽃피웠다.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고흐

는 그의 생존기간 동안에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 명성은 급속도로 커

졌다.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에 끼친 반 고흐의 영향은 막대하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과 그의 同시대인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

며, 암스테르담 남동쪽 80km에 있는 크뢸러-뮐러 박물관(krollermuller.nl/visit)도 반 고흐

그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강력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그의 수많은 걸작은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 단 10년(1880~90년) 동안 만들어냈다.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해바라기>등이  대표작이다. <베 짜는 사람들 Weavers>, <감자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안타까운 일생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였다. 고흐는 어린 시

절 형의 죽음을 보았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을 싫어하여 기숙사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16살에 (빈센트) 고흐는 삼촌 빈센트의 권유로 헤이그에 있는 구필 화랑에 근무하게 되었는

데 1873년에 그의 회사는 그를 런던으로, 다음에는 파리로 발령했다. 그즈음 그는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잉글랜드 켄트 주의 감리교학교 램스게이트에서 견습교사가 된 다음

1877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1878년에 신학교를 그만둔 그는

보리나주로 알려진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평신도 설교자가 되었지만 곧 해고 되었고,

1880년에, 빈센트는 동생 테오의 제안을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85년과 1886년 사이 겨울에 반 고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미술 학교에 등록했지만 퇴

학당했다. 이즈음 고흐는 일본화의 밝은 색채와 캔버스 공간의 사용, 그림에서 보인 선의

역할에 감탄했으며, 일본화의 단순하고 솔직한 표현 방법, 색채들을 결합하여 분위기를 표

현하는 일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 창녀나 과부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상처 받고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소용돌이와

원색의 노란색으로 표현하여,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

> 등의 걸작들을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가 남프랑스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는 1888년 2월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Arles)로 갔는데,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을 유지하면서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표현하려 했다. 1888년 크리스마스이

브에 반 고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일으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랐으며, 1889년 4월말 정

신병원에 입원하였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있는 동안, 되풀이되는 발작에 시달리고 평온한

기분과 절망적인 기분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정신병원의 정원 Garden

of the Asylum>, <삼나무 Cypresses>, <올리브 나무 Olive Trees>가 이때의 작품이다.   

 

고흐가 조카 탄생을 축하해 동생 테오에게 그려준'아몬드꽃 Almond Blossom' -1890년 작품-

아몬드꽃은 매화처럼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꽃이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

의 불화 끝에 귀를 자르고, 자발적으로 들어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랑

하는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자, 조카의 탄생을 기념하는 선물로 주려고 그린 것이다. 이른

봄에 피는 아몬드 꽃처럼 조카가 고통을 잘 극복하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자살한 해의 마지막 봄에 그려진 그림이다.

 

1890년 그는 파리 북쪽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돌아가 <옥수수밭>, <강이 흐르는 골짜기>,

<농부들의 오두막>, <교회> 등 시골마을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결국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에 세

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그가 살아 있는 동

안 팔린 작품은 데생 1점뿐이었다. 그를 무조건 믿었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활

을 유지했다. 1872년부터 테오와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은 그의 목표와 믿음, 희망과 절망,

수시로 달라지는 건강상태와 정신상태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서, 진실한 인간기록이라 할 수

있으며 독특하고 감동적인 전기(傳記) 자료이다.   

 

다음 링크들은 고흐의 그림이 소장된 곳으로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거나 다운 받을 수 있다. 

1) 반 고흐 뮤지엄 홈페이지:

    http://www.vangoghmuseum.nl/en/

2) 반 고흐 그림이 있는 사이트:

    http://www.vangoghmuseum.nl/en/search/collection

3) 크뢸러 뮐러(Kroller Muller)미술관 홈페이지: krollermuller.nl/visit

 

고흐의 그림을 많이 소장한 크뢸러 뮐러(Kroller Muller)미술관 

홈페이지: krollermuller.nl/visit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아를의 다리(跳開橋 도개교-고흐-

 

크뢸러뮐러(Kroller Muller)미술관은 암스테르담에서 남동쪽으로 80km 쯤 떨어진 호헤 벨뤼베

국립공원(De Hoge Veluwe)안에 있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네송이의 해바라기

Four Sunflowers Gone Seed>, <씨뿌리는 사람>, <밤의 카페 테라스 Terrace of a Cafe

at Night> 등 고흐 그림 90여 점이 있다. 고흐의 작품 외에도 모네, 르누와르, 세잔느, 피카

소, 몬드리안, 칸딘스키, 쿠르베, 밀레, 도미에 등 유명 작가의 작품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전개된 신조형주의(De Stijl 데 스틸-링크:더 스테일) 운동의 주요 작가인 몬드리안

(Mondrian)과 반데어레크(Van der Leck)의 작품들이 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자체도 훌륭한 건축 작품이며, 미술관 바깥의 조각공원에는 로뎅의 작

품 등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계속)

(네덜01)-운하와 풍차,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운하,풍차,풍차의종류,자전거,암스테르담,에이설호,볼렌담,에담,잔세스칸스,킨더다이크

(배경 영상,음악)  클래식기타 명곡 모음(유튜브)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youtu.be/NT87hXSPV1A  <=요걸 클릭

 

네덜란드 알아보기  [네덜란드관련 링크들]

네덜란드 정부 홈페이지 : http://www.government.nl/ ,  네덜란드관광청: www.holland.com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 네덜란드 여행 가이드 &지도 무료다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네덜란드 (네덜란드 왕국 , Netherlands) 

            위키백과: 네덜란드 [Netherlands]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네덜란드를 和蘭(화란 Holland 홀란드,홀란트)이라고도 불러왔는데 정

식 명칭은 네덜란드 왕국(네:Koninkrijk der Nederlanden = Kingdom of The Netherlands)

이다. 네덜란드(netherlands)는 '낮은 땅'이란 뜻으로, 실제 이 나라의 최고 높은 곳이 321m

이며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간척사업과 농지 개량사업이 발달하였다. 지도에서

보면 국토 곳곳이 물이 들어차 있어 지도에 구멍이 뻥뻥 뚫린 듯하다. 

국토 곳곳이 운하와 호수로 되어 있는 네덜란드의 땅

 

네덜란드의 북부 지역은 위도가 높은 곳(북위 52N)에 있지만, 북해의 난류와 편서풍의 영향

을 받는 해양성 기후로 1년 내내 온화한 편이다. 일 년 중 187일 정도 눈·비가 내리고 연간

평균 강수량은 915mm이다. 날씨가 온화하고 토양이 기름져서 원예와 낙농업이 발달하였으

며,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농, 축산물의 약 3분의 2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작은 운하와 풍차가 있는 암스테르담 근교의 목축지&nbsp;
암스테르담 근교 에담의 전형적인 네덜란드 풍경&nbsp;

 

네덜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경제공동체(EEC, 현 EC)의 창립국으로서, 제2

차 세계대전 후 선진 공업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주로 석유화학·금속·철강·수송·조선업이 발

달하였다. 북해 연안의 그로닝겐 지역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이

전에 세계를 누비던 화상(和商 화란 상인=네덜란드 상인)들이 다녔던 곳은 물론 전 세계를

무대로 교역하고 있는데, 2014년 2월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47,633 달러이다(세계13위).

 

네덜란드의 역사

켈트와 게르만인이 자리 잡고 살던 네덜란드에 로마인이 들어와 외국 지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BC 50년경인데 남부의 마스트리히트에 로마 시대의 요새 유적이 남아 있다. 이후

유럽은 베르됭 조약(843년)에 의해 서·중·동 프랑크로 나뉘게 되는데, 스헬데 강을 중심으

로 서쪽(현재의 벨기에)은 서프랑크 왕국에, 동쪽은 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10~13

세기에는 상업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홀란트 백작이 북부를 중심

으로 세력을 강화하였다.

 

14세기에 들어와서는 부르고뉴(부르군트) 공작 지배를, 15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

르크 가문의 지배를, 16세기에는 에스파냐(오늘날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이 후 네덜

란드는 종교개혁 등의 끈질긴 저항으로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내고, 1588년 공화국(국호는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으로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다.

 

네덜란드의 황금시기

1588년에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이 성립되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네덜란드는 해외 진

출의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네덜란드는 인도양과 동인도 제도의 여러 섬과 항구에서 포르

투갈을 몰아내므로써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해양을 주름잡던 대항해 시대가 막을 내리고,

네덜란드가 동방에서 상권을 거머쥐었는데 그 전진 기지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였다.

 

1602년에 설립된 동인도 회사(네덜란드)는 동인도의 여러 섬을 정복하고 이 지역의 특산품

을 강제로 재배케 하거나 향신료 등 생산품의 무역을 독점하였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남아

프리카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등지에 방대한 식민지뿐만 아니라 북미 대륙에도 뉴암

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을 건설하기까지 하였다.

 

동인도 회사란 17세기 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동양(동인도)에 대한 독점 무역권을

부여 받아 설립한 회사로, 각국의 동인도 회사는 동인도의 특산품인 후추, 커피, 사탕, 면직

물 등의 무역 독점권을 둘러싸고 경쟁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를 견제하려는 영국과의 계속

되는 전쟁에서 밀려나 세계 무역의 주도권을 영국에 빼앗기게 되었다.(출처:동인도 회사)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에도 진출하였는데, 일본에서는 나가사키에 활동 공간을 마련해 주

었으며, 네덜란드 문화를 배워 '난학'(蘭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차 대전 때 일본의 인도

네시아 침략으로 네덜란드와 사이가 안 좋았으나, 요즘은 네덜란드와 일본은 아주 친밀한

교류를 하고 있다.

 

이 네덜란드의 황금 시기에는 문화적으로도 황금기를 맞이하여, 렘브란트 판 레인, 요하네

스 페르메이르 등의 화가와 에라스무스,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도 배출하였다. 한편 에라

스무스는 로마 가톨릭 사제였지만, 《우신예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종교 개혁

자였으며,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인 루터나 츠빙글리의 사상 형성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

리된 잉글랜드 종교개혁(성공회)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 네덜란드는 1810년에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프랑스 영토가 되기도 하였지

만, 1815년 빈 회의의 결과 네덜란드 왕국이 새로이 탄생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종전과 동시

에 네덜란드 경제의 중요한 밑받침이었던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는 등 식민지들을 잃었지만,

네덜란드는 안정된 정치와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루고 세계로 진출하여 활약하는 등 상업 국

가의 위상을 떨치게 되었다.

 

한편 네덜란드와 한국과의 인연은 17세기 조선에 표류된 후 '하멜 표류기'를 써 조선을 서

양에 소개한 헨드릭 하멜과 조선 최초의 귀화 서양인인 박연(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이 있

다. 또한 구한말 고종의 밀사(密使)였던 이준 열사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 헤이그에 남

아 있다.

 

암스테르담 [Amsterdam]

      내용 출처: Daum 백과: 암스테르담 [Amsterdam] , 위키백과: 암스테르담 [Amsterdam]

운하에는 관광용 배뿐만 아니라 개인 보트도 다닌다

암스테르담은 약 1,000개의 다리로 연결된 9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 주민들이

홍수에 대비해 암스텔 강 양안에 둑을 쌓았고, 1270년에 암스텔 댐을 지었기에 암스테르담

이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네덜란드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 문

화의 중심 도시이다.

자전거의 천국 네덜란드 &ndash; 암스테르담

 

17세기에 당시 혼란했던 통화 사정을 바로잡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외환은행을 세웠는데, 그

후로 유럽 최대의 어음교환지역으로 발전했으며 그 결과 국제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에 세워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현재 주식거래 시장의 기반이 되었으며,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운하 뒤로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암스테르담 중앙역
운하를 다니는 보트로 시티투어를 할 수도 있다.

운하로 둘러싸인 암스테르담의 중세 지역은 암스텔 강 양안(兩岸)에 있다. 옛 건축물로는

13세기의 구교회와 15세기의 신교회, 로얄 궁전, 민트 탑, 웨스트 교회가 있다. 옛 유대인

구역에는 포르투갈 유대인 교회와 렘브란트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렘브란트 생가가 있다. 구

시가지에는 담 광장·레이드세플레인 광장·렘브란트스플레인 광장이라는 큰 광장이 3개 있는

데,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명소인 담 광장에는 왕궁과 2차 대전 기념비, 신교회가 있고

그 서쪽에는 안네 프랑크의 집이 있다.

 

암스테르담 도심에서 남서쪽 17km에 있는 스키폴(Schipol = 스히폴) 국제공항은 유럽의 중

앙에 위치하는 탓에 유럽에서 비행기가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공항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가는 여행객들이 자주 들리는 공항이다.  

 

네덜란드의 아이콘(icon)들

농사용 재료나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
음식이나 유제품 운반용 보온 상자가 달린 자전거
운하의 다리 위에 자전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것들로는 운하, 풍차, 꽃, 치즈, 자전거가 있다. 치즈 수출 등 세계적

인 낙농업 국가이기도 한 네덜란드는 튤립 축제가 있을 정도로 튤립의 재배와 수출량도 어

마어마하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데, 국토(땅)가 평평한

것도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점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동하기 위한 승용 자전거가

대부분이지만, 농업용 등 기타 용도로 쓰이는 자전거도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이 많은 암스테르담 시내는 자전거가 특히 많은데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가 많은 도시라

하며, 전 국민 한사람 당 2대의 자전거를 소유할 정도라 한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자전

거 전용도로도 자동차길 옆쪽에만 국한되지 않고, 버스 중앙 전용차로처럼 도로 가운데가

자전거 전용 도로인 곳도 있었으며 자전거 전용 신호등도 있다. 또한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는 모든 우선권이 자전거에 있기 때문에,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자전거와 접촉해 사고가 나

면 무조건 사고를 낸 사람이 모든 손해 배상을 해줘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전거 보관 거치대가 있긴 하지만 보관 장소가 부족한 탓에 가로등이나 심지어 운하를 건

너는 다리에다 자전거를 매달아 두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튼튼하고 좋은 자물통 값은 자

전거 값보다 더 비싸다는 우스개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coffee shop에서는 커피가 아닌 마리화나를...

네덜란드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로 공창(公娼)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 국가 최

초로 안락사(安樂死)를 인정한 나라이다. 1993년 동성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하였으며 일부

마약도 합법화하였다. 1976년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낮으며 인체에 피해가 적은 대마, 환각

버섯 등을 연성 마약(Soft Drug)으로 규정하여 5g 이하의 대마를 피우거나 소지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커피숍(coffee shop)간판에는 ‘join us’라고 유혹하는 말이 써져 있다.

 

하지만 대마가 주는 향락 때문에 대마를 끊지 못하는 대마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선 합법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선 불법이므로, 호기심이라도 마약은 하지 말

아야 한다. 비흡연자를 위해 마약이 든 케이크까지 팔리고 있으니 암스테르담 여행 시에는

주의해야 한다.

 

암스테르담 운하와 수상가옥(水上家屋 Boathouse 보트하우스)

 
 수상가옥(boathouse)에는 수도와 전기가 공급된다.
 
암스테르담의 운하의 여름 풍경. 차마 클로즈업은...

암스테르담에는 165개의 크고 작은 운하가 사방으로 뻗어 있고 1,292개의 다리가 있다. 유

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암스테르담에서는 땅이 모자라 소위 수상가옥(boathouse)을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전기, 수도, 가스 등이 연결되어 있다. 이 수상가옥(배)은 이동

도 가능하여, 수로를 타고 바다로 나가 이웃나라로 갈 수도 있다 한다.

 

에이셀 호(Ijsselmeer 湖)에 접한 볼렌담, 에담, 마르켄

       참고: 다음백과 볼렌담 [Volendam] , 에담 [Edam]  위키백과: Marken

암스테르담 북동쪽 22km 떨어진 에이셀호(Ijsselmeer 湖)는 북해(北海)가 만입(灣入=바다

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옴)되어 생긴 호수이다. 에이셀 호에 접한 볼렌담, 에담, 마르켄을

둘러보았다. 서로 이웃하고 있는 볼렌담, 에담, 마르켄은 버스를 타면 암스테르담에서 1

시간 이내로 갈 수 있으며 1일 이용 자유권을 사용하면 하루에 세 군데를 다 둘러 볼 수

있다.

 

볼렌담은 에이셀 호에 접해 있는 한때 항구로 번창하였지만 지금은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

다. 볼렌담에서는 이곳의 명물이라는 청어 고기도 맛보고, 치즈 공장을 구경할 수 있다. 마

르켄은 볼렌담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가는 것이 보통이나,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에담은

‘에담치즈’로 유명하며, 치즈마켓 광장에서 두꺼운 쿠션 방석 크기의 치즈를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석 크기의 치즈를 옮기는 치즈마켓 포스터
네덜란드의 전통 나막신 클롬펜(klompen)

 

네덜란드 전형적인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  

      영어 위키백과: Zaanse Schans                            

암스테르담 북쪽 약 15Km에 있는 잔세스칸스 풍차 마을은 암스테르담에 오면 가장 많이

구경 가는 관광지중 하나다. 잔강(Zaan river)가에 있는 잔세스칸스(Zaanse Schans)는 18

세기까지만 해도 700개 넘는 풍차가 있었지만, 증기기관 발명 후 산업혁명과 기계화로 풍

차는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게 되자, 1961년부터 주변 일대에서 남아 있던 풍차를 몇 개

옮겨와 인공적인 풍차 마을을 만들었다.

 

이 풍차 마을에는 잔세스칸스 박물관과 물건을 직접 만들어 팔고 전시하는 치즈 공장과 네

덜란드 나막신(클롬펜 Klompen)공방과 기념품 가게 등 관광시설이 있다. 네덜란드는 치즈

수출에서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클롬펜 Klompen)이 유용하였던

까닭은 국토의 해발이 낮아 항상 땅이 질퍽거렸기 때문일 것이다.

 

잔세스칸스 전망대에서는 둑과 운하로 구획된 널따란 벌판에 풍차가 있는 네덜란드의 전형

적인 전원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관광지 입장료는 따로 없지만, 소형차 주차료가 9유로

이므로 주차료에 관광요금이 포함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예부터 있던 전통 풍차가 19개나 있는 킨더다이크

 

세계문화유산 킨더다이크(Kinderdijk) 풍차 공원

           참조:킨더다이크 공원 [Discover Kinderdijk Park]

세계문화유산인 킨더다이크 (Kinderdijk)는 공원은 플랑드르 회화에 자주 등장할 법한 고전

적인 네덜란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로테르담에서 16㎞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곳에는 운하 제방 위에 170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풍차가 19개나 남아 있

다. 네덜란드에서 옛 풍차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으로 운하 제방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

나 겨울에는 얼어붙은 운하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풍차(風車)의 나라 네덜란드

        참조 다음백과:풍차 [windmill] 위키백과: 풍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풍차(風車)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동력(動力)을 얻는 기계로 주로 곡식을 가루로 빻는 제

분이나 기름을 짜는 데 많이 사용하였고, 물을 끌어 올리는 양수(揚水)나 관개용으로 사용

하였다. 풍차의 기원은 7세기 페르시아의 세이스탄의 풍차에 대한 것에서 찾을 수 있으며,

10~12세기엔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각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중국

에서도 13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차들이 있다. 특히 국토가 해면보다 낮아

배수가 필요한 네덜란드 등지에서 많이 사용되었기에 풍차하면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된다.

 
스페인 라만차 풍차 마을에서 본 원통형 풍차
다각형 풍차 – 사진출처: 영어 위키백과

풍차의 모양은 크게 겉을 돌로 쌓은 원통형 풍차(Tower mill)와 직육면체나 팔면체 겉을 나무

판자로 덮은 다각형 풍차(Smock mill)가 있다.

 

원통형 풍차는 영국이나 영국 식민지에서 많으며 스페인에서도 볼 수 있으며, 대개 바람이

많은 고지대에 설치된다. 풍차의 효율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날개가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야

하는데, 풍차의 날개면의 방향 조절하기 위해 막대를 이용하거나 줄을 CAP(고깔모자)의 기

어에 감아 조작하거나, 지면까지 내려오는 꼬리막대(굴대)로 풍차의 CAP(고깔모자)의 방향

을 돌려야 한다. 스페인 문호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돈키호테(Don Quijote)의 마을

라만차 (La Mancha)에서 본 풍차는 바람이 많이 부는 높은 언덕에 벽돌로 쌓은 원통형으

로 꼬리막대(굴대)가 있다.

 

네덜란드나 독일의 풍차는 위가 좁아지는 직육면체나 육각 기둥면에 겉은 나무판자로, 본

체(本體)는 움직이지 않고 cap만이 돌아서 바람을 받는 다각형 풍차(風車 Smock mill)이다.

 

또한 미국 서부 영화의 목장에 많이 등장하는 날개가 많은 풍차도 있으며, 최근에는 발전용

으로 사용되는 3개의 날개로 구성된 프로펠러 형이 개발되어, 풍차(바람)의 힘을 이용한 풍

력 발전기에 이용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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