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02)-브뤼셀,루뱅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벨기에,그랑플라스,플랑부아양 양식,루뱅,꽃카페축제,옴메강축제,겨울축제,
브뤼셀 왕립 미술관, 아르누보,빅토르오르타.알폰소무하,오줌싸개동상,
벨기에 와플과 맥주,홍합요리 물르.
루뱅,루뱅대학교 기록물,루뱅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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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8abZeZsjJ_M&feature=youtu.be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EU)의 수도인 브뤼셀(Brussels)
홈피: be.brussels , 위키 백과: 브뤼셀
브라반트 公(1229 이후), 부르고뉴 公(1430, 브라반트 공령 병합)치하에서 15~16세기에 번
영한 브뤼셀은 벨기에 북서부의 브뤼헤와 독일 쾰른을 연결하는 중계지로 발달하였다. 모직
물, 마(麻)직물, 타피스리(tapisserie 벽에 거는 융단], 레이스(lace 뜨개질한 수공품]가 이
도시의 특산물이었다.
벨기에의 최대 도시인 브뤼셀은 스헬데 강의 지류인 센(젠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는 국
제경제 및 정치의 중심지이다.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네덜란드어)를 공용어로 쓰는 벨기에
내에서, 브뤼셀은 플라망어 사용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대도시 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브뤼셀의 중심부에 위치한 큰 광장 그랑플라스(La Grand-Place)
홈페이지: http://www.brussels.be/artdet.cfm? id=5757&
참조- 위키백과: 그랑플라스 [Grand Place] , 두산백과: 그랑플라스 [La Grand-Place]
브뤼셀의 시가지는 크게 로얄팔라스와 그랑플라스로 나뉜다. 로얄팔라스는 왕궁과 관청, 왕
립미술관 등이 모여 있으며 그랑플라스에는 길드하우스, 왕의 집, 시청사 등 규모가 큰 건
물들이 있다. 그랑플라스 근처에는 오줌싸게 동상과 해산물 요리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
는 부셰거리(Rue des Bouchers)와 생 튀베르 갤러리(Galeries St. Hubert)가 있다.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한 그랑플라스(Grand Place
큰 광장)는 가로 70미터, 세로 110미터의 광장으로, 12세기부터 벨기에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흐로터 마르크트(Grote Markt ‘큰 시장’이란 뜻)로도 불렸던 이 광장은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시청사,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로 둘러싸여 있어 유럽에 와 있다는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진다.
광장의 남서쪽에 1444년에 완성된 시청사(브뤼셀 시청사 [Brussels Town Hall]) 는 브라반트
고딕 양식으로 브뤼셀에서 가장 높고 큰 건축물 중 하나다. 시청 종탑은 얀 판 루이스브로크
(Jan van Ruysbroeck)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종탑 정상에는 금빛의 미카엘 대천사 동상이
있다. 중세시대 상업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해주는 길드 하우스(17세기 말)는 플랑부아양
양식(플랑부아양 양식 [Flamboyant style])의 건축물로 맥주박물관(홈피: Brewers Museum)
으로 이용되고 있다.
1515년에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왕의 집(la Maison du Roi)은 현재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
고 있는데 오줌싸개 동상이 입었던 옷도 전시하고 있다. 초콜릿 박물관이 있는 브라반트
(Brabant) 공작의 집은 브라반트 공작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곳이지만 건물 앞에 브라반트
공작의 흉상(胸像)이 놓여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16세기에 르네상스 또는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건물 앞면)로 바뀌었는데 금
빛 칠을 더하였기에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이곳은 이 지역의 문화와 사회를 특징짓는 건
축 및 예술 양식을 절충적이고 성공적으로 혼합한 훌륭한 본보기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그랑플라스 광장에서는 수시로 행사가 펼쳐지는 데, 꽃 카펫축제(http://www.flowercarpet.be/)
때는 이 광장이 꽃으로 도배되고, 옴메강 축제(링크:Ommegang)때는 행렬(퍼레이드)로 광장이
가득 찬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전등 장식이 화려한 겨울축제(Winter Wonders)가 펼쳐진다.
그랑플라스 광장에 조명이 켜지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하지
(夏至) 바로 지난 시기라 밤 10시가 지나서야 야경(夜景) 분위기가 났다.
브뤼셀 왕립 미술관(Musée Roayl des Beaux-Arts)
홈페이지: www.fine-arts-museum.be
1838년에 세워진 이 미술관은 고대와 근대 미술 특히 플랑드르화파(링크:플랑드르의 회화)작가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1464), 루벤스(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 멤링크(Hans Memling, 1435∼1494) 등의 작품과 만날 수 있다. 마그리트 미술
관(Musée René Magritte http://www.magrittemuseum.be/)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마그리트의
작품들이 있어,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관람해야 할 곳이다.
아르누보(Art Nouveau)의 본고장 벨기에 브뤼셀
아르누보 양식은 19세기말-20세기 초에 걸쳐 기존의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
형태에서 모티프를 빌려 새로운 표현을 하고자 하였는데, 유동적인 곡선을 즐겨 사용한 것
이 특징이다. 보통 꽃과 식물의 줄기, 휘몰아치는 물결 등을 소재나 모티브로 하여 형태와
선을 만들고 리듬감을 형성한다. 참조: 두산백과 아르누보
1890년에서 1905년까지 15년간의 아르누보의 전성기 동안 유럽 전역과 전 세계에 큰 영향
력을 미쳤으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벨기에에서는
아르누보(Art Nouveau 새로운 예술)라 불렸지만 영국, 미국은 ‘modern style 현대 양식’,
독일은 유겐트 양식(Jugendstil 젊은 양식), 이탈리아에서는 ‘스틸레 리버티(Stile Liberty 자
유 스타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에서는 ‘제체시온슈틸(Secessionsti 분리 양식, 빈 분리파 )’로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데르니스타(Modernista 현대운동)‘로 불렸다. 참고:[문화예술] 아르누보
프랑스의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는 아르누보 양식을 지하철 입구 건축에 도입해 새로운 파
리의 경치를 만들었고, 공예가였던 에밀 갈레는 낭시에 있는 예술 학파의 중심에 있었다.
빅토르 오르타는 베를린의 아르누보 양식 건축에 큰 영향을 행사했다. 유겐트와 같은 잡지
도 독일에서 이 스타일의 확산을 도왔다. 오스트리아 빈의 분리파 예술가들은 예술과 건축
에 있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체코 전역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 아르누보는 또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찰스 레니 매킨토시, 알폰스 무하, 르네 랄리크, 안토니오 가우디,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와 같은 예술가들 개개인들의 움직임이기도 하였다.
‘아르누보’ 건축양식은
내용출처:19세기 말 변혁의 시대 ‘아르누보’ 건축양식…철과 유리, 화려한 장식의 심미적...
아르누보의 양식적 기원은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을 처음 촉발한 영국의 월리엄 모리스였고 ,
이 조류를 주도한 대표자는 벨기에의 알리 반 델 벨데이다. 아르누보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통해 유럽 미술의 전면에 자리잡았다. 19세기 로코로양식의 부활, 고딕 부활, 미술
공예운동, 심미주의운동, 그리고 상징주의 회화와 문학에서 특히 크게 영향 받았다. 따라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 파사드(앞면)는 화려한 조각이나 테라스로 장식되며. 내부는 물결무늬
의 철골 구조와 유리 장식품으로 채워져 로코코의 화려함에 견줄 만하다.
아르누보 건축가로는 ‘요제프 마리아 올리브히‘, ‘빅토르 오르타’, ‘찰스 레니 맥킨토시’와
아르누보 건축의 창시자라 불리는 ‘앙리 반 데밸데’와 시대를 넘어서는 건축적 가치와 정신
을 실현한 ‘안토니오 가우디’가 있다.
아르누보의 두 거장들 - 빅토르 오르타와 알폰소 무하
벨기에는 ‘아르누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고 이 양식이 완성된 곳이다. ‘아르누보’ 거장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 1861~1947)는 벨기에의 건축학자이자 아르누보를 확장한 인
물이다. 브뤼셀에 있는 타셀 저택(Hôtel Tassel), 솔베이 저택(Hôtel Solvay), 반에드벨데 저
택(Hôtel van Eetvelde), 오르타 저택 및 아틀리에(Maison & Atelier Horta)은 빅토르 오르
타가 설계한 저택으로 19세기말 아르누보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꼽히며, 2000년 유
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urojournals&logNo=110112571624
알폰소 무하 (참고: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알폰스 무하(1860~1939)는 체코의 화가이며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
다. 1894년 Théâtre de la Renaissance에서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알리기 위한 석판 포
스터 Gismonda를 만들었는데, 무하의 아름다운 포스터는 큰 호평을 받아 유명해졌다.
F.Champenois 광고 -알폰소 무하의 작품- |
알폰소 무하의 출세작 ‘Gismonda’ |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바트요(Casabatllo) |
하지만 아르누보는 유미주의 및 상징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다방면에 걸쳐 전개되었지
만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미적 감각을 추구하려는 애초 의도는 아쉽게도 사회적 경
제적 제약들과 장식 과잉의 매너리즘에 빠졌다. 또한 아르누보가 추구하는 수준 높은 생산
물은 대량생산의 어려움 등으로 대중화를 어렵게 했다. 이것은 아르누보가 비교적 단명하게
끝난 이유이기도 하다.
브뤼셀의 생미셀 대성당(Cathedrale St-Michel 성 미카엘 성당)
이 성당은 정식 이름이 Cathedrale Saints-Michel-et-Gudule 이므로 성 미카엘 대천사(St.
Michel 미카엘 [미카엘 (대천사)])와 성녀 구둘라(St. Gudula, Gudula)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122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7세기까지 4세기에 걸쳐 지어진 벨기에를 대표하는 최고의
성당으로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이 치러진 곳이다. 현재 국왕인 필리프 1세의 국왕
즉위식도 2013년 7월 이곳에서 열렸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닮은 이 고딕양식의 성당은 두 탑의 높이가 69m나 되며, 내부
의 크기도 대단하다. 특히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답기가 세계적
으로 명성이 나 있다.
브뤼셀의 아이콘 중 하나인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 오줌싸는 마네킹)
뉴욕에 ‘자유 여신상’, 코펜하겐에 ‘인어 조각상’이 있다면 벨기에 브뤼셀에는 ‘오줌싸개 동
상’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어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크기가 작아(높이 60Cm) 실망
할 수도 있다. 참고: 위키백과 Manneken Pis
오줌싸개 소년은 방뇨하는 소년을 본뜬 동상분수(銅像噴水)로, 세계 다른 나라에도 유사품
이 많이 있지만 여기가 원조다. 1619년 제롬 듀케뉴아가 낡은 옛 청동상을 대체해 만든 높이
약 60㎝의 청동상인데, 1960년대에 분실하여 현재 설치 되어 있는 것은 복제본이다. 맥주의
고장답게 이 꼬마 분수에선 때로 물대신 맥주가 나오기도 한다.
이 동상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는데, 14세기에 프라방드 제후의 왕자가 소변을 보고 적군을
모욕했다는 설과,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분수대에서 오줌싸는 아들을 발견한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외에도 마녀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소년
이 오줌을 싸자 화가 난 마녀가 소년을 동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와 프랑스군이 브
뤼셀을 방화하려고 하자 이를 지켜보던 소년이 오줌을 싸서 그 불을 껐다는 얘기가 전해진
다.
7월4일이라 미국 국기 옷을 입은 오줌싸개 동상 | 초콜릿으로 만든 오줌싸개 동상(발부분)과 와플 |
벨기에의 국민 음식 moules(물르)과 프리트(frites) |
오줌싸개 동상은 전쟁이 났을 때 숨겨져 특별 보호를 받았지만 적군들에게 수차례 약탈되기
도 했다. 프랑스가 약탈해갔다가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다시 돌려주었는데, 그냥 돌려주기가
뭣하여 오줌싸개 동상에 옷을 입혀서 돌려주었다 한다. 그 후로 여러 나라 국빈이나 유명 인
사들이 옷을 기증하는 관습이 이어지게 되었고, 그동안 이 오줌싸개 소년이 갈아입은 의상만
칠백 여 벌이 넘는다. 그동안 입었던 의상 중에는 우리나라 색동옷뿐 만아니라 각 나라의 민속
의상과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과 미키 마우스 복장도 포함되어 있다.
초콜릿, 맥주, 홍합이 있는 동화의 나라 벨기에 링크: www.visitbelgium.com
벨기에를 동화같은 나라로 표현하는데, 도시나 마을 풍경이 중세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운하
를 따라 펼쳐지는 경치는 동화의 그것처럼 아름답다. 초콜릿과 벨기에 와플(벨기에 와플)등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 만화 ‘개
구장이 스머프’, ‘땡땡의 모험(틴틴의 모험)’의 고장이기도 하거니와, 만화 강국답게 전 세계
로 만화를 수출하고 있으며 만화 박물관(www.cbbd.be)도 있다. 또한 악기박물관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인데. 이곳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악기 박물관으로 악기 약 2000여점이 있으
며 각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벨기에에서 홍합을 먹지 않고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벨기에 홈페이지에서 선전하는 ‘음
식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꿈을,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국을’ 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
할 것이다.
벨기에의 대중적이고 국민 요리인 홍합 요리는 우리 같은 관광객의 입맛에도 썩 잘 맞는다.
바닷가에 위치한 벨기에는 다양한 해물요리가 발달하였는데 홍합 찜 요리인 물르(Moules)
가 유명하다. 화이트와인이 배어 있는 물르(Moules)는 짭짤한 바다맛과 특유의 홍합향이 입
맛에 달라붙는다. 브뤼셀의 먹자골목 부쉐거리(Butcher's Street)에는 유명 홍합 요리 맛집
들이 많이 있는데 유럽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삐끼(引 hiki 손님 호객 행위자)’를 볼 수 있
다. 1893년에 최초로 문을 연, 홍합 전문점의 원조 ‘셰 레옹 Chez Leon’이 특히 유명하다.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등록 상표만 해도 490 여 개로 국민 1인당 맥주 생산율이 가
장 높다. 맥주는 에일, 라거, 흑맥주 등이 있는데, 과일 맛(복숭아 맛, 체리 맛) 나는 것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제조사마다 전용 유리잔이 따로 있다. 안주는 대개 프리트(Frites 감자
튀김)이다.
벨기에는 초콜릿의 본고장답게 어디를 가든 초콜릿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오
줌싸개 동상 초콜릿은 어느 가게나 하나씩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벨기에 초콜릿을 대표하
는 브랜드(상표)로는 고디바, 길리안, 노이하우스, 레오니다스, 피에르 마르꼴리니가 유명하
다. ‘Guylian 길리안’은 세계 식음료 품평회에서 ‘2010 Superior taste AWARD’를 수상했다.
작은 도시지만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한 루뱅(Louvain)
다음백과:루뱅 [Louvain] 위키백과:뢰번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불과 동쪽 24km 지점에 위치한 루뱅(Louvain)은 네덜란드어 뢰
번(Leuven)이나, 흔히 프랑스어 명칭인 루뱅으로 불린다. 루뱅은 벨기에에서 가장 유명한
교육도시인데,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의 인가를 받아 네덜란드 최초의 가톨릭 대학이
설립되어 학술, 문화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알프스 이북(以北)의 대학 중 파리대학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학이었다. D.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G. 메
르카토르(Gerard Mercator, 1512~1594), J. 립시위스(Justus Lipsius, 1547~1606) 등과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이 이곳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가톨릭 개혁을 시도한 곳으로 세계사적
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많은 인물 조각이 새겨진 화려한 루뱅 시청사 |
15C~18C 대학 모습이 기록된 ‘루뱅대학교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
근대 초기 대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루뱅대학교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기록물의 내용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루뱅대학교가 어떻게 학생들과
관련된 장학제도를 운영하였고, 대학 내 부속기관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성직자들만의
영역이었던 대학교가 국가 기관으로 변신하면서 종교개혁 과정에 대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
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가 진행되던 시기에 중세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인본주의 사
상이 갈등하게 되었을 때 대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루뱅 학살 사건’
1914년 8월 25일 독일군이 루뱅으로 진격하면서 고의적으로 루뱅대학교 도서관에 불을 질렀다.
당시 진격 일정을 맞추기에 혈안이 된 독일군이 벨기에 루뱅에서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 및 도시
파괴를 저질렀다. 때문에 아직도 루뱅 시에서는 독일 국기를 게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
다. 내용참조: 제1차 세계대전 (엔하위키 미러)
(Quiz) 다음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해답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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