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주년 기념 특집 | 월간<산>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3> 지리산 르포] 역시 지리산!… 여러 명산 기준에 가장 많이 중복
역사, 경관, 인기, 자연공원 등 11개 세부 기준 중 7개 부분 속해
역시 지리산이었다. 본지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산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지리산은 ‘역사적인 가치로서의 산’의 세부 평가 항목인 ‘한국 오악五嶽’ 중 남악에 해당되며, 숨어살기 좋다는 ‘십승지’에도 포함됐다. ‘경관적 가치로서의 산’ 중에는 ‘생태’와 ‘조망’ 부분에서 이름을 올렸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과 ‘자연공원’에 지리산이 포함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총 11개의 세부 선정 기준 가운데 7개 부문에서 지리산은 존재감을 뽐냈다.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했다. 창간특집에서 다뤄야 할 최고의 명산은 지리산 밖에 없었다. 우선 지리산이라 하면 천왕봉(1,915.4m)을 떠 올리게 된다. 남한 땅 육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동시에 최고의 일출 명소로 꼽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리산 천왕봉은 조망과 경관에 있어서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다. 등산인이라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다.
흥미롭게도 지리산은 조금 떨어져서 볼 때도 매력적인 산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산이 지닌 웅장함이 한결 부각되기도 한다. 이번 취재 때 방문한 지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정말 멋진 천왕봉 전망대였다. 특히 3층 신용석 소장의 집무실 창밖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천왕봉 일대의 경관이 장관이었다. 신 소장은 이곳에서 근무하며 지리산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늘 가까이하고 있었다. 그가 지리산 예찬론자가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사무실 창밖을 보면 언제나 우뚝 솟은 천왕봉이 있습니다. 무시로 변하는 구름을 머리띠처럼 산봉우리에 두르기라도 하면 정말 신비롭게 보입니다. 옛날부터 지리산을 신령스런 산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 땅의 명산을 오르기 위해 거림으로 향했다. 목표는 천왕봉이지만 지리산의 다양성을 경험하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 거림계곡을 통해 세석평전을 오른 뒤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고, 다음날 천왕봉을 올랐다가 중산리로 하산하기로 했다. 비교적 여유 있는 일정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아픈 역사의 현장 지리산
거림마을 꼭대기의 공원지킴터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미 도시는 초여름 날씨지만 큰 산의 골짜기는 여전히 냉기가 돌았다. 하긴 한여름에도 차가운 얼음물이 흐르는 지리산 계곡인데, 5월 초에 온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래도 산길 주변을 둘러싼 신록의 초록빛 덕분에 기분은 상쾌했다.
오전 내내 해가 구름 속을 들락거리더니 이내 주능선 일대가 완전히 구름에 덮여 버렸다. 문득, 지리산을 찾을 때마다 비를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달 전 백두대간 종주 때는 이틀 내내 비를 맞기도 했다. 이번 산행만큼은 지리산이 자비를 베풀어 주길 고대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산길을 걸었다.
거림계곡은 세석평전까지 이어지는 산길이 완만한 것이 특징이다. 거림에서 세석대피소까지 약 5.5km 거리로 큰 힘 들이지 않고 주능선을 오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계곡길이 평범해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지리산 골짜기다운 웅장함도 지니고 있다. 산길이 대부분이 계곡과 멀어 그 아름다움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물가를 찾아가는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면 멋지고 아름다운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볼수록 예쁜 거림계곡이다.
거림계곡은 지리산이 지닌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6·25전쟁 전후 지리산에서 활동한 빨치산의 아지트가 거림계곡의 지류인 도장골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산청 방면의 내원사계곡, 대원사계곡, 중산리, 법계사, 소막골, 순두류, 조개골 등 여러 곳에 빨치산 아지트가 있었다.
몇 해 전 이 아지트들이 있던 곳을 연결하는 빨치산 루트 여러 개를 만들고 답사코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찾는 이가 적어 관리상태가 좋지 않다. 중산리 관광단지 내에 2001년 건립된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빨치산의 아지트를 재현한 조형물과 관련 자료를 전시해 뒀지만, 이곳에 이런 시설이 있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지리산이 품은 역사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는 듯하다.
거림 공원지킴터에서 출발해 4시간여 만에 도착한 세석평전은 회색빛이었다. 기대했던 진달래는 꽃샘추위에 꽁꽁 얼어붙었고 주변은 안개가 가득했다. 해발 1,500m가 넘는 고지대라 추위가 느껴졌다. 능선을 타고 넘나드는 구름 때문에 시야도 꽉 막혀 있었다 기대했던 명선봉 일몰은 포기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역시 산에서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은 법이다.
최고의 경관과 생태 품은 산
새벽 5시에 일어나 곧바로 배낭을 쌌다.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지리산 주능선의 조망 좋은 봉우리들은 멋진 해맞이 전망대다. 특히 촛대봉은 세석대피소에서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가까운 봉우리로 접근성이 좋다. 새벽에 일어나 잠시 다녀와도 좋을 곳이다. 게다가 지리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색다른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바위지대인 촛대봉 정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뜨는 해를 감상했다. 웅장한 천왕봉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옛날 국가의 안녕을 위해 산신제를 올렸던 명산의 품격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해맞이를 마무리하고 세석평전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번에는 운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림 방면에서 몰려온 구름이 남부능선에 갇혀 바다를 이룬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지리산에서 일출과 운해를 동시에 만난 행운아들이었다.
“날씨도 좋은데 봄꽃과 신록, 일출에 운해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감동입니다. 이번 산행이 저의 ‘인생 지리산’인 것 같습니다.”
이번 지리산 산행에 동행한 최준영(35)씨는 백두대간을 일시종주하며 지리산 주능선을 지나간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온전히 지리산의 장관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지리산에 비와 눈을 몰고 다녔던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구름 때문에 명선봉의 낙조를 포기할 때만 해도, 청명한 일출과 운해는 기대하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행운에 일행 모두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참 모습일 것이다.
다음 경유지인 연하봉에서 본 지리산 남부능선은 아침 햇살을 받아 과장된 입체감을 뽐냈다. 일찍 일어나 산길을 걷을 때만 만날 수 있는 멋진 광경이었다. 산길 주변에 보라색 얼레지꽃이 만발해 봄 분위기를 돋웠다.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주목과 구상나무의 의젓한 자태도 눈길을 끌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닌 지리산은 수백 종의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유명하다.
장터목대피소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한 뒤 마지막 된비알을 지나 천왕봉을 올랐다. 벌목꾼들이 낸 산불로 생긴 제석봉 고사목지대를 지나 드디어 남한 지역의 육지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 꼭대기에 섰다.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모든 세상이 발아래 있었다. 막힘없이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선인들의 발자취도 많아
지리산은 백두산, 금강산과 더불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깊고 넓은 산자락 곳곳에 수천 년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인 삼한시대부터 지리산에 사람이 거주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지리산과 관련된 선인들의 발자취도 많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지은 유람록만 70여 편. 그중 김종직(1431~1492)의 <유두류록>, 김일손(1464~1498)의 <두류기행록> 등이 대표적이다.
천왕봉 정상석 뒤편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원래 ‘경남인’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며 ‘영남인’을 거쳐 지금의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정상 서쪽 아래 바위에 하늘을 받드는 기둥이라는 뜻의 천주天柱라는 글씨도 음각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의 손길이 스쳐간 봉우리라 하겠다.
하산은 천왕봉 최단 코스로 인기 있는 중산리 방면의 탐방로를 택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서자 평일이지만 많은 탐방객이 줄지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천왕봉을 오르겠다는 사람들의 염원이 가감 없이 느껴졌다. 오늘은 김해에서 온 한 무리의 학생들까지 합세해 시장판처럼 번잡했다. 역시 인기 있는 산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정상 바로 밑 천왕샘에서 시원한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법계사를 지나 로타리대피소로 내려왔다. 심한 급경사는 거의 끝난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산리까지 남은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3.4km가량 이어지는 긴 내리막이 우리 앞에 남아 있었다. 역시 거대한 지리산은 끝날 때까지 절대 긴장의 끈을 풀 수 없는 곳이었다.
지난해 설립 50주년 맞은 지리산국립공원
지리산의 미래 위한 50대 과제 선정
지리산은 1967년 대한민국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어 지난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국립공원은 소중한 자연을 보존하고 난개발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공원개발에 대한 각계의 요구가 수시로 쏟아지고 있어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지리산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이 큰 상황이다.
다행히 현재 지리산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를 진행 중이다. 지리산관리사무소 신용석 소장은 “지리산의 지난 50년은 치유의 역사였다”면서, “앞으로 50년은 영광의 역사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자연가치 증진, 문화가치 증진, 탐방서비스 강화, 공원관리시스템 강화, 국립공원 50주년 기념사업 추진 등 5대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50대 과제를 선정했다. 지리산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지리산을 지키려는 국립공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지리산 천왕봉]
1,915.4m
경남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
산행 거리 18.9km
산행시간 11시간 30분
산행난이도 상(매우 가파른 계단길)
천왕봉 산행 길잡이
당일산행보다 1박 2일이 여유로워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코스는 중산리 기점의 등산로다. 중산리 탐방안내소~로타리대피소~ 천왕봉은 약 5.4km로 4시간쯤 걸린다. 경사가 급한 로타리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대피소에서 자고 일출을 보는 일정이라면 전날 일몰 2시간 전에 입산해야 한다.
1박 2일 일정으로는 중산리~ 로타리대피소 (1박)~천왕봉~장터목~중산리가 무난하다. 첫날 오후 3시 이전에 중산리 탐방안내소에 도착해야 이 날 로타리대피소까지 들어가 잘 수 있다. 다음날은 새벽 4시경 로타리대피소를 출발해야 천왕봉 일출시각에 맞출 수 있다.
취재팀은 거림계곡길로 세석대피소로 이동해 자고 촛대봉에서 일출을 봤다. 거림 기점의 산길은 완만해서 큰 부담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거림 공원지킴터에서 세석대피소까지 5.5km 거리로 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세석에서 천왕봉은 5.1km로 3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천왕봉에서 중산리주차장까지 하산하는 7.8km 구간은 최소 4시간이 소요된다.
찾아가는 길
천왕봉 산행 기점인 중산리나 거림은 진주에서 들어가는 대중교통편이 가장 많다.
진주 → 중산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1시간 간격으로 1일 15회(06:10~21:10) 중산리행 버스가 운행한다. 소요시간 1시간 15분. 요금 5,900원. 거림행 버스는 1일 3회 운행한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 055-741-6039.
서울 → 진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06시부터 24시 10분까지 20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3시간 30분 소요. 요금 일반 1만9,500원, 우등 2만7,000~3만2,000원.
대구 → 진주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06시 40분부터 20시까지 약 1시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소요시간 2시간 10분.
요금 일반 8,900원, 우등 1만3,100원.
광주 → 진주 광천동 종합버스터미널에서 07시 5분부터 19시 10분까지 9회 운행. 2시간 소요. 요금 일반 1만200원, 우등 1만4,900원.
금요일과 토요일 23:30분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해 중산리를 운행하는 직행버스도 있다. 이 버스는 토요일과 일요일 15:35에 중산리에서 출발해 서울로 온다.
성수기에는 시외버스 예매 사이트에서 예약이 필수다. 문의 02-521-8550(서울), 055-972-1122(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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