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스쳐 지나가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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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그린의 '어떤 말씀'       

                     

.쉐그린의 '어떤 말씀' 이 들어있는 album 자켓

소풍가기 전날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글쓴 일자: 2008.10.25.(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겉으로 보면 명동은 성형, 미용, 화장품의 메카(聖地 성지)이다

 

지난 (2008년) 9월 2일 대학시절 좋아했던 듀엣 '4월과5월'의 데뷔 35주년 콘서트가 명동에서 있었다.

어린 시절에 소풍을 앞둔 전날 내일 비가 오지 않도록 기원했었다. 이런 아이처럼 어제는 잠을 설쳤기에 고속버스로 서울까지 가는 동안 잠시 눈을 붙였다. 

 

공연 시간에 맞추느라 늦은 점심을 김밥으로 때운 후 헐레벌떡 공연장이 있는 명동으로 전철을 타고 갔다. 전철을 내린 곳은 명동역이었다. 다른 전철역에 비해 공연장과의 거리도 가깝지만 일부러 명동을 가보고 싶어 명동역에 내렸다.

 

.명동 지하철역 입구와 남산에 있는 서울 타워

때마침 화창한 토요일 오후라 人波(인파)가 그야말로 人山人海이다. 명동길을 걸어가는 데 가운데쪽 통로는 나를 향해 오는 인간 파도(人波 인파)에 어깨가 부딪힐 지경이다. 할 수 없이 마주치는 사람이 다소 적은 길 한쪽으로 걸어 갔다.  

 

.사람의 물결( 人波 )로 어깨가 부딪치는 명동 거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곳(명동 입구)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높고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키를 재고 서 있었다. 남산에 높이 서있는 서울 타워랑 비교해 봐도 빌딩의 스카이라인이 얼추 맞는다.

 

명동 입구 좌우로 도열한 건물에는 얼굴을 바꿔준다는 성형외과의 간판과 화장품의 선전 간판들이 꽉 차있다. 명동에  가면  정말 마법처럼 face off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건물 입구에 타로 점집이 있었는데 연인과의 운명이나 자신의 운명은 어떤지 점괘를 보는 아가씨들이 심각하게 인생 상담(?)을 하고 있었다. 과연 언제가 인생 대박일까를 알고 싶었을까? 나도 그건 알 수는 없지만 살아 숨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대박이고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화장품, 성형의 메카 명동에서는 face off(얼굴 바꾸기)가 가능할 지도 .

일제시대 땅이 질어 '진고개'라 불렸던 충무로는 한국 최초의 洋風(양풍) 유행을 일으켰던 곳이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집결지가 되어 도시 청년 문화를 만들고 있는 듯하였다. 거리 한편에는 앰프로 소리를 키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을 호객하는 매장 종업원의 외침 소리가 귀를 울리며 명동 공간을 떠들썩하게 메우고 있었다. 길 가운데 좌판에서는 벨트나, 목걸이 등 여성용 장신구 액세서리들이 여인들을 유혹하고 있었으며, 길 한편에서는 판촉 행사하는 어떤 사람의 마임 몸짓이 또 하나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어느 통로 가운데 심어진 나무에는 얼핏 보았을 때 꽃술로 착각했던 빨간 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려 축제 기분을 내고 있었다.

(계속)

 

 

 

 

   간송 미술관에서 날아온 가을 편지

     여행일자: 2008년 10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영상 또는 음악>:  옛날은 가고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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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미술관    참조링크: 간송미술관 - 나무위키

가을이 내려 앉아 가로수 나무에도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어 있던 며칠 전, 간송 미술관에서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書畵大展(서화 대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송 미술관은 봄가을(5월 중순,10월 중순)에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가을 전시회 소식이었던 것이었다.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서화와 골동품 등을 수집했다. 1934년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개설하여 본격적으로 골동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는 한편,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개설하여 서화뿐만 아니라 석탑·석불·불도 등의 문화재를 수집·보존하는 데 힘썼다.  참조링크:간송 전형필

간송미술관 입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립던 친구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일요일 아침 고속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를 내린 후 간송 미술관이 있는 성북동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삼선교’로 가기로 했다.  

 

나와 인연이 있던 ‘三仙橋(삼선교)’ 

1965년 초겨울 이제 만 12살된 시골 소년이 서울의 중학교 입학 시험을 보기위해 난생 처음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청량리역에 내리니 10시간 이상의 기차 여행 끝이라 배도 고팠지만 겨울인지라 寒氣(한기)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시골보다 서울엔 높은 건물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지만, 소년의 눈에 놀랍게 비친 것은 네온사인과 전봇대에 붙은 모 제약사의 감기약 ‘x피린’ 광고였다. 시골에서는 한번도 보지도 못했던 네온사인과 광고판이었던 것이었다. 청량리에서 전차를 타고 친척이 살던 ‘삼선교’를 가기 위해선 종로4가에서 돈암동행 전차를 갈아타야 했다. 당시 돈암동행 전차 종점은 미아리 고개 밑 태극당 빵집 앞이었다.

 

그 당시 ‘삼선교’에서 전차를 내려 성북동쪽 언덕을 올라가 친척이 살던 한옥집에 며칠 신세를 졌었다. 이것이 나와 삼선교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혜화동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삼선교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삼선교 남동쪽에 있는 한성대 바로 앞 동네 자취방에서 아침 저녁으로 걸어서 이곳을 지나갔다. 몇 년 후 미아삼거리 쪽으로 이사를 간 후로도 하루에 두 번씩 20번(아륙교통) 시내버스로 이곳을 지나갔기에 나의 중고 시절은 줄 곳 삼선교를 거쳐갔던 것이다. 당시에 이곳을 지나 다녔던 버스회사로는 범진여객, 승원여객, 아륙교통, 한남여객, 한진운수 등이 있었다. 

.70년대에 다녔던 시내버스-이곳은 당시 '서울시민 회관' 앞. 사진 출처: 인터넷 서핑

 

三仙橋(삼선교)’에서 세분의 신선은 커녕 ‘삼선교’도 찾아볼 수가 없더라.

.지하철 입구 겨우 괄호 속에 쓰 여 있는 '삼선교' 글자

 

지하철 안내도에서 ‘삼선교’를 찾으니 삼선교로 써있어야 할 곳에는 ‘한성대입구역’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정작 ‘삼선교’라는 글자는 ‘한성대입구역’에 내린 다음에서야 볼 수 있었다. ‘한성대입구역’ 이름 다음 괄호 속에 (삼선교)라고 쓰인 것을 겨우 찾아내었다. 그것도 눈에 불을 켜서 열심히 찾아야 볼 수 있엇다. 삼선교역을 나와 길거리의 표지판을 보아도 여기저기에 ‘간송미술관’의 표지판이며, ‘최순우 옛집’의 표지판은 있었지만, ’삼선교‘는커녕 ’삼선‘이라는 글자도 좀체 찾아보기 어려웠다.

.城北川 (성북천)  복개도로 (위쪽이 삼청동 방향)

 

’삼선교‘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10시가 되기 전이었다.10시부터 미술 전시장이 열린다하니 간송미술관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갈까도 생각하였지만, 걸어서 10여분 거리이니 오랜만에 여기에 온 김에 나는 길거리를 구경하며 걸어가기로 하였다.

 

城北川(성북천) 복개도로 옆 인도에 누군가 국화꽃 화분을 내놓아 향기나는 꽃길이 되었다. 노란 국화와 자주빛 국화꽃들이 환한 얼굴로 반가운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城北川 (성북천=도성 북쪽을 흐르는 개천의 뜻) 의 내력.

 

‘城北川(성북천)’은 어디에?

그 당시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흰 泡沫(포말 ,물거품)을 띄며 흘러내리던 성북천은 이젠 복개도로가 되어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누가 ‘삼선교는 성북천을 건너는 다리’라고 설명해 주지 않으면, 이 도로 밑으로 개천(성북천)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울러 경복궁 동쪽의 복개도로 아래로 三淸川이 흐르고 있음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겹쳐지나 갔다.

.60-70년대의 모습이 그려진 담벼락 벽화 -선술집-
.옛 영화 포스트를 그려 놓은 블록 담벼락

 

나의 옛 기억을 확인시켜주려는 듯이 도로 옆 블록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는 조악한 그림이라 할른 지 몰라도, 옛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조금 더 가다보니 길모퉁이에 이제는 보기 드문 공중 목욕탕이 나타났다. 제대로 된 시간 여행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보기드문 공중 목욕탕

 

그 당시 삼선동쪽 언덕 꼭대기엔 수도 펌프장(pump 가압시설)이 있어 가정집 물이 잘 나오게 수압을 가압시켜 주었었다. 머리를 돌려 언덕배기쪽에 있던 친척집이 있던 자리를 떠올려보며 그 시절 시간 여행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얼기설기 얽힌 전선줄과 어지럽게 배치된 벽돌집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머릿속에 맴돌던 영상은 사라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그걸로 끝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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