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不虛傳(이름이 헛되지 않구나)-밀라노,피사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Volare [볼라레 :날자꾸나] :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 안 나올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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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鄕循俗(입향순속)
이탈리아에서는 세가지 '레'만 해도 살수 있다고 한다.
첫째, 만자레(mangiare) - 먹고
둘째, 칸타레(cantare) - 노래하고
셋째, 아모레(amore) - 사랑하고
이 세 단어가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을 요약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그네가 다른 고장에 가서면 그 고장 풍속을 따라야 한다(入鄕循俗 입향순속,入鄕隨俗 입향수속). 入境問俗(입경문속). 入鄕從鄕(입향종향)이라고도 한다. 다른 나라 땅(異國)에 와서 제 입맛에 맞는 음식과 기호식을 파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풍경과 음식이 다른 곳을 여행하는 동안 색다른 음식과 기호 식을 맛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평소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이탈리아 국경을 통과하고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이탈리아 커피 맛을 보기로 한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딸은 커피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나는 맛이라도 볼 요량으로 좀 순하고 부드러운 카푸치노를 시켰다. 카푸치노는 소위 달달한 것이 우리나라의 자판기 커피 맛으로 느껴졌으나 딸에게 얻어 마셔 본 에스프레소는 굉장히 쓴 맛으로 느껴졌다.
재미있는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은 돈을 주고받을 때,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꺼리는 것이었다. 커피 요금을 미리 계산할 때 돈을 직접 손으로 받지 않고, 돈을 접시에 올려 두면 잔돈과 영수증을 접시 위에 도로 준다. 이 영수증을 다시 커피 주방장(?)이 일하는 쪽에 보내면 커피를 만들어 접시에 도로 내준다. 인솔자의 설명으로는 손과 손을 직접 접촉하는 것을 피한다고 하며 어떤 경우에는 접시에 동전이 땡그랑 소리 날 정도로 던지기까지 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거기에 대해 오해 말라고 했다.
어둠이 내린 세계적으로 유명한 별장지대인 꼬모는 호수의 불빛을 눈으로만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호수의 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낮에 보면 틀림없이 더 멋있는 풍경 그림이 될 것 같았다.
사소한 도로 구조물에도 과학적, 미적 감각을 볼 수 있는 밀라노
밀라노 시가지에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토리노 동계 올림픽 스폰서인 삼성의 커다란 전광판을 만났다. 이국땅에서 우리나라 상품의 선전물을 통해 보는 것이지만 나의 분신을 만나는 느낌이 들어 반갑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탈리아의 열악한(?) 전력 사정으로 이탈리아선 그래도 부자 도시라고 알려진 밀라노의 시가지도 다소 어두운 느낌이고 가로등도 절전 모드이다.
시내를 걸어가다 보니 보도 블록 옆의 도로 경계석의 모양이 우리나라와 조금 다르다. 보통 경계석은 직육면체의 침목 모양으로 도로와 차도를 구분 지어 일렬로 박혀 있다. 그런데 이 밀라노의 경계석의 특별한 점은 경계석과 경계석의 접촉면 모양이 일자형이 아니라 올록볼록한 요철 형태로 되어 있다. 양쪽 끝면이 서로 요철로 맞물리게 함으로써 경계석이 튕겨 나가는 것을 막고 경계석끼리 견고한 연결이 되게 하였다. 비록 도로 한 편에 쌓는 경계석이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과학적 사고방시과 건축 공학적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名不虛傳(명불허전)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밀라노 시내를 관광하였다. 두오모 성당은 보수 중이었다. 보수 천막 틈 사이로 들여다 본 두오모는 밤중에 보아도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으로 名不虛傳(명불허전)이었다. 내일의 일정상 밤에 보았다는 점과 수리 중이라 내부를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았다. 며칠 전에 내린 눈 탓에 길거리의 눈은 녹았으나 응달진 성당 뒤쪽에는 눈이 조금 남아 있었다. 성당 지붕에서 땅바닥으로 바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조용한 밤거리에 제법 세차게 들린다.
두오모 광장 옆이 밀라노의 중심가인데 오페라로 유명한 스칼라 좌를 둘러 본 다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로 일컬어지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를 걸어 본다. 이 갤러리아 건축물은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1877년에 완성했다는데, 당시로선 최첨단인 높이 47m의 높은 아치형의 유리 지붕이었다 한다. 내부 바닥은 전부 대리석으로 깔려 있어 건물 내부가 한마디로 휘황찬란(?)하다. 현재는 전통 있는 찻집 cafe 와 부띠크, 세계적인 명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약간 쌀쌀한 겨울 날씨였다. 밀라노 길거리에서 만난 이탈리아인들은 대개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여인은 차안에서도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탈리아의 겨울 날씨는 우기인데다 추워서 뼛속을 우리하게 하는 느낌이라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런 습하고 추운 이유 때문에 겨울에는 역사가 오래된 전통적 호텔(오층 이하 호텔)의 0층과 1층 객실 요금이 싸다고 한다(참고 0 층이 우리나라 1층에 해당 됨). 반대로, 이탈리아의 여름은 덮기는 하지만 습기를 많이 포함하지 않은(고온 건습 )공기여서 그늘에 가면 시원하다고 한다. 주택의 창문 바깥쪽은 흰색 줄무늬로 통풍이 가능한 창 가리개를 대어 둔 것을 볼 수 있다. 여름에 안쪽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실내에서 돌리면 에어컨 없이도 그런 대로 시원하게 지낼 만하다고 한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낮에는 영상의 온도가 되었고 날씨가 맑아 우리(한국 여행객)는 옷을 가볍게 입고 다녔다.
대리석을 깔아라(?) 대리석은 까라라.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갔다. 피사로 가는 도중 세계적 대리석 생산지로 유명한 ‘까라라(carrara)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지명을 지났다. 질 좋고 풍부한 대리석이 있으니 많은 성당이나 건축물이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또한 300여 가지 다양한 색깔의 대리석들이 있어 색깔의 표현에 제한이 없었다고 하며 심지어 돌가루로 된 물감이 있었다고 한다.
건축에 쓰일 재료로는 나무가 돌보다 다루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나무보다 견고하고 수명이 오래가고 또 다루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재료인 대리석이 흔하다 보니 건축 재료나 조각의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고대 로마 왕족이나 귀족의 욕조나 현관 바닥이 대리석으로 조각되거나 모자이크로 많이 만들어 졌을 게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훌륭한 대리석 조각품들을 남겼으며 또한 오늘날 이탈리아의 웬만한 호텔의 욕조나 탁자가 대리석으로 만들어 진 것도 이렇게 풍부한 대리석 덕분이리라. 대리석이 말 그대로 까라라 지방에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부럽다 못해 샘이 났다.
또 하나 ‘바다(vada)라는 재미있는 지명을 도로 표시판에서 보았는데 Vada Sabbata라고 하는 곳으로 실제 이탈리아 주요 항구이면서 철도로 토리노와 연결되며, 제노바에서 프랑스 국경으로 가는 간선 철도와 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라고 한다.
더 높이 올라가고픈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지혜
피사의 사탑은 큰 돌덩이들을 지반이 약한 곳에 올리다 보니 탑을 처음 세울 때부터 기울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도록 첨단 공학적인 보강 조치를 했다고 한다.
피사는 피사의 사탑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곳에는 세계에서 몇 째 가는 큰 그 규모의 세례당과 본당도 있다. 1탑 2당 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본당은 아치형의 구조물 위에 또 다른 아치를 세워 올리는 형식으로 건물 규모와 높이를 키웠다. 건물 규모를 키우기 위해 기둥과 기둥 사이 상단 부를 아치형으로 하고, 그 위에 받침돌을 놓은 후 다시 양 측에 기둥을 세우고 두 기둥 사이를 아치형으로 하여 하중을 분산을 시키고 건물의 높이를 올렸다.
이렇게 대리석 돌로 만들어진 크고 웅장한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무게가 많이 나가므로 빗물 처리를 잘 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낙수가 지붕에서 바로 땅 바닥에 떨어지게끔 설계되어 있다. 지붕이 건물에서 다소 돌출되어 있다 해도 바람이 불면 낙수가 벽에 부딪혀 벽이 젖을 수밖에 없다. 이런 낙숫물을 조금이라도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낙수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 빗물받이인데 이를 ‘가고일’이라 한다. 가고일의 모양은 새나 짐승처럼 단순하게 처리한 것도 있지만 괴수나 그 지방의 문장 또는 성당 관련 건물에서는 성경적 인물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한편, 건물 크기가 커질수록 무게를 줄이기 위해 창을 많이 낼 수밖에 없으며 벽체를 얇게 하는 건축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창이 많아지고 유리 처리 기술이 발달되고 색유리 까지 도입되니 자연히 스테인글라스가 창문에 도입되었다. 이런 특징을 가진 건축 양식을 '고딕 양식'이라 한다. 건축 구조상의 필요와 관련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건축 양식 등이 발전해 나온 것이지만 그 당시의 건축가가 이러한 양식 이름을 미리 명명한 것이 아니다. 후세의 史家나 학자들이 그런 양식의 특징을 일컬어 무슨무슨 양식으로 명칭을 붙여주어 두루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공포[拱包]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63820&cid=40942&categoryId=32337
큰 건물을 짓겠다는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여 우리나라의 궁궐이나 큰 절집도 규모가 커지게 되자 공포[拱包]를 도입하게 된다. 공포[拱包]란 전통 목조건축에서 앞으로 내민 처마를 받치며 그 무게를 기둥과 벽으로 전달시켜주는 조립 부분으로, 결국 건물의 높이와 큰 지붕을 올리기 위해 고안한 건축 기법이다. 이러한 공포[拱包]가 기둥 위에만 있으면 柱心包 양식, 기둥과 기둥 사이에 까지 있으면 多心包 양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포를 올림으로써 지붕을 크게 올릴 수 있고 빗물(낙수)도 건물 벽에 덜 튀게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 한다
로마로 가는 도중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의 어원을 말해주는 고대 로마 도로를 보게 되었다. 이 도로는 군사적 목적이 주된 것이었지만 무역 등 물자 수송 수단으로의 역할도 컸다고 한다. 이 길의 양쪽엔 기다란 기둥처럼 생긴 줄기 위로 가지가 우산처럼 뻗어 나간 소위 ‘우산 소나무’(실제로는 전나무라는 얘기도 있다) 가로수가 있는 데 독특한 모양 덕분에 군사들이 나무 그늘에서 쉬어 갈 수 있었다는 도로이다.
고속도로에는 자동차의 나라답게 이 나라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 자동차가 주로 보이지만 독일의 벤츠, 베엠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차종들도 다수가 눈에 띄었으며 페라리도 가끔 볼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배기량이 큰 것은 보기 드물었고 대개가 소형 차종이었다. 분수에 맞지 않게 큰 자동차나 큰 집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국민성에 비해 실리적이며 검소한 국민성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이탈리아에는 도시 진입료가 있다
겨울인데도 한낮에는 일광 화상을 입을 것 같아 자외선 차단 크림을 듬뿍 바르고 다녔다. 저녁이 되자 푸른 하늘에 붉은 석양이 멋지다. 어둑해 지고 나서야 드디어 로마에 입성한다. 그런데 입성 비용이 만만치 않다, 버스 한 대당 18만원 정도의 도시 진입료가 있다. 로마 외각에서 보았던 로마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휘황찬란한 모습이 아니었다. 아마도 전기를 수입하는 에너지 수입국이라 절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로마 시내 안 쪽에는 현대식 높은 빌딩이 많지 않아 건물에서 비춰지는 조명이 적고 우리나라 도심에서 흔한 네온사인도 보기 드물어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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