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01-팔레르모,몬레알레
여행일자: 2014년 11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代父대부(God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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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중심이자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Sicilia, 영 Sicily)
시칠리아 관광 공식 사이트는 http://www.regione.sicilia.it/turismo/web_turismo/ 이다.
이중 영어 설명사이트는 Sicily for tourists 이며 Tourism Department 는 영어 지원이 안 된다.
http://www.onlysicily.com/enogastronomia-en.html 도 참고할 만하다.
지중해 중심이자 지중해 최대의 섬인 시칠리아는 삼각형(북쪽이 윗변, 남쪽이 꼭짓점) 모양의 섬으로 제주도의 14배 크기이다. 장화 모양인 이탈리아 반도의 남서쪽 끝(소위 장화 끝)에서 메시나 해협(폭 16km)을 사이에 두고 본토와 떨어져 있으며 이 섬의 남서쪽 바로 아래는 아프리카 튀니지다.
메시나 (Messina) 북쪽 지중해 지역을 티레니아 해(Tyrrhenian Sea)라 하고 동남쪽을 이오니아해(Ionian Sea)라 한다. 이오이아 해는 아르타·파트라스·코린트 만(그리스)을 포함하며 주요항구로는 시라쿠사와 카타니아(시칠리아), 타란토(이탈리아), 코르푸(이오니아 제도), 파트라이(그리스) 등이 있다. 이 이름의 기원이 된 이오니아 제도는 그리스 서부 해안 근해에 있다.
시칠리아는 북서쪽에 있는 주도(州都) 팔레르모(palermo)가 북위 38도이고 동남쪽에 있는 시라쿠사(siracusa)는 북위37도로,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엔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지중해성기후를 보인다. 유럽 와인 산지의 최남단 지역인 시칠리아의 와인은 그리스, 로마, 바이킹 등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시칠리아의 역사처럼 품종이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 데, 주정이 강화된 달고 진한 테이블 와인이나 값싼 화이트 와인이 대부분이다.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시칠리아의 역사
시칠리아는 지중해 중심에 위치한 탓에 수많은 침략을 받았고 수많은 정복자들이 거쳐 갔기 때문에 이 섬을 지배한 주인공은 시칠리아 역사만큼이나 다양하다. 거의 천 년의 세월에 걸쳐 그리스와 로마인, 비잔틴인, 아랍인(사라센), 노르만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에 의해 침략을 받았다. 시칠리아의 동부 지역 시라쿠사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고 서부지역은 카르타고의 통치를 받았었다. 포에니 전쟁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중세 초기에 반달족·동(東)고트족·비잔틴·아랍인 등에게 차례로 점령당했다. 831년 아랍인에게 점령 당한 뒤 북아프리카와의 활발한 무역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11세기엔 노르만족, 12~13세기엔 시칠리아 왕국(신성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시칠리아의 지배자는 독일의 슈타우펜 왕가, 프랑스의 앙주 왕가로 바뀌었다가 민중의 봉기로 아라곤 왕국의 피터 3세가 왕위에 올랐다. 한편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잃은 앙주 왕가는 나폴리 왕국을 세웠다. 16세기 이후 시칠리아는 다시 나폴리까지 통치하게 되었고 1816년 나폴리 왕국과 합병하여 양(兩)시칠리아 왕국이 되었지만, 1860년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되었다가 이후 가리발디가 일으킨 반란의 결과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고, 1947년 지방자치권을 얻었다. 출처: 위키 백과
시칠리아에 가려면 어떻게 가나
이태리 본토에서 시칠리아로 들어가려면 자동차나 기차, 배로 가는 방법과 비행기로 갈 수 있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시칠리아로 들어갈 때는 이탈리아 반도의 남서쪽 끝(소위 장화 끝)에서 배(페리)를 타고 메시나 해협을 건너가며, 배로는 나폴리에서 팔레르모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시칠리아로 가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많이 걸려 불편하므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비행기로 시칠리아로 들어갈 때는 로마나 피사에서 시칠리아 북서쪽의 팔레르모나 시칠리아 섬 동쪽에 있는 제 2의 도시 카타니아로 들어간다.
옛 팔레르모의 중심이었던 콰트로 칸티(Quattro Canti ‘네 모서리’라는 뜻)
‘모든 길은 콰트로 칸티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콰트로 칸티는 팔레르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와 마
퀘다 거리가 교차하는 구시가지 중심 사거리에 있다. ‘콰트로 칸티’는 스페인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1층은 봄, 여
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을 상징하는 조각이, 2층은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왕들의 조각이, 3층은 성녀 Cristina,
Ninfa, Oliva, Agata 의 조각이 있다. ‘콰트로칸티’는 팔레르모 시내 마차 관광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porto nuova(포르토 누오바=새 출입문)
porto nuova(포르토 누오바)은 팔레르모의 출입구로 1553년 카를로 5세가 튀지니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기 만든 문으로, 위는 피라미드 모양의 지붕이며 Arch형 돌기둥과 입구 벽에 조각된 아랍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칠리아의 상징 트리스켈리온(Triskelion)은 세 개의 굽은 사람 다리 또는 나선의 회전 형태다. 삼각형은 시칠리아의 모양을 뜻한다고 하기도 하고 중세 이슬람 지배기의 세 행정구역(Val di Manzara, Val di Noto, Val di Demone)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가운데 날개 달린 얼굴은 메두사의 얼굴이다. 다리 사이에는 밀알이 배치되어 있는데 시칠리아의 풍족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팔레르모의 출입구로 아랍인 조각이 있는 porto nuova(포르토 누오바-새 출입문의 뜻) |
시칠리아의 상징 트리스켈리온(Triskelion) |
시칠리아 각 도시의 문장과 특산물 |
八色鳥(팔색조)의 도시 팔레르모
괴테는 시칠리아의 주도(州都) 팔레르모(palermo)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도시’라 하였지만, 나는 八色鳥(팔색조)의 도시라 말하겠다. 팔레르모는 그 명성만큼이나 풍광이 아름답고 여러 지배 세력이 거쳐 간 탓에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섬 여기저기에 그리스 신전, 로마 건축, 노르만 교회, 비잔틴 모자이크와 돔, 화려한 바로크 교회, 웅장한 palazzo와 궁전 등 과거의 여러 시대의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고, 각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문화 충돌과 융합의 흔적도 느낄 수 있다. 고고학, 인류학, 지리학, 건축,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찾아봐야 할 곳이다.
시칠리아의 심벌로 익숙한 트리스켈리온 문양은 미케네 문명의 그릇, 리키아의 동전, 팜필리아의 금화, 피시디아와 같은 많은 고대 문명에서 나타나며 그리스 도기와 전사의 방패에도 이 문양이 새겨져 있다 한다.
시칠리아에서 비잔틴 문화를 만나다
팔레르모에서 8km정도 떨어진 몬레알레(Monreale)는 '왕의 산'이라는 뜻인데, 산 중턱에 있는 중세기 왕의 휴양지로 전망이 아주 좋다. 몬레알레 대성당(Monreale Cattedrale)은 12세기(1174~1189)에 지어졌는데 노르만·비잔틴·이탈리아·사라센 양식이 모두 종합된 양상을 보인다.
사라센이란 말은 중세 유럽인이 서(西)아시아의 이슬람교도를 부르던 말로, 십자군 이후 서유럽에서 이 호칭이 사용되었다. 아라비아 유목민인 사라센族(족)에 의해 정복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스페인 등을 포함한 사라센 제국에서, 이슬람교(회교)를 바탕으로 하여 7세기경부터 17세기경까지, 회교 사원인 모스크에 집중되어 표현된 회교 중심의 건축양식을‘사라센 양식’이라 한다.
사라센 양식의 특징 중 하나는 아라베스크 장식인데, 아라베스크(Arabesque)는 이슬람교에서는 우상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아랍 문자나 식물의 줄기와 잎을 도안화하여 당초(唐草) 무늬나 기하학 무늬를 배치시킨 것이다.
몬레알레 대성당
몬레알레 대성당 천정의 장식과 벽체의 문양과 상감(象嵌)은 아라베스크 장식(Arabesque ornaments)으로 되어 있다. 몬레알레 대성당 입구 현관의 三重(삼중) 아치는 노르만 양식이다. 또한 몬레알레 대성당은 직사각형(장방형)바닥에 제단뒤쪽은 반원형으로 앱스(apse 後陣)를 갖춘 형태로, 가운데 통로인 身廊(신랑)과 양쪽 복도에 해당하는 측랑(側廊)이 있으며, 身廊(신랑) 위쪽에 높은 창(高窓)을 가진 전형적인 바실리카(basilica) 式 구조이다.
몬레알레 대성당의 바실리카식 평면과 내부의 섬세한 황금빛 모자이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북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보았던 산아폴리나레 누오보의 바실리카와 산비탈레(San. Vitale)교회의 모자이크를 다시 보는 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존하고 있는 모자이크 중에서 가장 대형인 몬레알레 대성당의 모자이크 장식은 비잔티움(Byzantium)에서 훈련받은 장인들이 10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라 한다. 참고로 북 이탈리아의 라벤나는 5세기에서 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며 비잔틴 문화를 꽃피운 古都(고도)이다. 라벤나의 San Apollinare Nuovo(520년경)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예이다.
또 다른 아랍-노르만-비잔틴 문화(Arab-Norman-Byzantine style)의 자취
팔레르모의 두오모(Cattedrale di Palermo 팔레르모 대성당)는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약 600년에 걸쳐서 건축되었다. 처음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하였으나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여러 건축 양식이 덧대어져 12세기~18세기의 건축양식이 뒤섞여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한 대성당의 벽은 바로크 양식이고 정면은 고딕 양식이며, 성당 내부는 1771년부터 1809년까지 피렌체의 건축가인 페르디난도 푸가에 의해 네오클래식 양식을 갖추었다.
당 안에는 ‘Heliometer dome(헬리오미터 돔-天文 돔)’이 있는데, 돔 안의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온 태양빛이 태양빛이 성당 바닥에 새겨진 12황궁도 에 표시되는 것을 보아 계절과 날짜,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팔레르모 대성당 지하묘지에는 시칠리아의 왕들과 왕족들의 무덤도 있지만, 옷을 입은 미이라, 기도하는 모습의 미라, 붕대 감은 모습 등 여러 미라가 눈앞에 바로 나타나므로 임신부나 심약자는 관람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팔레르모 왕궁(Palazzo dei Normanni 노르만 왕궁)
팔팔레르모의 황금기는 시칠리아 왕국의 수도로 있었던 노르만족 시대(1072~1194)이다. 아랍-노르만-비잔틴 양식의 건축물은 1185년에 지은 팔레르모 대성당 외에도 팔라초 레알레(왕궁), 산토조반니 델리에레미티 교회(1132), 마르토라나 교회(1143), 그리고 쿠바 궁과 치사 궁 같은 팔레르모 시 주변의 궁전들이 모두 같은 시대에 건축된 것이다. 팔라초 레알레(Palazzo dei Normanni 노르만 왕궁)에 있는 예배당은 그 화려함이 지나칠 정도이다. 황금빛 빛나는 모자이크, 눈이 뱅뱅 돌아가는 아라베스크 문양과 상감 조각, 여러 시대에 만들어져 다양한 조각이 장식된 대리석 기둥을 감상하노라면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마피아(Mafia)와 영화 ‘대부’의 배경지 팔레르모
‘시칠리아’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영화 ‘대부’나 ‘마피아’일 것이다. ‘시칠리아 마피아’들은 1992년 자기들을 수사하는 팔코네, 보르셀리노 두 명의 검사를 살해하기도 했다. 팔레르모 국제공항의 이름은 현재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팔코네-보르셀리노' 공항이라고 명명되었다. 팔레르모의 중심 도로변에 있는 웅장한 규모의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의 입구 계단은 영화 ‘대부3’에서 꼴레오네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딸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영화 ‘대부’에 나오는 돈 마이클 꼴레오네의 본명은 비토 안돌리니로 이곳 시칠리아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비참하게 이탈리아 마피아의 폭력으로 살해되자, 그는 이들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뒷골목을 평정하고 대부(代父 Godfather)의 위치에 올랐다.
영화 ‘대부’에 나오는 돈 마이클 꼴레오네의 본명은 비토 안돌리니로 이곳 시칠리아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비참하게 이탈리아 마피아의 폭력으로 살해되자, 그는 이들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뒷골목을 평정하고 대부(代父 Godfather)의 위치에 올랐다.
‘마피아(Mafia)’하면 ‘범죄 조직’으로 동일시 될 정도인데, 세계적으로 이름난 마피아로는 시칠리아 마피아, 러시아 마피아,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중국 삼합회, 인도 암살단 등이 있지만 ‘시칠리아 마피아’가 원조로 불린다. 시칠리아 마피아가 명성(?)을 얻게된 것은 이들 조직의 일부가 미국으로 건너간 19세기 말부 터 20세기 초이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 둥지를 튼 이들은 매춘, 도박, 마약 거래 등 불법과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전형적인 범죄조직의 활동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요즈음 마피아들은 건설, 부동산, 쓰레기 처리, 공연, 관광, 호텔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마피아의 지하경제를 지상경제와 적절히 융합시켜 오고 있다 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마저 모호해진 상태라곤 하지만, 여전히 마피아들이 주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어 경찰과 검찰이 그들의 범죄를 추적 중이라 하며, 최근 뉴스엔 교황 프란시스코가 ‘시칠리아 마피아’를 파문한 후 일부 시칠리아 마피아들이 자수해 오고 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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