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독일-돌아보기 (3)-뮌헨,아우크스부르크,울름,뉘른베르크 

주요 단어: 뮌헨,뮌헨왕궁,뮌헨미술관 피나코테크,옥토버페스트,독일맥주,맥주순수령,

              아우크스부르크,종교전쟁,베스트팔렌조약,울름,도나우강,뉘른베르크,전범재판

여행시기: 2015년 02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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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독일 바이에른 주의 州都(주도) 뮌헨(독:München, 영어:Munich) 

               홈페이지: 뮌헨 시정부 www.muenchen.de/  참조: 브리태니커-뮌헨

독일 축구 분데스리가의 명문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듯이 뮌헨은 바이에른 주도(州都)로 독일에서

베를린과 함부르크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로 알프스 산맥 가장자리에서 이자르 강(이자르 [Isar River])

을 끼고 있다. 이자르 강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바로 북동쪽의 카르벤델 산악지대에서 발원하는데, 독일 

바이에른 평야를 흘러 뮌헨을 지나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레겐스부르크에서 오는 도나우 강에 합류된다. 

 

뮌헨의 상징 프라우엔 교회와 신시청사, 마리엔 광장

                   사진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00&contents_id=6078

 

1157년 바이에른의 공작 獅子公(사자공) 하인리히(하인리히 사자공[獅子公])가 뮌헨을 세웠고,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1세가 1825~48년 현대적인 뮌헨을 건설했다. 뮌헨은 8세기 베네딕투스 수도회를 기원으로 

하는 도시인데, 독일어 Mönch(‘수도사’)에서 도시 이름이 비롯되었으며 이 도시 문장(紋章)도 수도사이다. 

 

뮌헨 문장(紋章)

 

19세기에 음악·오페라 도시로서 명성을 떨치며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역사적 건축물로는 프라우엔 

교회, 옛 시청, 페터 교회, 미카엘 교회 등이 있다. 이곳은 금융 중심지이자 과일·야채·육류제품의 유럽 최대 

도매 시장이며, 맥주·식품·화장품·의류·정밀기기·출판·인쇄 등이 주요산업이다.  출처: 브리태니커:뮌헨

 

독일 맥주  내용 참조: 두산백과-맥주순수령 [German Beer Purity Law, 麥酒純粹令]

맥주의 나라 독일은 세계 1위의 맥주 소비국일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생산되는 맥주 종류만도 4,000 종이 

넘는다 한다. 바이에른 공작 빌헤름 4세의 ‘맥주는 보리와 호프, 물만으로 만들어야한다’는 ‘맥주순수령’을

지금도 따르는데 실제 맥주 양조과정에 있어서는 효모가 추가된다.

 

맥주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침전물의 위치에 따라서, 크게 상면(上面)발효와 하면( 下面)발효로 나눠지고,

또, 다시 알코올 함량이나 양조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나눠진다. 상면발효 맥주는 전통적인 

맥주 양조 방법으로써, 맥아즙과 효모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이 맥주통 위에 내려앉는 맥주를 

말하고, 그 종류에는 알트비어와 바이첸 비어 들이 있다. 하면발효 맥주는 맥아즙과 효모를 발효하는 과정

에서 생긴 침전물이 맥주통 아래 가라앉는 맥주를 말한다. 이처럼 맥주의 가공을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는데

그 종류에는 세계적 으로 유명한 라거, 메르첸비어, 보크 등이 있다.  내용 출처: 위키백과-독일의 맥주

 

19세기 중반 독일의 양조사 요셉그롤(Josef Groll)이 체코 필센의 양조장에서 하면발효 맥주를 만들었다.

황금색의 맥주는 하면발효 방식의 맥주이다. 내용 출처: 독일맥주투어추천 / 독일맥주종류추천

 

어둡고 탁한 빛의 흑맥주(黑麥酒) 슈바르츠 비어(Schwarzbier) 두산백과:슈바르츠비어

슈바르츠비어 (Schwarz 는 ‘검다’는 뜻)는 독일에서 생산되는 라거 타입의 흑맥주로 검은색 맥아 또는 볶은

맥아를 사용해서 검은색을 띠는 게 특징이다. 1500년대부터 튀링겐 주(Thüringen)와 작센주(Sachsen)에서

양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알코올 함량은 4.1% 에서 5% 정도로 가볍게 마시기 좋은 맥주이다.

 

뮌헨의 유명 맥주집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홈페이지 링크: Hofbrauhaus Freising: Altersabfrage                   

호프브로이하우스 직원(깃털달린 모자 쓴 사람)이 손님들과 담소중이다

 

독일 뮌헨에 있는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바이에른 왕실의 지정 양조장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집 중의 하나이다. 갖가지 맛있는 맥주와 화덕에 구운 피자, 치킨, 독일식 소시지 등도 먹을 만

하지만, 무엇보다 깃털 모자 쓴 중년의 술집 종업원이 손님사이에 섞여 앉아 일상 세상사에 관해 담소를 

하며 수다를 푸는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뮌헨 맥주잔의 단위는 ‘마스’로 1 리터들이의 커다란 맥주잔인데, 

마실 때는 잔을 높이 들 어 “Prost 프로스트=건배)!”라고 크게 소리친다.

 

세계 최고의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 Fest)

                            홈페이지: 옥토버페스트(www.oktoberfest.de)

 

독일 뮌헨에서는 매년 9월 마지막 2 주부터 10월 초까지 3주 동안 세계 최고의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

(Oktober Fest)가 열린다. 1810년 10월 12일 이곳 바이얀 지방의 군주 루트비히 1세(Ludwig I)가 북독일

Sachsen(작센)지방의 공주 테레지아(Theresia)와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시작된 축제이다. 이 축제에 참가해 

보는 것이 맥주 애호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소위 죽기 전에 경험해 봐야 하는 것(wish list) 중의 하나이다. 

 

 

뮌헨의 문화와 예술을 주도해 온 뮌헨 레지덴츠 왕궁 (München Residenz)

벽과 천정이 절묘하게 연결된 레지덴츠 의 안티콰리움

 

뷔텔스바흐 왕가의 궁전이던 뮌헨 레지덴츠 왕궁(München Residenz)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6세기 때 조성된 르네상스식의 안티콰리움(Antiquarium)은 궁전 내에서 가장 오래된 홀인데, 기둥엔 

알프레히트5세가 수집한 그리스‧로마풍의 흉상이 도열하고 있고,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벽이 천정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뮌헨 왕궁의 왕실 극장의 화려한 내부

 뮌헨(München) 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pinakothek.de/

뮌헨의 대표 미술관은 크게 3군데로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는 19세기 이전 작품이 있고, 19

세기 이후 작품들은 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에, 현대미술과 디자인 작품은 모던 피나코테크

(Pinakothek der Moderne)에는 전시하고 있다. 

 

14세기~18세기 유럽 회화를 전시하고 있는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는 세계 각국의 미술 작품

7,000점을 수집 , 전시하고 있는 데 각각의 전시실이 나라별, 시대별, 유파별로 잘 분류돼 있다.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뒤러의 독일 전시실을 비롯, 다빈치, 라파엘로의 이탈리아 전시실, 렘브란트의 작품이 

있는 네덜란드 전시실 등이 있어  그야말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신성 로마제국의 상징-쌍두 독수리


고흐의 ‘해바라기’- 뮌헨 미술관

피카소의 ‘앉아있는 여인’

 

길 건너의 ‘노이에(Neue) 피나코테크’는 19세기의 회화,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많다. 또한, 2001년에 문을 연 ‘모던 피나코테크’는 현대 예술, 건축, 디자인, 그래픽의 4개 

부문의 작품들을 전시 중인데 유럽 최대의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 세 미술관을 둘러보면

유럽의 중세, 근대, 현대 미술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역대 바이에른 왕들이 수집한 미술품들과 

나치 시대 때 수집한(?) 미술품들 덕분에 오늘날 뮌헨 미술관이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나치 관련을 일부 의심하는 것은 2013년에 '뮌헨의 아파트 사건'혹은 '구글리트 컬렉션‘으로 알려진 

나치 약탈 미술품의 대규모 발견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일반인 대상 강의나 체험 프로그램 진행하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우리네 

같으면 조금만 설명이 길어지면 ‘간단히 빨리빨리 합시다’라는 불평이 나올 법한 긴 강의 시간(수 십분)임에

도 불구하고, 강사가 설명하는 내용에 청중들은 끝까지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열정적 수강 

태도는 청소년에게서도 볼 수 있었는데, 강사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어가며 집중하며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일요일에는 각 미술관의 입장료가 1유로다. 수많은 거장들의 위대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데  단돈 1유로라니 미술관의 문턱을 아예 없앤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문화 예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오페라하우스에 마련된 강의나 체험 프로그램 등의 문화 체험 정책들이 이들을 문화 

강대국으로 만든 비결일 것이다.

 

'로만틱 가도'의 중심이자 종교 개혁의 중심이었던 아우구스부르크(Augusburg)

독일어 홈페이지:http://www.augsburg.de 브리태니커: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까지 장장 350Km의 '로만틱가도' 즉 '로마로 가는 길'은 독일 중부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 중심에 있는 아우구스부르크는 고대 로마 시대에 건설된 유서 깊은 고도(古都)이다.

이 도시는1276년 자유 제국 도시가 되었고, 1331년 슈바벤 동맹과 연합했다. 15,16세기엔 유럽의 금융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예술과 과학도 부흥시켰다. 이 도시는 30년 전쟁(1618~48)중 쇠퇴하여,

1806년 바이에른에 복속됐다.

 

이 도시는 종교개혁과 루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톨릭 신부였던 루터는 신학적, 교리적인 문제점(95개조

의 반박문)을 발표하고 면죄부 판매를 공격(1517)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기반을 흔들었다. 이단자라는 낙인

이 찍힌 루터는 파문의 위협을 받다가, 그 후 공개적으로 교황의 교서를 불사르자 1521년 파문당하였다. 

그는 종교 개혁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1546년 63세의 나이로 고향 아이슬레벤에서눈을 감았다.

 

그러나 신앙적 갈등은 정치적 상황의 전개와 얽히게 되었고.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는 구교(로마가톨릭)

와 신교(루터파)로 나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도모하기 위하여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제국회의를 소집하

였다. 이때 종교개혁을 일으킨 신교는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내용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공표

하였다. 

 

아우크스부르크 화의(和議) (Augsburger Religionsfrieden)  

          참조: 아우크 스부르크 화의 [Peace of Augsburg]-위키백과-

1531년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은 황제 칙령의 시행을 막으려고 슈말칼덴동맹(Schmalkaldischer Bund)을

체결했다. 1546년 신성로마 황제 카를5세는 슈말칼덴 동맹을 맺은 개신교 영주들을 공격하였는데, 

처음엔 작센공 모리쯔의 도움으로 승리하였지만 모리쯔의 반란으로 오히려 카를5세는 폐위되고, 결국 

1555년 개신교를 인정하는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맺게 되었다. 그 결과 독일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존을 인정하게 되었다. 즉,  한 행정 구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종교가 루터교인가, 가톨릭인가에 따라

그 지역의 종교가 결정되는 지역별 종교의 자유(cuius regio, eius religio)의 원칙이 체결되었다.

 

독일에서 아우구스부르크 화의가 맺어지고 평화가 왔지만,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전쟁(1562-98)이  
일어났다. 이 역시 개신교 칼빈波와 가톨릭의 싸움이었으며 결국 독일처럼 둘 사이의 공존을 허용한
낭뜨칙령 (1598)이 발표됨으로 끝나게 되었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협정은 루터교 외의 다른 종파에는 해당이 되지 않았는데, 완전한 신교에 대한 

인정은 30년 전쟁 (1618-48)이 끝나고 웨스트팔리아 평화 협정에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30년 전쟁(1618 -1648)과  베스트팔렌조약(=웨스트팔리아 조약)  

       참고링크1: 종교개혁시대의 유럽 각국의 변화 /

       참고링크2: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falen]-브리태니커

 

30년 전쟁(1618-1648)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따르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따르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이며, 1648년 30년 전쟁이 종결되고 독일 베스트팔렌 주의 뮌스터와 오스나브뤽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교전국이 많아 여러 나라의 대표자가 참석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이것을 

'세계 최초의 국제조약'이라 부르고 있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주요 내용을 보면 영토에 관한 조항은 스웨덴·프랑스 및 이들의 동맹세력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프랑스는 알자스, 메츠, 투울 지역 등 라인강 서쪽의 변경지역을 손에 넣었고, 스웨덴은 발트해를
장악하게 되었으며 서 폼메른(Pommern), 엘베 강과 베저강 사이의 땅을 각각 획득했다. 또한 네덜란드와
스위스 연방을 독립된 공화국으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독일 제국을 구성하고 있던 연방국가의 완전한
주권과 독립이 인정되었고 이들에게 신구교의 문제는 단지 영주의 선택사항이 됐다. 그리고 칼뱅파에게도
루터파와 가톨릭에 부여된 것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 줬다. 그 결과 제국 내의 3대 종교공동체, 즉 가톨릭
과 루터교 및 칼뱅 교회가 용인되기에 이르렀다.

 

도나우(Donau)江  내용 출처: 위키백과 도나우강 [Danube]  

                                            두산백과 : 도나우강 [Donau R., ─江]  

독일에서 발원하여 흑해 로 흘러드는 도나우강

                                                             그림출처: 두산백과-도나우강 [Donau R., ─江]

 

유럽의 江 중 유일하게 西에서 東으로 흐르는 도나우(Donau)江은 길이 2850KM로 볼가江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긴 江이다. 이 강은 독일의 슈바르츠발트(흑림 黑林)의 삼림 지대에서 시작하여 黑海(Black Sea)로

흘러 들어간다. 독일, 루마니아, 몰도바, 불가리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헝가리 등 10개국을 지나며 그 支流까지 포함하면 7개국이 더 추가된다. 다뉴브강 연안의 주요 도시로는 울름

(독일), 빈(비엔나. 오스트리아),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 부다페스트(헝가리), 베오그라드(세르비아) 등이

있다. 독일의 라인江 -마인江-도나우江 운하가 1992년 건설된 이후 도나우강은 北海의 로테르담에서 黑海의

술리나까지 전 유럽을 가로지르는 3500KM 水路의 일부가 되었다. 

 

도나우(Donau 독일어) 江은 국가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데 라틴어 두나비우스(Dunavius)에서 유래한다. 

영어로 다뉴브(Danube), 체코어로 두나이(Dunaj), 헝가리어로는 두나(Duna), 세르비아어·불가리아로는 

두나브(Dunav), 루마니아어로는 두너레아(Dunărea)로 불린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江(An der schonen blauen Donau)'과 루마니아의 군악대장 이바노비치의

작곡'도나우강의 잔 물결(Donau Wellen Walzer)'에서 말하는 강이다.

 

Ulm 울름  참조 링크: 울름 [Ulm]

도나우강의 중요한 교역로 중심에 있어 중세 시대에 크게 번성했던 울름(Ulm)은 오늘날 독일 바이에른洲  

서쪽 바덴뷔르템베르크洲에 있는 도시이다. 울름은 1530년 개신교를 받아들이고 1531년 슈말칼덴 동맹에 

속하였지만 30년 전쟁(1618-1648) 이후 쇠퇴했다. 1803년 바이에른에 귀속되었다가 1810년 뷔르템베르크

에 예속되었다. 20세기 중반에는 공업과 상업이 발전하여 이 지역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중세시대의 성벽·문·분수대는 상당수 남아 있다.

 

울름 대성당(Ulmer Münster)     위키백과: 울름 대성당

울름 대성당(울름교회) 의 내부
신 앙심이 새겨진 울름 대성당 성가대석
하늘로 향하는 신앙심을 표현하는 울름 대성당 첨탑

1377년에 세워져 1890년에 복구·완성된 울름성당은 원래 고딕 양식의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현재는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하늘로 향하는 신앙심을 표현하는 이 성당의 첨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딕 첨탑이

라고 한다(161m).

 

전범(戰犯재판이 열렸던 뉘른베르크(Nürnberg)

   참조 브리태니커: 뉘른베르크 [Nuremberg] / 위키백과: 뉘른베르크 재판 - 위키백과

나치 전당대회가 열렸던 장소(현재 박물관):패널 촬영

 

뉘른베르크의 명물: Brautwurst(소시지)를 끼운 빵

 

'붉은 바위가 있는 언덕'이라는 뜻인 뉘른베르크(Nürnberg)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산업의 중심지로, 유럽 최대의 크리스마스 마켓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열렸던 곳이다.  

나치 전당 대회가 열린 곳은 뉘른베르크 시 외곽에 있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유료).

 

독일은 지역마다 고유의 맥주와 소시지가 있어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뉘른베르크의 명물 bratwurst(돼지

고기로 만든  순대 모양의 구운 소시지)는 맥주와 먹어야 제 맛이다.

프라우엔 교회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패널 촬영

 

프라우엔키르헤(성모마리아 교회)옆 광장에선 매해 겨울, 유럽 최대의 크리스마스 마켓(장터)이 열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라도 뉘른베르크 시내엔 아이들 장남감이나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가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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