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한양) 탐구06-서울의 산(山),하천(河川),성(城)
(배경 영상,음악) 남촌 -소프라노 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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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중 한양의 (북쪽, 동쪽 일부) 산과 산줄기 모습
그림 출처 링크:
http://old.koreaa2z.com/digitaldaedong/area.php?kind=3&type=&sub=D00_07&kr=%C1%A6%B1%E2%C7%F6
산(山)이나 하천(河川), 성(城)의 이름들은 지명이나 지하철역 이름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 요약 퀴즈 ] 정답은 본문 내용 및 이 글 끝에...
A. 서울의 산(山)
[퀴즈 A-1] 서울 도심 바로 남쪽에 있어 남산(南山)으로 불리는 이 산의 옛 이름은?
[퀴즈 A-2] 서울 바로 북쪽에 있는 진산(鎭山)으로 삼각산으로도 불리는 산의 이름은?
[퀴즈 A-3] 서울 북동쪽에 있는 명산으로 5개의 암봉(岩峰)이 아름다운 이 산의 이름은?
[퀴즈 A-4] 서울 남쪽 경계에 있는 화강암 산으로 풍수지리상 불(火화)산인 이 산은?
B. 서울의 하천(河川)
[퀴즈 B-1] 서울 도심을 통과하면서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하천의 이름은?
[퀴즈 B-2] 서울 정릉천과 서울 북동쪽의 미아동, 수유동, 우이동, 도봉동과 노원구 지역의
물도 유입되어 합쳐진다. 사근동에서 청계천과 합류(총 14개 지류)한 뒤,
금호동과 성수동의 강변북로 교량 아래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의 이름은?
[퀴즈 B-3] 경기도 용인시 법화산에서 발원해 성남시를 거쳐 서울 종합운동장 옆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의 이름은?
[퀴즈 B-4] 경기도 의왕시의 청계산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군포시를 거쳐 산본천, 호계천과
합류하고, 시흥 수암리에서 발원한 목감천과 합류한 후 서울시에 들어와
도림천과 합류한 뒤 양화동 서쪽 끝에서 한강으로 들어가는 하천의 이름은?
C. 서울의 성(城)
[퀴즈 C-1] 산 정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성벽을 빙 둘러 마치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성(城)을 쌓는 방식을 oo식 산성이라 하나?
[퀴즈 C-2] 산의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는 방식을
oo식 산성이라 하나?
[퀴즈 C-3] 북한산의 산성으로 백제가 132년에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축조했으나 신라,
고구려의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고 신라 진흥왕은 553년 이곳에 순수비를 세웠다.
이후 조선 숙종(1711년)때 대규모로 축성한 이 산성의 이름은?
[퀴즈 C-4] 병자호란때 인조가 이 성에 들어가 47일간 항전하다, 끝내 삼전도(三田渡)
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게되었다. 이 성의 이름은?
[퀴즈 C-5] 서쪽으로 한강을 끼고 충적대지상에 구축된 평지토성으로 위례성(慰禮城)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토성(土城)의 이름은?
[퀴즈 C-6] 한강 남쪽 성내천(城內川)의 언덕에 자리 잡은 토성(土城)으로 서진(西晉)대
도기 조각이 나와 축성 시기는 3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 성의 외벽은 경사
면을 깎아내어 급경사와 단을 만들고 두 번째 단에는 목책(木柵)을 설치한 이
토성(土城)의 이름은?
[퀴즈 C-7]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한강변에 축조한 성으로 서울시 광진구
(워커힐 호텔 뒷산에) 있는 이 석성(石城)의 이름은?
[퀴즈 C-8]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산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 장군의
행주대첩에 큰 역할을 한 이 성(城)의 이름은 무엇인가?
A. 서울의 산(山)
사진 및 내용 출처: 위키백과 (서울의 산 목록) 및 ‘서울지명사전’에서 가져 왔다.
서울의 산(山) –가나다순-
개운산 - 안암산, 陳石山(진석산)으로 불리며, 성북구 안암동에 있다. 개운사를 품고 있다.
개화산(開化山) - 강서구 개화동에 있는 산으로서, 주룡산, 봉화뚝이라고도 한다.
관악산 - 높이 632m인 관악산은 서울 관악, 경기 시흥, 과천, 안양에 위치하며 벼랑 위에 자리 잡은 연주대가 유명하다.
구룡산 - 높이 283.2m. 서울 서초구에 위치하며 산이 높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즐기기에 제격인 산이다.
굴봉산 - 구로구 오류동 개봉동에 있는 산으로서 굴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45.6m·143m·105m의 세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궁산(宮山) -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산이다.
낙산 - 낙산(駱山)은 산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일명 타락산)으로 불린다.
서울시 종로구와 동대문구 성북구에 걸쳐 자리한 산으로 서울 도성의 좌청룡(左靑龍)
동산(東山)에 해당된다. 풍수지리상 서쪽 우백호의 인왕산과 대치된다.
남산(옛 이름은 목멱산) - 높이 262m. 서울 중구, 용산구에 위치. 옛 이름은 목멱산이다.
노고산 - 높이 106m인 노고산은 서강대학교 뒤편에 위치하며 밋밋한 구릉성의 산이다.
대모산 - 높이 293m. 서울 강남구에 위치하며 근처 아파트 주민들이 휴식공간으로 자주 찾는 산이다.
도봉산 - 서울 북동쪽 경계에 있으며 최고봉인 자운봉(紫雲峰 739.5m)과 만장봉(萬丈峰)·
선인봉(仙人峰), 오봉(五峰)·여성봉 등 5개 岩峰과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산이다.
매봉재산 -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으며 서리풀 공원과 이어지는 방배근린공원이 있다.
배봉산 - 높이 105.7m인 배봉산은 산전체가 공원으로 전농동과 휘경동에 속해 있다.
백련산 - 높이 215.5m의 백련산은 서울 은평구, 서대문구에 위치한 낮은 산으로 산내에는
백련사가 있다. 응암동, 구파발, 홍은동 일대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이다.
봉화산 - 높이 137,9m. 중랑구 신내동과 묵동, 중화동, 상봉동에 둘러싸여 있다.
북악산 - 높이 342m. 경복궁의 뒤쪽에 위치하며 산 정상을 따라 동서를 이어주는 길
(북악스카이웨이)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 받고 있다.
북한산 – 높이 836.5m. 서울 북쪽 경계에 있으며 백운대, 인수봉, 국망봉(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있어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린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수도 아주 가까이에 있는 명산으로 국립공원이다.
인수봉은 바위 타는 사람(rock climber)의 성지이다.
불암산 - 높이 508m. 서울 동쪽 경계에 있으며 사찰로는 불암사가 있고 정상부분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삼각산 => 북한산
삼성산 - 높이 480.9m인 삼성산은 서울 관악구, 구로구, 경기 안양시에 위치하며 원효대사가
의상, 윤필과 입산수도(入山修道)하였다 해서 삼성산(三聖山)이라 부른다.
성산 - 마포구 성산 제1동에 있는 산으로서, 성메, 성미라고도 한다. 산이 성과 같이 둘러있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수도산 -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산으로서, 봉은사 뒤에 있는 해발 75m의 산이다
수락산 - 높이 638m. 서울 동쪽 경계에 있으며 금류폭포와 내원암이 있는 바위 경치가 뛰어난 산이다.
아차산 - 높이 287m. 서울 중랑구와 경기 구리시에 위치하며, 삼국시대의 전략 요충지로
온달장군의 전설이 전해 온다. 대성암, 석곽분, 봉수대 등이 있다.
안산 - 높이 295.9m인 안산은 무악산(毋岳山)으로 불리며,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하여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보이며 봉원사와 봉수대가 있다.
연희산(연희고지) - 서대문구 연희 제1,2동에 있는 높이 88m, 65m, 104m의 고지를 통틀어 일컫는다.
오패산(=벽오산) - 강북구 번동, 미아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매봉짜, 빡빡산이라고도 한다.
와룡산 - 구로구 궁동에 있는 산으로서, 항굴 앞산으로 소가 누운 형상인 데서 유래된 이름 이다.
궁동산, 궁동와룡산이라고도 한다.
와우산 - 마포구 서강동에 있는 산으로 홍익대학교 뒷산이다. 소가 누운 모양의 산이다.
용마산 - 높이 595.7m. 경기도 광주에 위치하고 있지만 교통이 편리해 찾는 사람이 많다.
용왕산 - 높이 해발 78m로 옛날에는 엄지산(嚴知山)이라고 불렸다. 양천구 목동에 있다.
우면산 - 높이 293m로 서울 서초구, 과천시 경계를 이루며 예술의 전당 뒤편에 있다.
우장산 - 높이 98.9m로 화곡5동 및 화곡6동 및 발산2동에 걸쳐 분포해있는 화곡동의 진산(鎭山)이다.
응봉산 - 응봉산은 성동구 응봉동에 자리한 해발81M의 산이지만 남쪽으로 한강을 내려다 보이고
봄이면 온통 개나리꽃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개나리동산이다.
인릉산 – 높이 327m. 순조의 능인 인릉의 朝山이 되는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다.
인왕산 - 높이 338.2m의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하는 산으로 바위가 아름답고 정상에서 보는 (서울)도시 풍경이 멋지다.
풍수지리상 서쪽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한다.
일자산 - 일자산(一字山)은 서울특별시 강동구, 경기도 하남시 경계에 있는 산이다.
천마산 - 높이 144.4m인 천마산은 서울 마천동과 하남시 사이에 위치하며 면적은 174,710 ㎢이다.
정상에서 송파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좋다.
청계산 - 높이 618m. 서울 남쪽 경계(서울 서초구, 경기 과천시, 의왕시, 성남시)로, 정상에서
과천 서울대공원,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경마장이 한눈에 보인다.
청량산 - 높이 480m. 하남시와 광주군 사이에 위치하며, 산 안에 남한산성도립 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탑산 -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산으로서, 탑이 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호암산 - 높이 390m로 관악산 전체의 서쪽에 위치한다. 금주산, 금지산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호랑이 형상을 닮아 일명 호암산(虎巖山)이라고도 한다.
화장산 - 동작구에 있는 국립현충원의 주산으로서, 공작봉이라도 한다.
B. 서울의 하천(河川)
서울시 안에 있는 하천은 모두 35개이다.
내용 참조 한 곳: <서울의 역사와 문화> 홈페이지 링크주소: http://history.seoul.go.kr
서울시 안에 있는 하천은 모두 35개이다. 이 가운데 국가 하천은 한강, 중랑천, 안양천 3개가 있고 지방 1급 하천으로는 청계천이 있다. 나머지 31개의 하천은 모두가 지방 2급 하천이다. 31개의 크고 작은 지방 2급 하천들은 북쪽과 남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합류하여 서해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나 서울시에 있는 총 31개의 지방 2급 하천 가운데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하천들이 많다. 이미 완전히 복개가 된 하천으로는 만초천, 면목천, 월곡천, 녹번천, 봉원천, 삼성천이 있으며 홍제촌, 도림천 등은 반복개(半覆蓋) 상태이다.
서울의 하천
그림참조 링크: https://50plus.or.kr/upload/im/2018/05/c0b0f18c-3ab3-4a60-b99e-603bcad1d0ab.jpg
서울에 있는 하천들을 한강을 중심으로 나눠보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
(서울)북동쪽에 위치: 도봉천, 방학천, 당현천, 우이천, 대동천, 가오천, 화계천, 월곡천,
(서울)동쪽에 위치: 묵동천, 면목천, 전농천, 중랑천,
(서울)중앙에 위치: 청계천
(서울)정북쪽에 위치: 정릉천, 성북천, 삼청천
(서울)서북쪽에 위치: 홍제천, 봉원천, 만초천, 녹번천, 불광천, 난지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
(서울)남동쪽에 위치: 고덕천, 성내천, 여의천, 양재천, 세곡천, 탄천
(서울)남쪽에 위치: 반포천, 사당천, 샛강
(서울)남서쪽에 위치: 대방천, 봉천천, 신림천, 도림천, 오류천, 시흥천,
목감천(개화천), 안양천
지방1급 하천 : 1개소 (청계천)
지방2급 하천 : 31개소 (갈색은 한강 북쪽에 ,분홍색은 한강 남쪽에 위치)
- 한강 수계 : 홍제천, 봉원천, 반포천, 탄천, 성내천, 고덕천
- 중랑천 수계 : 도봉천, 방학천, 당현천, 우이천, 목동천, 면목천, 전농천
- 안양천 수계 : 개화천(목감천), 도림천, 시흥천
- 청계천 수계 : 성북천, 정릉천
- 홍제천 수계 : 불광천
- 반포천 수계 : 사당천
- 탄천 수계 : 양재천, 세곡천
- 우이천 수계 : 화계천, 가오천, 대동천
- 도림천 수계 : 대방천, 봉천천
- 개화천 수계 : 오류천
- 정릉천 수계 : 월곡천
- 불광천 수계 : 녹번천
- 양재천 수계 : 여의천
중랑천(中浪川) 내용출처: 중랑천-서울지명사전
경기도 의정부시 수락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양주군에서는 광사천, 어둔천과 합류되고, 의정부시에서는 부용천, 백석천, 회룡천, 호원천 등의 지류와 합류되어 서울특별시로 유입되어 총 14개 지류를 합류하여 한강으로 유입되는 국가하천이다.
서울 정릉천과 서울 북동쪽의 미아동, 수유동, 우이동, 도봉동과 노원구 지역의 물도 합류되고 사근동에서 청계천과 합류(총 14개 지류)한 뒤, 금호동과 성수동의 강변북로 교량 아래에서 한강에 합류된다. 서울에서는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 7개구를 거치는 동안 각 행정자치구의 자연스런 경계 역할을 한다. 과거 중랑천은 도봉동에서는 ‘서원천(書院川)’, 상계동 부근에서는 한강의 새끼 강이라는 뜻으로 ‘샛강’이라고 불렸다.
청계천(淸溪川) 내용출처: 청계천-다음백과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북악산ㆍ인왕산의 부근에서 발원하여 시가지 중심부를 서쪽에서 동쪽
으로 통과하여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청계천에는 모두 24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광교(廣橋)ㆍ수표교(水標橋)ㆍ관수교ㆍ오간수교(五間水橋) 등이 유명하였다. 그 중 수표교는 수위 측정을 위한 수표석(水標石)과 함께 유명하다. 수표석(水標石)은 1973년 10월에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청계천 다리에는 조선 시대 전설과 풍류를 말하는 세시풍속이 있는데 연날리기와 답교(踏橋)는 특히 유명하다.
탄천(炭川) 내용출처: 탄천-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기도 용인시 법화산에서 발원해 성남시와 서울특별시 강남구·송파구를 지나 서울 종합운동장 근처에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탄천은 성남시의 옛 지명인 탄리(炭里)에서 비롯되었다. 탄리는 지금의 성남시 태평동·수진동·신흥동 등에 해당하는 곳으로 과거에는 독정이·숯골 등의 마을이 있었다. 조선 경종 때 남이(南怡) 장군의 6대손인 탄수(炭叟) 남영(南永)이 이곳에 살았는데, 그의 호 탄수에서 탄골 또는 숯골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안양천(安陽川) 내용출처: 안양천 -서울지명사전
길이는 35.1㎞이고 서울의 한강지류 가운데 중랑천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갈천, 앞개울, 대천, 인덕원천(상류), 학고개천(중류), 기탄, 오목내(하류)라고도 한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청계산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왕곡천과 오전천을 합류한 후 군포시를 거쳐, 다시 당정천과 산본천, 호계천을 합류한 후 안양천 지류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유역면적을 가지고 있는 학의천을 만난다.
다시 수리산에서 발원한 수암천과 합류하고, 다시 삼성천을 만나고 시흥시 수암리에서 발원한 목감천을 만나고 서울특별시 경계를 넘어서는 도림천과 합류한 뒤 양화동 서쪽 끝에서 한강으로 들어간다.
C. 서울의 성(城)들 참조할 만한 홈페이지: 한강사업본부www.seoul.go.kr
-(알림)- 이하 내용은 해당 참조 링크에서 가져 온 것으로 내용을 편집 가감하였다.
산성의 축조 방식
테뫼식(山頂式) 산성: 산 정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성벽을 빙 둘러 마치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성을 쌓은 것.
포곡식(包谷式) 산성: 산의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는 방식의 산성
북한산성 참조링크1:북한산성 –다음백과 , 북한산성 -사진출처 위키백과
북한산성(北漢山城)은 북한산에 쌓은 산성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번지에 위치한다.
북한산성(北漢山城)은 북한산성은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132년에 축조했다. 고구려, 신라의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고 신라는 553년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웠다. 이후 고려 현종이 성을 증축했으며 숙종(1711년)때 대규모의 축성 공사를 실시해서 석성을 완성했다.
현재 삼국시대 토성은 약간 남아 있을 뿐이고, 대부분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이 남아 있다. 14개의 문, 3개의 장대와 함께 유사시 어가를 북한산성으로 옮길 행궁을 건립하였다. 둘레가 7,620보(步)이다.
지형에 따라 성벽 없이 여장(女檣)만 쌓은 곳도 있는데, 그 길이는 1,457보이다. 여장(女檣)이란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으로 적을 관측하고 공격하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여자도 넘을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탕춘대성(蕩春臺城) 내용 및 사진 출처: 홍지문 및 탕춘대성 -위키백과
홍지문 및 탕춘대성(弘智門 및 蕩春臺城)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1976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이다. 이 산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며, 한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 하였다.
조선왕조 숙종은 왕 37년(1711)에는 북한산성을 축성하였고 다시 탕춘대성을 축조하였다. 탕춘대성 전체의 길이는 약 4km 이었고 성내에 연무장(鍊武場)으로 탕춘대 터(오늘날 서울세검정초등학교)에 연융대(鍊戎臺)를 설치하는 한편, 비상시를 대비하여 선혜청(宣惠廳) 창고와 군량창고인 상·하 평창(平倉)을 설치하였다. 그 후 탕춘대성의 축성과 함께 그 성안을 총융청(摠戎廳) 기지로 삼고, 군영도 배치하였다.
현존하는 탕춘대성은 도성이나 북한산성과 같이 주 성벽과 여장(女墻)을 쌓았으며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성구(城口)를 뚫어 놓았다. 현재 홍지문이 복원되어 있고, 상명대학교 북쪽으로 성곽이 남아있다.
남한산성(南漢山城) 내용 출처: 남한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한산성(南漢山城)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이다.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보(堡)·누(壘)·암문·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있다.
남한산성의 수비는 총융청이 맡아 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이 따로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전·좌·중·우·후의 5관(五管)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前營將)은 남장대(南將臺)에,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지금은 서장대(일명 守禦將臺)만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삼전도(三田渡)의 굴욕' 관련 링크: 삼전도의 굴욕 - 나무위키
1637년 2월 24일(인조 15년 음력 1월 30일)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한양으로 빠르게 남하하자 조선의 왕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 하였다. 하지만 청군이 길을 막아 강화도로 갈 수 없게 되었고 이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에 피신하였던 백성들이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힘들어하는 상황과 성내의 물자가 떨어지자 47일간 대항하였지만 끝내 청나라와 치욕스러운 강화(말이 강화조약이지 항복이나 다름없었다)를 맺으니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 한다. 삼전도(三田渡)는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에 있었던 나루로 삼밭나루라고도 불렸다.
인조는 세자와 신하들을 이끌고 남한산성 문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풍납토성(風納土城) 내용출처: 풍납동토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흔히 풍납토성(風納土城)=풍납동토성(風納洞土城)이라고도 하는 데 『삼국사기』백제본기(百濟本紀)에 나오는 위례성(慰禮城)으로 추정하는 견해이다. 또한, 평고성을 풍납토성으로 보고, 이 성이 서울 광진구 광장동 뒷산에 있는 아차산성(阿且山城)과 연결되어 방어적 기능을 담당했던 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서북쪽으로 한강에 직면하고 있고, 강 맞은편에는 아차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성내천을 사이에 두고 2.5km 거리에 몽촌토성이 있으며, 동쪽으로 이성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풍납토성은 서쪽으로 한강을 끼고 충적대지상에 구축한 순수 평지토성으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남북 장타원형을 띠고 있다. 즉, 북벽과 남벽은 짧은 벽으로 직선에 가깝고, 동벽과 서벽은 단벽에서 둔각을 이루며 꺾이는데, 그중 동벽은 중앙부가 완만한 형태를 띠고 있다.
풍납토성은 현재 북벽과 동벽, 남벽 등 일부가 약 2.1㎞ 정도가 남아 있으며, 유실된 서벽을 포함한다면 전체 길이 3.5㎞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몽촌토성(夢村土城) 내용출처: 서울몽촌토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가 성립된 시기에 만들어진 도성(都城)이다. 성벽 조사에서 출토된 중국 서진(西晉)대 전문 도기 조각이 나오므로 토성을 축조한 연대의 상한은 3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삼국사기』등에 기록된 것처럼, 고구려의 남진에 의해서 한성(漢城)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천도하였던 475년까지 백제의 도성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판축 성토에 의한 토성 축성은 백제 한 성기를 중심으로 한 백제 토성의 유형과 축성 방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몽촌토성은 한강 남안 성내천(城內川)을 끼고 있는 언덕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성의 외벽은 언덕 경사면을 깎아내어 급경사와 단을 만들고 두 번째 단에는 목책(木柵)을 설치하였다. 현재 목책은 본성의 서북벽·동벽과 외성 등 3곳에서 확인되었는데, 생토암반층에 큰 나무를 박아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보조기둥을 세웠다. 목책의 높이는 2m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 목책은 발굴 조사된 원래의 목책 기둥 자리를 따라 그 위에 추정 복원한 것이다.
몽촌토성의 북쪽 기슭에는 1992년 몽촌역사관이 건립되어 한강 유역을 포함한 백제문화의 대표적인 유적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암사동·명일동·역삼동의 선사시대 주거지와 가락동·방이동·석촌동의 고분군, 몽촌토성의 유적 모형과 출토 유물을 전시하여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차산성(阿嵯山城) 내용출처: 아차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서울특별시 광진구에 있는(워커힐 호텔 뒷산에 있는) 아차산의 경사진 산허리 윗부분을 둘러쌓은 테뫼식(山頂式) 산성으로. 삼국시대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아차산성(阿嵯山城)은 아단성(阿旦城)·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 등으로 불리는데 <광개토왕비문>의 영락 6년조에 광개토왕이 백제로부터 공취한 58성 가운데 아단성의 이름이 보인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이끈 군대가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킴에 따라 개로왕이 생포되어 아단성 아래서 처형되었다. 이렇게 아단성은 고구려 군대가 주둔한 군사진지였으며, 그 뒤 77년간 한강 유역을 통치한 고구려의 전방기지로서 기능하였다.
또 조선 후기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아차산에는 양진성과 아차산고성이라는 2개의 성곽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진성은 나루를 방비하기 위한 성곽으로 현존하는 유구나 문헌자료를 통해 볼 때 아차산의 지봉(芝峰)을 따라 광나루 북방에 위치한 광진성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아차산고성은《대동여지도》에 보이는 망우리 쪽 아차산에 소재하고 있는 성곽을 아차산고성의 유지(遺址 남은 터)로 보고 있다.
아차산성은 석축성으로 기본 형태는 테뫼식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산 정상부를 돌아가며 축성한 테뫼식과는 달리 아차산 능선 말단부의 남쪽 지역을 적절히 이용하여 작은 계곡이 포함되도록 함으로써 성 내에 우물과 작은 계곡이 흐르는 포곡형 산성에 가까운 형태이다.
한편 장한성의 유구(遺構 남아 있는 구조물)는 본래 뚝도 부근의 한강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고지를 따라 아차산에 이르고 다시 망우리에 이르는 산줄기를 따라 용마봉에 못 미치는 벼랑바위산에 이르기까지 산마루를 따라 석성 터가 있으며, 구리시 아천동까지 그 유구가 나타난다. 이를 장성 또는 장한성이라 하는 데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 고적조에 '장한성이 한강 위에 있는데 신라 때 여기에 중요한 진영을 두었으며 고구려에 의해 점령당하였다가 군사를 동원하여 수복하고, 장한성가(長漢城歌)를 지어 그 공을 기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성은 산 정상이나 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토성이나 석성이 아니고 산 정상을 지나 등선을 따라 일직선 형태로 축조된 성벽으로 하남시 춘궁리에 있는 이성산성과 축성양식이 같은 신라시대의 산성으로 특히 삼국통일 전쟁 수행을 위한 북진기지 가운데서도 군사적 요충으로 추정된다.
행주산성((幸州山城) 내용출처: 행주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행주산성은 삼국시대부터 토축(土築) 산성이 있었다. 행주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통일신라시대(7∼8세기경으로 추정)로 추정하고 있다. 강안(江岸)의 돌출된 산봉우리를 택하여 산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內城)과 북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外城)의 이중구조를 하고 있으며 둘레가 약 1,000m다.
백제의 초기 영역에는 서해안으로의 수운(水運)과 관계된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특히 나당전쟁(羅唐戰爭) 때까지 남북교통의 요충에 해당하여 고구려와 신라의 공방전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행주(幸州) 산성은 해발 124.8m의 덕양산의 해발 70∼100m에 이르는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山頂式) 산성으로, 남쪽은 한강이 연하여 있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昌陵川)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흘러들고 있어 자연적인 해자(垓字)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산성의 동남쪽과 남쪽 일대는 자연 경사가 매우 급하여 자연적인 요새로서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행주산성에서 조선시대 임진왜란(권율(權慄) 장군의 행주대첩) 당시 부녀자들까지 동원되어 관민(官民)이 일치단결하여 싸웠다. 특히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여기에서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행주대첩으로 인하여 조선군과 명나라 군사가 사기를 회복하여 왜적을 남으로 쫓고 정부가 환도(還都)하게 되었으니 그 의의는 실로 크다 하겠다.
호암산성(虎巖山城) 내용출처1: 서울호암산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내용출처2:『한강의 어제와 오늘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발간, 2001.10.)』수록내용 발췌함
호암산성(虎巖山城)은 금천구 시흥2동 산 93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상으로 서울의 남서쪽에 해당된다. 산성의 입지조건으로 볼 때 호암산성은 안양 금천 일대의 평야를 관할하는 요새지로서 서쪽의 해안과 북쪽으로 침입하는 적에 대한 공격과 방비를 위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발 347m의 조그만 봉우리를 최고봉으로 하는 산 정상의 성 내부는 비교적 평탄지형을 이루고 있다. 유적의 동쪽으로 직선거리 약 2km 지점에 해발 629m의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가 위치하고, 동남방 1km 지점에 해발 460m의 삼성산 정상이 위치하고 있다.
문무왕 12년(672)의 '한산주에 주장성(晝長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주목된다. 출토된 유물·유적과 지리적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문헌기록과 비교 검토한 결과, 호암산성의 축성 시기는 문무왕 12년경으로 보고 있다. 신라가 당나라와의 전쟁 때 한강을 넘어 수원 지역으로 내려가는 육로와 남양만으로 침입하는 해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 공격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지였다고 하겠다.
또한 호암산성 발굴에서 통일신라시대 이외에 고려시대의 유물도 많이 출토되었고, 임진왜란 당시 한성 수복을 위해 행주산성과 연합한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 장군이 인솔하는 조선 군사들이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 요약 퀴즈 ]
[퀴즈 C-4] 병자호란때 인조가 이 성에 들어가 47일간 항전하다, 끝내 삼전도(三田渡)
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게되었다. 이 성의 이름은?
[퀴즈 C-5] 서쪽으로 한강을 끼고 충적대지상에 구축된 평지토성으로 위례성(慰禮城)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토성(土城)의 이름은?
[퀴즈 C-6] 한강 남쪽 성내천(城內川)의 언덕에 자리 잡은 토성(土城)으로 서진(西晉)대
도기 조각이 나와 축성 시기는 3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 성의 외벽은 경사
면을 깎아내어 급경사와 단을 만들고 두 번째 단에는 목책(木柵)을 설치한 이
토성(土城)의 이름은?
[퀴즈 C-7]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한강변에 축조한 성으로 서울시 광진구
(워커힐 호텔 뒷산에) 있는 이 석성(石城)의 이름은?
[퀴즈 C-8]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산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 장군의
행주대첩에 큰 역할을 한 이 성(城)의 이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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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퀴즈 답 ]
A. 서울의 산(山)
[퀴즈 A-1] 서울 도심 바로 남쪽에 있는 남산(南山)의 옛 이름은? 답.=> 목멱산(木覓山)
[퀴즈 A-2] 서울 북쪽에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불리는 산의 이름은? 답.=> 북한산
[퀴즈 A-3] 서울 북동쪽에 있는 5개의 암봉(岩峰)이 아름다운 이 산은? 답.=> 도봉산
[퀴즈 A-4] 서울 남쪽에 있는 화강암 산으로 풍수상 불(火화)산인 이 산은? 답.=> 관악산
B. 서울의 하천(河川)
[퀴즈 B-1] 서울 도심을 통과하면서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하천의 이름은? 답.=> 청계천
[퀴즈 B-2] 서울 정릉천과 서울 북동쪽 미아동, 수유동, 우이동, 도봉동과 노원구 지역의
물이 사근동에서 청계천과 합류되어 한강에 합류되는 하천은? 답.=> 중랑천
[퀴즈 B-3] 용인시, 성남시를 거쳐 종합운동장 옆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은? 답.=> 탄천
[퀴즈 B-4] 경기도 의왕시, 군포시를 거쳐 산본천, 호계천과 합류하고, 시흥 목감천과
합류하고 도림천과 합류 후 한강으로 들어가는 하천의 이름은? 답.=> 안양천
C. 서울의 성(城)
[퀴즈 C-1] 정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성벽을 빙 둘러 마치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성(城)을 쌓는 방식을 oo식 산성이라 하나? 답.=> 테뫼식(山頂式)
[퀴즈 C-2] 산의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는 방식을
oo식 산성이라 하나? 답.=> 포곡식(包谷式) 산성
[퀴즈 C-3] 신라 진흥왕이 순수비를 새웠던 산성의 이름은? 답.=> 북한산성
[퀴즈 C-4] 병자호란때 인조가 이 성에 들어가 47일간 항전하다, 끝내 삼전도(三田渡)
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게되었다. 이 성의 이름은? 답.=> 남한산성
[퀴즈 C-5] 위례성(慰禮城)으로 추정되고 있는 토성(土城)의 이름은? 답.=> 풍납토성
[퀴즈 C-6] 한강 남쪽 성내천(城內川)의 언덕에 자리 잡은 토성(土城)으로 서진(西晉)대 도기 조각이 나와
축성 시기는 3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 성의 외벽은 경사면을 깎아내어 급경사와 단을 만들고
두 번째 단에는 목책(木柵)을 설치한 이 토성(土城)의 이름은? 답.=> 몽촌토성
[퀴즈 C-7]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한강변에 축조한 성으로 서울시 광진구 (워커힐 호텔 뒷산에) 있는
이 석성(石城)의 이름은? 답.=> 아차산성
[퀴즈 C-8]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산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 장군의 행주대첩에 큰 역할을 한
이 성(城)의 이름은 무엇인가? 답.=> 행주산성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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