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비틀즈의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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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말에 음력설을 끼고 연휴가 며칠 있기에 서유럽 관광을 다녀왔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
"관광버스 타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이미 미디어나 책을 통해 무수히(?) 본 풍광이나 건물을 재확인하는 것은 여행’이 아닌 ‘관광’입니다. 처음에는 경치, 유적, 건물을 중심으로 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자칫 허망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이며, 사람과 대화하고 부딪히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여행의 정수(精髓)를 맛보게 됩니다.” 라고 만화가 조주청 씨는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 여행은 관광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문 여행가가 아닐 진데 ‘여행’이던 ‘관광’이던 상관있으랴. 용어에 억매이지 않고 열심히 다녀 보기로 했다. 서유럽 관광은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을 함께 감상하는 좋은 코스이므로 해당 국가의 경관이나 역사,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관광이나 여행이 더 재미있고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출발하기 전에 서양 건축 양식에 대한 사전 지식은 조금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어 ‘서양미술양식’에 대해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를 찾아 출력하여 읽어 보고 현지에 가서도 참조하기로 하였다.

     

스산한 분위를 보이고 있는 구름 낀 영국 하늘

한국에서 출발하는 날은 겨울 날씨이긴 했지만 그리 춥지 않은 쾌청한 날씨였고 고속도로 사정도 좋아 인천공항에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이번 유럽 여행의 가이드와 약속된 시간에 만나 출국 수속을 마친 후 모 은행의 여행자를 위한 쉼터(SH은행 공항 라운지)에서 출발 시각을 기다렸다.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가이드라 부르지만 실제 그네들은 TC(tour conductor) 즉 인솔자로 불러 주길 원했다. 가이드란 현지에서 안내해 주는 사람을 순수한 의미의 가이드 TG(tour guide)라 한다고 했다.

 

-작고 조용한 듯하지만 힘세고 자긍심 강한 영국-
약 12시간의 비행 끝에 런던 히드루 공항에 내렸다. 날씨가 잔뜩 흐린 오후 5시 반경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깜깜해진 느낌이었다. 가로등이 나트륨등인지 노란빛으로 어둠 속에 빛났다. 런던의 위도가 서울보다 높고 북반구 겨울이라 벌써 해가 진 것이었다. 런던 특유의 눈 비오는 날씨는 아니었지만 우중충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영화 ‘폭풍의 언덕’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떠나기 전의 여행사의 스케줄에는 런던에서의 저녁 식사는 한정식으로 우아하게(?) 먹기로 예약되었지만 그날따라 현지 식당을 몽땅 전세 낸 우리나라 대기업 S 그룹의 망년회 때문에 우리의 저녁 식사는 김밥 도시락으로 대체되었다.

 

일찍 자면 새벽에 깨서 벽을 보며 도(道)를 닦는 면벽 수도(面壁 修道)를 하게 되니, 적어도 밤10시까지는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인솔자가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밤 10시라면 한국에선 새벽 7시이니 이때까지 안자고 버티기는 애초 불가능 한 일이 아니던가. 겨우 밤 9시까지 버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가 잠이 깨었는데 새벽 2시이다. 시차 적응이 안 된 관계로 도대체 잠이 다시 안 온다. 여행안내서와 준비해 간 자료 등을 찾아 일정에 나오는 명승, 고적에 대한 내용을 이것저것 다 읽어 보았지만, 그래도 잠이 영 오지 않아서 결국 수면제 한 알을 먹고 도로 잠을 청했다.

 

런던에서의 다음 날. 비는 오진 않지만 구름이 끼어 있고 옷깃을 세워할 정도로 쌀쌀하다. 아침은 뷔페식이었는데 소고기 스테이크, 베이컨이 나의 입맛에는 대단히 짜게 느껴지고 맛이 없었다. 그러나 영국의 홍차는 그 명성에 걸맞게 맛이 괜찮았다.

.고딕 건축양식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빨간 이층 버스

여행사 스케줄마다 런던 여행 코스에 빠지지 않는 국회의사당과 빅벤, 웨스트민스터 사원, 버킹검 궁전, 타워 브리지 등을 둘러보았다. 호텔을 나선 시각이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활기찬 시민의 모습은 뜸하고 날씨마저 구름이 잔뜩 끼고 쌀쌀하여 스산한 분위기의 겨울 날씨였다. 레이칼슨의 ‘침묵의 봄’에서 말했던 ‘무서운 고요함’이 얼핏 느껴졌다. 그것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산업 공해로 유명한(?) ‘런던 스모그’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런던 스모그’란 과거 석탄 연료 사용 후 나타났지만, 요즘은 산업화에 따른 공장에서 배출되는 공해 물질이나, 자동차 매연과 분진 증가에 의해 나타나는 공기 오염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겨울 아침 날씨에 더 잘 생긴다. 그렇지만 지금의 런던 공기는 오히려 서울의 대기 상태보다 양호하다고 느껴졌다.

 

높은 빌딩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의 건물은 3층 이하였고 고풍스러웠다. 도로에는 전선을 지하 매립하여 길가에 전봇대가 없으며 간판도 작고, 네온사인도 드물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거리가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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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우체통

영국은 우리와 관습이 달라 긴장을 해야한다.

날씨도 그렇고 음식도 우리와 다르고, 사람들의 얼굴 모습과 머리칼 색도 달라 어느 정도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우측통행을 하고 내가 길을 건널 때 본 ‘LOOK RIGHT’ 글씨와 빨간색 이층 버스, 빨간 우체통이 새삼 다른 나라에 와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해 주어 약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서울에 대비되는 점으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런던에는 공원이 많다는 점이었다. 하이드파크, 리젠트 파크, 그린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 곳곳에 넓게 자리한 넓은 공원들은 걸어서 통과하기엔 길이가 두 세 시간 걸리는 곳도 있다 하니 그 규모에 놀랐다. 비가 자주 오고 겨울에도 온도가 그리 낮지 않아 잔디가 잘 살 수 있다 한다. 왕족, 귀족이 가졌던 영지를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에게 돌아온 공간을 공원화한 것이다.

 

여왕이 산다는 버킹검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얼핏 교도소 담장으로 생각될 정도로 높은 담 위로 고전압이 걸린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여왕)에게 아무나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어느 정도의 격리는 어쩔 수 없겠지만, 여왕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불쌍한(?)느낌이 들었다. 이미지가 나쁜 철조망과 철책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았다.

 

세계 3대 박물관중 하나인 대영 박물관

영 박물관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약탈자의 창고’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영국인 자신들의 문화 유적보다  약탈하거나 뺏어온 문화 유적이 많기 때문이었다. 즉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과 부조, 이집트의 미라와 로제타스톤, 고대 아시리아의 라마츠 상(人頭牛像) 등 인류 문명의 많은 유적들이 외국의 유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영국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사라질 인류 문명 유적들을 잘 보전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헌장이라는  1215년의 대헌장(마그나 카르타)과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섹스피어의 작품 등이 있어 그나마 영국인의 자긍심에 다소 보탬을 준다. 대영 박물관을 제대로 보자면 하루 이틀이 걸려도 모자랄 것이지만 로제타스톤, 람세스 2세 석상, 이집트 미라 등 유명한 것 몇 개만 추려 구경하였다. 

 

아시리아(앗시리아로 쓰는 사람도 있으나 아시리아가 맞는 표현) 관(館)에서는 군대 관련 조각들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실제 존재 하지는 않았겠지만 요즘 말하는 스쿠버(잠수)하는 모습이 새겨진 조각 모습 즉 잠수부대(?)와 오늘날 각종 현대식 군대의 기병대, 전차대, 보병대, 포병대에 해당하는 조각들이 있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를 메소포타미아로 부르는데 이 땅에는 수메르.아카드.바빌로니아.아시리아가 차례로 번성해서 훌륭한 문명의 발자취를 남겼다. 주전 700년경 아시리아의 수도가 된 니네베(니느웨)는 그 무렵 가장 위대한 도시였으며 성경에도 니느웨라는 말은 신구약에 20군데. 아시리아라는 말은 32군데나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겨우 89년을 번성한 니네베가 그처럼 성경에 많이 등장하고. 2600년이 지나도록 자주 거론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시리아의 군주들이 잔악성을 떨친 유명세(?)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아시리아의 왕들이 오벨리스크(돌을 깎아 만든 기념탑)나 궁전과 사원의 벽에 새긴 글과 그림에는 왕에 대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내용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19세기 초 터키 주재 영국 대사였던 엘긴 경이 터기 관료로부터 뇌물을 주고 빼돌려 가져온 그리스 조각들을 ‘엘긴 마블스’라 한다. 이중 세 여인의 조각들이 있는데 비록 머리부위는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조각된 여인의 옷자락과 주름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것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봉긋한 여인의 유방과 여인의 은은한 곡선과 옷자락 표현은 실제로 만져 보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솜씨였다.

.사막에서 발견된 미이라
.두피에 노란 머리칼이 붙어 있는 미이라 두부 ( 확대 )

또한 박물관 한편에서는 사막에서 미라가 된 사람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야말로 갈비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피골상접한 몸통에다 노란 머리칼이 두개골에 그대로 붙어 있어 사실적인 전시물로 생각되었다. 웅크린 모습으로 죽어간 모습이 처절하다 못해 숙연하였다. 그 미라 주위를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아래 무엇인가 조사하고 적는 등 공부하고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핏 보니 숨은 그림 찾기 비슷한 수업이던데 무엇을 가르치고 있었을까?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 해저터널을 지나는 초고속열차(TGV) 유로스타(eurostar)를 타기 위해서 런던의 워털루(waterloo)역으로 갔다. 그룹 아바가 부르는 워털루의 몇 소절이 귓가에 맴돌며 옛날 워털루 전투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잠재의식 속에서 저절로 떠올랐던 워털루 관련 상념들을 느끼는 사이 열차는 해저터널을 지나 프랑스령으로 들어갔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표준시가 한 시간 빨라지므로 시계바늘을 한 시간 앞으로 돌리며, 새로운 긴장감에 대한 대비로 혁대 구멍도 한칸 앞으로 당겨 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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