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문 이름에 숨은 뜻 2.궁궐이나 전각에도 서열이... -명지대 홍순민 교수-
원문 출처 : 링크 바로가기=> 문(門) 이름에 숨은 뜻
- 다음 내용은 원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
뼈대 있는 가문에서는 자녀 특히 아들 이름을 짓는 데 항렬자를 쓴다.
항렬자는 대를 이어 성세를 누리는 가문에서 세대의 상하를 구별하고
한 가문으로서의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라고 하겠다.
항렬자는 한자의 변에 오행(五行)을 순서대로 넣는다는지 해서 체계를 잡고,
거기에 좋은 뜻을 부여하여 지어 놓으면 후손들이 해당 글자를 넣어 이름을 짓는 것이다.
그 좋은 뜻에는 그들의 가치체계와 이념이 반영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한자를 쓰는 유교문화는 이름붙이는 데는 탁월하다. 사람은 물론 웬만한 건물에도 이름을 붙였다.
건물에도 존비(尊卑) 등급이 있다.
건물의 크기와 형태, 양식 및 장식, 기능이나 용도, 소유자 또는 주된 사용자의 신분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등급이 정해진다. 그 등급은 건물 이름의 끝 글자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건물 이름에도 항렬자를 쓴 셈이다. 이를 정돈하여 보면 대체로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루(樓) 정(亭)” 여덟 글자 순으로 서열이 매겨진다.
‘전(殿)’ 은 최상급의 특별한 건물이다.
궁궐에서는 임금님이나 왕비, 대비 등 최고 신분의 사람이 활동하는 건물로서
대체적으로 넓고 높고 화려하다.
사찰에서는 대웅전(大雄殿) 등 불상을 모신 건물, 성균관이나 향교에서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에만 ‘전’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당(堂)’ 은 1등급의 건물이다.
‘전’보다 한 등급이 떨어지지만, 주택을 비롯한 일반 공간에서는 가장 높은 지위의 건물이다.
크고 당당하다.
‘합(閤)’ 과 ‘각(閣)’ 은 ‘전’이나 ‘당’보다 한 등급 낮은 2등급의 건물이다.
‘전’이나 ‘당’에 비해 규모가 작고 장식도 단순하다.
‘전’이나 ‘당’의 주위에서 그것을 보완하는 기능을 갖는다.
‘합’은 흔히 여성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각’은 대개 남성이 주인이다.
‘합’이 ‘각’보다 약간 높게 여겨진다.
‘재(齋)’ 는 평균 등급의 가장 흔한 건물이다. 위엄을 드러내기보다는 실용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
주로 조용한 주거용이거나 학문 활동을 하는 건물이다.
‘헌(軒)’ 은 ‘재’와 거의 같은 등급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업무용이나 강학용 건물로서 마루가 크게 발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누(樓)’ 는 기본 평면에서 상당한 높이 위에 바닥이 조성된 공간을 가리킨다.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고, 서늘하고 건조한 상태로서 주변 경치를 관망하거나 서책 등을 보관하는 데 많이 이용한다. 2층 건물에서 2층을 ‘누’, 1층을 ‘각’이라고 한다.
‘정(亭)’ 은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적은 인원이 모여 연회하기 위한 작은 건물이다.
건물 이름의 끝 글자는 건물의 형태, 용도, 사용자에 따라 정해져서 어느 한 글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본 이름은 그 건물의 위상과 용도, 그 건물에 기대하는 이념에 따라 짓는다.
예들 들면
궁궐의 법전(法殿)은 근정전(勤政殿), 인정전(仁政殿), 명정전(明政殿), 숭정전(崇政殿) 하듯이
‘정(政)’ 자 돌림이다. 한 눈에 정치를 잘 하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문도 건물의 하나이다. 그런데 문은 모두 ‘문(門)’ 자로 끝난다.
문은 문 자체의 품격과 그것이 품고 있는 내부 공간의 등급에 따라서 이름이 지어진다.
조선왕조를 개창하고 1304(태조 4)년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뒤에 가장 먼저 종묘 사직을 짓고, 그 다음에 궁궐을 짓고, 마무리로서 도성을 지었다. 종묘 사직에도 당연히 담장을 높이 쌓고 문을 내었는데 웬일인지 고유명사를 붙이지 않았다. 그저 외대문(外大門), 북문(北門), 동정문(東正門), 남신문(南神門) 등으로만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건물들도 정전(正殿)이니 칠사당(七祀堂), 공신당(功臣堂), 안향청(安香廳) 등으로 되어 있다. 그 기능을 나타내는 일반명사이지 고유명사가 아니다.
종묘의 별묘(別廟)인 영녕전(永寧殿)도 '영구히 안녕히 모시는 건물'이라는 뜻으로 풀어 보면
고유명사라고 보기 어렵다.
한양을 수도로 만드는 본격적인 공사는 궁궐 공역이었다.
첫 궁궐에 “경복궁(景福宮)”이라는 이름을 짓고,
주요 건물들에 근정전(勤政殿), 사정전(思政殿), 강녕전(康寧殿) 등 이름을 붙었다.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 그 뜻을 풀었다.
궁성(宮城)은 조금 나중에 정비되어 동서남북에 문을 내었다.
남쪽 정문이 광화문(光化門), 동문이 건춘문(建春門), 서문이 영추문(迎秋門), 북문이 신무문(神武門)이다.
광화문을 들어선 다음 문이 흥례문(興禮門),
그 다음에 법전(法殿)인 근정전을 들어가는 문이 근정문(勤政門),
편전(便殿)인 사정전 앞에는 사정문(思政門),
임금의 거처인 강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의 이름은 향오문(嚮五門),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交泰殿)으로 들어가는 문 이름은 양의문(兩儀門)이다.
얼핏 보면 이름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떤 체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광화(光化)”는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노라는 명확한 기문(記文)은 남아 있지 않지만,
'온 세상에 빛과 교화를 발하는 문'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해서 큰 어긋남이 없다.
빛―광(光)은 불―화(火)이다. 화는 방위로는 앞―전(前)이요, 남쪽에 대응한다.
‘화(化)’자는 이후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의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의 흥화문(興化門),
그리고 초기 경운궁의 인화문(仁化門)으로 연결되어 궁궐 정문의 돌림자가 되었다.
신무문의 ‘무(武)’는 사신(四神) 가운데 현무(玄武)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무문에서 동쪽으로 광무문(廣武門), 계무문(癸武門)이라는 작은 문들이 더 있어
‘무’자 돌림을 이루는 것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 준다.
동문에는 봄―‘춘(春)’이 들어 있고 서문에는 가을―‘추(秋)’가 들어 있는 것은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춘하추동 사계절을 대응시키는 관념의 반영이다.
흥례문의 ‘예(禮)’자는 유교의 오상―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하나인 예이다.
오상을 오방(五方)―동 서 남 북 중앙에 대응시켜 남쪽에는 예를 배치한 것이다.
근정문은 그 안의 중심 건물 근정전에서, 사정문은 사정전에서 따다가 붙인 이름이다.
이것을 전범으로 삼아서 다른 궁궐에서도 법전과 편전의 문은 별도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본 건물의 이름을 따랐다.
향오문은 독특하게 ‘오(五)’라는 숫자를 넣었다.
‘오’는 ‘일(一)’부터 ‘구(九)’까지 기본수 가운데 한가운데 수이다. 중앙의 수요, 임금의 수이다.
그러므로 향오문은 경복궁 중앙의 임금의 거처―대전(大殿)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이다.
‘양의(兩儀)’는 음양(陰陽)을 말한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음양에서 사상(四象), 팔괘(八卦), 육십사괘로 발전해가는 것이다.
음양의 가장 뚜렷한 형상은 남녀이다. 양의문은 남녀가 어울려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문이란 뜻이다.
알고보면 대단히 선정적인 이름이다.
양의문 안에 있는 교태전의 ‘태(泰)’는 육십사괘 가운데 하나이다.
하늘을 가리키는 건(乾)괘[☰]가 밑에 땅을 가리키는 곤(坤)괘[☷]가 위에 있는 모양이다.
하늘은 위로 올라가는 속성이 있고 땅은 아래로 내려오는 속성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교합(交合)하는 형상이다. 이 역시 남녀의 교합을 뜻하는 이름이다.
왕비의 거처 중궁전(中宮殿)이자 임금과 왕비의 침전(寢殿)의 이름으로서는 제격이다.
양의문은 결국 이곳이 중궁이요 침전임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조선시대 문 가운데 격이 가장 높은 것은 도성의 문이다.
도성은 1396(태조 5)년 1월 9일 개기(開基)하여 1398(태조 7)년 2월 완공하였다.
성이 있으면 문이 있어야 할 터, 도성에는 네 대문과 네 소문 그리고 암문(暗門)들을 지었다.
암문이야 어차피 처음부터 드러나지 않고 드나들기 위한 문이므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고,
네 대문과 네 소문에만 이름을 붙였다.
도성문 역시 정도전이 이름을 지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주역 가운데 주역이자, <불씨잡변>을 짓는 등 고려말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성리학을 조선의 지도이념으로 정착시키는 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도성의 이름을 짓는 데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바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덕목인
오상(五常)―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도성문들에 적용했다.
동대문이 흥인문(興仁門), 서대문이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이 숭례문(崇禮門),
북대문이 숙정문(肅靖門)이다. 동서남북 대문에 각각 인의예지를 배치한 것이다.
흥인문은 편액에는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지(之)’자가 하나 더 들어가 있다.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편액을 쓰는 이가 그 주위의 산세가 약하기 때문에 이를 보강하기 위해
산줄기 모양으로 생긴 ‘지’자를 덧붙였다고 한다.
북대문은 ‘숙지문(肅智門)’이라 해야 맞을 것이나, ‘숙정문(肅靖門)’으로 바꾸어 조금 변형을 주었다.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으로 했다가 나중에 고친 것이다.
중앙에는 ‘신(信)’이 배치되어야 마땅하다. 태조 연간에 도성의 중앙 운종가에 종루(鐘樓)를 설치하였으나 무슨 까닭인지 별도의 이름은 붙이지 않았다. 19세기 말 고종 연간에 가서야 보신각(普信閣)이라는 이름을 붙여 ‘신’자를 배치했다.
네 소문은 남서쪽에 소의문(昭義門), 북서쪽에 창의문(彰義門), 동북쪽에 혜화문(惠化門), 동남쪽에 광희문(光熙門)이 있다.
소의문은 처음에는 소덕문(昭德門)이라 했다가 고친 것이고,
혜화문은 홍화문(弘化門)에서 바뀐 것이다.
소의문과 창의문은 서쪽에 해당하는 ‘의(義)’를 붙인 것이고,
광희문은 남쪽에 해당하는 ‘화(火)’와 연결되는 ‘광’이나 ‘희’를 붙인 것은 이해가 가나
홍화문이나 혜화문은 그 의미가 헤아려지지 않는다.
문 이름에는 본명 외에 별명이 붙는 경우도 있다.
별명은 누가 일부러 작명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자주 부르다보니 굳어진 것이겠다.
창의문의 별명은 자하문(紫霞門)이고, 광희문의 별명은 수구문(水口門)이다.
창의문은 서북쪽이니 자주빛 노을이 물들 만하다.
수구문에 대해서는 부근으로 청계천 물길이 나가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하는 말이 있으나
이는 억측이다. 청계천 물길은 흥인문에 더 가깝다. 수구문이란 한강으로 출입하는 문이란 뜻이다.
더구나 이 문을 그 부근에 늘 시신이 쌓여 있었다 하여 시구문(屍口門)이라 했다는 것은
일본인들의 악의적 왜곡이다.
위에서 예로 든 것 외에도 문은 수없이 많다.
조선 말기 한참 많을 때 경복궁에는 이름 붙은 문만 해도 230여 개,
자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창덕궁 및 창경궁에도 그 정도가 확인된다.
그 많은 이름을 지을 때 모두 좋은 뜻을 넣느라 고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짓는 데는 앞서 말했듯이 어떤 체계가 작동했다.
우선 도성이나 궁성 같이 큰 공간의 대문들은 오행, 사계절, 사신, 오상 등이 많이 적용됐다.
따라서 그 문 이름만 들어도 그 위치, 방위를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금호문(金虎門)은 어디 있는지 잘 몰라도 서문이다.
‘금(金)’이나 ‘호(虎)’나 서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호문은 창덕궁의 서문이다.
‘예(禮)’가 들어가면 어느 공간의 남문이요, ‘의(義)’가 들어가면 서문이다.
체계를 알면 모르는 부분도 헤아려 짐작할 수 있다.
숫자나 뜻을 보아도 그 공간의 위상과 용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향오문이나 양의문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른 모든 문들도 나름대로 뜻을 담고 있으며,
그 뜻에서는 그 문 안의 공간이 어떤 곳인가를 드러내는 정보를 담고 있다.
장락문(長樂門)이라 하면 주요 인물의 기거 공간의 문이다.
만세문(萬歲門)이라면 노인이 기거하는 곳의 문이다.
일근문(日覲門), 월근문(月覲門)은 사당에 뵈러 드나드는 문이다.
문은 열리고 닫힌다. 문이 열리면 길이 되고, 닫히면 벽이 된다.
문 이쪽은 안이고 문 저쪽은 밖이다. 문 안에 있는 사람은 “우리”이고, 문 밖에 있는 사람은 “남”이다.
문은 아주 작은 공간을 담는 것에서부터 매우 큰 공간을 담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에 따라 문의 크기와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방 안에 있는 문들은 작고 단순하다.
방문을 나서서 담장의 문, 중문을 지나 대문으로 가면서 점점 크기가 커지고 튼튼해진다.
주택의 가장 외부에서 내외를 가르는 대문은 그 집의 가격(家格)을 드러낸다.
좌우에 두 기둥만 서 있어 문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문이 있는가 하면,
한껏 위세를 뽐내는 솟을 대문도 있다. 발로 툭 차면 퍽 뚫릴 듯한 사립문이 있는가 하면,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는 정표를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홍살문을 앞세운 정려문도 있다.
관아의 문은 드나드는 이들을 압도하려고 잔뜩 위세를 부린다.
사찰의 문은 산문에서 사천왕문에 금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움츠러드는 느낌을 들게 한다.
홍살문 지나 겹겹이 들어가는 향교나 성균관의 문들도 옷깃을 여미기를 무언중에 강요한다.
평지보다 높은 기단 위에 문루를 높이 올린 궁궐 정문은 임금의 존엄을 한껏 과시한다.
읍이나 도시를 둘러싼 성문은 견고하고 삼엄하여, 한 번 드나드는 것 자체를 주춤거리게 만든다.
국경이라는 경계선을 지키는 관문은 더구나 삼엄하기 그지없어 한 번 통과하는 데는
까다로운 절차가 따른다. 자칫 이를 어기기라도 하면 재물이 아니라 목숨을 대가로 바쳐야 할 수도 있다.
작고 허름한 문들은 만만하다. 위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러니 쉽게 드나들 수 있다.
방문, 낮은 담에 뚫려 있는 샛문, 헛간 문, 뒷간 문, 아랫 것들이 사는 집의 대문 같지도 않은 대문.
그들이 살며 일하는 이런저런 공간의 문들… 그런 문들에는 편액(扁額)이 없다.
편액이란 건물의 이름을 써붙인 나무판이다. 애초에 이름을 지어붙이지 않았으니 무슨 편액이 있겠는가?
반면 편액이 붙은 문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런 문들 안에는 누군가 높은 분이 기거하게 마련. 함부로 범접해서는 안된다.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문에 붙어 있는 편액은 역설적으로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일 수도 있겠다.
문 이름을 보고 들어갈지 말아야 할지, 들어간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판단할 일이다.
문 이름을 보고, 그것이 지은 이들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다면
그들과 좀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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