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특집 ‘한국의 구곡’|<2>어느 지역에 어떤 구곡 있나?] 소백산·속리산권역에 구곡 집중 분포



전국 102개 중 경북 53개소로 압도적, 충북 27개소 등 뒤이어
문헌에만 전하는 구곡 포함하면 250여 개… 영주 ‘죽계구곡’이 한반도 최초

한국의 구곡은 13세기 근재 안축安軸 (1282~1348)이 죽계구곡을 설정하면서 시작한다. 이어 이이와 이황이 성리학적 깊이를 더하면서 자연을 통해 도를 체득하려는 활동들이 본격 전성기를 맞는다. 조선 선비들이 전국적으로 앞을 다투듯이 다양한 구곡들을 잇달아 설정한다. 

국립수목원에서 자체 연구사업으로 진행하는 현장답사를 통해 확인된 구곡은 2018년 6월 현재 전국적으로 102개로 나타났다. 지역적으로는 경북이 53개소로 압도적으로 많고, 이어 충북 27개소, 전북 4개소, 충남·경기·경남·전남 각 3개소, 강원·울산 각 2개소, 서울·대구 각 1개소 등으로 확인됐다. (그림 참조)

경북지역은 최초의 구곡인 안축의 죽계구곡을 비롯해 퇴계가 설정한 도산십이곡,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충북지역은 우암 송시열이 설정한 화양구곡, 유근의 고산구곡 등이 있다. 화양구곡은 화양동서원과 함께 현존하는 구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곡으로 꼽힌다.

이와 같이 현재까지 전하는 구곡들은 소백산과 속리산 권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양상을 보였다. 국립수목원 이해주 전시교육연구과장은 “소백산과 속리산은 산이 깊어 계곡 중심으로 자연에 묻혀 학문하기 좋은 장소가 많고, 한양에서 부름을 받으면 올라가기 좋은 물길이나 육로의 접근성이 편리한 지역 중심으로 구곡이 형성되는 특징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또 “실제로 이들이 중앙 관료로 진출한 뒤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내려온 지역이 소백산과 속리산권역으로, 당시 사대부들의 출신 배경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역으로 지리산이나 강원도권역에 구곡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이유를 고려하면, 소백산과 속리산권역에 특히 구곡이 발달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외에 시와 구전으로만 전하는 구곡도 상당수 있다. 선비들이 구곡을 본 뒤 문헌에 시로 남긴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구곡까지 포함하면 총 25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수목원 연구는 현장답사를 통해 확인된 구곡만 102개로 발표했다.

표 행정권역별 구곡의 분포현황
선유동구곡 제4곡 세심대.
선유동구곡 제4곡 세심대.

지명 유래 구곡이 가장 많아

구곡의 이름 유래도 다양하다. 우이구곡과 같이 지명에서 유래한 구곡이 있는가 하면, 화양구곡과 같이 명나라를 숭배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로 설정한 구곡도 있다. 또 퇴계구곡처럼 사람 이름에서 유래한 구곡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지명에서 유래한 구곡이 가장 많다.

또한 구곡은 제1곡부터 9곡까지 자체 이름을 가지고 있어, 구곡의 의미를 더했다. 중국 무이산 무이구곡의 경우, 제1곡 천유봉부터 옥녀봉, 대왕봉, 대홍포, 수련동, 호소암, 일선천, 연화봉, 우림정까지 9곡으로 이어진다.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봉우리와 동굴, 암벽, 정자 등을 지정해서 노래하고 있다. 반면 한반도에 유입된 구곡은 강이 아닌 하천을 따라 형성된 아름다운 경관이나 흐르는 물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서울의 유일한 우이구곡의 경우, 제1곡인 만경폭은 거침없이 흐르는 폭포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제2곡 적취병積翠屛은 아름다운 비취색 같은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병풍에 비유했다. 제3곡 찬운봉瓚雲峰은 구름이 잔에 가득찬 모습을 노래했다. 제4곡 진의강振衣崗은 옷을 흔들어 세속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뜻을 고상하게 가진다는 의미를 말한다. 제5곡 옥경대玉鏡臺 또는 세묵지洗墨池는 옥과 같은 물이 흐르는 평평한 바위 또는 흐르는 물에 벼루의 물을 씻는 모습을 말한다. 제6곡 월영담月影潭은 달에 비친 못을 가리키고, 제7곡은 탁영암濯纓巖은 말의 고삐를 씻는 바위를 말하고, 제8곡은 명옥탄鳴玉灘은 흐르는 물이 옥과 같은 소리를 내는 현상을 노래하고 있고, 제9곡 재간정在磵亭은 계곡에 있는 정자를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자연 속에서 심신수양을 통해 주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진리 체득을 위한 과정에 있는 자기 위안의 행위로 구곡을 설정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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