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3)-네델란드 음식과축제,맥주, 도개교,/헤이그.가우다(하우다),바를러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네덜란드,헤이그.가우다(하우다)치즈,바를러,도개교,Dutch pay(더치패이),

Holland Festival,튤립축제,게이축제,홍합찜-물르,

청어,프리트,하이네켄,바바리안맥주,그롤쉬맥주

 

(배경 영상,음악)  'Time' · Nancy Sinatra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or 동영상이 안 나올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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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베네룩스 루트(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나 의 베네룩스 3국 루트

의 베네룩스 3국 루트: (네덜란드)암스테르담-헤이그(덴하흐)-하우다(gouda)-킨더다이크(풍차공원)-바를로-   

(벨기에)안트베르펜-헨트(Gent)-브뤼허(Brugge)-브뤼셀-(룩셈부르크)에슈 쉬르 쉬르

 

네덜란드의 행정수도 헤이그(네:덴하흐 Den Haag) 

      홈피:http://www.denhaag.nl/home.htm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둘러보고, 헤이그(네: Den Haag 덴하흐)를 보러 갔다. 참고

로 네덜란드 단어엔 aa처럼 같은 a를 겹쳐 쓰는 경우가 많고, g 는 [h] , ’ㅎ‘ 발음이다.

 

네덜란드 행정의 중심지 헤이그는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데,  헤

이그(영어:The Hague, 네덜란드어: 덴하흐 Den Haag)는 ‘백작가의 사유지’라는 뜻이다. 네

덜란드의 정부 부서와 대법원, 네덜란드에 주재하는 각국 공관이 헤이그에 있으며, 국제사

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화학무기금지기구 같은 여러 유엔 기구가 소재하고 있다.

 

헤이그 밀사사건(헤이그 密使事件)  내용 참조: 헤이그특사사건 [─特使事件]

고종(高宗)의 밀사(密使) 이준 열사의 ‘헤이그 밀사 사건’이 있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 이

곳 헤이그에 있다. 당시 이준열사가 묶었던 용 호텔(de Jong)을 한 네덜란드 교민이 사들

여 [이준열사 기념관]으로 열었다. 참고 링크: 문화재청,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개최

 

헤이그 특사사건(特使事件) 또는 헤이그 密使사건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파견했던 사건이다. 1907년 고종

은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소집하는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을사조약이 대한제국 황제의 뜻에 반하여 일본제국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조약임을 폭

로하고 을사조약을 파기하고자 했다. 

 

한국 대표들은 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이위종이 유창한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실력으로 대한제국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하는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

었다. '조선을 위해 호소한다!'는 제목의 연설 내용은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

었으나 대한제국의 처지를 불쌍히 여길 뿐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후 이준은 헤이

그 특사활동 20일 만에 머물던 호텔(de Jong 용 호텔)에서 사망하는데 이준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7월 20일 양위식을 강행하였다. 그리고 이어 순종이 즉위하고 4일 후 한일신협약이 체결되

었다.

 

 
헤이그에 있는 이준열사 기념관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 사법 재판소(國際司法裁判所, 국제사법재판소)

영어: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ICJ), 프랑스어: Cour internationale de Justice(CIJ))는

상설 국제 법원으로서 유엔헌장에 근거하여 1945년에 설립된 유엔 자체의 사법 기관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Vredespaleis)에 소재한다. 분쟁 당사국들의 분쟁을 국제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유엔 총회 또는 안전보장이사회는 법적 문제에 대해 재판소에

유권 해석을 내려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하우다 치즈’ 의 고향 하우다(Gouda)  위키백과: 하우다

속칭 ‘고다(Gouda 네덜란드 발음:하우다) 치즈(링크:하우다 (치즈) - Wikipedia)의 고향 하우다(Gouda)는

암스테르담 남쪽 50Km에 있는 작은 도시로 1272년 도시권이 주어졌으며 하우다 치즈, 파이프 담배,

15세기 시청으로 유명하다. 

 

우다 치즈는 네덜란드의 남부 하우다(Gouda)지방이 유명하여 그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지금은

우유의 카세인으로 만든 노란 치즈를 흔히 ‘하우다 치즈’라고 부른다. 치즈 모양은 동그란 쿠션(방석)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국경이 퍼즐 조각처럼 얽힌 바를러    위키백과 참조: 바를러 (Baarle)

 

 
퍼즐 조각 같은 바를러. 짙은 갈색이 벨기에 땅이다
 
+로 표시된 국경선과 NL(네)과 B(벨)로 국가 표시

 

바를러는 네덜란드 남쪽 국경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국경이 찢어진

조각처럼 얽혀 있다. 13세기에 브라반트의 공작이 브레다(Breda)에 땅을 줄 때 비옥한 곳을

군데군데 자신의 것으로 남겨 두고 죽었는데, 1403년에 브레다의 남작이 이곳 나사우의 백

작이 되면서 그의 영지는 바를러나사우, 브라반트 쪽의 땅은 바를러헤르토흐로 불리게 되었

다. 그 결과 바를러는 국경이 이쪽저쪽으로 복잡하게 갈라지게 되었다.

 

네덜란드 쪽을 바를러나사우(Baarle-Nassau),벨기에 쪽을 바를러헤르토흐(Baarle-Hertog)

라 한다. 바를러헤르토흐는 존더레이헌(Zondereigen)이라 불리는 ‘본토’와 네덜란드 쪽 땅

에 둘러싸인 20개의 위요지(圍繞地:일정한 토지를 둘러싸는 둘레의 땅)로 나뉘어 있다. 벨

기에 땅 안에 네덜란드 땅이 있는데, 가장 큰 땅(영역) 안에 여섯 개, 두 번째로 큰 땅(영

역) 안에 한 개의 네덜란드 위요지가 있다.

 

이곳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에 걸쳐 있는 집도 있는데, 그럴 땐 대문을 기준으로 국

적이 결정된다. 심지어 안방과 건넌방이 소속 국가가 다른 경우도 있으며, 가족들의 국적이

다른 경우도 있다 한다. 하지만 국가가 다르고 세금 내는 곳이 달라도 이들은 평화롭게 살

아 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운하와 배, 자전거와 풍차, 튤립 꽃밭과 넓은 목축지

의 가축일 것이다. 목축지의 경계는 대개 물(운하)이므로 따로 철망을 치거나 담을 쌓지는

않았다. 운하에는 사람과 자동차도 건너가야 하므로 특수하게 설계된 도개교(跳開橋)를 많

이 볼 수 있다. 작은 도개교(跳開橋)는 사람과 자전거만 건너지만, 자동차가 지나가는 큰 규

모의 도개교에는 철도 건널목처럼 신호등과 함께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물건 올리고 내

리는 도르래가 설치된 전원주택에는 잘 가꿔진 장미꽃이나 예쁜 정원을 볼 수 있다.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하는 도개교((跳開橋)
물건 오르내리는 도르래가 설치된 주택
자동차가 건너는 도개교((跳開橋)에는 차단기가 ...

 

    Dutch에 대해      참조: 네덜란드어 (Netherlandic language)

네덜란드 언어를 영어로 더치(Dutch)라 쓰는데 중세엔 'Dietsc', 'Duutsc'였다.

독일어 'Deutsch'도 같은 것으로, 종교와 학문의 언어인 라틴어와 비교해서 단순한 ‘

민중의 언어'라는 뜻을 지녔다. 공식 명칭은 'Nederlands' 또는 'Netherlandic'이

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홀란트어(Hollands)라고도 한다.

 

Dutch coffee(더치커피)      (내용 참조 위키백과: 커피 )

더치커피(Dutch coffee 네덜란드풍의 커피)란 말은 일본에서 마케팅을 위해 만든 말이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 ‘더치커피'라 하면 알아듣지 못하며 Drip coffee(드립 커피)와 대조되

는 단어인 Cold brew(콜드 브류)로 표기하고 있다. 

 

더치커피(dutch coffee)의 유래는 대항해(大航海) 시절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동남아 지역

에서 커피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장기간의 항해 중에 커피를 먹기 위해서 고안했다고 전

해지지만, 관련된 문헌은 전혀 없으며 사실상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다.

 

다른 커피 추출법과 달리 찬물로 추출하기 때문에 카페인이 적거나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 커피보다 카페인이 많을 수도 있다. 카페인의 특성상 70도 이상에서 추출이

활발히 일어나지만 그 이하 온도에서도 추출이 일어나기 때문에 장시간 추출되는 더치커피

의 특성상 많은 량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디카페인 커피(Decaffeine

coffee)로 더치커피(Dutch coffee)를 추천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지식이다.

 

Dutch pay(더치패이)

비용(費用)을 각자 부담하거나 돈 계산을 할 때 자기 몫을 각자 계산하는 방식을 더치패이

(Dutch pay)라고 하나, 콩글리시며 Dutch treat / go Dutch 등이 올바른 영어 표현이다.

더치패이의 우리말은 ‘추렴’이다. 원래 네덜란드와 식민지를 놓고 경쟁했던 영국인들이 네

덜란드인들의 접대 문화를 낮추어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출처: http://kids.hankooki.com/lpage/edu/201304/kd20130415155937118750.htm

 

네덜란드의 축제

Holland Festival(http://www.hollandfestival.nl/nl/)은 국제적 페스티발로 1947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국제 공연 예술을 이끌고 있는 축제로 음악, 오페라, 댄스, 연극 관련

로그램이 6월 내내 열린다. 여왕 탄신일(Koninginnedag 4월30일)도 큰 행사로 손꼽히는

데, 이때에는 온 시가지가 오렌지 빛깔로 바뀌며, 사람들은 집에서 만든 물건이나 골동품

내와서 팔거나,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떠들썩하게 지낸다.

 

매년 3월에 열리는 큐켄호프(Keukenhof) 튤립축제(www.keukenhof.nl) 역시 이름난 축제다.

또한 1975년부터 5년마다 5일 동안 개최되는 유럽 최대의 해상축제인 암스테르담 항해

제(Sail Amsterdam Event)는 암스테르담 설립 7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세

계 각국에서 온 수백 척의 배가 참가한다.

 

게이프라이드(Gay Pride)는 세계적인 게이축제인데, 이름그대로 게이를 중심으로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의 참가 외에도, 개방적인 나라답게 더 많은 일반인(이성애자)들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이때에는 암스테르담 시내가 무지갯빛으로 출렁인다. 사육제(사순

절 직전의 축제)같은 종교 행사는 가톨릭 세력이 큰 남쪽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다.

 

네덜란드의 음식

홍합 찜(네:mosselen 모썰른)
비린내 나는 청어(Haring)
약방의 감초 같은 프리트(frite)

 

네덜란드의 음식 중에서 홍합찜(네덜란드선 mosselen 모썰른 / 벨기에선 moule 물르) 요리

는 먹을 만하지만 청어요리는 비린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팬케이크와 프리트(frite 감자튀

김), 맥주는 꼭 먹어 봐야 한다.

 

네덜란드 팬케이크는 크레페(Crêpe)와 유사한데, 밀가루 반죽을 넓적하게 부친 후 그 위에

설탕, 잼, 시럽 등을 올리고 뜨거운 생강 즙을 뿌리기도 한다. 포퍼처스(Poffertjes)는 작은

크기의 팬케이크를 바삭해질 때까지 구운 다음 설탕이나 시럽을 뿌려 먹는 스낵으로 암스테

르담의 팬케이크 베이커리(Pancake Bakery http://www.pancake.nl)가 유명하다.

 

무엇보다 네덜란드 음식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프리트(friet 감자튀

김)인데, 이것만 전문으로 파는 곳도 많다. 이 프리트(감자튀김)는 그냥 먹기도 하고 마요네

즈에 찍어 먹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맥주 안주로 많이 먹는다.

 

네덜란드의 맥주

 
맥주의 왕 ‘하이네켄’
바바리아 맥주
초록 숲에선 나온 맥주 ‘그롤쉬’

 

네덜란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는 4개의 대형 양조장(하이네켄, 바바리아, 그롤쉬, 인

베브)에서 생산되며, 네덜란드의 맥주 시장의 50%를 하이네켄이 차지하고 나머지 세 회사

가 각각 15%씩 점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맥주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유럽인 등 세계 사람들

에게 사랑받고 있다. 실제 네덜란드 맥주가 독일 맥주보다 유럽 시장을 더 장악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맥주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하이네켄(www.heineken.com/kr)맥주는

1873 년 ‘하이네켄 맥주회사’가 설립되어 약 140년의 역사를 지녔다. 투명하고 시원스런 녹색

에 톡 쏘는 맛과 거칠고 쌉쌀한 느낌이 라벨의 붉은 별 만큼이나 상큼하다. 암스테르담에는

과거 하이네켄 맥주 공장이었던 건물을 하이네켄 체험관으로 개방하여 관광들을 불러 모으

고 있다.

 

네덜란드의 맥주 회사 바바리아(Bavaria)는 1719년 창립 이래 3백년간 맥주를 생산해 오고

있는 유럽 내에서 가장 큰 맥주 제조 회사인데, 1978년에 무알콜 맥주를 처음 만들었다. 바

바리아는 독일 남동부 지방 바이에른(Bayern)의 영어 이름이다.

 

'초록 숲서 나온 술'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롤쉬(Grolsch) 맥주

       내용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10708550589051

‘그롤쉬 Grolle(그롤)’은 초록 나무란 의미로 1615년 피터 꾸페이(Peter Cuyper)가 맥주 공

장을 설립한 이래 400년 전통을 가진 맥주로, 하이네켄과 함께 네덜란드의 대표 맥주이다.

재활용 가능한 코르크 마개가 독특하고 병에 새겨진 맥주의 원료인 맥아 그림과 grolsch라

는 돋을새김이 이채롭다.

 

그롤쉬맥주는 야채맥주로 알려진 환경 친화적 맥주로 무려 36종류나 된다. 그롤쉬는 청량

하면서도 깊이 있는 씁쓸한 맛을 내는데, 이 독특한 맛과 향의 비결은 맥아, 호프, 물 등 엄

선된 최상의 천연원료와 함께 사용되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홉과 숙성 시간에 기인한다.

 

그롤쉬는 세계 각지에서 열린 유수의 주류 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았을 만큼 최상의 성분과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샴페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윙탑(Swingtop)' 뚜껑을 장착하고 있

어, 보는 재미도 있지만 병을 열 때 '뻥∼'하는 소리가 나서 듣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그 외의 술로는 네덜란드 Gin(진)인 Bols Genever(제네버)는 쥬니퍼베리(Juniper berry 노

간주나무)로 만든다. 제네버는 Gin의 원류로 네덜란드에서 생산되어 영국으로 넘어가 Gin

으로 변형되었다. 머리가 돌 정도로 독한 술로 이걸 한잔 한 뒤 맥주를 마신다.

 

네덜란드 전통주로는 설탕과 달걀로 만든 달걀술 에드보카트(advocaat)와 약초로 만든 베

렌버그(네: 베이렌뷔르흐 Beerenburg ‘맛이 쓰다는 뜻‘)가 있다.

 

유럽(네덜란드)에서 숙박, 주차하기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호텔비뿐만 아니라 음식비, 주차료, 자동차 기름값 등 물가가 무척 비

쌌다.  암스테르담이나 헤이그 같은 경우는 호텔비, 시내 주차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자동차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신경 써야할 것 중의 하나가 ‘어디서 먹고 자는가’와 ‘차를 어

디에다 주차해야 되는가‘라는 것이다. 유적지나 볼거리가 몰려 있는 구도시의 도심(Center

/ 이탈리아:Centro)의 경우 호텔비도 비싸고, 자동차 차고 사용료를 추가로 내야하는 경우

가 많지만, 도시 근교의 호텔은 방값도 싸거니와 따로 차고 주차료도 받지 않는다.

 

구도시(old city)에는 주차할 곳이 많지 않으며, 심지어 이탈리아의 경우 도심통행제한

ZTL(Zona Traffico Limitato)이 있다. 공공주차장이 사설주차장보다 비교적 주차 가격이 싸

므로 유적지 근처의 공공 주차장이나 노상 주차장을 이용하게 된다. 참고로 대부분의 유럽

에서는 일요일이나 국가 공휴일의 공공 주차장의 주차료는 무료이며, 밤 시간 주차도 무료

이다. 다만, 야외 무료주차장의 방범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묵었던 네덜란드 농장&amp;nbsp;&amp;nbsp;
이 농장에서는 여러 사람이 자동차 캠핑 중이었다

 

우리는 도시 외곽에 호텔을 잡아서 숙박비와 주차비를 아꼈고, 시내에 나가서 어디에 주차

할 것인가에 대해선 미리 연구(고민)가 필요했다. 내비게이션이 있다 해도 외지인이 편하게

몇 시간씩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내비게이션에서 바로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 가족 같은 경우는 보다 저렴한 공공 주차장이나 노상 주차장을 주로 이용하였는데, 아

래의 방법도 주차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우선 해당 도시의 홈페이지에서 주차관련 내용을 알아보거나, 먼저 다녀간 이의 경험담

   을 인터넷으로 조사(surfing 서핑)하였다.

2. http://www.interparking.com/ , http://www.q-park.com/ 같은 유럽의 주차 체인 회사

  의 웹페이지를 통해 방문하려는 도시의 주차 관련 정보(장소, 비용)를 알아본다. 유럽 도

  시 주차비는 무조건 비쌀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유적지나 볼거리에 가까우면서도 생각보

  다 싼 대형 주차장들이 이런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다. 암스테르담, 브뤼헤, 브뤼셀, 룩셈

  부르크를 구경할 때 이런 주차장을 미리 검색해 보았다. 하루 종일 주차해도 10유로 미

  만의 주차비를 받는 곳도 있다.

 

(계속) 

-참고- 이전 네란드 여행기 바로가기.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여행기로 연결됨.

 

  (네덜01)-운하와 풍차,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 돌아보기 02) - 네덜란드의 화가들

  

  네덜란드(3)-네델란드 음식과축제,맥주, 도개교,/헤이그.가우다(하우다),바를러

 

네덜란드(2)-네덜란드의 화가들-고흐,고흐미술관,크뢸러뮐러미술관,렘브란트,루벤스,반다이크,베르메르,데 스틸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 Vincent" -고흐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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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스포츠 강국        

      네덜란드가 스포츠 강국인 이유는 네덜란드인들이 키(신장 身長)가 크고 체력이 강해서 일

것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타서 허벅지 근육과 다리 힘이 강해진 것도 한 요인일

테다. 자전거 대회의 인기는 축구보다 더할 정도이며, 구기 종목인 배구뿐만 아니라 겨울

스포츠인 스케이트 종목도 강하다. 운하가 얼어붙는 해에는 전국 11개 도시를 완주하는 엘

프스테덴토흐트(Elfstedentocht) 대회가 열린다. 한편 축구 실력은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

을 3번 달성한 축구 강국이지만 아직 우승한 적은 없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1988년

우승하였다. 

 

네덜란드는 미술(美術) 강국  

네덜란드의 관문 스키폴(Schipol = 스히폴) 국제공항 환승구역에는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컵과 나막신들이 있어 이 나라가 도자기의 나라임을 은근 과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공예

품으로는 델프트(Delft) 도자기와 붉은 색의 아름다운 마쿰(Makkum) 도자기를 들 수 있다.

도자기는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하였고, 17세기부터 중국 등

의 영향을 받아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네덜란드에는 국립미술관(http://www.rijksmuseum.nl/)

   반 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렘브란트 미술관(http://www.rembrandthuis.nl/en/)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4개의 큰 미술관이 있고, 개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외에도 각 시의 시립 미술관에 수많은 미술품

들을 소장하고 있어 미술 강국임을 알 수 있다.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할스, 수틴 등의 작품이 전시된 국립미술관이 17세기 미술을 보여준

다면, 반 고흐 미술관은 19세기 미술을 보여주는 미술관이다. 시립 미술관인 스테델릭 미술

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트위터: >https://twitter.com/stedelijk )은 19세기부터 21세기

까지 가장 최근의 미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네덜란드의 미술(회화) 분야에서는 17세기 초 유화 기법의 선구자 프란스 할스가 활약했고,

중엽에는 유화 기법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렘브란트 판 레인(렘브란트 판 레인)이 나타났다.

 

중산 계급이나 농민의 생활을 주로 그린 얀 스테인, 풍경화가 로이스달 등도 유명한데,  그중 

로이스달(로이스달 [Salomon van Ruysdael])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로 여겨진다.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 위키백과:  안토니 반다이크 - 위키피디아

루벤스에게 배우고 그의 조수로 있었던 반 다이크는 '플랑드르 그림'의 대표적 초상화가로

유명하며,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티치아노 · 베로네세 등 베네치아 대가의 감화를 받았다.

부드러운 구도와 아름다운 색채로 종교, 신화, 우의적인 제재도 취급하였으나 초상화가로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영국 화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1632년부터 찰스 1세

의 궁정 화가로서 죽을 때까지 2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십자가 강하>,

<찰스 1세의 초상> 등이 있다.

 

루벤스(Rubens 1577~ 1640)    참조 두산백과: 페테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십자가에서 내림(루벤스)-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성당

루벤스(Rubens)는 에스파냐의 벨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최대의 화

가로 당시 왕후, 귀족의 호화로운 취미와 현실주의를 가장 잘 표현하는 화가이다. 그의 역

량과 작풍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작으로는 1621∼25년에 제작한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왕

비의 생애를 그리스 신화와 교묘하게 연관시켜서 그려낸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바로크 회화의 진수이다.

 

반 다이크 - ‘찰스 1세의 초상’ –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Vermeer, Jan, 1632~1675)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황금시

대인 17세기를 대표하는 세 명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뛰어난 색조,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靜密感)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델프트 풍경>,

<레이스를 뜨는 여인>, <우유 따르는 여인>등이 있다.

  참고 두산백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Jan Vermeer]                           

베르메르가 고향 풍경을 그린 '델프트의 풍경'

명암 대비의 대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 ~ 1669)

    위키백과: 렘브란트 판 레인, 내용 참조: 렘브란트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인 렘브란트는 빛의 명암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한 화가로 유명하다. 제분업자의 아홉째 아들로 출생한 렘브란트는 역사화가

스바넨부르흐(Jacob Isaacsz Swanenburgh)로부터 배운 후, 암스테르담의 피테르 라스트만

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 후 출생지였던 라이덴에서 중진(重鎭) 초상화가로 인정받았고 1631

년 가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에 일약 초상화의 제일인자로 부상했다.

 

렘브란트의 걸작: 야경(夜警 야간 순찰하는 사람)-1642

 

      렘브란트의 화풍은 전기(1650 이전)에는 카라바조의 명암과 바로크적인 구도의 내면화에서

출발했으나, 후기에는 인간 심리의 심층을 조사(照射)하여 깊은 정신구조를 조형화한 신비

로운 화면이 되었다. 전기의 대표작으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다나에>, <야경(夜

警)>(1642), 후기에는 <바테시아>, <바다비아인의 모의>, <유태인의 신부>(1668~1669경)

등이 있다.

 

렘브란트는 많은 자화상 외에도 그의 데생(dessin) 작품 역시 또한 높이 평가되며 약 1300

점이 남아 있다. 데생(dessin)이란 채색을 하지 않고 주로 선으로 형태나 명암을 나타내는

회화 표현 방법이다.

 

판화에도 조예가 깊었던 렘브란트  

렘브란트는 판화(版畫)에도 조예가 깊어 판화의 에칭 기법을 개발하였고, 질적으로도 뛰어

난 작품을 전 생애에 걸쳐 300 점을 제작하여 판화가로서도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다. 에칭

(링크:에칭 [etching])이란 동판(銅版 구리판)에 긁힌 자국을 만들어 판화를 찍어 내는 기법이

다. 즉 동판에 밀랍·역청·송진의 혼합물로 된 바탕(그라운드)을 입히고 그 위를 뾰족한 도구

로 밑그림을 그린 후 동판을 부식액에 넣으면 동판에 홈이 파이고 형태가 새겨진다. 홈이

새겨진 동판에 잉크를 발라 종이를 압착시키면 판화가 만들어진다.


렘브란트의 박물관 (http://www.rembrandthuis.nl/en/)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박물관은 렘브란트가 1639년에서 1660년까지 살았던 집

으로 렘브란트의 판화 작품과 원본 에칭 전시 외에도 그의 판화 기법을 시연해 보여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생 2백90점의 판화를 제작했던 렘브란트는 15세기 네덜란드 동판화의 거장 마르틴 숀가

우어, 16세기 독일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뒤를 이어 판화를 독립된 예술장르로 격상시키

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드라이포인트 같은 기존의 판화기법에 제작과정이 간편한 부식동판

화 에칭을 접목해 선의 강약과 미묘한 명암변화를 자유자재로 다룬 그의 판화는 어둠과 빛

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대상을 부각시키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이 특징이다.

이 기법은 화면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하고 중심과 강조점만 밝게 처리하여 드라마틱한 효과

를 나타내는 기법이다. 흑백의 명암으로만 대상을 표현하는 단색판화는 이 같은 렘브란트의

특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매체였다.

 

 
렘브란트 판화, <설교하는 예수> (1643∼49)
그림 출처:
http://blog.daum.net/jinapower/13318824
렘브란트 판화, <목자들의 경배> (에칭, 1652)
그림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files/cul/cul_20061223010926_seo2222.jpg

 

렘브란트의 판화는 유독 구약·신약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은 데, 그가 묘사한 빛

이 고요하면서도 강렬해 극적인 사건들을 묘사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대

표작 <설교하는 예수>(1643∼49)는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사건들을 표현한 것으로, 손을

하늘로 향하고 설교하는 예수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두드러져 보인

다. 

 

그의 또 다른 판화 <목자들의 경배>(에칭, 드라이포인트, 1652)는 들판에서 천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오른쪽 구석에서 나오는 불빛은 호롱불이 아니라 아기 예수에게 서 나오는 신성의 광채거나

은혜의 불빛으로 풀이된다. 렘브란트는 인공의 호롱불과 은혜의 불빛을 대조시켜 그분의 신

성을 강조한다. 서성록 교수의 평이다. 내용 출처:

http://cafe.daum.net/logos/8jq/2229?q=%B7%BD%BA%EA%B6%F5%C6%AE%20%C6%C7%C8%AD%20%B8%F1%C0%DA%B5%E9%C0%C7%20%B0%E6%B9%E8&re=1

 

네덜란드의 국민 화가 빈센트 반 고흐(van Gogh) 

       내용참조: 다음백과: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D%9D%90 

 

네덜란드에 와서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그림을 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19세기에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등장하여 네덜란드의

미술계를 꽃피웠다.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고흐

는 그의 생존기간 동안에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 명성은 급속도로 커

졌다.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에 끼친 반 고흐의 영향은 막대하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과 그의 同시대인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

며, 암스테르담 남동쪽 80km에 있는 크뢸러-뮐러 박물관(krollermuller.nl/visit)도 반 고흐

그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강력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그의 수많은 걸작은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 단 10년(1880~90년) 동안 만들어냈다.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해바라기>등이  대표작이다. <베 짜는 사람들 Weavers>, <감자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안타까운 일생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였다. 고흐는 어린 시

절 형의 죽음을 보았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을 싫어하여 기숙사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16살에 (빈센트) 고흐는 삼촌 빈센트의 권유로 헤이그에 있는 구필 화랑에 근무하게 되었는

데 1873년에 그의 회사는 그를 런던으로, 다음에는 파리로 발령했다. 그즈음 그는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잉글랜드 켄트 주의 감리교학교 램스게이트에서 견습교사가 된 다음

1877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1878년에 신학교를 그만둔 그는

보리나주로 알려진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평신도 설교자가 되었지만 곧 해고 되었고,

1880년에, 빈센트는 동생 테오의 제안을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85년과 1886년 사이 겨울에 반 고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미술 학교에 등록했지만 퇴

학당했다. 이즈음 고흐는 일본화의 밝은 색채와 캔버스 공간의 사용, 그림에서 보인 선의

역할에 감탄했으며, 일본화의 단순하고 솔직한 표현 방법, 색채들을 결합하여 분위기를 표

현하는 일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 창녀나 과부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상처 받고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소용돌이와

원색의 노란색으로 표현하여,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

> 등의 걸작들을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가 남프랑스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는 1888년 2월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Arles)로 갔는데,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을 유지하면서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표현하려 했다. 1888년 크리스마스이

브에 반 고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일으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랐으며, 1889년 4월말 정

신병원에 입원하였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있는 동안, 되풀이되는 발작에 시달리고 평온한

기분과 절망적인 기분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정신병원의 정원 Garden

of the Asylum>, <삼나무 Cypresses>, <올리브 나무 Olive Trees>가 이때의 작품이다.   

 

고흐가 조카 탄생을 축하해 동생 테오에게 그려준'아몬드꽃 Almond Blossom' -1890년 작품-

아몬드꽃은 매화처럼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꽃이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

의 불화 끝에 귀를 자르고, 자발적으로 들어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랑

하는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자, 조카의 탄생을 기념하는 선물로 주려고 그린 것이다. 이른

봄에 피는 아몬드 꽃처럼 조카가 고통을 잘 극복하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자살한 해의 마지막 봄에 그려진 그림이다.

 

1890년 그는 파리 북쪽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돌아가 <옥수수밭>, <강이 흐르는 골짜기>,

<농부들의 오두막>, <교회> 등 시골마을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결국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에 세

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그가 살아 있는 동

안 팔린 작품은 데생 1점뿐이었다. 그를 무조건 믿었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활

을 유지했다. 1872년부터 테오와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은 그의 목표와 믿음, 희망과 절망,

수시로 달라지는 건강상태와 정신상태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서, 진실한 인간기록이라 할 수

있으며 독특하고 감동적인 전기(傳記) 자료이다.   

 

다음 링크들은 고흐의 그림이 소장된 곳으로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거나 다운 받을 수 있다. 

1) 반 고흐 뮤지엄 홈페이지:

    http://www.vangoghmuseum.nl/en/

2) 반 고흐 그림이 있는 사이트:

    http://www.vangoghmuseum.nl/en/search/collection

3) 크뢸러 뮐러(Kroller Muller)미술관 홈페이지: krollermuller.nl/visit

 

고흐의 그림을 많이 소장한 크뢸러 뮐러(Kroller Muller)미술관 

홈페이지: krollermuller.nl/visit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아를의 다리(跳開橋 도개교-고흐-

 

크뢸러뮐러(Kroller Muller)미술관은 암스테르담에서 남동쪽으로 80km 쯤 떨어진 호헤 벨뤼베

국립공원(De Hoge Veluwe)안에 있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네송이의 해바라기

Four Sunflowers Gone Seed>, <씨뿌리는 사람>, <밤의 카페 테라스 Terrace of a Cafe

at Night> 등 고흐 그림 90여 점이 있다. 고흐의 작품 외에도 모네, 르누와르, 세잔느, 피카

소, 몬드리안, 칸딘스키, 쿠르베, 밀레, 도미에 등 유명 작가의 작품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전개된 신조형주의(De Stijl 데 스틸-링크:더 스테일) 운동의 주요 작가인 몬드리안

(Mondrian)과 반데어레크(Van der Leck)의 작품들이 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자체도 훌륭한 건축 작품이며, 미술관 바깥의 조각공원에는 로뎅의 작

품 등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계속)

(네덜01)-운하와 풍차,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운하,풍차,풍차의종류,자전거,암스테르담,에이설호,볼렌담,에담,잔세스칸스,킨더다이크

(배경 영상,음악)  클래식기타 명곡 모음(유튜브)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youtu.be/NT87hXSPV1A  <=요걸 클릭

 

네덜란드 알아보기  [네덜란드관련 링크들]

네덜란드 정부 홈페이지 : http://www.government.nl/ ,  네덜란드관광청: www.holland.com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 네덜란드 여행 가이드 &지도 무료다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네덜란드 (네덜란드 왕국 , Netherlands) 

            위키백과: 네덜란드 [Netherlands]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네덜란드를 和蘭(화란 Holland 홀란드,홀란트)이라고도 불러왔는데 정

식 명칭은 네덜란드 왕국(네:Koninkrijk der Nederlanden = Kingdom of The Netherlands)

이다. 네덜란드(netherlands)는 '낮은 땅'이란 뜻으로, 실제 이 나라의 최고 높은 곳이 321m

이며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간척사업과 농지 개량사업이 발달하였다. 지도에서

보면 국토 곳곳이 물이 들어차 있어 지도에 구멍이 뻥뻥 뚫린 듯하다. 

국토 곳곳이 운하와 호수로 되어 있는 네덜란드의 땅

 

네덜란드의 북부 지역은 위도가 높은 곳(북위 52N)에 있지만, 북해의 난류와 편서풍의 영향

을 받는 해양성 기후로 1년 내내 온화한 편이다. 일 년 중 187일 정도 눈·비가 내리고 연간

평균 강수량은 915mm이다. 날씨가 온화하고 토양이 기름져서 원예와 낙농업이 발달하였으

며,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농, 축산물의 약 3분의 2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작은 운하와 풍차가 있는 암스테르담 근교의 목축지&nbsp;
암스테르담 근교 에담의 전형적인 네덜란드 풍경&nbsp;

 

네덜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경제공동체(EEC, 현 EC)의 창립국으로서, 제2

차 세계대전 후 선진 공업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주로 석유화학·금속·철강·수송·조선업이 발

달하였다. 북해 연안의 그로닝겐 지역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이

전에 세계를 누비던 화상(和商 화란 상인=네덜란드 상인)들이 다녔던 곳은 물론 전 세계를

무대로 교역하고 있는데, 2014년 2월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47,633 달러이다(세계13위).

 

네덜란드의 역사

켈트와 게르만인이 자리 잡고 살던 네덜란드에 로마인이 들어와 외국 지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BC 50년경인데 남부의 마스트리히트에 로마 시대의 요새 유적이 남아 있다. 이후

유럽은 베르됭 조약(843년)에 의해 서·중·동 프랑크로 나뉘게 되는데, 스헬데 강을 중심으

로 서쪽(현재의 벨기에)은 서프랑크 왕국에, 동쪽은 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10~13

세기에는 상업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홀란트 백작이 북부를 중심

으로 세력을 강화하였다.

 

14세기에 들어와서는 부르고뉴(부르군트) 공작 지배를, 15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

르크 가문의 지배를, 16세기에는 에스파냐(오늘날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이 후 네덜

란드는 종교개혁 등의 끈질긴 저항으로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내고, 1588년 공화국(국호는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으로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다.

 

네덜란드의 황금시기

1588년에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이 성립되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네덜란드는 해외 진

출의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네덜란드는 인도양과 동인도 제도의 여러 섬과 항구에서 포르

투갈을 몰아내므로써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해양을 주름잡던 대항해 시대가 막을 내리고,

네덜란드가 동방에서 상권을 거머쥐었는데 그 전진 기지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였다.

 

1602년에 설립된 동인도 회사(네덜란드)는 동인도의 여러 섬을 정복하고 이 지역의 특산품

을 강제로 재배케 하거나 향신료 등 생산품의 무역을 독점하였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남아

프리카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등지에 방대한 식민지뿐만 아니라 북미 대륙에도 뉴암

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을 건설하기까지 하였다.

 

동인도 회사란 17세기 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동양(동인도)에 대한 독점 무역권을

부여 받아 설립한 회사로, 각국의 동인도 회사는 동인도의 특산품인 후추, 커피, 사탕, 면직

물 등의 무역 독점권을 둘러싸고 경쟁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를 견제하려는 영국과의 계속

되는 전쟁에서 밀려나 세계 무역의 주도권을 영국에 빼앗기게 되었다.(출처:동인도 회사)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에도 진출하였는데, 일본에서는 나가사키에 활동 공간을 마련해 주

었으며, 네덜란드 문화를 배워 '난학'(蘭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차 대전 때 일본의 인도

네시아 침략으로 네덜란드와 사이가 안 좋았으나, 요즘은 네덜란드와 일본은 아주 친밀한

교류를 하고 있다.

 

이 네덜란드의 황금 시기에는 문화적으로도 황금기를 맞이하여, 렘브란트 판 레인, 요하네

스 페르메이르 등의 화가와 에라스무스,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도 배출하였다. 한편 에라

스무스는 로마 가톨릭 사제였지만, 《우신예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종교 개혁

자였으며,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인 루터나 츠빙글리의 사상 형성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

리된 잉글랜드 종교개혁(성공회)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 네덜란드는 1810년에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프랑스 영토가 되기도 하였지

만, 1815년 빈 회의의 결과 네덜란드 왕국이 새로이 탄생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종전과 동시

에 네덜란드 경제의 중요한 밑받침이었던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는 등 식민지들을 잃었지만,

네덜란드는 안정된 정치와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루고 세계로 진출하여 활약하는 등 상업 국

가의 위상을 떨치게 되었다.

 

한편 네덜란드와 한국과의 인연은 17세기 조선에 표류된 후 '하멜 표류기'를 써 조선을 서

양에 소개한 헨드릭 하멜과 조선 최초의 귀화 서양인인 박연(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이 있

다. 또한 구한말 고종의 밀사(密使)였던 이준 열사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 헤이그에 남

아 있다.

 

암스테르담 [Amsterdam]

      내용 출처: Daum 백과: 암스테르담 [Amsterdam] , 위키백과: 암스테르담 [Amsterdam]

운하에는 관광용 배뿐만 아니라 개인 보트도 다닌다

암스테르담은 약 1,000개의 다리로 연결된 9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 주민들이

홍수에 대비해 암스텔 강 양안에 둑을 쌓았고, 1270년에 암스텔 댐을 지었기에 암스테르담

이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네덜란드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 문

화의 중심 도시이다.

자전거의 천국 네덜란드 &ndash; 암스테르담

 

17세기에 당시 혼란했던 통화 사정을 바로잡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외환은행을 세웠는데, 그

후로 유럽 최대의 어음교환지역으로 발전했으며 그 결과 국제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에 세워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현재 주식거래 시장의 기반이 되었으며,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운하 뒤로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암스테르담 중앙역
운하를 다니는 보트로 시티투어를 할 수도 있다.

운하로 둘러싸인 암스테르담의 중세 지역은 암스텔 강 양안(兩岸)에 있다. 옛 건축물로는

13세기의 구교회와 15세기의 신교회, 로얄 궁전, 민트 탑, 웨스트 교회가 있다. 옛 유대인

구역에는 포르투갈 유대인 교회와 렘브란트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렘브란트 생가가 있다. 구

시가지에는 담 광장·레이드세플레인 광장·렘브란트스플레인 광장이라는 큰 광장이 3개 있는

데,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명소인 담 광장에는 왕궁과 2차 대전 기념비, 신교회가 있고

그 서쪽에는 안네 프랑크의 집이 있다.

 

암스테르담 도심에서 남서쪽 17km에 있는 스키폴(Schipol = 스히폴) 국제공항은 유럽의 중

앙에 위치하는 탓에 유럽에서 비행기가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공항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가는 여행객들이 자주 들리는 공항이다.  

 

네덜란드의 아이콘(icon)들

농사용 재료나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
음식이나 유제품 운반용 보온 상자가 달린 자전거
운하의 다리 위에 자전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것들로는 운하, 풍차, 꽃, 치즈, 자전거가 있다. 치즈 수출 등 세계적

인 낙농업 국가이기도 한 네덜란드는 튤립 축제가 있을 정도로 튤립의 재배와 수출량도 어

마어마하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데, 국토(땅)가 평평한

것도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점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동하기 위한 승용 자전거가

대부분이지만, 농업용 등 기타 용도로 쓰이는 자전거도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이 많은 암스테르담 시내는 자전거가 특히 많은데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가 많은 도시라

하며, 전 국민 한사람 당 2대의 자전거를 소유할 정도라 한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자전

거 전용도로도 자동차길 옆쪽에만 국한되지 않고, 버스 중앙 전용차로처럼 도로 가운데가

자전거 전용 도로인 곳도 있었으며 자전거 전용 신호등도 있다. 또한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는 모든 우선권이 자전거에 있기 때문에,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자전거와 접촉해 사고가 나

면 무조건 사고를 낸 사람이 모든 손해 배상을 해줘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전거 보관 거치대가 있긴 하지만 보관 장소가 부족한 탓에 가로등이나 심지어 운하를 건

너는 다리에다 자전거를 매달아 두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튼튼하고 좋은 자물통 값은 자

전거 값보다 더 비싸다는 우스개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coffee shop에서는 커피가 아닌 마리화나를...

네덜란드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로 공창(公娼)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 국가 최

초로 안락사(安樂死)를 인정한 나라이다. 1993년 동성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하였으며 일부

마약도 합법화하였다. 1976년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낮으며 인체에 피해가 적은 대마, 환각

버섯 등을 연성 마약(Soft Drug)으로 규정하여 5g 이하의 대마를 피우거나 소지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커피숍(coffee shop)간판에는 ‘join us’라고 유혹하는 말이 써져 있다.

 

하지만 대마가 주는 향락 때문에 대마를 끊지 못하는 대마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선 합법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선 불법이므로, 호기심이라도 마약은 하지 말

아야 한다. 비흡연자를 위해 마약이 든 케이크까지 팔리고 있으니 암스테르담 여행 시에는

주의해야 한다.

 

암스테르담 운하와 수상가옥(水上家屋 Boathouse 보트하우스)

 
 수상가옥(boathouse)에는 수도와 전기가 공급된다.
 
암스테르담의 운하의 여름 풍경. 차마 클로즈업은...

암스테르담에는 165개의 크고 작은 운하가 사방으로 뻗어 있고 1,292개의 다리가 있다. 유

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암스테르담에서는 땅이 모자라 소위 수상가옥(boathouse)을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전기, 수도, 가스 등이 연결되어 있다. 이 수상가옥(배)은 이동

도 가능하여, 수로를 타고 바다로 나가 이웃나라로 갈 수도 있다 한다.

 

에이셀 호(Ijsselmeer 湖)에 접한 볼렌담, 에담, 마르켄

       참고: 다음백과 볼렌담 [Volendam] , 에담 [Edam]  위키백과: Marken

암스테르담 북동쪽 22km 떨어진 에이셀호(Ijsselmeer 湖)는 북해(北海)가 만입(灣入=바다

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옴)되어 생긴 호수이다. 에이셀 호에 접한 볼렌담, 에담, 마르켄을

둘러보았다. 서로 이웃하고 있는 볼렌담, 에담, 마르켄은 버스를 타면 암스테르담에서 1

시간 이내로 갈 수 있으며 1일 이용 자유권을 사용하면 하루에 세 군데를 다 둘러 볼 수

있다.

 

볼렌담은 에이셀 호에 접해 있는 한때 항구로 번창하였지만 지금은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

다. 볼렌담에서는 이곳의 명물이라는 청어 고기도 맛보고, 치즈 공장을 구경할 수 있다. 마

르켄은 볼렌담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가는 것이 보통이나,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에담은

‘에담치즈’로 유명하며, 치즈마켓 광장에서 두꺼운 쿠션 방석 크기의 치즈를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석 크기의 치즈를 옮기는 치즈마켓 포스터
네덜란드의 전통 나막신 클롬펜(klompen)

 

네덜란드 전형적인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  

      영어 위키백과: Zaanse Schans                            

암스테르담 북쪽 약 15Km에 있는 잔세스칸스 풍차 마을은 암스테르담에 오면 가장 많이

구경 가는 관광지중 하나다. 잔강(Zaan river)가에 있는 잔세스칸스(Zaanse Schans)는 18

세기까지만 해도 700개 넘는 풍차가 있었지만, 증기기관 발명 후 산업혁명과 기계화로 풍

차는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게 되자, 1961년부터 주변 일대에서 남아 있던 풍차를 몇 개

옮겨와 인공적인 풍차 마을을 만들었다.

 

이 풍차 마을에는 잔세스칸스 박물관과 물건을 직접 만들어 팔고 전시하는 치즈 공장과 네

덜란드 나막신(클롬펜 Klompen)공방과 기념품 가게 등 관광시설이 있다. 네덜란드는 치즈

수출에서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클롬펜 Klompen)이 유용하였던

까닭은 국토의 해발이 낮아 항상 땅이 질퍽거렸기 때문일 것이다.

 

잔세스칸스 전망대에서는 둑과 운하로 구획된 널따란 벌판에 풍차가 있는 네덜란드의 전형

적인 전원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관광지 입장료는 따로 없지만, 소형차 주차료가 9유로

이므로 주차료에 관광요금이 포함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예부터 있던 전통 풍차가 19개나 있는 킨더다이크

 

세계문화유산 킨더다이크(Kinderdijk) 풍차 공원

           참조:킨더다이크 공원 [Discover Kinderdijk Park]

세계문화유산인 킨더다이크 (Kinderdijk)는 공원은 플랑드르 회화에 자주 등장할 법한 고전

적인 네덜란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로테르담에서 16㎞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곳에는 운하 제방 위에 170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풍차가 19개나 남아 있

다. 네덜란드에서 옛 풍차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으로 운하 제방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

나 겨울에는 얼어붙은 운하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풍차(風車)의 나라 네덜란드

        참조 다음백과:풍차 [windmill] 위키백과: 풍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풍차(風車)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동력(動力)을 얻는 기계로 주로 곡식을 가루로 빻는 제

분이나 기름을 짜는 데 많이 사용하였고, 물을 끌어 올리는 양수(揚水)나 관개용으로 사용

하였다. 풍차의 기원은 7세기 페르시아의 세이스탄의 풍차에 대한 것에서 찾을 수 있으며,

10~12세기엔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각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중국

에서도 13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차들이 있다. 특히 국토가 해면보다 낮아

배수가 필요한 네덜란드 등지에서 많이 사용되었기에 풍차하면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된다.

 
스페인 라만차 풍차 마을에서 본 원통형 풍차
다각형 풍차 – 사진출처: 영어 위키백과

풍차의 모양은 크게 겉을 돌로 쌓은 원통형 풍차(Tower mill)와 직육면체나 팔면체 겉을 나무

판자로 덮은 다각형 풍차(Smock mill)가 있다.

 

원통형 풍차는 영국이나 영국 식민지에서 많으며 스페인에서도 볼 수 있으며, 대개 바람이

많은 고지대에 설치된다. 풍차의 효율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날개가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야

하는데, 풍차의 날개면의 방향 조절하기 위해 막대를 이용하거나 줄을 CAP(고깔모자)의 기

어에 감아 조작하거나, 지면까지 내려오는 꼬리막대(굴대)로 풍차의 CAP(고깔모자)의 방향

을 돌려야 한다. 스페인 문호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돈키호테(Don Quijote)의 마을

라만차 (La Mancha)에서 본 풍차는 바람이 많이 부는 높은 언덕에 벽돌로 쌓은 원통형으

로 꼬리막대(굴대)가 있다.

 

네덜란드나 독일의 풍차는 위가 좁아지는 직육면체나 육각 기둥면에 겉은 나무판자로, 본

체(本體)는 움직이지 않고 cap만이 돌아서 바람을 받는 다각형 풍차(風車 Smock mill)이다.

 

또한 미국 서부 영화의 목장에 많이 등장하는 날개가 많은 풍차도 있으며, 최근에는 발전용

으로 사용되는 3개의 날개로 구성된 프로펠러 형이 개발되어, 풍차(바람)의 힘을 이용한 풍

력 발전기에 이용되고 있다.

(계속)

(네)마스트리히트/북서독일(6)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도르트문트 맥주,분데스리가, 뮌스터-베스트팔렌조약,케루빔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독일 가곡 모음(유튜브)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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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북서쪽 끝부분인 아헨(Aachen)에서 벨기에의 리에주에 갔었지만, 리에주 방문기는 벨

기에 편에서 따로 얘기해 볼 것이다. 벨기에 리에주에서 독일의 뮌스터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스트리히트(네덜란드)를 잠시 들렀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마스트리히트

       홈피: www.maastricht.nl위키백과:마스트리흐트 [Maastricht]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세르바스 성당 입구
성 세르바스 성당(좌)과 붉은 탑이 있는 성 얀 성당

마스트리히트(네:Maastricht, 림뷔르흐어:Mestreech, 불어:Maestricht)는 기원전 50년에 로마

인들이 마스(Maas river) 강변에 건설한 거류지(居留地)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

다. 조그만 도시지만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와 성당, 가장 오래된 문(Gate) 등 네

덜란드 도시 중에서도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어 관광의 도시로 유럽 내에서 인기가

높다. 

 

네덜란드 남쪽 국경의 꼬리 부분에 위치한 마스트리흐트는 벨기에, 독일과 국경의 최접점으

로 마스트리흐트 조약(링크: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1992

년 2월 7일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유럽 공동체 가입국이 서명하고 1993년 11월 1일

부터 발효한 조약으로, 유럽 연합의 기초가 되었으며 유로화 도입을 이끌어 내었다.

 

마스트리히트의 오래된 유적들

마스 강가에 있는 헬포르트(Helpoort, poort는 문이란 뜻)는 1229년 Brabant의 귀족 헨

리 1세 때 만들어 진 도시 출입문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문(gate)이다.

1229년 만들어진 헬포르트(Helpoort)
&amp;amp;nbsp;멋진 마스트리트 시청사

구 시가지엔 마스트리트 시청사, 비숍의 방앗간(Bisschops Molen) 물레방아가 있다. 브레

이트호프 광장(Vrijthof) 뒤쪽의 빨간 벽돌색 높은 탑은 고딕양식의 시계탑으로 성 얀 성당

(St. Janskerk)이며, 그 옆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세르바스 성당(St. Servaasbasiliek)은 네

델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마스트리히트 최초의 대주교였던 성 세르바스의 무덤 위에

지어졌다. 마스트리히트 관광안내소는 조그만 아치(Arch) 문으로 들어가는 데, 15세기엔 재

판소로 쓰이다가 18세기에는 극장으로 사용되었던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중세시대의 성당을 개조하여 책의 성지가 된 셀레시즈 도미니카넨(Selexyz dominicanen)

서점은 내부 기둥과 천정, 창문이 옛 성당의 모습 그대로인데, 19세기부터는 교회의 용도로

쓰지 않고 있다가 2006년 네덜란드의 건축가에 의해 서점으로 개조되었다. 이 서점은 2008

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Top10에 선정되었다.

중세에는 요새 도시였음을 보여주는 포곽(포대) 유적

 

마스트리히트 서측 경계를 이루는 성곽 포대(포곽 Casemates) 유적 안쪽은 공원으로 조성

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으며, 달타냥(d'Artagnan)의 동상이 이 공원 안쪽에 있다. 달타냥은

실제 인물로서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경호원이었는데, 루이14세가 네덜란드를 넘볼 때 그

는 이미 62세였으며 마스트리히트에서 죽었다. 그 후 뒤마의 소설 '삼총사' 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루르(Ruhr) 공업지대의 중심지 뒤셀도르프(Düsseldorf)

     뒤셀도르프시 홈피: http://www.duesseldorf.de/de/ , 위키백과: 뒤셀도르프

&amp;amp;nbsp;&amp;amp;nbsp;가스등(Gaslight)이 있는 명품거리로 통하는 가로수길

 

쾰른 북쪽 45km 라인강변에 있는 뒤셀도르프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주도(州

都)로 독일의 국제 비즈니스와 금융의 중요 도시이며 패션과 무역 박람회로 유명하다. 인구

약 57만으로 독일에서 9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경제 규모면에서 5위권에 드는 도시이다. 이

곳이 유럽 공업지역의 선두주자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루르 역청 탄전 때문이다.

이 탄전은 대체로 루르강과 리페강 사이에 있으며, 라인강 동쪽 뮌스터·아른스베르크까지

뻗어 있다. 도로·철도·내륙수로 망이 밀집해 있어 라인-루르 공업지대를 뒷받침하는데, 주

로 제철·제강·화학제품·기계공업이 활발하다.(내용참조 Duam백과:뒤셀도르프 (Dusseldorf) )

뒤셀도르프에서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집 위에리게 Uerige(우측)

뒤셀도르프에서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집 위에리게(Uerige)에서 이 곳의 명물 독일 맥주를 마시는 데, 가게 앞에 이동식 풍금 소리가 옛날의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뒤셀도르프  구시가지(알트타트 Altstadt)에 있는 명품 쇼핑거리(쾨니히살레 Königsallee)가다 보면 수로를 따라 정비된 가로수 길을 만난다. 라인강변으로 나가면 라인타워(Rheinturm 높이 240.5m)와 독특한 디자인 건축물인 미디어 하버(MedeanHafen)가 보인다. 찌그러진 성냥갑처럼 비스듬히 세워진 3개의 건축물 노이어 졸호프 (Neuer Zollhof)는 미국의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오 게리(Frank O. Gary)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독특한 디자인과 개성 넘치는 건축물들이 미디어 하버 근처에 많이 모여 있다.

 

도르트문트(Dortmund)      

                    참조-Daum백과 :도르트문트 (Dortmund) , 위키백과:도르트문트

                                          도르트문트시 홈피: https://www.dortmund-tourismus.de/

 

뒤셀도르프에서 동쪽으로 60km 쯤에 있는 도르트문트는 1220년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도

시가 되었고 그 뒤 한자동맹에 가담했다. 14세기에는 폭넓은 무역으로 부유해졌지만 30년

전쟁 후 쇠퇴하기 시작해 1803년 자치도시의 특권을 잃었다.

 

19세기, 탄광과 철광석 광산이 개발되고 1899년에 운하를 완공하면서 라인-루르 대도시권

의 일부가 되어 급속한 발전을 해왔다. 노르트라인-페스트팔렌 주의 지리적 중심부에 자리

잡았기에 경제적, 상업적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파괴되어 현

대식의 설계에 따라 도시를 재건했으며 독일에서 8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시내 구경은

걸어서 하기에 충분하지만,  'hop on hop off 버스투어’를 이용하여 명소를 구경할 수도 있

다. 

 

도르트문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개최도시였으며,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팀인 보르시아

(BVB: Ballspielverein Borussia 링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Borussia Dortmund) ) 홈구장이 여기

에 있다

보르시아 도르트문트(BVB) Kloppo선수 응원 깃발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리그    홈페이지: 분데스리가 http://www.bundesliga.de/

독일 프로축구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bundesliga)는 독일어 'Bundes'(연방)와 'Liga 리그’

가 합해진 말로, 조별 34라운드 홈 & 어웨이(home & away) 방식으로 치러진다.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 아이콘과 해당 도시

             그림출처: https://t1.daumcdn.net/cfile/blog/27392F3D561509132F

 

이 리그에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로는 구자철, 박주호, 지동원, 홍정호, 김진수, 류승우, 서영재

등이 있다. 2014-15 시즌결과 우승은 FC 바이에른 뮌헨이었고, 득점왕은 알렉산더 마이어였다. 

 

맥주를 즐기는 독일인

 

도르트문트 맥주  

사진 및 내용 참조: [맥주 상식] 알고 마시면 입안이 더 즐겁다독일 도르트문트의 엑스포트 맥주



도르트문트 맥주 엑스포트(Dortmunder Export)
      
 
 
     DAB(Dortmunder Actien Brauerei)

 

도르트문트 맥주(Dortmunder Export)는 골든 라거(Golden Lager) 스타일의 맥주로 독일의

도르트문트 지방의 경수(硬水)로 만든 맥주로, 필스너보다 발효도가 높고 향미가 산뜻하고

쓴맛이 적다. 엑스포트(Dortmunder Export)는 고된 하루의 일과를 끝낸 광부들과 철강노동

자들의 목을 축여 주었던 맥주였으며, 뒤셀도르프는 한때 독일에서 가장 큰 맥주 양조 도시

였다. DUB(Dortmunder Union Brauerei)와 DAB(Dortmunder Actien Brauerei)가 도르트문

트의 대표적인 맥주이다.

 

하면(下面) 발효 맥주(bottom fermentation beer)

발효 도중 밑으로 가라앉는 성질을 지닌 효모로 만든 맥주로 비교적 저온에서 발효된다. 일

반적으로 라거(Lager) 계열이 여기에 속한다. 라거는 5~10℃의 저온에서 7~12일 정도 발

효 시킨 후, 다시 1~2개월간의 숙성기간을 거친다. 하면(下面) 발효에서의 저온 숙성과정을

'라거링(lagering)'이라 부르는데, ‘라거’란 말은 ‘저장하다’라는 뜻의 독일어 '라게른(lagern)’

에서 유래했다. 이 라거 양조법은 맥주의 품질을 안정시키기 위해 근세에 개발됐다. 현재

라거(Lager) 맥주는 영국을 제외한 전 세계 맥주시장을 주도(세계 맥주 생산량의 약 ¾

도)하고 있으며, 필젠(Pilsen), 도르트문트(Dortmund), 한,미,일(韓美日) 맥주가 여기에 속한

다. 

 

뮌스터(Münster)    내용참조 Daum백과:뮌스터 [Munster] , 위키백과:뮌스터

&amp;amp;nbsp;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 맺어진 뮌스터 시청사
&amp;amp;nbsp; St. Lambertus 성당(제단부 방향)&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

 

쾰른에서 북동쪽으로 150km(도르트문트에서 북쪽으로 68km) 떨어진 곳에 있는 뮌스터

(Münster)는 서쪽으로 네덜란드, 북쪽으로 니더작센 주, 동쪽으로 데트몰트 구, 남쪽으로 아

른스베르크와 접하고 있다. 뮌스터란트 중부에서는 비옥한 점토 토양과 많은 강우량 때문

에 이상적인 가축 방목용 목초지가 조성되며, 루르 지역은 신선한 낙농품·육류·베이컨의 최

대 공급지이다. 도르트문트-엠스 운하를 끼고 있어 중요한 교통연계지이다. 

 

뮌스터는 인구 30만 명 중 5만 명이 대학생인 도시로 성당과 교회가 100여 개나 있기에 성

직자와 신학도도 많다.  이곳의 여름은 덥지 않고 겨울 또한 춥지 않으며 비가 자주 온다.

이런 뮌스터의 특징을 두고  “뮌스터에 오면 비가 내리거나 종이 울린다.”하는 말이 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이곳 기후와 성당과 교회가 많아 종소리가 자주 울리는 것을 빗댄 말일

것이다. 시내는 다른 독일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이용자가 많은 도시였는데, 역사적 유적인

대성당, 교회, 시청사 등은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이곳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을 맺었던 도시이다. 베스트팔렌조약은 웨스트팔리아조약이

라고도 하는데 30년 전쟁을 종결시킨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여러

나라가 체결한 평화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루터파뿐 아니라 칼뱅파도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

았으며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독립도 인정받았다. (링크: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물의 성(Wasserburg)이 많은 뮌스터

대표적인 물의 성 ( 城 )&amp;amp;nbsp; 노르트키르헨 (Nordkirchen)
장중하고 화려한 노르트키르헨 (Nordkirchen)

 

뮌스터 근교에는 귀족(영주)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자(垓字 성 주위를 둘러싼 못)를

파고, 그 주위에 성을 쌓은 물의 성(Wasserschloss)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물의

성(城)으로 노르트키르헨(Nordkirchen), 라에스펠트(Raesfeld)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노르트키르헨(Nordkirchen)성(城)은 주위 정원이 크고 넓어 ‘작은 베르사이유’라 불린다.

 

지식을 맡은 천사(智天使) 케루빔(cherubim = 케루브=거룹 cherub)  

    다음백과:거룹 [cherub] , 사진과 내용 출처: http://blog.daum.net/johnkchung/6764516



독일 뮌스터 성당의 케루빔(Cherubim)=거룹 (cherub) 
 
 그리스 신화속의 푸토(Putto 아기 천사)

 

케루빔(또는 체루빔)은 케럽(Cherub)의 복수형태로, 천사의 아홉 품계에서 사랍(세라핌) 다

음 두 번째로 높은 품계에 있는 천사들이다. 거룹이라는 이름은 아카드어의 'Kāribu' 또는

'Kūribu'(기도하다,축복하다)를 뜻하는 Karābu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케루빔은

유태인의 경전인 토라(Torah: 창세기를 포함한 모세5경)와 에스겔, 이사야에 도 등장하며,

신약에서는 요한묵시록에 등장한다.

 

케루빔은 나중에 어린천사로 변형되었지만 헤롯이 재건한 성전에는 케루빔의 형상이 없었

다고 한다. 중세 이후, 케루빔의 형상은 기독교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독교의 성화(聖畵)에서 케루빔의 형상은 어떤 경우 사자, 황소, 또는 독수리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표현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에는 케루빔을 아기 천사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푸토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기 천사들은 종일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였다. 이

같은 모습은 성당의 성화(聖畵)나 조각과 라파엘 같은 거장의 작품에 자주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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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독일 북서 지역여행을 마치고, 네덜란드로 들어갔다. 독일 동쪽의 베를린, 함부르크,

드레스덴은 다음 숙제 여행지로 남았다.

 

-이하는 그동안 올렸던 A.남부독일 돌아보기 와  B.북서독일 돌아보기의 '바로가기 링크'들이며 

  게시글의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슴-

 

A.[남부 독일 / 프랑스 알자스 / 스위스 취리히, 루체른] 바로 보기 링크(아래 제목 클릭!)* 

남부독일(1)-슈타인 암 라인,라인폭포,상트 갈렌,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남부독일(2)-린더호프城,헤렌킴제城,비스교회,에탈 수도원,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추크슈피체 산

남부독일(3)-뮌헨,아우크스부르크,울름,뉘른베르크                                               

남부독일(4)-밤베르크,바이로이트,뷔르르츠부르크,로텐부르크

남부독일 (5)-하이델베르크,슈투트가르트,메칭겐 아울렛,호엔촐레른성,독일 대표 음식

 

프랑스 알자스 지방 둘러보기- (프:Alsace 독:Elsaß 엘자스)

스위스 최대의 도시 ‘취리히(Zürich)’와 청정도시 ‘루체른(Luzern)’ 돌아보..

 

B.[북서  독일] 바로 보기 링크(제목 클릭!)* 

(북서 독일01) 괴테의 도시-푸랑크푸르트  

(북서 독일02)프랑크푸르트 주변의 오래된 도시-마인츠, 슈파이어, 트리어

(북서  독일03) 라인강을 따라 - 뤼데스하임,로렐라이 -

(북서 독일04)모젤와인의 향기가느껴지는 코블렌츠, 엘츠 / 라인강변의 거점 도시 보파르트

(북서  독일05)-北西 독일지방의 문화적 중심 쾰른(Köln), 브륄, 아헨

 

(네)마스트리히트, (독일6)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 뮌스터 돌아보기

 

-다음은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베네룩스 3국]으로 이어짐-

(계속)

북서 독일(5)-쾰른(Köln),갈리아,레게음악,쾰른대성당,고딕양식,유비론,

                 -브륄,아우구스투스부르크성,아헨,아헨대성당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  Canon in D major-Pachelbel-(5분:18초 유튜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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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州(Nordrhein-Westfalen)

        참고 Daum백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Nordrhein-Westfalen]

서쪽으로 네덜란드·벨기에와 국경을 이루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80개의 도시들이

이 지역에 분포해 있어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다. 州都(주도)는 뒤셀도르프이지만

가장 큰 도시는 쾰른이며, 그 밖의 주요 도시로는 본, 아헨, 뮌스터, 에센, 도르트문트가 있

다. 석탄과 철이 많이 나는 지역 특성을 살려 루르(Ruhr) 공업지대로 발전하여, 유럽에서 가

장 중요한 산업 지역 중 하나가 되었으며 소위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곳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독일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다.

 

北西 독일지방의 문화적 중심 쾰른(Köln) 홈피:www.stadt-koeln.de  위키:쾰른 [Cologne]

쾰른 시는 독일의 가장 큰 교통 중심지 중 하나이자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다. 라인강 유역

서부의 라인란트 저지대는 황토로 덮인 평평하고 광활한 평원으로 독일에서 가장 비옥한 농

업지역에 속한다. 쾰른-본 공항(www.airport-cgn.de)은 쾰른과 본 중간 쯤(쾰른에서 15km

남동쪽)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라인가도를 북쪽에서 접근하려면 이 공항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쾰른은 과거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라틴어의 콜로니아(Colonia 영:colony 식민지라

뜻)에서 이 도시 이름이 유래되었다. 쾰른은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에 이어 독일에서 네 번

째로 큰 도시인데, 과거 프로이센 제국시대에는 베를린에 이어 제2의 도시였다. 기원전 38

년 로마 제국에 의해 설립되었기에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이다. 쾰른은 서기

50년 로마의 "도시" 지위를 수여받았으며, 260년에서 271년까지 쾰른은 포스투무스, 마리우

스, 빅토리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갈리아(갈리아 [Gallia]) 제국의 중심 도시였으며 서기 459년

에 프랑크족에 의해 점령당할 때까지 로마 제국 속주(屬州 식민지)의 주도였다. 785년 쾰른

은 대주교의 소재지가 되었고, 1180년 반원형의 도시 성벽이 건설되었으며 그 반원의 평평

한 면은 라인강과 접한다.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시기 동안 쾰른의 대주교는 일곱 선제후 중

한 명이자 세 명의 교회 선제후 중 한 명이었을 정도로 그 세력이 컸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영국 공군의 장군 아더.T.해리스 지휘아래 1942년 5월 31일 폭격기 1080

대가 쾰른시를 폭격을 감행하는 일명 '밀레니엄 작전'을 펼쳐, 이 도시가 괴멸되었고 6만

 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 당하였다. 이때 쾰른 대성당은 문화유산이라는 명목 하에 폭격 목표

에서 제외되었지만, 성당이 심하게 그을리는 등 피해를 입었다.

 

쾰른은 북서 독일지방의 주요한 문화적 중심이며 활기에 넘치는 예술 현장을 갖고 있다. 30

개 이상의 박물관과 수 백 여개 화랑이 있으며, 전시 내용은 고대 로마 유적에서부터 현대

의 그림과 조각품까지 광대한 범위를 갖는다. 또한 예술 쾰른 박람회, 국제 가구 박람회, 포

토키나 (Photokina) 같은 수많은 무역 박람회가 열리며, 쾰른 카니발 제전, 연례 레게 썸머

잼( Reggae summer Jam), 게이/레즈비언(Gay/lesbian) 프라이드 페스티벌, 크리스토퍼 스

트리트 데이(CSD) 등 축제의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레게(Reggae)음악이란?        참고: 다음백과: 레게 [reggae] 위키백과:레게

       내용 참조:http://radio.ytn.co.kr/program/?f=2&id=34301&s_mcd=0300&s_hcd=01

   레게음악은 1960년대 말 서인도 제도의 자메이카에서 시작되었다. 아메리카 흑인 음악과

마찬가지로 자메이카의 흑인 음악 레게는 아프리카 전통 의식과 기독교 예배 의식의 묘한

혼합에서 탄생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전 세계 음악계에 레게음악을 유행시킨 가수는 자메이

카 출신의 밥 말리로, 7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레게음악의 가사는 대부분 가난한 자메이카 사람들이 갖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종교에 대한

믿음을 다루고 있다. 레게음악은 4/4박자에 불규칙하면서 강한 악센트가 특징인데, 리듬은

4분의 4박자로 보통 스카보다는 느리게 연주되며 한 마디의 세 번째 박이 강박이다. 이는

오프 비트(off beat)라 불리는 독특한 약박 리듬에 기반한다. 짧은 리듬을 전기기타와 드럼

세트로 여러 번 반복하거나 오르간이나 피아노로 반복하기도 한다. 리듬이 복잡한 경우도

있으나 화성은 단순하며 록음악처럼 소리도 크다. 

 

쾰른의 물 '오 드 콜로뉴'(Eau de Cologne)

쾰른은 쾰슈(Kolsch)로 불리는 이곳의 맥주뿐만 아니라 '오 드 콜로뉴'(Eau de Cologne)로

유명하다. 18세기 초기에, 향수 제조가 조안 마리아 파리나 (1685년 ~ 1766년)가 새로운 향기를  

창조했고 그의 고향 쾰른의 이름을 따서, ‘오 드 쾰른’ (Eau de Cologne "쾰른의 물"의 뜻)이라

명명하였다. 오늘날, 최초의 ‘오 드 쾰른’은 아직도 현재 8대손 파리나 家 (1709년이래로 파리나

게겐뉘버)와 2006년 12월 상표 4711을 샀었던 Maurer & Wirtz에 의해 쾰른에서 생산된다.

 

독일 3대 성당 중 가장 유명한 쾰른 대성당  홈페이지: 쾰른 대성당 http://www.koelner-dom.de/

2개의 첨탑과 뾰족 아치(Arch)가 특징인 고딕양식
고딕양식: rib vault(갈비구조) 천정이라 밝은 내부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쾰른 대성당은 트리어대성당, 마인츠대성당과 함께 중세기

독일 3대 성당 중 최대이다. 쾰른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대표적 성당으로 쾰른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icon이다. 북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성당이며 1,000년에 걸친 유물과 예술

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amp;amp;amp;nbsp;고딕양식: 벽체는 얇고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특징
쾰른 대성당을 위에서 본 모습. &amp;amp;nbsp;날개처럼 좌우로 펼친 익랑(翼廊)이 있어 십자 형태(구조)

고딕(Gothic) 미술 양식 (A.D13c-14c) 참조 링크: 고딕 양식 [Gothicism]

'고딕'이라는 말은 르네상스 시대에 고전 양식을 따르는 이탈리아 작가들이 지어 낸 말이다.

5세기에 로마 제국과 그 아름다운 고전 문화를 파괴한 야만적인 고트족(Goth族:고트 족)이 지은

중세 건축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었다. 이 말은 그 후로도 경멸의 뜻을 담고 있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고딕 건축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오늘날은 고딕 예술이 실제로는

고트족과 관계없다는 것이 판명되었고, 12C 말 프랑스 북부에서 발생한 미술양식으로 보고 있다. 

 

유비론(類比論, 유비추론 類比推論)    참조:유비적 귀납추론 , 미학의 역사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세계를 가시화 시킬 수 없으므로 유비법(유비추론)을 도입했다.

비교되는 두 개의 현상이나 대상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유사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하나

를 유추해서 다른 하나를 추론해내는 방법을 유비추론이라고도 한다. 천국과 성당, 정신과

육체를 이런 식의 유비관계로 엮어 놓았다. 중세 미술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대개 평면적이

며 눈은 무척 크게 그려져 있어 입체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그 당시 기독교에서는

육체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천하고 불경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최대한 영적인 것, 정신

적인 것을 나타내려고 큰 눈과 마른 몸으로 신성성(神聖性)을 표현했다. 따라서 사람 눈은

영적인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크게 강조해서 그렸고, 몸의 입체성은 육체적인 것이므로

최대한 억압해서 축소시켜서 빼빼 마르고 길쭉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고딕 양식이 대두되자 이러한 유비적인 생각이 붕괴되면서 사람 몸을 좀 더 실제적

이고 입체적으로 그리게 되고, 원근법을 도입하여 인체 묘사가 좀 더 사실적이고 입체적이

되었다.

 

고딕 양식의 건축(특히 성당)에서는 가느다란 석재 기둥이 수직방향의 수직축을 형성하고

리브 볼트(Rib Vault 갈비형 골조)의 높은 천정과 유리(스테인드글라스)의 도입으로 내부가

밝고 넓어지게 되었다. 고딕 양식의 아치(Arch) 특징으로는 로마네스크의 둥근 아치와는

달리 위가 뾰족한 첨두형(尖頭形)이다. 첨두형(尖頭形) 아치(Arch)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

의 장미창, 대칭적인 종탑은 고딕 양식 성당의 특징이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과 독일의 쾰른

성당이 대표적인 고딕성당이다.

 

브륄(Brühl)의 아우구스투스부르크 성과 팔켄루스트 

     홈피:http://www.schlossbruehl.de/en_home

브륄의 아우구스투스부르크 성의 잘 꾸며진 넓은 정원
화려한 아우구스투스부르크 성 내부-패널 촬영&amp;nbsp;

쾰른에서 남서쪽 20km 떨어진 한적한 마을 브륄(Bruhl 링크: Brühl (Rheinland) - Wikipedia)
있는 아우구스투스부르크성과 팔켄루스트성(Castles of Augustusburg and Falkenlust)을 보러

갔다. 아우구스투스부르크성은 선제후인 클레멘스 아우구스트(1700∼1761년)의 별장용

궁전으로서 로코코양식으로 지어졌다. 

 

이  Augustusburg성은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94년 까지 독

일 대통령의 공식 접견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다. 이 성(城)의 파사드(전면부)는 황금빛으로

꾸며졌고, 창에는 황금빛 장식을 달았으며 발코니 난간은 초록빛이다. 베르사유 정원이 생각

날 정도로 넓은 성안의 공원과 莊園(장원)에는 잘 가꿔진 화단과 연못, 분수가 있었고, 정원

옆의 나무 터널 길은 산책하기에 시원하였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풀밭 위에서 식사(도시락)를 즐겼다.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식사’가 연상되는 분위기였다.

 

한편 이 성(城)으로부터 2km 떨어진 곳에 있는 팔켄루스트성은 초기 독일 로코코 양식인데

매사냥용 별궁으로 건물 본채는 2층이며 좌우에 부속 건물을 배치하였다. 소박하고 심심한

모습이라서 일부러 찾아간 곳 치곤 다소 실망이었다. 시간이 없는 분이라면 이 곳 방문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카롤루스(샤를마뉴) 대제의 도시 아헨(Aachen)    

        홈피:www.aachen.de   Daum백과: 아헨 [Aachen] , 위키백과: 아헨

고풍스러운 아헨 시청사 건물

독일의 서쪽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도 가장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8세기

에 카롤루스 대제(Karl der Groβ, 샤를마뉴 Charlemagne 링크:카롤루스 대제)가 다스리면서

제국의 중심이자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카롤루스 대제(742~814)는 768년에 왕

이 되어 이곳 아헨을 프랑크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교황 레오3세(레오 3세 [Saint Leo III])가

서기 800년 카롤루스 대제에게 로마황제의 관을 씌워 줌으로써, 그는 국가와 교회를 지배

하게 되었다.

아헨 시내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멋진 간판&amp;amp;nbsp;

현재 아헨은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온천으로도 유명한 관광도시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엔 1944년 연합군에게 함락된 첫 번째 대도시이며, 유럽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아헨 공과대학교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헨은 쾰른(Köln)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어 열차로 찾아 가는 것도 간편하며 당일치

기로 다녀올 수 있다. 쾰른이나 뒤셀도르프 모두 아헨과 같은 주에 있으므로 노르트라인베

스트팔렌 티켓(Nordrhein-Westfalen Ticket)이 유효하다. 특히 이 지역의 랜더 티켓(Lander

-Ticket: 지역열차(Regional bahn)를 무제한 탈 수 있는 티켓)은 주(州)의 이름을 따르지 않

고 쇠너탁 티켓(Schoner-Tag Ticket; "좋은 날"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링크: TicketsNordrhein-Westfalen


아헨 대성당(Aachener Dom)    

      영어위키백과:Aachen Cathedral , 한글위키백과:아헨 대성당

아헨 성당 입구 쪽 천정
화려한 모자이크 Arch-제대 쪽&amp;amp;nbsp;&amp;amp;nbsp;
금박으로 치장된 내부 모습

아헨 관광의 핵심은 아헨 대성당(Aachener Dom)과 그 주변의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

와 시청사를 비롯한 구 시가지가 구경거리인데, 구시가지에 대부분의 명소가 몰려있기 때문

에 걸어서 다니기에 충분하다.

 

아헨 대성당(Aachener Munster 또는 Kaiserdom)은 1978년 독일에서 첫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8세기 후반에 카를(샤를마뉴, 카롤루스) 대제의 궁전 예배당

으로 성당 건물을 세우기 시작한 후 오랜 세월 증축으로 인하여 오늘날 성당은 여러 양식으

로 이루어져 있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헨 대성당의 내부는 비잔틴 양식의 화려함의 극치

를 보여 주는 데 아름답고 찬란하기가 그지없다.

(계속)

북서 독일(4)-모젤 와인의 향기가느껴지는 코블렌츠, 엘츠 /  라인강변의 거점 도시 보파르트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  와이너리 하트(Weingut Haart)-소개 영상-(12분자리 유튜브 영상)-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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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젤강이 라인강에 합류하는 코블렌츠(Koblenz) 

     코블렌츠 홈페이지:  www.rlp-info.de.

     코블렌츠 관광정보 :  www.koblenz-touristik.de/en  ,  www.romantic-germany.info

      모젤강변 관광 관련 홈피: http://www.romantic-germany.info/Moselle.4106.0.html

 

독일 북서부 라인란트팔츠주에 있는 도시인 코블렌츠는 모젤강이 라인강에 합류하는 곳이

다.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도이체스 에크(Deutsches Eck ‘독일의 모퉁이’)에는 독일제국

의 첫 황제인 빌헬름 1세(Wilhelm I 1797~1888 위키백과:빌헬름 1세)의 커다란 기마상이 서

있다. 기원전 로마 때부터 도시가 형성되었지만, 빌헬름 1세가 코블렌츠를 프랑스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군사 교두보로 사용하면서 크게 발전했다.

Deutsches Eck(독일의 모퉁이)에 있는 독일제국 첫 황제인 빌헬름 1세의 조각상

 

모젤 강변 구 시가지의 선제후 궁전(Kurfurstliches Schloss)과 강 건너 언덕의 에렌브라이

트슈타인 요새(Festung Ehrenbreitstein) 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 요새는 케이블카로 

쉽게 갈 수 있다. 요새로 가는 케이블카:www.romantic-germany.info/Koblenz-Cable-Car.6622.0.html

 

보파르트(Boppard)  홈피:www.boppard.de , 한국어 위키백과: 보파르트

라인강 크루즈 주요 거점인 Boppard(보파르드) 역시 코블렌츠처럼 2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로, 로마 제국의 성벽이 남아 있는 古都(고도)이다. 라인강 크루즈 주요 선착장

인 이곳부터 라인강 상류쪽 65km 일대는 ‘라인강 중류 상부(Oberes Mittelrheintal)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며, 라인 지방과 모젤 지방의 포도주 교역 중심지이기도 하다. 

모젤 와인 생산지역.&amp;nbsp; 그림 출처-http://postfiles16.naver.net/20091006_143/germanwine_1254832488939cQ9r9_gif/mosel_gruen_germanwine.gif?type=w2

 

독일의 화이트 와인과 ‘모젤 와인’    

                      참조: www.weinland-mosel.de , 모젤와인 [Mosel Wine]

모젤강은 프랑스의 북동부 보주(프: 보슈) 산맥(Massif des Vosges) 기슭의 뷔쌍(Col de

Bussang)에서 발원하여 프랑스 동부지역을 관통해 독일과 룩셈부르크의 국경을 형성한다.

 

룩셈부르크를 지나 독일의 트리어(Trier), 베른카스텔(Bernkastel), 쩰(Zell), 코켐(cochem)등 

수많은 와인 도시나 마을을 통과해서 코블렌츠(Koblenz)에서 라인(Rhein) 강에 합류되는데 

그 길이가 총 545km에 이른다.

독일 와인에는 라인강 쪽에서 생산되는 ‘라인 와인’ 일명 '호크'와 모젤강 쪽에서 나는 ‘모젤 와인’

이 있다. 중부 라인지역에도 포도주 산업이 발달하였지만 코블렌츠 주변 모젤 강변에서 나는 포도

주 역시 ‘모젤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라인’은 감칠맛에 당분이 많으며 갈색 병이며,

‘모젤’은 향기가 남다르며 녹색 병에 담겨 있다. 독일의 화이트와인은 알코올 함량이 비교적 낮은

편이며, 신선하고 균형 잡힌 맛으로 값도 비싸지 않아 마시기 좋은 와인이다.

독일의 화이트 와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모젤 지방의 와인으로 독일 와인 생산량의 약
15% 정도를 차지한다. 모젤강 중하류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젤와인’은 대부분이 고급 품질의 

리슬링(Riesling)로 만들어 지는 백포도주(white wine)로 특유의 과일향과 부드러운 맛을 갖고 

있다. 지역 특성상 산도가 높고 향기가 좋으며 알코올 농도는 좀 낮다.

1900년경 ‘모젤와인’은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는데, 특히 18세기에 시작된 리슬링 품종의 

재발견과 품질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이 당시에는 보르도의 Premier Grand Cru Classe를 

넘는 가격으로 유통되었다 한다.

모젤 와인 생산 지역은 프랑스 모젤, 오베르모젤(Obermosel), 모젤토르(Moseltor), 베른카스텔

(Bernkastel), 자르-루베르(Saar-Ruwer) 등 크게 5구역으로 나뉘는데, 룩셈부르크 국경에서부터 

시작해서 독일의 트리어(Trier)를 지나 코블렌츠(Koblenz)까지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내용참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ermanwine&logNo=70070856783

 

오베르모젤(Obermosel)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이루는 오베르모젤(Obermosel)에서는 모젤의 주품종인 리슬링은 거의 없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품종이고 로마시대 때부터 심어졌다는 엘플링(Elbling)이 많이 생산된다.

중부 모젤 와인생산지

중부모젤(Mittelmosel = Middlemosel)

중부모젤(Mittelmosel = Middlemosel)은 모젤와인의 수도로 불리는 베른카스텔(Bernkastel)을 

중심으로 쩰(Zell)에서 행정의 중심인 트리어까지를 일컫는 명칭으로 모젤 와인어리(winery

포도밭, 양조장)의 3분의 2가 있는 핵심지역이다. 특히 에르덴(Erden), 위르찌히(Uerzig),

쩰팅겐(Zeltingen), 벨렌(Wehlen), 그라흐(Graach), 베른카스텔(Bernkastel), 부라우네베르크

(Brauneberg),피스포르트(Piesport), 트리텐하임(Trittenheim) 등 전 세계의 리슬링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마을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점판암의 토양에서 나오는 모젤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섬세하고 우아한 리슬링 와인의 원산지이다.

자르(Saar)강은 이 지역의 중심도시인 자르부르크(Saarburg)를 관통하는 모젤강의 한 지류다.

이 지역의 포도밭은 700헥타르 규모의 작은 규모로, 지도상으로는 모젤보다 남쪽에 위치하지만

높은 고도와 밭들의 열린 지형 때문에 평균기온이 더 낮다. 그래서 자르와인은 일반적으로 모젤

와인에 비해서 산미가 강하며, 이는 평균적인 해에는 신맛이 너무 강조되어 단단한 느낌을 준다.

루베르 유역은 신 맛이 나면서 풋풋한 느낌의 와인이 생산되며 자르강 유역은 산과 향이 강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은 리슬링이며 가볍고 섬세하며 그윽한 낮은 알코올 함량을 가지고 

 

하부모젤(Untermosel)

하부모젤(Untermosel)은 라인강과 만나는 코블렌츠(Koblenz)에서 쩰(Zell)까지 이른 지역으로 

개정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잘 알려진 이름인 모젤(Mosel)로 줄였다. 모젤 전체지역의 

밭이 모두 가파르지만 이 지역은 특히 더 경사가 심해서 일종의 계단식 경작 형태의 밭이 많고

이로 인해 일명 테라쎈모젤(Terrassenmosel 테라쎈은 테라스의 독일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다른 모젤지역과 조금 다른 토양과 기후조건으로 모젤와인의 섬세함과 더불어 특유의 

향과 맛을 가진 인상적인 와인이 생산된다. 북위 50도의 코블렌츠는 포도재배의 북쪽 한계이다.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amp;amp;amp;amp;amp;nbsp; Koblenz와&amp;amp;amp;amp;amp;nbsp; &amp;amp;amp;amp;amp;nbsp;Koblenz 남서쪽(파란선들은 강을 표시함)

지도 출처: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c/Mayen_Koblenz.jpg/800px-Mayen_Koblenz.jpg

 

함락된 적이 없는 엘츠성(Burg Eltz)     홈피: www.burg-eltz.de , 영어 위키백과: Eltz

Koblenz 남서쪽 38Km에 있는 Eltz 성(城)

 

Koblenz 남서쪽 38Km에 있는 Eltz 성(城)은 강물이 휘돌아 가는 절벽 위에 세워진 성으로 독일에

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이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엘츠城(Burg Eltz)은

독일 화폐 500마르크 지폐에도 등장하는데,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Neuschwanstein Castle

신백조석성 新白鳥石城), 호엔촐레른 성 (Hohenzollern Castle) 성과 더불어 독일의 아름다운 성으

로 손꼽힌다.

 

엘츠성(Burg Eltz)은 12세기에 지어진 성으로 800년 동안 함락된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엘츠성이

난공불락 요새인 이유는 깊은 산중인데다 강물이 휘돌아 감싸고 도는 절벽 위에 성(城)이 자리잡고

있으며, 성으로 들어가려면 폭이 좁은 절벽 길을 통과해야하기 때문이다.   

 

뾰족한 첨탑과 튜더式 목조 건물이 동화 속 풍경을 연상시키는 엘츠성은 가이드 안내로(guide tour

-영어, 독일어)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어른 10유로, 학생 6.5유로인데 가이드와 함께하는

성 내부 투어와 보물실 관람이 가능하다. 당시 사용되었던 유물과 보물들이 보관되어 성에서는

엘츠(Eltz) 가문이 모아 온 오래된 골동품과 조각과 그림, 무기들을 볼 수 있다. 엘츠성의 전망 좋은

곳에서 햇볕을 쬐거나 바람을 맞으며 그야말로 風光을 즐기다가, 절벽 위 카페에서 모젤강변에서

생산된 리슬링 와인이나 맥주 한 잔을 마신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계속)  

북서 독일(3)-독일의 상징 라인강(Rhein)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로렐라이 노래 :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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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참고: 두산백과 링크: 라인강 [Rhein R., ─江])

라인강스위스의 알프스 산지에서 발원하여 보덴호로 흘러든 다음, 스위스 바젤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독일(서북쪽), 네덜란드를 지나 북해로 들어간다(총연장 약 1,320km). 라인강은

스위스,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에 걸쳐 흐르는 국제하천인데, 그 중 독일을 흐르는

부분이 가장 길어 ‘라인강’이라 하면 흔히 독일어로 Rhein으로 표시한다. 국제 하천답게 독일어

외에도 프랑스어 Rhin, 네덜란드어 Rijn, 영어로는 Rhine으로 표기한다.

 

라인(Rhein) 강의 수계(水系)
 하이델베르크를 거쳐온 네카어강은 만하임에서,
 동쪽에서 524km를 흘러온 마인강은 마인츠에서,
 트리어를 거쳐온 모젤강은 코블렌츠에서 라인강에   합류한다.
-출처-두산백과: 라인강 [Rhein R., ─江]-
 
빙겐에서 코블렌츠까지는 라인가도의 핵심이다.

전략적 거점이자 교통의 요충지 라인 가도(Rhine-Romantic Route)

라인가도엔 고성, 포도밭, 라인강, 배, 자동차, 기차가..

 

라인강은 로마시대부터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자 교통의 요충지였다. 지금도 라인강은 세계

에서 선박으로 가장 붐비는 강이며 중부 유럽 지역의 운송로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로마로 가는 경로였고 물자를 수송하는 통로였기에 Rhine-Romantic Route 라 불린

다. 바덴뷔르템베르크州에서, 라인란트팔츠 州,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州까지 라인강을 따라

가면, 많은 고성(古城)들과 포도원과 양조장(winery), 라인강변의 오래된 도시들을 만날 수

있다.

 

라인 고성(古城) 가도

라인강변의 고성(古城).       지도 출처: Oberes Mittelrheintal – Wikipedia

                   

이 지역은 ‘고양이城’ ‘생쥐城’ 등 40여개의 고성들이 있기 때문에 ‘라인 고성(古城) 가도’라

고도 한다. 라인가도 주변에는 이런 중세 시대의 성들을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데, 중세 귀족으로 대접받는 듯한 luxury(럭셔리)한 숙박과 식사를 할 수 있

다.   

라인 가도(Rhine-Romantic Route)란?       

          홈페이지: http://www.romantischer-rhein.de/en/#start

          홈페이지: Romantic Rhine - Romantic Germany

          라인강 유람선 KD line 홈페이지: www.k-d.com

라인강과 주변 명소 안내서(일부)-패널 촬영

                   

라인가도(街道)라 말할 때 길게는 마인츠부터 뒤셀도르프까지(586Km) 지칭하기도 하지만,

흔히 빙겐과 코블렌츠 사이를 말한다. 라인 가도의 주요 지역으로는 상류 쪽으로부터 마인

츠, 빙겐, 포도주의 도시 뤼데스하임, 로렐라이 언덕, 잔크트 고아르, 보파르드(Boppard),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코블렌츠, 베토벤 하우스로 유명한 본, 쾰른 대성당이 있는 쾰른,

뒤셀도르프가 있다. 그 중 빙겐과 코블렌츠 사이가 특히 볼 만하며 로렐라이 주변이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다. 참조:http://www.romantischer-rhein.de/en/region

 

코블렌츠에서부터 라인강 상류 약 65km 지역 일대는 라인 협곡으로 유명한 곳으로, '라인

강 중류 상부 Oberes Mittelrheintal'라는 이름으로 2002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

록되었다. 위키백과: Oberes Mittelrheintal – Wikipedia

라인가도엔 고성, 포도밭, 라인강, 배, 자동차, 기차가 나란히..

라인강 가운데 섬에 있는 팔츠그라펜스타인성

라인강 강가운데 있는 섬뿐만 아니라 강가 또는 언덕에 성채나 요새가 많이 있는데, 이는

라인강을 장악하고 통제하기 위함이다. 이런 성채들은 8세기에서 13세기까지는 교회나 교

단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교회나 수도원은 포도원을 관리하며 와인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마인츠 대주교는 몇 채의 성을 관리하며 별장으로 사용하거나 전쟁 대피 장소로 쓰기도 했

다.

 

중세 영주들은 라인강을 굽어보는 성을 소유하고 라인강을 오가는 배들을 통제하면서 세금

(통과세)을 징수할 수 있어 강력한 권력과 부를 가질 수 있었다. 그 결과 라인 강변에는 성

채와 요새가 많이 생기게 되었다. 30년 전쟁과 17세기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라인 강 유역

의 성과 도시들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성채들이 남아 있다. 아름다운 자연 풍

경과 더불어 고성(古城)의 매력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라인강의 멋진 풍경을 즐기려면......

라인강 유람선을 운영하는 회사와 구간은 다양하지만, 라인강 유람선 全 구간을 타기엔 지

루하므로 보통 빙겐에서 보파르드(Boppard)나 빙겐에서 잔크트 고아르(Sankt Goar)까지 많

이 탄다.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유람선(KD Line)이 무료인데, 성수기인 4~10월에만 운행한

다. 참고: KD line 홈페이지: www.k-d.com

 

라인 가도를 구경하는 방법으로는 자동차로 라인강변을 따라 여행하는 것과 배(유람선)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라인강변을 따라 철도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라인 가도를 가려면(접근

하려면)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 상류 쪽에서 내려갈 수도 있고, 반대로 쾰른에서 라인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방법도 있다. 라인강변의 小도시들은 기차역과 선착장 사이 거리가 걸어서

10분 내외인 곳이 많기 때문에 기차와 유람선을 같이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다. 따라서 이 둘

을 적절히 섞어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라인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도 소문난 라인가도(Rhine-Romantic Route 라인-로맨틱  가도)는

라인강을 따라 멋진 풍광과 성채, 포도원을 볼 수 있고, 중세의 모습을 가진 마을을 만날

수 있어 말 그대로 낭만적인(romantic) 여행을 할 수 있다. 자동차로 라인강을 횡단하려면

(가로로 건너려면) 라인강 중간에는 다리가 없기 때문에 마인츠까지 올라가거나 코블렌츠까

지 가야 한다. 하지만 라인강 중간 도시 곳곳에서 배(바지선)에 차를 실어 라인강을 건널

수 있기 때문에 라인강 중간에 라인강을 횡단하는 다리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라인강의 진주(眞珠) 뤼데스하임 암 라인(Rüdesheim Am Rhein)      

홈페이지:  http://www.ruedesheim.de/de/ , Daum 백과사전: 뤼데스하임 [Rudesheim]

 

뤼데스하임 마을 뒤 언덕에는 포도밭이...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는 뤼데스하임 마을 골목
 
티티새와 포도가 새겨진 뤼데스하임의 보도(步道)

마인츠에서 라인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라인강 포도주 산업의 주요 중심지인 뤼데스하임

암 라인(Rüdesheim Am Rhein)이 나온다. 뤼데스하임은 북쪽은 타우누스(Taunus) 산줄기에  

막혀 있고, 남쪽으로는 라인강에 접해 있어 라인강의 진주라 불린다. 뤼데스하임은 864년

처음으로 기록에 나타나고 켈트족과 로마인이 활동한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인츠 대주교들이

초기에 소유했던 브룀세르부르크가 1200년경에 주거지로 재건되고, 뒤에는 뤼데스하임 기사

들이 차지했다.

라인강과 포도밭이 내려다 보이는 뤼데스하임의&amp;amp;nbsp;Niederwald 전망대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뤼데스하임 암 라인은 크지 않은 작은 마을인데 마을 소개 간판과 가게들의 간판은 물론,

보도 길바닥에 포도가 새겨져 있고, 골목골목에도 포도가 심어져 있어 이곳이 포도의 고향

임을 말해준다. 이곳은 9월에 포도주 축제가 열리며, 브랜디와 스파클링(발포) 와인인 샤움

바인(Schaumwein)이 유명하다. 티티새(droselgasee) 골목을 따라 가면 음식점과 와인 가게

와 맥주 가게들이 즐비하다. 리프트를 타고 마을 뒤 포도밭 언덕(Niederwald 전망대)을 올

라가면 멋진 라인강 주변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로렐라이(Lorelei) 언덕   

관련 링크- 다음백과: [Lorelei] , 위키백과: 로렐라이

 

로렐라이 언덕 앞의 라인강은 강폭이 좁다-패널 촬영

 

로렐라이는 ’요정의 바위’라는 의미로 라인강 중부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의 동쪽 기슭에 

솟아 있는 130m 정도의 언덕이다. 물의 요정 <로렐라이> 전설을 맨 처음 소재로 다룬 

것은 독일 작가 클레멘스 브렌타노(링크:브렌타노 [Clemens Brentano])가 1800~02년에 쓴 설

화시(說話詩)이다.

 

로렐라이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연인에게 배신당해 물에 몸을 던진 후 반인 반조(半人半

鳥)의 물의 요정으로 변했다. 라인강을 지나는 뱃사람들이 그녀의 매혹적인 노래와 아름다

운 모습에  취했다가 배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된다는 얘기이다. 실제 이곳은 중부 라인에서

도 굴곡이 심하고 폭이 좁아 물살이 거센 곳이어서,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들에겐 무척 위험

한 장소이다.

 

한편 이곳 라인강 가에는 시커먼 모습으로 앉아 있는 요정(아가씨) 조각상이 있는데 너무

환상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한다면, 덴마크의 ‘인어공주’ 조각상처럼 실망을 느낄 수도

있다. 하여튼 이 얘기는 수많은 문학작품과 노래들의 주제가 되었다. 하인리히 하이네가 지

은 시(詩)에 프리드리히 질허(링크:프리드리히 질허)가 작곡한 노래가 가장 유명하며 우리나라

에서도 애창되고 있다.

 

로렐라이(Lorelei)     하이네 시  F.질허 작곡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아가씨

황금빛이 빛나는 옷 보기에도 황홀해

고운 머리 빗으면서 부르는 그 노래

마음 끄는 이상한 힘 로렐라이 언덕

 

신화 속 ‘세이렌(Seiren)’ 이야기   내용 출처:daum 세이렌 [Seiren], 네이버:세이렌 [Seiren]

 
John William Waterhouse(1849-1917)-The Siren


 
  반인반조(半人半鳥)의 세이렌(seiren)
Herbert James Draper - Ulysses and the Sirens

날카로운 경보 신호를 내는 장치인 ‘사이렌 siren’의 어원이 Seiren(세이렌)이다. 세이렌의 

전설은 조녀(鳥女)라는 이미지와 항해의 위험에 관한 원시적인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는데,

이 '로렐라이'에 얽힌 전설은 신화 속 '세이렌 Seiren' 이야기와 유사하다. 유명한 ‘별 다방

(oo벅스)’의 logo에도 이 사이렌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커피로 사람을 유혹하겠다는 것일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바다의 요정 Seiren(세이렌)이 지중해에 있는 사이레눔 스

코풀리(Sirenum Scopuli)라는 작은 바위섬에 산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후대에 와서  꽃으로

뒤덮인 안테모사(Anthemoessa)라는 섬에 사는 것으로 굳어졌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아』에 등장하는 세이렌의 모습은 조녀(鳥女)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세이렌은 바다의 마녀일 뿐만 아니라 열병을 가져오는 마녀로도 믿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새와 여성이 섞인 것이었다.

 

Seiren(세이렌)이 절벽과 암초들로 둘러싸인 섬에서 배를 타고 지나가는 선원들을 향해

노래를 불러 유혹하였는데, 신비로운 노래에 홀린 선원들은 뱃머리를 세이렌이 있는 섬 쪽으

로 돌렸다가 배가 난파되어 목숨을 잃거나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오디세우스 [Odysseus] 라틴명:울릭세스(Ulyxes) 또는 울리세스

(Ulysses))는 마녀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선원들의 귓구멍을 밀랍으로 막아 세이렌의 목소

리를 듣지 못하게 함으로써 위험을 벗어났으나, 그 자신은 유혹에 빠져 배를 엉뚱하게 몰지

못하도록 자기의 몸을 돛대에 묶게 하고서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세이렌과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로는 아르고선(船)이 그곳을 지나갈 때 오르페우스가 너무

도 멋지게 노래를 불러 아무도 세이렌들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훗날의

전설에 따르면 세이렌들은 이러한 실패가 한두 번 있게 되자 자살했다고 한다.

 

독일 최고의 와인 산지 중 하나인 중부 라인(독:Mittelrhein 영:Middle Rhine)

독일 중부 라인 지역(독:Mittelrhein 미텔라인 Mittelrhein (wine region))은 2000년 전부터 포도

를 재배해 왔다. 중부 라인 지역에는 역사 깊은 성과 마을의 주변 경사면에 많은 포도밭들이

도처에 있다. 이 지역의 주 재배 포도 품종은 상쾌한 향이 높은 리슬링 품종이며 약 70%를 차지

한다. 

 

리슬링(Riesling)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과 북서(北西) 독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포도 품종

으로, 이 품종으로 만든 포도주는 세계적으로 최고급 백포도주로 알려져 있다. 리슬링으로

만든 연한 노란색의 백포도주(white wine)는 상쾌한 사과 향과 복숭아 향이 있어 인기가

있으며 여름에 즐겨 마신다. 

라인강변의 최고 와인 산지 라인가우, 라인헤센

                                지도 출처: 라인헤센 와인생산지

라인강과 모젤강의 포도원의 주품종인&amp;amp;nbsp;리슬링(Riesling)

  사진 출처: http://berlinreport.com/data/mw.cheditor/1103/Hls2638oqXuJu.jpg

 

독일 중부 라인의 주요 와인 생산지인 라인가우(Rheingau)와 라인헤센(Rheinhessen)

       내용 참고: http://blog.naver.com/ddmpark4_st/90192954477

독일 중부 라인(Mittelrhein 미텔라인)에 있는 라인가우(Rheingau)는 독일 와인 중 최고급

와인 생산지이자 세계 최고의 와인 생산지역 중에 하나이다. 지리적으로 마인강(Main

River)에 접하고 호흐하임(Hochheim)과 중류 라인 근처의 로르히(Lorch)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포도원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어 햇빛이 비치는 시간이 길어 포도재배의 최적지로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주로 화이트와인인 리슬링을 재배하고 있으며 목이 긴 갈색병을 사

용한다. 유명한 양조장(winery)으로는 슐로스 요하니스베르크, 슐로스 폴라즈, 로베르트 바

일, 슐로스 라인하르츠하우젠 등이 있다. 대부분 소규모로 와인을 생산하여 생산량이 많지

않지만 값은 엄청나게 비싸다. 출처: 라인가우 [Rheingau]

 

또한 ‘라인헤센Rheinhessen’의 와인 마을은 빙겐에서 보름스까지 라인강 서쪽에 펼쳐져 있

는 데 독일에서 가장 넓은 포도재배 지역이며 가장 큰 규모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라인헤센

에서 생산되는 포도주 중 가장 고급 와인은 리슬링(Riesling)으로 만들어진다. 라인강 서편

의 보덴하임(Bodenheim)에서 메텐하임(Mettenheim) 사이의 포도원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와인은 리브프라우밀히(Liebfraumilch)인데 외국인에게는 '블루눈(Blue Nun)'이라는 상표로

잘 알려져 있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맛도 부드러워 독일 포도주 중 대중적인 사랑을 받

고 있다. 라인헤센 지방의 유명한 양조장(winery)으로는 군더를로흐(Gunderloch), 요트와

하 아 슈트룹(J. und H. A. Strub), 헤른스하임의 남작 하일(Freiherr Heyl zu Herrnsheim)

등이 있다. 지도 및 내용 출처: 문화원형백과 와인문화. 링크: 라인헤센 와인생산지

 

(계속) 

 

 

북서 독일(2)-프랑크푸르트 주변의 오래된 도시-마인츠, 슈파이어, 트리어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성모의 보석(간주곡) 볼프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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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이 지나가는 독일 북서쪽의 바덴뷔르템베르크州, 라인란트팔츠 州,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州

                         참고: 바덴뷔르템베르크 州 관련 여행기는 지난 글: 남부 독일-돌아보기 (5) 참고.

 

라인란트팔츠 州(Rheinland-Pfalz)    참고: Daum백과 라인란트팔츠 [Rheinland-Pfalz]

독일의 16개 연방주의 하나로 州都(주도)는 마인츠다. 독일 남서부에 있으며, 남쪽과 서쪽

으로 프랑스·룩셈부르크·벨기에에 접하고, 북쪽으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동쪽으로 헤

센 주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남서쪽으로 자를란트 주와 경계를 이룬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州(Nordrhein-Westfalen)

                        참고 Daum백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Nordrhein-Westfalen]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로 州都(주도)는 뒤셀도르프이며, 그 밖의 도시로 본, 쾰른,

에센, 도르트문트가 있다. 루르(Ruhr) 공업지대가 있으며, 서쪽으로 네덜란드·벨기에와 국경

을 이룬다.


라인강의 교역 중심지 마인츠(Mainz) 홈피:http://www.mainz.de/ 위키백과:마인츠 [Mainz]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42km를 흘러온 마인강이 라인강에 합류하는 서안(西岸)에 있는

강변도시 마인츠는 독일 서부에 있는 라인란트팔츠 주의 주도(主都)이다. 지리적으로 라인

강의 포도주 교역 중심지가 되었으며, 활판 인쇄술을 발명했던 구텐베르크의 출생지로 인쇄

술이 발달하였다. 

마인츠 대성당 앞에 주말시장(marketplatz)이 열렸다.

 

마인츠 대성당(Mainzer Dom)          한국어 위키백과: 마인츠 대성당

마인츠 대성당(Mainzer Dom 또는 Martinsdom, 정식 명칭: Der Hohe Dom zu Mainz)은

975년 건축되기 시작하여 1239년에 완성되었기에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양식 등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지어졌다. 쾰른 대성당, 트리어 대성당과 함께 독일 3대 성당 중 하

나다. 14세기에는 마인츠 대주교들이 신성로마 제국의 재상과 선제후가 되었다. 

마인츠 성당 정원의 회랑(回廊)에는 옛 마인츠 성당의 구조물과 장식물들이 보관되고 있어

오래된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오래된 역사를 증언하는 마인츠 성당 정원의 회랑

 

종교 개혁 시기 중요한 무대였던 슈파이어(Speyer) 홈피:www.speyer.de 위키백과:슈파이어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라인 강 서쪽 연안에 있는 슈파이어(Speyer)는

기원전 100년에 도시가 형성되었기에 금년(2015년)이 도시 창설 2025년이 된다. 고대 로마

시절부터 알프스 산맥 북쪽의 중요한 교역·군사 중심지였으나, 5세기 훈족, 반달족 등의 침

입으로 파괴되었다. 그 후 7세기에 주교령(主敎領)이 되어 발전했으며 10세기엔 유명한 슈

파이어 대성당이 건축되었고, 1294년 제국 자유 도시가 되어 일대를 장악했다.

 

주교령(主敎領) = 주교의 영토(땅)             참고 링크: 주교, 대주교, (대)주교령

국왕령(국왕의 땅)의 지방행정을 맡은 사람을 그라프(독일어: Graf / Gräfin, 伯=伯爵 백작)

라 하는데, 특히 독일에서는 이들 봉건 제후들이 국왕령을 세습하면서 국왕의 지배권에 복

종하지 않고 자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왕은 국왕령을 주교에 맡기곤

했다. 주교는 독신이 원칙이라 죽으면 그만이고 새 주교가 임명될 때 왕이 임명권을 행사해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국왕에 의한 중앙집권이 확립된 나라에서는 주교의 세속 권력이

차츰 폐지되었으나 독일에서는 신성로마제국황제가 선거제로 된 탓도 있어 제후와 주교들

은 나중에는 독립국의 군주처럼 되었다. 이것이 독일의 독특한 주교령, 대주교령이다. 예

를들면, 트리어 대주교령, 마인츠 대주교령, 보름스 주교령, 뮌스터 주교령 등이 있다.

 

슈퍼카이저돔(Kaiserdom zu Speyer)           위키백과: 슈파이어 대성당

크고 웅장한 슈파이어 카이저 돔(Kaiserdom)

슈파이어 옛 성문에서 본 카이저 돔(Kaiserdom)

 이 성당은 1030년 황제 콘라트 2세의 명령으로 기공되어 1060년 하인리히 4세에 의해 헌

당된 독일 로마네스크 건축을 대표하는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신성 로마 제국시절의 황제들

이 안장되어 있어 슈파이어 카이저돔 (Kaiserdom zu Speyer) 또는 슈파이어 돔 (Speyer

Dom)으로 불린다.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독일 로마네스크 양식의 시작을 알리는 이 대성당은 폭 30m, 길이 133m에 이르며, 높이가

72m나 되는 탑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 예술의 기념비적 건축물이며, 이 건물은 크기로도

최대 규모이며, 독일 왕들의 묘지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Basilica(바실리카)식과 로마네스크 양식 

Basilica(링크:바실리카)양식이란, 중앙의 신랑(身廊) 좌우에 기둥이 늘어선 列柱(열주)가 있고

그 양측에 측랑(側廊)을 갖춘 삼랑식(三廊式)으로 기둥 사이는 아치(Arch) 구조로 짜여져 있

다. 건물 바닥은 T자 형태 또는 세로가 긴 십자가 형태의 직사각형 건축 형식이다. 중세 이

전의 좀 오래된 성당은 이런 Basilica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후 기적이 나타났다거나 종교

적, 역사적 중요성 등 존경의 대상이 되는 성당에 Basilica(大聖殿)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마네스크 양식(링크: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의 내부는 삼랑식에다 직사각형 바닥을 가진 바

실리카 양식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익랑(翼廊)을 양쪽으로 달아내어 십자가 형태를 보인다.

내부는 프레스코화 장식이 흔하며 창이 작아 실내가 어둡다. 뼈대(rib) 없는 천장에다 두꺼

운 벽과 벽받이(buttress)가 있으며, 반원형 아치(Arch)가 특징이다.

 

카를 5세와 신성로마제국    위키백과 참조: 카를 5세 [Charles V, Holy Roman Emperor]

카를 5세의 치세(治世) 영역(1547년의 합스부르크 속령)

 

카를 5세(독: Karl V, 1500년~1558년)는 어린 나이인 1519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되었는데, 1516년부터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스페인어: Carlos I)이기도 했다. 중유럽과

서유럽, 남유럽 그리고 지중해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 제도의 카스티야 식민지까지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그의 영토가 너무나 커 그의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곳’이

라고 불렸다.

 

카를 5세는 이탈리아, 프랑스와의 전쟁(링크:이탈리아 전쟁) 외에도, 유럽을 압박하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쉴레이만 1세(링크:쉴레이만 1세 [Suleyman I])와 끊임없이 싸웠다.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지중해 연안에서 급속히 힘을 키워, 합스부르크 영토와 기독교인이 독점한

지중해 무역을 위협하고 있었다. 결국 카를 5세는 오스만과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하였다.

이슬람교가 진격할수록 가톨릭교회의 힘은 견제를 받았으며, 용맹했던 헝가리군도 1526년

모하치 전투(링크:모하치 전투 [Battle of Mohács])에서 패전하면서 全 유럽에 이슬람의 공포가

잔뜩 드리워지게 되었다.

 

한편 독일에는 1524~1525년 사이 농민전쟁(링크:독일 농민전쟁 [German Peasants' War])이 일

어났으며 1531년에는 개신교도들의 슈말칼덴 동맹(링크:슈말칼덴 동맹 [Schmalkaldischer Bund])

이 형성되었다. 1529년 2월 21일 독일 슈파이어국회에서 루터계 제후(諸侯)와 도시들이 황

제 카를 5세 등 로마 가톨릭 세력의 억압에 항거하므로 써 protestant(항의하는 자 = 신교

도)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참조 두산백과: 프로테스탄트교회 [Protestant Church, ─敎會])

 

결국 카를 5세는 1555년 개신교를 인정하는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맺게 되었는데, 그 결

과 독일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존을 인정하게 되었고, 한 행정 구역을 다스리는 제후

의 종교가 루터교인가, 가톨릭인가에 따라 그 지역의 종교가 결정되는 지역별 종교의 자유

(cuius regio, eius religio)의 원칙이 체결되었다.

(참조: 위키백과: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Peace of Augsburg])

 

카를 5세는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점점 강해지는 오스만 투르크 및 프랑스의 압력, 교황의

적개심에 맞서서 그의 제국을 단결시키려고 애썼지만, 마침내 굴복해 스페인을 아들 펠리페

2세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결국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던 카를 5세의 가톨릭에 의한 유

럽 재통합 세계정책은 실패하였다.

 

로마 제국 ‘갈리아’의 중심이었던 트리어(Trier) 홈피:www.trier.de , Daum백과:트리어 [Trier]

고대 로마시대엔 갈리아(갈리아 [Gaul])의 중심이었고 신성로마제국시대엔 가톨릭의 중심지였

던 트리어(Trier)는 룩셈부르크(Luxemburg)와 맞닿아 있는 독일 서쪽 국경도시이다. 모젤강

의 서안에 위치하며 기원전 15년부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도시가 건설되어 알프스

이북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로마 시대 성문(城門)인 검은 문(Porta Nigra)

 

프랑크족과 아라만족이 파괴한 트리어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다시 세웠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치세 당시 지어진 로마 제국의 다리, 목욕탕, 원형극장 등 많은 유적이 보존

되어 있으며, 로마 城門이었던 검은 문(Porta Nigra)과 트리어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참고로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

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밀라노 칙령 [Edict of Milan]).

 

위풍당당한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      위키백과: 트리어 대성당

위엄이 넘치는 트리어 대성당

 

과거 트리어 대주교는 신성로마황제를 뽑는 선제후(選帝侯) 선출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으며, 오늘날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Hohe Domkirche St. Peter zu Trier)

은 쾰른 대성당, 마인츠 대성당과 더불어 독일의 3대 성당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이 성

당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이탈리아 토리노와 더불어 예수의 성의(The Holy Tunic) 가 보

관되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트리어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성모 마리아 성당(Liebfrauenkirche)은 1260년 완공된 고딕 양

식의 교회로 좌우 대칭의 균형미가 멋지며,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하며 신비감이 든

다. 31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자신의 어머니 헬레나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 한다.

 

신성로마황제를 선출하는 권리를 가진 선제후(選帝侯)    참고: 위키백과: 선제후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독일 왕권을 둘러싸고 내전이 격화되는 것을 염려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라인 강 유역의 네 명의 선제후들, 즉 마인츠 대주교, 쾰른 대주교, 트리어 대주교,

라인 궁중백의 동의 없이는 왕위에 오를 수 없다고 정하였다. 1257년부터는 앞의 네 명과

작센 공,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까지 합쳐 총 여섯 명이 선제후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289년

에는 보헤미아 국왕까지 더해져 총 일곱 명이 되었다. 선제후에 의한 황제 선거는 1198년

부터 1806년까지 행해졌는데, 1356년 금인칙서(金印勅書)를 통해 성문화(成文化)되었다.

(참고: 금인칙서 [Golden Bull of Emperor Charles IV])

 

(계속)

북서 독일(1) 괴테의 도시-푸랑크푸르트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클래식기타 명곡 모음(연주시간 2시간30분)

                   추후 링크가 끊어 지면 음악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아래 음악(영상)이 안 보이면 https://youtu.be/LllrmRuUW3A?t=7<=요걸 클릭

 

지난 2015년 02월 남부 독일에 이어 2015년 6월 말에는 라인강을 따라 北西(북서) 독일과

베네룩스 3국을 돌아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서 라인가도(Rhine-Romantic Route)

따라 주변 도시들을 보고 독일 쾰른, 뒤셀도르프, 뮌스터를 거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헤이그, 벨기에의 브뤼헤, 브뤼셀 그리고 룩셈부르크시티를 구경했다. 돌아오는 길에 프랑

스 북동 지역인 론(Rhone)주의 낭시와 모젤(Moselle)주의 메스를 둘러보고 독일의 트리어,  

슈파이어를 거쳐,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편의상 같은 권역인 같은

권역의 도시들은 방문 일정이 다른 날이더라도 같이 묶어서 서술하였다.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자료 정리를 위해 이번 여행 지역 관련 명소나 관련 지식을 인터넷으

로 모은 내용이며, 필요시 직접 찍은 사진과 간략한 소감을 덧붙였다. 링크 밑줄 링크를 클릭

하면 해당 관련 정보를 더 볼 수 있다. 

 

나의 여행 경로: 프랑크푸르트-마인츠-라인가도(로렐라이 등)-보파르드-엘츠성-코블렌츠-쾰른-아헨-(벨)리에주-

(네)마스트리히트-(독)뒤셀도르프-도르트문트-뮌스터-(네)아른햄-암스테르담-볼렌담-잔스칸스-헤이그-(벨)안트워프

-브뤼헤-브뤼셀-(룩)에슈쉬르쉬르-(독)트리어-(룩)룩셈부르크시티-(프) 메스-낭시-(독)슈파이어-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      

      프랑크푸르트 홈피: www.frankfurt.de,   Frankfurt 관광카드: www.frankfurt- tourismus.de

      참고: Daum백과사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  한국어 위키백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마인강(링크:마인 강)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서 발원하는 524 Km 길이의 강으로, 라인강에

합류하는 가장 중요한 지류 가운데 하나다 마인 강변의 Frankfurt(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5번

째로 큰 도시로 8세기 말 카를 대제가 이곳을 프랑크왕국의 수도로 정한데서 Frank라는 이름을 

얻었다. 독일 헤센州의 주도(州都)는 비스바덴이지만, 최대 도시는 프랑크푸르트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정식 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마인강의 프랑크푸르크')

이지만 줄여서 Frankfurt로 줄여 부르며, 브란덴부르크 주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

(Frankfurt an der Oder ‘오데르 강의 프랑크푸르트’)와는 다른 도시이다.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는 독일의 중요한 운하 내륙항(內陸港)이자 철도와 도로

교통의 중추이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공항(프랑크푸르트공항 http://www.frankfurt-airport.co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스히폴) 공항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의 하나

로 유럽의 관문 공항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는 전철이 편리한데 1일권을 사거나,

여럿일 경우 group 티켓으로 끊는 게 좋다(티켓 참고: http://www.rmv.de/en/). 프랑크푸르트

관광카드(www.frankfurt-tourismus.de)는 기간 내 무료 대중교통 이용과 함께 시내 일주 버스투

어, 보트 투어 할인과 박물관, 미술관, opera 관람 등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높은 빌딩이 즐비한 프랑크푸르트 중심가
프랑크푸르트 중심가 괴테거리

프랑푸르트는 독일의 상업, 금융의 경제적 중심지이자, 유럽중앙은행(ECB)이 들어와 있어서 

영국의 런던과 함께 유럽의 금융 중심지이다. 시내 중심지는'독일의 맨해튼'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빌딩들이 많이 있는데 거의가 은행 건물이다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은 1993년 11월 발효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거해

설립된 유로화 단일통화정책 및 외환정책을 담당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1998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본부가 설치됐다.

 

프랑크푸르트의 옛 시가지 중심이었던 뢰머 광장(Roemerplatz)

프랑크푸르트의 관광지는 괴테하우스, 뢰머 광장,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등이 있는 마인강

북쪽 지구와 박물관, 작센하우젠 지역이 있는 마인강 남쪽 지구로 나눌 수 있다.

 

뢰머 광장의 오스트챠일레와 니콜라이교회

과거 프랑크푸르트의 심장이었던 뢰머 광장의 정식 명칭은 뢰머베르크(Römerberg =Roman

Mountain의 뜻) 광장인데 로마군이 주둔한데서 비롯되었다. 뢰머 광장 한편에는 니콜라이

교회(Frankfurt am Main Nikolaikirche)와 신성로마제국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 문장(紋章)이

새겨진 시청(Rathaus) 건물이 있다. 이 시청사 건물에는 9세기 샤를마뉴 대제부터 1809년

프리드리히 2세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광장의 동쪽에는

15~18세기에 지어진 목조건물 오스트차일레(Ostzeile '동쪽의 줄'이란 뜻)가 몰려 있다. 이

오스트차일레는 나무 골조가 드러나는 건물 구조인데 마치 띠로 묶어 놓은 모습 같다.

쌍두 독수리 문장(紋章)이 박혀있는 시청사(Rathaus)

뢰머 광장 옆에는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있는데 성 바르

토로메오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성당은 카롤링거 왕조의 루트비히 대제

때인 852년에 완공되어 왕실의 예배당 겸 주교구 성당으로 사용되다가, 1562년부터 1792

년까지 230년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어 바르톨로메오 카이저돔

(Kaiserdom St. Bartholomäus)으로 불린다.   

뢰머 광장의 정의의 여신상

‘정의의 여신(라틴어: Justitia)’         내용 출처: 정의의 여신상  

시청사(Rathaus) 앞 뢰머 광장에는 정의의 분수(Justitia-Brunnen)가 있는데, 분수 위에 ‘정

의의 여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질서와 계

율의 상징인 테미스(Themis)의 딸이다. 이 후 로마 시대에 들어와서 디케(Dike)에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Justitia)가 탄생하였다. Justice(정의)란 말은

Justitia에서 유래됐다.

 

정의의 여신 모습은 한 손에 칼을, 다른 손에는 천칭(저울)을 들고 있으며, 대개 두 눈을

안대(眼帶 눈가리개)로 가리고 있다. 경우에 따라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는 힘과 엄격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한다,

 

저울은 개인 간의 권리 관계에 대한 다툼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고, 칼은 사회 질서를 파

괴하는 자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정의의 여신상이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자세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

다.  

 

마인강 남쪽의 알트 작센하우젠(Alt Sachsenhausen. ‘Alt 알트=old 오래된‘)에선 독일식 목

조 구조 가옥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돌로 된 보도블록 사이에는 사과가 새겨져 있어 이곳이

프랑크푸르트 전통주'아펠봐인(Apfel Wein 영:apple wine 사과주)'의 명소임을 말해준다. 

오래된 맥줏집과 음식점들이 옛 시절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작센하우센 술집 골목의 사과주를 뿜어대는 분수

괴테의 도시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에는 괴테 거리(Goethestrasse), 괴테의 집(Geothehaus), 괴테 박물관 및 도

서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대학교(1914) 등 괴테의 이름이 곳곳에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위대한 작품을 남긴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프랑크

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티슈바인이 그린 캄파니아의 괴테-슈테델 미술관-

한편, 관광가도(街道) 괴테가도(Goethe Strasse 링크:http://www.goethestrasse.info/)는 독

일의 유명 관광가도(街道)중 하나인데, 괴테가 태어난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이제나흐, 바이마

르, 라이프치히를 거쳐 드레스덴까지 약 600km 구간에 걸쳐 괴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로 동독과 서독을 횡단하는 길이다.

 

슈테델 미술관 1층 정면에는 1787년에 티슈바인이 그린 <캄파니아의 괴테(Goethe in the

Campagna)>라는 괴테의 초상을 전시하여 그를 자랑하고 있다. 티슈바인은 괴테의 친우로

함께 여행을 하던 중 로마 근교의 황야를 배경으로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괴테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슈테델 미술관(Städel Museum)   

홈페이지: http://newsroom.staedelmuseum.de/en    내용 참고 두산백과: 슈테델 미술관 [Staedel Museum]

 

슈테델 미술관은 14세기부터 현대까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회화를 광범위하게 수

집, 총 2,700점의 회화를 비롯하여 600점의 조각, 드로잉과 판화 약 10만 점 등을 소장, 전

시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슈테델 미술관은 렘브란트, 모네,

르누아르, 뒤러 등 중세 독일·네덜란드 회화, 14~18세기 이탈리아 회화, 17세기의 낭만파

와 나자레파, 인상파, 표현주의파 등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강물이 일렁대고 반짝이는 모습이 느껴지는 모네의 작품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는 마침 모네의 특별전시 “Monet and the Birth of Impressionism(모

네와 인상파의 탄생)”가 열리고 있었다. 모네 작품에서 강물이 일렁대고 반짝이는 느낌을

제대로 느끼려면 미술 작품 앞에 서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번 모네 특별 전시에 나온 모네 작품 소개 영상을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

http://www.staedelmuseum.de/de/ausstellungen/monet-und-die-geburt-des-impressionismus

 

낭만주의 (浪漫~ romanticism)  내용 참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낭만주의 [浪漫主義]

18세기 후반에 발생하여 19세기 전반 사이의 유럽을 지배한 모든 문화영역의 사조이며, 정신적인 태도이다. 이것은 감정을 억압하여 이성(理性) 중심의 보편적 인간성을 존중한다는 고전주의(古典主義, classicism)에 반대하고, 자아의 감정을 해방하되 인간과 공동체와 문화의 성장에 맞는 전체성 을 추구했다. 넓은 의미로는 자연으로 돌아가 현실을 도피한 주관적 공상적인 세계로의 비약을 강조하였던 탓으로, 민족정신 또는 민족문화에 대하여 자신의 이념을 정치적으로 관철하는 현실감과 실행력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낭만파는 이러한 계몽주의와 고전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나 유럽 전역을 풍미한 예술적(문학, 미술, 음악, 문예) 사조를 추구하는 예술가 또는 그런 유파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는 음악·미술·건축·정치·사회의 전반에 걸쳐서 한때를 풍미한 사조이기도 하다.

 

자연 상태로서의 인간의 ‘선성(善性)과 완전성(完全性)’을 제창하면서 기성의 전통과 문명에 대하여 맹격을 가한 루소(Rousseau,J.J.)를 낭만 주의의 시조로 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낭만적’이란 말은 고대 불어의 ‘로망(roman)’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로망’의 고형(古形)인 ‘로망스(romans)’와 ‘로망(romant)’은 라틴어의 부사 ‘로마니스(romanice)’에서 기원하고 있다. ‘로망’이 처음에는 ‘기이(奇異)’·‘가공(架空)’·‘경이(驚異)’·‘환상(幻想)’ 등 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18세기말을 전환점으로 하여 비로소 고전주의에 대립된 개념으로 ‘낭만주의(romanticism)’란 특정의 문예사조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낭만(浪漫  Romance 로망스, Roamantic 낭만적)의 어원에 대해서

                  출처: 교실밖 국어여행 - 낭만(浪漫)의 어원에 관하여

"낭만이 가득한 젊은이들","낭만이 넘치는 대학가" 따위로 오늘날 흔히, 또 자연스레 쓰고 있는 "낭만(浪漫)"의 어원에 관하여 알아본다. 낭만( 浪漫)이란 말은 실상 아무런 뜻도 지니지 못한 말이다. 한자로 해석해 봐도 그 뜻을 알 수 없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상의 한 경향에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까다로운 고전주의 전통에 반대하여 자유, 개성, 공상, 모험, 자연의 감정 따위를 소중하게 여기는 예술 경향이다. 한자 쓰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이 로맨티시즘을 "浪漫" 主義로 옮겨 적었다. "浪漫"을 일본의 한자발음으로 읽으면 "로망(ろうまん; ロマン)"이 된다. 그러니까 "낭만(浪漫)"은 서양말 "로망(roman)"을 그저 소리대로 적은 일본인들의 한자표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에서 ‘로맨틱(romantic)’이나 ‘로맨티시즘(romanticism)’은 그 이입의 초기(일제시대)에 ‘낭만적(浪漫的)’ 또는 ‘노만적(魯漫的) ’과 ‘낭만주의(浪漫主義)’ 또는 ‘노만주의(魯漫主義)’로 각각 번역되고 있었으나, 오늘날은 대부분 ‘낭만적’과 ‘낭만주의’로 사용하고 있다.

 

"浪漫"을 우리의 한자음으로 읽으면 "낭만"이 되니까, 결국 원래 말인 "로망"과는 영 동떨어진 이상한 말이 생겨나고 만 것이다. 이래서 처음 들어서는 그 뜻을 제대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낭만","낭만주의,"낭만적"이란 말들이 널리 쓰이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버젓이 국어사전에 올라 우리말 행세를 하게 되었다.

 

로맨스(romance)는 어쩌다가 낭만, 사랑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출처: [조승연의 이야기인문학]-단어의 어원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에서

‘낭만’의 어원인 ‘로망스’는 원래 기사도와 모험, 그리고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한 중세문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십자군 원정 당시에 대학 물을 먹은 귀족 부랑아들이 엔터테이너처럼 이야기꾼이 되어 무료한 귀부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돈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트로바도르'라 불리는 이 남자들의 이야기에 귀부인들은 홀렸고 이들의 매너에 빠져 버렸다. 트로바도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주로 사랑이야기였고 '로맨스어로 된 작품'이라고 해서 '로맨스'라 부르게 되었다. 때로는 사랑이야기를 듣는 자리의 트로바도르와 귀부인 사이의 분위기는 점차 야릇하게 흘렀고 로맨 틱한 분위기라고 하게 되었다.

 

한편 로망(Roman)은 라틴어로 어려운 논문이나 방대한 역사적 기록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점차 사사로운 감정을 다룬 문학작품인 소설을 의미하게 되고,19세기 낭만주의 시대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녀들의 한심한 사랑에 빗대어 로망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라고 낮춰 부르게 되면서 시작 되었다.

 

(계속)  

 

 

 

스위스 최대의 도시 ‘ 취리히(Zürich)’와 청정도시 ‘루체른(Luzern)’ 돌아보기

여행시기: 2015년 02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김홍철 요들: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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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최대의 도시 ‘취리히(Zürich)’

                홈페이지: http://www.stadt-zuerich.ch/portal/de/index.html 

                card & ticket: ZürichCARD - City of Zurich - Startseite Portal der Stadt ...

스위스 북부에 위치한 취리히

 

장크트페터교회(St. Petersstiftskirche)

 

스위스 최대의 도시 취리히는 취리히 주의 주도(州都)로, 스위스 북부(북위 47°22)에 있어 한국에

비해 기온이 낮다. 취리히 도심 11km 북쪽에 있는 클로텐 공항(Flughafen Zurich Kloten)은

스위스 최대의 공항으로 세계 각지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직행편이 있긴 하였지만

스위스로 갈 때는 오스트리아 빈(Wien)에 잠깐 들렀다가 갔으며, 귀국할 때는 빈을 들르지

않고 인천공항으로 직행하였다.

 

 

취리히는 1351년 스위스 연방에 가입하였고, 1519년 츠빙글리에 의한 종교개혁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리마트강 연안의 구 시가에는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건축인 그로스뮌스터

(Grossmünster 대성당)와 유럽 최대의 시계탑이 있는 장크트페터교회(St. Petersstiftskirche)

등이 있다. 그 밖에 옛 취리히의 모습을 전하는 것으로는 17세기의 시청사와 리마트 강변의

길드(館) 등이 있다.  

 

그로스뮌스터( Grossm&uuml;nster 대성당)
프라우뮌스터(Fraumunster) 교회의 샤갈 스테인드글라스

 

그로스뮌스터(Grossmünster 대성당)는 2개의 탑이 특이한 대성당으로 가장 오래된 부분은

11-12세기에 세워진 부분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프라우뮌스터(Fraumünster)는

9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이 교회로 바뀌었는데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어 방문자를 불러

모은다. 857년에 지어져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장크트페터교회(St. Petersstiftskirche)는

유럽 최대의 시계탑과 5112 개의 파이프를 가진 웅장하고 아름다운 오르간이 있다. 

 

린덴호프(Lindenhof) 언덕에서 내려다 본 취리히 시내

 

린덴호프(Lindenhof) 언덕에선 로마시대의 세관, 성벽 흔적이 있으며, 구시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은행, 명품점, 시계, 보석점이 밀집되어 있는 반호프스트라세(Bahnhofstrasse)는

취리히 중앙역에서 취리히 호수에 이르는 1.3km 구간의 도로로 보행자 전용거리이다.

취리히 호수에서는 유람선을 타거나 호반 산책을 할 수도 있다.  

 

1855년 연방차원에서 설립한 취리히공과대학은 1995년 현재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하는 등 기초 과학 분야에 있어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며, G.켈러, J.페스탈로치 등을

비롯하여 많은 작가와 학자를 낳은 곳으로 유명하다. 출처: 두산백과: 취리히

상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에 있던 중세 시대 지구본(진품)

 

국립 박물관 (Schweizerisches Landesmuseum) 공식 홈페이지 : Musee Suisse

취리히 중앙역 뒤편에 있는 국립 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 유적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에 만들

어진 상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에 있던 지구의(地球儀, 지구본地球本), 중세시대의 성당 프레

스코화와 장식물, 16-19세기의 농기계, 직조기, 태피스트리(TAPESTRY 천 가리개=커튼) 등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재를 볼 수 있었다. 눈이 많은 스위스답게 눈신발(Schneeschuhe 슈

네슈헤), 눈썰매 등 동계 스포츠 기구와 스위스 시계, 무기, 채굴 기계 등 기계 발달 과정도

전시되어 있었다.

 

취리히 미술관 (Kunsthaus Zürich)   공식 홈페이지 : http://www.kunsthaus.ch

스위스 취리히 미술관에서는 스위스의 대표적 화가인 호들러(호들러 [Ferdinand Hodler])의 

작품 외에도 세잔, 르누아르, 마티스, 위트릴로, 피카소 등 19-20세기 서양 회화 걸작을 볼

수 있다.  

취리히 미술관(Kunsthaus Zürich)에 있는 고흐 그림

 

취리히 시내 40 개 이상의 미술관, 박물관 입장 무료 및 기한 내 시내 대중교통(트램, 버스

유람선 등) 무료 탑승, 20개 레스토랑에서 무료 음료 제공되는 통합 card(ticket)도 있다.

(참고: ZürichCARD - City of Zurich - Startseite Portal der Stadt ...)  

 

청정 호반 도시 ‘루체른’    출처: 두산백과: 루체른 [Luzern]

                                루체른의 음악축제 일정, 티켓 링크: 루체른 페스티벌

취리히 남서쪽 52km 스위스 중부에 있는 루체른(Luzern)은 루체른 주의 주도이지만 크지

않은 도시로, 루체른 호의 서안(西岸)에 면하며 로이스 강이 시내를 흐른다. 8세기에 수도

원과 대성당이 건립되었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 교통로의 요지로 발달하였다. 스위스 연

방 가입 후 가톨릭 중심지였으며, 1873년까지 교황대사가 이 도시에 주재하였다.   

 

알프스 산맥의 유명한 필라투스 산기슭에 위치하여, 알프스 산맥과 루체른 호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성당과 박물관을 비롯한 옛 건물도 많이 남아 있다.

출처: 위키백과 - 루체른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곳 중의 하나로, 시내버스는 전기차가 운행될 정도

로 청정도시이다. 로이스강에 의해 2부분으로 나뉘며 강 위로 7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카펠 다리(1333)와 슈프로이어 다리(1407)는 가장 오래된 2개의 다리이다.  

유럽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 카펠교

카펠교(Kapellbrucke) 

루체른의 상징인 카펠교는 1333년에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로, 몇 개 남지

않은 지붕이 있는 중세 시대의 다리이다. 원래 이 다리에는 17세기의 화가 하인리히 베그만

이 루체른의 역사를 그린 150여 장의 패널 그림이 걸려 있었지만 1993년 8월 대화재로 온

전한 패널 그림은 30여장 밖에 남지 않았다. 화재 당시 불에 휩싸인 카펠교 사진이 안타까

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불에 타버린 다리 일부와 패널 그림 일부는 복원되었다.  

 

빈사(瀕死 ‘죽어가는’)의 사자상 

마크 트웨인이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한 ‘빈사(瀕死 죽어가는)의 사자

상’(독: Löwendenkmal 뢰벤덴크 말)은 베르텔 토르발드센이 설계하고 루카스 아호른이 조각

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1792년 8월 10일 사건 때 튈르리 궁전을 사수하다 전멸한 라이

슬로이퍼 장병 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한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빈사의 사자상

빈사(瀕死= 죽어가는)의 사자상

 

‘빈사의 사자상’ 바로 옆에 있는 빙하박물관에서는 1872~75년 발굴된 빙하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고, 스위스 교통박물관(1959), 우텐베르크 스위스 민속의상 박물관 등이 있다

그 외  루체른의 중요한 건물로는 역사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시청(1602~06), 암린하우스

(1617), 장크 트페터 교회(1178, 1750 개조), 8세기 대성당이자 장크트레오데거 대교회인

호프트키르헤(1633 이후 재건), 마리아힐프 교회(1676~81) 등이 있다. 

 

루체른호 주변으로는 전형적인 스위스풍 건축물과 지중해풍의 경관을 볼 수 있고, 리기산,

필라투스산, 티틀리스산 등을 찾아가 볼 수 있다. 동계 스포츠 요충지인 엥겔베르크와는  

협궤 철로에 의해 직접 연결된다. 훌륭한 주위 경관, 온화한 기후, 철도 및 도로를 이용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장점들 때문에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주요한 관광 중심지이다.   

 

   파스트나흐트(Fastnacht 謝肉祭 사육제, 카니발)

참고: 브리태니카 Encyclopaedia Britannica: 사육제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C%9C%A1%EC %A0%9C

파스트나흐트(사육제) 광경
  

  스위스의 전통 요리 퐁뒤(fondue)

 파스트나흐트(독일어 Fastnacht) 는 사육제, 카니발의 뜻으로 사순절(四旬節) 이전 고난주간

직전 3일간 벌이는 독일어 사용권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축제이다. 남서부 독일 마인츠와

그 주변에서는 '파스트나흐트(Fastnacht)' 또는 '파스넷(Fasnet)'으로, 바이에른과 오스트

리아에서는 '파싱(Fasching)', 쾰른과 라인란트에서는 '카르네발(Karneval)'이라 불린다.

 

사육제(謝肉祭)는 유럽과 남미 등지에서 매년 2월 중,하순 경 열리는 대중적 축제이다. 이 기

간 동안 축제를 여는 것이 전통이 된 것은 이 기간이 끝나면 금육과 절제의 기간인 사순절

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전에 ‘ 마음껏 먹고 신나게 놀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오늘날은 예외도 있지만, 보통 사육제는 ‘재()의 수요일’ 하루 전 기름진 화요일(Mardi gras)

에 절정에 이르는 동시에 끝난다.

 

카니발은 원래 로마의 농업의 신(神) 사투르누스(사투르누스 [Saturnus])의 축제였는데 나중

에 기독교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옛날 기독교에는 요란한 축제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이런

이교(異敎)에 기원을 둔 명랑한 축제를 많이 받아들여서 민중 사이에 기독교의 인기를 높

이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카니발은 지방에 따라 구체적 행사, 행사의 성격 및 그 의미가 다르다. 카니발은 원래 카톨

릭 지역의 풍습에 속한다. 따라서 이 축제는 개신교가 우세한 독일 북부와 동부에서는 정착

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톨릭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독일의 개신교도들이 카니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라인란트 지방에서는 "카니발 때 바보가 되지 않는 자는 1년 내내 바보

가 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오늘날에는 모두가 이 광란의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스위스의 전통 음식 ‘퐁뒤(프: fondue)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퐁뒤

퐁뒤(또는 퐁듀. 프랑스어: fondue)는 스위스, 사보이 등의 프랑스 일부 지역과 이탈리아 북

부 피에몬테 주, 발레다오스타 주 등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알프스 지역과 그 주변 지

역의 전통 요리로, 보통 밥상 가운데 작은 항아리 그릇(caquelon 까껠롱)을 불에 올려놓고

다양한 치즈 등을 녹여가며 먹는 요리를 말한다. 퐁뒤는 알프스의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시작된 음식이다.  

 

흔히 말하는 퐁뒤는 치즈 퐁뒤로서, 치즈를 녹인 뒤 빵이나 소시지를 찍어 먹는다. 치즈를

넣지 않고 고기를 기름에 튀겨 먹는 고기 퐁뒤, 초콜릿을 녹여 먹는 초콜릿 퐁뒤 등도 있

다.  

 

- 맺는말 -

지난 2월 초, 중순의 남독일(바이에른 지방), 스위스 취리히, 루체른 여행은 눈(雪)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겨울 여행에서만 볼 수 있는 산과 들, 나무의 맨 몸(드러난 모습)에서 雪國의 고

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귀국하는 취리히 클로텐 공항(Flughafen Zurich Kloten)에서였다. 탑승동을 향하는 공항

열차에서 요들 노래와 함께 alphorn(알프혼- 기다란 파이프를 가진 스위스의 악기)소리와

소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한 동안 그 잔향들이 귓가를 맴돌면서 스위스 여행을 마치는 나

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남부 독일 / 프랑스 알자스 / 스위스 취리히, 루체른] 둘러보기 링크(모음)*

-이하는 그동안 올렸던 게시글의 링크(모음)로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슴-

 

남부독일(1)-슈타인 암 라인,라인폭포,상트 갈렌,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남부독일(2)-린더호프城,헤렌킴제城,비스교회,에탈 수도원,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추크슈피체 산

남부독일(3)-뮌헨,아우크스부르크,울름,뉘른베르크                                               

남부독일(4)-밤베르크,바이로이트,뷔르르츠부르크,로텐부르크

남부독일(5)-하이델베르크,슈투트가르트,메칭겐 아울렛,호엔촐레른성,독일 대표 음식

 

프랑스 알자스 -콜마흐(콜마르),스트라스부르

스위스 최대의 도시 ‘취리히(Zürich)’와 청정도시 ‘루체른(Luzern)’ 돌아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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