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자스 지방 둘러보기- (프:Alsace 독:Elsaß 엘자스)-콜마흐(콜마르),스트라스부르

 

  알자스 여행 링크: https://www.visit.alsace/en/   두산백과:  링크: 알자스 [Alsace]

 

여행시기: 2015년 02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은 로렌지약을 묶어 알자스-로렌(프: Alsace-Lorraine, 독:Elsass- Lothringen)이라 

부르는데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직후인 1871년 프랑스가 독일에게 양도한 1만 3,123㎢의 영토를 이르는 이름

이었다. 이 영토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프랑스에 반환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독일에

다시 양도되었다가 1945년 프랑스에 반환되었다.

 

 [독일은 어떻게 마침내 하나의 국가가 되었을까?]

<관련 배경 지식>유튜브(7분30초 영상)-[독일은 어떻게 마침내 하나의 국가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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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Alsace) 지방의 주요 도시는 스트라스부르, 꼴마흐이며, 로렌(Lorraine) 지방의 중심 도시로는 메스

(Metz)와 낭시(Nancy)가 있다. 이 지방은 여름에 일조시간이 길고 보주산맥(링크:보주 산맥)에 의해 습기가 

차단되어 연 강수량은 590 mm 정도라, 포도 재배에 적합하여 프랑스의 주요 와인 산지 중 하나이다. 또한 

목재·직물·기계·화학 공업이 활발하고, 라인강과 병행하는 알자스 대운하와 보주 수력발전 개발로 라인 지방

과 론강· 지중해 방면에 이르는 중계지로서 발전하고 있다. 알자스-로렌 지역 주민은 프랑스 혁명이래, 감정

적으로는 프랑스인이 되어 있으나, 언어는 아직도 독일어 사투리를 쓰고 있다 . M.숀가우어와 M.그뤼네발트

등 알자스파(派) 회화와 중세문학의 중심지였다. (지도와 내용 출처: 두산백과 알자스 [Alsace])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와 로렌(Lorraine)

                                                    사진 출처: 두산백과 알자스 [Alsace]

스트라스부르의 야경과 골조가 독특한 꼴롱바쥬 가옥

알자스-로렌 지역의 전통가옥 꼴롱바쥬(Colombage-나무골조 집)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로렌 지방과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지방, 브레타뉴 지방의 전통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나무 골조가 드러나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colombage(꼴롱 바쥬-나무 골조집)라 한다. colombage(꼴롱바쥬)

란 기둥, 보, 대들보, 버팀목 따위의 목재를 외부에 노출시키고 그 틈새를 석재·흙 벽·벽돌 같은 것으로 메우는

건축방식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뺏고 기는 쟁탈을 벌었던 알자스-로렌(Alsace- Lorraine) 지방

이 알자스-로렌(Alsace- Lorraine) 지방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소설의 무대였다.

소설 때문에 프랑스 지방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오랜 세월 독일어권 지역이었기에 아직도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라인강이 만든 비옥한 평야 지대를 품은 알자스-로렌은, 국경 지역 대부분이 그랬던 것

처럼 시대에 따라 힘있는 영주에게 이리저리 넘겨지다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땅이 되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 승리한 프랑스 루이14세가 이를 넘겨받았고 그 때 처음으로 프랑스어권이 되었다.

루이 14세는 주민이 무슨 말을 사용하는 지에는관심이 없었고 절대 군주답게 세금만 열심히 걷어 갔다.

그후 프로이센이 프랑스와의 전쟁에 승리하며 이곳은 독일 땅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도로 프랑스

땅이 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다시 한 번 독일로 넘어갔다가 종전 후 프랑스로 바뀌었다. 결국 이곳

주민들은 한자리에 머물러 살면서 4차례나 국적이 변경된 경우있었다고 한다.

()으로 둘러싸인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위키백과: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브리태니커 링크: 스트라스부르  

 

바랭 데파르트망(Bas-Rhin Department) 주도(州都)인 스트라스부르는 과거로부터 국경지대에 위치한 

도시였던 탓에 독일과 프랑스 두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요즘은 제네바, 뉴욕과 함께 국제기구 본부가 

들어서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로, 단순한 국경도시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유럽 의회의 본부가 있어 

유럽 화해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la cathedrale Notre-Dame de Strasbourg)과 

쁘띠뜨 프랑스(le quartierde la Petite France)등을 포함한 도시의 중심부는 198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운하로 연결되어 있는 도시는 수문을 관리하고 성으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감시탑이 중세에 세워졌다. 

 
물의 도시 스트라스부르의 감시탑  사진출처: 위키백과
자동 인형들이 등장하는 대성당의 천문 시계

 

스트라스부르 대성당과 천문시계  

한때(1874년 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이었던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수백 년 동안

(1176년에 짓기 시작 1439년 완성) 지어진 탓에 여러 양식이 보인다. 이 성당의 내부와 겉면을 장식하고

있는 수천 개의 조각품도 놀랍지만,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가대석과 남쪽 현관, 내부 천정과 장미창, 고딕

양식의 첨탑 등은 빅토르 위고가 ‘거대하고 섬세한 경이’라  말했듯이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대단하다.

특이한 것은 보통 고딕 양식의 첨탑은 좌우 2개가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은 15세기에 완성된 142m

높이의 첨탑 하나만 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웅장한 기둥과 화려한 제단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설교단의 아름다운 조각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성당에는 천문을 나타내는 큰 시계가 있는데, 시간이 되면 전차와 인형이 등장하여

일주일을 나타내는 그리스의 일곱 神들이 전차를 모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시계는 시간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행성과 별자리의 움직임까지 보여 주는 천문 시계로도 유명하다.

 

요일 이름과 달(月) 이름의 어원(유래)

      링크: http://en.wikipedia.org/wiki/Names_of_the_days_of_the_week
링크: 7일의 일주일과 요일명     링크: 영어 어원 月과 요일에 대해서..

 

12달의 이름의 유래(기원)에 대해서는 위의 링크를 보도록 하고, 여기선 요일(曜日)의 유래에 대해 요약해

본다. 요일(曜日)은 한 週의 각 날 별로 이름을 붙인 것을 말하는데, 교황 실베스터가 과거 그들의 神들의

이름을 좇아 불렸던 요일 이름들을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리스·로마 요일의 이름은 베티우스발렌스의 《명문집(Anthologiarum)-170년경의 저서》에서 처음 발견

되는데, 후에 게르만족이 이를 차용하면서 일부는 게르만 신화의 神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The Greek and Latin names(그리스·로마 요일 이름

Day:
(see Irregularities)
Sunday
Sōl/Helios (Sun)
Monday
Luna/Selene (Moon)
Tuesday
Mars/Ares (Mars)
Wednesday
Mercurius/Hermes (Mercury)
Thursday
Iuppiter/Zeus (Jupiter)
Friday
Venus/Aphrodite (Venus)
Saturday
Saturnus/Kronos (Saturn)
Greek μέρα λίου
hêméra Hêlíou
μέρα Σελήνης
hêméra Selếnês
μέρα ρεως
hêméra Áreôs
μέρα ρμο
hêméra Hermoú
μέρα Διός
hêméra Diós
μέρα φροδ ίτης
hêméra Aphrodítês
μέρα Κρόνου
hêméra Krónou
Latin dies Solis dies Lunae dies Martis dies Mercurii dies Iovis dies Veneris dies Saturni

 

Sun(Sol)-태양(日)은 남성, Moon (Luna)-달(月)은 여성을 나타낸다. 달의 변화는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듯

여성의 임신과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화요일 (火星)은 Tiu(북유럽의 전쟁의 神, 로마 신화의 Mars에 해당)로 오딘의 막내아들이며 군신(軍神)인

티르(tyr)가 튜우튼(Teuton)계 Tiu가 되었고 거기에 "es" 가 붙어서 Tuesday가 되었다.

 

수요일은 그리스의 헤르메스(로:메르쿠리우스), 수성(水星)을 나타내지만 부와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업의 神

으로, 북유럽의 主神인 오딘(odin)이 wonden, weden으로 변하고 거기에  ‘무엇 무엇의’를 나타내는 es가

붙어서 오늘날의 Wednesday가 되었다.

 

     목요일(木星)은 토르(Thor)의 날로 오딘의 여섯 자녀 중 토르(thor)를 찬미하는 날이다. Thor는 스칸디나비

     아 천둥의 신으로 여기서 Thursday 가 나왔다.

     

     금요일( 金星)은 'Frigg(프리그), Freya(프레아)' 여신의 날로 정해졌는데 프레야는 主神 오딘의 애인인데

     아프로디테(로:비너스)와 같이 사랑과 아름다움 그리고 풍요의 여신이다.

     

     토요일(土星)은 로마의 농경神 사투르누스(saturnus)를 받드는 날로 그리스神 cronos(크로노스)는 제우스에

     쫓겨나서 로마로 건너가 풍요의 神이 된다. 로마는 농업을 중요시했기에 사투르누스를 숭배했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Sun’s day, Moon’s day, Tiu’s day, Odin’ s day, Thor’s day, Freya’s day, Saturn’s day에서 영어

     요일명 Sun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hursday, Friday, Saturday 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도 20세기 초 개화기 때 행성(行星)의 이름으로 일주일로 쓰는 체계를 따르게 되었다 한다. 

 

     스트라스부르의 옛 모습이 남아 있는 쁘띠뜨 프랑스(la Petite France)

       참조링크: https://abcvoyage.com/promotion-voyage/petite-france/

     쁘띠뜨 프랑스라고 불리는 구역에는 라인강의 지류인 일강(참조링크:Ill)의 물줄기가 흐르는 작은 운하와 목조  

     가옥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마치 중세의 아름다운 마을에 와 있는 듯하다. 그 외에도 외브르

     노트르담 박물관, 구텐베르크 광장, 로앙 성, 알자스 민속 박물관 등이 볼거리이다. 외브르 노트르담 박물관

     (Musee de l' Euvre-Notre-Dame)은 원래  대성당 일꾼들의 숙소였으나 지금은 금은 세공품과 대성당 설계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시내는 地上열차(트램 tram)가 다니는데, 찻길과 일반 도로의 경계가 없어 길 한복판을 사람과 자전거와

     트램이 같이 다닌다. 트램이 지나갈 때 경보음(종)을 울리기는 하지만, 길을 걷다가 종소리가 들리면 주의해야

     한다

 

     알자스 와인가도, ‘알자스 포도주 길(Route des vins d'Alsace)’

                          내용참조 두산백과 : 알자스포도주 길 [Alsace Wine Route]

                          와인가도 지도 출처:  http://blog.daum.net/micropsjj/17038701

 
알자스 와인가도((Route des vins d'Alsace)
의 중심 꼴마흐
 

쁘띠 베니스(Petite Venise)와 꼴롱바쥬 형식의 전통가옥
 

알자스 지방은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 알자스 지방은 170km에 달하는 알자스 와인가도

가 있다. 알자스 와인가도는 북쪽의 마를랭(Marlenheim)에서 남쪽의 탠(Thann)에 이르는 와인을 생산하는

도시들을 연결한 루트로, 이 곳에 가면 알자스 고유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데다가 아기자기한 소도시들을 

만날 수 있어 인기이다.

 

와인가도의 중심 Colmar(콜마르, 꼴마흐)

                     꼴마흐 관광사무소: http://www.ot- colmar.fr/en/

Colmar(콜마르 혹은 꼴마흐)는 프랑스 북동쪽,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알자스 지방의 작은 도시로 오랭

(Haut-Rhin) 데파 르트망(Department=주(州))의 주도(州都)이다. 이곳은 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파리의

에펠탑을 만든 조각가 에펠의 고향으로, 마을 입구 로터작은 '자유의 여신상' 조각이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건물들이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보이는 꼴마흐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

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스트라스부르에 '쁘띠뜨 프랑스'가 있다면 꼴마흐에는 '쁘띠뜨 베니스(la Petite

Venise)'라는 작은 개천이 흐르는 지역이있다. 하지만, 작은 베네치아(Petite Venise)라는 귀여운 이름에도

불구하고, 개천 폭이 좁고 수량도 적어 물 흐름이 느렸으며, 무엇보다 하수구 냄새가 나서 이름과 달리 실망

이었다.

 

꼴마흐에서는 생 마르탱성당(Saint Martin Collegiate church)과 그뤼네발트의 ‘ 이젠하임제단화’가 있는

운터린덴박물관(Unterlinden Museum 링크: https://mindful-art.eu/en/mindful-art-at-the-museum

메종피스테르(Maison Pfister홈피: https://www.visit.alsace/en/235008787-the-pfister-house/  두산백과:

메종 피스테르 [Pfister house])는 필수 방문 코스이다. 

 

 

작은 탑과 테라스, 채색 벽화로 꾸며진 16세기 목조 가옥으로 알자스 지방의 독특한 건축미를 잘 보여주는

이 건물은, 여러 채의 다른 전통 가옥들과 함께 중세 무역도시로 큰 번영을 누리던 이 지역의 옛 모습을 회상

하게 해주는 주요한 건축물로 꼽힌다.

 

꼴마흐에는 알자스 지방의 독특한 나무 골조가 드러나는 건축(colombage(꼴롱바쥬) 형태를  가진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도시 안쪽의 작은 강(운하)을 따라 오래된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창틀이나 베란다 또는

문 앞에 장미나 팬지꽃 화분을 내다놓아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꼴마흐도 아름답지만 꼴마흐 근처에 있는 리보빌레, 리크비르, 카이저스 베르크, 튀르크하임 등 알자스 와인

가도의 작은 마을들도 정감이 가는 예쁜 마을이다. 와인가도의 작은 마을들은 크기가 작아 하루에 세 마을

방문도 가능하며, 만약 알자스지방에 하루를 묵게된다면 꼴마흐에서 숙박하기를 추천한다.

 

알자스지방의 화이트 와인과 푸아그라

프랑스 알자스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90% 이상이 화이트 와인이며, 리슬링(Reisling) 과 게부르츠트라미너 (Gewurztraminer) 품종의 와인으로 최상급의 화이트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주 드라이하면서도 상큼하게

신맛이 돌아 식전주로 많이 마신다.

 

거위 간 요리인 푸아그라는 알자스 지방 특히 스트라스부르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을 최고급으로 친다. 알자

스의 화이트와인을 초록빛 알자스 와인 잔에 마시면서 푸아그라를 먹는다면 세상의 근심을 잊게 될 것이다.

 

다음은 스위스의 취리히와 루체른을 방문한다.

 (계속)

남부 독일-돌아보기(5)-하이델베르크,슈투트가르트,메칭겐 아울렛,호엔촐레른성,독일 대표 음식   

여행시기: 2015년 02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Drink Drink Drink (The Drinking Song)- 영화'황태자의 첫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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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도시,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크 Heidelberg   위키백과: 하이델베르크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북서부에 있는 철학의 도시이자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
르크는 인구 14만 명으로 네카르(독:Neckar)강변에 위치한 도시다. 1386년 선제후 루프레
흐트 1세(Ruprecht I)에 의해 설립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프라하 대학교, 빈 대학교에
이어 독일어권에서는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다.(두산백과: 하이델베르크)

 

古城(고성)에서 내려다 본 붉은 지붕의 건물과 성령 교회&amp;amp;amp;amp;amp;amp;amp;amp;nbsp;
동화 나라의 장난감 같은 카를 테오도르 다리의 탑

 

18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독일의 대학은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이라, 학생의 경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독립적인 권한을 대학이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하이델베르크대

학교 학생 감옥은 좁고 음침한 통로를 지나가면 나오는데, 어두컴컴하고 먼지 묻은 감옥 벽

과 천정에는 낙서가 그려져 있고 오래된 나무 의자와 책상이 남아 있어 옛날을 말해 준다.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는 검은숲(Schwarzwald)을 배경으로 언덕 위에 있는 고성(古城)의

모습이 인상적인 도시인데, 이곳 겨울은 다른 남부 지역에 비해 기간이 길고 추운 날씨들이

많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까닭에 이곳에서 사색을 추구하는 철학자와 신학자 외에도 문학

가, 음악가 등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했는지도 모르겠다. 네카르강을 사이에 두고 하이델베

르크성과 마주하는 건너편 언덕에는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 여러 철학자가 사색하며

걸었던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있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무대 하이델베르크  위키백과: 황태자의 첫사랑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은 1899년 발표된 마이어푀르스터의 중편 소설과 희곡을 모태로

1954년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이 만들었다. 하숙집 소녀가 신분을 초월하여 황태자와 사랑

을 나눈다는 비현실적 로맨틱 코미디이다. 영화 속 ‘축배의 노래’는 테너 마리오란자(Mario

Lanza 1921~1959)음성이고, 실제 노래 연기는 에드문드 퍼돔(Edmund Purdom)이 립싱크

했다. 이 노래의 무대인 ‘붉은 황소’ 맥줏집(http://www.roterochsen.de/welcome.html)에서

가슴 뜨겁고 열정 가득했던 대학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성(Heidelberg Schloβ)

홈페이지: http://www.schloss-heidelberg.de/en/home/  참고 링크:하이델베르크성 [Das Heidelberger Schloss, ─城]

ㅡ리 


그림 좌측-바로크식의 프리드리히 성관(Friedrich 城館 ),
그림 우측-지붕이 남은르네상스식의 하인리히 성관(Otto Heinrich 城館)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
Großes Fass(그로쉐스 퐈스)

 

하이델베르크성에 올라갈 때는 고성 관람료가 포함된 통합 푸니쿨라(Funicular) 표를  사면  

경제적이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1225년 팔츠백(伯) 오토 비텔스바흐家 요새로 축조하기

시작했으나 1537년 낙뢰(落雷)로 파괴된 뒤 현재의 자리에 옮겨지었다. 그 후 30년 전쟁을 

비롯한 잇단 전란으로 황폐해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 복원되었다.


성의 축성(築城) 양식은 독일-네덜란드 르네상스풍의 성관(城館)과 중세풍 성새(城塞)의 일

부가 혼용되어 있다. 성안에는 일부 파괴된 채 남아 있는 화약탑과 성문탑, 감옥탑 등의 여

러 개의 탑이 있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로베르트 슈만은 작곡가가 되어 첫 작품 ‘대학생

황태자‘를 썼는데, 이 곡은 지금도 매년 여름 하이델베르크 성 정원에서 연주된다.


시계탑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1400년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루프레히트

관이 나오며, 가운데 보이는 바로크식 프리드리히 성관(Friedrich 城館)은 1607년 완성되었

다. 그 외 후기 고딕식 종루(鐘樓), 르네상스 양식의 루트비히성관(Ludwig城館)과 오토 하인

리히 성관(Otto Heinrich 城館)등이 있는데 성안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붉은 색 사암(沙

岩)으로 건축되었다.

 

성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인 Großes Fass(그로쉐스 퐈스 ‘큰 드럼통’의 뜻. 링크:

Heidelberg Tun)가 있는데 높이 8m의 거대한 크기로 21만ℓ(리터)의 포도주를 담을 수 있다.

오토 하인리히 성관에 있는 의약 박물관에서는 의학과 약학 관련 문서, 실험 기구 등 약학

발달사를 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관 뒤쪽으로 나가면 시내가 잘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데,

네카르강과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보이고 시청을 비롯한 하이델베르크의 예쁜 건물과 붉은

지붕들을 잘 조망할 수 있다. 네카르강 건너편엔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철학자의 길이 보인

다.

 

자동차의 성지 슈투트가르트    참조 두산백과: 슈투트가르트  위키미디어: Stuttgart.  

슈투트가르트(Stuttgart)는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Baden-Württemberg 州)의 주

도(州都)인데, 네카르강(江) 양안(兩岸)의 유서 깊은 슈바벤 지방의 포도밭과 과수원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철도 교통의 요지이다.

 

벤츠박물관 (Mercedes Benz Museum www.mercedes-benz.com/museum)과 포르쉐 박물

관 (Porsche Museum http://www.porsche.com/uk/aboutporsche/porschemuseum/) 이 있

어 자동차광(狂)들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슈투트가르트 국립 미술관(Staatsgalerie Stuttgart) 홈피:www.staatsgalerie.de


슈투트가르트 미술관 입구 

옛 성벽 일부도 남아 있는 원통형 옥외 전시장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세계건축계는 포스터모더니즘의 열풍이 불었는데 그 대

표적인 건축가가 영국의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이다. 슈투트가르트미술관(신관)을

1984년 그가 설계했는데 1877년에 세워진 기존의 미술관과 나란히 신관을 개축한 것이다.

 

슈투트가르트미술관 구관에는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낭만주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신

관에는 주로 20세기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중에

는 미국의 전후파 미술과 서독의 미술, 뛰어난 피카소의 컬렉션과 바우하우스 운동과 관련

있는 작가의 작품들이 있어 미술관의 질을 높이고 있다.

 

메칭겐 아울렛(Metzingen outlet) 홈피:http://www.outletcity- metzingen.com/en/

슈투트가르트에서 남쪽 30여 km 떨어진 시골 마을 메칭겐(Metzingen)에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아울렛이 있다. 메칭겐 아울렛에서는 여러 유명 브랜드가 있지만, 특히 독일 브랜드

인 휴고보스(Hugo Boss)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남, 여별 매장이 따로 있고 가장 싼 휴고

보스 제품을 살 수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성(백조의성)과 쌍벽을 이루는 호엔촐레른 고성.  위키백과:Hohenzollern Castle

호엔촐레른 성&amp;amp;amp;amp;amp;amp;amp;amp;nbsp; &amp;amp;amp;amp;amp;amp;amp;amp;nbsp;사진출처: &amp;amp;amp;amp;amp;amp;amp;amp;nbsp;Hohenzollern Castle on the Swabian Alb near Stuttgart.

                         호엔촐레른 성 사진출처: Hohenzollern Castle 

크지는 않지만 화려한 호엔촐레른 성 안의 예배당

이 곳 슈바벤(링크:Swabian Alb) 출신의 호엔촐레른 가문은 8명의 프로이센 왕과 독일 제국

의 황제를 배출한 명문가로 1415년부터 1918년까지 약 500년을 이어 왔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選諸侯), 프로이센 왕, 독일 황제(프랑켄계통), 호엔촐레른 공국과 루마니아의 왕

(슈바벤계통)을 배출한 가문이다. 18세기 초반에는 프로이센의 왕이 되어 오스트리아의 합스

부르크 왕가에 못지 않은 세력을 과시하였으며 1871년 독일제국이 성립되자 황제의 칭호를

가지기도 했다. 관련 출처: 호엔촐레른가 - 위키백과

 

호엔촐레른성은 슈투트가르트로부터 남쪽으로 70km 떨어진 헤칭겐(Hechingen) 외곽의 호
엔촐레른산(해발 855m) 정상에 있다. 공중에 솟아나 위엄이 넘치는 이 성은 남독일 지방
대표 고성인 노이슈반슈타인성과 쌍벽을 이루며 독일의 아름다운 성으로 꼽힌다. 이 성은
최초 11세기에 건축되었으나 1423년에 파괴됐고, 1461년 재건축 후 30년 전쟁(1618–
1648)때 황폐화되었다. 이후 프로이센황제 Friedrich Wilhelm IV세의 명으로 新고딕양식으
로 건축된 것이 오늘날에 이른다.

빌헬름 1 세 (Wilhelm I)가 독일 제국을 건설하고 프로이센 왕과 독일 황제를 겸했지만, 손
자 빌헬름 2세(Wilhelm II  1859-1941)가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하면서 호엔촐레른 가문의
오랜 영광도 막을 내렸다. 프러시아 마지막 황태자 빌헬름 2세와 황태자비 세실(cecile
1886~1954)이 호엔촐레른성에 살았으며 죽은 후 여기에 묻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18년 독일혁명이 일어나 독일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전환되었는데,
이후 1919년 2월 독일은 바이마르(Weimar) 헌법을 제정하여 18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
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사회민주당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가 초대 대통령으
로 선출되었다.

독일의 오랜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환상街道(Fantastische Strasse 판타스틱가도)

홈페이지: http://www.fantastische- strasse.de/Korean/korea.html
  =하이델베르크에서 보덴 호반의 콘스탄츠까지 이어지는 환상가도(Fantastische Strasse 판타스틱가도)

하이델베르크에서 보덴 호반의 콘스탄츠까지 이어지는 환상가도(Fantastische Strasse 판타스틱가도)

독일 남서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는 환상街道(Fantastische Strasse 판타스틱가도)는 하이델
베르크에서 시작해 바덴바덴(Baden-Baden) 온천 휴양지와 바덴-뷔르텐부르크 주도 슈투트
가르트와 아울렛이 있는 메칭겐, 전통적인 대학 도시 튀벵겐,  호엔촐레른성을 거쳐 독일에
서 제일 큰 호수 보덴湖(링크: 보덴 호 [Lake Constance]-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3국 경계
의 큰 호수)의 호반 도시 콘스탄츠(Konstanz)까지 이어진다.

이 환상가도는 독일 주요 강들인 네카르강, 도나우강, 라인강변을 따라 연결된 관광루트인
데, 숲과 고성, 호반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환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한
다. 이 환상가도만을 따라 여행을 계속해도 독일의 오랜 전통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참조 링크: http://blog.naver.com/PostView.nhn? blogId=hkslka&logNo=220366239158


흑림(Scharzwald슈바르츠발트)이 시작되는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 위키백과: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입구-뾰족한 아치는 고딕 양식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는 黑林(흑림,슈바르츠발트

Scharzwald)이 시작되는 곳이지만 와인 생산지로도 명성이 높다. 남쪽으로 스위스, 서쪽으로

프랑스, 북쪽으로 카를스루에 행정구, 동쪽으로 튀빙겐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바덴의 남부지역과 잇닿아 있으며, 프라이부르크 대학이 있어 젊은 기운이 넘치

는 도시이다.


프라이부르크의 성모마리아 대성당(Münster Unserer Lieben Frau)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외관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첨탑은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독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세시대 종탑은 구시가지 어디서나 잘 보여서 프라이

부르크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이다.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등 프라이부르크의 주요 관광명소는 걸어서 충분히 관광할 정도이다.

구시가에는 일명 베힐레(Bachle)라고 불리는 인공 수로가 시내 골목골목을 흐르고 있다.

이 수로들은 600여 년 전부터 만들어져서 현재까지 이 도시를 흐르고 있는 데 프라이부르크의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 수로에 우연히 빠지게 되면 프라이부르크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독일 맥주 안주와 독일의 대표 음식 몇 가지

독일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으로는 소시지(부르스트), 감자요리, 브레첼이 있다. 

감자 요리는 감자튀김이나 구운 감자 혹은 으깬 감자 형태로 식사나 반찬에 따라 나온다.

 

 

 
흰 소시지와 고리모양의 과자 브레첼 (bretzel)
 
맥주와 고리모양의 과자 브레첼 (bretzel)
 
자우어크라우트와 함께 제공된 독일 소시지 부르스트

 

독일 소시지: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 보크부르스트(Bockwurst), Weisswurst(흰 소세지)
독일식 소시지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 구운 소시지)를 간단히 부르스트(wurst)라 칭하기도

하는데 돼지고기 또는 송아지고기로 만든다. 독일어로 Braten은 '튀기다'라는 뜻이고, wurst는

'소시지'를 뜻하는 단어이다. 돼지고기 간 것에 소금, 마조람(marjoram), 넛맥(nutmeg) 등의

향신료를 섞고 케이싱(casing 소시지의 외피)에 채워서 만든 독일식 소시지로 굽거나 튀긴다. 

내용참조: 부르스트 

 

보크부르스트(Bockwurst 링크: Bockwurst)는 일상적인 독일의 소시지로 삶아서 먹는 소시지를

총칭하며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만들고 우유, 계란 등과 함께 차이브, 파슬리를 넣는 점이 특징

적이다.


색(weis 白色)인 하얀 소시지(바이스부르스트. 링크: Weisswurst)는  뮌헨의 특산품으로

파슬리, mace(육두구나무-약감 매콤한 향이 남) 등 허브,  레몬, 양파, 생강 등으로 맛을 낸

소시지이다.

 

독일의 독특한 고리모양 과자 브레첼(독:brezel 영:Pretzel 프레첼)

         참조: 지식백과:브레첼 [Pretzel]

독일 과자 브레첼(Bretzel=프레첼 pretzel)은 소금이 붙어 있는 고리 모양의 과자인데, 반죽을

길게 늘여  매듭 모양으로 만들고 물에 살짝 데친 후 그 위에 달걀을 발라서 윤을 내고 소금을

살짝 뿌려 구워내면 된다. 독일 또는 알자스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것은 프레티올라

(pretiola ‘작은 뇌물’의 뜻)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세 초기의 한 독일인 수도사가 남은

 빵 반죽으로 가늘고 길게 구부려서 이 ‘빵과자’(pretiola 프레티올라)를 만들어 성서구절이나

기도문을 외운 아이들에게 주었다 한다.


이 부드러운 식감의 브레첼은 효소없이 빵을 만드는 메일라드 반응(Maillard Reaction =수용성

당과 아미노산 성분이 만나서 작용)을 일으키고, 굽는 동안 물을 살짝 뿌림으로써 껍질이 단단

해지고 진한 갈색이 되며 맛도 훨씬 좋아진다 한다. 완성된 프레첼에는 만드는 이의 취향이나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내용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2XXXXX00033

 

독일의 대표 요리 슈니첼,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 아이스바인(Eisbein)

독일식 돈가스 슈니첼(Schnitzel) 사진: 위키피디아
 
슈바인학세(Schweinshaxe)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식 돈가스 슈니첼(Schnitzel)   위키백과 링크: 슈니첼

슈니첼(독: Schnitzel)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고기 요리로 빵가루를 입혀 튀긴 것이다. 송아지

고기, 양고기, 닭고기, 쇠고기, 칠면조고기, 돼지고기 등 다양한 고기를 재료로 사용한다.

슈니첼(독: Schnitzel) 이름의 유래는 '음식을 얇게 썬 조각'라는 의미의 중세 독일어 단어인

Sniz에서 파생된 것이라 한다.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는 독일의 돼지고기 요리로 바이에른 지방에서 즐겨 먹는다.

재료로 사용되는 돼지고기의 부위가 족발과 비슷하지만 족발과 달리 슈바인스학세는 돼지의

발 끝부분을 사용하지 않는다. 슈바인스학세는 독일의 축제나 맥주 집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로

겉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러운 맛이 매력적인 요리로 맥주와 아주 잘 어울린다. 흔히 으깨

거나 얇게 썬 감자와 독일식 김치인 자우어크라우트를 곁들여 먹는다. 위키백과: 슈바인스학세

 

아이스바인(Eisbein 링크:아이스바인(Eisbein))은 소금에 절인 돼지 다리를 맥주를 섞은 물에

양파, 셀러리 등의 야채와 향신료를 함께 몇 시간동안 끓여서 만든다. 머스터드(겨자)를 발라

먹거나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와 으깬 감자 등을 곁들여 먹으며,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

독일 동북부 브란덴부르크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이에른 지방의 슈바인스

학세(Schweinshaxe)와 비슷하지만 아인스바인은 돼지 정강이 부위를 삶아서 조리하고 슈바인

스학세는 삶아낸 고기를 한 번 더 구워서 조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양배추 초절임)  출처:위키백과-자우어크라우트 [Sauerkraut]

자우어크라우트는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든 ‘양배추 초절임’으로 우리로 치면 백김치에 해당

하는데, 안주로도 먹지만 독일 음식을 대표하는 돼지고기 요리인 슈바인스학세와 아이스바인

과 잘 어울린다.


자우어크라우트는 독일어로 '신맛이 나는 양배추'라는 뜻으로 독일 외에도 체코, 네덜란드,

에스토니아, 북유럽 국가의 요리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보통은 굽거나 튀긴

육고기나 훈연(연기에 그을림) 고기, 소시지에 자우어크라우트를 곁들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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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독일 남부지방 바이에른州와 바덴뷔르템베르크州를 어느 정도 둘러보았다.

루트비히 2세와 바그너의 흔적을 따라 웅장한 성이나 예쁜 건물들을 찾아가 보았고, 뮌헨미술

관과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명품 회화들을 보았다. 중세 시대 수도원과 성당, 그리고 종교개혁의

흔적과 종교 개혁 후 나타난 성당이 아닌 교회(독:kirche)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세 마을에선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자란 맛있는 와인과 시원한

맥주도 즐겼다. 거기에다 길거리 음악가들이 들려 주었던 음악까지 더해지니 오감이 행복해

지는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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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그동안 올렸던 남부 독일 여행기의 글 링크 들로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슴-

 

남부독일(1)-슈타인 암 라인,라인폭포,상트 갈렌,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남부독일(2)-린더호프城,헤렌킴제城,비스교회,에탈 수도원,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추크슈피체 산

남부독일(3)-뮌헨,아우크스부르크,울름,뉘른베르크                                               

남부독일(4)-밤베르크,바이로이트,뷔르르츠부르크,로텐부르크

남부독일(5)-하이델베르크,슈투트가르트,메칭겐 아울렛,호엔촐레른성,독일 대표 음식

 

다음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꼴마흐, 스트라스부르)을 둘러보러 간다.


(계속)

 

 

 

 

 

 

 

 

 

 

 

남부 독일-돌아보기 (4) -밤베르크,바이로이트,뷔르르츠부르크,로텐부르크

여행시기: 2015년 02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슈베르트:'밤과 꿈'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을 멈추려면 stop □, Play(연주),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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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embed/uGAxAM5p0Qs  <=요걸 클릭


 

나의 바이에른 북부 루트

나의 바이에른 북부 루트: 뉘른베르크-밤베르크-바이로이트-뷔르츠 부르크-로텐부르크-하이델베르크-슈투트가르트-호엔촐레른성-(프)스트라세부르-(프)꼴마흐-(독)프라이부르크-(스)바젤-(스)취리히-(스)루체른
 

꿈의 도시 밤베르크(Bamberg)  브리태니커 링크: 밤베르크 [Bamberg]

강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 시청사

 

밤베르크의 명물 &amp;amp;amp;amp;amp;nbsp;훈제 흑맥주와 소시지, 감자 요리

바이에른 지방의 맨 북쪽 끝에 있는 밤베르크는 마인-도나우 운하가 시작되는 수상 교통의

요지이다. 마인강은 라인강의 가장 중요한 지류 가운데 하나로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북부

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마인츠 맞은편에서 라인강 본류에 합류한다. (링크:마인강 [Main])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밤베르크는, 오랜 도시 역사와 더불어 명망

높은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수의 연극과 음악 축제행사들이 열리므로 꿈의

도시(Traumstadt)라 불린다.

 

밤베르크 시청사(市廳舍)는 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 지어져 있는데, 화려한 벽화 장식과 비

스듬한 체크 무늬의 벽 지지(止持) 구조(colombage 꼴롱바쥬-나무 골조)가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조각이 많이 있는 Bamberg 대성당은 11세기에 로마네스크식으로 지어지기 시작

하여 고딕식의 네 개의 첨탑이 추가되어 13세기에 완성되었다.

(참고:밤베르크대성당 [Bamberg Cathedral, ─聖 堂])

 

Bamberg 대성당에 있는 하인리히 2세 조각
꿈의 도시(Traumstadt) 밤베르크 안내 포스트

작센왕조 최후의 독일 국왕이자, 신성로마 황제(재위 1002∼1024)였던 하인리히 2세가 가톨릭

주교구를 설치하자 많은 성당과 수도원이 들어서게 되었고 기독교인들도 증가하였다. 

 

이후 19세기 초 주교령(主敎領)이 해체되자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흐려졌지만 중세 가톨릭

교회 유적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밤베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모면한 몇 안 되는

독일 도시 중의 하나인데, 주민들은 신앙심이 깊은 도시여서 신의 특별한 가호를 받았기 때

문이라 믿고 있다 한다.

 

밤베르크(Bamberg)의 훈제 맥주(라우흐비어 Rauchbier)

라우흐(Rauch)는 연기(Smoke)라는 뜻으로 맥아를 발효시키기 전에 먼저 너도밤나무의 장

작불에다 그을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훈제 맥주(라우흐비어)는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독특한 맥주인데, 연기(나무 그을린) 냄새가 나며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이런 훈제 맥주(라우흐비어)를 파는 곳 중 가장 유명한 곳은 300년도 넘었다는 슐렌케를라

(Schlenkerla)이다. (관련 링크: http://www.schlenkerla.de/indexe.html).

 

한편 밤베르크에는 작은 베네치아(Little Venice) 지구가 있는데, 실제로 아주 작은 운하이

며 양옆으로 17세기 유적(집)들이 남아 있어 중세 분위기를 풍긴다.

 

바그너의 도시 바이로이트(Bayreuth). 관광안내소: www.bayreuth-tourismus.de

  바이로이트 홈페이지:http://www.bayreuth.de/english/welcome_to_bayreuth_357.html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홈피: http://www.bayreuther-festspiele.de/english/english_156.html

   EBS 링크: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두산백과: 바이로이트축제극장 [Richard-Wagner-Festspielhaus, ─祝祭劇場]

 

바이로이트는 밤베르크 옆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이 있기에 바그너 애

호가들에겐 순례지(巡禮地)이자 성지(聖地)이다. 바이에른 왕국의 백조왕자 루트비히 2세

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원래 바그너 오페라 작품만 공연하는 극

장이었지만, 베토벤의 교향곡 9번과 피아노의 거장 리스트의 작품은 공연을 허가하고 있다.  

 

화려한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내부 -패널 촬영-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내부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가수들의 노래를 가로막는 폐단을 없애

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무대 아래에 두었으며, 계급차(階級差)의 상징이었던 발코니와 휴게

실을 없애고, 王의 좌석도 일반석 뒤편에 두었다 한다. (EBS 링크:독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해마다 열리는 이 바이로이트 음악축제는 티켓 구하기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공연되는 ’니벨룽겐의 반지‘는 그 한 작품만으로 나흘이 걸

리며, 마지막 4부 ‘신들의 황혼’은 휴식시간 합해 7시간이 넘는다 한다.

 두산백과: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 위키백과: 니벨룽의 반지

 곡 해설: 「니벨룽겐 의 반지」 중 제3일 「신들의 황혼」

 

와인의 고장 Wurzburg(뷔르츠부르크) 링크: 뷔르츠부르크 [Wurzburg]

마리엔부르크 요새가 보이는 오래된 다리 알테마인교
프랑켄 와인을 담는 특이한 와인 병(복스보이텔)

프랑크푸르트 동남쪽 100km에 있는 마인강 유역의 뷔르츠부르크 (Wurzburg)는 독일 바이

에른주의 북쪽 끝, 프랑켄 지방(링크: 프랑켄 [Franken)에 있는 도시인데, 로만틱街道의 출발

점이다. 로만틱가도(Romantische Strasse)는 원래 알프스를 넘어 로마까지 이어지는 통상

로여서 ‘로만틱’이라는 이름이 붙어졌으며, 독일 남쪽 마을 퓌센(Fussen)이 로만틱 가도의

종착지로 뷔르츠부르크에서 출발하여 약 350km지점이다.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궁의 아름다운 초록색 문

 

뷔르츠부르크는 남부 독일의 대표적 바로크 건축물인 레지덴츠(Residenz) 궁전과 마리엔부

르크 요새(Festmg marienburg), 프랑켄 와인이 유명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뷔르츠부르크의 레지덴츠(Residenz) 궁전은 18세기 마리엔부르크 요새에 살던 주교 영주가

지은 궁전인데, 2층 입구 계단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세계 최대의 크기로 알려져 있

으며, 궁전(Residenz) 부속 교회와 부속 정원 호프가르텐(Hofgarten)이 볼 만하다.

 

마인강 위에 놓인 알테마인교(Alte Mainbrucke)는 다리 위에 성인 조각상이 있는 것이 체

코 프라하의 카를교를 닮았는데, 건너편 언덕에 있는 마리엔부르크 요새가 잘 보인다.

 

프랑켄 와인은 복스보이텔(Bocksbeutel ‘염소의 음낭’)에 담아

뷔르츠부르크 지방의 와인을 프랑켄 와인이라 부르는데, 프랑켄 와인을 대표하는 것이 슈타

인바인(Steinwein)이다. Steinwein(영:stone wine) Stein 돌+포도주 wine이라는 뜻인데, 154

0년 빈티지의 Steinwein이 남아 있어 유명하다. 이 프랑켄 지방의 와인들은 전통적인 복스

보이텔(Bocksbeutel 원래 ‘염소의 음낭’의 뜻)이라고 하는 독특한 모양의 포도주병 에 담겨

있는데, 포도주병 주둥이가 길쭉하고 아래는 둥글납작한 주머니 모양이라 휴대가 용이하다.

뷔르츠부르크는 와인의 주산지답게 보이는 곳마다 포도밭이 펼쳐져 있는데, 주 재배 포도

품종은 뮬러뚜르가우(Muller-Thurgau)가 46%이며, 실바너(Silvaner) 20%, 바쿠스(Bacchus)

가 11%를 차지한다. 뷔르츠부르크의 3대 와이너리(양조장)인 스타트리히 호프켈러

(Staatlicher Hofkeller www.hofkeller.de/) , 율리우스슈피탈(www.juliusspital.de/),

뷔르거슈피탈 (Burgerspital www.buergerspital.de/wineestate/) 와이너리(양조장)이 유명한데,

이중 스타트리히 호프켈러 와이너리는 독일에서 두 번째 규모이며 프랑켄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중세 도시 로텐부르크(Rothenburg)

  홈페이지 : Rothenburg ob der Tauber (www.rothenburg.de

  로텐 부르크 관광: 로텐부르크 관광청 (www.rothenburg.de/index.php?get=121 )

  위키 백과 링크: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

중세의 성곽 도시 로텐부르크 성곽 출입구와 감시탑
로텐부르크의 photo point(포토 포인트)

 

독일에는 로텐부르크라는 도시가 몇 개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로텐부르크 옵데어 타우버

(Rothenburg ob der Tauber)로 ‘타우버강 위의 로텐부르크’라는 뜻이다. 14세기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 중세의 보석’ ‘동화 속의 중세’ 라는 수식어가 붙은 성곽 도시 로텐부르크는

'로만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로텐부르크에서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된 탓에 문고리 하나가 부서져도 옛날 모양과 문양이 같은 것을 달아야 한다. 이 도시

의 사람들은 이런 제약과 건축 구조 변경 제한 등의 불편함이 있지만, 오히려 자랑스럽게 옛

풍습을 즐기며 산다.

 

사시사철 영업하는 크리스마스용품 가게
눈뭉치 과자(Schneeballen 슈니발렌)와 크기가 큰 빵

 

로텐부르크는 ‘부르크’라는 이름대로 성곽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서문 밖으로 나가 타우버

강과 Doppel 다리(Doppelbrucke)에서 보면 언덕 위로 도시가 솟아나 있는 느낌이다. 눈뭉치

모양의 달달한 슈니발렌(Schneeballen 영:snowball)을 맛보며 마을을 돌다 보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인 트리, 회전목마, 목각 인형, 도자기 등 아기자기한 수공예품 가게와 와인 가게, 빵

가게, 옷가게 등을 만날 수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일본 여행객을 볼 수 있지만 특히

이곳에서는 일본 여자들의 ‘가와이(かわい い 사랑스러운, 귀여운)’이란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으며, 로텐부르크 성곽 복원 공사 기부자 명단에서도 많은 일본인 이름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당일치기로 이 도시를 둘러보고 지나가겠지만, 로텐부르크를 온전히

느끼기엔 하루 일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계속)

 

 

 

남부 독일-돌아보기 (3)-뮌헨,아우크스부르크,울름,뉘른베르크 

주요 단어: 뮌헨,뮌헨왕궁,뮌헨미술관 피나코테크,옥토버페스트,독일맥주,맥주순수령,

              아우크스부르크,종교전쟁,베스트팔렌조약,울름,도나우강,뉘른베르크,전범재판

여행시기: 2015년 02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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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독일 바이에른 주의 州都(주도) 뮌헨(독:München, 영어:Munich) 

               홈페이지: 뮌헨 시정부 www.muenchen.de/  참조: 브리태니커-뮌헨

독일 축구 분데스리가의 명문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듯이 뮌헨은 바이에른 주도(州都)로 독일에서

베를린과 함부르크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로 알프스 산맥 가장자리에서 이자르 강(이자르 [Isar River])

을 끼고 있다. 이자르 강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바로 북동쪽의 카르벤델 산악지대에서 발원하는데, 독일 

바이에른 평야를 흘러 뮌헨을 지나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레겐스부르크에서 오는 도나우 강에 합류된다. 

 

뮌헨의 상징 프라우엔 교회와 신시청사, 마리엔 광장

                   사진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00&contents_id=6078

 

1157년 바이에른의 공작 獅子公(사자공) 하인리히(하인리히 사자공[獅子公])가 뮌헨을 세웠고,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1세가 1825~48년 현대적인 뮌헨을 건설했다. 뮌헨은 8세기 베네딕투스 수도회를 기원으로 

하는 도시인데, 독일어 Mönch(‘수도사’)에서 도시 이름이 비롯되었으며 이 도시 문장(紋章)도 수도사이다. 

 

뮌헨 문장(紋章)

 

19세기에 음악·오페라 도시로서 명성을 떨치며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역사적 건축물로는 프라우엔 

교회, 옛 시청, 페터 교회, 미카엘 교회 등이 있다. 이곳은 금융 중심지이자 과일·야채·육류제품의 유럽 최대 

도매 시장이며, 맥주·식품·화장품·의류·정밀기기·출판·인쇄 등이 주요산업이다.  출처: 브리태니커:뮌헨

 

독일 맥주  내용 참조: 두산백과-맥주순수령 [German Beer Purity Law, 麥酒純粹令]

맥주의 나라 독일은 세계 1위의 맥주 소비국일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생산되는 맥주 종류만도 4,000 종이 

넘는다 한다. 바이에른 공작 빌헤름 4세의 ‘맥주는 보리와 호프, 물만으로 만들어야한다’는 ‘맥주순수령’을

지금도 따르는데 실제 맥주 양조과정에 있어서는 효모가 추가된다.

 

맥주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침전물의 위치에 따라서, 크게 상면(上面)발효와 하면( 下面)발효로 나눠지고,

또, 다시 알코올 함량이나 양조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나눠진다. 상면발효 맥주는 전통적인 

맥주 양조 방법으로써, 맥아즙과 효모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이 맥주통 위에 내려앉는 맥주를 

말하고, 그 종류에는 알트비어와 바이첸 비어 들이 있다. 하면발효 맥주는 맥아즙과 효모를 발효하는 과정

에서 생긴 침전물이 맥주통 아래 가라앉는 맥주를 말한다. 이처럼 맥주의 가공을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는데

그 종류에는 세계적 으로 유명한 라거, 메르첸비어, 보크 등이 있다.  내용 출처: 위키백과-독일의 맥주

 

19세기 중반 독일의 양조사 요셉그롤(Josef Groll)이 체코 필센의 양조장에서 하면발효 맥주를 만들었다.

황금색의 맥주는 하면발효 방식의 맥주이다. 내용 출처: 독일맥주투어추천 / 독일맥주종류추천

 

어둡고 탁한 빛의 흑맥주(黑麥酒) 슈바르츠 비어(Schwarzbier) 두산백과:슈바르츠비어

슈바르츠비어 (Schwarz 는 ‘검다’는 뜻)는 독일에서 생산되는 라거 타입의 흑맥주로 검은색 맥아 또는 볶은

맥아를 사용해서 검은색을 띠는 게 특징이다. 1500년대부터 튀링겐 주(Thüringen)와 작센주(Sachsen)에서

양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알코올 함량은 4.1% 에서 5% 정도로 가볍게 마시기 좋은 맥주이다.

 

뮌헨의 유명 맥주집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홈페이지 링크: Hofbrauhaus Freising: Altersabfrage                   

호프브로이하우스 직원(깃털달린 모자 쓴 사람)이 손님들과 담소중이다

 

독일 뮌헨에 있는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바이에른 왕실의 지정 양조장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집 중의 하나이다. 갖가지 맛있는 맥주와 화덕에 구운 피자, 치킨, 독일식 소시지 등도 먹을 만

하지만, 무엇보다 깃털 모자 쓴 중년의 술집 종업원이 손님사이에 섞여 앉아 일상 세상사에 관해 담소를 

하며 수다를 푸는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뮌헨 맥주잔의 단위는 ‘마스’로 1 리터들이의 커다란 맥주잔인데, 

마실 때는 잔을 높이 들 어 “Prost 프로스트=건배)!”라고 크게 소리친다.

 

세계 최고의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 Fest)

                            홈페이지: 옥토버페스트(www.oktoberfest.de)

 

독일 뮌헨에서는 매년 9월 마지막 2 주부터 10월 초까지 3주 동안 세계 최고의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

(Oktober Fest)가 열린다. 1810년 10월 12일 이곳 바이얀 지방의 군주 루트비히 1세(Ludwig I)가 북독일

Sachsen(작센)지방의 공주 테레지아(Theresia)와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시작된 축제이다. 이 축제에 참가해 

보는 것이 맥주 애호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소위 죽기 전에 경험해 봐야 하는 것(wish list) 중의 하나이다. 

 

 

뮌헨의 문화와 예술을 주도해 온 뮌헨 레지덴츠 왕궁 (München Residenz)

벽과 천정이 절묘하게 연결된 레지덴츠 의 안티콰리움

 

뷔텔스바흐 왕가의 궁전이던 뮌헨 레지덴츠 왕궁(München Residenz)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6세기 때 조성된 르네상스식의 안티콰리움(Antiquarium)은 궁전 내에서 가장 오래된 홀인데, 기둥엔 

알프레히트5세가 수집한 그리스‧로마풍의 흉상이 도열하고 있고,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벽이 천정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뮌헨 왕궁의 왕실 극장의 화려한 내부

 뮌헨(München) 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pinakothek.de/

뮌헨의 대표 미술관은 크게 3군데로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는 19세기 이전 작품이 있고, 19

세기 이후 작품들은 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에, 현대미술과 디자인 작품은 모던 피나코테크

(Pinakothek der Moderne)에는 전시하고 있다. 

 

14세기~18세기 유럽 회화를 전시하고 있는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는 세계 각국의 미술 작품

7,000점을 수집 , 전시하고 있는 데 각각의 전시실이 나라별, 시대별, 유파별로 잘 분류돼 있다.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뒤러의 독일 전시실을 비롯, 다빈치, 라파엘로의 이탈리아 전시실, 렘브란트의 작품이 

있는 네덜란드 전시실 등이 있어  그야말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신성 로마제국의 상징-쌍두 독수리


고흐의 ‘해바라기’- 뮌헨 미술관

피카소의 ‘앉아있는 여인’

 

길 건너의 ‘노이에(Neue) 피나코테크’는 19세기의 회화,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많다. 또한, 2001년에 문을 연 ‘모던 피나코테크’는 현대 예술, 건축, 디자인, 그래픽의 4개 

부문의 작품들을 전시 중인데 유럽 최대의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 세 미술관을 둘러보면

유럽의 중세, 근대, 현대 미술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역대 바이에른 왕들이 수집한 미술품들과 

나치 시대 때 수집한(?) 미술품들 덕분에 오늘날 뮌헨 미술관이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나치 관련을 일부 의심하는 것은 2013년에 '뮌헨의 아파트 사건'혹은 '구글리트 컬렉션‘으로 알려진 

나치 약탈 미술품의 대규모 발견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일반인 대상 강의나 체험 프로그램 진행하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우리네 

같으면 조금만 설명이 길어지면 ‘간단히 빨리빨리 합시다’라는 불평이 나올 법한 긴 강의 시간(수 십분)임에

도 불구하고, 강사가 설명하는 내용에 청중들은 끝까지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열정적 수강 

태도는 청소년에게서도 볼 수 있었는데, 강사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어가며 집중하며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일요일에는 각 미술관의 입장료가 1유로다. 수많은 거장들의 위대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데  단돈 1유로라니 미술관의 문턱을 아예 없앤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문화 예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오페라하우스에 마련된 강의나 체험 프로그램 등의 문화 체험 정책들이 이들을 문화 

강대국으로 만든 비결일 것이다.

 

'로만틱 가도'의 중심이자 종교 개혁의 중심이었던 아우구스부르크(Augusburg)

독일어 홈페이지:http://www.augsburg.de 브리태니커: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까지 장장 350Km의 '로만틱가도' 즉 '로마로 가는 길'은 독일 중부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 중심에 있는 아우구스부르크는 고대 로마 시대에 건설된 유서 깊은 고도(古都)이다.

이 도시는1276년 자유 제국 도시가 되었고, 1331년 슈바벤 동맹과 연합했다. 15,16세기엔 유럽의 금융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예술과 과학도 부흥시켰다. 이 도시는 30년 전쟁(1618~48)중 쇠퇴하여,

1806년 바이에른에 복속됐다.

 

이 도시는 종교개혁과 루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톨릭 신부였던 루터는 신학적, 교리적인 문제점(95개조

의 반박문)을 발표하고 면죄부 판매를 공격(1517)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기반을 흔들었다. 이단자라는 낙인

이 찍힌 루터는 파문의 위협을 받다가, 그 후 공개적으로 교황의 교서를 불사르자 1521년 파문당하였다. 

그는 종교 개혁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1546년 63세의 나이로 고향 아이슬레벤에서눈을 감았다.

 

그러나 신앙적 갈등은 정치적 상황의 전개와 얽히게 되었고.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는 구교(로마가톨릭)

와 신교(루터파)로 나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도모하기 위하여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제국회의를 소집하

였다. 이때 종교개혁을 일으킨 신교는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내용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공표

하였다. 

 

아우크스부르크 화의(和議) (Augsburger Religionsfrieden)  

          참조: 아우크 스부르크 화의 [Peace of Augsburg]-위키백과-

1531년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은 황제 칙령의 시행을 막으려고 슈말칼덴동맹(Schmalkaldischer Bund)을

체결했다. 1546년 신성로마 황제 카를5세는 슈말칼덴 동맹을 맺은 개신교 영주들을 공격하였는데, 

처음엔 작센공 모리쯔의 도움으로 승리하였지만 모리쯔의 반란으로 오히려 카를5세는 폐위되고, 결국 

1555년 개신교를 인정하는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맺게 되었다. 그 결과 독일 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존을 인정하게 되었다. 즉,  한 행정 구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종교가 루터교인가, 가톨릭인가에 따라

그 지역의 종교가 결정되는 지역별 종교의 자유(cuius regio, eius religio)의 원칙이 체결되었다.

 

독일에서 아우구스부르크 화의가 맺어지고 평화가 왔지만,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전쟁(1562-98)이  
일어났다. 이 역시 개신교 칼빈波와 가톨릭의 싸움이었으며 결국 독일처럼 둘 사이의 공존을 허용한
낭뜨칙령 (1598)이 발표됨으로 끝나게 되었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협정은 루터교 외의 다른 종파에는 해당이 되지 않았는데, 완전한 신교에 대한 

인정은 30년 전쟁 (1618-48)이 끝나고 웨스트팔리아 평화 협정에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30년 전쟁(1618 -1648)과  베스트팔렌조약(=웨스트팔리아 조약)  

       참고링크1: 종교개혁시대의 유럽 각국의 변화 /

       참고링크2: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falen]-브리태니커

 

30년 전쟁(1618-1648)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따르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따르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이며, 1648년 30년 전쟁이 종결되고 독일 베스트팔렌 주의 뮌스터와 오스나브뤽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교전국이 많아 여러 나라의 대표자가 참석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이것을 

'세계 최초의 국제조약'이라 부르고 있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주요 내용을 보면 영토에 관한 조항은 스웨덴·프랑스 및 이들의 동맹세력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프랑스는 알자스, 메츠, 투울 지역 등 라인강 서쪽의 변경지역을 손에 넣었고, 스웨덴은 발트해를
장악하게 되었으며 서 폼메른(Pommern), 엘베 강과 베저강 사이의 땅을 각각 획득했다. 또한 네덜란드와
스위스 연방을 독립된 공화국으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독일 제국을 구성하고 있던 연방국가의 완전한
주권과 독립이 인정되었고 이들에게 신구교의 문제는 단지 영주의 선택사항이 됐다. 그리고 칼뱅파에게도
루터파와 가톨릭에 부여된 것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 줬다. 그 결과 제국 내의 3대 종교공동체, 즉 가톨릭
과 루터교 및 칼뱅 교회가 용인되기에 이르렀다.

 

도나우(Donau)江  내용 출처: 위키백과 도나우강 [Danube]  

                                            두산백과 : 도나우강 [Donau R., ─江]  

독일에서 발원하여 흑해 로 흘러드는 도나우강

                                                             그림출처: 두산백과-도나우강 [Donau R., ─江]

 

유럽의 江 중 유일하게 西에서 東으로 흐르는 도나우(Donau)江은 길이 2850KM로 볼가江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긴 江이다. 이 강은 독일의 슈바르츠발트(흑림 黑林)의 삼림 지대에서 시작하여 黑海(Black Sea)로

흘러 들어간다. 독일, 루마니아, 몰도바, 불가리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헝가리 등 10개국을 지나며 그 支流까지 포함하면 7개국이 더 추가된다. 다뉴브강 연안의 주요 도시로는 울름

(독일), 빈(비엔나. 오스트리아),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 부다페스트(헝가리), 베오그라드(세르비아) 등이

있다. 독일의 라인江 -마인江-도나우江 운하가 1992년 건설된 이후 도나우강은 北海의 로테르담에서 黑海의

술리나까지 전 유럽을 가로지르는 3500KM 水路의 일부가 되었다. 

 

도나우(Donau 독일어) 江은 국가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데 라틴어 두나비우스(Dunavius)에서 유래한다. 

영어로 다뉴브(Danube), 체코어로 두나이(Dunaj), 헝가리어로는 두나(Duna), 세르비아어·불가리아로는 

두나브(Dunav), 루마니아어로는 두너레아(Dunărea)로 불린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江(An der schonen blauen Donau)'과 루마니아의 군악대장 이바노비치의

작곡'도나우강의 잔 물결(Donau Wellen Walzer)'에서 말하는 강이다.

 

Ulm 울름  참조 링크: 울름 [Ulm]

도나우강의 중요한 교역로 중심에 있어 중세 시대에 크게 번성했던 울름(Ulm)은 오늘날 독일 바이에른洲  

서쪽 바덴뷔르템베르크洲에 있는 도시이다. 울름은 1530년 개신교를 받아들이고 1531년 슈말칼덴 동맹에 

속하였지만 30년 전쟁(1618-1648) 이후 쇠퇴했다. 1803년 바이에른에 귀속되었다가 1810년 뷔르템베르크

에 예속되었다. 20세기 중반에는 공업과 상업이 발전하여 이 지역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중세시대의 성벽·문·분수대는 상당수 남아 있다.

 

울름 대성당(Ulmer Münster)     위키백과: 울름 대성당

울름 대성당(울름교회) 의 내부
신 앙심이 새겨진 울름 대성당 성가대석
하늘로 향하는 신앙심을 표현하는 울름 대성당 첨탑

1377년에 세워져 1890년에 복구·완성된 울름성당은 원래 고딕 양식의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현재는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하늘로 향하는 신앙심을 표현하는 이 성당의 첨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딕 첨탑이

라고 한다(161m).

 

전범(戰犯재판이 열렸던 뉘른베르크(Nürnberg)

   참조 브리태니커: 뉘른베르크 [Nuremberg] / 위키백과: 뉘른베르크 재판 - 위키백과

나치 전당대회가 열렸던 장소(현재 박물관):패널 촬영

 

뉘른베르크의 명물: Brautwurst(소시지)를 끼운 빵

 

'붉은 바위가 있는 언덕'이라는 뜻인 뉘른베르크(Nürnberg)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산업의 중심지로, 유럽 최대의 크리스마스 마켓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열렸던 곳이다.  

나치 전당 대회가 열린 곳은 뉘른베르크 시 외곽에 있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유료).

 

독일은 지역마다 고유의 맥주와 소시지가 있어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뉘른베르크의 명물 bratwurst(돼지

고기로 만든  순대 모양의 구운 소시지)는 맥주와 먹어야 제 맛이다.

프라우엔 교회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패널 촬영

 

프라우엔키르헤(성모마리아 교회)옆 광장에선 매해 겨울, 유럽 최대의 크리스마스 마켓(장터)이 열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라도 뉘른베르크 시내엔 아이들 장남감이나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가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계속)

 

 

남부독일 돌아보기(2)-린더호프城,헤렌킴제城,비스교회,에탈 수도원,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추크슈피체 산

 

여행시기: 2015년 02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독일 가곡 - 보리수- 슈베르트곡 by 피셔 디스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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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화려한 린더호프 城(Linderhof Schloss)  위키피디아: Linderhof Palace 

비운의 왕 루트비히 2세가 지은 성으로는 ‘백조의 城(노이슈반슈타인城)’ 외에도 ‘린더호프城’과  ‘헤렌킴제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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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호프 성의 화려한 거울의 방-사진출처 http://lykee.blog.me/90131994372
린더호프성의 가을 -사진출처: 패널 촬영

알펜가도에 있는 작은 마을 오버암머가우(Oberammergau)를 지나 린더호프성을 찾았다. 오버암머가우는 10년마다 공연되는 '예수 수난극' 마을로 유명하다. 린더호프성은 1874년 바이에른(Bayern) 왕국의 루트비히 2세가 베르사이유 궁을 본떠 만든 성으로 루트비히 2세가 생전에 완성한(1878년) 유일한 성이다. 로코코 양식의 장식과 상아로 만든 샹들리에가 있는 거울의 방은 화려하기가 그지없다. 성 주변에 조성된 넓은 정원과 인공폭포, 황금 조각상이 있는 분수와 바그너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 만든 비너스의 동굴 등 볼거리가 많다. 성 내부는 가이드 투어(독일어 또는 영어)이지만, 국내 유명 여행사인 H여행사에서 만들어 비치해둔 한글 안내서가 있으므로 창구에서 미리 신청하면 이를 얻어 볼 수 있다.

 

헤렌킴제 城(Herrenchiemsee Schloss) 위키피디아: Herrenchiemsee

루트비히2세가 지은 3개의 성 중 헤렌킴제성은 호수가운데 있는 섬에 지어진 성이라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눈이 오고 바람 부는 겨울에는 섬으로 가는 배가 결항되는 수가 많은 데 우리가 갔을 때에도 결항하였다. 

 

Wieskirche 비스교회      홈피:Wieskirche honlapja                                                                      위키피디아: http://hu.wikipedia.org/wiki/Wieskirche

     

비스교회. 사진출처:홈페이지- Wieskirche honlapja
비스교회의 겨울 풍경

퓌센에서 퓌센 북동쪽 28km 떨어진 슈타인가덴의 비스 순례교회(Pilgrimage  Church ofWies)에 들렀

다.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교회는 18세기 중엽 ‘채찍을 맞은 예수의 조각상’에서 피눈물 

이 흐르는 기적이 발견된 데서 시작되었다. 아늑한 시골 교회인 비스교회는 겉보기의 소박한 모습과 

달리 내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매우 화려하며 순례자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갔을 때는 눈이 

내린 다음 이라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명상에 잠긴 교회의 모습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청결해

지는 듯하였다.

    

  

에탈 수도원(Kloster Ettal)   독일어 홈페이지: http://www.kloster-ettal.de/

 

 

알프스 계곡에 자리한 에탈 수도원
에탈 수도원에서 만든 에탈 베네딕틴 바이스비어(Ettaler Benediktin Weissbier)

 

알프스 산자락 해발 900m 암버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에탈(Ettal)은 ‘맹세의 계곡’ ‘약속의 계

곡’의 별명이 있는 곳인데, 바이에른의 황제 루트비히 4세(1282~1347)가 성모 마리아께 이곳

에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맹세한데서 기원하였다 한다. 이 에탈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원으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 하며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흰 대리석과 금도금 장식이 밝고 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에탈 수도원 성당 내부와 천정

 

1330년에 착공 40 여 년 만에 완공된 에탈 수도원 성당은 1744년 화재로 전소됐다가, 고딕과 바

로크 혼합  양식으로 1762년 재건축됐다. 1769년에 제작된 이 성당의 돔(천장)의 프레스코 화에

는 성 베네딕트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여 수도자 430여 명과 기독교 성인들이 삼위일체 하느님

을 찬미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수도원은 15세기부터 성모 순례지로 명성이 났는데, 해마다 200여만 명의 순례객들이 찾는

다 한다. 수도원 내부에는 학교, 양조장, 게스트하우스 등이 갖춰져 있고, 단체 가이드 투어(유료)

인 경우 성당 안내뿐 만 아니라 수도원에서 생산된 맥주도 맛볼 수 있다.

 

칸다하르 렌넨(kandahar rennen=alpinen skisport)의 고장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벽화 마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자동차 길 바로 옆에서 크로스컨트리를 즐기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 추크슈피체의 거점 마을인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Garmisch-Partenkirchen)에

가야 한다. 이 마을은 뮌헨에서 남서쪽 약 100km 떨어진 곳으로 1936년 제4회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인데,

올림픽개최를 위해 가르미슈와 파르텐키르헨 두 마을이 합쳐졌다. 크지 않은 마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은

벽화가 마을 곳곳에 그려져 있어 동화 속 풍경처럼 느껴졌다.

 

자동차 길 바로 옆 눈이 쌓인 설원에서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시골 길가까지도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알프스의 산자락이 알파인 스키의 발상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

이다.  

 

kandahar rennen(칸다하르 렌넨=alpinen skisport)의 rennen 은 독일어로  ‘빨리 걷기, 달리기’의 뜻으로 

알파인 스키를 뜻한다. 1928년에 시작된 아를베르크-칸다하르 대회는 가장 오래된 알파인 스키국제 경기로

스위스의 뮈렌, 오스트리아의 장크트안톤, 프랑스의 샤모니, 이탈리아의 세스트리 에레, 독일의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등에서 번갈아 열린다.

 

1930년에 스키 종목의 세계 관리단체인 국제 스키 연맹에서 처음으로 활강 경기를 인정했고, 1936년에

올림픽대회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동계 올림픽(1936)때 사용된 광고
 

겨울 스포츠의 천국-추크슈피체
 

알파인스키 kandahar rennen 광고

 

알파인 스키 브리태니커 링크: Arlberg-Kandahar-Rennen ? Wikipedia 위키백과: 알파인 스키

알파인(Alpine)은 '알프스의‘ 란 의미로 독일어 알펜(Alpen), 프랑스어 알프(Alps), 이탈리아어로

알피(Alpi)라고 한다. 산을 뜻하는 켈트어 alb, alp 또는 백색을 뜻하는 라틴어 alba가 어원인데

'희고 높은 산‘의 뜻이다. 

 

알파인 스키는 뒤꿈치가 고정된 바인딩을 사용한 스키를 타고 눈 덮인 슬로프를 내려오는 스포츠로 

활강과 꽂아 놓은 깃발 사이를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회전으로 승부를 겨룬다. 공식 알파인 스키 경기

에는 회전, 대회전, 슈퍼 대회전, 활강의 4가지 부문이 있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 추크슈피체(Zugspitze 2,962m)  

추크슈피체 산 정상에 올라가는 방법은 산악 철도와 케이블카(rope way)가 있다.

 

추크슈피체 산 정상에 올라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정상까지

악 열차(톱니바퀴 열차)를 타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산 중간지점 아이브제(Eibsee 아이브 호수)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이다.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Eibsee까지 한 시간정도 걸리며, Eibsee에서 케이블카로 정상으로 올라가는 데는 10 분 정도 걸린다.

고소 공포증이 있다면 시간은 더 걸리지만 열차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참고) 산악 열차 할인문의:  http://bayern.co.kr/

 

우리는 자동차가 있었기에 아이브제(Eibsee 아이브 호수)까지 자동차로 간 다음,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다. 겨울은 우기(雨期)라 비나 눈이 많고, 바람이 많이 불면 케이블카운행이 금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간 날은 날씨가 좋고 바람이 적어 케이블카가 운행되었다.  

 

추크슈피체 산 정상(황금십자가)과 알프스 연봉들

추크슈피체 산 정상 바로 아래 펼쳐진 설원과 스키장

 

추크슈피체 산이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이긴 하지만,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와 맞닿은 주위에는

이 산보다 더 높은 산들이 즐비하다. 추크슈피체 산의 정상에 도착하니 파란 하늘아래에 드러난 Alps가

‘흰 색의 산’이란 말 그대로 흰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산 정상 바로 아래쪽에 스키장이 있어,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답게 개미처럼 보이는 수많은 스키어들

설원을 질주하고 있었다. 추크슈피체 산 정상에는 온도와 풍속(風速) 등 날씨가 자동으로 표시되는

안내판이 있었고, 바람이 세게 불 때는 자동으로 경보가 울렸다. 겨울 날씨인데다 높은 산에 휘몰아치는

찬바람이 얼굴을 때려 바깥에 오래 있기가 힘들었다.

 

(계속)

 

남부 독일-돌아보기 (1) -슈타인 암 라인,라인폭포,상트 갈렌,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여행시기: 2015년 02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차이콥스키-백조의 호수 모음곡 작품번호 20a - 1번. 정경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KM35-1AHkoM<=요걸 클릭

지난 2월 구정(설)을 앞두고 남부 독일을 자동차로 둘러보았다. 한국에서 남부 독일을 여행하려면 뮌헨 공항이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구정 대목이라 비행기 표가 잘 없었다. 우리들의 일정과 잘 맞고 가격도 적당한 표를 찾다보니 스위스 취리히 왕복편이 있어 취리히로 들어갔다. 대한항공의 취리히行은 오스트리아 빈(wien)에 내렸다가(transit 약 2시간 반 경유) 취리히로 가는 것이었는데, 귀국 편은 빈 경유를 않고 취리히에서 인천으로 직행하였다.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자료 정리를 위해 이번 여행 지역 관련 명소나 관련 지식을 인터넷으로 모은 내용이며, 필요시 직접 찍은 사진과 간략한 소감을 덧붙였다.

슈타인 암 라인(Stein am Rhein 라인강의 돌=보석) 영어 백과: Stein am Rhein

 

 
라인강의 보석(Stein am Rhein)의 시청사 건물

 

나무 가지에 핀 눈꽃 (취리히 부근)

Zurich(취리히) 북쪽 보덴호(湖) 부근 라인강 상류의 마을 슈타인 암 라인(Stein am Rhein 라인강의 보석)은 작고 깔끔한  도시이다. 크기가 작은 마을인데 중심지인 시청사 광장에 있는 건물 외벽은 벽화로 장식되어 동화 마을에 온 듯했다. 벽 화 중 오래된 것은 1520년에 그려진 것도 있었고, 자갈 박힌 조용한 마을길에 마차가 달그락 거리며 지나가면 중세 도시 의 느낌이 들었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큰 폭포 라인폭포(Rhein Fall)

라인 폭포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폭포
 
눈에 덮인 스위스의 가옥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 퓌센 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라인 폭포와 상트 갈렌에 들렀다. 스위스 라인 폭포는 독일과 가까운 스위스 국경도시 샤프하우젠(Schaffhausen)에 있는 라인강 상류에 있는 폭포이다. 라인 폭포는 라인강의 유일한 폭포이며 중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규모의 폭포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 퓌센 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라인 폭포와 상트 갈렌에 들렀다. 스위스 라인 폭포는 독일과 가까운 스위스 국경도시 샤프하우젠(Schaffhausen)에 있는 라인강 상류에 있는 폭포이다. 라인 폭포는 라인강의 유일한 폭포이며 중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규모의 폭포이다.

 

알프스에서 북해로 흐르는 라인강(Rhein) 출처: 두산백과 링크: 라인강 [Rhein R., ─江]

(Rhein) 강의 수계(水系)와 라인 폭포 -

                              (Rhein) 강의 수계(水系) -그림 출처 두산백과: 라인강 [Rhein R., ─江]-

영어로는 Rhine, 네덜란드어로는 Rijn, 프랑스어로는 Rhin, 독일어로는 Rhein으로 쓴다. 강의 길이가 약 1,320km로 스위스의 알프스 산지에서 발원하여 보덴호로 흘러든 다음, 스위스 바젤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독일(서쪽,북쪽), 네덜란드를 지나 북해로 흘러든다.  본류(本流)는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여러 나라를 거치며, 운하에 의해서 지중해, 흑해, 발트해 등과 연결된다. 그 중 독일을 흐르는 부분이 가장 길어 라인강(Rhein)을 대표적 이름으로 쓰고 있다.

 

유서 깊은 역사 도시 상트 갈렌(St. Gallen) 

   관련 링크1 : 상트 갈렌 - 스위스정부관광청

   관련 링크2 : 상트 갈렌(St.Gallen) 수도원 구역 - 스위스정부관광청

스위스 북동부의 알프스 산맥 입구 독일 국경 근처에 있는 상트 갈렌은 취리히에서 차로 1 시간 거리(85km)에 있는 역사 깊은 도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이 있다. 씨레나포티크(Seelenapotheke 그리스어:'ΨΥΧΗΣ ΙΑΤΡΕΙΟΝ 영혼을 치유하는 곳') 라 불리는 상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Stiftsbezirk St. Gallen 링크:Stiftsbibliothek St. Gallen ? Wikipedia)은 1758~1767년 피터 춤에 의해 건축된 로코코 스타일의 건물이다.

 

상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의 천장

도서관 바닥은 물론 책장과 선반 등이 목제로 되어 있고, 바닥 보호를 위해 덧신을 신어야 했다. 천정, 벽면은 석회(STUCCO)로 마감되었는데 특히 천정화가 유명하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상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은 생각보다 규모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으나 , 다른 유적지에 비해 입장료가 비싼 편이었다.

참고로 이 도서관은 스위스 패스 소지자는 입장료가 무료이며, 11월 하순~12 월 중순 3주간 휴무한다

.

악보 표기법 이전의 오래된 성가 악보

상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에는 8세기에서 15세기까지의 문서 등을 포함하여 13만권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는데, 2,700년 된 이집트 의 미라 쉐피니스(Shepenese)와 830년에 제작된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성경 필사본, 베네딕트 수도회 규칙, 그레고리안 성가 악보, 궁정 서사시(敍事詩), 중세 아일랜드어 원고, 가장 오래된 독일어 도서 등 귀중한 문서들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이라 도서(책)들은 양피지(羊皮紙)에 쓰인 필사본이 대부분이었는데,  손으로 정성스레 쓰인 필사본에는 수도사들의 땀 냄새가 느껴지는 듯하였다.

 

당시 일반 사람들은 글자를 잘 몰랐겠지만 성직자들이나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글자(라틴어나, 희랍어(그리스어)를 알았을 것이며 이들이 성경이나 여러 정보(지식)들을 전파하였을 것이다. 수도사들은 왕이나 왕자, 제후들을 교육하는 ‘선생님’이었으며, 수도원은 오늘날의 ‘학교’ 역할을 하였다. 수도원은 정보가 모이고 전달되고 창출되는 곳이었고 학예, 문화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실험과학을 지지한 중세의 대표적 인물인 베이컨(Roger Bacon)이 수도사였고, 멘델의 유전 법칙을 발견한 멘델도 수도사였다.  참고 링크: 그리스도교 (17) 수도원 운동(2) 탁발수도사, 도미닉수도원, 프란체스코...

 

상트 갈렌의 독특한 모양의 창문 퇴창( 退窓 )
 

상트 갈렌(St.Gallen)에서는 수도원 도서관과 바로크식 대성당도 보아야 하지만, 독특한 모양의 창문인 퇴창(退窓-벽 밖으로 쑥 튀어 나오게 만든 창문)을 봐야 한다. 이 도시에서는 1650년에서 1720년 사이에 퇴창 만 들기 붐이 있었다. 낙타 퇴창, 펠리컨 퇴창, 백조 퇴창 등 총 111개의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퇴창(退窓)이 보존되고 있다.

 

바이에른(Bayern) 주 돌아다니기

바이에른주 공식 홈페이지: http://bayern.co.kr/ = http://www.bayern.kr/ 위키백과: 바이에른 주

&amp;amp;amp;amp;amp;amp;amp;amp;amp;nbsp; 독일 행정 구역과 독일의 남쪽에 있는 Bayern(바이에른)주. 지도 출처:&amp;amp;amp;amp;amp;amp;amp;amp;amp;nbsp; &amp;amp;amp;amp;amp;amp;amp;amp;amp;nbsp;http://www.worldofmaps.net/nc/en/europe/map-germany/political-map-germany.htm?type=200&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filename=typo3temp%2Fimages %2Fdeutschland-politisch.png​

독일 남부 지방을 여행한다는 것은 바이에른 주(州)를 여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남부에 위치한 바이에른 州는 독일 연방 16개 주 중 면적이 최대(독일 면적의 1/5 정도) 이며, 인구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다음으로 많다. 스위스·오스트리아·체코와 국경을 접하는 바이에른 주는 뮌헨이 주도이며, 도나우강 상류가 통과하고 알프스 산맥 쪽으로 독일에서 가장 높은 추크슈피체산이 있다. 바이에른 주 깃발(州旗)은 흰색과 하늘색의 교차 무늬가 있는 데, 독일의 명차 BMW의 로고도 이 바이에른 주의 깃발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었다 한다.     

 

바이에른의 역사 한국어 위키백과: 바이에른 주 [Bavaria] , 브리태니커: 바이에른 [Bayern]

기원전에 게르만족 부족 바바리족(Bavarii)이 들어와서 지명의 기원이 되었는데 788년 프랑크 왕국에 점령되었고 1180년 비텔스바흐 왕조가 시작되었다. 1255년부터는 각 제후들이 할거하다가, 1505년에 재통일되어 選諸侯國(선제후국)이 되었다. 이후 바이에른은 종교개혁에 반대하고, 반종교개혁 운동의 선봉에 서서 가톨릭 세력이 강하게 남게 되었다. 1618년 30년 전쟁 때 막시밀리안 1세는 합스부르크 편에 서서 싸워 영토를 넓히고 1623년 그는 선제후(選諸侯)가 되었다.

 

참고: 選諸侯(선제후 독:Kurfurst 영:Elector)는 중세 신성로마 황제(대독일제국왕) 선출에 참여할 권리를 지닌 신성로마제국의 일곱 제후들을 말한다. 13세기 중기부터 황제의 선거권은 교회 제후 3인(마인츠, 쾰른, 트리어 3대 대주교)과 세속 제후 4인(라인궁중백, 작센공,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보헤미아왕)에 한정되어 왔다. 1356년에 신성로마 황제 카를 4세(재위 1347-1378)는 뉘른베르크 및 메츠의 제국의회에서 발포한 제국법인 금인칙서(金印勅書 Golden Bull)를 통해 교황이 독일 정치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막고 다수결의 원리에 입각한 선제후( 選諸侯) 제도를 확립했다.

이후 바이에른은 18세기에 오스트리아·스페인의 왕위계승 전쟁에 휘말리는 수모를 받다가 1777년 팔츠의 카를 테오도어가 바이에른의 군주가 되면서 팔츠와 바이에른은 통합되었다. 18세기~19세기 초 여러 전쟁에 휘말렸는데 프랑스 편에 가담해 영토를 확장했으나,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했다 패배하였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는 프로이센에 가담하여 승리하였다. 1871년 1월에 독일제국에 가맹하였고, 독일제국 아래에서 바이에른 왕국은 다른 구성국에 비해 큰 자치권을 보유하였다.

독일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1918년 11월 7일 군주 루트비히 3세가 퇴위당하면서 공산 주의자 쿠르트 아이스너가 새 공화국을 선포하고 총리로 취임하였으나 1919년 암살되었다. 바이에른은 그 해 8월 바이마르 공화국의 한 주로 편입되어 공산주의 정부는 단명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후 아돌프 히틀러가 이곳을 연고로 활동했고, 1933년 나치스는 독일의 정권을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바이에른은 미국의 점령 하에 놓였고,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라인강 유역의 팔츠 지역은 바이에른에서 떨어져 프랑스 점령 하에 놓였다. 1949년 성립된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을 구성하는 한 州가 되어 현재의 바이에른 州가 되었다.

바바라안 팔라스 티켓 (Bavarian Palace Department Ticket)

         관련 링크 : http://www.schloesser.bayern.de/englisch/palace/index.htm

古城이 많은 바이에른 지방(Schlosser Land는 독일어로 &amp;amp;amp;amp;amp;amp;amp;amp;amp;lsquo;城들 의 땅&amp;amp;amp;amp;amp;amp;amp;amp;amp;rsquo;이란 뜻이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성(城)과 궁전, 박물관을 둘러볼 때는 통합 입장권인 바바리안 팔라스 티켓(참조 링크: (http://www.schloesser.bayern.de/englisch/palace/index.htm)을구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뮌헨의 레지덴츠 궁전, 님펜부르크 궁전, 린더호프성, 노인슈반슈타인성,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궁전, 밤베르크 노이제 레지덴츠 등 바이에른 주의 주요 성(城)과 궁전을 구경할 수 있다. 참고로 독일의 고성(古城) 투어 시에는 시간별로 정해진 가이드 안내로 구경해야 하는데 영어나 독일어로 안내해 준다. 하지만 사람이 덜 찾는 고성이나 비수기에는 영어 가이드 투어가 없는 경우도 있다.

독일의 oo가도(街道 )

로만틱가도, 고성(古城)가도 등 독일의 oo가도(街 道)들

                 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 blogId=eleticia&logNo=70173517437

독일에는 괴테 街道(Goette Strasse), 로만틱 街道 (Romantische Strasse), 환상 街道(Fantastische Strasse), 동화(童話) 街道(메르헨 街道 Marchen Strasse), 고성(古城) 街道(Burgen Strasse), 에리카 街道(Erika Strasse), 알펜 街道(Alpen Strasse) 등 아름다운 길이 유명한데 이들은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 독일 최고의 여행 루트이다.(참고: Strasse는 원래 독일어로 Straße(길,거리 街)인데 표기 편의상 Strasse로 사용함)

관련 링크: http://blog.naver.com/PostView.nhn? blogId=eleticia&logNo=70173517437

독일에는 80여개의 관광가도가 있는데, 그 중 위에서 말한 7개의 도로가 독일 관광국에서 추천하는 자동차 관광루트이다.

그런데 이런 관광가도를 자동차로 가다 보면 속도 제한이 없다고 알려진 아우토반(Autobahn)을 달리게 되는데 실제 아우토반에는 속도 제한이 있는 곳도 있다. 독일의 고속도로(아우토반)에서 다른 차의 속도에 맞춰 달리다 보면 시속 130km은 보통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 160km 이상으로 달리게 된다. 한편 상당히 먼 뒤쪽에 있다고 생각했던 차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추월하면 가슴이 철렁하게 된다. 아주 빠른 속력으로 추월하기(지나가기) 때문에 국내의 고속도로에서의 주행(추월) 감각과는 큰 차이가 있어 주의를 해야 한다.

한편 일반 국도에서도 그렇지만 독일인들은 자동차의 운전 예절을 잘 지킨다. 아우토반에서도 추월차선은 말 그대로 추월할 때만 사용하고 추월이 끝났으면 주행차선으로 복귀한다. 추월 차선을 유지하며 장시간(수 분 이상) 계속 운행하는 차는 볼 수 없다.

우리의 남부 독일 여행 일정은 주로 바이에른 지방을 둘러보는 것.

우리의 남독일 일정은 주로 남부 독일을 돌아보는 것이었는데, 취리히에서 퓌센(Fussen)을 거쳐 알펜가도, 로만틱가도, 고성가도, 환상가도를 거쳐 프랑스의 동쪽 끝 알자스(Alsace) 지방의 꼴마흐(Colmar)를 경유 취리히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

이번 나의 남부 독일 루트

이번 나의 남부 독일 루트: (스)취리히-상트갈렌-(독)퓌센-추 크슈피체山-뮌헨-아우구스부르크-울름-뉘른베르크-밤베르크-바이로이트-뷔르츠부르크-로텐부르크-하이델베르크-슈투트가르트-튀빙겐-Hohenzollern城-프라이부르크-(프)스트라스부르-(프)꼴마흐-(스)바젤-루체른-취리히

스위스의 상트 갈렌에서 알펜가도(Alpenstrasse)를 따라 린다우를 거쳐 퓌센(Fussen)으로 갔다. 퓌센(Fussen)은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된 로만틱가도의 종착지이다.

 

노이슈반슈타인 城(신 백조 석성(新白鳥石城) Neuschwanstein Schloss)

관련 링크: http://www.castle-neuschwanstein.com/en/ 한국어 위키백과 관련 링크: 노이슈반슈타인 성

백조의 성(가을)- 패널 촬영
 
백조의 성(겨울)- 패널 촬영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가 쓰던 호엔슈방가우 성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독일 남부 지방 퓌센(Fussen)을 찾는 것은 ‘백조의 성’을 구경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퓌센(Fussen)의 대표 명승지 노인슈반스타인城(Neuschwanstein Schloss)은 새로운(Neu) 백조(schwan) 石 (stein) 城(Schloss) 즉 ‘신백조석성(新白鳥石城)’이란 뜻이다.(참고: 독일어 Schloß가 城인데 표기 편의상 Schloss로 사용함).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중 백조의 전설 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었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내부에는 ‘백조의 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천정, 벽화뿐만 아니라 의자 등받이, 손잡이, 탁자 받침, 문고리, 기둥 장식 등이 온통 백조 그림이나 문양, 조각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성은 루트비히 2세가 지은 것으로 1892년 완성되었다고 백과사전에 적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죽은 다음 이 성이 완성되었는데, 그의 죽음과 관련하여 슬프면서도 미스터리(Mystery)한 사연이 있다.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는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바그너가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토대로 한 오페라 작품들을 쓰자 루트비히도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루트비히 2세는 1862년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후 그의 아버지가 쓰던 호엔슈방가우 성이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외에도 다른 여러 곳에 건축물을 지었는데, 결국 국고를 낭비하고 수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1886년 루트비히 2세는 의료진으로부터 정신병자 판정을 받게 되었고, 왕위에서 퇴위당한 지 3일 만에 슈타른베르거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그의 사인은 자살로 공식 발표되었으나 실제로는 타살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점이 있다 한다. (내용 출처-한국어 위키백과)

루트비히 2세의 환상적인 꿈이 담긴 이 ‘백조의 성’은 주변 경관 또한 인상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데, 미국 월트디즈니사의 디즈니랜드城은 이 ‘백조의 성’을 본떠 만들었다 한다.

겨울에 본 백조의 성은 주위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차분한 분위기였다. 숲길을 지나는 데 나무에 쌓였던 눈이 후드득 떨어졌다. 동화 속의 한 장면인양 운치 있고 아름다웠다. ‘백조의 성’ 주변은 눈에 덮인 검은 숲(슈바르츠발트 Schwarzwald)이었는데, 성 건너편 언덕에는 눈 덮인 설원에 스키어들이 겨울을 만끽하고 있었다.

 

(계속)

참고: (먼저 게시글) 링크 절(寺刹 사찰)구경하기 4-불상(부처)의 모습,형태 을 클릭하시면 먼저 글로 연결됩니다.

시칠리아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03-타오르미나,고대그리스극장,카타니아,Villa Romana del Casale

여행일자: 2014년 11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불꺼진 창'-벨리니 작곡 >: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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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미나의 그리스 원형 극장에서 바라본 놀라운 풍경

타오르미나 관련 링크: http://www.italyguides.it/us/sicily_italy/taormina/taormina.htm

론리플레닛 링크:    http://www.lonelyplanet.com/italy/sicily/taormina

 

시칠리아 섬 동해안 제2의 도시 카타니아 북동쪽 55km에 타오르미나(Taormina)가 있다. 이 시칠리아 동쪽 끝 이오니아 해변에 있는 타오르미나는 해발 200m 절벽 위에 있는 마을인데, 비록 크지 않은 산 위 마을이지만 크루즈가 기항할 정도로 유럽 사람들에겐 인기 있는 휴양지이다. 괴테는 이곳을 ‘작은 천국’이라 했고 모파상은 ‘타오르미나는 사람의 눈과 정신, 상상력 등 인간의 모든 것을 유혹한다.’라고 말했다 한다. 승용차가 없을 경우에는 아래쪽 마을의 타오르미나 역 광장에서 윗마을(언덕)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거나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잘 만들어진 무대 장치 같은 타오르미나의 고대 원형 극장(Teatro Greco)과 주변 풍경 

 

 

고대 원형 극장의 옛 모습이 그려진 그림 

타오르미나는 그리스 원형 극장(Teatro Greco)을 보기 위해서 갔다. 먼저 보았던 시라쿠사의 원형 극장이 이곳보다 계단 객석의 규모가 더 크고 온전히 남아 있는데 비해, 타오르미나의 원형 극장은 돌 아치와 코린트式 기둥이 일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타오르미나 산언덕에 지어진 그리스 원형 극장에 들어가 객석(계단)에 서니 “와~~!!”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것은 원형 극장과 주위 풍광이 잘 설계된 무대 장치 장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형극장 무대에는 부서지고 남은 아치(arch)와 몇 개 남지 않은 코린트식 기둥이 서 있고, 무대 뒤를 보면 멀리 연기를 뿜는 애트나 화산이 보였다. 에트나 산 정상엔  흰 눈이 쌓여 있고 산 아래쪽에는 나무와 집들이 점점(點點)이 박힌 마을이 보이다가 산자락 끝은 지중해 푸른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이런 풍광 속에서 공연을 보는 소감을 어떨까? 과거 수 천 년 전 이곳에서 공연되었던 것은 아마도 그리스 비극이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여름이면 비극 공연뿐만 아니라 오페라, 음악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한다.

 

타오르미나의 원형극장 계단 꼭대기에 올라 원형 극장 뒤편을 내려다보면 지중해(이오니아 해)의 Naxos Bay (낙소스 만)과 정원석처럼 박힌 예쁜 섬들이 보인다. 눈을 돌려 타오르미나 마을 언덕 꼭대기 위를 올려다보면, 높이 서있는 타우로산(Monte Tauro)에 사나세토 성(Sanaceto Castle)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그야말로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바람과 멋진 경치가 연극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이런 비현실적인 타오르미나의 고대 극장 풍경은 이것에 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광경일 것이다.     

 

 

타오르미나 고대 극장 계단 뒤 언덕 끝에서 내려다보이는 이오니아 해의 낙소스 만(Naxos bay)

지중해 최고 높이의 활화산 에트나 산(Mt. Etna)

UNESCO 관련 링크 : http://whc.unesco.org/en/list/1427

 

유네스코 자연 유산에 등록된 에트나 화산 (Mount Etna)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동부에 있는 활화산이다. 그리스어로 ‘나는 타오른다 Aitne(aithō)’라는 뜻을 가진 에트나(Etna) 화산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으로 현재 고도는 3,329m이지만, 1865년 이 화산의 정상은 20세기말보다 51m나 높았다 한다. 그간 몇 번의 폭발 결과 정상 부분이 날아가 버려 높이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불의 신의 대장간’이라는 별명답게 1669, 1693,  1832년의 분화가 특히 컸으며, 최근에 들어 와서도 1971년부터 10년에 한 번꼴로 불을 뿜었는데 지난 2002년 폭발 시에는 화산재가 북아프리카까지 날아가고 공항과 도로가 폐쇄되었다 한다. 에트나 화산은 요즘도 연기를 내뿜고 있으며, 가장 위험한 화산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에게 관람이 허용된 산이다.   

 

 에트나 화산 분출 장면. 출처:CNN 기상 캐스터 Mari Ramos 트위터 2014년 8월 14일 오전 6시 21분 게재 

타오르미나뿐만 아니라 카타니아에서는 관광 상품(엽서, 열쇠고리, 자석)뿐만 아니라 관광 안내 책자나 홍보 자료에 폭발하는 에트나(Etna) 화산의 폭발 장면을 볼 수 있다.

 

활화산 에트나 산기슭의 도시 카타니아(Catania)

관련 링크 : http://www.italyguides.it/us/sicily_italy/catania/catania.htm

 

시칠리아 섬 동남부 에트나 산 기슭에 있는 카타니아는 지중해(이오니아 해)에 면해 있어 크루즈 여객선이 정박하는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이다. 시칠리아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인, 비잔틴, 아랍인, 노르만인에게 차례로 정복되었으며 시칠리아 왕국의 아라곤 군주, 부르봉 왕가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특히 1943년에는 폭격과 치열한 전투로 시가지가 크게 파괴되었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에서 州都(주도) 팔레르모 다음 가는 제 2의 도시로, 공업·교통 중심지이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교역이 활발한 항구이다. 에트나 화산에서 캐내는 유황과 넓은 카타니아 평야에서 재배되는 오렌지, 레몬, 올리브, 포도 등의 작물이 유명하다.  

 

 

전체 크기 105m x 125 m로 추정되는 로마 원형 극장의 일부: 관람석 계단이 남아 있다

 

활화산인 에트나 산에 가까운 카타니아의 주요 건물들은 화산 폭발과 지진에 의한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었다. 카타니아 로마 원형 극장은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지하에 반쯤 묻혀 있고, 현재 남아 있는 오래된 성당이나 주요 건물은 18세기 이후 지어진 바로크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건축 재료로 주로 화산 응회암을 이용했기 때문에 옛 시가지는 대체로 짙은 회색을 띠고 있다. 카타니아의 두오모 광장 주변에는 로마 극장 유적 외 아가타 대성당과 1232년 프리드리히 2세가 건설한 우르시노성이 있다.

 

성 아가타의 유물과  작곡가 빈센초 벨리니의 무덤이 있는 카타니아 대성당 

 

1693년의 지진 이후 건축가 프라 피올라모 팔라초토와 조반니 바티스타 바카리니(1702~68)가 새로 세운 카타니아 대성당에는 성 아가타의 유물과 이곳 태생의 작곡가 빈센초 벨리니의 무덤이 있다. 카나티아에는 이곳 출신의 유명한 작곡가(벨리니)와 작가(베르가)의 이름 딴 공원과 거리 이름이 있다. 오페라 '몽유병 여인' 을 작곡한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는 이탈리아 가극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소설가, 단편작가, 극작가로 활동한 베르가(Giovanni Verga)는 이탈리아 사실주의 대표적 작가이다. 
 

18세기 궁전들로 둘러싸인 두오모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등에 업은 검은색 코끼리 조각상은 에트나 화산의 현무암을 이용해 만든 것인데, 카타니아의 상징물로 카타니아 시청과 축구팀의 깃발에도 등장한다.

 

카타니아 상징 검은 현무암의 코끼리분수

 

시칠리아에서 강도를 만나다

시칠리아나 남부 이탈리아에는 관광객을 노리는 범죄가 많다는 얘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매치기, 사기, 야바위, 물건 바꿔치기, 퍽치기(사람을 퍽치고 물건 뺏는 것), 날치기(물건을 빼앗아 달아나는 것. 특히 오토바이 날치기), 낚아채기 등 그들의 수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조심을 하였다. 그래서 위험지역은 밤늦게 다니지 않도록 하였고, 가방(bag 백)은 cross로 매고 길을 갈 때도 차도 쪽으로 bag이 가지 않도록 하거나 보호자(남자)가 여자들을 보호하며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당했던 것은 관광 책자나 인터넷에서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카타니아 시내를 막 벗어나려는 T자 교차로에서였다. 맞은편에서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내 진행 방향을 가로막으며 좌회전하려다가 멈추었다. 나는 이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데 왜 안 지나가지(오토바이 운전이 미숙한 분인가)라고 생각하였다. 바로 그 때 운전석 뒤쪽 문이 열리더니 또 다른 남자가 아내의 핸드백을 낚아채려고 하였다. 순간 아내는 가방 끈을  꽉 움켜쥐었고, 옆에 있던 딸도 엄마의 가방이 뺏기지 않도록 힘을 보탰다. 조수석의 아들은 안전벨트 락(lock)이 걸려 뒷자리까지 팔이 닿지 않았지만, 그놈의 눈을 쳐다보고 욕지거리 섞인 고함을 질렀다. 아내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더라면 가방을 빼앗기거나 차도로 사람이 끌려 나갔을 것이었다. 그네들도 이쪽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포기하고 도망쳐 버렸다. 강도당했던 순간은 수 초 밖에 안 걸렸지만 아내는 손가락의 인대가 늘어나 한 동안 손가락이 아파 고생했고 그 때가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하였다. 가방 안에 있던 돈과 귀중품도 문제였지만 만약 여권을 잊어 버렸다면 우리의 남은 여행 일정은 엉망이 되었을 것이었다. 자동차 뒷문이 밖에서 열린 까닭은 자동차가 달리면 자동으로 문 잠금(door lock) 장치가 작동되지 않는 차종이었던 것이었다. 그 후 다른 도시에서 차량을 빌릴 때는  문 잠금(door lock) 장치를 꼭 확인하였다.   

 

비니키 입은 여자를 보러 로마 시대 저택(Villa Romana del Casale)에 가다

Villa Romana del Casale 링크: Villa Romana del Casale

 

시칠리아 중앙부 산속 마을 피아차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에 있는 고대 로마 시대 저택을 보러 갔다. 4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저택의 주인은 알 수 없으나 큰 규모와 다양하고 많은 양의 예술품과 장식물로 보아 상류층 부자의 소유였을 것이라 한다. 신전, 바실리카, 체력 단련실, 목욕탕, 연회실 등의 바닥과 벽이 온통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식당의 세 벽면에도 신화의 여러 장면들이 모자이크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중 ‘헤라클레스의 모험’ 장면이 유명하다. 야생동물의 사냥과 운동선수, 대전차 경기 등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모자이크가 매우 인상적인 이 저택은 당시의 사회 경제 모습과 구조를 생생하게 잘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매우 아름다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냥 장면이 생생한 모자이크 

 

비잔틴(Byzantine) 시대와 아랍(Arab) 지배 당시에도 일부 건물이 사용되었지만 그 후 버려지다시피 되어 농경지로 사용되다가 19세기 초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 졌다. 지금은 모자이크로 된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덮었고, 집 지을 때 쓰는 비개를 설치하고 통행을 위한 통로(깔판)를 만들어 관람객이 모자이크를 밟지 않고 다니며 구경할 수 있게 하였다.  

 

 
  비키니 차림의 운동선수
 
   erotic 한 모자이크

 

비키니 차림의 운동선수 중 누가 일등인지는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알겠고, 사냥 장면에선 그 생생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안주인 방(침실)에 있던 性的(성적 erotic) 모자이크는 그것을 만든 당시 예술가의 위트와 재치가 느껴진다.  

 

시칠리아를 제대로 다 둘러보려면...  

시칠리아 어느 도시나 마을을 가도 시내 중심엔 성당이 있고 마차가 굴러 가던 자갈길이 있다. 문만 열면 맞은편 집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엔 빨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골목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 새 해변에 이르기도 한다. 팔레르모 구시가지 중심에는 옛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 데, 석조 건물을 개조한 한 호텔의 승강기는 구형으로  그 안에 들어가면 철망에 갇힌 느낌이 들어 폐쇄 공포증 환자는 이용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창을 열면 이웃과 대화가 가능한 팔레르모 뒷골목
   
   팔레르모 구시가지 한 호텔의 구형 승강기

 

지중해 중앙에 위치한 시칠리아는 과거 유럽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서 큰 부를 축척할 수 있

었고,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은 결과 풍요롭고 복합적인 문화와 예술을 창출할 수 있었다.

그리스, 로마, 비잔틴, 중세 문화 유적뿐만 아니라, 바다와 산과 구릉지에다 에트나 화산도

있어 자연 풍광이 다양하여 마치 지리, 역사, 종교, 문화가 모두 들어 있는 백과사전을 들여

다 보는 것 같았다.

 

다녀 본 곳은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타오르미나 ▶카타니아 ▶아르메리나 이렇게 몇 군데만 다녔지만, 시칠리아는 생각보다 굉장히 커서 3일 일정으로는 아쉬움만 남는 여행이었다. 영화 시네마천국, 말레나, 그랑블루, 일 포스티노 등 많은 영화가 촬영된 시칠리아의 곳곳을 다 둘러보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시칠리아 여행기 끝-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여행기를 볼 수 있음.          

        北部 이탈리아(1)-피사,루까,시에나,산지미냐노

        北部 이탈리아(2)-오르비에또,몬테피아스코네,비테르보,아시시

        北部 이탈리아(3)-피렌체,볼로냐,라벤나

        北部 이탈리아(4)-페라라,베로나,베르가모,꼬모 호수,친퀘테레

 

        南部 이탈리아(01)-뽀쭈올리,바이아, 나폴리, 폼페이

        南部 이탈리아(02)-소렌토,아말피,라벨로,카프리

        南部 이탈리아(03)-폼페이,에르콜라노,카세르타+티볼리

 

        시칠리아(1)- 팔레르모,몬레알레

        시칠리아(2)-아그리젠토-콘코르디아 신전/시라쿠사-고대그리스 극장

        시칠리아(3)-타오르미나,카타니아,Villa Romana del Casale

 

 시칠리아(02)-아그리젠토-콘코르디아 신전,헤라신전,시라쿠사-고대그리스 극장

 여행일자: 2014년 11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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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여행경로(팔레르모-아그리젠토-시라쿠사-타오르미나-카타니아-아르메리나-팔레르모) 
시칠리아의 음식과 “뽀꾸 디 쌀레 (Un poco di sale 소금 조금만)”  시칠리아는 섬이므로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데, 고등어 파스타나, 멸치 파스타, 정어리 파스타는 시칠리아 인들이 즐겨 먹는 메뉴이다. 새우나 가재, 조개나 오징어 등 해산물을 주재료로 하는 요리 외에도 스테이크 요리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다양하고 품질 좋은 재료로 만든 파스타, 피자, 샐러드, 구이, 튀김 요리 등이 그야말로 山海珍味이다. 하지만, 파스타 특히 해산물이나 치즈가 들어간 요리를 시킬 때는 "뽀꾸 디 쌀레 (Un poco di sale 소금 조금만)" 를 말하는 게 좋다.
인터넷과 관광 안내서에는 유명 맛집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팔레르모 요리협회에서 추천한다는 추천장이 걸려 있는 소위 ‘팔레르모 맛집’도 시내 골목이나 전통 시장 골목 등에 숨겨져 있다. 팔레르모의 전통시장인 부치리아(vucciria) 시장을 구경하고 이탈리아 돌체(dolce-부드럽고 달콤함)의 대표 과자인 시칠리아 명물 cannoli(까놀리)를 먹어 보았다. cannoli는 작은 관(little tube)의 뜻으로 만두 껍데기처럼 돌돌 말린 속에다 라코다 치즈를 넣어 튀긴 건데, 아이들의 입맛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 입맛에는 너무 달아 반쪽 먹기도 힘들었다.

 
 바다 생선과 땅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
 
 시칠리아의 디저트 과자 까놀리(Cannoli)

 

아그리젠토(Agrigento)로 가는 길은 산 넘고 고개 넘는 험난한 길

아그리젠토 관련 링크: http://www.agrigento-sicilia.it/

                      http://sicilia.indettaglio.it/eng/turismo/ag/turismoag.html

                      www.lavalledeitempli.eu (Chrome에서 검색 잘됨)

  

아그리젠토(Agrigento, 시칠리아어: Girgenti)는 팔레르모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시칠리아 남쪽 해안 도시인데,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아크라가스(Akragas)로 로마 시대에는 아그리겐툼(라틴어: Agrigentum)으로 불렸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아그리젠토는 과거 시칠리아에서 크게 번창했던 도시로, 그리스의 서정시인 핀다로스(Pindaro)는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했다 한다. 

 

다른 관광객들도 그랬겠지만 우리는 아그리젠토에 있는 그리스 신전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갔다. 이 유적의 입장 마감 시간이 늦가을엔 오후 3시 반으로 이르기 때문에 서둘러 팔레르모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팔레르모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은 고속도로가 없고 산과 고개를 넘어야 하는 길이었다. 가는 도중 한쪽 차로를 막고 도로 공사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심지어 터널을 막고 공사 중인 곳도 있어 약 4~50분을 더 돌아가야 했다. 소요 시간을 여유 있게 잡지 않았더라면 입장 마감 시간에 도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기차, 버스)으로 아그리젠토를 갈 수도 있다. 팔레르모에서는 기차로 2시간 30분, 버스로 2시간 소요되며, 시칠리아 동쪽에 있는 제2의 도시 카타니아에서는 기차로 4시간, 버스로 3시간 소요된다. 기차가 더 오래 걸리는 것은 해변을 따라 빙 둘러 가기 때문이다. 아그리젠토에서는 고고학 유적지인 La valle dei templi(신전의 계곡)를 오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그리스 신전(神殿) 도시 아그리젠토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 중의 하나인 아그리젠토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식민지(Akragas)가 된 후 팔라리스 군주시기에 ‘지하의 신들을 위한 신전(Chthonic temples)’이라 불리는 신전들이 건설되었고, 테로(Thero) 군주의 지배(BC488~BC473)동안 절정을 맞았다. 기원전 480년 히메라(Himera) 전투에서 카르타고를 무찌른 이후 시칠리아 북쪽 및 동쪽 해안으로 지배권을 넓히기도 하였으나, 기원전 262년 로마의 식민지(Agrigentum)가 되었다. 이후 AD 828년 사라센 족에게 점령당해 식민지(Kerkent 또는 Girgent)가 되었다가, 1087년 시칠리아의 노르만족 정복자 루제로 백작 1세에 의해 라틴 주교관구가 수립되었다. 노르만 민족 지배이후 지르젠티(Girgenti)로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1927년까지 지르젠티라고 불렸다.  

 

 

수령이 오래된 올리브 나무를 지나 헤라 신전에 올라가면 주위의 아그리젠토 구릉지와 지중해가 잘 보인다. 

 

하늘을 향해 솟은 도리아식 그리스 신전(神殿)들

셰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그리젠토의 고고학 유적(Archaeological Area of Agrigento) 지역은 La valle dei templi(신전의 계곡)으로 불리는 데, 실제 유적은 계곡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에 있으므로 내 나름대로 이곳의 별명을 ‘아그리젠토 언덕’으로 붙이겠다.   

 

아그리젠토 유적지 동쪽 입구를 지나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밑둥치 둘레가 굵은 올리브 나무를 뒤로 하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헤라 신전(Tempio di Hera Lachia)에 오르면, 주위의 구릉지와 지중해가 잘 보이고 멀리 서쪽으로 ‘아그리젠토 언덕’ 길 끝에 콘코르디아 신전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곳에 있는 신전들의 정면은 모두 동을 향하고 있는데,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붉은 빛을 생명(피)의 근원으로 여겼기 때문이라 한다.  

 

 

아그리젠토의 하이라이트 콘코르디아 신전(Tempio della concordia)

 

Concordia(콘코르디아) 신전은 현존하는 그리스 신전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신전으로, 기원전 43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Concordia(콘코르디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Harmonia(harmony 조화)나 Pax(peace 평화)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지붕이 없긴 하지만 도리아식 신전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이 신전이 오늘날까지 훌륭히 보존될 수 있었던 까닭은 597년 교회로 개조되었기 때문이다.

 

주위가 계곡이므로 땅으로부터 솟아난 듯한 ‘아그리젠토 언덕’ 위에 돌 축대를 쌓고, 다시 그 위에 기둥을 높이 세워 지어진 콘코르디아 신전은 하늘을 예배하기 위한 신전임이 틀림없다. 이 신전 앞에는 태양을 향해 너무 높이 날아오르다 날개를 붙인 초가 녹아 바다로 떨어진 ‘추락한 이카루스(Ikaro Caduto 영:Icarus Fallen 2011년 청동 작품)’가 누워 있다.    

 

콘코르디아 신전 앞의 추락한 이카루스(Ikaro Caduto 영: Icarus Fallen)

 

‘아그리젠토 언덕’에는 콘코르디아 사원 말고도 거대한 제단이 있던 제우스 신전이 있는데  도리아식 건축물들 가운데 가장 크고 독창적이라 하지만 1749~63년 엠페도클레 港(항)의 방파제를 짓기 위해 이 신전의 돌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현재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어른 양팔로 대여섯 명이 둘러쌀 정도의 굵직한 기둥들이 열병식을 하는 헤라클레스 신전(폭 28M, 길이 78M) 앞에 서면 그 위압감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아그리젠토 박물관에는 남자가 돌을 이고 있는 듯 한 모습의 텔라몬(Telamon 사람 모양의 기둥)을 비롯한 그리스인들의 탁월한 예술과 문화의 자취를 볼 수 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데 때마침 동쪽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었고 콘코르디아 사원 언덕에서는 일몰과 석양을 감상할 수 있었다. 길이가 수 Km에 달하는 광활한 ‘아그리젠토 언덕’에서 무지개와 석양을 동시에 보니 잠시이긴 하였지만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고대의 유물과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시간과 공간을 잠시 잊었던 이곳의 일몰 풍경은 일생 한 번은 보아야 할 석양이라 생각되었다.

 

만약, 아그리젠토 신전 지역을 여름에 구경할 때는 햇빛 차단제와 양산뿐만 아니라 충분한 음료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역사지구는 넓기도 하거니와 신전으로 가는 길은 언덕이라 물이 적고, 올리브 나무들이 가로수처럼 서 있긴 하지만 나무 그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고대 도시 시라쿠사(Siracusa 영:Syracuse 시러큐스)

시라쿠사 관련 링크: http://sicilia.indettaglio.it/eng/comuni/sr/siracusa/siracusa.html

시라쿠스 관련 위키 백과: http://en.wikipedia.org/wiki/Province_of_Syracuse  

 

 

지중해가 보이는 시라쿠사의 Teatro Greco(그리스 극장). 좌측의 뾰족탑은 ‘눈물의 성당’ 첨탑

 

시라쿠사는 시칠리아의 남동쪽 해안에 있는 도시로 기원 전 8세기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졌으나, 제 2차 포에니 전쟁이후 로마에 복속되었기에 그리스와 로마 유적이 많다. 시라쿠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위쪽의 고대 유물들이 있는 네아폴리 고고학공원(Parco Archeologico della Neapolis)과 아래쪽 잘록한 섬에 있는 오르티지아(Ortigia) 섬 이라 불리는 구시가(old city) 부분이다. 오리티지아 섬은 차로 건너 갈 수 있는 짧은 다리가 놓여있어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고학공원에선 그리스 극장과 로마 원형극장의 차이를 관찰해 볼 수 있고, 채석장 쪽에 위치한 디오니시우스의 귀(The Ear of Dionysius)라 이름 붙여진 인공 동굴은 입구 쪽에 있는 ‘Garden of Paradise(천국의 정원)’이라는 이름과 달리 포로(죄수)수용소였다 한다. 그리스 극장(Teatro Greco)의 꼭대기에 올라서면 저 멀리 바다(지중해)가 보이고, 16,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고대 극장의 계단에 앉아 있으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객석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싶었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라쿠사 역사지구의 입구에는 아폴로 신전(BC 6세기)이 부러진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역사 지구 안에 있는 시라쿠사 대성당(Cattedrale di Siracusa)은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살려 7세기에 성당으로 지어졌다. 이 성당은 16세기 들어와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되었지만 1693년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18세기 들어와 안드레아 팔마에 의해 아름다운 코린트식 기둥을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고쳐지었다.             

             

 

아름다운 코린트식 기둥을 가진 시라쿠사의 두오모

 

오르티지아(Ortigia) 서남쪽 끝에는 아레투사 샘(Fonte Aretusa 숲의 요정 샘)이 있는데, 시라쿠사의 항구(grande mare)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어 바다를 구경하며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장소이다. 사냥의 여신이자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의 시녀 아레투사가 강에서 목욕하다가 강의 신 알페오(Alpheus)에게 들켜 시라쿠스까지 도망쳐 왔지만 사랑에 눈 먼 알페오가 끈질기게 추격해 오자 아르테미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르테미스는 갈라진 땅 사이로 그녀가 도망칠 수 있도록 그녀를 샘으로 변신시켰다는 신화에서 아레투사란 샘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강의 신 알페오(Alpheus)에 쫓겨 샘(泉 spring)이 된 숲의 요정 아레투사(Aretusa) 

 

오비디우스의 ‘변신(變身) 이야기(Metamorphoses)'

 오비디우스의 대표작, 변신이야기(Metamorphoses)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변신과 관련된 사물의 유래들을 기술한 전15권으로 된 서사시 형식의 시로, 천지장조에서부터 오비디우스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250편의 변신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는 크게 신들에 관한 부분, 영웅들에 관한 부분,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부분으로 나뉘며, 오비디우스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변신이야기는 신, 인간, 자연 등 다양한 변신 이야기를 통해서 오비디우스가 생각하는 사랑과 애욕에 관해서 말하고 있으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과 문학작품에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오비디우스, 천병희, 숲, 2005.

 

영화 <말레나>의 촬영지인 이곳에서 오래된 골목길과 성당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 보는 것도 나만의 영화를 찍는 셈이 될 것이다.

 

(계속)

 

 

시칠리아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01-팔레르모,몬레알레 

 

여행일자: 2014년 11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代父대부(God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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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중심이자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Sicilia, 영 Sicily)

시칠리아 관광 공식 사이트는 http://www.regione.sicilia.it/turismo/web_turismo/ 이다.

이중 영어 설명사이트는  Sicily for tourists  이며 Tourism Department 는 영어 지원이 안 된다.

http://www.onlysicily.com/enogastronomia-en.html 도 참고할 만하다.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 섬: 주도(州都) 팔레르모(palermo), 제2의 도시 카타니아(catania)

    

지중해 중심이자 지중해 최대의 섬인 시칠리아는 삼각형(북쪽이 윗변, 남쪽이 꼭짓점) 모양의 섬으로 제주도의 14배 크기이다. 장화 모양인 이탈리아 반도의 남서쪽 끝(소위 장화 끝)에서 메시나 해협(폭 16km)을 사이에 두고 본토와 떨어져 있으며 이 섬의 남서쪽 바로 아래는 아프리카 튀니지다.

메시나 (Messina) 북쪽 지중해 지역을 티레니아 해(Tyrrhenian Sea)라 하고 동남쪽을 이오니아해(Ionian Sea)라 한다. 이오이아 해는 아르타·파트라스·코린트 만(그리스)을 포함하며 주요항구로는 시라쿠사와 카타니아(시칠리아), 타란토(이탈리아), 코르푸(이오니아 제도), 파트라이(그리스) 등이 있다. 이 이름의 기원이 된 이오니아 제도는 그리스 서부 해안 근해에 있다.

시칠리아는 북서쪽에 있는 주도(州都) 팔레르모(palermo)가 북위 38도이고 동남쪽에 있는 시라쿠사(siracusa)는 북위37도로,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엔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지중해성기후를 보인다. 유럽 와인 산지의 최남단 지역인 시칠리아의 와인은 그리스, 로마, 바이킹 등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시칠리아의 역사처럼 품종이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 데, 주정이 강화된 달고 진한 테이블 와인이나 값싼 화이트 와인이 대부분이다.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시칠리아의 역사

시칠리아는 지중해 중심에 위치한 탓에 수많은 침략을 받았고 수많은 정복자들이 거쳐 갔기 때문에 이 섬을 지배한 주인공은 시칠리아 역사만큼이나 다양하다. 거의 천 년의 세월에 걸쳐 그리스와 로마인, 비잔틴인, 아랍인(사라센), 노르만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에 의해 침략을 받았다. 시칠리아의 동부 지역 시라쿠사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고 서부지역은 카르타고의 통치를 받았었다. 포에니 전쟁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중세 초기에 반달족·동(東)고트족·비잔틴·아랍인 등에게 차례로 점령당했다. 831년 아랍인에게 점령 당한 뒤 북아프리카와의 활발한 무역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11세기엔 노르만족, 12~13세기엔 시칠리아 왕국(신성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이후 시칠리아의 지배자는 독일의 슈타우펜 왕가, 프랑스의 앙주 왕가로 바뀌었다가 민중의 봉기로 아라곤 왕국의 피터 3세가 왕위에 올랐다. 한편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잃은 앙주 왕가는 나폴리 왕국을 세웠다. 16세기 이후 시칠리아는 다시 나폴리까지 통치하게 되었고 1816년 나폴리 왕국과 합병하여 양(兩)시칠리아 왕국이 되었지만, 1860년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되었다가 이후 가리발디가 일으킨 반란의 결과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고, 1947년 지방자치권을 얻었다. 출처: 위키 백과

 

시칠리아에 가려면 어떻게 가나

이태리 본토에서 시칠리아로 들어가려면 자동차나 기차, 배로 가는 방법과 비행기로 갈 수 있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시칠리아로 들어갈 때는 이탈리아 반도의 남서쪽 끝(소위 장화 끝)에서 배(페리)를 타고 메시나 해협을 건너가며, 배로는 나폴리에서 팔레르모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시칠리아로 가는 것은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많이 걸려 불편하므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비행기로 시칠리아로 들어갈 때는 로마나 피사에서 시칠리아 북서쪽의 팔레르모나 시칠리아 섬 동쪽에 있는 제 2의 도시 카타니아로 들어간다.

 

옛 팔레르모의 중심이었던 콰트로 칸티(Quattro Canti ‘네 모서리’라는 뜻)     

사통 팔달의  팔레르모의 중심 콰트로 칸티 

 

‘모든 길은 콰트로 칸티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콰트로 칸티는 팔레르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와 마

퀘다 거리가 교차하는 구시가지 중심 사거리에 있다. ‘콰트로 칸티’는 스페인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1층은 봄, 여

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을 상징하는 조각이, 2층은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왕들의 조각이, 3층은 성녀 Cristina,

Ninfa, Oliva, Agata 의 조각이 있다. ‘콰트로칸티’는 팔레르모 시내 마차 관광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porto nuova(포르토 누오바=새 출입문)

porto nuova(포르토 누오바)은 팔레르모의 출입구로 1553년 카를로 5세가 튀지니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기 만든 문으로, 위는 피라미드 모양의 지붕이며 Arch형 돌기둥과 입구 벽에 조각된 아랍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칠리아의 상징 트리스켈리온(Triskelion)은 세 개의 굽은 사람 다리 또는 나선의 회전 형태다. 삼각형은 시칠리아의 모양을 뜻한다고 하기도 하고 중세 이슬람 지배기의 세 행정구역(Val di Manzara, Val di Noto, Val di Demone)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가운데 날개 달린 얼굴은 메두사의 얼굴이다. 다리 사이에는 밀알이 배치되어 있는데 시칠리아의 풍족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팔레르모의 출입구로 아랍인 조각이 있는

 porto nuova(포르토 누오바-새 출입문의 뜻)
 

시칠리아의 상징 트리스켈리온(Triskelion)
 


시칠리아 각 도시의 문장과 특산물        

 

八色鳥(팔색조)의 도시 팔레르모

괴테는 시칠리아의 주도(州都) 팔레르모(palermo)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도시’라 하였지만, 나는 八色鳥(팔색조)의 도시라 말하겠다. 팔레르모는 그 명성만큼이나 풍광이 아름답고 여러 지배 세력이 거쳐 간 탓에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섬 여기저기에 그리스 신전, 로마 건축, 노르만 교회, 비잔틴 모자이크와 돔, 화려한 바로크 교회, 웅장한 palazzo와 궁전 등 과거의 여러 시대의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고, 각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문화 충돌과 융합의 흔적도 느낄 수 있다. 고고학, 인류학, 지리학, 건축,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찾아봐야 할 곳이다.

 

시칠리아의 심벌로 익숙한 트리스켈리온 문양은 미케네 문명의 그릇, 리키아의 동전, 팜필리아의 금화, 피시디아와 같은 많은 고대 문명에서 나타나며 그리스 도기와 전사의 방패에도 이 문양이 새겨져 있다 한다.

 

시칠리아에서 비잔틴 문화를 만나다

팔레르모에서 8km정도 떨어진 몬레알레(Monreale)는 '왕의 산'이라는 뜻인데, 산 중턱에 있는 중세기 왕의 휴양지로 전망이 아주 좋다. 몬레알레 대성당(Monreale Cattedrale)은 12세기(1174~1189)에 지어졌는데 노르만·비잔틴·이탈리아·사라센 양식이 모두 종합된 양상을 보인다.

 

사라센이란 말은 중세 유럽인이 서(西)아시아의 이슬람교도를 부르던 말로, 십자군 이후 서유럽에서 이 호칭이 사용되었다. 아라비아 유목민인 사라센族(족)에 의해 정복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스페인 등을 포함한 사라센 제국에서, 이슬람교(회교)를 바탕으로 하여 7세기경부터 17세기경까지, 회교 사원인 모스크에 집중되어 표현된 회교 중심의 건축양식을‘사라센 양식’이라 한다.

 

사라센 양식의 특징 중 하나는 아라베스크 장식인데, 아라베스크(Arabesque)는 이슬람교에서는 우상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아랍 문자나 식물의 줄기와 잎을 도안화하여 당초(唐草) 무늬나 기하학 무늬를 배치시킨 것이다.

 

몬레알레 대성당

몬레알레 대성당 천정의 장식과 벽체의 문양과 상감(象嵌)은 아라베스크 장식(Arabesque ornaments)으로 되어 있다. 몬레알레 대성당 입구 현관의 三重(삼중) 아치는 노르만 양식이다. 또한 몬레알레 대성당은 직사각형(장방형)바닥에 제단뒤쪽은 반원형으로 앱스(apse 後陣)를 갖춘 형태로, 가운데 통로인 身廊(신랑)과 양쪽 복도에 해당하는 측랑(側廊)이 있으며, 身廊(신랑) 위쪽에 높은 창(高窓)을 가진 전형적인 바실리카(basilica) 式 구조이다.

몬레알레 대성당의 바실리카식 평면과 내부의 섬세한 황금빛 모자이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북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보았던 산아폴리나레 누오보의 바실리카와 산비탈레(San. Vitale)교회의 모자이크를 다시 보는 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존하고 있는 모자이크 중에서 가장 대형인 몬레알레 대성당의 모자이크 장식은 비잔티움(Byzantium)에서 훈련받은 장인들이 10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라 한다. 참고로 북 이탈리아의 라벤나는 5세기에서 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며 비잔틴 문화를 꽃피운 古都(고도)이다. 라벤나의 San Apollinare Nuovo(520년경)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예이다.

 

높은 창문을 가진 바실리카 양식에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몬레알레 대성당(1174~89)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몬레알레 대성당의 聖像 

 

또 다른 아랍-노르만-비잔틴 문화(Arab-Norman-Byzantine style)의 자취

 

팔레르모의 두오모(Cattedrale di Palermo 팔레르모 대성당)는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약 600년에 걸쳐서 건축되었다. 처음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하였으나 시칠리아를 지배했던 여러 건축 양식이 덧대어져 12세기~18세기의 건축양식이 뒤섞여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한 대성당의 벽은 바로크 양식이고 정면은 고딕 양식이며, 성당 내부는 1771년부터 1809년까지 피렌체의 건축가인 페르디난도 푸가에 의해 네오클래식 양식을 갖추었다.

 

여러 시대 양식으로 덧대어 지어진 팔레르모 대성당

 

당 안에는 ‘Heliometer dome(헬리오미터 돔-天文 돔)’이 있는데, 돔 안의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온 태양빛이 태양빛이 성당 바닥에 새겨진 12황궁도 에 표시되는 것을 보아 계절과 날짜,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성당 바닥에 새겨진 12 궁도와 남북으로 향하고 있는 동(銅)선.

 

팔레르모 대성당 지하묘지에는 시칠리아의 왕들과 왕족들의 무덤도 있지만, 옷을 입은 미이라, 기도하는 모습의 미라, 붕대 감은 모습 등 여러 미라가 눈앞에 바로 나타나므로 임신부나 심약자는 관람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팔레르모 왕궁(Palazzo dei Normanni 노르만 왕궁)

팔레르모의 황금기는 시칠리아 왕국의 수도로 있었던 노르만족 시대(1072~1194)이다. 아랍-노르만-비잔틴 양식의 건축물은 1185년에 지은 팔레르모 대성당 외에도 팔라초 레알레(왕궁), 산토조반니 델리에레미티 교회(1132), 마르토라나 교회(1143), 그리고 쿠바 궁과 치사 궁 같은 팔레르모 시 주변의 궁전들이 모두 같은 시대에 건축된 것이다. 팔라초 레알레(Palazzo dei Normanni 노르만 왕궁)에 있는 예배당은 그 화려함이 지나칠 정도이다. 황금빛 빛나는 모자이크, 눈이 뱅뱅 돌아가는 아라베스크 문양과 상감 조각, 여러 시대에 만들어져 다양한 조각이 장식된 대리석 기둥을 감상하노라면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화려한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팔라초 레알레(Palazzo dei Normanni 노르만 왕궁) 

 

팔라 초 레알레(왕궁)내 예배당(전면부)의 화려한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성상과 아치(arch)    

 

팔라 초 레알레(왕궁)의 예배당(후면부). 벌집 모양의 천장은 노르만 양식이다.  

 

마피아(Mafia)와 영화 ‘대부’의 배경지 팔레르모

‘시칠리아’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영화 ‘대부’나 ‘마피아’일 것이다. ‘시칠리아 마피아’들은 1992년 자기들을 수사하는 팔코네, 보르셀리노 두 명의 검사를 살해하기도 했다. 팔레르모 국제공항의 이름은 현재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팔코네-보르셀리노' 공항이라고 명명되었다. 팔레르모의 중심 도로변에 있는 웅장한 규모의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의 입구 계단은 영화 ‘대부3’에서 꼴레오네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딸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는 웅장한 규모의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   

 

영화 ‘대부’에 나오는 돈 마이클 꼴레오네의 본명은 비토 안돌리니로 이곳 시칠리아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비참하게 이탈리아 마피아의 폭력으로 살해되자, 그는 이들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뒷골목을 평정하고 대부(代父 Godfather)의 위치에 올랐다.

 

영화 ‘대부’에 나오는 돈 마이클 꼴레오네의 본명은 비토 안돌리니로 이곳 시칠리아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비참하게 이탈리아 마피아의 폭력으로 살해되자, 그는 이들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의 뒷골목을 평정하고 대부(代父 Godfather)의 위치에 올랐다.

 

‘마피아(Mafia)’하면 ‘범죄 조직’으로 동일시 될 정도인데, 세계적으로 이름난 마피아로는 시칠리아 마피아, 러시아 마피아,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중국 삼합회, 인도 암살단 등이 있지만 ‘시칠리아 마피아’가 원조로 불린다. 시칠리아 마피아가 명성(?)을 얻게된 것은 이들 조직의 일부가 미국으로 건너간 19세기 말부 터 20세기 초이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 둥지를 튼 이들은 매춘, 도박, 마약 거래 등 불법과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전형적인 범죄조직의 활동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요즈음 마피아들은 건설, 부동산, 쓰레기 처리, 공연, 관광, 호텔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마피아의 지하경제를 지상경제와 적절히 융합시켜 오고 있다 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마저 모호해진 상태라곤 하지만, 여전히 마피아들이 주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어 경찰과 검찰이 그들의 범죄를 추적 중이라 하며, 최근 뉴스엔 교황 프란시스코가 ‘시칠리아 마피아’를 파문한 후 일부 시칠리아 마피아들이 자수해 오고 있다고 한다.

 

(계속)

이탈리아 남부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 03-폼페이,에르콜라노,카세르타+티볼리

   여행일자: 2014년 11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물망초(Non ti scorda di me 나를 잊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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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망초(Non ti scorda di me 나를 잊지 마오)
    
화산재로 덮여 있던 고대 도시 폼페이
      관련 링크:  http://www.comune.pompei.na.it/ 
      위키 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D%8F%BC%ED%8E%98%EC%9D% B4

베수비오 화산에 걸린 구름이 화산 연기로 연상되었다. – 폼페이 Forum(광장)에서 -

 

서기 79년 8 월24일 베수비오 화산(Vesuvio 영:베수비우스 Vesuvius)의 폭발로 폼페이(Pompei)는 ‘화산재’에 묻혀 버렸다. 여기서 ‘화산재’의 정확한 표현은 ‘ 화산쇄설물’이 맞지만 일반인들이 많이 쓰는 ‘화산재’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화산쇄설물( 火山碎屑物)’이란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용암이나 기존 산에 있던 암석 부스러기(바위 조각)들이 분출되어 땅에 떨어진 것을 말하는데, 크기에 따라 화산암괴(크기 32mm이상), 화산력(火山礫 크기 4-32mm 화산 자갈), 4mm 이하는 화산재(火山災 화산 가루)라 하는 데 특히 0.25mm 이하인 것을 화산진(火山塵 화산 먼지)이라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의 내용을 보다 알기 쉽게 수정함.)

  
당시 폼페이는 잘 나가던 항구 도시였다. 그런데 먹고 춤추고 노래하던 삶의 터전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하루아침에 천지 재앙이 덮친 것이었다. 엎드려 꼬꾸라진 채 묻혀 죽거나 연인과 껴안은 채, 아이를 끌어안고 죽은 엄마 등 비참한 현장은 박제가 되어버린 듯 그 당시 시각에 정지되어 버렸다.

 
꽃을 집는 여인 Flora -폼페이 벽화

              
                화산 분출물에 묻혀 있던 사람의 형태를 석고로 떴다.
폼페이를 상징하는 붉은 색 바탕의 벽화

 

      화산 폭발이 멈추었을 때 폼페이는 화산재 등 화산에서 흘러나온 물질 더미가 6~7m 두께로 도시 곳곳을 뒤덮으면서 일종의 진흙 용암으로 굳어졌다. 폼페이의 유적은 16세기말에 라치비타라고 알려진 언덕 밑에 터널을 팠던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한다. 폼페이에서 벌어졌던 화산 참사의 목격담은 대(大)플리니우스의 조카 소(小)플리니우스가 타키투스에게 미네눔의 로마 함대 사령관이었던 대(大)플리니우스의 죽음에 대해서 묻고 있는 2통의 서신에 생생하게 기록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에드워드 조지 불워 리턴 소설(1934년)과 同名(동명)의 영화와 TV 드라마가 있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폼페이의 유적

폼페이의 유적은 로마시대의 광장(Forum)과 공회당, 바실리카(Basilica), 신전(神殿), 원형극장(Arena), 공중목욕탕 등의 공공건물뿐만 아니라, 귀족과 서민들의 집, 사창가, 시장 등이 그대로 발굴되었다. 건물들에 장식된 조각, 모자이크나 벽화가 당시 사회상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훌륭하여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람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 같다.

폼페이를 둘러보면 공회당, 재판소, 신전. 목욕탕, 여관, 유곽(여인의 집), 시장, 공정 거래소, 원형극장 등  공공시설 등이 있고 빵 가게, 곡물 가게, 주점 등 상가들이 길을 따라 도열하고 있다. 마차가 다니던 도로는 밤중에도 길을 알아볼 수 있게 길바닥에 야광 돌을 박았고, 비가 와도 발이 젖지 않도록 징검다리 모양의 도로 건널목을 만들어 두었다. 상점 앞에는 아마도 해를 가리기 위해 차일(遮日) 천막을 쳤을 것이며, 공중화장실이나 급수(공동수도)시설을 설치한 것을 보면 당시의 폼페이의 도시 기반 시설은 오늘날과 비교해 보아도 잘 정비되어 있었고 당시 사람들의 지혜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토관으로 만들어진 배수구:
   오물이 도로로 그냥 버려진다.
 
도로의 징검다리-비가 오더라도 발이 안 젖게...
 
곡물의 부피를 측정하기 위한 계량기(計量器)

 

폼페이는 무역항이라 다른 나라에서 오는 이방인도 많이 드나들었다 한다. 항구에는 여관, 유곽(여인의 집), 요릿집(식당)이 있기 마련이다. 식당 대문 옆에는 숟갈과 포크, 칼이 그려진 표시가 있어 글씨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방인에게 간판 구실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매춘부의 집 방안에는 각종 성행위 모습을 붙여 두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꾀 쓸모가 있었으리라.

 

공기는 최고의 단열재 / 전염병(역병)의 원인이 된 하수 시설

목욕탕에는 엷은 판자 형태의 두 개의 벽을 막아 벽과 벽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어 단열 효과를 얻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천정은 응결된 물이 사람 머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고안한 주름을 붙였다. 목욕탕 벽과 천정, 창문을 보니 당시 사람들의 과학적이고 슬기로운 지혜가 느껴졌다. 그러나 배수시설은 되어 있었지만 집에서 길가 쪽으로 배수관이 노출되어 있어 오물들이 길 바닥으로 그냥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배수 처리 시설의 미비점 탓에 전염병이나 페스트(흑사병)에 취약했을 것이다. 또한 급수 파이프는 납으로 되어 있었기에 납중독의 발생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수비오(Vesuvio) 화산 바로 아래 마을 에르콜라노(Ercolano, Herculaneum)

       홈페이지 : http://www.comune.ercolano.na.it/erc/internet/home ,

       위키 백과: 에르콜라노 

주위 지대보다 낮아 화산재에 그대로 묻혀버린 에르콜라노

 

나폴리와 폼페이 중간 쯤 나폴리에서 8km 떨어진 바닷가(나폴리 만)에 있는 에르콜라노는 베수비오(Vesuvio) 화산 바로 아랫마을로, 폼페이 최후의 날에 화산재에 묻힌 마을이다. 폼페이보다 규모가 작은 마을이라 공공건물들은 적지만 화산재에 묻힌 유적이 폼페이보다 온전히 보전되어 있어 당시 살았던 귀족이나 서민들의 삶의 흔적을 더 잘 볼 수 있다. 에르콜라노와 폼페이의 유적 중 모자이크와 조각 등 훌륭하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나 훼손되기 쉬운 작품들은 나폴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에르콜라노 한 저택을 장식하고 있는 생생한 벽화(上)

 

에르콜라노 한 저택을 장식하고 있는 멋진 타일(下)

 

이탈리아의 베르사이유 ‘카세르타 궁전’

      관련 링크: http://www.comune.caserta.it/     관련 위키 백과 링크: 카세르타 궁전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 카세르타州의 州都(주도) 카세르타에 카세르타 궁전을 보러 갔다. 이 궁전  건설은 1752년 나폴리의 찰스 7세 때 루이기 반비텔리가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완성은 왕의 세 번째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페르디난드 4세 때 완성되었다.

이탈리아의 베르사이유로 불리는 광활한 ‘카세르타’의 정원

 

카세르타 궁전은 나폴리의 부르봉 왕가를 위해 지은 궁전으로, 18세기에 지어진 궁전 중 전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궁전이며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이 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미를 살려 백조와 같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사령부로 사용되었고, 1945년 4월 29일 독일군의 항복 서명을 받은 장소이다.

‘카세르타 궁전’의 왕궁 예배당

 

이 궁전은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서 나부 왕국의 아미달라 여왕이 머물던 궁전이었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II’ 의 배경과 ‘미션 임파서블 3’에서 람보르기니 광장으로도 쓰였다 한다.

출처:위키 백과: 카세르타 궁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1k1035a

호화로운 예배당 겸 극장을 비롯하여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의 내부를 구경하는 데 수 시간이 걸리고, 카세르타 궁전 정원도 상당히 넓기 때문에(120 ha), 공원처럼 잘 정돈된 숲과 분수, 인공 폭포 등을 걸어서 다 돌아보려면 반나절이상 걸린다.

-[남부 이탈리아 주마 간산기]는 여기까지로 일단 마무리 한다. -

*** 로마로 돌아오기 전 로마 옆에 있는 티볼리(Tivoli)를 들렀다. ***

로마 황제의 별장이 있는 티볼리(Tivoli)  위키 백과: 티볼리

        관련 링크: www.tibursuperbum.it , 티볼리( http://www.comune.tivoli.rm.it/intro/ )

로마 북동쪽 30km 언덕에 있는 티볼리는 지정학(地政學)적으로 로마에서 동쪽으로  가는 길

목이라 선사시대부터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렸다. 티볼리는 원래 독립적인 도시국가였으며

로마의 경쟁 도시이기도 했으나 BC 4세기경 로마 세력권에 들어갔다. 로마 공화정 후기와

로마 제국 초기에 여름 휴양지로 각광을 받아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등 당시 부유한 로

마인들이 티볼리 근처에 별장과 소규모 신전을 지었다.

     티볼리는 건축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유적지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1 세기경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별장(Via di Villa Adriana)은 어느 황제의 별장보다도 웅장하고

화려하다. 이 별장은 티볼리의 언덕 아래의 평원에 118년경 짓기 시작하여 10년이나 걸려

완공되었는데 궁전, 도서관, 손님 숙소, 공공 목욕탕, 2개의 극장이 있다. 많은 벽돌 파편들

이 널려져 있고, (로마식) 콘크리트 구조의 잔해도 남아 있어 고대 로마의 건축 도감을 보는

듯하다.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이자 이탈리아 정원의 진수(眞髓) 빌라 데스테(Villa d'Este)

        관련 링크: 티볼리의 빌라데스테 [Villa d'Este, Tivoli] -두산 백과  

이탈리아 정원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빌라 데스테(Vila d'Este)

 

백 개의 분수와 계단식 정원이 있는 빌라 데스테(Vila d'Este)는 이탈리아 정원예술의 걸작

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별장(Via di Villa Adriana)이 광활하고 남성적이라면, 빌라

데스테는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하다. 추기경이었던 에스테 家의 이폴리토 2세(Ippolito II)가 교

황에 선출되지 못한 슬픔을 달래고자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라 하는데, 1550년에 축조하기 

시작한 빌라 데스테의 정원은 추기경이 죽음을 맞이하는 1572년에야 마무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빌라 데스테는 로마시대 수력학(水力學)을 활용하여 만

든 수 백 개의 분수와 수많은 계단식 정원이 있는데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별장

으로 르네상스 문화의 진수요, 이탈리아 정원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되며 유럽 정원 발전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다.  출처: 티볼리의 빌라데스테 [Villa d'Este, Tivoli] -두산 백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이탈리아 북부, 남부, 시칠리아를 돌아보았다

서양 문명의 뿌리는 기독교와 헬레니즘(Hellenism) 문화인데, 헬레니즘 문화는 그리스 문화

와 Orient문화가 융합한 것으로 그리스 문화를 로마 문화로 연결시켜 주는 교량적인 역할을

한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로마 시대의 자취(고대 문명)뿐만 아니라, 중세의 기독교

문화와 르네상스 이후의 문화의 자취와 한 단면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시칠리아에서는 그

리스 문화의 흔적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의 흔적도 느낄 수 있었다.

 

말(馬)대신 자동차를 타고 봄에는 이탈리아 북부를, 늦가을에는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를 훑어보았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가톨릭 성지 순례의 느낌이었고,

이탈리아의 남부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보다 가슴에 남는다.

 

우리가 여행지를 결정했던 방법은... 

가고 싶은 곳과 보고 싶은 곳을 정한 방법은 일단 방문할 주요 도시를 결정한 다음 그 도시

나 해당 도시 주변에서 관광 명소나 유적을 찾아보았다. 주로 관광 책자에 소개된 내용을

참고하였지만 가능하면 UNESCO 세계 유산은 꼭 찾아보도록 하였다. UNESCO 세계 유산에

는 특징에 따라 UNESCO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 유산으로 나뉜다.

 

UNESCO 세계 유산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지방 특유의 자랑거리나 문화유산, 자연 풍광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 등은 각 지방의 관광 안내소(Info)나 관광 소개서에 소개되어 있다. 더구

나 관련 정보들은 첨단 정보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으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도 있다. 다만, 관련 홈페이지의 내용(개장, 마감시간 등)이 제때 update 안된 곳도 있었다.

           

여행(관광)하는 것은 아무래도 낮 시간에 해야 되는데 이탈리아는 위도가 높아 봄에는 큰 

영향이 없었지만 늦가을이나 겨울에는 일조 시간이 짧아 관광지의 개방 시간이 짧다. 이처

럼 계절에 따른 여행 준비나 여행 계획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별도의 꼭지로 얘기해 볼 것

이다.

 

- 이탈리아 북부, 남부 走馬看山記(주마 간산기) () -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여행기를 볼 수 있다.

        北部 이탈리아(1)-피사,루까,시에나,산지미냐노

        北部 이탈리아(2)-오르비에또,몬테피아스코네,비테르보,아시시

        北部 이탈리아(3)-피렌체,볼로냐,라벤나

        北部 이탈리아(4)-페라라,베로나,베르가모,꼬모 호수,친퀘테레

 

        南部 이탈리아(01)-뽀쭈올리,바이아, 나폴리, 폼페이

        南部 이탈리아(02)-소렌토,아말피,라벨로,카프리

        南部 이탈리아(03)-폼페이,에르콜라노,카세르타+티볼리

 

        시칠리아(1)- 팔레르모,몬레알레

        시칠리아(2)-아그리젠토-콘코르디아 신전/시라쿠사-고대그리스 극장

        시칠리아(3)-타오르미나,카타니아,Villa Romana del Ca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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