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不虛傳(이름이 헛되지 않구나)-밀라노,피사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Volare [볼라레 :날자꾸나] :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 안 나올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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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鄕循俗(입향순속)

이탈리아에서는 세가지 '레'만 해도 살수 있다고 한다.

첫째, 만자레(mangiare) - 먹고
둘째, 칸타레(cantare) - 노래하고
셋째, 아모레(amore) - 사랑하고

이 세 단어가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을 요약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그네가 다른 고장에 가서면 그 고장 풍속을 따라야 한다(入鄕循俗 입향순속,入鄕隨俗 입향수속). 入境問俗(입경문속). 入鄕從鄕(입향종향)이라고도 한다. 다른 나라 땅(異國)에 와서 제 입맛에 맞는 음식과 기호식을 파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풍경과 음식이 다른 곳을 여행하는 동안 색다른 음식과 기호 식을 맛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평소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이탈리아 국경을 통과하고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이탈리아 커피 맛을 보기로 한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딸은 커피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나는 맛이라도 볼 요량으로 좀 순하고 부드러운 카푸치노를 시켰다. 카푸치노는 소위 달달한 것이 우리나라의 자판기 커피 맛으로 느껴졌으나 딸에게 얻어 마셔 본 에스프레소는 굉장히 쓴 맛으로 느껴졌다.

 

재미있는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은 돈을 주고받을 때,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꺼리는 것이었다. 커피 요금을 미리 계산할 때 돈을 직접 손으로 받지 않고, 돈을 접시에 올려 두면 잔돈과 영수증을 접시 위에 도로 준다. 이 영수증을 다시 커피 주방장(?)이 일하는 쪽에 보내면 커피를 만들어 접시에 도로 내준다. 인솔자의 설명으로는 손과 손을 직접 접촉하는 것을 피한다고 하며 어떤 경우에는 접시에 동전이 땡그랑 소리 날 정도로 던지기까지 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거기에 대해 오해 말라고 했다.    


어둠이 내린 세계적으로 유명한 별장지대인 꼬모는 호수의 불빛을 눈으로만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호수의 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낮에 보면 틀림없이 더 멋있는 풍경 그림이 될 것 같았다.


사소한 도로 구조물에도 과학적, 미적 감각을 볼 수 있는 밀라노
밀라노 시가지에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토리노 동계 올림픽 스폰서인 삼성의 커다란 전광판을 만났다. 이국땅에서 우리나라 상품의 선전물을 통해 보는 것이지만 나의 분신을 만나는 느낌이 들어 반갑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탈리아의 열악한(?) 전력 사정으로 이탈리아선 그래도 부자 도시라고 알려진 밀라노의 시가지도 다소 어두운 느낌이고 가로등도 절전 모드이다.  

이탈리아의 열악한 전력 사정으로 어두운 거리

 

시내를 걸어가다 보니 보도 블록 옆의 도로 경계석의 모양이 우리나라와 조금 다르다. 보통 경계석은 직육면체의 침목 모양으로 도로와 차도를 구분 지어 일렬로 박혀 있다. 그런데 이 밀라노의 경계석의 특별한 점은 경계석과 경계석의 접촉면 모양이 일자형이 아니라 올록볼록한 요철 형태로 되어 있다. 양쪽 끝면이 서로 요철로 맞물리게 함으로써 경계석이 튕겨 나가는 것을 막고 경계석끼리 견고한 연결이 되게 하였다. 비록 도로 한 편에 쌓는 경계석이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과학적 사고방시과 건축 공학적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名不虛傳(명불허전)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밀라노 시내를 관광하였다. 두오모 성당은 보수 중이었다. 보수 천막 틈 사이로 들여다 본 두오모는 밤중에 보아도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으로 名不虛傳(명불허전)이었다. 내일의 일정상 밤에 보았다는 점과 수리 중이라 내부를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았다. 며칠 전에 내린 눈 탓에 길거리의 눈은 녹았으나 응달진 성당 뒤쪽에는 눈이 조금 남아 있었다. 성당 지붕에서 땅바닥으로 바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조용한 밤거리에 제법 세차게 들린다.

두오모 광장 옆이 밀라노의 중심가인데 오페라로 유명한 스칼라 좌를 둘러 본 다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로 일컬어지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를 걸어 본다. 이 갤러리아 건축물은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1877년에 완성했다는데, 당시로선 최첨단인 높이 47m의 높은 아치형의 유리 지붕이었다 한다. 내부 바닥은 전부 대리석으로 깔려 있어 건물 내부가 한마디로 휘황찬란(?)하다. 현재는 전통 있는 찻집 cafe 와 부띠크, 세계적인 명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어두움 속에서도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의 두오모

 

아침에 일어나니 약간 쌀쌀한 겨울 날씨였다. 밀라노 길거리에서 만난 이탈리아인들은 대개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여인은 차안에서도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탈리아의 겨울 날씨는 우기인데다 추워서 뼛속을 우리하게 하는 느낌이라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런 습하고 추운 이유 때문에 겨울에는 역사가 오래된 전통적 호텔(오층 이하 호텔)의 0층과 1층 객실 요금이 싸다고 한다(참고 0 층이 우리나라 1층에 해당 됨).  반대로, 이탈리아의 여름은 덮기는 하지만 습기를 많이 포함하지 않은(고온 건습 )공기여서 그늘에 가면 시원하다고 한다. 주택의 창문 바깥쪽은 흰색 줄무늬로 통풍이 가능한 창 가리개를 대어 둔 것을 볼 수 있다.  여름에 안쪽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실내에서 돌리면 에어컨 없이도 그런 대로 시원하게 지낼 만하다고 한다.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낮에는 영상의 온도가 되었고 날씨가 맑아 우리(한국 여행객)는 옷을 가볍게 입고 다녔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의 높은 아치 천장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의 바닥은 대리석 모자이크이다

   
대리석을 깔아라(?) 대리석은 까라라.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갔다. 피사로 가는 도중 세계적 대리석 생산지로 유명한 ‘까라라(carrara)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지명을 지났다. 질 좋고 풍부한 대리석이 있으니 많은 성당이나 건축물이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또한 300여 가지 다양한 색깔의 대리석들이 있어 색깔의 표현에 제한이 없었다고 하며 심지어 돌가루로 된 물감이 있었다고 한다.

 

건축에 쓰일 재료로는 나무가 돌보다 다루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나무보다 견고하고 수명이 오래가고 또 다루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재료인 대리석이 흔하다 보니 건축 재료나 조각의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고대 로마 왕족이나 귀족의 욕조나 현관 바닥이 대리석으로 조각되거나 모자이크로 많이 만들어 졌을 게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훌륭한 대리석 조각품들을 남겼으며 또한 오늘날 이탈리아의 웬만한 호텔의 욕조나 탁자가 대리석으로 만들어 진 것도 이렇게 풍부한 대리석 덕분이리라. 대리석이 말 그대로 까라라 지방에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부럽다 못해 샘이 났다.

또 하나 ‘바다(vada)라는 재미있는 지명을 도로 표시판에서 보았는데 Vada Sabbata라고 하는 곳으로 실제 이탈리아 주요 항구이면서 철도로 토리노와 연결되며, 제노바에서 프랑스 국경으로 가는 간선 철도와 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라고 한다.

 

더 높이 올라가고픈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지혜
피사의 사탑은 큰 돌덩이들을 지반이 약한 곳에 올리다 보니 탑을 처음 세울 때부터 기울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도록 첨단 공학적인 보강 조치를 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크기로 몇 째 가는 큰 규모의 세례당

 

피사는 피사의 사탑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곳에는 세계에서 몇 째 가는 큰 그 규모의 세례당과 본당도 있다. 1탑 2당 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본당은 아치형의 구조물 위에 또 다른 아치를 세워 올리는 형식으로 건물 규모와 높이를 키웠다. 건물 규모를 키우기 위해 기둥과 기둥 사이 상단 부를 아치형으로 하고, 그 위에 받침돌을 놓은 후 다시 양 측에 기둥을 세우고 두 기둥 사이를 아치형으로 하여 하중을 분산을 시키고 건물의 높이를 올렸다.

  

아치 구조의 피사 두오모(대성당과 사탑(斜塔)

이렇게 대리석 돌로 만들어진 크고 웅장한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무게가 많이 나가므로 빗물 처리를 잘 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낙수가 지붕에서 바로 땅 바닥에 떨어지게끔 설계되어 있다. 지붕이 건물에서 다소 돌출되어 있다 해도 바람이 불면 낙수가 벽에 부딪혀 벽이 젖을 수밖에 없다. 이런 낙숫물을 조금이라도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낙수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 빗물받이인데 이를 ‘가고일’이라 한다. 가고일의 모양은 새나 짐승처럼 단순하게 처리한 것도 있지만 괴수나 그 지방의 문장 또는 성당 관련 건물에서는 성경적 인물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한편, 건물 크기가 커질수록 무게를 줄이기 위해 창을 많이 낼 수밖에 없으며 벽체를 얇게 하는 건축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창이 많아지고 유리 처리 기술이 발달되고 색유리 까지 도입되니 자연히 스테인글라스가 창문에 도입되었다. 이런 특징을 가진 건축 양식을 '고딕 양식'이라 한다. 건축 구조상의 필요와 관련 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건축 양식 등이 발전해 나온 것이지만 그 당시의 건축가가 이러한 양식 이름을 미리 명명한 것이 아니다. 후세의 史家나 학자들이 그런 양식의 특징을 일컬어 무슨무슨 양식으로 명칭을 붙여주어 두루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공포[拱包]   

공포 [拱包] 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아래 링크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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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건물을 짓겠다는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여 우리나라의 궁궐이나 큰 절집도 규모가 커지게 되자 공포[拱包]를 도입하게 된다. 공포[拱包]란 전통 목조건축에서 앞으로 내민 처마를 받치며 그 무게를 기둥과 벽으로 전달시켜주는 조립 부분으로, 결국 건물의 높이와 큰 지붕을 올리기 위해 고안한 건축 기법이다. 이러한 공포[拱包]가 기둥 위에만 있으면 柱心包 양식, 기둥과 기둥 사이에 까지 있으면 多心包 양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포를 올림으로써 지붕을 크게 올릴 수 있고 빗물(낙수)도 건물 벽에 덜 튀게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 한다
로마로 가는 도중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의 어원을 말해주는 고대 로마 도로를 보게 되었다.  이 도로는 군사적 목적이 주된 것이었지만 무역 등 물자 수송 수단으로의 역할도 컸다고 한다. 이 길의 양쪽엔 기다란 기둥처럼 생긴 줄기 위로 가지가 우산처럼 뻗어 나간 소위 ‘우산 소나무’(실제로는 전나무라는 얘기도 있다) 가로수가 있는 데 독특한 모양 덕분에 군사들이 나무 그늘에서 쉬어 갈 수 있었다는 도로이다. 

     

고대 로마 도로와 우산 소나무

 

고속도로에는 자동차의 나라답게 이 나라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 자동차가 주로 보이지만 독일의 벤츠, 베엠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차종들도 다수가 눈에 띄었으며 페라리도 가끔 볼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배기량이 큰 것은 보기 드물었고 대개가 소형 차종이었다. 분수에 맞지 않게 큰 자동차나 큰 집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국민성에 비해 실리적이며 검소한 국민성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이탈리아에는 도시 진입료가 있다
겨울인데도 한낮에는 일광 화상을 입을 것 같아 자외선 차단 크림을 듬뿍 바르고 다녔다. 저녁이 되자 푸른 하늘에 붉은 석양이 멋지다. 어둑해 지고 나서야 드디어 로마에 입성한다. 그런데 입성 비용이 만만치 않다, 버스 한 대당 18만원 정도의 도시 진입료가 있다. 로마 외각에서 보았던 로마는 생각보다는 그렇게 휘황찬란한 모습이 아니었다. 아마도 전기를 수입하는 에너지 수입국이라 절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로마 시내 안 쪽에는 현대식 높은 빌딩이 많지 않아 건물에서 비춰지는 조명이 적고 우리나라 도심에서 흔한 네온사인도 보기 드물어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계속)

겨울에는 3대가 복을 받아야 융프라우요흐를 볼 수 있다고? -스위스 편-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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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가는 동안의 눈 덮힌 평원과 검은 삼림

프랑스 남쪽에 있는 리옹역에서 TGV를 타고 스위스로 가는 몇 시간 동안 프랑스의 넓은 평원을 원 없이 보았다. 차안에는 우리 같은 외국 여행객들도 있었지만 주말을 알프스 쪽에서 보내려는 사람들도 여럿 볼 수 있었는데 행색으로 보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기다림도 여행의 일부이다.

우리는 로잔 역에 정시에 도착하였지만 우리를 픽업할 버스 기사가 이탈리아에서 이 곳으로 오는 도중 폭설에 길이 막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몇 시간을 기다렸다. 모든 세상 일이 매끄럽게 돌아갈 수 없는 것! 이렇게 하릴없이 기다리는 것도 여행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였다. 하기야 이 당시 이탈리아에서 올라오던 다른 한국 여행팀은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가 막혀 스물일곱 시간을 버스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가 몇 시간 기다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내일 올라 갈 알프스 융프라우요흐의 날씨가 좋기를 기원했다.  

 

두 호수 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인터라켄(Interlaken)에 밤늦게 들어 왔다. 주위에 보이는 산록에는 눈들이 쌓여 있다. 크기 않은 규모의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용 육각형의 장식등이 가로등에 달려 있다. 이 곳 사람들이 의도한 바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 결정체 모양의 장식등은 이 곳 밤거리가 마치 동화 속 같은 환상적 풍경으로 느껴지게 하였다.

 

異國에서 합창한 월드컵 응원

저녁을 먹으러 현지 식당에 들어가는데 곱슬머리에다 오뚝한 코를 가진 종업원이 ‘안녕하세요?’  밝게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이렇게 비록 외국인이지만 우리말로 정감 있게 인사하는 데 기분 나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여행 가이드가 우리가 간다고 미리 예약한 곳이긴 하지만, 음식이 나오는데 다소 지체가 되었다. 아까 먼저 인사를 했던 그 종업원은 ‘빨리빨리! 언니! 오빠! 기다리세요!’를 중간 중간 외쳐 대며 힘든 서빙을 하며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 종업원의 이름을 ‘에디르라’ 라고 메모를 해 두었는데 혹시 메모된 것이 식당의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에디르라가 월드컵 응원가를 튼 다음 태극기를 꺼내고 ‘대~한민국! 짝 짜~짜 짝! 짝!’ 월드컵 응원 분위기로 한국인 손님들에게 응원 동참을 유도한다. 피부와 얼굴 모습, 눈동자 색깔이 우리와 다른 사람이 한국 응원을 합창하는 재미있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한국 응원을 듣고 따라 하는 동안에 여행의 피로를 잊을 수가 있었으며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종업원의 손님에 대한 서비스 하나로 이 식당에 대한 흐뭇한 인상은 깊이 남아 있다.

 

 

잘못된 편견을 가진 고정 관념은 사태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다음날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가기 위해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열차를 두 번이나 갈아탔다. 안내 지도를 보니 융프라우요흐 등 알프스의 산들이 지도 위쪽에 표시 되어 있고 등산 철도와 두 개의 호수가 그려져 있다. 동쪽에 있는 등산 철도 출발역이 인터라켄 오스트(Interlaken ost)인데 지도 좌측에 표시되어 있었다. ‘보통 지도를 보면 좌측이 서쪽인데 이 지도에는 지도 좌측에 東驛(동역)이 있다?‘ 순간 지도가 잘못 표시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나라 지도를 보더라도 위쪽 북쪽에 백두산, 우측에 동해, 좌측에 서해가 아니던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 안내 지도는 북쪽에서 남쪽에 있는 알프스를 보는 입장에서 지도가 그려진 것이므로 동쪽역인 인터라켄 오스트(Interlaken ost)가 지도 좌측에 표시되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지도의 위쪽은 무조건 북쪽이라는 고정 관념이 빚어낸 나의 착각이었던 것이었다. 만약 등산가가 이런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산행 한다면 등산가의 생명이 위험해 질 수도 있을 것이리라. 태양(해)은 대부분 남쪽에 떠 있을 것이라는 고정 관념도 지구 남반부에서는 바뀌어야 한다. 즉, 남반구에서는 해가 북쪽 방향에서 주로 움직이므로 해가 잘 드는 방향은 북쪽이 될 것이다.

 

겨울 알프스 정상에서 맑은 하늘을 보려면 三代가 德을 쌓아야...

안개 낀 계곡을 뚫고 산으로 올라가니 날씨는 점점 청명해 졌다. 높은 산봉우리에는 황금색 햇빛이 비쳐지더니 눈이 있는 곳은 곧 푸른빛을 띠는 흰 빛으로 바뀌었다. 열차는 눈이 쌓인 철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고, 우리가 지나 왔던 산 아래 계곡은 구름 파도에 묻혀 하얗고 커다란 호수로 되어 버렸다. 

 

산아래에서 구름이라 생각 했던 것이 산속에서는 뽀얀 안개이다. 안개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산 아래 마

을의 살레(Chalet 스위스 전통 가옥)가 고도가 올라갈수록 성냥갑 만하게 보이다가 산 정상에 가까워지니 아예 조그만 점으로 보인다. 겨울에 많은 날씨의 융프라우요흐를 보는 것은 三代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얘기가 거짓말처럼 너무나 맑아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융프라우요흐의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만년설 만지기

 

융프라우요흐의 스핑크스 전망대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길다는 알레치 빙하가 보인다. 스핑크스 전망대의 테라스에서 눈던지기도 하고, 만년설에 덮인 아이거 북벽, 묀히 봉우리, 알레치 빙하 외 주변 빙하 등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었다. 점으로 겨우 보이는 산 아래 마을을 망원경으로 조망하니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만화경 보는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느라 시간이 꽤나 지났는지도 모르다가,  약간 메스꺼워 지는 고산병 초기 증세가 나타나서 전망대 내로 들어 왔다. 

 

산 아래에 성냥갑처럼 보이는 스위스 전통 가옥(살레)들

 

눈에 묻혀 있는 가옥들

 

같이 간 일행이 이 산 정상에서 꼭 먹어 봐야 한다며 끓인 라면을 먹자고 하였다. 나는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보낼 엽서를 쓰느라 그 라면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라면 맛이 끝내줬다는 일행들의 말이 있었지만, 나는 나대로 유럽 최고 높은 곳에 있는 우체국에서 즐겁고 행복한 엽서 쓰기를 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귀국 후, 식구들이 유럽 최고봉에서 보낸 그 엽서를 보고 고맙고 감격스럽다는 인사까지 받았을 줄은 그네들은 몰랐을 것이다

 

기차역의 철도길 바로 옆이 스키장? 

 

기차 선로에서 내리더니, 그대로 설매를 타는 사람들 

 

열차는 알프스 산을 내려오는 내내 스키장들을 끼고 내려오는 것 같다. 어떤 역에서 스키를 등에 맨 청년들 몇 명이 기차에서 내린다. 그들은 열차 바로 옆 불과 사오 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설상차를 타더니 기찻길 옆 둔덕을 그대로 내리 달리며 손을 흔들어 준다. 눈이 쌓여 있으니 바로 설상차로 달릴 수 있는 것이었다! 파란 하늘에는 자가용 비행기가 하얀 연기구름을 뿜으며 날아가고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레포츠를 즐기면서 유유자적 하고 있었다. 이런 모든 장면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여행을 좀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해주기 위한 찬조 출연으로 생각되었다. 오! 즐거운 세상~!

 

노란 대변(?) 사건

동행하는 일행 중 한 분이 가방 속에서 아침에 챙겨온 간식 꺼리를 꺼내다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신다. 손자를 안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노란 색깔의 어린 아이들 대변이 손에 묻은 듯 하다. 연유를 알아보니 아침 호텔 뷔페에 삶은 계란이 있기에 간식으로 먹으려고 몇 개를 가방 안에 챙겨 넣었는데 그것이 깨져 노란 물이 새어 나왔다는 것이다. 계란을 완전히 익힌 것이 아니라 반숙된 계란이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다. 인솔자 얘기로는 호텔에서도 처음에는 완전히 익힌 계란을 내 놓았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하도 가져가는 바람에 이제는 계란을 반숙으로 내 놓는다는 것이었다. 스위스 뷔페에서 삶은 계란을 꼬불치지 말 지어다!

 
이제 버스를 타고 이탈리아로 내려간다. 가는 도중에 스위스 남동부 지역의 알프스를 지나야 하는 데 상당히 높은 고갯길을 버스가 한참이나 올라간다. 올라가는 동안 깊은 구름 안개 속을 통과해 갈 때 잠시 비를 뿌리는 가 싶었지만 곧 활짝 갠 날씨가 되었다. 며칠 전에 온 듯한 눈이 길가에 눈이 오륙십 센티는 쌓인 것 같다. 그러나 도로는 다 녹아 있다. 도로에 열선을 깔아 두었다 한다.

 

 

터널 내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교훈

고타르 터널(전장 17키로)을 앞두고 일차선을 달리는 차들은 막힘없이 씽씽 잘 달리는 데, 내려가는 이차선 쪽 길은 트럭들이 제대로 내려가지 못하고 거의 서있다 싶을 정도로 정체가 심했다. 이런 현상은 터널을 지나고 나서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맞은쪽에서 올라오는 길의 트럭들의 정체가 심했다. 올라오는 버스나 자가용은 정체 없이 잘 달린다. 몇 년 전에 터널 속에서 유류를 싣고 달리던 트럭이 전복되어 화재가 났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질식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정시간 동안 터널 속을 통과하는 트럭 수효를 제한하기 때문에 트럭의 정체가 있다는 인솔자의 설명이었다.

 

버스가 고타르 터널을 빠져 나오고 한참을 더 달리고서야 어둠이 깔리는 이탈리아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였다. 국경이라고는 하지만 톨게이트처럼 생겼는데 여행객을 태운 버스가 다소 서행하며 접근하자 그냥 통과하라는 손짓을 보낸다. 여권 검사 없이 참 싱거운 국경통과였다.

(계속)

 

 

  <배경음악>유주용의 '부모' 노래 듣기: 아래 동영상이 안 보이면  https://www.youtube.com/watch?v=oRUqYX08zEI 요걸 클릭 

 


 

[메두사호의 뗏목] -한 아버지의 애틋한 父情-

(그림출처: 인터넷 서핑에서)


많은 이들이 루부르 박물관에서 미로의 비너스, 다 빈치의 모나리자 등 유명한 것들을 감상하고 둘러 보겠지만 나는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그림에 대한 백과사전적 내용에는 1816년 400여명을 태우고 가던 군함이 좌초되어 침몰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그렸다고 하며 열흘 이상을 표류하는 동안 배가 고파 사람들은 죽은 동료의 인육을 먹었다고 한다.

섬세하고 치밀한 인체의 포즈들과 절망 속에서 수평선 멀리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리다 환호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파도와 뗏목의 흔들림, 구름의 번지는 모습, 근육의 다양한 표현은 작가의 치밀한 제작과정을 말해 준다.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작가는 시체 안치소를 찾아 시체를 스케치 하고 생존자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생존자들이 뗏목에 의지해 표류하다가 멀리 지나 가는 배를 보고 구조를 요청하는 장면인데 모두들 멀리 보이는 배를 보고 손을 흔들고 감격에 겨워 저기를 봐라고 고함치는 희망찬 상황이다.

그런데 뗏목 뒷편에는 한 늙은이가 그런 희망찬 앞쪽을 보지 않고 슬퍼하는 모습인데 오른손으로는 힘없이 턱을 괴고 왼손으로는 죽어 있는 한 젊은이를 그의 무릎 위에 끌어 안고 있다.

그의 앞에는 또 다른 시커멓게 변색된 시체가 누워 있는 절망적인 모습인데,그의 너무나 안타까와 하는 모습으로 보아 무릎 위의 죽은 자는 그의 아들이 틀림 없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부성애에 눈가가 시큰해 졌다.


빠리(파리)에는 빠리역이 없다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 La Playa(안개낀밤의 데이트) by Ngoc Lan: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 안 나올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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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리(파리)에는 빠리역이 없다 -

유로스타로 해저 터널을 빠져나와 프랑스령으로 들어 왔다. 흰 눈이 간간히 보이는 맨 땅의 겨울 벌판이 몇 시간을 달려도 계속된다. 나뭇잎 없는 앙상한 나무 가지에 겨우살이들이 까치집 모양의 둥지(?)를 틀었다. 끝없는 벌판 저쪽으로 지평선에 노을이 걸린다. 추수하는 장면과 교회가 배경인 밀레의 ‘만종’도 이런 벌판이었으리라 상상해 보며 삶과 일 속에서 여유를 가져 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보았다.

 

빠리 북역에 도착하니 현지 여행사에서 준비해 준 버스가 와 있었다. 빠리 외곽 순환도로를 달려 빠리 남쪽 오를리 공항 앞의 쉐라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가는 도중에 보니 쉐라톤이라는 이름의 호텔이 몇 개 보였다. 가이드한테 같은 이름이 호텔이 많은 이유를 물어 보자 다 같은 이름을 쓰는 체인 호텔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말해 주었다. 실제로 이전에 자기가 인솔했던 손님 중 어떤 분의 얘기라 한다. 그 여행객이 호텔을 빠져 나와 시내에서 한잔 거나하게 하고 택시를 타고선 ‘쉐라톤 호텔로 갑시다!’ 했더니 운전기사가 어디를 갈지를 몰라 빠리 시내의 쉐라톤이란 이름의 호텔 모두를 빙빙 돌았다한다. 결국 그 여행객은 자신이 묵었던 호텔을 찾았지만 택시비는 엄청나게 들었다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었다 한다. 빠리에는 이런 동명(同名) 호텔이 많으므로 호텔에서 나가 개인적인 행동을 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호텔 연락처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한다.

 

                             

개선문의 남성적인 부조

                                                       

                          

 

                           개선문의 다소 여성적인 부조 

                         

다음 날, 빠리 개선문 근처에서 빠리 가이드 조o호 님을 만나 본격적인 빠리 구경을 시작했다.

개선문의 부조를 보면서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하나는 남성적인 모습이고 다른 쪽은 다소 여성적인 모습으로 서로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런 예술 작품 표현에 있어 대조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은 나중에 로마(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격자무늬 도로 형태인 서울 종로나 을지로에서는 길을 가다가 한 블록 가서 우회전하고 다시 한 블록 가서 우회전하고 또 한 블록 가서 우회전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빠리의 도로는 격자형이 아닌 방사선 모양이어서 3번 회전해도 제자리로 오지 않는다. 즉, 도로가 우리나라처럼 바둑판식이 아니라 마름모식 또는 다각형 모양으로 나 있어서 외지인이 길을 잃을 경우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한편 이런 빠리의 도로 형태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최단거리로 가는 길이 이렇게 가거나 저렇게 가거나 같은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다. 톨레랑스 즉 ‘관용의 정신’이 길에도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아니면 ‘도’라는 경직된 사고 틀을 가진 사람들과는 달리 각자의 개성과 사고방식을 인정해 준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그림 그리는 종이에 하늘을 칠할 때 교사가 일률적인 파란 색으로 칠하도록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잿빛 하늘, 금빛 하늘을 그려도 그린 사람의 의도를 존중해 주고 각자가 칠한 색을 인정해 준다고 한다. 문화가 사람이 만든 사유물의 결과라고 볼 때, 사고의 유연성은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 된다.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의 아치와 돔 dome 부분

 

몽마르트 언덕은 '순교자의 산'의 뜻으로, 꼭대기에는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사크레쾨르 성당'이 빠리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이곳은 빠리 시내라고는 하지만 변두리 언덕이고 빈민촌이라 남의 지갑이나 물건 훔치는 걸로 유명한(?) 집시들이 많다고 한다. 집시라고 해서 낭만적이거나 고상한 사람들이 아니고 그냥 거지로 보면 되겠다. 겨울이라 사람이 적어 여행안내서의 소매치기 조심이라는 말은 실감이 나지 않고 주위 풍경이 고즈넉하고 조용했다. 길거리의 자동차만 없다면 중세의 한가한 성당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거리 화가들이 즐비한 몽마르트 언덕의 어느 골목길을 돌아가도 많은 화가들의 모델이 되었던 장소들이 남아 있다.

 

살아가는 데에는 음식이 필수이고 여행 또한 삶의 일부일진데 여행에 먹는 것이 빠질 수가 없다. 또한 ‘문화의 총체는 음식이다’라는 얘기가 있지 않는가! 한국의 불고기 요리에는 한우 소고기가, 프랑스 요리에는 포도주가 빠질 수 없다. 따라서 음식은 문화의 일부이자 문화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편 같은 프랑스에서도 음식에 주로 사용하는 기름이 다르다. 북부는 버터, 남부는 올리브기름이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지리적 여건에 따라 따뜻한 프랑스 남부에서는 많이 생산되는 올리브 기름이 주종을 이룰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음식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점심에는 유명한 프랑스의 전채 요리로 달팽이 요리(에스카르고)가 나왔다. 짭짤하게 소금을 쳐서 버터에 구워진 것이 우리가 먹던 골뱅이나 우렁이와 비슷한 맛이다. 달팽이 요리의 기원은 포도나무에 많이 들러붙는 달팽이를 처치(?)하다가 달팽이 요리로 변형되어 왔다는 얘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일본인 마누라와 영국에 살면서 프랑스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중국인 마누라와 일본에 살면서 영국음식을 먹는 거라나!

 

마누라(여인)는 일본 여자가, 집은 영국, 음식은 프랑스 음식(요리)이 좋다는 우스개 얘기이다.

 

여행 와서 경쟁적으로 명품 쇼핑하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행의 재미중 빠질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쇼핑이다. 명품이 아니더라도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자신의 기호품을 애장품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체 여행이기는 하지만 빠리에서 쇼핑시간을 아니 가질 수 없다.

 

-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노드르담 대성당-

               

뾰죽 아치가 특징인 고딕 양식의 노트르담 대성당(정면)

 

                          

 

                                                   노트르담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노트르담 대성당은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성당으로 겉에서 보는 모습도 웅장하고 멋있지만, 내부의 스테인드 글래스와 장미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환상적이다.    

 

센강(세느강)을 가로 건너는 36개의 다리 중 가장 화려한 다리는 임마누엘 3세 다리이다. 다리 입구의 탑 모양 조각상과 다리 난간에 걸려 있는 여러 조각과 다리 길 따라 좌우에 있는 가로등이 우아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이 곳은 드라마 '파의 연인'에서 주인공이 키스를 했던 곳이라 얘깃거리가 된다. 소설 퐁네프의 연인들에 나오는 유명한 퐁네프 다리는 센강을 가로 지르는 가장 오래된 다리인데 외관상 봐선 그저 그런 평범한 다리였다. 퐁네프 다리 주위 강변 따라 세계에서 가장 긴 노상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 보았던 다리가 눈앞에 있을 때 그 느낌은 다리가 아니라 마음속에 하나의 자리로 자리매김 되는 것 같다.

                    

임마누엘 3세 다리 난간의 조각상을 흉내 내보았다

 

                                     

센강 의 강변도로를 따라 가는 중 다이애나가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는 지하 차도를 지났다. 몇 년 전에 영국 황태자비 다이애나가 탄 승용차가 13번째 교각을 들이받아서 즉사한 곳이라고 하는데 13이라는 것은 만든 얘기 같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도 있지만 사연이 있는 곳도 다리도 길도 많다. 어떤 장소나 유적, 유물 어떤 종류이던지 얘깃거리가 있어야 재미(?) 있는 것 같다.   
 

--發狂하며 發光하는 에펠탑-         

 

                                           월드컵 개최국이었음을 상징하는 월드컵 공 모형이 에펠탑 앞에 놓여 있다.

                      

                                     

 

                                             밤이면 정열의 불빛을 뿜으며 발광(發光)하는 에펠 탑

        

 에펠탑은 320m로 설립된 후 철거될 뻔하다가 방송용 안테나로 전용되고 전망대로도 쓰이고 있는데, 지금은 프랑스와 빠리의 상징으로 아니 유럽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낮에 보면 볼품없는(?) 거무죽죽한 색깔의 철골 주조물이 밤엔 화려한 황금색으로 변신하여 몇 분마다 스트로보 불빛으로 發狂(발광)하듯=미친듯이(?) 發光(발광)하며 뻔쩍대었다. 사람들은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처럼 감탄을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깊이 있고 우아한 맛은 없어 곧 싫증나는 천박한 모습으로 느껴졌다.  

 

 

불꽃놀이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새해 첫날 0시를 불꽃놀이로 요란하게 시작하는 나라치고 고유 문화가 별 볼일 없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해 봤다. 불꽃놀이도 하나의 놀이요 문화임엔 분명하지만 그런 나라들은 자랑할 만한 문화가 적지 않을까? 오히려 새해 시작을 비엔나 왈츠로 시작하는 오스트리아 사람의 문화적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 우리나라 일부 지방에서도 불꽃놀이로 새해를 시작하는 곳이 있는데 불꽃놀이 말고 다른 행사는 없겠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지만 불꽃놀이와 결합시킨 또 다른 멋진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불꽃놀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센강의 진주라는 유람선 '바또무슈'를 밤에 탔다. 에펠탑이 지척에 보이는 퐁드 랄마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1시간 반 정도 세느강을 오르내렸는데, 영어, 불어, 일어, 중국어, 한국어로 선내 안내 방송을 해 주었다. 날씨가 추워 갑판 위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어둠속이기는 하였지만 유람선이 왕래하는 센강 양측에는 현대식 건물은 거의 없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했다. 화려하고 높은 빌딩이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아름다운 가치를 발산하는 것 같았다. 노트르담 성당 쪽을 운행할 때는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방송으로 틀어 주었다. 낮은 주파수의 웅장한 저음이 소름을 돋게 하였지만 유람선 관광 회사의 서비스 정신이 돋보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서비스가 관광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며 관광객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에(오전 8시에 호텔 출발) 주말에만 열린다는 벼룩시장을 들렀다. 그런데 도로가 무척이나 깨끗하였다. 가이드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니 새벽에 사람들이 도로에 나오기 전에 청소차가 다니면서 도로를 물청소를 힌다고 한다.  물차가 도로의 더러운 쓰레기들을 물을 뿌리며 씻어내면 청소 미화원들이 따라 지나가면서 흩어져 있는 쓰레기, 담배꽁초 등을 마저 치운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낮 시간에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니다가 꽁초를 도로에 함부로 버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담배꽁초를 길가의 쓰레기통을 다 없애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길거리에 담배 버리는 것을 처벌하자는 법률 제정을 노동자들이 반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도로가 너무 깨끗하면 일거리가 줄어 청소부를 적게 고용하게 되고 그 결과 실업자가 늘게 될까봐 그렇다고 한다.

 

        

속칭 베드로 고기 (사진 출처: 인터넷 서핑)

                      

벼룩시장에는 이국적이고 낯선 갖가지 꽃과 과일, 식육 가공품, 생선, 의류, 생필품 등이 야시장 골목 양측 통로에 즐비하였다. 특이하게 생긴 베드로 물고기도 볼 수 있었는데 가이드가 미리 설명 해주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넘어 갔을 것이다. 이렇게 여행안내 책에 잘 소개되지 않고 가이드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얘기를 듣는 것도 가이드 투어의 좋은 점으로 생각되었다. 또 하나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중 하나는, 프랑스 아이들이 어릴 때 선호 직업으로 여자 아이들은 미용사 남자 아이들은 소방사가 꿈이며, 이태리 남자 아이들은 축구 선수 아니면 깐쵸네 가수가 꿈이라는 얘기였는데 그네들의 선호 직업을 얻어 들을 수 있었다. 

 

 

여행할 때 그 곳의 풍경과 문화 유적을 둘러보는 당연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곳 또는 그 유적이 가지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느끼고 배우고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빠리 가이드 조 선생님은 소위 양모 씨와 함께 빠리 가이드 선구자로 불리는 분으로 대단한 박식가이셨다. 그 분은 그 자신이 대단한 독서가이셨으며 책을 많이 보라고 우리 팀원의 학생들에게 강조하였다. 가이드하는 도중에도 그런 박식한 면면을 잘 보여주었다. 루브르 박물관도 단체 여행의 짧은 일정이므로 이것저것 다 볼 수 없었다. 가이드가 선별해준 유물을 중심으로 둘러 볼 수밖에 없었는데 조 선생님은 이것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철학적 의미를 잘 풀어 설명해 주었다.

       

 

                                      암수가 한 몸인 자웅 동체 Hermaphrodite (사진 출처: 인터넷 서핑)

      

 

루브르 전시물중 여자의 유방과 남자의 성기를 가진 조형물을 보고 남자, 여자 양성의 특징을 가진 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무엇이냐고 조 선생님이 퀴즈를 내셨지만 우리 팀은 맞추지 못했다. 양성기관(자웅동체)을 가진 자를 ‘어지자지’ 또는 ‘남녀추니’ 또는  '사방지(舍方知)', ‘반음양(半陰陽)’이라 하는데 영어로 Hermaphrodite 라 했다. Hermaphrodite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상적인 남성의 상징인 헤르메스(hermes)와 이상적인 여성의 상징인 아프로디테 (Aphrodite)를 결합시킨 것으로 상징화된 이상적 인간을 말한다. 서양인들은 동일 개체(個體)에 암수 양 성기를 갖추고 있는 것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삼고 있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서양에서는 이런 양성자의 모습을 아름답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고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고 숨기고 싶은 대상이었다. 이런 점을 보면 동, 서양의 사고 체계나 관습의 형성된 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속)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비틀즈의 yesterday

만약, 영상 안 보이면 https://www.youtube.com/watch?v=VOgFZfRVaww<=클릭!                                    

 

 

2006년 1월말에 음력설을 끼고 연휴가 며칠 있기에 서유럽 관광을 다녀왔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
"관광버스 타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이미 미디어나 책을 통해 무수히(?) 본 풍광이나 건물을 재확인하는 것은 여행’이 아닌 ‘관광’입니다. 처음에는 경치, 유적, 건물을 중심으로 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자칫 허망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이며, 사람과 대화하고 부딪히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여행의 정수(精髓)를 맛보게 됩니다.” 라고 만화가 조주청 씨는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 여행은 관광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문 여행가가 아닐 진데 ‘여행’이던 ‘관광’이던 상관있으랴. 용어에 억매이지 않고 열심히 다녀 보기로 했다. 서유럽 관광은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을 함께 감상하는 좋은 코스이므로 해당 국가의 경관이나 역사,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관광이나 여행이 더 재미있고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출발하기 전에 서양 건축 양식에 대한 사전 지식은 조금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어 ‘서양미술양식’에 대해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를 찾아 출력하여 읽어 보고 현지에 가서도 참조하기로 하였다.

     

스산한 분위를 보이고 있는 구름 낀 영국 하늘

한국에서 출발하는 날은 겨울 날씨이긴 했지만 그리 춥지 않은 쾌청한 날씨였고 고속도로 사정도 좋아 인천공항에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이번 유럽 여행의 가이드와 약속된 시간에 만나 출국 수속을 마친 후 모 은행의 여행자를 위한 쉼터(SH은행 공항 라운지)에서 출발 시각을 기다렸다.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가이드라 부르지만 실제 그네들은 TC(tour conductor) 즉 인솔자로 불러 주길 원했다. 가이드란 현지에서 안내해 주는 사람을 순수한 의미의 가이드 TG(tour guide)라 한다고 했다.

 

-작고 조용한 듯하지만 힘세고 자긍심 강한 영국-
약 12시간의 비행 끝에 런던 히드루 공항에 내렸다. 날씨가 잔뜩 흐린 오후 5시 반경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깜깜해진 느낌이었다. 가로등이 나트륨등인지 노란빛으로 어둠 속에 빛났다. 런던의 위도가 서울보다 높고 북반구 겨울이라 벌써 해가 진 것이었다. 런던 특유의 눈 비오는 날씨는 아니었지만 우중충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영화 ‘폭풍의 언덕’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떠나기 전의 여행사의 스케줄에는 런던에서의 저녁 식사는 한정식으로 우아하게(?) 먹기로 예약되었지만 그날따라 현지 식당을 몽땅 전세 낸 우리나라 대기업 S 그룹의 망년회 때문에 우리의 저녁 식사는 김밥 도시락으로 대체되었다.

 

일찍 자면 새벽에 깨서 벽을 보며 도(道)를 닦는 면벽 수도(面壁 修道)를 하게 되니, 적어도 밤10시까지는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인솔자가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밤 10시라면 한국에선 새벽 7시이니 이때까지 안자고 버티기는 애초 불가능 한 일이 아니던가. 겨우 밤 9시까지 버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자다가 잠이 깨었는데 새벽 2시이다. 시차 적응이 안 된 관계로 도대체 잠이 다시 안 온다. 여행안내서와 준비해 간 자료 등을 찾아 일정에 나오는 명승, 고적에 대한 내용을 이것저것 다 읽어 보았지만, 그래도 잠이 영 오지 않아서 결국 수면제 한 알을 먹고 도로 잠을 청했다.

 

런던에서의 다음 날. 비는 오진 않지만 구름이 끼어 있고 옷깃을 세워할 정도로 쌀쌀하다. 아침은 뷔페식이었는데 소고기 스테이크, 베이컨이 나의 입맛에는 대단히 짜게 느껴지고 맛이 없었다. 그러나 영국의 홍차는 그 명성에 걸맞게 맛이 괜찮았다.

.고딕 건축양식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빨간 이층 버스

여행사 스케줄마다 런던 여행 코스에 빠지지 않는 국회의사당과 빅벤, 웨스트민스터 사원, 버킹검 궁전, 타워 브리지 등을 둘러보았다. 호텔을 나선 시각이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활기찬 시민의 모습은 뜸하고 날씨마저 구름이 잔뜩 끼고 쌀쌀하여 스산한 분위기의 겨울 날씨였다. 레이칼슨의 ‘침묵의 봄’에서 말했던 ‘무서운 고요함’이 얼핏 느껴졌다. 그것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산업 공해로 유명한(?) ‘런던 스모그’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런던 스모그’란 과거 석탄 연료 사용 후 나타났지만, 요즘은 산업화에 따른 공장에서 배출되는 공해 물질이나, 자동차 매연과 분진 증가에 의해 나타나는 공기 오염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겨울 아침 날씨에 더 잘 생긴다. 그렇지만 지금의 런던 공기는 오히려 서울의 대기 상태보다 양호하다고 느껴졌다.

 

높은 빌딩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의 건물은 3층 이하였고 고풍스러웠다. 도로에는 전선을 지하 매립하여 길가에 전봇대가 없으며 간판도 작고, 네온사인도 드물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거리가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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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우체통

영국은 우리와 관습이 달라 긴장을 해야한다.

날씨도 그렇고 음식도 우리와 다르고, 사람들의 얼굴 모습과 머리칼 색도 달라 어느 정도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우측통행을 하고 내가 길을 건널 때 본 ‘LOOK RIGHT’ 글씨와 빨간색 이층 버스, 빨간 우체통이 새삼 다른 나라에 와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해 주어 약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서울에 대비되는 점으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런던에는 공원이 많다는 점이었다. 하이드파크, 리젠트 파크, 그린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등 곳곳에 넓게 자리한 넓은 공원들은 걸어서 통과하기엔 길이가 두 세 시간 걸리는 곳도 있다 하니 그 규모에 놀랐다. 비가 자주 오고 겨울에도 온도가 그리 낮지 않아 잔디가 잘 살 수 있다 한다. 왕족, 귀족이 가졌던 영지를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에게 돌아온 공간을 공원화한 것이다.

 

여왕이 산다는 버킹검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얼핏 교도소 담장으로 생각될 정도로 높은 담 위로 고전압이 걸린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여왕)에게 아무나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어느 정도의 격리는 어쩔 수 없겠지만, 여왕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불쌍한(?)느낌이 들었다. 이미지가 나쁜 철조망과 철책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았다.

 

세계 3대 박물관중 하나인 대영 박물관

영 박물관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약탈자의 창고’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영국인 자신들의 문화 유적보다  약탈하거나 뺏어온 문화 유적이 많기 때문이었다. 즉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과 부조, 이집트의 미라와 로제타스톤, 고대 아시리아의 라마츠 상(人頭牛像) 등 인류 문명의 많은 유적들이 외국의 유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영국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사라질 인류 문명 유적들을 잘 보전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헌장이라는  1215년의 대헌장(마그나 카르타)과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섹스피어의 작품 등이 있어 그나마 영국인의 자긍심에 다소 보탬을 준다. 대영 박물관을 제대로 보자면 하루 이틀이 걸려도 모자랄 것이지만 로제타스톤, 람세스 2세 석상, 이집트 미라 등 유명한 것 몇 개만 추려 구경하였다. 

 

아시리아(앗시리아로 쓰는 사람도 있으나 아시리아가 맞는 표현) 관(館)에서는 군대 관련 조각들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실제 존재 하지는 않았겠지만 요즘 말하는 스쿠버(잠수)하는 모습이 새겨진 조각 모습 즉 잠수부대(?)와 오늘날 각종 현대식 군대의 기병대, 전차대, 보병대, 포병대에 해당하는 조각들이 있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를 메소포타미아로 부르는데 이 땅에는 수메르.아카드.바빌로니아.아시리아가 차례로 번성해서 훌륭한 문명의 발자취를 남겼다. 주전 700년경 아시리아의 수도가 된 니네베(니느웨)는 그 무렵 가장 위대한 도시였으며 성경에도 니느웨라는 말은 신구약에 20군데. 아시리아라는 말은 32군데나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겨우 89년을 번성한 니네베가 그처럼 성경에 많이 등장하고. 2600년이 지나도록 자주 거론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시리아의 군주들이 잔악성을 떨친 유명세(?)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아시리아의 왕들이 오벨리스크(돌을 깎아 만든 기념탑)나 궁전과 사원의 벽에 새긴 글과 그림에는 왕에 대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내용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19세기 초 터키 주재 영국 대사였던 엘긴 경이 터기 관료로부터 뇌물을 주고 빼돌려 가져온 그리스 조각들을 ‘엘긴 마블스’라 한다. 이중 세 여인의 조각들이 있는데 비록 머리부위는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조각된 여인의 옷자락과 주름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것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봉긋한 여인의 유방과 여인의 은은한 곡선과 옷자락 표현은 실제로 만져 보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솜씨였다.

.사막에서 발견된 미이라
.두피에 노란 머리칼이 붙어 있는 미이라 두부 ( 확대 )

또한 박물관 한편에서는 사막에서 미라가 된 사람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야말로 갈비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피골상접한 몸통에다 노란 머리칼이 두개골에 그대로 붙어 있어 사실적인 전시물로 생각되었다. 웅크린 모습으로 죽어간 모습이 처절하다 못해 숙연하였다. 그 미라 주위를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아래 무엇인가 조사하고 적는 등 공부하고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핏 보니 숨은 그림 찾기 비슷한 수업이던데 무엇을 가르치고 있었을까?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 해저터널을 지나는 초고속열차(TGV) 유로스타(eurostar)를 타기 위해서 런던의 워털루(waterloo)역으로 갔다. 그룹 아바가 부르는 워털루의 몇 소절이 귓가에 맴돌며 옛날 워털루 전투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잠재의식 속에서 저절로 떠올랐던 워털루 관련 상념들을 느끼는 사이 열차는 해저터널을 지나 프랑스령으로 들어갔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표준시가 한 시간 빨라지므로 시계바늘을 한 시간 앞으로 돌리며, 새로운 긴장감에 대한 대비로 혁대 구멍도 한칸 앞으로 당겨 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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