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명 관광지인 장자제(張家界·장가계) 못지않은 비경으로 이름난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 오색지구의 남설악 만경대(해발 560m)가 46년 만에 다시 자태를 드러낸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와 강원 양양군번영회는 19일 "원시림 보존을 위해 탐방객 출입을 통제해 왔던 용소폭포~만경대구간을 이르면 내달 1일부터 일반에 개방한다"고 밝혔다. 용소폭포~만경대 구간은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난 1970년 3월 24일부터 원시림 보존과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해 출입 통제됐다.
'많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을 담은 남설악 만경대(萬景臺)는 속초시 설악동 외설악 화채능선 만경대, 인제군 북면 내설악 오세암 만경대와 함께 설악산의 3대 만경대이다.
양양군 서면 오색리 흘림계곡과 주전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남설악 만경대의 정상부엔 가로 5m, 세로 5m의 자연 전망대가 있어 독주암과 만물상 등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남설악의 빼어난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40여 년간 출입이 통제됐던 만경대 탐방로는 태곳적 원시림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이 개방되면 설악산 가을 단풍 관광의 거점인 오색약수터를 출발해 선녀탕~용소폭포~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기존 3.4㎞의 탐방로가 오색약수터~만경대~오색약수터 5.2㎞ 구간으로 새롭게 단장된다. 만경대에서 오색약수터로 곧장 내려올 수도 있다.
46년 만에 열리는 '작은 금강산'… 남설악 만경대 내달 1일부터 개방 -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남설악의 비경(境)이 46년 만에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난 1970년 3월 24일 이후 원시림 보존을 위해 출입 통제됐던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 오색지구의 남설악 만경대(萬景臺·해발 560m)가 이르면 다음 달 1일부터 일반에게 개방되는 것이다. 석양빛을 받고 있는 사진 오른쪽 위 바위 부근이 만경대이다. 태곳적 원시림의 모습을 품고 있는 이곳이 개방되면 용소폭포~만경대~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탐방로 1.8㎞를 걸을 수 있다. 오색약수터를 출발해 선녀탕, 용소폭포, 만경대를 거쳐 오색약수터로 돌아오는 '만경대 둘레길' 5.2㎞ 구간도 완성된다.
/양양군 번영회
매년 80만여 명의 관광객을 부르는 설악산 단풍의 3대 명소로는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가야동, 남설악의 흘림골을 친다. 이 중 오색 흘림골 탐방로는 잇단 낙석 사고로 지난해 11월부터 전면 폐쇄 중이다. 그러자 양양군번영회와 지역 주민들은 만경대 둘레길을 개방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을 달라고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 요청했다.
브라반트 公(1229 이후), 부르고뉴 公(1430, 브라반트 공령 병합)치하에서 15~16세기에 번 영한 브뤼셀은 벨기에 북서부의 브뤼헤와 독일 쾰른을 연결하는 중계지로 발달하였다. 모직 물, 마(麻)직물, 타피스리(tapisserie 벽에 거는 융단], 레이스(lace 뜨개질한 수공품]가 이 도시의 특산물이었다.
벨기에의 최대 도시인 브뤼셀은 스헬데 강의 지류인 센(젠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는 국 제경제 및 정치의 중심지이다.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네덜란드어)를 공용어로 쓰는 벨기에 내에서, 브뤼셀은 플라망어 사용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대도시 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브뤼셀의 시가지는 크게 로얄팔라스와 그랑플라스로 나뉜다. 로얄팔라스는 왕궁과 관청, 왕 립미술관 등이 모여 있으며 그랑플라스에는 길드하우스, 왕의 집, 시청사 등 규모가 큰 건 물들이 있다. 그랑플라스 근처에는 오줌싸게 동상과 해산물 요리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 는 부셰거리(Rue des Bouchers)와 생 튀베르 갤러리(Galeries St. Hubert)가 있다.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한 그랑플라스(Grand Place
큰 광장)는 가로 70미터, 세로 110미터의 광장으로, 12세기부터 벨기에의 정치, 경제, 문화의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불과 동쪽 24km 지점에 위치한 루뱅(Louvain)은 네덜란드어 뢰
번(Leuven)이나, 흔히 프랑스어 명칭인 루뱅으로 불린다. 루뱅은 벨기에에서 가장 유명한
교육도시인데,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의 인가를 받아 네덜란드 최초의 가톨릭 대학이
설립되어 학술, 문화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알프스 이북(以北)의 대학 중 파리대학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학이었다. D.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G. 메
르카토르(Gerard Mercator, 1512~1594), J. 립시위스(Justus Lipsius, 1547~1606) 등과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이 이곳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가톨릭 개혁을 시도한 곳으로 세계사적
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많은 인물 조각이 새겨진 화려한 루뱅 시청사
15C~18C 대학 모습이 기록된 ‘루뱅대학교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근대 초기 대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루뱅대학교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기록물의 내용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루뱅대학교가 어떻게 학생들과 관련된 장학제도를 운영하였고, 대학 내 부속기관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성직자들만의 영역이었던 대학교가 국가 기관으로 변신하면서 종교개혁 과정에 대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 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가 진행되던 시기에 중세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인본주의 사 상이 갈등하게 되었을 때 대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루뱅 학살 사건’
1914년 8월 25일 독일군이 루뱅으로 진격하면서 고의적으로 루뱅대학교 도서관에 불을 질렀다.
당시 진격 일정을 맞추기에 혈안이 된 독일군이 벨기에 루뱅에서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 및 도시
파괴를 저질렀다. 때문에 아직도 루뱅 시에서는 독일 국기를 게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
(배경 영상,음악) 독일 가곡 모음(유튜브)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https://www.youtube.com/embed/l58JuNoyufk<=요걸 클릭
독일 북서쪽 끝부분인 아헨(Aachen)에서 벨기에의 리에주에 갔었지만, 리에주 방문기는 벨
뒤셀도르프에서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집 위에리게(Uerige)에서 이 곳의 명물 독일 맥주를 마시는 데, 가게 앞에 이동식 풍금 소리가 옛날의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뒤셀도르프 구시가지(알트슈타트 Altstadt)에 있는 명품 쇼핑거리(쾨니히살레 Königsallee)를 가다 보면 수로를 따라 잘 정비된 가로수 길을 만난다. 라인강변으로 나가면 라인타워(Rheinturm 높이 240.5m)와 독특한 디자인 건축물인 미디어 하버(MedeanHafen)가 보인다. 찌그러진 성냥갑처럼 비스듬히 세워진 3개의 건축물 노이어 졸호프 (Neuer Zollhof)는 미국의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오 게리(Frank O. Gary)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독특한 디자인과 개성 넘치는 건축물들이 미디어 하버 근처에 많이 모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