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이 감춰둔 또 하나의 단풍 명소 열린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016.09월

46년만에 만경대 개방… 오색약수터~만경대 5.2㎞ 둘레길도

중국 유명 관광지인 장자제(張家界·장가계) 못지않은 비경으로 이름난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 오색지구의 남설악 만경대(해발 560m)가 46년 만에 다시 자태를 드러낸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와 강원 양양군번영회는 19일 "원시림 보존을 위해 탐방객 출입을 통제해 왔던 용소폭포~만경대구간을 이르면 내달 1일부터 일반에 개방한다"고 밝혔다. 용소폭포~만경대 구간은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난 1970년 3월 24일부터 원시림 보존과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해 출입 통제됐다.

내달 개방 탐방로 지도
'많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을 담은 남설악 만경대(萬景臺)는 속초시 설악동 외설악 화채능선 만경대, 인제군 북면 내설악 오세암 만경대와 함께 설악산의 3대 만경대이다.

양양군 서면 오색리 흘림계곡과 주전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남설악 만경대의 정상부엔 가로 5m, 세로 5m의 자연 전망대가 있어 독주암과 만물상 등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남설악의 빼어난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40여 년간 출입이 통제됐던 만경대 탐방로는 태곳적 원시림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이 개방되면 설악산 가을 단풍 관광의 거점인 오색약수터를 출발해 선녀탕~용소폭포~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기존 3.4㎞의 탐방로가 오색약수터~만경대~오색약수터 5.2㎞ 구간으로 새롭게 단장된다. 만경대에서 오색약수터로 곧장 내려올 수도 있다.

46년 만에 열리는 '작은 금강산'… 남설악 만경대 내달 1일부터 개방
46년 만에 열리는 '작은 금강산'… 남설악 만경대 내달 1일부터 개방 -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남설악의 비경(境)이 46년 만에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난 1970년 3월 24일 이후 원시림 보존을 위해 출입 통제됐던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 오색지구의 남설악 만경대(萬景臺·해발 560m)가 이르면 다음 달 1일부터 일반에게 개방되는 것이다. 석양빛을 받고 있는 사진 오른쪽 위 바위 부근이 만경대이다. 태곳적 원시림의 모습을 품고 있는 이곳이 개방되면 용소폭포~만경대~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탐방로 1.8㎞를 걸을 수 있다. 오색약수터를 출발해 선녀탕, 용소폭포, 만경대를 거쳐 오색약수터로 돌아오는 '만경대 둘레길' 5.2㎞ 구간도 완성된다.
/양양군 번영회
매년 80만여 명의 관광객을 부르는 설악산 단풍의 3대 명소로는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가야동, 남설악의 흘림골을 친다. 이 중 오색 흘림골 탐방로는 잇단 낙석 사고로 지난해 11월부터 전면 폐쇄 중이다. 그러자 양양군번영회와 지역 주민들은 만경대 둘레길을 개방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을 달라고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 요청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방의 두 도시 메스(Metz)와 낭시(Nancy)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알자스로렌,메스Metz,메스대성당,

              낭시,Nancy,스타니슬라(Place Stanisla)광장,까리에르 광장,낭시개선문,아르누보 양식이 꽃핀 낭시

 

 

(배경 영상,음악)  Somewhere Over the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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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알자스-로렌 지방의 두 도시 메스(Metz)와 낭시(Nancy) 돌아보기 

    위키백과: 알자스-로렌 [Alsace-Lorraine] , 세계인문지리사전: 로렌 [Lorraine]

 

알자스로렌은 알자스와 로렌 두 지역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이곳은 시대에 따라 힘 있는

영주나 국가에게 복속 당해 왔다. 알자스-로렌 지역은 921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에 속했으

나, 1600년대 초반 독일 내에 30년 전쟁이 일어나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결과 프랑

스령으로 복속되어 병합되었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후 프랑크푸르트 조약에 따

라 알자스-로렌은 새로 만들어진 독일 제국의 영토로 되돌려졌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잠시 독립국(알자스로렌 독립 공화국)으로 있다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1940년 나치 독일에 의해 다시 합병되었으나,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게 되돌려졌다.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로렌의 메스와 낭시.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 땅, 모젤강 유역의 트리어는 독일 땅.

 

프랑스 북동부 Lorraine(로렌) 지방의 주도(州都)  메스(Metz)

    위키백과: 메스 [메스 (프랑스)] , 두산백과: 메스 [Metz]

    메스 관광정보센터: http://tourisme.mairie-metz.fr/en/index.php

모젤강이 흐르는 메스 풍경
모젤강을&amp;amp;amp;nbsp; 뚫고 나가는 것처럼 생긴 배 모양의 섬

 

프랑스 로렌 주(레지옹:Region 모젤 데파르트망Moselle Departement)의 주도 메스는 모젤

강과 세유 강의 합류점에 위치하는데 갈리아·로마 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 경제활동이 활발

했다. 오늘날은 독일, 룩셈부르크 국경 근처에 있어 교통로의 중심지이며, 한동안 유럽 최대

의 군사기지이기도 했다. 로렌 지방은 풍부한 철광석·석탄·암염 등이 생산되어 낭시·티옹빌

등과 함께 공업지대를 형성한다.

메스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의 보물창고(寶庫)
메스 대성당 측랑부의 높은 천정과 장미창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시내에는 ‘독일인의 문’이라고 불리는 성문(城門 13~15세기)과 많은 성당, 중세 저택, 18세

기의 건물(시청사·법원·극장 등)과 공원 등이 있지만, 최대 자랑거리는 생테티엔 대성당이

다.

 

메스 대성당 (Metz Cathedrale)은 스태인드글라스의 보물창고(寶庫) 

메스 대성당 (Metz Cathedrale)은 생테티엔(Saint-Etienne) 대성당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높이 8m의 첨탑이 있는 이 성당은 13∼16세기의 고딕양식 건축물로 유럽의 성당 중에서도

아름다운 성당에 손꼽힌다. 성당 내부 높이는 42m로 엄청 높으며, 특히 성당 벽면을 거의

다 채우다시피 하고 있는 6,500평방미터나 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장관이다. 몇 백 년에 걸

쳐 많은 예술가가 만든 화려하고 영롱한 스테인드글라스 중에는, 특유의 푸른색 배경에 몽

환적 분위기가 나는 샤갈의 작품도 있다.

     메스 대성당 구경 바로가기 클릭=> Cathedrale Saint-Etienne.wmv

 

자가 운전가가 아니면, 시내 관광은 12.50유로짜리 메스 시티 통합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한데, 이 통합 패스에는 박물관과 퐁피두센터 입장권, 오디오 가이드(영어), 1일 교통권

이 포함되어 있다. 패밀리 시티 패스는 30유로로 성인 2, 16세 미만의 아이 3명 까지 사용

가능하다.  참고: 관광 정보 센터 홈피: http://tourisme.mairie-metz.fr/en/index.php

 

모젤 강이 만든 비옥한 평야 로렌 지방의 중심 낭시

    세계인문지리사전: 로렌 [Lorraine] 다음백과:낭시 [Nancy]

스타니슬라스 광장 옆 황금문(Golden Gate)
조각 장식이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낭시 시청사

프랑스 북동부 지방의 로렌지방은 독일 국경에 접한 지역으로 철광석이 풍부하고 뫼즈·모

젤 강이 흘러 수운이 편리한 까닭에 중공업이 발달했다. 낭시는 프랑스 모젤 강의 지류를

따라 발달한 로렌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알사스와 자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예부터

교통·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작은 베르사이유’ 스타니슬라(Place Stanisla) 광장

낭시의 중심부인 스타니슬라 광장은 폭 120m, 길이 105m의 광장으로 유럽에서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화려하고 우아하여 ‘작은 베르사이유’라 불린다. 광장

모서리에 금색으로 장식된 ‘황금문(Golden Gate)은 철제공예가 쟝 라무흐(Jean Lamour)의 

작품으로, 프랑스의 왕을 상징하는 금으로 된 왕관 무늬, 라일락 꽃, 그리고 수탉으로 장식

되어 있다.

 

스타니슬라 광장 중앙에는 이 광장을 만들고 낭시의 건축문화를 부흥시켰던 스타니슬라스의

동상이 있으며, 광장 주변에는 화려한 조각이 장식된 시청사,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등 바로

크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의 석조 건물이 있어 18세기 프랑스 건축양식의 본보기로 남아 있

다. 또한 광장에는 분수, 노천카페가 있어 유럽의 광장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까리에르 광장(Place Neuve de la Carriere)

시청 맞은편 16~18세기에 만든 아치형 문은 루이 15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까

리에르 광장으로 통한다. 16세기에 완공된 까리에르 광장은 원래 마상 시합을 위해 만든 것

이었기 때문에 마구간을 의미하는 ‘Carriere’ 광장이라 불리고 있다.

까리에르 광장에서 본 구베르느망 궁전

카리에르 광장 끝에 서 있는 18세기의 구베르느망 궁전(Palais du Gouvernement)은 아름

다운 그리스 이오니아 양식의 주랑을 갖고 있다. 이 건물과 가까운 곳에 16세기 무렵의 옛

뒤칼 궁전이 있는데, 지금은 로렌 역사박물관이 되어 지역 예술품과 민속품 등을 많이 소장

하고 있다.

 

낭시의 스타니슬라 광장(Place Stanislas), 까리에르 광장(Place Neuve de la Carriere)과 

달리앙스 광장(Place de la Carriere and Place d'Alliance in Nancy)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지정되었다.

낭시의 개선문(Arc de Triomphe)

 

낭시의  개선문(Arc de Triomphe)

이 개선문은 로마의 세르베루스 개선문(Arch of Septimus Severus)을 본 딴 것으로 루이

 XV 세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엠마뉴엘 에레(Emmanuel Here)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이

 개선문의 꼭대기에는 세레스(곡물ㆍ농업ㆍ문화의 여신)와 미네르바(아테나), 마르스(전쟁의

신),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조각상이 있다.

 

‘아르누보 양식(프랑스어 Art Nouveau 새로운 미술)’이 꽃 핀 낭시

아르누보 양식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기존의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형태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새로운 표현을 하였는데, 유동적인 곡선을 즐겨 사용했다.

1890-1905년간 에 최고조를 이룬 아르누보 양식은 꽃과 식물의 줄기, 휘몰아치는 물결 등을

재나 모티브로 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거나 형태와 선을 만든다. 참조-두산백과: 아르누보

 

19세기말 사업으로 돈을 번 부르주아와 아르누보 계열 예술가들이 낭시로 몰려와 호화 주택

지으면서 당시로선 최신 유행이었던 아르누보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까지 남아

는 아르누보 건축물은 80여개가 넘으며, 지금도 100년 전에 지어진 이들의 작품(건축물)

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르누보 건물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조각이나 치장이 되어 있어 흡사 동화 속에 보았던 모

습으로 느껴진다. 시내 곳곳에는 수십 여 채에 달하는 아르누보 건축물들이 있고, 이들을

돌아보는 순회 프로그램도 있다. 스타니슬라 광장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는 시내 지도 외에

도 아르누보 건축물을 소개한 도보 코스지도를 구할 수 있다.

 

루이 마조렐, 에밀 갈레, 자크 그루베 등이 낭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아르누보 작가들이며, 

공예가였던 에밀 갈레는 낭시에 있는 예술 학파의 중심에 있었다.

튤립 모양의 발코니가 있는 포니에 르포의 집
루이스 마조렐의 집

그림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lf1061&logNo=20210441442

 

에밀 앙드레가 지은 튤립 모양의 발코니가 있는 포니에 르포의 집은 최초의 아르누보 건축

으로 알려 지고 있으며, 특히 루이스 마조렐의 집(Villa Majorelle)은 낭시 정부가 사들여

광 상품화 되어 있다. 루이 마조렐이 지은 주택은 철과 나무, 대리석으로 꾸민 화려한 장식 

과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한 아르누보 건물이다.

 

박물관에는 아르누보 계열의 유리공예 작품들이 많다. 침대, 식탁, 옷장 등 아르누보 양식의

다양한 소품들을 모아 놓은 루이 마조렐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낭시는 30 여 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지만 로렌박물관을 비롯한 박물관이 5개나 있다.

 

한편 낭시에서는 미술뿐 아니라, 매년 7-8월에 걸쳐 열리는 클래식 음악축제 낭시포니가

있어 한여름 밤의 음악회를 즐길 수 있다. 참고: Nancyphonies 홈피 www.nancyphonies.net

프랑스 모젤강 근처의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amp;amp;amp;nbsp;
포도주 냄새가 풍기는 와이너리에서 하룻밤을...

우리는 모젤 강변의 한 와이너리에서 포도주 냄새를 맡으며 하룻밤을 자고, 다시 독일의 트

리어를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갔다.  

 

[베네룩스 3국 돌아보기] –끝-

 

-이하는 [베네룩스 3국 돌아보기]의 글 링크로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음-

 

  (네덜01)-운하와 풍차,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 돌아보기 02) - 네덜란드의 화가들

  

  (네델란드-03) 이준 열사의 헤이그, 네델란드 축제, 음식

 

 

  (벨기에 01)-과거 플랑드르 지역으로 불렸던 브뤼헤(브뤼허),안트베르펜

  (벨기에 02)-브뤼셀,루뱅

 

 (벨기에 03)-헨트,리에주

 

 룩셈부르크(Luxembourg) 탐방기

  

  프랑스 알자스 지방 둘러보기- (프:Alsace 독:Elsaß...

 

–完-

룩셈부르크(Luxembourg),에슈쉬르쉬르(Esch-sur-Sure),비앙덴성,에히터나흐 Echternach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What a Wonderful World-Louis Arm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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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은 작지만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 룩셈부르크(Luxembourg)

    공식홈페이지: www.gouvernement.lu , 룩셈부르크 관광청: www.visitluxembourg.com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대공국) [Luxembourg]

벨기에, 프랑스, 독일에 둘러싸인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북서부 오지 마을 '에슈 쉬르쉬르'
룩셈부르크에서 방문한 곳.(단, 트리어는 독일의 도시)

공식 명칭 룩셈부르크 대공국(Grand Duchy of Luxembourg)은 북쪽과 서쪽으로 벨기에, 남쪽으로 프랑스,

동쪽으로 독일과 국경을 접한다. 남북 최대 길이 82km, 동서 최대 길이 56km, 면적 2,586㎢로 제주도의 1.5

크기이며 수도명도 룩셈부르크(Luxembourg)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60석)이다. 주요 정당은 기사당, 사회당, 자유당, 녹색당 등이다.

 

작은 땅덩어리에 인구는 100만도 채 안 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10만 불이 넘는 세계 1위의 부국이며, 200

개가 넘는 은행이 있다. 주요 민족 구성은 룩셈부르크인이 63%, 포르투갈인 13%, 프랑스인 4.5%, 이탈리아

4.3% 등이며, 언어는 룩셈부르크어와 독일어·프랑스어가 사용되며, 종교는 가톨릭교가 87%, 개신교 등이

13%이다.

 

온대의 온화한 기후로, 철강공업이 발달하였고 총수출의 90%가 철강제품이 며 세계 최대의 철강업체 아르

셀로미탈의 본사가 룩셈부르크에 위치해 있다. 라인강의 왼쪽 지류인 모젤 강의 모젤 와인과 Cremant(크레

망)이라는 스파클링 와인이 유명하다.

 

룩셈부르크의 역사  

    내용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대공국) [Luxembourg]

룩셈부르크는 963년에 지그프리드(Siegfried) 백작에 의해 건국되어, 1443년까지 백작령 및 공작령으로 존

속되어 오다가 1443년 부르군디(Burgundy) 공작에 의해 점령당한 뒤, 1815년까지 지배를 받았다. 1815년

빈회의에서 룩셈부르크의 지위가 종전의 공국에서 대공국으로 승격되는 동시에 독립이 부여되었으나, 네

덜란드 국왕이 대공을 겸하게 되고 프러시아 군대가 주둔하게 되어 네덜란드와 프러시아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1867년 1월 1일 독립하여 런던조약에 의해 영세중립의 지위를 얻고 프러시아 군대가 철수하였으며, 1868년 10월 17일 헌법을 제정하였다.

 

물돌이동이 있는 오지 마을 에슈쉬르쉬르(Esch-sur-Sure)     

      홈페이지:  esch-sur-sure.lu ,   영어 위키백과:  Esch-sur-Sûre

 
이 굴을 지나면 에슈쉬르쉬르 마을에 들어간다. 
에슈쉬르쉬르 마을의 골동품 가게
 
물이 휘감아 돌아가는 에슈쉬르쉬르 마을

 

벨기에에서 룩셈부르크로 가던 중 룩셈부르크 북서부 오지 마을 에슈쉬르쉬르(Esch-sur-Sûre)에 들렀다.

강물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는 물도리동이 있는 마을이다. 룩셈부르크시에서 자동차로 30분 떨어진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마을로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여행다큐 [세계테마

기행]에 소개되어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겐 제법 알려졌다. 마을 뒤로 난 언덕 위에 올라가서 보는 주위

풍광이 볼 만하고, 마을엔 골동품 가게가 있어 옛 흔적이 담긴 물건 구경과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빅토르 위고가 사랑한 마을 비앙덴(Vianden 비엉덩)

      홈페이지: vianden.lu , 영어위키백과:Vianden

 
하늘에 솟아있는 것 같은 비앙덴성 


앙덴성으로 들어가는 아치(Arch) 

 

룩셈부르크와 독일의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비앙덴은 빅토르 위고의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그의 동상이 있으며 빅토르 위고 오솔길(Sentier victor Hugo)이라는 안내 간판이 반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언덕(해발 440m)엔 11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런 비앙덴성(Château de Vianden 링크

: Vianden Castle)이 있다. 성안에는 중세에서 쓰던 갑옷과 창, 칼등 무기와 돌로 만든 포탄알, 근대식 총기

등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어 무기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어떤 이는 이 성의 모습이 독일 퓌센의 '신백조

석성'(新白鳥石城 Neuschwanstein Schloss)을 닮았다 하지만, 실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퓌센의 ‘신백

조석성보다’ 비안덴성의 건축 연대가 수백 년 앞서며 유럽의  성(城)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성(城)이다.

 

윌리브로드 성인이 잠든 에히터나흐 Echternach  

      Daum 백과사전  에히터나흐 [Echternach]

neo-roman style로 재건축된 에히터나흐 수도원
고딕 아치 주랑(柱廊)의 에히터나흐 시청사와 분수

 

룩셈부르크 시 북동쪽, 독일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에히터나흐는 한적한 시골 도시(마을)로 쉬르 강을

끼고 있다. 이곳에는 광천이 있어 로마 시대에 트리어(트레베스)를 상대로 한 휴양지였던 곳으로, 요즈

음은 여름 휴양지이자 유람지이다.

 

이곳은 성 윌리브로드(윌리브로드 [Saint Willibrord])698년에 세운 수도원(Abbey of Echternach)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이 수도원은 종교 세밀화가 유명하며, 안에는 그의 무덤이 있다. 기적을 일으켰다고

알려진 그의 성유물(聖遺物)은 성령강림제 다음의 첫 화요일마다 행해지는 유명한 성지 참배와 무도행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곳의 또 다른 유적지로는 13세기에 지은 장크트페터운트파울 교회와 후기 고딕 양식의 주랑(柱廊)이

있는 시청건물이 있다.

 

요새의 도시인 룩셈부르크의 수도 룩셈부르크 city 

룩셈부르크(시티)는 '작은 성채'라는 뜻인데, 알제트강(Alzette riv.)과 그 지류인 페트루스(Petrusse)

강이 굽이굽이 휘돌아 감싸고도는 절벽 위의 성곽 도시이다. 과거 로마인들과 프랑크족이 이 두 강으로

둘러 싸여 있는 절벽 위에 요새를 세웠고, 이 요새를 중심으로 중세도시가 발달했다.

 

룩셈부르크 관광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헌법광장 

룩셈부르크의 남쪽에 있는 기차역과 북쪽에 있는 구시가를 연결하는 루스벨트대로(大路) 건너편에

있는 헌법광장은, 구름공원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페트루세 계곡에 위치해 있다. 광장에 있는

황금의 여신상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침공군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룩셈부르크 전몰용사들을

위하여 만들어 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히틀러에 의해 철거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이곳은

아돌프 다리와 파세렐 다리를 잘 조망할 수 있는 등 룩셈부르크의 photo point이자 조망지다.

 

 
헌법광장에서 바라본 아돌프 다리
 
유럽 중세 도시는 배수로가 길 중앙에 많다

 

룩셈부르크 신시가지와 구 시가지를 연결해주는 아돌프 다리

페트루세강에 높고 깊은 아치(Arch)로 건설된 아돌프 다리(pont Adolphe)는 높이 46m, 길이 84m인데,

돌로 만든 이 다리는 1889~1903년 건설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였다고 한다. 파세렐 다리

(Pont Passerelle)와 함께 신시가와 구시가를 연결하고 있는데, 교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룩셈부르크

시를 대표하는 경관으로 소문나 있다.

 

 
두칼 궁전(Grand Ducal Palace 대공작大公爵 궁전)
룩셈부르크 노트르담 성당(Notre Dame Cathedral)
 
아름다운 노트르담(Notre Dame)성당 내부

 

위엄 있는 노트르담 성당(Notre Dame Cathedral)

1613년 예수회 수사이자 건축가인 장 데 브록리가 설계한 노트르담 성당은 당시 바로크 양식이 유행

하고 있었지만, 후기 고딕 양식으로 간결하고 위엄 있는 성당으로 세웠으며 이후 르네상스 양식이 가

미되었다. 노트르담 성당 첨탑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어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국가적 행사

나 대공가(大公家)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행해지며, 잔 대공(大公)과 벨기에 조세핀 샬로트 공주의 결

혼식도 여기서 거행되었다.

 

룩셈부르크를 구경하는 방법으로는...

룩셈부르크를 관광하려면 관광안내소의 팜플릿이나 여행서를 참고해도 되겠지만, 룩셈부르크 시티

투어 프로그램도 좋을 것이다. 그 중 룩셈부르크 관광 안내청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가이드 투어가 추

천할 만하다. 구시가지의 그랜드 두칼 궁전(Grand Ducal Palace 그랜드 두칼 궁전)과 복포대(Case mates 

Du Bock)를 포함한 룩셈부르크 성벽은 꼭 둘러 봐야 한다.

 

복포대(Casemates Du Bock)는 포대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길이는 23km에 이른다. 1867년 요새 시

설이 철거되기 전까지 한때는 1,200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있었다 한다. 지하도의 깊이는 무려 40m에

달하는 것도 있으며, 제1,2차 세계대전 중에는 3만 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폭격을 피하기도 했다.

 

복포대(Case mates Du Bock)는 룩셈부르크 성벽(Fortress of Luxembourg)과 함께 199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는데, 이 성벽을 따라 도는 시내 투어인 Wenzel track은 우리로 치면 서울

성곽둘레길 투어에 해당한다.

 

 

룩셈부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최고의 생활수준을 누리는 지역으로. 로맨틱한 고성(古城),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 ‘유럽의 진주’라 불린다. 독일여행이나 서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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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룩스 3국은 물가가 비싸지만, 고속도로 통행요금은 무료

베네룩스 3국은 기름값, 숙박비, 음식 등 대체로 물가가 비쌌다. 공공 주차장의 주차요금은 대개  동전

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벨기에는 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었다. 독일은 고속도로 통행 요금이 무료였다. 

베네룩스 3국 역시 고속도로 요금이 무료였다. 심지어 프랑스 동북부 지역인 메스와 낭시로 가는 
고속도로 요금도 무료였다. 다만, 베네룩스 세 나라와 독일, 프랑스 모두 도로 표지판이나 안내판이 

각기 제 나라말(네덜란드어, 룩셈부르크어, 독일어, 불어)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흔히 보던 글자가 

아니어서 해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대부분 영어가 부기되어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베네룩스 3국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그네들은 영어도 잘 하였기에 언어 소통에 문제없었다.

 

이로써 베네룩스 3국 구경을 마치고, 프랑스의 메스와 낭시를 돌아본 다음, 독일의 트리어와 슈파이어

를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여정이 이어졌다.

 

- 프랑스의 메스와 낭시는 다음에 (계속) -

(벨기에 03)-헨트,리에주+ Rayonnant(레요낭 양식),Flamboyant(화염식 양식)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벨기에,헨트-헨트의 종탑,반 에이크의 제단화,Feestfiets
            리에주-생 자크성당(성 야곱 성당),생폴(St.Paul 성바오로)성당,

            Rayonnant(레요낭 양식), 후기고딕양식,Flamboyant(화염식 양식)

 

(배경 영상,음악)  [하얀 연인들] Main theme from '13 Jours En France'-연주 노동환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or 동영상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vVQIDuOuH1E"<=요걸 클릭

 

 

풍요로웠던 운하 도시 헨트(Ghent, Gent) 홈피링크: www.gent.be  다음백과: 헨트 [Gent]

헨트의 photo point 생 미셸 성당(우측)과 운하

브뤼셀 서쪽 50km 쯤 떨어진 헨트는 벨기에 북서부에 있는 동(東)플랑드르 주의 주도(州都)이다.

기에어와 불어로 헨트(Ghent, Gent)는 영어 발음으로 겐트인데 라이에 강과 스헬데 강의 합류지

에 있다. 이들 강 주변에는 섬유풀이 많이 자랐기 때문에 헨트가 섬유, 방직산업의 중심지로 발전

할 수 있었다. 7세기에 세워진 헨트는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중세 때는 플랑드르

지방의 중심지로 파리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고 풍요롭고 부유한 도시였으며, 오늘날은 벨기에 제

2의 항구도시이다.

헨트 시청사와 성 바프 대성당의 종탑

 

시청건물은 여러 건축양식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1518~35년에 세워진 북쪽 정면은 화려한 고딕

양식의 훌륭한 표본이고, 이보다 약 1세기 후에 완성된 동쪽 정면은 르네상스 양식이다.

 

반 에이크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

                                      그림출처: 위키백과-Ghent Altarpiece

 

고딕 양식으로 12세기에 지은 성 바프 대성당(Sint Baafskathedraal)에는 얀 반 에이크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 The Adoration of the Lamb〉가 있는데, 이 그림은 플랑드르 회화의 명작

이자 15세기 유럽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제단화는 ‘인간 구원의

역사’를 표현한 작품으로, 100여 명의 인물과 50여 가지의 식물이 묘사돼 있다.

 

세계문화유산 헨트의 종탑(Belfry)

헨트의 종탑(Belfry)은 14세기(1314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맨 꼭대기 종루는 나중에 증축한 것이

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종탑의 높이는 약 90m로 53개의 종이 매달려 있고, 종루 첨탑 끝에

는 겐트의 감시와 수호를 상징하는 3.5m의 황금 독수리상이 있다. 중세시대에는 종탑이 그 도시의

위상과 번영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었는데 잘 사는 도시일수록 종탑은 더 높고 화려했다.

 

성 니콜라스 성당(Saint Nicholas' church)

니콜라스 성당은 13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전체적으로는 고딕 양식을 띠고 있으며, 내부의 장식은

바로크 양식이 가미되었다.

헨트의 성 니콜라스 성당 Saint Nicholas' church

 

중세시대의 온전한 모습을 느껴보려면 운하 보트를 타야...

중세나 지금이나 헨트의 중심은 운하이다.
운하 옆에 자리한 생 미셸(St. Micheal)성당

 

중세 시대의 항구였던 곳에서 출발하는 보트투어(Boat-Tour)를 하면 운하를 따라 계단식 지붕이

있는 오래된 길드하우스와 성(城)과 교회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과 헨트의 아름다운 풍경

들을 볼 수 있다. 외관이 아름다운 성 야곱(St. Jacob's) 성당과 운하 바로 옆에 자리한 생 미셸

(St. Micheal's) 성당이 볼만하다. 니콜라스 성당에서 생 미셸 성당으로 넘어가는 생 미셸 다리는

헨트의 수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며, 생 미셸 다리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헨트 제1경이다.

 

헨트의 시가지에는 자동차, 전차, 마차, 자전거, 사람이 뒤섞여 다닌다.

 

한편 시가지는 자동차와 트램(tram 지상전차)이 공유하며 다니는데, 도로는 인도와 구분이 안 되어

있고 자전거와 관광객을 위한 마차까지 그 위로 뒤섞여 다닌다.

 

헨트에는 중세 상인들의 길드하우스 외에도 유명한 수도원과 성당들이 많다. 13세기에 건축한

'악마의 제라르 성'은 현재 주립문서보관소로 쓰이고, 14세기의 직물회관과 중세 도시생활의

중심지였던 금요시장이 남아 있다. 1180년 플랑드르 백작 필립이 건축한 The Gravensteen(백작의

성)도 볼만하다.

지붕 옆선이 계단식인 플랑드르 지방의 건축물

 

<파랑새>의 작가 마테를링크의 고향 헨트

헨트는 벨기에 시인이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고향이다.

그는 틸틸과 미틸 남매가 주인공인 <파랑새>를 쓴 작가로 191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파랑새’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믿을 수만 있다면...

<파랑새>는 '파랑새를 찾아 헤맸으나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거기 있더라'

는 내용으로,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전야에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나선 남매(틸틸과

미틸)가 요정과 함께 꿈속을 헤매며, 추억의 나라와 밤의 궁전, 행복의 왕국과 미래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파랑새를 찾지만 결국 못 찾고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문득 자기들이 기르던 새장

속의 새가 바로 그 파랑새라는 것을 알게 되고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벨기에의 고도(古都) 리에주   홈피링크: www.liege.be  다음백과: 리에주 [Liege]

벨기에 남동부 독일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리에주는 우르트 강과 뫼즈 강이 만나는 곳에 있

는데, 서유럽에서 3번째로 중요한 하항이며 벨기에에서 2번째로 큰 철도중심지이다. 벨기에

왈롱 지역의 중심지이므로 프랑스어를 많이 쓰며 오래된 성당들이 많이 남아 있다.

 

721년 성 후베르트가 자신의 관구를 이곳으로 이전해옴에 따라 도시를 이루게 되었으며,

약 1,000년 동안 주교들이 다스리던 지역이었다. 그 당시 주교들의 보호령은 헬데를란트 상

부에서 프랑스 접경지대인 샹파뉴까지 이르렀다.

 

17세기에 프랑스인들이 이 지역을 침략하여 1795년 이곳을 합병했으나, 1815년 네덜란드

로 넘어갔다. 1830년 벨기에 혁명 후 벨기에 영토가 되었으며 1891년 뫼즈 강 방어를 위한

중요한 성채가 만들어졌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 독일에게 점령당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심한 공중폭격을 받기도 했다.

 

리에주의 주교 궁전 - 프랭스 에베크 궁전(Palais des Princes-Évêques)

아름다운 리에주 주교궁 회랑 아치(arch)와 돌기둥

 

Palais des Princes-Évêques는 Palais(궁전) Princes(군주) Évêques(주교)의 뜻이다. 리에

주의 중심가 생 랑베르 광장에 있는 프랭스 에베크 궁전은 현재 리에주에서 가장 큰 건물로

주청사와 법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11세기에 이곳을 다스렸던 주교 스와브 노제

의 거주지로 지어졌는데,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하지만 주교궁에 장식된

나뭇잎 조각 등이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어, 16세기 이전의 고딕 조각(링크:고딕 조각) 양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생 자크 (Saint Jacques) = 성 제임스(St. James) = 성 야고보(야곱)

   참고 Daum 백과사전: 야고보 [Saint James]

프랑스어 생 자크(Saint Jacques)는 스페인어로 산티아고, 영어로 성 제임스(St. James)인

데 우리말로는 야고보라고 한다. 사도 바울로(Paul 바울, 바오로)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도교

사도 중 한 사람이었지만 원래의 12사도에는 들지 않는다. 베드로와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

과 함께 '교회의 기둥’이었다.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혼선이 있는데, 예수와 야고보의 관계에 대해 형제였다는 설, 이

복형제였다는 설, 사촌 간이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그가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 예수를

따르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바울로에 따르면, 야고보가 나중에 회심한 것은 부활

한 그리스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리에주의 성 야곱 성당(Eglise Saint Jacques 생 자크 성당)

벌집 모양의 천정-(오르간 쪽)
아름다운 천정-(익랑 쪽 확대)
성인이 조각된 중앙 천정쪽(확대)

 

성 야곱 성당의 불꽃장식 아치와 스테인드글라스

 

리에주의 성 야곱 성당(Eglise Saint Jacques)은 리에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일반

적인 성당과 달리 성인 조각들이 벌집 모양의 천정에 장식되어 있다. 생 야곱 성당의 파사

드(Facade 정면)와 종탑은 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이지만, 성당 측면은 15~16

세기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이라 후기 고딕양식(레요낭 양식 참고:Rayonnant , 후기 고딕 양식)

이다. 

 

생 폴(St. Paul) 성당

생 폴(St. Paul) 성당의 제단부와 불꽃장식 아치
생 폴 성당(St, Paul Cathedrale)의 매력적인 회랑&amp;amp;nbsp;

 

후기 고딕양식(Rayonnant style)   위키백과:Rayonnant, 다음백과: 후기 고딕 양식 

고딕 양식이 세월이 좀 지나자 1240년~1350년 사이 건물 규모나 크기보다는 장식에 더 관

심을 갖게 되어 레요낭 양식(Rayonnant style)이 나타났다. 이 레요낭 양식은 프랑스에서

한층 더 장식적인 플랑부아양(Flamboyant 火炎式 화염식) 양식으로 발전했는데, 이 건축양

식은 150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영국에서는 수직양식(Perpendicular style)이라고 부르는 건

축양식이 1375년경부터 1500년경까지 사용되었다.  

  
  
 
 



레요낭 방식의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장미창  

    그림 출처: 위키백과 Rayonnant
   
  


레요낭 방식의 facade(전면부)-프랑스 뜨루와 성당
   그림출처: Church of St Urbain, Troyes

   

Flamboyant(화염식 양식)의 벽체와 기둥 
   그림출처: 위키백과 Flamboyant

   

Flamboyant(화염식 양식)의 창과 장식 격자창&amp;amp;nbsp; &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 예: Facade of Sainte-Chapelle de Vincennes &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 출처: 위키백과&amp;amp;nbsp;Flamboyant


Flamboyant(화염식 양식)의 창과 장식격자창 
Sainte-Chapelle de Vincennes
출처: 위키백과 Flamboyant

 

플랑부아양(Flamboyant 火炎式 화염식) 양식

     참조:두산백과 플랑부아양 양식 [Flamboyant style])

Flamboyant(화염식 火炎式) 양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고딕 건축의 개구부(開口部)나 창

을 S자 모양의 불꽃무늬로 장식된 창살이나 장식 격자로 꾸민다는 것이다. 플랑부아양 양식

에서는 벽의 면적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어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수직기둥 형태로 변했고,

그 결과 유리와 장식격자(트레이서리)만 남게 되었다. 

 

장식격자(참조: 트레이서리 [tracery], 장식격자 [裝飾格子, tracery])란 건축에서 창이나 그밖에

개구부(開口部)를 꾸미는 데 쓰는 장식창살을 말한다. 

 

이에 반해 영국의 수직양식은 창문의 장식격자(트레이서리)에 수직선을 많이 사용하고 창문

크기를 최대한 확대했으며 내부의 여러 층을 합해 하나의 통일된 수직면으로 만들었다는 것

이 특징이다.

 

리에주의 생 폴(St. Paul 성 바오로) 대성당(Cathedrale St. Paul)

 17세기 벨기에 조각가 델쿠르 작품 –생 폴 대성당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생 폴 대성당 제단부 

 

과거 리에주의 주성당 역할을 하던 생 랑베르 대성당이 프랑스 혁명 때 붕괴되면서 1812년

부터 생 폴 대성당이 리에주의 주성당이 되었다. 성당 파이프 오르간 앞의 성(聖) 장 밥티

스트(Saint Jean-Baptiste) 조각은 1682년 제작된 것으로 벨기에의 대표 조각가 길 델쿠르

의 작품이다.

 

후기 고딕 양식인 레요낭(rayonnant) 양식의 특징 중 하나인 S자 모양이 중복된 불꽃무늬의

장식을 제단부나, 설교단, 창틀에서 볼 수 있으며, 우아하면서도 화려함을 뽐내는 천정 장식

과 천정 그림은 탄성을 지르게 한다.

 

지난 번 퀴즈 (Quiz): 이것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의 (답과 설명) 

 

우리나라의 포장마차처럼 생긴 Feestfiets(네델란드어)는 Festival(축제)+Bicycle(자전거)의

뜻으로 지붕이 달린 이동식 bar(酒店 주점)인데 총각파티를 하기 위해 빌린 것이다.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대면서 먹고 마시고 떠들썩하게 거리를 돌아다닌다. 술 취하지 않은 한 사람

이 운전을 하고 안에 탄 사람들이 페달을 밟아 이동하는데, 언덕을 만나면 몇 사람이 내려

뒤를 밀어줘야 한다.  

 

-벨기에 편은 이걸로 마치고 다음은 ‘룩셈부르크’와 프랑스의 ‘메스’, ‘낭시’로 간다.-

 

(계속)  

 

(벨기에 02)-브뤼셀,루뱅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벨기에,그랑플라스,플랑부아양 양식,루뱅,꽃카페축제,옴메강축제,겨울축제,

                   브뤼셀 왕립 미술관, 아르누보,빅토르오르타.알폰소무하,오줌싸개동상,

                   벨기에 와플과 맥주,홍합요리 물르.
                   루뱅,루뱅대학교 기록물,루뱅학살 사건

 

 아래 비디오(옴메강 축제 장면)을 보려면아래 화면 중앙의 ▷ 를 클릭

 만약, 아래 화면(창)이 안 보이면 다음 링크를 클릭~ 

        https://www.youtube.com/watch?v=8abZeZsjJ_M&feature=youtu.be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EU)의 수도인 브뤼셀(Brussels)  

             홈피:  be.brussels  , 위키 백과: 뤼셀

브라반트 公(1229 이후), 부르고뉴 公(1430, 브라반트 공령 병합)치하에서 15~16세기에 번
영한 브뤼셀은 벨기에 북서부의 브뤼헤와 독일 쾰른을 연결하는 중계지로 발달하였다. 모직
물, 마(麻)직물, 타피스리(tapisserie 벽에 거는 융단], 레이스(lace 뜨개질한 수공품]가 이
도시의 특산물이었다.  

 

벨기에의 최대 도시인 브뤼셀은 스헬데 강의 지류인 센(젠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는 국
제경제 및 정치의 중심지이다.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네덜란드어)를 공용어로 쓰는 벨기에
내에서, 브뤼셀은 플라망어 사용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대도시 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시청사 건너편에 있는 길드하우스와 왕의 집(우측)

 

브뤼셀의 중심부에 위치한 큰 광장 그랑플라스(La Grand-Place) 

     홈페이지: http://www.brussels.be/artdet.cfm? id=5757&

     참조- 위키백과: 그랑플라스 [Grand Place] , 두산백과: 그랑플라스 [La Grand-Place]

 

브뤼셀의 시가지는 크게 로얄팔라스와 그랑플라스로 나뉜다. 로얄팔라스는 왕궁과 관청, 왕
립미술관 등이 모여 있으며 그랑플라스에는 길드하우스, 왕의 집, 시청사 등 규모가 큰 건
물들이 있다. 그랑플라스 근처에는 오줌싸게 동상과 해산물 요리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
는 부셰거리(Rue des Bouchers)와 생 튀베르 갤러리(Galeries St. Hubert)가 있다.

휘황찬란한 그랑플라스의 야경(우측이 시청사)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한 그랑플라스(Grand Place

큰 광장)는 가로 70미터, 세로 110미터의 광장으로, 12세기부터 벨기에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흐로터 마르크트(Grote Markt ‘큰 시장’이란 뜻)로도 불렸던 이 광장은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시청사,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로 둘러싸여 있어 유럽에 와 있다는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진다.

그랑플라스의 남서쪽에 있는 브뤼셀 시청사와 종탑

 

광장의 남서쪽에 1444년에 완성된 시청사(브뤼셀 시청사 [Brussels Town Hall]) 는 브라반트

고딕 양식으로 브뤼셀에서 가장 높고 큰 건축물 중 하나다. 시청 종탑은 얀 판 루이스브로크

(Jan van Ruysbroeck)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종탑 정상에는 금빛의 미카엘 대천사 동상이

있다. 중세시대 상업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해주는 길드 하우스(17세기 말)는  플랑부아양

양식(플랑부아양 양식 [Flamboyant style])의 건축물로 맥주박물관(홈피: Brewers Museum)

으로 이용되고 있다.

 

1515년에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왕의 집(la Maison du Roi)은 현재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

고 있는데 오줌싸개 동상이 입었던 옷도 전시하고 있다. 초콜릿 박물관이 있는 브라반트

(Brabant) 공작의 집은 브라반트 공작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곳이지만 건물 앞에 브라반트

공작의 흉상(胸像)이 놓여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16세기에 르네상스 또는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건물 앞면)로 바뀌었는데 금

빛 칠을 더하였기에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이곳은 이 지역의 문화와 사회를 특징짓는 건

축 및 예술 양식을 절충적이고 성공적으로 혼합한 훌륭한 본보기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그랑플라스 광장에서는 수시로 행사가 펼쳐지는 데, 꽃 카펫축제(http://www.flowercarpet.be/)

때는 이 광장이 꽃으로 도배되고, 옴메강 축제(링크:Ommegang)때는 행렬(퍼레이드)로 광장이

가득 찬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전등 장식이 화려한 겨울축제(Winter Wonders)가 펼쳐진다.  

 

그랑플라스 광장에 조명이 켜지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하지

(夏至) 바로 지난 시기라 밤 10시가 지나서야 야경(夜景) 분위기가 났다.

 

브뤼셀 왕립 미술관(Musée Roayl des Beaux-Arts) 

         홈페이지: www.fine-arts-museum.be

1838년에 세워진 이 미술관은 고대와 근대 미술 특히 플랑드르화파(링크:플랑드르의 회화)작가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1464), 루벤스(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 멤링크(Hans Memling, 1435∼1494) 등의 작품과 만날 수 있다. 마그리트 미술

관(Musée René Magritte http://www.magrittemuseum.be/)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마그리트의

작품들이 있어,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관람해야 할 곳이다.

 

아르누보(Art Nouveau)의 본고장 벨기에 브뤼셀

아르누보 양식은 19세기말-20세기 초에 걸쳐 기존의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

형태에서 모티프를 빌려 새로운 표현을 하고자 하였는데, 유동적인 곡선을 즐겨 사용한 것

이 특징이다. 보통 꽃과 식물의 줄기, 휘몰아치는 물결 등을 소재나 모티브로 하여 형태와

선을 만들고 리듬감을 형성한다.  참조: 두산백과 아르누보  

 

1890년에서 1905년까지 15년간의 아르누보의 전성기 동안 유럽 전역과 전 세계에 큰 영향 

력을 미쳤으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벨기에에서는

아르누보(Art Nouveau 새로운 예술)라 불렸지만 영국, 미국은 ‘modern style 현대 양식’,

독일은 유겐트 양식(Jugendstil 젊은 양식), 이탈리아에서는 ‘스틸레 리버티(Stile Liberty 자

유 스타일)’, 오스트리아, 헝가리에서는 ‘제체시온슈틸(Secessionsti 분리 양식, 빈 분리파 )’로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데르니스타(Modernista 현대운동)‘로 불렸다. 참고:[문화예술] 아르누보

 

프랑스의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는 아르누보 양식을 지하철 입구 건축에 도입해 새로운 파

리의 경치를 만들었고, 공예가였던 에밀 갈레는 낭시에 있는 예술 학파의 중심에 있었다.

빅토르 오르타는 베를린의 아르누보 양식 건축에 큰 영향을 행사했다. 유겐트와 같은 잡지

도 독일에서 이 스타일의 확산을 도왔다. 오스트리아 빈의 분리파 예술가들은 예술과 건축

에 있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체코 전역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 아르누보는 또한 구스타

클림트와 찰스 레니 매킨토시, 알폰스 무하, 르네 랄리크, 안토니오 가우디, 루이스 컴포트 

파니와 같은 예술가들 개개인들의 움직임이기도 하였다. 

 

‘아르누보’ 건축양식은

      내용출처:19세기 말 변혁의 시대 ‘아르누보’ 건축양식…철과 유리, 화려한 장식의 심미적...

아르누보의 양식적 기원은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을 처음 촉발한 영국의 월리엄 모리스였고 ,

이 조류를 주도한 대표자는 벨기에의 알리 반 델 벨데이다. 아르누보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통해 유럽 미술의 전면에 자리잡았다. 19세기 로코로양식의 부활, 고딕 부활, 미술

공예운동, 심미주의운동, 그리고 상징주의 회화와 문학에서 특히 크게 영향 받았다. 따라서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 파사드(앞면)는 화려한 조각이나 테라스로 장식되며. 내부는 물결무늬

의 철골 구조와 유리 장식품으로 채워져 로코코의 화려함에 견줄 만하다.

 

아르누보 건축가로는 ‘요제프 마리아 올리브히‘, ‘빅토르 오르타’, ‘찰스 레니 맥킨토시’와
아르누보 건축의 창시자라 불리는 ‘앙리 반 데밸데’와 시대를 넘어서는 건축적 가치와 정신
을 실현한 ‘안토니오 가우디’가 있다.

 

아르누보의 두 거장들 - 빅토르 오르타와 알폰소 무하

벨기에는 ‘아르누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고 이 양식이 완성된 곳이다. ‘아르누보’ 거장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 1861~1947)는 벨기에의 건축학자이자 아르누보를 확장한 인

물이다. 브뤼셀에 있는 타셀 저택(Hôtel Tassel), 솔베이 저택(Hôtel Solvay), 반에드벨데 저

택(Hôtel van Eetvelde), 오르타 저택 및 아틀리에(Maison & Atelier Horta)은 빅토르 오르

타가 설계한 저택으로 19세기말 아르누보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꼽히며, 2000년 유

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urojournals&logNo=110112571624

 

알폰소 무하 (참고: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알폰스 무하(1860~1939)는 체코의 화가이며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

다. 1894년 Théâtre de la Renaissance에서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알리기 위한 석판 포

스터 Gismonda를 만들었는데, 무하의 아름다운 포스터는 큰 호평을 받아 유명해졌다.

 

F.Champenois  광고 -알폰소 무하의 작품-

알폰소 무하의 출세작 ‘Gismonda’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바트요(Casabatllo)

 

하지만 아르누보는 유미주의 및 상징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다방면에 걸쳐 전개되었지

만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미적 감각을 추구하려는 애초 의도는 아쉽게도 사회적 경

제적 제약들과 장식 과잉의 매너리즘에 빠졌다. 또한 아르누보가 추구하는 수준 높은 생산

물은 대량생산의 어려움 등으로 대중화를 어렵게 했다. 이것은 아르누보가 비교적 단명하게

끝난 이유이기도 하다.

 

브뤼셀의 생미셀 대성당(Cathedrale St-Michel 성 미카엘 성당)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닮은 생미셀 대성당
생미셀 대성당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이 성당은 정식 이름이 Cathedrale Saints-Michel-et-Gudule 이므로 성 미카엘 대천사(St.

Michel 미카엘 [미카엘 (대천사)])와 성녀 구둘라(St. Gudula, Gudula)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122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7세기까지 4세기에 걸쳐 지어진 벨기에를 대표하는 최고의

성당으로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이 치러진 곳이다. 현재 국왕인 필리프 1세의 국왕

즉위식도 2013년 7월 이곳에서 열렸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닮은 이 고딕양식의 성당은 두 탑의 높이가 69m나 되며, 내부

의 크기도 대단하다. 특히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답기가 세계적

으로 명성이 나 있다.  
 

브뤼셀의 아이콘 중 하나인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 오줌싸는 마네킹)

뉴욕에 ‘자유 여신상’, 코펜하겐에 ‘인어 조각상’이 있다면 벨기에 브뤼셀에는 ‘오줌싸개 동

상’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어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크기가 작아(높이 60Cm) 실망

할 수도 있다.  참고: 위키백과 Manneken Pis 

 

오줌싸개 소년은 방뇨하는 소년을 본뜬 동상분수(銅像噴水)로, 세계 다른 나라에도 유사품

이 많이 있지만 여기가 원조다. 1619년 제롬 듀케뉴아가 낡은 옛 청동상을 대체해 만든 높이

약 60㎝의 청동상인데, 1960년대에 분실하여 현재 설치 되어 있는 것은 복제본이다. 맥주의

고장답게 이 꼬마 분수에선 때로 물대신 맥주가 나오기도 한다.

 

이 동상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는데, 14세기에 프라방드 제후의 왕자가 소변을 보고 적군을

모욕했다는 설과,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분수대에서 오줌싸는 아들을 발견한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외에도 마녀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소년

이 오줌을 싸자 화가 난 마녀가 소년을 동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와 프랑스군이 브

뤼셀을 방화하려고 하자 이를 지켜보던 소년이 오줌을 싸서 그 불을 껐다는 얘기가 전해진

다.

 

7월4일이라 미국 국기 옷을 입은 오줌싸개 동상
 
 초콜릿으로 만든 오줌싸개 동상(발부분)과 와플
 
벨기에의 국민 음식 moules(물르)과 프리트(frites)

 

오줌싸개 동상은 전쟁이 났을 때 숨겨져 특별 보호를 받았지만 적군들에게 수차례 약탈되기

도 했다. 프랑스가 약탈해갔다가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다시 돌려주었는데, 그냥 돌려주기가

뭣하여 오줌싸개 동상에 옷을 입혀서 돌려주었다 한다. 그 후로 여러 나라 국빈이나 유명 인

들이 옷을 기증하는 관습이 이어지게 되었고, 그동안 이 오줌싸개 소년이 갈아입은 의상만

칠백 여 벌이 넘는다. 그동안 입었던 의상 중에는 우리나라 색동옷뿐 만아니라 각 나라의 민속

의상과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과 미키 마우스 복장도 포함되어 있다.

 

초콜릿, 맥주, 홍합이 있는 동화의 나라 벨기에   링크: www.visitbelgium.com

벨기에를 동화같은 나라로 표현하는데, 도시나 마을 풍경이 중세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운하

를 따라 펼쳐지는 경치는 동화의 그것처럼 아름답다. 초콜릿과 벨기에 와플(벨기에 와플)등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 만화 ‘개

구장이 스머프’, ‘땡땡의 모험(틴틴의 모험)’의 고장이기도 하거니와, 만화 강국답게 전 세계

로 만화를 수출하고 있으며 만화 박물관(www.cbbd.be)도 있다. 또한 악기박물관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인데. 이곳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악기 박물관으로 악기 약 2000여점이 있으

며 각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부쉐거리엔 홍합 찜이 유명한 &lsquo;레옹 Leon&rsquo;이&nbsp;있다
여러 가지 벨기에 맥주들과 그중 하나인 Judas

 

벨기에에서 홍합을 먹지 않고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벨기에 홈페이지에서 선전하는 ‘음

식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꿈을,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국을’ 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

할 것이다. 

 

벨기에의 대중적이고 국민 요리인 홍합 요리는 우리 같은 관광객의 입맛에도 썩 잘 맞는다.

바닷가에 위치한 벨기에는 다양한 해물요리가 발달하였는데 홍합 찜 요리인 물르(Moules)

가 유명하다. 화이트와인이 배어 있는 물르(Moules)는 짭짤한 바다맛과 특유의 홍합향이 입

맛에 달라붙는다. 브뤼셀의 먹자골목 부쉐거리(Butcher's Street)에는 유명 홍합 요리 맛집

들이 많이 있는데 유럽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삐끼(引 hiki 손님 호객 행위자)’를 볼 수 있

다. 1893년에 최초로 문을 연, 홍합 전문점의 원조 ‘셰 레옹 Chez Leon’이 특히 유명하다.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등록 상표만 해도 490 여 개로 국민 1인당 맥주 생산율이 가

장 높다. 맥주는 에일, 라거, 흑맥주 등이 있는데, 과일 맛(복숭아 맛, 체리 맛) 나는 것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제조사마다 전용 유리잔이 따로 있다. 안주는 대개 프리트(Frites 감자

튀김)이다.

 

벨기에는 초콜릿의 본고장답게 어디를 가든 초콜릿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오

줌싸개 동상 초콜릿은 어느 가게나 하나씩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벨기에 초콜릿을 대표하

는 브랜드(상표)로는 고디바, 길리안, 노이하우스, 레오니다스, 피에르 마르꼴리니가 유명하

다. ‘Guylian 길리안’은 세계 식음료 품평회에서 ‘2010 Superior taste AWARD’를 수상했다. 

 

작은 도시지만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한 루뱅(Louvain)

       다음백과:루뱅 [Louvain]  위키백과:뢰번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불과 동쪽 24km 지점에 위치한 루뱅(Louvain)은 네덜란드어 뢰

번(Leuven)이나, 흔히 프랑스어 명칭인 루뱅으로 불린다. 루뱅은 벨기에에서 가장 유명한

교육도시인데, 1425년 교황 마르티노 5세의 인가를 받아 네덜란드 최초의 가톨릭 대학이

설립되어 학술, 문화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알프스 이북(以北)의 대학 중 파리대학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학이었다. D.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G. 메

르카토르(Gerard Mercator, 1512~1594), J. 립시위스(Justus Lipsius, 1547~1606) 등과

같은 저명한 철학자들이 이곳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가톨릭 개혁을 시도한 곳으로 세계사적

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많은 인물 조각이 새겨진 화려한 루뱅 시청사
15C~18C 대학 모습이 기록된 ‘루뱅대학교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근대 초기 대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루뱅대학교의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기록물의 내용은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루뱅대학교가 어떻게 학생들과
관련된 장학제도를 운영하였고, 대학 내 부속기관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성직자들만의
영역이었던 대학교가 국가 기관으로 변신하면서 종교개혁 과정에 대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
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가 진행되던 시기에 중세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인본주의 사
상이 갈등하게 되었을 때 대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루뱅 학살 사건’

1914년 8월 25일 독일군이 루뱅으로 진격하면서 고의적으로 루뱅대학교 도서관에 불을 질렀다.

당시 진격 일정을 맞추기에 혈안이 된 독일군이 벨기에 루뱅에서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 및 도시

 파괴를 저질렀다. 때문에 아직도 루뱅 시에서는 독일 국기를 게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

다. 내용참조: 제1차 세계대전 (엔하위키 미러)

 

(Quiz) 다음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Quiz) 다음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해답은 다음 편에...

(계속)

(벨기에 01)-브뤼헤(브뤼허),안트베르펜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벨기에,브뤼헤(브뤼허),플랑드르,플랑드르회화,반 에이크 형제,카리용,                 

             안트베르펜-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대성당 제단화,루벤스, 

 

 (배경 영상,음악)  플란다스의 개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or 동영상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QIuRjoicafU<=요걸 클릭

 

 


벨기에(Belgium 벨지움) 개관       위키백과: Belgium

벨기에의 정식 명칭은 벨기에왕국(Kingdom of Belgium)으로 입헌 군주국이다. 유럽의 북서 부, 북해 연안에 있어 온대 해양성의 기후를 보이며,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베네룩스 3국 중 하나다.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벨기에

 

벨기에의 면적은 약 3만㎢로 경상 남, 북도를 합친 정도인데, 인구는 약 1,132만 명으로 인구

밀도가 높다. 종교는 75%가 가톨릭교를 믿으나, 도시나 공업지역에서는 개신교가 증가되는 

분포이다. 전 국민의 약 58%를 차지하는 북쪽 플랑드르 지역의 플라망족(스스로는 '플라밍 

Vlaming’이라 함)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31%를 차지하는 남쪽의 왈로니 지역의 왈롱인 

(wallons)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참조: 민족문화대백과 벨기에 (벨기에왕국) [Belgium]

 

벨기에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이다. 또한 국제기구들은 수도 브뤼셀이나 그 근교에

본부를 두고 있다.

 

벨기에의 역사 

     위키백과: Belgium ,민족문화대백과: 벨기에 (벨기에왕국) [Belgium] 

 

기원전 3세기부터 겔트족과 게르만족이 라인강을 건너 이곳에 이주해 와 ‘벨그’라는 종족을

이루었다. 벨기에는 본래 네덜란드의 남부 지역이었으나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8~1648년)

이후 북부와 분열되면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793년 프랑스가 벨기에를 합병하였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벨기에는 북부의 네덜란드 연합 왕국과 합쳐지게 되었지만 절대주의 통

치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신앙적인 차이로 인해 왈롱인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

했다.

 

1830년 7월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이 혁명에 자극받은 왈롱인들이 1830년 8월에 벨

기에 혁명을 일으켰다. 1831년 7월 21일 레오폴드(Leopold) 1세를 국왕으로 하는 벨기에

왕국을 세우면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고 헌법을 제정하였다.

 

벨기에의 요즘  

벨기에는 1993년에 연방 국가로 탈바꿈했으나,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 심화되어 전 국왕이

었던 알베르 2세(Albert Ⅱ)의 중재아래 2008년 3월에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2010년 6

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540일 가량 무정부 상태였는데, 500일 이상 지속된 벨기에 무정

부 상태는 이라크를 제치고 ‘최장 기간 무정부 상태 지속’이라는 불명예스런 세계 신기록

(기네스북 신기록)을 세웠다.

 

2013년 7월 알베르 2세의 양위로 새로운 벨기에 국왕이 된 필리프 1세는 1960년생(금년56

세)으로 알베르 2세와 파올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다. 한편 2014년 10월 새로 출

범한 벨기에 연립정부의 샤를 미셸 신임 총리는 나이도 금년 40세로 젊은 총리이다.

 

플랑드르(Flandre  영어:플랜더스 Flanders)란?   

      내용출처: 다음 백과 플랑드르 [Flandre]

오리가 놀고 있는 운하 옆 교회 풍경(브뤼헤 근교)

 

플랑드르(Flandre)란 벨기에 말(語)로 ‘블렌데렌(Vleanderen)’, 영어로 ‘플랜더스(Flanders)’

인데 '저지대' 또는 '물이 범람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오늘날 프랑스의 노르 주

와 벨기에의 동플랑드르·서플랑드르 주, 네덜란드의 젤란트 주로 나뉘어 있다.

 

과거 플랑드르(Flandre) 지역은 벨기에 서쪽을 중심으로 네덜란드 서쪽에서부터 프랑스 북

쪽까지를 포함한 지방으로 11세기 이후 모직물업으로 도시가 번성했고, 벨기에가 독립하여

분리될 때까지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의 지배를 받았다. 

 

‘플랜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

      참고 링크: 플랜더스의 개 [A Dog of Flanders])

‘플랜더스의 개는 네로(Nello)와개 파트라슈(Patrasche)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위다(Ouida)의

소설로 1872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1975년에 쿠로다 요시오 감독이 TV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로 각색했다.  

  

플랑드르(Flandre) 회화      내용 참조 링크: 두산백과 플랑드르의 회화

플랑드르 회화가 융성한 시기는 15세기 초이지만 일반적으로 16세기까지 네덜란드와 벨기

에서 발전한 미술을 가리키며, 17세기 초 네덜란드가 독립한 후에는 벨기에 지방 미술의 대

명사로도 쓰이고 있다.

 

15세기에 들어서 네덜란드의 형제 화가 반 에이크(Van Eyck) 형제가 출현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화려한 북방 르네상스의 회화를 전개하였다. 형은 후베르

트(Hubert, 1370년 경 ~ 1426년)이고 동생은 얀(Jan, 1390년경 ~ 1441년)이다. 플랑드르

르네상스(북방 르네상스)라고 할 경우에는 독일 르네상스도 포함된다. 그들이 그린 벨기에

헨트(Gent) 대성당의 제단화 〈어린 양에 대한 경배 Adoration of the Lamb〉(1432)는 플

랑드르 르네상스의 최고 걸작이다. 그들의 사실주의 기법은 재질감과 빛 그리고 자연의 공

간 효과를 충실히 묘사하는 기법을 완성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링크: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는 플랑드르 회화의 창시자로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정교한 세부묘사와 중세 말 부르고뉴 궁정의 호화로움을 묘사한

그림들을 그렸다. 또한 얀 반 에이크는 거의 모든 작품에 서명을 한 최초의 플랑드르 미술

가 중 한 명이다.

 

플랑드르 회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생동하는 감각적 표현과

뛰어난 회화 기법으로 유명하다.

 

15세기에는 반 에이크형제 외에도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한스 멤링, 휘호 판 데르 휘스, 디르크 보우츠, 히에로니무스 보슈 등 개성있는 화가들이 활약

으며, 16세기에는 농민생활을 그린 화가 브뤼헐(대 피터르 브뤼헐 1525~1569)하다. 

 

17세기에는 호화찬란한 회화를 탄생시킨 거장 루벤스가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8년간의

이탈리아 체재 중에, 당시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카라바조의 새로운 자연주의와 카라치 일파

의 절충주의를 배움과 동시에 르네상스회화, 고대의 미술 등에서도 많은 것을 배워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다. 17세기 벨기에(플랑드르)에는 루벤스 외에도 후반생(後半生)을 이탈리아

에서 활약하고 영국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안톤 반 다이크(안토니 반 다이크)를 비롯하여,

야콥 요르단스, 아드리엔 브로우베르, 다비드 테니르스 등 훌륭한 화가가 배출되었다.

 

그러나 18세기부터 19세기 전반에 이 지역은 한갓 프랑스회화의 지방화단으로 전락하였고,

겨우 19세기 중엽 제임스 엔소르가 나와 플랑드르 회화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그 후에도 새

로운 표현주의와 쉬르레알리슴 회화에 상당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오늘날에는 유럽 화단의

커다란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플랑드르 지방의 독특한 계단식 지붕  

브뤼헤 종탑이 있는 마르크트 광장에는 플랑드르 지방의 독특한 계단식 지붕선들이 보인다.

엄격히 말하자면 지붕이라기보다 지붕 옆의 계단형 끝처리이다. 대개 벽돌로 쌓은 벽에다

지붕을 마감할 때 이렇게 계단식으로 처리했다. 동화(童話) 속에 나오는 풍경을 연상케 하

는 이 독특한 지붕 모양은 과거 플랑드르로 불렸던 벨기에 북부와 네덜란드 북서부 지역에

서 많이 볼 수 있다.

 

방문했던 벨기에 도시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브뤼헤(Brugge)

홈피:www.brugge.be  다음백과:브뤼헤  ,  위키백과:브뤼허

멀리 종탑이 보이는 브뤼헤 운하

 브뤼셀 서쪽 약100km에 있는 브뤼헤는 벨기에 서(西) 플랑드르주의 주도(州都)이다. 브뤼헤

는 13세기에 한자 동맹의 중심지였고 플랑드르 지방에 대한 실제적 통치권을 갖고 있었다.

14세기에 상업의 전성기를 맞았으나 15세기 이후 운하와 즈윈 만에 토사가 퇴적되어 대형

선박의 항행에 지장이 있자 교역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쇠퇴하였다.

 

그러나 부르고뉴 공작(부르고뉴 공작)가의 거주지이자 플랑드르 학파 미술의 중심지로서의 영향력

은 16세기까지 계속되었고, 시내에는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의

동상이 있다.

 

19세기에 운하가 재건되고 중세의 건물을 보수하여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다시 탄생되었다.

‘벨기에의 베니스’로 불릴 만큼 운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구시가지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

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브뤼헤를 둘러싸고 있는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시내 구경하는 보트투어 가격은 7.6유로며 배로 한 바퀴 도는 데 약 40~50분 소요

된다. 구시가지에서 북해 해안의 브뤼허-제이브뤼허 항구까지는 15km로 작은 배는 다닐 수 있다.

 

베긴회(Béguinage) 수도원과 사랑의 호수   위키백과: Béguinage

지붕끝이 계단형인 브뤼헤 베긴회수도원(Begijnhof)

 

베긴회 수도원은 12세기경 벨기에 리에주 지역의 수도사였던 램버트 베그가 생을 마감하면

서 자신의 재산을 고아들을 위한 수도원으로 바친 것에서 시작되었다. 베긴회 수도원은 벨

기에의 다른 도시뿐만아니라,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지에도 수도원이 있다. 그중 브뤼헤의

베긴회 수도원은 벨기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이 수도원 앞에는 오리들이 평화로이 노니는 ‘사랑의 호수’가 있다. 

 

브뤼헤 마르크트광장(Markt Platz 시장 광장)과 종탑(Belfry)

시청사와 길드하우스들이 둘러싼 마르크트광장

 

브뤼헤의 중심인 마르크트광장에는 시청사와 13세기에 지어진 길드하우스(guild house) 건

물들이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히스토리움은 브뤼헤의 역사를 둘러 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

이며, 광장 북쪽의 법원 건물은 1878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네오고딕 스타일로

1892년 다시 완공되었다. 다양한 창틀과 여러 가지 모양의 벽체를 가진 길드하우스 등 여

러 건물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지붕 옆을 계단식으로 처리한 것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흔

히 볼 수 있다.

1240년에 세워진 높이 83m의 종탑(Belfry)

 

마르크트 광장 한쪽에 1240년에 세워진 종탑(Belfry)은 높이 83m로, 종탑에 올라가면 운하

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를 잘 조망할 수 있다. 종탑은 브뤼헤의 상징으로 종루 꼭

대기에는 거대한 1개의 종과 46개의 또 다른 종들이 있다. 각 종은 크기에 따라 다양한 음

색과 파장의 종소리를 들려주는데, 이 브뤼헤 종탑의 종소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

끗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브뤼헤의 종탑(Belfry)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종탑 중

하나이며, 매주 3번 종소리를 이용한 카리용 콘서트가 열린다. 이 종탑은 안트베르펜의 성

모마리아 성당 종탑과 함께 플랑드르지역의 31개의 종탑을 묶어 ‘벨기에와 프랑스의 종탑

들’이라는 이름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카리용(Carillon)   참조 다음백과: 카리용 [carillon]

카리용은 성당이나 관청의 종을 말하는 데, 스무 개 이상의 종을 달아 멜로디와 다양한 화

음을 만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종탑에 설치되며 종의 추에 줄로 연결된 나무 레버(lever)나

페달(Pedal)이 달린 클라비어(Klavier 건반)로 연주하며, 근대에 들어와 전기로 추를 움직여

연주하는 것도 있다.

 

유럽의 카리용은 14세기에 추(錘) 회전장치가 발명되어, 해머(망치)와 줄에 연결된 레버의

물림쇠를 벗기면 해머가 종을 치게 된다. 카리용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기술자 프랑수

아 에모니와 피에르 에모니에 의해 그 정점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종을 정확한 음정으로 조

율한 최초의 인물들이다. 특히 종의 내부 조율(종의 복합적 음향을 구성하는 배음(倍音)들의

조율) 방법을 완성함으로써 200년 동안의 숙제를 해결하였다.

 

벨기에의 메헬렌은 16세기부터 카리용의 중심지였으며 1557년에 그곳의 생롬볼 성당에서

최초의 시(市) 카리용 연주자의 지위가 주어졌고 그 성당의 카리용은 세계에서 유명해졌다.

 

브뤼헤(Brugge)의 성모마리아(Notre Dame 노트르담) 대성당과 성혈성당(聖血聖堂)

브뤼헤의 성모마리아(노트르담성당) 대성당에는 반 다이크의 회화가 있어 플랑드르 미술의

면모를 볼 수 있으며 미켈란젤로의 ‘성 모자상(母子像)’ 조각이 있다.

 


  브뤼헤 성모 마리아(노트르담) 성당
 성혈성당 입구

 

성혈성당(聖血聖堂 Basilica of Holy Blood 14~16세기)은 1150년 제2차 십자군전쟁에 참가한 

플랑드르 백작 브랜들리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예수의 성혈(聖血)을 모신 예배당으로 유명

하다. 이 일을 기념하여 매년 5월 승천제 행렬이 여기서 출발하는데, 중세 풍속을 재현하는

다양한 행렬이 이루어진다. 이 보혈의 행렬은 200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뢰닝 박물관 Groeninge museum  홈페이지: Groeningemuseum

이곳은 플랑드르 지역에서 왕성했던 플랑드르 미술부터 현대 미술(모던 아트)과 수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18-19세기의 네오클레식과 리얼리티, 상징주의와 관련한 작품

들이 유명하며,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볼만하다.

 

안트베르펜(네: Antwerpen,  불어: Anvers 앙베르, 영어: Antwerp 앤트워프)

  홈피: www.antwerpen.be  내용 참조-다음백과: 안트웨르펜 [Antwerpen], 위키백과: 안트베르펜

안트베르펜은 벨기에 제2의 도시로 19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였다. 북쪽으로 네덜란드와

국경에 접한 안트베르펜은 스헬데·데일레·네테·루펠 강이 흐른다. 이전에는 브라반트 공국에

속했으며 켐펜란트에서 이곳과 리에주를 잇는 알베르 운하(1930~39)가 개통됨으로써 아연,

구리, 핵에너지 산업이 확장되었다. 북부 및 중부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켐펜란트 고원 지역

은 사구(砂丘), 금작화 자생지, 황무지, 메마른 목초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침엽수 조림

지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Notre Dame 노트르담) 대성당

안트베르펜의 성모 마리아대성당의 종탑은 높이가 123m로 멀리서도 잘 보이는데, 이 성당의

제단화는 플랑드르 미술의 대가인 루벤스의 작품이다.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림'-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성당

 

새로운 감각으로 지어진 안트베르펜 중앙역(中央驛) 

아르 누보(Art Nouveau) 양식의 '안트베르펜 중앙역사'

 

‘안트베르펜 중앙역사(驛舍)’는 규모도 엄청나지만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으로 지어졌다.

보통 역사들의 플랫폼은 지상에 있지만 이곳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플랫폼은 수직으로 지하

5~6층 구조이다. 이 역사와 연결된 아케이드에는 다이아몬드 가게들이 즐비한데, 사실 앤트

워프는 500년이 넘는 다이아몬드 상거래 지역으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의 80%가 거래되는

다이아몬드의 도시이다.

 

(계속) 

 

 

네덜란드(3)-네델란드 음식과축제,맥주, 도개교,/헤이그.가우다(하우다),바를러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

네덜란드,헤이그.가우다(하우다)치즈,바를러,도개교,Dutch pay(더치패이),

Holland Festival,튤립축제,게이축제,홍합찜-물르,

청어,프리트,하이네켄,바바리안맥주,그롤쉬맥주

 

(배경 영상,음악)  'Time' · Nancy Sinatra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or 동영상이 안 나올 수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JQloFxqs6qA<=요걸 클릭

 

 

나의 베네룩스 루트(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나 의 베네룩스 3국 루트

의 베네룩스 3국 루트: (네덜란드)암스테르담-헤이그(덴하흐)-하우다(gouda)-킨더다이크(풍차공원)-바를로-   

(벨기에)안트베르펜-헨트(Gent)-브뤼허(Brugge)-브뤼셀-(룩셈부르크)에슈 쉬르 쉬르

 

네덜란드의 행정수도 헤이그(네:덴하흐 Den Haag) 

      홈피:http://www.denhaag.nl/home.htm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둘러보고, 헤이그(네: Den Haag 덴하흐)를 보러 갔다. 참고

로 네덜란드 단어엔 aa처럼 같은 a를 겹쳐 쓰는 경우가 많고, g 는 [h] , ’ㅎ‘ 발음이다.

 

네덜란드 행정의 중심지 헤이그는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는데,  헤

이그(영어:The Hague, 네덜란드어: 덴하흐 Den Haag)는 ‘백작가의 사유지’라는 뜻이다. 네

덜란드의 정부 부서와 대법원, 네덜란드에 주재하는 각국 공관이 헤이그에 있으며, 국제사

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화학무기금지기구 같은 여러 유엔 기구가 소재하고 있다.

 

헤이그 밀사사건(헤이그 密使事件)  내용 참조: 헤이그특사사건 [─特使事件]

고종(高宗)의 밀사(密使) 이준 열사의 ‘헤이그 밀사 사건’이 있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 이

곳 헤이그에 있다. 당시 이준열사가 묶었던 용 호텔(de Jong)을 한 네덜란드 교민이 사들

여 [이준열사 기념관]으로 열었다. 참고 링크: 문화재청, 헤이그특사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개최

 

헤이그 특사사건(特使事件) 또는 헤이그 密使사건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파견했던 사건이다. 1907년 고종

은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소집하는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을사조약이 대한제국 황제의 뜻에 반하여 일본제국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조약임을 폭

로하고 을사조약을 파기하고자 했다. 

 

한국 대표들은 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이위종이 유창한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실력으로 대한제국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하는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

었다. '조선을 위해 호소한다!'는 제목의 연설 내용은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

었으나 대한제국의 처지를 불쌍히 여길 뿐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후 이준은 헤이

그 특사활동 20일 만에 머물던 호텔(de Jong 용 호텔)에서 사망하는데 이준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7월 20일 양위식을 강행하였다. 그리고 이어 순종이 즉위하고 4일 후 한일신협약이 체결되

었다.

 

 
헤이그에 있는 이준열사 기념관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 사법 재판소(國際司法裁判所, 국제사법재판소)

영어: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ICJ), 프랑스어: Cour internationale de Justice(CIJ))는

상설 국제 법원으로서 유엔헌장에 근거하여 1945년에 설립된 유엔 자체의 사법 기관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Vredespaleis)에 소재한다. 분쟁 당사국들의 분쟁을 국제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유엔 총회 또는 안전보장이사회는 법적 문제에 대해 재판소에

유권 해석을 내려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하우다 치즈’ 의 고향 하우다(Gouda)  위키백과: 하우다

속칭 ‘고다(Gouda 네덜란드 발음:하우다) 치즈(링크:하우다 (치즈) - Wikipedia)의 고향 하우다(Gouda)는

암스테르담 남쪽 50Km에 있는 작은 도시로 1272년 도시권이 주어졌으며 하우다 치즈, 파이프 담배,

15세기 시청으로 유명하다. 

 

우다 치즈는 네덜란드의 남부 하우다(Gouda)지방이 유명하여 그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지금은

우유의 카세인으로 만든 노란 치즈를 흔히 ‘하우다 치즈’라고 부른다. 치즈 모양은 동그란 쿠션(방석)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국경이 퍼즐 조각처럼 얽힌 바를러    위키백과 참조: 바를러 (Baarle)

 

 
퍼즐 조각 같은 바를러. 짙은 갈색이 벨기에 땅이다
 
+로 표시된 국경선과 NL(네)과 B(벨)로 국가 표시

 

바를러는 네덜란드 남쪽 국경 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국경이 찢어진

조각처럼 얽혀 있다. 13세기에 브라반트의 공작이 브레다(Breda)에 땅을 줄 때 비옥한 곳을

군데군데 자신의 것으로 남겨 두고 죽었는데, 1403년에 브레다의 남작이 이곳 나사우의 백

작이 되면서 그의 영지는 바를러나사우, 브라반트 쪽의 땅은 바를러헤르토흐로 불리게 되었

다. 그 결과 바를러는 국경이 이쪽저쪽으로 복잡하게 갈라지게 되었다.

 

네덜란드 쪽을 바를러나사우(Baarle-Nassau),벨기에 쪽을 바를러헤르토흐(Baarle-Hertog)

라 한다. 바를러헤르토흐는 존더레이헌(Zondereigen)이라 불리는 ‘본토’와 네덜란드 쪽 땅

에 둘러싸인 20개의 위요지(圍繞地:일정한 토지를 둘러싸는 둘레의 땅)로 나뉘어 있다. 벨

기에 땅 안에 네덜란드 땅이 있는데, 가장 큰 땅(영역) 안에 여섯 개, 두 번째로 큰 땅(영

역) 안에 한 개의 네덜란드 위요지가 있다.

 

이곳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에 걸쳐 있는 집도 있는데, 그럴 땐 대문을 기준으로 국

적이 결정된다. 심지어 안방과 건넌방이 소속 국가가 다른 경우도 있으며, 가족들의 국적이

다른 경우도 있다 한다. 하지만 국가가 다르고 세금 내는 곳이 달라도 이들은 평화롭게 살

아 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운하와 배, 자전거와 풍차, 튤립 꽃밭과 넓은 목축지

의 가축일 것이다. 목축지의 경계는 대개 물(운하)이므로 따로 철망을 치거나 담을 쌓지는

않았다. 운하에는 사람과 자동차도 건너가야 하므로 특수하게 설계된 도개교(跳開橋)를 많

이 볼 수 있다. 작은 도개교(跳開橋)는 사람과 자전거만 건너지만, 자동차가 지나가는 큰 규

모의 도개교에는 철도 건널목처럼 신호등과 함께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물건 올리고 내

리는 도르래가 설치된 전원주택에는 잘 가꿔진 장미꽃이나 예쁜 정원을 볼 수 있다.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하는 도개교((跳開橋)
물건 오르내리는 도르래가 설치된 주택
자동차가 건너는 도개교((跳開橋)에는 차단기가 ...

 

    Dutch에 대해      참조: 네덜란드어 (Netherlandic language)

네덜란드 언어를 영어로 더치(Dutch)라 쓰는데 중세엔 'Dietsc', 'Duutsc'였다.

독일어 'Deutsch'도 같은 것으로, 종교와 학문의 언어인 라틴어와 비교해서 단순한 ‘

민중의 언어'라는 뜻을 지녔다. 공식 명칭은 'Nederlands' 또는 'Netherlandic'이

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홀란트어(Hollands)라고도 한다.

 

Dutch coffee(더치커피)      (내용 참조 위키백과: 커피 )

더치커피(Dutch coffee 네덜란드풍의 커피)란 말은 일본에서 마케팅을 위해 만든 말이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 ‘더치커피'라 하면 알아듣지 못하며 Drip coffee(드립 커피)와 대조되

는 단어인 Cold brew(콜드 브류)로 표기하고 있다. 

 

더치커피(dutch coffee)의 유래는 대항해(大航海) 시절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동남아 지역

에서 커피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장기간의 항해 중에 커피를 먹기 위해서 고안했다고 전

해지지만, 관련된 문헌은 전혀 없으며 사실상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다.

 

다른 커피 추출법과 달리 찬물로 추출하기 때문에 카페인이 적거나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 커피보다 카페인이 많을 수도 있다. 카페인의 특성상 70도 이상에서 추출이

활발히 일어나지만 그 이하 온도에서도 추출이 일어나기 때문에 장시간 추출되는 더치커피

의 특성상 많은 량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디카페인 커피(Decaffeine

coffee)로 더치커피(Dutch coffee)를 추천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지식이다.

 

Dutch pay(더치패이)

비용(費用)을 각자 부담하거나 돈 계산을 할 때 자기 몫을 각자 계산하는 방식을 더치패이

(Dutch pay)라고 하나, 콩글리시며 Dutch treat / go Dutch 등이 올바른 영어 표현이다.

더치패이의 우리말은 ‘추렴’이다. 원래 네덜란드와 식민지를 놓고 경쟁했던 영국인들이 네

덜란드인들의 접대 문화를 낮추어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출처: http://kids.hankooki.com/lpage/edu/201304/kd20130415155937118750.htm

 

네덜란드의 축제

Holland Festival(http://www.hollandfestival.nl/nl/)은 국제적 페스티발로 1947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국제 공연 예술을 이끌고 있는 축제로 음악, 오페라, 댄스, 연극 관련

로그램이 6월 내내 열린다. 여왕 탄신일(Koninginnedag 4월30일)도 큰 행사로 손꼽히는

데, 이때에는 온 시가지가 오렌지 빛깔로 바뀌며, 사람들은 집에서 만든 물건이나 골동품

내와서 팔거나,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떠들썩하게 지낸다.

 

매년 3월에 열리는 큐켄호프(Keukenhof) 튤립축제(www.keukenhof.nl) 역시 이름난 축제다.

또한 1975년부터 5년마다 5일 동안 개최되는 유럽 최대의 해상축제인 암스테르담 항해

제(Sail Amsterdam Event)는 암스테르담 설립 7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세

계 각국에서 온 수백 척의 배가 참가한다.

 

게이프라이드(Gay Pride)는 세계적인 게이축제인데, 이름그대로 게이를 중심으로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의 참가 외에도, 개방적인 나라답게 더 많은 일반인(이성애자)들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이때에는 암스테르담 시내가 무지갯빛으로 출렁인다. 사육제(사순

절 직전의 축제)같은 종교 행사는 가톨릭 세력이 큰 남쪽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다.

 

네덜란드의 음식

홍합 찜(네:mosselen 모썰른)
비린내 나는 청어(Haring)
약방의 감초 같은 프리트(frite)

 

네덜란드의 음식 중에서 홍합찜(네덜란드선 mosselen 모썰른 / 벨기에선 moule 물르) 요리

는 먹을 만하지만 청어요리는 비린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팬케이크와 프리트(frite 감자튀

김), 맥주는 꼭 먹어 봐야 한다.

 

네덜란드 팬케이크는 크레페(Crêpe)와 유사한데, 밀가루 반죽을 넓적하게 부친 후 그 위에

설탕, 잼, 시럽 등을 올리고 뜨거운 생강 즙을 뿌리기도 한다. 포퍼처스(Poffertjes)는 작은

크기의 팬케이크를 바삭해질 때까지 구운 다음 설탕이나 시럽을 뿌려 먹는 스낵으로 암스테

르담의 팬케이크 베이커리(Pancake Bakery http://www.pancake.nl)가 유명하다.

 

무엇보다 네덜란드 음식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프리트(friet 감자튀

김)인데, 이것만 전문으로 파는 곳도 많다. 이 프리트(감자튀김)는 그냥 먹기도 하고 마요네

즈에 찍어 먹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맥주 안주로 많이 먹는다.

 

네덜란드의 맥주

 
맥주의 왕 ‘하이네켄’
바바리아 맥주
초록 숲에선 나온 맥주 ‘그롤쉬’

 

네덜란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는 4개의 대형 양조장(하이네켄, 바바리아, 그롤쉬, 인

베브)에서 생산되며, 네덜란드의 맥주 시장의 50%를 하이네켄이 차지하고 나머지 세 회사

가 각각 15%씩 점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맥주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유럽인 등 세계 사람들

에게 사랑받고 있다. 실제 네덜란드 맥주가 독일 맥주보다 유럽 시장을 더 장악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맥주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하이네켄(www.heineken.com/kr)맥주는

1873 년 ‘하이네켄 맥주회사’가 설립되어 약 140년의 역사를 지녔다. 투명하고 시원스런 녹색

에 톡 쏘는 맛과 거칠고 쌉쌀한 느낌이 라벨의 붉은 별 만큼이나 상큼하다. 암스테르담에는

과거 하이네켄 맥주 공장이었던 건물을 하이네켄 체험관으로 개방하여 관광들을 불러 모으

고 있다.

 

네덜란드의 맥주 회사 바바리아(Bavaria)는 1719년 창립 이래 3백년간 맥주를 생산해 오고

있는 유럽 내에서 가장 큰 맥주 제조 회사인데, 1978년에 무알콜 맥주를 처음 만들었다. 바

바리아는 독일 남동부 지방 바이에른(Bayern)의 영어 이름이다.

 

'초록 숲서 나온 술'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롤쉬(Grolsch) 맥주

       내용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10708550589051

‘그롤쉬 Grolle(그롤)’은 초록 나무란 의미로 1615년 피터 꾸페이(Peter Cuyper)가 맥주 공

장을 설립한 이래 400년 전통을 가진 맥주로, 하이네켄과 함께 네덜란드의 대표 맥주이다.

재활용 가능한 코르크 마개가 독특하고 병에 새겨진 맥주의 원료인 맥아 그림과 grolsch라

는 돋을새김이 이채롭다.

 

그롤쉬맥주는 야채맥주로 알려진 환경 친화적 맥주로 무려 36종류나 된다. 그롤쉬는 청량

하면서도 깊이 있는 씁쓸한 맛을 내는데, 이 독특한 맛과 향의 비결은 맥아, 호프, 물 등 엄

선된 최상의 천연원료와 함께 사용되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홉과 숙성 시간에 기인한다.

 

그롤쉬는 세계 각지에서 열린 유수의 주류 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았을 만큼 최상의 성분과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샴페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스윙탑(Swingtop)' 뚜껑을 장착하고 있

어, 보는 재미도 있지만 병을 열 때 '뻥∼'하는 소리가 나서 듣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그 외의 술로는 네덜란드 Gin(진)인 Bols Genever(제네버)는 쥬니퍼베리(Juniper berry 노

간주나무)로 만든다. 제네버는 Gin의 원류로 네덜란드에서 생산되어 영국으로 넘어가 Gin

으로 변형되었다. 머리가 돌 정도로 독한 술로 이걸 한잔 한 뒤 맥주를 마신다.

 

네덜란드 전통주로는 설탕과 달걀로 만든 달걀술 에드보카트(advocaat)와 약초로 만든 베

렌버그(네: 베이렌뷔르흐 Beerenburg ‘맛이 쓰다는 뜻‘)가 있다.

 

유럽(네덜란드)에서 숙박, 주차하기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호텔비뿐만 아니라 음식비, 주차료, 자동차 기름값 등 물가가 무척 비

쌌다.  암스테르담이나 헤이그 같은 경우는 호텔비, 시내 주차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자동차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신경 써야할 것 중의 하나가 ‘어디서 먹고 자는가’와 ‘차를 어

디에다 주차해야 되는가‘라는 것이다. 유적지나 볼거리가 몰려 있는 구도시의 도심(Center

/ 이탈리아:Centro)의 경우 호텔비도 비싸고, 자동차 차고 사용료를 추가로 내야하는 경우

가 많지만, 도시 근교의 호텔은 방값도 싸거니와 따로 차고 주차료도 받지 않는다.

 

구도시(old city)에는 주차할 곳이 많지 않으며, 심지어 이탈리아의 경우 도심통행제한

ZTL(Zona Traffico Limitato)이 있다. 공공주차장이 사설주차장보다 비교적 주차 가격이 싸

므로 유적지 근처의 공공 주차장이나 노상 주차장을 이용하게 된다. 참고로 대부분의 유럽

에서는 일요일이나 국가 공휴일의 공공 주차장의 주차료는 무료이며, 밤 시간 주차도 무료

이다. 다만, 야외 무료주차장의 방범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묵었던 네덜란드 농장&amp;nbsp;&amp;nbsp;
이 농장에서는 여러 사람이 자동차 캠핑 중이었다

 

우리는 도시 외곽에 호텔을 잡아서 숙박비와 주차비를 아꼈고, 시내에 나가서 어디에 주차

할 것인가에 대해선 미리 연구(고민)가 필요했다. 내비게이션이 있다 해도 외지인이 편하게

몇 시간씩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내비게이션에서 바로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 가족 같은 경우는 보다 저렴한 공공 주차장이나 노상 주차장을 주로 이용하였는데, 아

래의 방법도 주차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우선 해당 도시의 홈페이지에서 주차관련 내용을 알아보거나, 먼저 다녀간 이의 경험담

   을 인터넷으로 조사(surfing 서핑)하였다.

2. http://www.interparking.com/ , http://www.q-park.com/ 같은 유럽의 주차 체인 회사

  의 웹페이지를 통해 방문하려는 도시의 주차 관련 정보(장소, 비용)를 알아본다. 유럽 도

  시 주차비는 무조건 비쌀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유적지나 볼거리에 가까우면서도 생각보

  다 싼 대형 주차장들이 이런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다. 암스테르담, 브뤼헤, 브뤼셀, 룩셈

  부르크를 구경할 때 이런 주차장을 미리 검색해 보았다. 하루 종일 주차해도 10유로 미

  만의 주차비를 받는 곳도 있다.

 

(계속) 

-참고- 이전 네란드 여행기 바로가기.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여행기로 연결됨.

 

  (네덜01)-운하와 풍차,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 돌아보기 02) - 네덜란드의 화가들

  

  네덜란드(3)-네델란드 음식과축제,맥주, 도개교,/헤이그.가우다(하우다),바를러

 

네덜란드(2)-네덜란드의 화가들-고흐,고흐미술관,크뢸러뮐러미술관,렘브란트,루벤스,반다이크,베르메르,데 스틸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 Vincent" -고흐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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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스포츠 강국        

      네덜란드가 스포츠 강국인 이유는 네덜란드인들이 키(신장 身長)가 크고 체력이 강해서 일

것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타서 허벅지 근육과 다리 힘이 강해진 것도 한 요인일

테다. 자전거 대회의 인기는 축구보다 더할 정도이며, 구기 종목인 배구뿐만 아니라 겨울

스포츠인 스케이트 종목도 강하다. 운하가 얼어붙는 해에는 전국 11개 도시를 완주하는 엘

프스테덴토흐트(Elfstedentocht) 대회가 열린다. 한편 축구 실력은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

을 3번 달성한 축구 강국이지만 아직 우승한 적은 없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1988년

우승하였다. 

 

네덜란드는 미술(美術) 강국  

네덜란드의 관문 스키폴(Schipol = 스히폴) 국제공항 환승구역에는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컵과 나막신들이 있어 이 나라가 도자기의 나라임을 은근 과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공예

품으로는 델프트(Delft) 도자기와 붉은 색의 아름다운 마쿰(Makkum) 도자기를 들 수 있다.

도자기는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하였고, 17세기부터 중국 등

의 영향을 받아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네덜란드에는 국립미술관(http://www.rijksmuseum.nl/)

   반 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렘브란트 미술관(http://www.rembrandthuis.nl/en/)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4개의 큰 미술관이 있고, 개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외에도 각 시의 시립 미술관에 수많은 미술품

들을 소장하고 있어 미술 강국임을 알 수 있다.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할스, 수틴 등의 작품이 전시된 국립미술관이 17세기 미술을 보여준

다면, 반 고흐 미술관은 19세기 미술을 보여주는 미술관이다. 시립 미술관인 스테델릭 미술

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트위터: >https://twitter.com/stedelijk )은 19세기부터 21세기

까지 가장 최근의 미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네덜란드의 미술(회화) 분야에서는 17세기 초 유화 기법의 선구자 프란스 할스가 활약했고,

중엽에는 유화 기법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렘브란트 판 레인(렘브란트 판 레인)이 나타났다.

 

중산 계급이나 농민의 생활을 주로 그린 얀 스테인, 풍경화가 로이스달 등도 유명한데,  그중 

로이스달(로이스달 [Salomon van Ruysdael])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로 여겨진다.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 위키백과:  안토니 반다이크 - 위키피디아

루벤스에게 배우고 그의 조수로 있었던 반 다이크는 '플랑드르 그림'의 대표적 초상화가로

유명하며, 이탈리아에 유학하여 티치아노 · 베로네세 등 베네치아 대가의 감화를 받았다.

부드러운 구도와 아름다운 색채로 종교, 신화, 우의적인 제재도 취급하였으나 초상화가로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영국 화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1632년부터 찰스 1세

의 궁정 화가로서 죽을 때까지 2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십자가 강하>,

<찰스 1세의 초상> 등이 있다.

 

루벤스(Rubens 1577~ 1640)    참조 두산백과: 페테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십자가에서 내림(루벤스)-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성당

루벤스(Rubens)는 에스파냐의 벨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최대의 화

가로 당시 왕후, 귀족의 호화로운 취미와 현실주의를 가장 잘 표현하는 화가이다. 그의 역

량과 작풍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작으로는 1621∼25년에 제작한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왕

비의 생애를 그리스 신화와 교묘하게 연관시켜서 그려낸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바로크 회화의 진수이다.

 

반 다이크 - ‘찰스 1세의 초상’ –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Vermeer, Jan, 1632~1675)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황금시

대인 17세기를 대표하는 세 명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뛰어난 색조,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靜密感)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델프트 풍경>,

<레이스를 뜨는 여인>, <우유 따르는 여인>등이 있다.

  참고 두산백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Jan Vermeer]                           

베르메르가 고향 풍경을 그린 '델프트의 풍경'

명암 대비의 대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 ~ 1669)

    위키백과: 렘브란트 판 레인, 내용 참조: 렘브란트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인 렘브란트는 빛의 명암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한 화가로 유명하다. 제분업자의 아홉째 아들로 출생한 렘브란트는 역사화가

스바넨부르흐(Jacob Isaacsz Swanenburgh)로부터 배운 후, 암스테르담의 피테르 라스트만

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 후 출생지였던 라이덴에서 중진(重鎭) 초상화가로 인정받았고 1631

년 가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에 일약 초상화의 제일인자로 부상했다.

 

렘브란트의 걸작: 야경(夜警 야간 순찰하는 사람)-1642

 

      렘브란트의 화풍은 전기(1650 이전)에는 카라바조의 명암과 바로크적인 구도의 내면화에서

출발했으나, 후기에는 인간 심리의 심층을 조사(照射)하여 깊은 정신구조를 조형화한 신비

로운 화면이 되었다. 전기의 대표작으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다나에>, <야경(夜

警)>(1642), 후기에는 <바테시아>, <바다비아인의 모의>, <유태인의 신부>(1668~1669경)

등이 있다.

 

렘브란트는 많은 자화상 외에도 그의 데생(dessin) 작품 역시 또한 높이 평가되며 약 1300

점이 남아 있다. 데생(dessin)이란 채색을 하지 않고 주로 선으로 형태나 명암을 나타내는

회화 표현 방법이다.

 

판화에도 조예가 깊었던 렘브란트  

렘브란트는 판화(版畫)에도 조예가 깊어 판화의 에칭 기법을 개발하였고, 질적으로도 뛰어

난 작품을 전 생애에 걸쳐 300 점을 제작하여 판화가로서도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다. 에칭

(링크:에칭 [etching])이란 동판(銅版 구리판)에 긁힌 자국을 만들어 판화를 찍어 내는 기법이

다. 즉 동판에 밀랍·역청·송진의 혼합물로 된 바탕(그라운드)을 입히고 그 위를 뾰족한 도구

로 밑그림을 그린 후 동판을 부식액에 넣으면 동판에 홈이 파이고 형태가 새겨진다. 홈이

새겨진 동판에 잉크를 발라 종이를 압착시키면 판화가 만들어진다.


렘브란트의 박물관 (http://www.rembrandthuis.nl/en/)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박물관은 렘브란트가 1639년에서 1660년까지 살았던 집

으로 렘브란트의 판화 작품과 원본 에칭 전시 외에도 그의 판화 기법을 시연해 보여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생 2백90점의 판화를 제작했던 렘브란트는 15세기 네덜란드 동판화의 거장 마르틴 숀가

우어, 16세기 독일 작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뒤를 이어 판화를 독립된 예술장르로 격상시키

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드라이포인트 같은 기존의 판화기법에 제작과정이 간편한 부식동판

화 에칭을 접목해 선의 강약과 미묘한 명암변화를 자유자재로 다룬 그의 판화는 어둠과 빛

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대상을 부각시키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이 특징이다.

이 기법은 화면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하고 중심과 강조점만 밝게 처리하여 드라마틱한 효과

를 나타내는 기법이다. 흑백의 명암으로만 대상을 표현하는 단색판화는 이 같은 렘브란트의

특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매체였다.

 

 
렘브란트 판화, <설교하는 예수> (1643∼49)
그림 출처:
http://blog.daum.net/jinapower/13318824
렘브란트 판화, <목자들의 경배> (에칭, 1652)
그림 출처:
http://www.christiantoday.co.kr/files/cul/cul_20061223010926_seo2222.jpg

 

렘브란트의 판화는 유독 구약·신약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은 데, 그가 묘사한 빛

이 고요하면서도 강렬해 극적인 사건들을 묘사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대

표작 <설교하는 예수>(1643∼49)는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사건들을 표현한 것으로, 손을

하늘로 향하고 설교하는 예수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두드러져 보인

다. 

 

그의 또 다른 판화 <목자들의 경배>(에칭, 드라이포인트, 1652)는 들판에서 천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도착했을 때의 감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오른쪽 구석에서 나오는 불빛은 호롱불이 아니라 아기 예수에게 서 나오는 신성의 광채거나

은혜의 불빛으로 풀이된다. 렘브란트는 인공의 호롱불과 은혜의 불빛을 대조시켜 그분의 신

성을 강조한다. 서성록 교수의 평이다. 내용 출처:

http://cafe.daum.net/logos/8jq/2229?q=%B7%BD%BA%EA%B6%F5%C6%AE%20%C6%C7%C8%AD%20%B8%F1%C0%DA%B5%E9%C0%C7%20%B0%E6%B9%E8&re=1

 

네덜란드의 국민 화가 빈센트 반 고흐(van Gogh) 

       내용참조: 다음백과: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D%9D%90 

 

네덜란드에 와서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그림을 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19세기에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등장하여 네덜란드의

미술계를 꽃피웠다.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고흐

는 그의 생존기간 동안에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 명성은 급속도로 커

졌다.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에 끼친 반 고흐의 영향은 막대하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과 그의 同시대인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

며, 암스테르담 남동쪽 80km에 있는 크뢸러-뮐러 박물관(krollermuller.nl/visit)도 반 고흐

그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강력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그의 수많은 걸작은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 단 10년(1880~90년) 동안 만들어냈다.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해바라기>등이  대표작이다. <베 짜는 사람들 Weavers>, <감자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안타까운 일생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였다. 고흐는 어린 시

절 형의 죽음을 보았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을 싫어하여 기숙사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16살에 (빈센트) 고흐는 삼촌 빈센트의 권유로 헤이그에 있는 구필 화랑에 근무하게 되었는

데 1873년에 그의 회사는 그를 런던으로, 다음에는 파리로 발령했다. 그즈음 그는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잉글랜드 켄트 주의 감리교학교 램스게이트에서 견습교사가 된 다음

1877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1878년에 신학교를 그만둔 그는

보리나주로 알려진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평신도 설교자가 되었지만 곧 해고 되었고,

1880년에, 빈센트는 동생 테오의 제안을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85년과 1886년 사이 겨울에 반 고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미술 학교에 등록했지만 퇴

학당했다. 이즈음 고흐는 일본화의 밝은 색채와 캔버스 공간의 사용, 그림에서 보인 선의

역할에 감탄했으며, 일본화의 단순하고 솔직한 표현 방법, 색채들을 결합하여 분위기를 표

현하는 일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 창녀나 과부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상처 받고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소용돌이와

원색의 노란색으로 표현하여,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

> 등의 걸작들을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가 남프랑스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는 1888년 2월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Arles)로 갔는데, 그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을 유지하면서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표현하려 했다. 1888년 크리스마스이

브에 반 고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일으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랐으며, 1889년 4월말 정

신병원에 입원하였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있는 동안, 되풀이되는 발작에 시달리고 평온한

기분과 절망적인 기분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정신병원의 정원 Garden

of the Asylum>, <삼나무 Cypresses>, <올리브 나무 Olive Trees>가 이때의 작품이다.   

 

고흐가 조카 탄생을 축하해 동생 테오에게 그려준'아몬드꽃 Almond Blossom' -1890년 작품-

아몬드꽃은 매화처럼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꽃이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

의 불화 끝에 귀를 자르고, 자발적으로 들어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랑

하는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자, 조카의 탄생을 기념하는 선물로 주려고 그린 것이다. 이른

봄에 피는 아몬드 꽃처럼 조카가 고통을 잘 극복하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자살한 해의 마지막 봄에 그려진 그림이다.

 

1890년 그는 파리 북쪽 오베르쉬르우아즈로 돌아가 <옥수수밭>, <강이 흐르는 골짜기>,

<농부들의 오두막>, <교회> 등 시골마을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결국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에 세

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그가 살아 있는 동

안 팔린 작품은 데생 1점뿐이었다. 그를 무조건 믿었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활

을 유지했다. 1872년부터 테오와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은 그의 목표와 믿음, 희망과 절망,

수시로 달라지는 건강상태와 정신상태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서, 진실한 인간기록이라 할 수

있으며 독특하고 감동적인 전기(傳記) 자료이다.   

 

다음 링크들은 고흐의 그림이 소장된 곳으로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거나 다운 받을 수 있다. 

1) 반 고흐 뮤지엄 홈페이지:

    http://www.vangoghmuseum.nl/en/

2) 반 고흐 그림이 있는 사이트:

    http://www.vangoghmuseum.nl/en/search/collection

3) 크뢸러 뮐러(Kroller Muller)미술관 홈페이지: krollermuller.nl/visit

 

고흐의 그림을 많이 소장한 크뢸러 뮐러(Kroller Muller)미술관 

홈페이지: krollermuller.nl/visit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아를의 다리(跳開橋 도개교-고흐-

 

크뢸러뮐러(Kroller Muller)미술관은 암스테르담에서 남동쪽으로 80km 쯤 떨어진 호헤 벨뤼베

국립공원(De Hoge Veluwe)안에 있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네송이의 해바라기

Four Sunflowers Gone Seed>, <씨뿌리는 사람>, <밤의 카페 테라스 Terrace of a Cafe

at Night> 등 고흐 그림 90여 점이 있다. 고흐의 작품 외에도 모네, 르누와르, 세잔느, 피카

소, 몬드리안, 칸딘스키, 쿠르베, 밀레, 도미에 등 유명 작가의 작품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전개된 신조형주의(De Stijl 데 스틸-링크:더 스테일) 운동의 주요 작가인 몬드리안

(Mondrian)과 반데어레크(Van der Leck)의 작품들이 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자체도 훌륭한 건축 작품이며, 미술관 바깥의 조각공원에는 로뎅의 작

품 등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계속)

(네덜01)-운하와 풍차,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주요단어:운하,풍차,풍차의종류,자전거,암스테르담,에이설호,볼렌담,에담,잔세스칸스,킨더다이크

(배경 영상,음악)  클래식기타 명곡 모음(유튜브)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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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알아보기  [네덜란드관련 링크들]

네덜란드 정부 홈페이지 : http://www.government.nl/ ,  네덜란드관광청: www.holland.com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 네덜란드 여행 가이드 &지도 무료다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네덜란드 (네덜란드 왕국 , Netherlands) 

            위키백과: 네덜란드 [Netherlands]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네덜란드를 和蘭(화란 Holland 홀란드,홀란트)이라고도 불러왔는데 정

식 명칭은 네덜란드 왕국(네:Koninkrijk der Nederlanden = Kingdom of The Netherlands)

이다. 네덜란드(netherlands)는 '낮은 땅'이란 뜻으로, 실제 이 나라의 최고 높은 곳이 321m

이며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간척사업과 농지 개량사업이 발달하였다. 지도에서

보면 국토 곳곳이 물이 들어차 있어 지도에 구멍이 뻥뻥 뚫린 듯하다. 

국토 곳곳이 운하와 호수로 되어 있는 네덜란드의 땅

 

네덜란드의 북부 지역은 위도가 높은 곳(북위 52N)에 있지만, 북해의 난류와 편서풍의 영향

을 받는 해양성 기후로 1년 내내 온화한 편이다. 일 년 중 187일 정도 눈·비가 내리고 연간

평균 강수량은 915mm이다. 날씨가 온화하고 토양이 기름져서 원예와 낙농업이 발달하였으

며,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농, 축산물의 약 3분의 2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작은 운하와 풍차가 있는 암스테르담 근교의 목축지&nbsp;
암스테르담 근교 에담의 전형적인 네덜란드 풍경&nbsp;

 

네덜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경제공동체(EEC, 현 EC)의 창립국으로서, 제2

차 세계대전 후 선진 공업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주로 석유화학·금속·철강·수송·조선업이 발

달하였다. 북해 연안의 그로닝겐 지역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이

전에 세계를 누비던 화상(和商 화란 상인=네덜란드 상인)들이 다녔던 곳은 물론 전 세계를

무대로 교역하고 있는데, 2014년 2월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47,633 달러이다(세계13위).

 

네덜란드의 역사

켈트와 게르만인이 자리 잡고 살던 네덜란드에 로마인이 들어와 외국 지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BC 50년경인데 남부의 마스트리히트에 로마 시대의 요새 유적이 남아 있다. 이후

유럽은 베르됭 조약(843년)에 의해 서·중·동 프랑크로 나뉘게 되는데, 스헬데 강을 중심으

로 서쪽(현재의 벨기에)은 서프랑크 왕국에, 동쪽은 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10~13

세기에는 상업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홀란트 백작이 북부를 중심

으로 세력을 강화하였다.

 

14세기에 들어와서는 부르고뉴(부르군트) 공작 지배를, 15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

르크 가문의 지배를, 16세기에는 에스파냐(오늘날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이 후 네덜

란드는 종교개혁 등의 끈질긴 저항으로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내고, 1588년 공화국(국호는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으로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다.

 

네덜란드의 황금시기

1588년에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이 성립되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네덜란드는 해외 진

출의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네덜란드는 인도양과 동인도 제도의 여러 섬과 항구에서 포르

투갈을 몰아내므로써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해양을 주름잡던 대항해 시대가 막을 내리고,

네덜란드가 동방에서 상권을 거머쥐었는데 그 전진 기지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였다.

 

1602년에 설립된 동인도 회사(네덜란드)는 동인도의 여러 섬을 정복하고 이 지역의 특산품

을 강제로 재배케 하거나 향신료 등 생산품의 무역을 독점하였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남아

프리카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등지에 방대한 식민지뿐만 아니라 북미 대륙에도 뉴암

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을 건설하기까지 하였다.

 

동인도 회사란 17세기 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동양(동인도)에 대한 독점 무역권을

부여 받아 설립한 회사로, 각국의 동인도 회사는 동인도의 특산품인 후추, 커피, 사탕, 면직

물 등의 무역 독점권을 둘러싸고 경쟁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를 견제하려는 영국과의 계속

되는 전쟁에서 밀려나 세계 무역의 주도권을 영국에 빼앗기게 되었다.(출처:동인도 회사)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에도 진출하였는데, 일본에서는 나가사키에 활동 공간을 마련해 주

었으며, 네덜란드 문화를 배워 '난학'(蘭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차 대전 때 일본의 인도

네시아 침략으로 네덜란드와 사이가 안 좋았으나, 요즘은 네덜란드와 일본은 아주 친밀한

교류를 하고 있다.

 

이 네덜란드의 황금 시기에는 문화적으로도 황금기를 맞이하여, 렘브란트 판 레인, 요하네

스 페르메이르 등의 화가와 에라스무스,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도 배출하였다. 한편 에라

스무스는 로마 가톨릭 사제였지만, 《우신예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종교 개혁

자였으며,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인 루터나 츠빙글리의 사상 형성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

리된 잉글랜드 종교개혁(성공회)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 네덜란드는 1810년에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프랑스 영토가 되기도 하였지

만, 1815년 빈 회의의 결과 네덜란드 왕국이 새로이 탄생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종전과 동시

에 네덜란드 경제의 중요한 밑받침이었던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는 등 식민지들을 잃었지만,

네덜란드는 안정된 정치와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루고 세계로 진출하여 활약하는 등 상업 국

가의 위상을 떨치게 되었다.

 

한편 네덜란드와 한국과의 인연은 17세기 조선에 표류된 후 '하멜 표류기'를 써 조선을 서

양에 소개한 헨드릭 하멜과 조선 최초의 귀화 서양인인 박연(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이 있

다. 또한 구한말 고종의 밀사(密使)였던 이준 열사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 헤이그에 남

아 있다.

 

암스테르담 [Amsterdam]

      내용 출처: Daum 백과: 암스테르담 [Amsterdam] , 위키백과: 암스테르담 [Amsterdam]

운하에는 관광용 배뿐만 아니라 개인 보트도 다닌다

암스테르담은 약 1,000개의 다리로 연결된 9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 주민들이

홍수에 대비해 암스텔 강 양안에 둑을 쌓았고, 1270년에 암스텔 댐을 지었기에 암스테르담

이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네덜란드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 문

화의 중심 도시이다.

자전거의 천국 네덜란드 &ndash; 암스테르담

 

17세기에 당시 혼란했던 통화 사정을 바로잡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외환은행을 세웠는데, 그

후로 유럽 최대의 어음교환지역으로 발전했으며 그 결과 국제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에 세워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현재 주식거래 시장의 기반이 되었으며,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운하 뒤로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암스테르담 중앙역
운하를 다니는 보트로 시티투어를 할 수도 있다.

운하로 둘러싸인 암스테르담의 중세 지역은 암스텔 강 양안(兩岸)에 있다. 옛 건축물로는

13세기의 구교회와 15세기의 신교회, 로얄 궁전, 민트 탑, 웨스트 교회가 있다. 옛 유대인

구역에는 포르투갈 유대인 교회와 렘브란트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렘브란트 생가가 있다. 구

시가지에는 담 광장·레이드세플레인 광장·렘브란트스플레인 광장이라는 큰 광장이 3개 있는

데,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명소인 담 광장에는 왕궁과 2차 대전 기념비, 신교회가 있고

그 서쪽에는 안네 프랑크의 집이 있다.

 

암스테르담 도심에서 남서쪽 17km에 있는 스키폴(Schipol = 스히폴) 국제공항은 유럽의 중

앙에 위치하는 탓에 유럽에서 비행기가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공항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가는 여행객들이 자주 들리는 공항이다.  

 

네덜란드의 아이콘(icon)들

농사용 재료나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
음식이나 유제품 운반용 보온 상자가 달린 자전거
운하의 다리 위에 자전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것들로는 운하, 풍차, 꽃, 치즈, 자전거가 있다. 치즈 수출 등 세계적

인 낙농업 국가이기도 한 네덜란드는 튤립 축제가 있을 정도로 튤립의 재배와 수출량도 어

마어마하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데, 국토(땅)가 평평한

것도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점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동하기 위한 승용 자전거가

대부분이지만, 농업용 등 기타 용도로 쓰이는 자전거도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이 많은 암스테르담 시내는 자전거가 특히 많은데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가 많은 도시라

하며, 전 국민 한사람 당 2대의 자전거를 소유할 정도라 한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자전

거 전용도로도 자동차길 옆쪽에만 국한되지 않고, 버스 중앙 전용차로처럼 도로 가운데가

자전거 전용 도로인 곳도 있었으며 자전거 전용 신호등도 있다. 또한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는 모든 우선권이 자전거에 있기 때문에,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자전거와 접촉해 사고가 나

면 무조건 사고를 낸 사람이 모든 손해 배상을 해줘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전거 보관 거치대가 있긴 하지만 보관 장소가 부족한 탓에 가로등이나 심지어 운하를 건

너는 다리에다 자전거를 매달아 두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튼튼하고 좋은 자물통 값은 자

전거 값보다 더 비싸다는 우스개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coffee shop에서는 커피가 아닌 마리화나를...

네덜란드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로 공창(公娼)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 국가 최

초로 안락사(安樂死)를 인정한 나라이다. 1993년 동성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하였으며 일부

마약도 합법화하였다. 1976년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낮으며 인체에 피해가 적은 대마, 환각

버섯 등을 연성 마약(Soft Drug)으로 규정하여 5g 이하의 대마를 피우거나 소지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커피숍(coffee shop)간판에는 ‘join us’라고 유혹하는 말이 써져 있다.

 

하지만 대마가 주는 향락 때문에 대마를 끊지 못하는 대마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선 합법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선 불법이므로, 호기심이라도 마약은 하지 말

아야 한다. 비흡연자를 위해 마약이 든 케이크까지 팔리고 있으니 암스테르담 여행 시에는

주의해야 한다.

 

암스테르담 운하와 수상가옥(水上家屋 Boathouse 보트하우스)

 
 수상가옥(boathouse)에는 수도와 전기가 공급된다.
 
암스테르담의 운하의 여름 풍경. 차마 클로즈업은...

암스테르담에는 165개의 크고 작은 운하가 사방으로 뻗어 있고 1,292개의 다리가 있다. 유

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암스테르담에서는 땅이 모자라 소위 수상가옥(boathouse)을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전기, 수도, 가스 등이 연결되어 있다. 이 수상가옥(배)은 이동

도 가능하여, 수로를 타고 바다로 나가 이웃나라로 갈 수도 있다 한다.

 

에이셀 호(Ijsselmeer 湖)에 접한 볼렌담, 에담, 마르켄

       참고: 다음백과 볼렌담 [Volendam] , 에담 [Edam]  위키백과: Marken

암스테르담 북동쪽 22km 떨어진 에이셀호(Ijsselmeer 湖)는 북해(北海)가 만입(灣入=바다

가 육지 쪽으로 쑥 들어옴)되어 생긴 호수이다. 에이셀 호에 접한 볼렌담, 에담, 마르켄을

둘러보았다. 서로 이웃하고 있는 볼렌담, 에담, 마르켄은 버스를 타면 암스테르담에서 1

시간 이내로 갈 수 있으며 1일 이용 자유권을 사용하면 하루에 세 군데를 다 둘러 볼 수

있다.

 

볼렌담은 에이셀 호에 접해 있는 한때 항구로 번창하였지만 지금은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

다. 볼렌담에서는 이곳의 명물이라는 청어 고기도 맛보고, 치즈 공장을 구경할 수 있다. 마

르켄은 볼렌담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가는 것이 보통이나, 자동차로 갈 수도 있다. 에담은

‘에담치즈’로 유명하며, 치즈마켓 광장에서 두꺼운 쿠션 방석 크기의 치즈를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석 크기의 치즈를 옮기는 치즈마켓 포스터
네덜란드의 전통 나막신 클롬펜(klompen)

 

네덜란드 전형적인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  

      영어 위키백과: Zaanse Schans                            

암스테르담 북쪽 약 15Km에 있는 잔세스칸스 풍차 마을은 암스테르담에 오면 가장 많이

구경 가는 관광지중 하나다. 잔강(Zaan river)가에 있는 잔세스칸스(Zaanse Schans)는 18

세기까지만 해도 700개 넘는 풍차가 있었지만, 증기기관 발명 후 산업혁명과 기계화로 풍

차는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게 되자, 1961년부터 주변 일대에서 남아 있던 풍차를 몇 개

옮겨와 인공적인 풍차 마을을 만들었다.

 

이 풍차 마을에는 잔세스칸스 박물관과 물건을 직접 만들어 팔고 전시하는 치즈 공장과 네

덜란드 나막신(클롬펜 Klompen)공방과 기념품 가게 등 관광시설이 있다. 네덜란드는 치즈

수출에서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클롬펜 Klompen)이 유용하였던

까닭은 국토의 해발이 낮아 항상 땅이 질퍽거렸기 때문일 것이다.

 

잔세스칸스 전망대에서는 둑과 운하로 구획된 널따란 벌판에 풍차가 있는 네덜란드의 전형

적인 전원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관광지 입장료는 따로 없지만, 소형차 주차료가 9유로

이므로 주차료에 관광요금이 포함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예부터 있던 전통 풍차가 19개나 있는 킨더다이크

 

세계문화유산 킨더다이크(Kinderdijk) 풍차 공원

           참조:킨더다이크 공원 [Discover Kinderdijk Park]

세계문화유산인 킨더다이크 (Kinderdijk)는 공원은 플랑드르 회화에 자주 등장할 법한 고전

적인 네덜란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로테르담에서 16㎞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곳에는 운하 제방 위에 170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풍차가 19개나 남아 있

다. 네덜란드에서 옛 풍차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으로 운하 제방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

나 겨울에는 얼어붙은 운하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풍차(風車)의 나라 네덜란드

        참조 다음백과:풍차 [windmill] 위키백과: 풍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풍차(風車)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동력(動力)을 얻는 기계로 주로 곡식을 가루로 빻는 제

분이나 기름을 짜는 데 많이 사용하였고, 물을 끌어 올리는 양수(揚水)나 관개용으로 사용

하였다. 풍차의 기원은 7세기 페르시아의 세이스탄의 풍차에 대한 것에서 찾을 수 있으며,

10~12세기엔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각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중국

에서도 13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차들이 있다. 특히 국토가 해면보다 낮아

배수가 필요한 네덜란드 등지에서 많이 사용되었기에 풍차하면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된다.

 
스페인 라만차 풍차 마을에서 본 원통형 풍차
다각형 풍차 – 사진출처: 영어 위키백과

풍차의 모양은 크게 겉을 돌로 쌓은 원통형 풍차(Tower mill)와 직육면체나 팔면체 겉을 나무

판자로 덮은 다각형 풍차(Smock mill)가 있다.

 

원통형 풍차는 영국이나 영국 식민지에서 많으며 스페인에서도 볼 수 있으며, 대개 바람이

많은 고지대에 설치된다. 풍차의 효율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날개가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야

하는데, 풍차의 날개면의 방향 조절하기 위해 막대를 이용하거나 줄을 CAP(고깔모자)의 기

어에 감아 조작하거나, 지면까지 내려오는 꼬리막대(굴대)로 풍차의 CAP(고깔모자)의 방향

을 돌려야 한다. 스페인 문호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돈키호테(Don Quijote)의 마을

라만차 (La Mancha)에서 본 풍차는 바람이 많이 부는 높은 언덕에 벽돌로 쌓은 원통형으

로 꼬리막대(굴대)가 있다.

 

네덜란드나 독일의 풍차는 위가 좁아지는 직육면체나 육각 기둥면에 겉은 나무판자로, 본

체(本體)는 움직이지 않고 cap만이 돌아서 바람을 받는 다각형 풍차(風車 Smock mill)이다.

 

또한 미국 서부 영화의 목장에 많이 등장하는 날개가 많은 풍차도 있으며, 최근에는 발전용

으로 사용되는 3개의 날개로 구성된 프로펠러 형이 개발되어, 풍차(바람)의 힘을 이용한 풍

력 발전기에 이용되고 있다.

(계속)

(네)마스트리히트/북서독일(6)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도르트문트 맥주,분데스리가, 뮌스터-베스트팔렌조약,케루빔

 여행시기: 2015년 06월~7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 영상,음악)   독일 가곡 모음(유튜브)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 보려면 ▷클릭, 멈추려면 stop □ 버튼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l58JuNoyufk<=요걸 클릭

 

독일 북서쪽 끝부분인 아헨(Aachen)에서 벨기에의 리에주에 갔었지만, 리에주 방문기는 벨

기에 편에서 따로 얘기해 볼 것이다. 벨기에 리에주에서 독일의 뮌스터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스트리히트(네덜란드)를 잠시 들렀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마스트리히트

       홈피: www.maastricht.nl위키백과:마스트리흐트 [Maastricht]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세르바스 성당 입구
성 세르바스 성당(좌)과 붉은 탑이 있는 성 얀 성당

마스트리히트(네:Maastricht, 림뷔르흐어:Mestreech, 불어:Maestricht)는 기원전 50년에 로마

인들이 마스(Maas river) 강변에 건설한 거류지(居留地)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

다. 조그만 도시지만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와 성당, 가장 오래된 문(Gate) 등 네

덜란드 도시 중에서도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어 관광의 도시로 유럽 내에서 인기가

높다. 

 

네덜란드 남쪽 국경의 꼬리 부분에 위치한 마스트리흐트는 벨기에, 독일과 국경의 최접점으

로 마스트리흐트 조약(링크: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1992

년 2월 7일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유럽 공동체 가입국이 서명하고 1993년 11월 1일

부터 발효한 조약으로, 유럽 연합의 기초가 되었으며 유로화 도입을 이끌어 내었다.

 

마스트리히트의 오래된 유적들

마스 강가에 있는 헬포르트(Helpoort, poort는 문이란 뜻)는 1229년 Brabant의 귀족 헨

리 1세 때 만들어 진 도시 출입문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문(gate)이다.

1229년 만들어진 헬포르트(Helpoort)
&amp;amp;nbsp;멋진 마스트리트 시청사

구 시가지엔 마스트리트 시청사, 비숍의 방앗간(Bisschops Molen) 물레방아가 있다. 브레

이트호프 광장(Vrijthof) 뒤쪽의 빨간 벽돌색 높은 탑은 고딕양식의 시계탑으로 성 얀 성당

(St. Janskerk)이며, 그 옆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세르바스 성당(St. Servaasbasiliek)은 네

델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마스트리히트 최초의 대주교였던 성 세르바스의 무덤 위에

지어졌다. 마스트리히트 관광안내소는 조그만 아치(Arch) 문으로 들어가는 데, 15세기엔 재

판소로 쓰이다가 18세기에는 극장으로 사용되었던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중세시대의 성당을 개조하여 책의 성지가 된 셀레시즈 도미니카넨(Selexyz dominicanen)

서점은 내부 기둥과 천정, 창문이 옛 성당의 모습 그대로인데, 19세기부터는 교회의 용도로

쓰지 않고 있다가 2006년 네덜란드의 건축가에 의해 서점으로 개조되었다. 이 서점은 2008

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Top10에 선정되었다.

중세에는 요새 도시였음을 보여주는 포곽(포대) 유적

 

마스트리히트 서측 경계를 이루는 성곽 포대(포곽 Casemates) 유적 안쪽은 공원으로 조성

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으며, 달타냥(d'Artagnan)의 동상이 이 공원 안쪽에 있다. 달타냥은

실제 인물로서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경호원이었는데, 루이14세가 네덜란드를 넘볼 때 그

는 이미 62세였으며 마스트리히트에서 죽었다. 그 후 뒤마의 소설 '삼총사' 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루르(Ruhr) 공업지대의 중심지 뒤셀도르프(Düsseldorf)

     뒤셀도르프시 홈피: http://www.duesseldorf.de/de/ , 위키백과: 뒤셀도르프

&amp;amp;nbsp;&amp;amp;nbsp;가스등(Gaslight)이 있는 명품거리로 통하는 가로수길

 

쾰른 북쪽 45km 라인강변에 있는 뒤셀도르프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주도(州

都)로 독일의 국제 비즈니스와 금융의 중요 도시이며 패션과 무역 박람회로 유명하다. 인구

약 57만으로 독일에서 9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경제 규모면에서 5위권에 드는 도시이다. 이

곳이 유럽 공업지역의 선두주자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루르 역청 탄전 때문이다.

이 탄전은 대체로 루르강과 리페강 사이에 있으며, 라인강 동쪽 뮌스터·아른스베르크까지

뻗어 있다. 도로·철도·내륙수로 망이 밀집해 있어 라인-루르 공업지대를 뒷받침하는데, 주

로 제철·제강·화학제품·기계공업이 활발하다.(내용참조 Duam백과:뒤셀도르프 (Dusseldorf) )

뒤셀도르프에서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집 위에리게 Uerige(우측)

뒤셀도르프에서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집 위에리게(Uerige)에서 이 곳의 명물 독일 맥주를 마시는 데, 가게 앞에 이동식 풍금 소리가 옛날의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뒤셀도르프  구시가지(알트타트 Altstadt)에 있는 명품 쇼핑거리(쾨니히살레 Königsallee)가다 보면 수로를 따라 정비된 가로수 길을 만난다. 라인강변으로 나가면 라인타워(Rheinturm 높이 240.5m)와 독특한 디자인 건축물인 미디어 하버(MedeanHafen)가 보인다. 찌그러진 성냥갑처럼 비스듬히 세워진 3개의 건축물 노이어 졸호프 (Neuer Zollhof)는 미국의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오 게리(Frank O. Gary)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독특한 디자인과 개성 넘치는 건축물들이 미디어 하버 근처에 많이 모여 있다.

 

도르트문트(Dortmund)      

                    참조-Daum백과 :도르트문트 (Dortmund) , 위키백과:도르트문트

                                          도르트문트시 홈피: https://www.dortmund-tourismus.de/

 

뒤셀도르프에서 동쪽으로 60km 쯤에 있는 도르트문트는 1220년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도

시가 되었고 그 뒤 한자동맹에 가담했다. 14세기에는 폭넓은 무역으로 부유해졌지만 30년

전쟁 후 쇠퇴하기 시작해 1803년 자치도시의 특권을 잃었다.

 

19세기, 탄광과 철광석 광산이 개발되고 1899년에 운하를 완공하면서 라인-루르 대도시권

의 일부가 되어 급속한 발전을 해왔다. 노르트라인-페스트팔렌 주의 지리적 중심부에 자리

잡았기에 경제적, 상업적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파괴되어 현

대식의 설계에 따라 도시를 재건했으며 독일에서 8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시내 구경은

걸어서 하기에 충분하지만,  'hop on hop off 버스투어’를 이용하여 명소를 구경할 수도 있

다. 

 

도르트문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개최도시였으며,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팀인 보르시아

(BVB: Ballspielverein Borussia 링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Borussia Dortmund) ) 홈구장이 여기

에 있다

보르시아 도르트문트(BVB) Kloppo선수 응원 깃발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리그    홈페이지: 분데스리가 http://www.bundesliga.de/

독일 프로축구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bundesliga)는 독일어 'Bundes'(연방)와 'Liga 리그’

가 합해진 말로, 조별 34라운드 홈 & 어웨이(home & away) 방식으로 치러진다.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 아이콘과 해당 도시

             그림출처: https://t1.daumcdn.net/cfile/blog/27392F3D561509132F

 

이 리그에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로는 구자철, 박주호, 지동원, 홍정호, 김진수, 류승우, 서영재

등이 있다. 2014-15 시즌결과 우승은 FC 바이에른 뮌헨이었고, 득점왕은 알렉산더 마이어였다. 

 

맥주를 즐기는 독일인

 

도르트문트 맥주  

사진 및 내용 참조: [맥주 상식] 알고 마시면 입안이 더 즐겁다독일 도르트문트의 엑스포트 맥주



도르트문트 맥주 엑스포트(Dortmunder Export)
      
 
 
     DAB(Dortmunder Actien Brauerei)

 

도르트문트 맥주(Dortmunder Export)는 골든 라거(Golden Lager) 스타일의 맥주로 독일의

도르트문트 지방의 경수(硬水)로 만든 맥주로, 필스너보다 발효도가 높고 향미가 산뜻하고

쓴맛이 적다. 엑스포트(Dortmunder Export)는 고된 하루의 일과를 끝낸 광부들과 철강노동

자들의 목을 축여 주었던 맥주였으며, 뒤셀도르프는 한때 독일에서 가장 큰 맥주 양조 도시

였다. DUB(Dortmunder Union Brauerei)와 DAB(Dortmunder Actien Brauerei)가 도르트문

트의 대표적인 맥주이다.

 

하면(下面) 발효 맥주(bottom fermentation beer)

발효 도중 밑으로 가라앉는 성질을 지닌 효모로 만든 맥주로 비교적 저온에서 발효된다. 일

반적으로 라거(Lager) 계열이 여기에 속한다. 라거는 5~10℃의 저온에서 7~12일 정도 발

효 시킨 후, 다시 1~2개월간의 숙성기간을 거친다. 하면(下面) 발효에서의 저온 숙성과정을

'라거링(lagering)'이라 부르는데, ‘라거’란 말은 ‘저장하다’라는 뜻의 독일어 '라게른(lagern)’

에서 유래했다. 이 라거 양조법은 맥주의 품질을 안정시키기 위해 근세에 개발됐다. 현재

라거(Lager) 맥주는 영국을 제외한 전 세계 맥주시장을 주도(세계 맥주 생산량의 약 ¾

도)하고 있으며, 필젠(Pilsen), 도르트문트(Dortmund), 한,미,일(韓美日) 맥주가 여기에 속한

다. 

 

뮌스터(Münster)    내용참조 Daum백과:뮌스터 [Munster] , 위키백과:뮌스터

&amp;amp;nbsp;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 맺어진 뮌스터 시청사
&amp;amp;nbsp; St. Lambertus 성당(제단부 방향)&amp;amp;nbsp;&amp;amp;nbsp;&amp;amp;nbsp;

 

쾰른에서 북동쪽으로 150km(도르트문트에서 북쪽으로 68km) 떨어진 곳에 있는 뮌스터

(Münster)는 서쪽으로 네덜란드, 북쪽으로 니더작센 주, 동쪽으로 데트몰트 구, 남쪽으로 아

른스베르크와 접하고 있다. 뮌스터란트 중부에서는 비옥한 점토 토양과 많은 강우량 때문

에 이상적인 가축 방목용 목초지가 조성되며, 루르 지역은 신선한 낙농품·육류·베이컨의 최

대 공급지이다. 도르트문트-엠스 운하를 끼고 있어 중요한 교통연계지이다. 

 

뮌스터는 인구 30만 명 중 5만 명이 대학생인 도시로 성당과 교회가 100여 개나 있기에 성

직자와 신학도도 많다.  이곳의 여름은 덥지 않고 겨울 또한 춥지 않으며 비가 자주 온다.

이런 뮌스터의 특징을 두고  “뮌스터에 오면 비가 내리거나 종이 울린다.”하는 말이 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이곳 기후와 성당과 교회가 많아 종소리가 자주 울리는 것을 빗댄 말일

것이다. 시내는 다른 독일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이용자가 많은 도시였는데, 역사적 유적인

대성당, 교회, 시청사 등은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이곳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을 맺었던 도시이다. 베스트팔렌조약은 웨스트팔리아조약이

라고도 하는데 30년 전쟁을 종결시킨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여러

나라가 체결한 평화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루터파뿐 아니라 칼뱅파도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

았으며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독립도 인정받았다. (링크: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물의 성(Wasserburg)이 많은 뮌스터

대표적인 물의 성 ( 城 )&amp;amp;nbsp; 노르트키르헨 (Nordkirchen)
장중하고 화려한 노르트키르헨 (Nordkirchen)

 

뮌스터 근교에는 귀족(영주)들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자(垓字 성 주위를 둘러싼 못)를

파고, 그 주위에 성을 쌓은 물의 성(Wasserschloss)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물의

성(城)으로 노르트키르헨(Nordkirchen), 라에스펠트(Raesfeld)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노르트키르헨(Nordkirchen)성(城)은 주위 정원이 크고 넓어 ‘작은 베르사이유’라 불린다.

 

지식을 맡은 천사(智天使) 케루빔(cherubim = 케루브=거룹 cherub)  

    다음백과:거룹 [cherub] , 사진과 내용 출처: http://blog.daum.net/johnkchung/6764516



독일 뮌스터 성당의 케루빔(Cherubim)=거룹 (cherub) 
 
 그리스 신화속의 푸토(Putto 아기 천사)

 

케루빔(또는 체루빔)은 케럽(Cherub)의 복수형태로, 천사의 아홉 품계에서 사랍(세라핌) 다

음 두 번째로 높은 품계에 있는 천사들이다. 거룹이라는 이름은 아카드어의 'Kāribu' 또는

'Kūribu'(기도하다,축복하다)를 뜻하는 Karābu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케루빔은

유태인의 경전인 토라(Torah: 창세기를 포함한 모세5경)와 에스겔, 이사야에 도 등장하며,

신약에서는 요한묵시록에 등장한다.

 

케루빔은 나중에 어린천사로 변형되었지만 헤롯이 재건한 성전에는 케루빔의 형상이 없었

다고 한다. 중세 이후, 케루빔의 형상은 기독교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독교의 성화(聖畵)에서 케루빔의 형상은 어떤 경우 사자, 황소, 또는 독수리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표현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에는 케루빔을 아기 천사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푸토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기 천사들은 종일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였다. 이

같은 모습은 성당의 성화(聖畵)나 조각과 라파엘 같은 거장의 작품에 자주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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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독일 북서 지역여행을 마치고, 네덜란드로 들어갔다. 독일 동쪽의 베를린, 함부르크,

드레스덴은 다음 숙제 여행지로 남았다.

 

-이하는 그동안 올렸던 A.남부독일 돌아보기 와  B.북서독일 돌아보기의 '바로가기 링크'들이며 

  게시글의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슴-

 

A.[남부 독일 / 프랑스 알자스 / 스위스 취리히, 루체른] 바로 보기 링크(아래 제목 클릭!)* 

남부독일(1)-슈타인 암 라인,라인폭포,상트 갈렌,퓌센 노이슈반슈타인성    

남부독일(2)-린더호프城,헤렌킴제城,비스교회,에탈 수도원,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추크슈피체 산

남부독일(3)-뮌헨,아우크스부르크,울름,뉘른베르크                                               

남부독일(4)-밤베르크,바이로이트,뷔르르츠부르크,로텐부르크

남부독일 (5)-하이델베르크,슈투트가르트,메칭겐 아울렛,호엔촐레른성,독일 대표 음식

 

프랑스 알자스 지방 둘러보기- (프:Alsace 독:Elsaß 엘자스)

스위스 최대의 도시 ‘취리히(Zürich)’와 청정도시 ‘루체른(Luzern)’ 돌아보..

 

B.[북서  독일] 바로 보기 링크(제목 클릭!)* 

(북서 독일01) 괴테의 도시-푸랑크푸르트  

(북서 독일02)프랑크푸르트 주변의 오래된 도시-마인츠, 슈파이어, 트리어

(북서  독일03) 라인강을 따라 - 뤼데스하임,로렐라이 -

(북서 독일04)모젤와인의 향기가느껴지는 코블렌츠, 엘츠 / 라인강변의 거점 도시 보파르트

(북서  독일05)-北西 독일지방의 문화적 중심 쾰른(Köln), 브륄, 아헨

 

(네)마스트리히트, (독일6)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 뮌스터 돌아보기

 

-다음은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베네룩스 3국]으로 이어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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