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기6-불루모스크, 성소피아사원

여행일자: 2007년 05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쿠란 낭송-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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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블루 모스크 사원

'블루 모스크'의 다른 별칭은 '술탄 아흐멧 사원(Sultan Ahmet Mosque)'인데, 성스러운 곳이라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블루 모스크의 내부에는 200개가 넘는 창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빛살이 내부에 무지개색을 드리운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쳐 나오는 빛과 흰색 푸른색의 타일들이 내부의 장식들과 어우러진 환상적인 모습은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 아름답고 오색영롱하다는 말 외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무슬림(Moslem 모슬렘)들의 나지막한 코란 암송 소리는 이곳이 바로 천상 세계라 말하는 듯하였다. 

.엄청난 높이의 불루모스크 내부와 스테인드글라스 창들
.불루 모스크 내부 돔 부분과 희고 푸른 타일 벽
.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이 블루 모스크 사원은 이슬람 사원이면 어김없이 보이는 연필처럼 뾰족한 첨탑이 세워져 있는 모스크의 전형적인 모습의 대표 사원이다.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불루 모스크 외관

블루 모스크는 소피아 사원 근처에 있어서 소피아 사원의 사촌이라고 불리지만 규모에 있어서는 소피아 사원 보다 더 크다고 한다. 외벽의 붉은 벽돌색을 가진 소피아 사원과 푸른색 돔과 흰색 첨탑을 가진 불루 모스크는 참으로 묘한 대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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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건축의 최고 성당이었지만,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 소피아 사원

‘성 소피아 사원‘은 '아야 소피아 자미(Aya Sofia Camii)'로도 불리는데 세대 7대 불가사이에 들 정도로 유명하며, 터키 관광 책자 표지에 꼭 등장하는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소피아’ 란 지혜라는 뜻이며 ‘자미’는 사원이라 뜻이다.

 

래 기독교 성전(소피아 성당)으로 지었지만 오스만제국 때에는 ‘성 소피아 사원’(회교 사원)으로 개명되어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성 바오로 성당,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에 이어 세계 4번째로 큰 규모이다. 가장 오래된 성당이지만 지금은 회교 사원의 전형적인 특징대로 둥근 돔과 첨탑을 가지게 되었다.

.우아한 붉은 빛을 발하는 성 소피아 사원 외관 

따라서 ‘성 소피아 사원’은 내부 중앙에 기독교 상징 장식인 십자가가 있고, 그곳에서 약간 비껴난 곳에 메카를 향하도록 만들어진 감실(벽에서 약간 움푹파진 홈)이 있다. 성모 마리아 모자이크와 ‘알라’라는 아랍 문자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 한 장소에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복합되어 있는 독특한 곳이다. 하지만 이처럼 복합적인 여러 종교적인 상징물이 같은 장소에 있는 모여 있는 모습이야말로, 이 곳(성당, 사원, 박물관)의 성격과 파란만장한 역사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둥근 돔 모양의 지붕을 가진 이 사원에 들어서면 커다란 돔과 그 아래 축구장(?)만 한 바닥 크기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다른 것은 몰라도 당시 사람들이 사원 중앙의 엄청난 크기의 돔을 어떻게 올렸을까하는 점은 놀랍고도 불가사이하다. 높은 천장이나 벽에 그려진 여러 모자이크 성화들을 보느라 조금만 오래 쳐다보아도 목이 아파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사원 내부를 한참이나 넋을 놓고 서 있었던 우리 일행 한 분은 기독교 신자이었는데, 그 분의 감상에 따르면 소위 ‘은혜를 받는 것 같다’라는 표현을 하였다.

.성 소피아 사원의 돔 부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지시로 서기 537년 완공된 소피아 성당은 완공 이후 1천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비잔틴(Byzantine)은 현재의 이스탄불을 가리키는 옛 이름으로, 비잔틴 문화라 하면 1453년 터키에 정복당하기까지의 동로마제국 문화를 말하는데, 이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 중의 하나가 이 ‘성 소피아 사원’이다. 

 

엄청난 규모와 높이에 감탄하면서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이라지만 계단 대신 터널처럼 생긴 골목길(?)을 똬리굴처럼 돌아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실상은 약 5층 높이였다. 이 곳의 벽면은 회벽을 떼어난 자리가 누더기처럼 보였다. 메메드 2세가 소피아 성당을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바꾸면서 천장과 벽의 성화 모자이크들을 덮어씌우기 위해 회벽으로 덧발랐다(일종의 성상 파괴운동). 지금은 복원을 위해 덧칠한 회벽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감추어진 인간의 욕망에 의해, 신의 모습이 저렇게 회벽으로 덧 씌워지고 변색되어 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스도에게 성당을 헌납한다는 의미의 모자이크 벽화

하지만 회벽 걷어 낸 자리에 드러나는 아름다운 성화 모자이크와 황금색 장식들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흡사 벙글어진 석류 속에서 진주알이 튀어 나오듯 영롱한 모자이크가 나타난다. 모자이크 미술의 진수를 보려면 바로 이곳 소피아 사원을 보라고 추천했던 이유는 이 곳 모자이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이 성당을 헌납한다는 의미의 모자이크 벽화는 벽이 온톤 금 투성이다. 오른쪽은 여황제였던 ‘조에’로 젊었을 때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왼쪽은 3번째 남편으로 남편이 바뀔 때마다 그림이 수정되었다 한다.

.닳아져 뭉그러진 성 소피아 사원의 입구 문턱

이 사원을 나오다가 사원 입구 문턱을 보니 다 닳아빠진 모습이었다. 천 오백년 무수한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밟고 오르내렸는지를 말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신의 소리(영감)’과 ‘은혜’를 느꼈던 것처럼, 내 맘속에 담았던 모자이크속의 황금 색채가 ‘지혜’를 담아내는 하나의 불빛처럼 느껴졌다. 문득 ’사람들아!, 소피아(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하는 음성이 환청처럼 들렸다.

 

(계속)

터키 여행기05-이스탄불,보스포루스 해협,톱카피 궁전,돌마바체 궁전,아타튀르크,그랜드바자르

여행일자: 2007년 05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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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접점 보스포루스 해협

우리는 카파토끼아 근처 카이세리 공항으로 이동하여 이스탄불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참고로 여행 일정에 따라 이스탄불을 먼저 구경하고 카파토끼아로 날아오는 일정도 있다.)

.터키의 주요 도시 (사진출처:인터넷)
.별장, 별궁들이 늘어서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해안

보스포루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고 있다. 길이가 약 30km 정도이며 넓은 곳은 폭이 3500m이지만 700m로 좁은 곳은 물 흐름이 세차서 배 운항에 위험할 정도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는 중간 교각 없이 여러 개의 줄에 매달려(현수교)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저 터널도 공사하는 중이라고 한다.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관광선을 탑승하여 양측 해안을 따라 가다 보면, 경치 좋은 곳에는  별궁과 귀족들의 저택들이 도열해 있고 부자들의 무덤자리도 보였다. 한편 이런 거대하고 고전적인 건축물 사이로 오늘날의 유행에 맞게 해변 카페, 음식점, 찻집, 별장 등 그림같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도처에 깔려 있다.

 

비잔틴 문화의 중심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Konstantinopolis)이며 콘스탄티누스 황제(Constantinus I) 이름에서 따왔다. 지리적으로 터키 땅의 98%가 아시아 쪽에 나머지는 2%는 유럽 쪽에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그 무게 중심에 있어 저울의 balance를 맞추듯이 균형을 잡고 있는 형상이다. 2%의 이스탄불이 98%의 아나톨리아와 균형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 인류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이스탄불을 두고 '인류 문명이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유럽에 위치한 이스탄불은 2000년이 훨씬 넘는 그 역사에 걸맞게 양 문화의 접점이자 상업의 교류지였다. 세계를 지배한 강국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이기도 하였던 이곳은 과거 번영의 흔적들이 혼재되어 있다. 특히 14세기 비잔틴 제국 멸망 이후부터 1922년 터키 공화국이 건설될 때까지 오랜 역사를 지녀온 오스만 제국은, 한때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영역까지 지배했던 지중해 지방의 맹주였고 그 중심 도시가 이스탄불이었다. 오늘날 이곳은 터키에서 제일 큰 도시(약 5,200㎢)이자 터키인들엔 자랑스럽고 화려한 신-구 문화의 중심 도시이다.

 

여기서 잠깐 퀴즈! 이스탄불의 공항 이름은 무엇일까?

짐작하시겠지만 이스탄불의 공항 이름은 ‘아타튀르크’ 공항이다. 터키의 고대 도시를 둘러 보는 동안 이 이름을 잠시 잊고 지냈지만, 이곳 이스탄불에서는 아타튀르크의 이름과 얼굴(그의 모습을 그린 깃발)을 단 하루도 보지 않고서는 지낼 수 없다.

.돌마바체 입구 시계탑과 어디가나 휘날리는 터키 국기

오늘날은 12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터키의 도시중 가장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도시이지만, 근세 이전의 국제 중심도시로서의 면모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구렛나루를 기른 큰 덩치의 터키인들 제외하고선, 관광객 대부분이 유럽 각지에서 찾아온 외국 관광객들이고 동양인들 대부분은 중국인과 한국 관광객들이었다.

 

톱카피 궁전과 돌마바체 궁전

이스탄불엔 두개의 유명한 궁전이 있는데, 톱카피와 돌마바체가 그것이다.

톱카피 궁전은 1459년에 세워져 6세기 동안 3개 대륙을 통치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오스만 터키 제국이 400여 년간 행정 궁전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24명의 술탄(황제)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궁녀와 하인들이 사용했던 곳으로 이곳에 소장된 유물은 86,000여점으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한다.

 

.톱카피 궁전 내 건물과 정원

톱카피 궁전 안에는 오스만 시대의 휘황 찬란한 유물관과 보석관이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궁전內 보석관에 있는 3kg의 에메랄드로 장식된 톱카피 단검과 89캐럿의 스푼 다이아몬드 앞에서는 발등을 밟히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 분위기의 문양과 금칠한 톱카피 궁전 내부

화려함의 극치 돌마바체 궁전

돌마바체 궁전은 보스포루스 해협 바닷가에 있어 바다에서 외국 사신들이 바로 이리로 들어 올 수도 있다. 이 돌마바체 궁전은 1843∼1856 사이에 압둘 메짓 1세(Abdull Meciti)가 베르사유 궁전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을 꿈꾸며 만든 궁이다.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지만 오스만 제국 멸망의 한 단초가 되었다. 

.보스포루스 해협가에 있는 돌마바체 궁전

이곳에는 진짜 대리석 만큼이나 우아한 기둥들과 285개의 방에 43개의 홀이 있고 280개의 화병, 156개의 시계, 58개의 수정 촛대, 560점 이상의 그림있으며 보석(영국제 수정)으로 된 36개의 샹들리에가 있다고 한다. 내부 중앙에 있는 4.5톤이나 나가는 수정 샹들리에는 750개의 촛대가 있으며 세계 최대의 것으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선물이라 한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수정 제품과 도자기, 훌륭한 카펫들, 그리고 곳곳에 걸린 수 많은 태엽 시계와 거울은 각각의 박물관을 세울 정도로 많다고 한다.

 

복도 거울은 2짝씩 전면과 후면에 설치되어 자객이 뒤에서 오는지 감시할 수 있도록 걸어 두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 하나는 방마다 크고 작은 시계가 한 두개씩 있었는데 시계들이 모두 9시 5분으로 정지되어 있었다. 이것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이곳을 대통령관저로 사용하다가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집무 중에 사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내부 장식과 방을 꾸미기 위해 금 14t, 은 40t을 사용하였고 건축경비로 500만 금화(현재 돈으로 5억$)가 들었다는 등의 얘기는 얼른 계산이 안 될 정도이다. 궁전에 소장하고 있던 세계 각처에서 온 진귀한 도자기와 장식품들 등등 모든 것이 돌마바체 궁전과 더불어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궁전과 온갖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물건중엔 다른 나라의 오스만 왕국에 대한 선물과 조공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술탄들의 자기 과시와 사치를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결국 이런 사치 낭비가 오스만 왕국의 멸망의 한 축이었다는 것을 술탄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거대한 왕국의 통치물은 오늘날 터키의 화려했던 과거를 보여 주는 자료로 남아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랜드 바자르에선 물건 값을 깍아야... 

그랜드 바자르는 이름 그대로 지붕이 있는 단일시장으로 가장 큰 시장이다. 이스탄불의 ‘남대문 시장’이랄까? 사람 구경, 물건 구경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들어 왔던 곳을 잃기 십상이다. 이 곳의 특산품인 카펫, 양모제품, 가죽 제품, 고전적 실내 장식품인 촛대나, 은그릇 등 금은 세공, 유리 제품, 타일, 보석, 수공예품 등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다.

 

다른 시장에서도 그러하겠지만 이 곳에선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면 손해본다. 깍는 흥정을 하다 가게를 나올 듯이 하면 최하 가격이라며 가격을 제시하는 데, 그것마저 뿌리치고 가게를 나오면 가게 밖에까지 따라 나와 다시 최저 가격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상술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사려는 사람이 구매 의지를 그 사람들에게 보였고 그네들이 남는 이문이 있을 때 그리하겠지만, 이 사람들은 미소를 띄며 끝까지 고객에게 들러붙는다. 마치 찰거머리처럼 악착같이 따라 붙으며 물건을 파는 놀라운(?) 상술을 보인다.

 

(계속)

터키 여행기4-카파토키아,괴레메-동굴교회,케밥,쫀득이 아이스크림,터키빵

여행일자: 2007년 05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 터키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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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전통 요리 케밥(Kebab)

중국, 프랑스, 터키 오랜 기간 왕국을 유지했던 나라들의 요리들이 세계 유명 요리가 많다. 터키의 유명 요리는 ‘케밥’이다. 케밥은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요리’인데, 우리나라의 ‘산적’과 비슷한 요리이다. 터키는 다양한 역사적·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음식 종류도 다양하다. 유목 민족은 이동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특성상 빠른 시간 내에 쉽고 간편하게 해먹는 요리가 익숙해졌을 것이고, 드넓은 중앙아시아 땅을 이리저리 떠돌던 이 사람들의 ‘케밥’도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먹은 ‘항아리 케밥‘은 양고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항아리 채로 구워져 나왔는데, 흡사 우리나라의 진흙 오리구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터키 고유의 향신료가 어떤 이는 비위가 안 맞는다고 하였지만, 대부분의 동반 한국인 여행객들은 맛있게 잘 먹었다. ‘케밥’ 재료로는 양고기 외에도 쇠고기, 닭고기를 쓰지만, 이슬람 전통에 따라 돼지고기는 쓰지 않는다.

.항아리 케밥

보리, 밀 그리고 빵과 요구르트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터키, 이라크, 이란에서는 선사시대 유적에서 밀의 한 종류인 일립계 야생형 밀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보리의 시원지도 터키로 알려지고 있으며 보리 재배량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이고, 보리 생산량은 세계 6위라고 한다.

 

터키 경작지 대부분이 평지 작물에 할애되고 있는데 밀과 보리가 가장 넓은 면적을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시장 뿐 아니라 다방(=터키에서는 물 담배를 피거나 커피들 마시는 곳)이나 휴게소의 가게 앞에서는 빵을 흔히 팔고 있었다. 음식점이나 뷔페에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빵이 나오고 있고, 터키에서 빵을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로 부드럽고 구수하다.

 

또한 터키사람들의 식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치즈와 요구르트이다.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터키 요구르트를 이틀만 먹어보면 대장에 그 소식이 올 것이다. 터키 성인들의 배가 오뚝이 모양으로 되어도 심장병 발생이 적다고 하는데 이 요구르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지팡이에 꽂아 재주 부리고 있다.

더운 여름날이면 찬 것을 많이 찾게 되는 데, 일명 ‘쫀드기 아이스크림'(차돌같이 딱딱하지만 약간 녹으면 쫀득쫀득하다 해서)의 맛은 터키에서만 맛볼 수 있는 터키의 명물이다. 딱딱하고 큰 아이스크림은 톱으로 썰어야 할 정도인데, 이 아이스크림을 잘라 먹는 맛도 특이하지만 ‘쫀드기’를 파는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갖고 노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아이스크림을 막대기에 붙였다 떼었다 장난치며, 막대기로 판매대 앞의 종을 치기도한다. 아이스크림 콘(CONE)에 담은 아이스크림을 손님에게 줄듯 말듯 약을 올리며 장난치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도 즐겁고 유쾌하다. 

 

카파토키아의 버섯 모양 기암괴석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파샤바 계곡에는 원뿔 모양의 기둥 위에 고깔모자를 쓴 버섯 모습의 기암괴석들이 있다.

.카파토키아의 버섯 모양 바위가 아슬아슬하다.
.전형적인 카파토키아의 버섯 바위들

수백만 년 전 에르지야스 화산과 멜렌디즈 화산 등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쌓여 응회암 층을 이루고 그 위로 용암이 흐르고 굳어졌다. 그 후 여러 번의 지진 활동으로 경사와 지각 균열이 생겼다. 뜨거운 태양에 노출된 암석이 수백만 년 간의 물과 바람에 의해 침식 작용과 풍화 작용을 받아, 이렇듯 마술을 부려 고깔 산을 만들어 낸 듯 신비롭고 기괴한 모습을 연출하게 된 것이라 한다. 머리에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을 이고 있는 이런 모습은 가히 지리학적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의 석굴교회
오랜 동안 서유럽과 중동의 국가들로부터 침입에 시달렸던 아나톨리아 사람들은 적을 피하기 위해 이 기암괴석에 벌집처럼 구멍을 뚫고 숨어 살 은신처를 마련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기암괴석은 흡사 해골의 모습으로 공포감을 주었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교회를 만들고 수도처로 삼았다.

기독교 박해 시기에는 이 기암괴석의 바위에 구멍을 뚫고 수도사가 살았다고 하며 어떤 곳은 사다리를 타야 접근할 수 있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에 있는 300여개의 석굴교회에는 수많은 기독교 관련 聖畵(성화)들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聖像파괴 운동의 결과 많은 성화들이 훼손되어 과장한다면 지금은 누더기처럼 남았다. 아름답고 귀중한 성화와 유물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한편 이 계곡의 일부 암벽 동굴은 당국의 허가를 얻어 여행객을 상대하는 동굴 카페로 사용되고 있었다.

 

.동굴 교회의 성화
.바위산에 굴을 뚫고 살았다.

(계속)

터키 여행기3-아나톨리아,위스크다르,우치히사르,데린구유

여행일자: 2007년 05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넓디넓은 아나톨리아 평원           참조링크: 다음 백과 아나톨리아 

 그림 출처: 다음백과 .https://100.daum.net/multimedia/900_ANd9GcT4LuUJQXH1PpJj8WQcrEqtOlrlnfo2sVfffEWSSckxSONZBz8dhzdg4o19

그림 출처: 다음백과: https://100.daum.net/multimedia/900_ANd9GcT4LuUJQXH1PpJj8WQcrEqtOlrlnfo2sVfffEWSSckxSONZBz8dhzdg4o19

 

아나톨리아(Anatolia) 평원은 북부 해안지역은 흑해에 접해 있고 남으로는 지중해에 접해 있는 데 터키 땅의 거의 전부이다. 아나톨리아 지역의 평균 고도는 약 1,000-1,5000m이며 이 지역의 남쪽은 서에서 동으로 뻗어있는 해발 2,000-3,000m의 셉투스(Septus)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후는 여름에 고온 건조하여 반 건조(스텝)지역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평지가 635mm, 산지가 762mm로 일부에서는 벼농사가 가능하지만 주로 밀,보리농사를 짓는다. 중부 내륙의 고원지대는 한서(추위와 더위)의 차가 심하여 겨울에는 -15° C, 여름에는 37° C를 넘는다. 고원지대에서는 하천이 거의없고 나무도 보기 힘들어 사막 풍경처럼 경관이 단조롭다. 다만, 마르마라해 연안은 지중해성, 흑해성 기후의 양쪽 특성을 가진다(비가 많음).

 

안탈리아에서 아스펜도스를 거쳐 카파도키아로 자동차로 가는 여정은 아나톨리아 평원을 거쳐 가야하는데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쉬지 않고 버스로 달리더라도 8시간 이상의 장시간이 걸린다. 대부분의 여행사 프로그램은 넓은 아나톨리아 평원을 통과할 때 중간 지점인 콘야나 악사라이까지 이동 후 잠을 자고, 다음 날 나머지 구간을 이동하는 스케줄로 움직인다. 토로스 산맥을 넘어 아나톨리아 평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삼사십 분을 버스가 달려가도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계속 이어지는 곳도 있었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아나톨리아 평원의 도로

한참을 달린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어느 강변 식당에 닿았다. 마침 이 식당 바로 앞쪽에 제법 큰(?)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강변에는 나무들이 제법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터키에서는 이때껏 산을 넘을 때나 평원을 거쳐 이동하는 동안 강을 거의 보지 못했으며 더구나 강에 물이 차있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강물 줄기들은 대개 乾川(건천)이어서 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물이 있더라도 강물 줄기가 바닥으로 조금씩 흘러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터키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물이 가득차 있는 강

식사 후 식당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을 주민이 이맘(이슬람 종교 지도자)에게 아스피린을 사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의료 시설이 없어 취약한 마을에는 이런 이맘이 약품 외에도 간단한 가재도구와 생필품 등을 이동하면서 판매한다고 한다. 약품 내용을 흘낏 보니 기생충 약도 있었는데 오지인 이곳에서는 적당한 약품 목록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맘(종교지도자)에게 약을 사고 있는 노파

오후 이동 시간에는 식곤증에다 피로하기도 하고 주위 풍광의 변화도 없기에 아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어느 새인가 깨어 보니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이슬람 사원이 보였다. 규모가 작은 마을인 이곳 호텔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뜻밖에도 몇 사람의 연주자(물론 남자)들이 ‘위스크다르’ 연주를 들려준다. 이국적인 장소에서 이곳과 관련된 노래를 듣는 것도 여행의 즐거운 재미로 생각되었다.

.‘위스크다르’를 연주해 주었던 터키 연주자들 

 <배경음악> ‘위스크다르’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동영상 보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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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크다르라는 터키 민요의 원래 제목은 ‘캬팁’이다.

* 이하 ‘위스크다르’ 관련 인터넷 검색에서 요약 *

위스크다르는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에 있는 마을의 이름이다. 위스크다르라는 터키 민요의 원래 제목은 ‘캬팁’인데, 캬팁이란 서기, 비서정도의 공무원을 말한다. 스크다르는 그 옛날 위스크다르의 처녀가 해협을 건너 이스탄불을 바라보면서 캬팁이라는 노래를 불렀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 민요는 부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곡조가 되고, 빠르게 부르면 흥이 생기는 그런 노래이다. 노랫말을 보면 위스크다르에 살고 있는 처녀가 젊은 공무원을 사모하는 연가이다.

 

캬팁의 가사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위스크다르 가는 길에 비가 내리네

내 님의 외투 자락이 땅에 끌리네

내 님이 잠에서 덜 깨어 눈이 감겼네

우리 서로 사랑하는데 누가 막으리

내 님의 깃달린 셔츠도 너무 잘 어울리네

 

위스크다르 가는 길에 손수건을 놓았네

내 님을 위한 손수건에 사랑을 담았네

어느새 내 님이 바로 옆에 있네

우리 서로 사랑하는데 누가 막으리

내 님의 깃달린 셔츠도 너무 잘 어울리네 

 

땅속에 굴을 파서 만든 지하 도시

다음날 아침, 이웃한 모스크에서 앰프로 방송하는 요란한 코란 음송소리에 잠을 깼다. 코란 음송 앰프 소리가 처음엔 마치 공습 경보처럼 들렸기에 깜짝 놀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곧 이슬람 예배 알리는 소리임을 알고선 긴장된 마음이 풀렸다. 때마침 아침 햇살을 받은 모스크의 첨탑이 황금 촛대처럼 빛을 띠고 있었다. 황금 촛대-그것은 마치 이슬람을 지켜온 지혜의 촛불인양 느껴졌다.

 

터키에서 지하도시로 유명한 '데린 구유'는 '깊은 우물'이라는 뜻인데, 이곳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기 위해 땅속에 굴을 파서 만들었다 한다. 지하 동굴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여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땅속 지하 도시 내부에 나 있는 통로 

. 지하도시에서 사용되었던 맷돌

 

땅굴 속 동굴 지하 도시에는 예배소, 부엌, 식당, 마구간, 회의실, 술 저장소, 창고, 우물, 환기구가 있어 지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하지만, 외부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함정과 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이를테면 교묘히 숨긴 입구와 연자방아 돌처럼 생긴 출입문, 발을 잘못 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함정과 다른 곳으로 탈출하기(빠져나가기) 위한 비밀 통로도 만들어져 있다.

 

지하 13개 층까지 파내려간 이 데린쿠유 지하도시의 깊이는 약 60m라고 하며 지하도시들을 연결하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을 위한 입구  사용할 수 없는 출입구  지하수  굴뚝 겸 환기구  교회  돌문( ENTRADA : 입구 SALIDA : 출구 ) (출처) https://t1.daumcdn.net/cfile/blog/2665553853CC424307

데린쿠유 (Derinkuyu) 지하도시 단면도  (출처) https://t1.daumcdn.net/cfile/blog/2665553853CC424307

동굴은 지하 속에서 이리저리 연결되었는데, 지하도시의 수직 단면을 본다면 흡사 개미집처럼 생겼다. 우치히사르 지역에는 이런 땅속 지하도시가 여럿 있으며 그 규모가 지하 10 몇층까지 내려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

.지하도시 입구의 노천 가게에 걸린 싸구려 카펫

(계속)

터키 여행기2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아스펜도스, 벨리댄스, 나자르 본쥬

여행일자: 2007년 05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영상음악>: 벨리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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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花城(목화성 cotton castle) 파묵칼레

멀리서 보면 새하얀 언덕이 마치 ‘하얀 목화송이를 펼쳐 놓은 듯하다’ 해서 ‘木花城(목화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파묵칼레를 찾아 갔다. 파묵칼레는 신기한 모습의 거대한 석회 덩어리가 있는 지역으로 이 지역의 온천수에 포함된 탄산칼슘이 침전되어 바위가 되었다. 아니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커다란 산등성이 전체가 석회로 뒤덮이게 되었다. 이 지역은 따뜻한 온천수가 있고 공기가 좋아서 고대 시대 때부터 휴양 도시였다 한다. 하지만 이곳은 인구 규모나 시설 등으로 보아 아직도 시골 동네 느낌이 나는 온천 마을이었다. 으리으리한 대형 호텔은 없다고 해도, 몇 안 되는 호텔에서 저녁이면 벨리 댄스 공연을 구경할 수 있다.

 

.흡사 계단식 논처럼 보이는 석회 언덕

석회 언덕이 보이는 파묵칼레 입구 마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었다. 결혼 적령기의 처녀가 있는 집에서는 지붕 위에 빈 병을 꽂아 두었다 한다. 만약 그 집 처녀와 결혼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그 병을 깨뜨려 그 집 처녀에게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이런 방식의 청혼 풍습은 없어져 버리고 전설이 되어 버렸다 한다.

 

.파묵칼레 석회 언덕 아래로 온천 마을이 보인다.

밀이 익어 가는 밀밭 옆을 지나 파묵칼레 읍내 마을의 상가와 거리를 둘러보았다. 흡사 시골 마을 시장 같은 분위기가 났다. 은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가게 입구에 걸려 있던 ‘나자르 본쥬’가 나의 눈을 끌었다. 터키의 아이콘중 하나인 나자르 본쥬(Nazar boncu)는 ‘행운의 눈’으로 터키인들은 행운을 가져 온다고 믿고 있다.

 

.터키의 아이콘인 나자르 본쥬 ‘행운의 눈’

이것은 독특한 짙은 청색의 터키석으로 만들어 졌는데 터키 사람의 눈동자 색깔과 모습을 닮았다. 열쇠고리에서부터 자동차 내부나 집안의 출입구, 상점의 출입구 등 어디에나 걸려 있다. 이는 터키에서 흔히 보이는 國父(국부) 아타투르크의 모습만큼이나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 호감을 보이는 터키인

터키인의 모습도 딱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애매하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검은 머리칼과 구레나룻 수염을 가진 유럽과 아시아인의 중간 모습이랄까. 터키 상점의 주인이나 점원은 거의가 남자이다. 음식점이나 차를 마시는 다방에도 남자가 써빙하였다. 일반 관광지의 가게도 남자 점원 아니면 남자 주인이 나와서 손님을 맞는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인네가 외간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금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시장 골목의 채소 파는 좌판에서 아줌마 상인을 보았는데 얼굴을 거의다 가린 차림이었다.

 

마을 시장통을 오고가는 중에 터키 상인들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 왔다. 한국 관광객을 呼客(호객)하는 의미가 주목적이지만, 우리 한국인에게 호감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들이 그만큼 많이 온다는 반증이기도 하였다. 가게에 들어가니 그네들의 전통차인 사과차와 가벼운 스낵 종류를 권하며 접대해 주었는데 그들의 정겨운 인심을 보여 주었다. 상인뿐만 아니라 대개의 터키인들이 外地人(외지인)에 대해 관용적이라 한다.

 

터키 사람들이 특히 한국인에게 더 잘 대해 주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2002년 월드컵 때 터키와 준결승전(3.4위전)에서 터키와 우리나라가 맞붙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에게 보여준 우정이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축구 경기장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터키 선수단을 따뜻이 응원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터키는 6.25 때 우리나라에 파병한 국가이며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이러한 이유로 터키인들은 우리나라를 ‘형제의 국가’라고 부르고 있고, 특히 터키의 노인들(할아버지)들은 한국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성(聖)스러운 도시라기보다는 죽은 자들의 도시인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히에라폴리스에 남아 있는 로마 흔적

파묵칼레 지역 바로 옆에 있는 ‘히에라폴리스’는 하얀 석회 언덕의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고대에는 성(聖)스러운 지역으로 불렸다고 하며, 마땅한 의료(치료) 시설이 없던 로마 시대 당시에는 귀족 원로들의 온천 휴양지로 유명했었다 한다.

 

.히에라폴리스에 남아 있는 잘 보존된 고대 원형극장.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자 도시 형태를 갖게 되었고 원형극장과, 공회당, 식당, 신전 건물, 개선문 등이 세워졌다. 이런 고대 유적과 더불어 독특한 석회 언덕이 있기 때문에 이곳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왔거나 휴양을 위해서 왔거나, 많은 귀족들이 결국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이곳 히에라폴리스 언덕 주변에 묻히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의 유해를 넣었던 많은 石棺(석관)들이 이곳저곳에 도열하듯이 남게 되고, 나중에는 석관 묻을 장소가 협소해지자 오늘날의 납골당과 비슷한 형태인 무덤도 생겼다 한다. 이렇듯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황량한 언덕에는 죽은 자들의 무덤들이 셀 수 없이 널려져 있기 때문에 ‘聖스러운 도시’라기보다 차라리 ‘죽은 자들의 도시’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히에라폴리스에 널려 있는 석관들

방치되고 있는 많은 무덤들과 폐허가 되어 버린 고대 도시가 죽은 듯 고요한데, 바람에 나부끼는 풀 몇 포기와 도마뱀 몇 마리만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터키 남부의 휴양 도시 안탈리아 

터키 남부 안탈리아에 들어오면 도시 한쪽 옆에 송곳처럼 높게 솟은 산(토로스)을 끼고 있는 시원한 바다를 만나게 된다. 안탈리아는 아름다운 해변과 도시 주변에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고, 기온 또한 따뜻하여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 중 가장 많은 여행자가 몰리는 곳이라고 한다.

 

.안탈리아 해변의 깨끗한 해변과 자갈들 

터키에서 가장 아름답게 펼쳐진 해변 중 한 곳이며, 바닷물 또한 어느 해변보다도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오월이면 흰 눈이 남아 있는 토로스 산정에서 스키를 타고, 해변에서는 일광욕과 해수욕, 원드 써핑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한 곳에서 여름과 겨울 스포츠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고 한다.

 

터키에서 가장 원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거대한 아스펜도스 로마 원형극장

.음향 반향이 완벽하다는 거대한 아스펜도스 로마 원형극장(오페라 공연 준비 중인 무대)

안탈랴에서 조금(차로 30분) 동쪽으로 올라가면 보존이 잘 된 로마시대 때 지은 아스펜도스 로마 원형극장이 있다. 가장 위쪽의 처마부분을 빼고는 정교한 구조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규모도 대단히 크지만 오늘날 기준으로 보아도 완벽한 음향 반향을 가지고 있다 한다. 조명 시설 몇 개만 추가하면 훌륭한 오페라 공연 극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한다. 요즘도 주말이면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어 야외 오페라의 진수를 맛볼 수 있으며, 매년 8~9월이면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이 곳의 오페라 공연은 이탈리아 베로나의 오페라 축제만큼이나 유명하다.  

(계속)

 

 

 

터키 여행기1( 2007.05~06)    여행일자: 2007년 05월. 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화질 좋은 터키 소개 영상> 제목:Watchtower of Turkey 가:Leonardo Dalessandri 처: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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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관련 추천 사이트(추천)

    1.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https://www.youtube.com/embed/z7yqtW4Isec<=요걸 클릭

 

     2.터키 여행 추천 책자:ENJOY 터키 김지선 외(강추): ENJOY 터키 <=요걸 클릭

 

터키에서 만나게 될 과거의 유적-

오늘날 터키인들은 99%이상이 이슬람 종교를 갖고 있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가 창시하여 메카를 성지(聖地)로, 코란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데, 칼리프(마호메트 후계자)와 모스크(이슬람 사원), 그믐달, 별, 칼로 상징된다. 따라서 과거의 터키 문화유산들은 이슬람 문화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많은 이슬람 문화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터키 땅의 과거 내력을 보면 단순히 그렇게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문명, 트로이 유적, 헬레니즘 시대의 페르가몬 왕국의 유적, 로마 유적, 이슬람 유적 등 여러 문명의 자취가 남아 있다. 터키 땅의 대부분이 세계 문명의 시발점 중의 하나이면서 교차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궁무진한 역사적 유물들이 터키에 숨겨져 있다.

 

유럽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이스탄불을 제외한 터키 땅의 대부분은 아시아 지역에 있는 아나톨리아(anatolia)로, 이곳은 11세기에 터키 민족이 도래하기 이전부터도 여러 민족과 나라의 흥망과 성쇠가 있었던 곳이었다. 아나톨리아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차로였다.

 

여행사의 관광 상품의 프로그램이 역사적 순차를 따라 방문하게끔 의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들의 여정의 시작과 끝은 고대 유적 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근세 유적 지역으로 마무리 되었다.

 

터키 제 3의 도시 이즈미르와 에페소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약 12시간의 비행 끝에 이스탄불에 내렸다. 다음날의 일정상 밤 10시에 이즈미르로 출발하는 터키 국내선 비행기로 다시 바꿔타고, 이즈미르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가 다 되었다. 이즈미르는 지중해(에게 해)에 면한 터키 서부 해안 도시로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터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지진이 많아서인지 초고층 건물은 보기 드물었다.

 

이즈미르는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발굴을 통해 트로이의 첫 번째 도시와 같은 시기인 BC 3000~2000년경에도 도시가 형성되었다 한다. BC 1000년경의 유물로 알려진 도자기가 출토되면서 이 도시가 그리스의 도시였음이 입증되었다. 이스탄불과 마찬가지로 지정학적 요충지로 지난 5,000년 동안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해왔다.

 

천국의 열쇠와 십자가

.성모 마리아의 집 입구에 있는 열쇠 구멍 형태의 세례식 장소

 

.사도 요한의 교회에 있는 십자가 형태이면서도 열쇠 구멍 형태를 가진 세례식 장소


불불산에 위치한 이곳 성모 마리아의 집(성모 마리아 교회)은 예수가 죽은 후 마리아가 이곳에서 살았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예전에 어떤 수녀님의 기도하는 중에 계시된(?) 내용을 기록하였었는데, 후일 어떤 신부님이 그 글에 쓰인 내용을 추적하다 보니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전설(傳說)을 들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이곳을 성지로 공인하였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사도 요한의 교회는 사도 요한이 이곳에서 살다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4세기경 교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집 입구에 있던 세례식 장소와 사도 요한의 교회에 있는 십자가 형태의 세례식 장소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열쇠 구멍 형태인 것이 인상에 남았다.

 

.에페스 고고학 박물관(Efes Müzesi)의 아르테미스 상


에페소스(Efesos, Efesus)

이곳은 이즈미르에서도 멀지 않으므로 배를 타고 지중해 바다 연안을 크루즈 여행을 한다면 빠뜨릴 수 없는 여행지이다.  에페소스는 에게 해안을 따라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약 7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우리말 성경에는 에페소스를 에베소로 적고 있다. 에페소스는 기원전 10세기에 이오니아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알렉산더대왕 이후 에페소스는  로마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에게 해안에서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 중요한 대도시가 되었다 한다.

 

.지금 봐서도 규모가 대단한 케르소스 도서관

 

.그리스어로 승리의 여신 니케아(영어로 NIKE 나이키)


그 당시에는 인구 25만 명을 가진 큰 도시로 예술가와 돈 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었고 철학, 문학 등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근에 흐르는 카이스터 강의 범람으로 항구 쪽으로 흙이 쌓이면서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말라리아 전염병이 번지면서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나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로선 세계에서 몇 번째로 큰 규모의 도시가 자연의 힘과 모기에 의해 몰락하였던 것이다.


완벽하고 잘 짜인 대규모 도시 에페소스에서 느낀 당시 사람들의 영감과 영혼

하지만 남아 있는 에페소스의 정교하고 화려한 건축물과 조각들을 보면 그 때 당시의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여러 신전들과 조각과 분수대, 원형극장과 공회장, 케르소스 도서관, 대리석이 깔린 길(보도), 목욕탕과 공중 화장실, 시장터 등 그야말로 오늘날의 도시 기준으로 보아도 완벽하고 훌륭한 도시 구조물은 다 있다. 어디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하고 잘 짜인 대규모 도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 예술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그 시대의 건축 기술과 장인들의 실력이 놀랍기만 하다. 돌조각에 장인들은 그들의 영감과 영혼을 불어 넣었을 것이다. 당시 그들이 갖고 있었던 과학 기술과 건축과 예술, 문화적 소양이 그들이 만든 건축물과 예술품에 잘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작은 공연장 또는 회의장소로 사용되었을 법한 장소

 

.이 곳 계단  좌석 옆의 사자 발모양 조각.

 

도리아 양식

도리아 양식의 기둥은 엔타시스(배흘림) 기법으로 기둥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기둥의 굵

기가 가늘어 지는 것이 특징이다.

 

.직선적, 남성적, 장엄함을 보이는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은 여성적이고 우아하며 기둥머리엔 양뿔 모양의 소용돌이 장식이 특징이며 아래 위 기둥의 굵기가 비슷하다. 

 

코린트 양식

기둥머리를 아칸서스 나뭇잎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코린트 양식의 특징이다. 

나뭇잎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한코린트 양식 

.무너지고 남은 존재이지만 당시의 위엄을 보여 준다.

 

후문 쪽 입구로 나오는데 관광객들을 위해 옛 모습으로 분장하고 볼거리를 보여 주었다. 항상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지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이런 event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옛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당시 공연 영상을 보려면 동영상 보려면 ▷클릭   

동영상이 안보이면

다음 링크를 클릭: https://play-tv.kakao.com/embed/player/cliplink/6457674?service=daum_blog 

 

Sema(세마의식) - 2008년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무형문화 유산 등재되었음.
후문 쪽 입구로 나오는데 관광객들을 위해 옛 모습으로 분장하고 볼거리를 하얀 모자를 쓰고 긴 치마를 입은 수도승들이 빙글빙글 돌며 추는 세마는 신을 향한 소통을 의미하는 종교의식이다. 오른손은 하늘로 왼손을 땅을 향하며 한 방향으로 계속 회전한다. 하늘을 향한 오른손은 알라를 영접하고 땅으로 뻗은 왼손은 알라의 평화, 사랑, 관용을 뜻한다. 같은 방향으로 끝없이 돌면서 명상과 움직임만으로 신과 합일 상태에 다다른다. 이러한 의식은 신과 교감하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계속)

 


컴퓨터가 안 켜진다면... 최종 수정 2018.07.18

(같은 내용의 첨부 파일 있음) [파일:1]

A컴-02-컴퓨터가 안켜진다.hwp


(기본 확인 사항) 정전은 아닌가? 컴퓨터에 연결된 멀티탭(콘센트)은 켜졌나? 전원 연결선은 잘 꼽혔나 확인!

<컴퓨터가 안 켜지면 다음을 확인한다.>

A.컴을 켰을 때 컴에 전원(Power) 들어오는가?

     Yes -> B

1.컴퓨터 전원 연결선은 꽉 끼워졌는가?

2.컴퓨터 전원 연결선이 단락(선이 끊어졌다)

  됐다면, 전원연결선 cable 교체

3.컴퓨터 전원 S/W(스위치) 고장인가 확인.

  S/WMB(메인보드=주기판) 연결선 확인.

4.(교류->직류) 전압 변환기 fan 안 돌아가면

  전압 변환기 S/W 확인

 

B.S/W 켰을 때 컴퓨터에 전원이 들어오는가?

컴은 켜졌지만 화면이 안 보이면-> C,D

1.컴 외부 LED 불빛 보이는지, cooling fan,

  전압 변환기 fan이 돌아가는지 확인.

2.(교류->직류) 전압 변환기에서 나온 직류

  연결선(CPU,하드디스크용) 연결 재확인.

 

C.모니터에 전원이 안 들어오면?

1.모니터용 전기선 연결 확인,모니터 S/W확인

2.모니터 자체가 고장인 지 확인한다.

  필요시 다른 모니터를 연결해서 test해 본다.

  (모니터 고장이면 교체)

D.컴 켜졌으나 모니터 전원 들어왔는데도

모니터 화면이 안 뜨면?

1.모니터와 컴의 그래픽 단자 연결 cable

  잘 끼웠는지 확인.

2.모니터 자체가 켜진다면 CMOS 설정 확인

3.모니터는 (정상)켜지지만 CMOS 설정화면이

  나오지 않을 때는 컴 내부(M/B)RAM

  뺐다가 다시 잘 꽂아 보거나, M/B 밧데리를

  제거한 후 20초 후 다시 끼우고 컴을 다시

  부팅 시켜 본다!

  필요시 단추 밧데리(CR2032)를 교체한다.

4.모니터와 CMOS 설정은 되지만, 컴이 안 켜지면,

  그래픽카드 설정 에러확인(F8 안전모드).

  * (F8) 안전모드로 부팅하여,그래픽 설정 재확인

5.모든 게 ok 인데 컴이 안 켜지면, 부팅 OS 없거나

  컴 바이러스에 의한 부팅PG 손상 가능성 고려.

  필요시 정상 하드로 교체하여 부팅해 봐서 컴이 잘

  켜지는지 확인한다.

 

E. 프린터 출력이 안 되면?

1.출력할(출력 지정) 프린터를 맞게 지정했는지 확인!.

만약 설정에서 오프라인으로 작업으로 (v) check

설정되어 있다면 v 해지

2.프린터 전원은 켜졌는지, 전원 연결 cable은 이상

  없는지 확인.

3.컴과 프린터 연결 cable이 잘 끼워졌는지 재확인

먹통이 되었다. 어떻게 탈출하나?

1.컴퓨터가 처음부터 아무것도 안나오는 것이 아니라, 잘 쓰고 있는 도중 갑자기 마우스나 키보드가 먹통(소위 락다운)

   되는 수가 있다. 원인은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컴퓨터 내의 메모리 부족 현상-)한꺼번에 여러 PG(메모리 사용량이

   큰 PG)을 돌린 경우 또는 프로그램(PG) 간의 충돌- 등에 의한 것이 있다. (PG= 프로그램)

   때에 따라 컴퓨터 내부 온도가 올라가서 시스템의 성능 저하로 그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처음 컴을 켰을 때는 잘 돌아 가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주 다운 되는 경우에는 이를 의심해 봐야 하다
   이 때는 내부의 통풍이 잘 되게하고 cooling fan(특히 CPU)이 잘 돌아가나 확인해봐야 한다.

   임시 조치로 컴퓨터의 외부 case 를 열어 open 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한 CMOS 설정에서 Hardware '온도 모니터링 설정'을 해 두었을 경우 그런 현상이 잘 발생되므로,

   응급조치로 Mother board 설정에서 '온도 모니터링 무시 Ignore'로 설정해 둔다.

   아울러 CPU cooling fan, 변압비(Power) Fan, 그래픽 cooling fan에 낀 먼지를 헌 칫솔이나 치간 칫솔로 제거한다.


2. 컴이 갑자기 멈추었을 때-(소위)쓰고 있는 도중 갑자기 마우스나 키보드가 먹통(소위 락다운)되었을 때, 우선

    Pg작업 종료(E)Alt-Ctrl-Del 세 키를 동시에 누른다.(작업관리자 mode로 들어 갈 수 있다.)

   작업관리자 창에서 문제되는 pg을 강제 종료(작업종료) 시킬 수 있고, 필요시 컴퓨터 log off 또는 다시 시작,

   [종료]를 시킬 수 있다.


 3. 마우스의 고장(이상동작)으로 마우스가 먹히지 않는 경우에는 키보드 만으로 조작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임시로) 작업 중단이나 윈도우 창닫기는 Alt+F4로 작업종료 또는 창을 닫을 수 있다

    시스템 종료나 log-outAlt+F4를 시행 반복 시행하면 시스템 종료 또는 log out 창이 뜬다.

    마우스 작동이 안되면 창닫기’(x box 닫기)를 할 수 없는데 Alt+F4 '창닫기' 하며,

    다음 항목 이동은 Tab 키를 사용한다. (, 위 아래 화살표가 동작하면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음)

 

    경우에 따라 Alt-Ctrl-Del 를 동시에 눌러(작업관리자 mode로 들어갈 수 있음), 문제가 되는(lock다운을 초래하는)

    Pg을 작업을 종료(E) 시키거나 로그 아웃, 또는 다시 시작을 할 수 있다.

    (참고: 작업관리자 mode에서 Pg [작업 종료]뿐만 아니라 [다시 로그인] 또는 [다시 시작]을 할 수도 있다.)

 

   (조치) 만약, 마우스 고장이라면 마우스 청소 또는 교체.

4. 키보드나 마우스도 안 먹고(먹통), Alt-Ctrl-Del 키에도 반응이 없다면 컴퓨터를 강제로 끌 수(power off) 밖에 없다.

   컴퓨터를 강제로 power off 시킨 후 다시 켜면 약간 흐린 청색을 띈 회색 화면이 나온다.

이 때 컴퓨터는 integrity(완전 무결성 검증)과정을 거치게 되며 하드디스크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약 5-6분 시간이 소요된다.

당장 (시간 촉박하게) 곧 바로 컴퓨터를 사용할 경우에는, 이 화면이 나왔을 때 space bar(스페이스 키를)누르면 integrity 과정을

생략할 수가 있다.

다만, integrity(완전 무결성 검증)생략했을 경우에는 다음 부팅시에 integrity(완전 무결성 검증)과정이 다시 나타나므로 한번은

integrity(완전 무결성 검증) 과정을 실행 시켜 줘야 한다.

 

5.때로는 키보드에 때나 이물질이 끼어 어떤 자판이 계속 눌려 있는 상태가 되어서 Locking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조치) --> 키보드(자판기) 청소 또는 교체


-()-


제목: 인위적으로 방화문을 열어 두는 행위는 불법(위법)

-방화문을 고정하기 위해 까치발이나 철사 등으로 벽에 고정하지 마세요.-

 [요약]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곳의 방화문에 일반형 도어체크를 부착하면 수시로 여닫는 게 번거롭기 때문에,
사람들이 잔꾀를 부려 까치발이나 나무 등을 괴어 강제로 개방해 두는 수가 있다.
이는 위법사항으로 유사시 방화문의 구실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까치발이나 나무 등을 괴어 강제로 개방하면 위법

                     

                                           철사 등으로 방화문을 강제 개방하는 것도 위법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방화문은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하거나
화재로 연기·온도·불꽃 등을 감지하면 신속히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화문을 열어서 고정해두는 행위가 적발되면 1100만원, 2200만원, 3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방화문은 갑종과 을종으로 구분되고, 재질은 철재, 목재, 유리 등 재질에 따라 분류되고, 상시 개방형(감지기에
의한 자동 폐쇄장치)상시 폐쇄형(도어 클로저에 의한 자기 폐쇄장치)으로 구분한다.

갑종방화문에 부착하는 도어체크로는 일반형과 소방용(=휴즈 블링크형)이 있는데 통상적인 적용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왕래가 잦아 문을 항상 개방하는 게 합리적인 장소 소방용 도어체크 부착
  아파트 등 사람의 왕래가 적어 문을 열어둘 필요가 적은 장소 일반용 도어체크 부착 

따라서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곳은 소방용 도어체크를 부착하여 평상시 개방, 유사시 닫힘으로 운영해야 한다.

상시 개방하여야 할 경우 감지기와 연동하여 화재발생시 방화문을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여야 한다.
참고로,소방용(=휴즈 블링크형)은 기계식이므로 도어체크의 고장이나 열 감지시간이 늦어질시 작동에 문제가 있다.

화재, 연기 감지기 연동형이 아닌 단순 휴즈형 도어체크는 방화시설 설치 및 유지관리 위반이 될 수 있다.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곳에서 개방, 유사시 닫힘으로 운영하려면 도어 릴리즈 설치하는 것이 좋다.

(도어 릴리즈고리형 추천)

도어 릴리즈는 방화문용 자동폐쇄장치로 레치와 훅크의 보장력으로 방화문을 열린 상태로 유지시켜주며,

방제실의 DC24V 전원조작이나, 화재시 연·, 열감지기에 의한 연동제어기의 제어에 따라 보장력이 풀려

도어클로저나 오토힌지 등에 의해 방화문이 닫혀져 화재 확산을 막는다. 보장력이 강하고 보장력 조절이 가능하며,

입력전원이 무극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일반인들은 시공법이나 공구의 문제로 소방용 도어체크 메뉴얼이 있어도

부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술자를 불러 시공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건축물의 피난. 방화 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중 일부 요약 발췌 *

[방화벽과 방화문]
1. 방화벽
(1) 방화벽의 설치 및 구조기준
- 방화벽은 화재시 연소의 확산을 막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규모 건축물 또는 목조건축물에 설치하는
   벽으로서 그 설치기준과 구조는 다음과 같다.

* 방화벽 설치 기준

. 대상건축물 조건 : 주요 구조부가 내화구조 또는 불연재료가 아닌 연면적 1,000이상인 건축물

. 구획단위 : 연면적 1,000미만마다 구획

. 방화벽의 구조

- 내화구조로서 홀로 설 수 있는 구조로 할 것

- 방화벽 양 쪽 끝과 위쪽 끝을 건축물의 외벽면 및 지붕면으로부터 0.5m이상 튀어나오게 할 것

- 방화벽에 설치하는 출입문의 너비 및 높이는 각각 2.5m이하로 하고 이에 갑종방화문을 설치 할 것

- 연면적 1,000이상인 목조건축물 외벽 및 처마 밑의 연소할 우려가 있는 부분을 방화구조로

   하되, 그 지붕은 불연 재료로 하여야 한다.

  

2) 방화벽 설치 제외 대상 건축물
- 단독주택, 공관, 축사, 식물관련시설, 교정시설, 군사시설 및 요지관련시설(화장장은 제외)의 용도에
  쓰이는 건축물 또는 내부설비의 구조상 방화 구획 할 수 없는 창고 시설인 경우에는 방화벽을 설치하
  지 않아도 된다.

2. 방화문
- 방화문은 갑종방화문 및 을종방화문으로 구분하되, 산업표준화법에 의한 한국산업 규격이 정하는 바 에 따라 
  시험한 결과 각각 비차열 1시간 이상 및 비차열 30분 이상의 성능이 확보되어야 한다.
- 방화문이 문틀 또는 다른 방화문과 접하는 부분은 그 방화문을 닫은 경우에 방화에 지장이 있는 틈이
  생기지 아니하는 구조로 하여야 하며, 방화문을 달기 위한 철물은 그 방화문을 닫은 경우에 노출되
  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
- 방화문은 항상 닫힌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며, 언제나 개방할 수 있어야 하고 기계장치 등에 의해 
  스스로 닫혀야 한다.

* 갑종방화문과 을종방화문의 구분

(1) 갑종방화문

- 골구를 철재로 하고 그 양면에 각각 두께 0.5mm 이상의 철판을 붙인 것

- 철재로서 철판의 두께가 1.5mm 이상인 것

(2) 을종방화문

- 철재로서 두께가 0.8mm 이상 1.5mm 미만인 것

- 철재 및 망이 들어 있는 유리로 된 것

- 골구를 방화목재로 하고 옥내면에는 두께 1.2mm 이상의 석고판을 붙이고 옥외면에 철판을 붙인 것

 

* 9(피난계단 및 특별피난계단의 구조)
35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건축물의 5층 이상 또는 지하 2층 이하의 층으로부터 피난층 또는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계단(지하 1층인 건축물의 경우에는 5층 이상의 층으로부터 피난층 또는 지상
   으로 통하는 직통계단과 직접 연결된 지하 1층의 계단을 포함한다)은 피난계단 또는 특별피난계단으
   로 설치하여야 한다.

1항에 따른 피난계단 및 특별피난계단의 구조는 다음 각호의 기준에 적합하여야 한다.

1. 건축물의 내부에 설치하는 피난계단의 구조

   . 건축물의 내부에서 계단실로 통하는 출입구의 유효너비는 0.9미터 이상으로 하고,

  그 출입구에는 피난의 방향으로 열 수 있는 것으로서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하거나

  화재로 인한 연기, 온도, 불꽃 등을 가장 신속하게 감지하여 자동적으로 닫히는 구조로 된

   제 26조에 따른 갑종방화문을 설치할 것

 

-참고- 관련법령
1) [건축법시행령] 46(방화구획의 설치)
2) [건축법시행령] 64(방화문의 구조)
3)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규칙 제9(피난계단 및 특별피난계단의 구조)
4)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규칙 제14(방화구획의 설치기준)
5)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규칙 제26(방화문의 구조)
6)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2-552, 자동방화셔터 및 방화문의 기준
7)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10(비상용승강기의 승강장 및 승강로의 구조)
8) [소방시설설치유지및안전관리에관한법률시행령] 4장 소방시설 등의 설치·유지 제17(특정소방대
    상물의 증축 또는 용도변경시의 소방시설기준 적용의 특례)
9) 특별피난계단의계단실및부속실제연설비의화재안전기준(NFSC 501A) 21(제연구역 및 옥내의
    출입문)
10)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규칙 [별표 2] 나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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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동파, 배관 동결 예방 및 보일러 급수 이상 대처법

 

요즘 보일러엔 동파 방지 기능 있어 어느 정도 보일러 동파에 대비는 할 수는 있지만,

배관 동결 등100% 예방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파가 극성인 경우 보일러 동파나 배관 동결 방지법에 대해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도 계량기 동파 신고: 각 지역 상수도 사업본부 또는 서울: 국번 없이 120 다산콜센터

 수도 계량기 동파 방지법:

계량기 주변부(내부)를  천이나 담요로 덮고, 찬 공기가 유입 안 되게 덮개를 잘 해 준다.

필요시 온열선(동파방지선)을 계량기 내부에 설치해 줄 수도 있으나,

누수에 의한 단락과 이상 과열 등에 의한 화재 발생에 유의해야 한다.

   

다음, 한파 관련하여 발생된 보일러 고장이나 급수 이상 상태에 대한 조치법을 알아보자.

, 평소에는 급수(냉수, 온수)가 잘 되었고, 단수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조건이다.

혹한기 보일러 배관 동결 예방법 요약

1. 장기간 외출 시에는 보일러 조정기를 [외출]로 세팅하여 3~6시간마다 돌아가게 해 둔다.

2. 1초에 3~10방울 정도 똑똑 떨어지게온수 쪽 수도를 틀어 놓는다.

    보일러가 아예 없는 경우에는 얼기 쉬운 쪽의 수도꼭지를 틀어 놓는다.

3.  필요시 온열선(동파방지선)을 수도 계량기와 실외 보일러의 직수배관 및 온수배관에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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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수도 공급관에서 냉수 또는 온수가 안 나온다.

A. 단수 상황인가 다시 한 번 확인한 다음, 단수 상황이 아니라면

    수도 공급 pipe 라인(냉수, 온수)이 동결된 것이다.

A1 흔히 (실외) 보일러실의 직수 배관이나 온수 배관이 동결이 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실내라도 수도꼭지 부근이 추운 곳에 위치한 수도꼭지가 잘 언다(동결된다). 이러한 상황의 응급조치 방법:

A1-1 (실내) 수도꼭지 부근의 배관의 동결은 뜨거운 온수를 부어 보거나

        헤어 드라이기로 직수와 온수 라인에 열기를 가하여 해빙을 시켜 본다.

 

A1-2  (실외) 보일러실의 직수 라인과 온수 라인에 따뜻한 물을 부어 보는 방법과

        헤어 드라이기로 직수와 온수라인에 열기를 가해 해빙 시키는 방법도 있다.

        해동 시킬 범위가 넓으면 해동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작업에도 해빙이 안 된다면 인근 (보일러) 설비업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의 :

, 온수 일체형 밸브를 사용하는 경우 온수가 아닌 냉수 방향으로 돌렸을 때 냉수가 나온다 해서, 온수 쪽이 해동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즉 이 경우는 보일러의 온수가 나오는 것이 아닌 상수도 라인에서 나오는 냉수임으로,

온수 쪽 해동과는 관련이 없다

또한 평소 온수를 사용하기 위해 냉, 온수 일체형 밸브를 온수 쪽으로 열었을 때 온수가 잘 나오던 것이,

온수 쪽으로 밸브를 열었을 때 물은 나오지만 온수가 안 나온다면,

보일러 작동 되는 전원 및 온수 세팅 상태를 다시 확인해 본다.


만약, 전원은 문제없고 보일러 계기 조작판에 에러가 안 나오는 데도 더운 물이 안 나오면 보일러 고장이므로

보일러 회사에 A/S 신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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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혹한기 실외 보일러실의 직수 배관이나 온수 배관 동결 예방법

A2-1. 장기간 외출 시에는 보일러 조정기를 [외출]로 세팅하여 3~6시간마다 돌아가게 해 둔다.


A2-2. 저녁 잠자기 전에 온수 쪽 수도 꼭지를 조금 열어 둔다. 장기간 외출 시는 미리 수도를

        조금 틀어 놓는다. 온수 쪽만 물을 흘려도 직수 쪽 동결을 예방할 수 있다.

        보일러가 아예 없는 경우라도 얼기 쉬운 쪽의 수도꼭지를 틀어 놓으면, 수도(꼭지)

        얼지 않을 것이다.

요령: 1초에 3~10방울 정도 똑똑 떨어지게’ (온수 쪽) 수도를 틀어 놓는다.


A2-3. 실외 보일러의 경우 직수배관과 온수배관을 스티로폼으로 감싸고, 배관 주위를 옷가지 등

          으로 감싸주면 어느 정도 보온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필요시 온열선(동파방지선)을 실외 보일러의 직수배관 및 온수배관에 설치해 줄 수도

있으나, 누수에 의한 단락과 이상 과열 등에 의한 화재 발생에 유의해야 한다.


-끝-


명동 스쳐 지나가기 -2-

글쓴 일자: 2008.10.25.(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노래: 사월과 오월 - 옛사랑, 화(和), 바다의 여인)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youtu.be/RYXLebhmqN4  <=요걸 클릭
      


지난 날 젊은이들이 장발을 한 채로 고고장을 드나들었던 사보이 호텔의 흔적을 찾기 위해 명동길을 둘러보았다. 한때 국내 최고의 예술 극장 무대였던 명동 예술극장(구 시공관)은 복원공사 중이었다. 명동 성당 길로 돌아가다 보니 명동 로얄호텔이 있었다. 70년대에는 장발족들이 이곳 고고장을 메웠을 것이었다. 30여 년 전 그때 그 시절의 고고파티장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떠들썩하고 먼지 자욱했던 고고파티장 회상 장면이 잠깐 지나간 후, 그 당시 장발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서 갇혔을 때의 상황과 연결되어져서 바로 답답합이 느껴졌다.

 

(좌)명동성모 병원이 보이는 길, (우)명동 성당의 붉은 벽돌의 양관

일부러 찾아 가본 명동 성당은 안타깝게도 보수 공사로 인해 철골 구조물 사이에 끼어 신음하고 있었다. 철골 대를 받쳐 놓은 종탑 부위는 상처가 난 듯 중환자의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아름다웠던 종탑의 이전 모습을 크게 인쇄하여 흉물스런 철골 모습을 가려주었더라면 좋을 것 같았다. 이처럼 문화재 보수 공사를 할 때는 관광객을 위해 가림막에라도 보수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서비스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나마 성당 입구 우측의 붉은 벽돌색의 양관 건물과 좌측의 주교관이 높다란 빌딩 사이로 옛 모습을 살짝 보여주어 아쉬움을 덜어주었다.

 

. (좌)보도 블럭 연석의 무당벌레, (우)명당 성당 입구의 성모상과 기도처

보도블록과 차도 사이에는 무당벌레 모습의 돌기둥이 보도 경계를 따라 놓여져 있다. 도시 공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전 문화재를 보러온 사람들을 배려 부족에 대한 섭섭했던 느낌은 이 무당벌레 보도 경계석과 파란 하늘을 보니 금방 녹아 없어져 버렸다.
명동 성모병원 앞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의 신자들의 모습을 잠깐 보고, 중앙 극장 쪽을 가려했으나 공연 시간이 가까웠기에 그곳은 가지 못하였다.

YWCA 후문을 따라 내려가니 향린교회가 보인다. 70년대 당시 반골적인(?) 인사들이 주최했던 세미나와 기도회에 참석하곤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중 생각나는 분은 전신 화상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키에르케골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던 채규철 선생님이 생각났다.

 

(좌) 김태풍 님                                                               (우)백순진 님

드디어 YWCA 뒤편 ‘청개구리’의 태동지인 ‘마루’홀에 들어갔다. 수많은 포크 스타들이 이 곳에서 노래하고 흔적을 남겼다. ‘마루’홀 입구에서는 예매 담당자가 신분증을 대조하며 예매 리스트를 확인하고 입장표를 주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예매 담당자가 가지고 있던 예매 리스트는 오신 분들의 명단이 거의 체크된 상태였다. 담당자는 ‘4월과5월’의 공연 팸플릿과 사오모 모임 안내가 씌어진 명함 크기의 금색 card를 주었다. 

4월과5월의 주역이신 학무님(백순진 님)과 태풍님은 관객으로 오신 손님과 인사와 담소를 하시고 계셨다. 나도 인사를 하니 태풍님께서 포도주를 손수 주신다. 학무님은 약간 술기운 이 오르셨는지 아니면 공연 전 긴장의 탓인지 약간 상기된 듯 보였다. 나는 술을 감사하게 받고 사인북을 펼치고 두 분께 기념 사인을 받았다. 안면이 있는 사오모 회원과 청개구리, 바람새 회원과도 인사와 악수를 나누고 사인을 받았다.

 

'4월과 5월'의 앨범 자켓과 모임 걸개 banner

일반 회원이 많이 오셔서 공연 좌석이 모자랄까봐 밖에서 기다리다가, 공연 시작 바로 전에서야 하나 남아 있던 앞자리 한쪽을 차지했다. 마침 앉은 자리 바로 앞에는 카페 지기인 훈장님이 계셨다. 무대 정면은 아니지만 오히려 앞자리인데다가 ‘4월과 5월’님이 연주하는 쪽이어서 두 분의 노래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intro background로 흐르던 잔잔한 드럼 소리와 건반 소리가 잦아들고 이윽고 ‘디디딩 딩딩~' 기타 울림이 터져 나왔다. ‘4월과5월’ 두 분의 노래가 시작 되었다. [바다의 여인]이었다. 
 

(노래): 바다의 여인 -4월과5월-' :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음악을 들으려면 ▷클릭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youtu.be/IzjBTOKv9pY/span>  <=요걸 클릭


바다의 여인 / 사월과오월 (1976)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바닷가에서 추억을 맺은 사람
손잡고 해변을 단둘이 거닐며
파도소리 들으며 사랑을 약속했던

그러나 부서진 파도처럼
쓸쓸한 추억만 남기고 가버린
바다의 여인아

손잡고 해변을 단둘이 거닐며
파도소리 들으며 사랑을 약속했던
그러나 부서진 파도처럼
쓸쓸한 추억만 남기고 가버린
바다의 여인아

그러나 부서진 파도처럼
쓸쓸한 추억만 남기고 가버린
바다의 여인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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