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사월과 오월 - 옛사랑, 화(和), 바다의 여인) :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youtu.be/RYXLebhmqN4<=요걸 클릭
지난 날 젊은이들이 장발을 한 채로 고고장을 드나들었던 사보이 호텔의 흔적을 찾기 위해 명동길을 둘러보았다. 한때 국내 최고의 예술 극장 무대였던 명동 예술극장(구 시공관)은 복원공사 중이었다. 명동 성당 길로 돌아가다 보니 명동 로얄호텔이 있었다. 70년대에는 장발족들이 이곳 고고장을 메웠을 것이었다. 30여 년 전 그때 그 시절의 고고파티장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떠들썩하고 먼지 자욱했던 고고파티장 회상 장면이 잠깐 지나간 후, 그 당시 장발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서 갇혔을 때의 상황과 연결되어져서 바로 답답합이 느껴졌다.
(좌)명동성모 병원이 보이는 길, (우)명동 성당의 붉은 벽돌의 양관
일부러 찾아 가본 명동 성당은 안타깝게도 보수 공사로 인해 철골 구조물 사이에 끼어 신음하고 있었다. 철골 대를 받쳐 놓은 종탑 부위는 상처가 난 듯 중환자의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아름다웠던 종탑의 이전 모습을 크게 인쇄하여 흉물스런 철골 모습을 가려주었더라면 좋을 것 같았다. 이처럼 문화재 보수 공사를 할 때는 관광객을 위해 가림막에라도 보수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서비스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나마 성당 입구 우측의 붉은 벽돌색의 양관 건물과 좌측의 주교관이 높다란 빌딩 사이로 옛 모습을 살짝 보여주어 아쉬움을 덜어주었다.
. (좌)보도 블럭 연석의 무당벌레, (우)명당 성당 입구의 성모상과 기도처
보도블록과 차도 사이에는 무당벌레 모습의 돌기둥이 보도 경계를 따라 놓여져 있다. 도시 공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전 문화재를 보러온 사람들을 배려 부족에 대한 섭섭했던 느낌은 이 무당벌레 보도 경계석과 파란 하늘을 보니 금방 녹아 없어져 버렸다. 명동 성모병원 앞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의 신자들의 모습을 잠깐 보고, 중앙 극장 쪽을 가려했으나 공연 시간이 가까웠기에 그곳은 가지 못하였다.
YWCA 후문을 따라 내려가니 향린교회가 보인다. 70년대 당시 반골적인(?) 인사들이 주최했던 세미나와 기도회에 참석하곤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중 생각나는 분은 전신 화상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키에르케골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던 채규철 선생님이 생각났다.
(좌) 김태풍 님 (우)백순진 님
드디어 YWCA 뒤편 ‘청개구리’의 태동지인 ‘마루’홀에 들어갔다. 수많은 포크 스타들이 이 곳에서 노래하고 흔적을 남겼다. ‘마루’홀 입구에서는 예매 담당자가 신분증을 대조하며 예매 리스트를 확인하고 입장표를 주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예매 담당자가 가지고 있던 예매 리스트는 오신 분들의 명단이 거의 체크된 상태였다. 담당자는 ‘4월과5월’의 공연 팸플릿과 사오모 모임 안내가 씌어진 명함 크기의 금색 card를 주었다. 4월과5월의 주역이신 학무님(백순진 님)과 태풍님은 관객으로 오신 손님과 인사와 담소를 하시고 계셨다. 나도 인사를 하니 태풍님께서 포도주를 손수 주신다. 학무님은 약간 술기운 이 오르셨는지 아니면 공연 전 긴장의 탓인지 약간 상기된 듯 보였다. 나는 술을 감사하게 받고 사인북을 펼치고 두 분께 기념 사인을 받았다. 안면이 있는 사오모 회원과 청개구리, 바람새 회원과도 인사와 악수를 나누고 사인을 받았다.
'4월과 5월'의 앨범 자켓과 모임 걸개 banner
일반 회원이 많이 오셔서 공연 좌석이 모자랄까봐 밖에서 기다리다가, 공연 시작 바로 전에서야 하나 남아 있던 앞자리 한쪽을 차지했다. 마침 앉은 자리 바로 앞에는 카페 지기인 훈장님이 계셨다. 무대 정면은 아니지만 오히려 앞자리인데다가 ‘4월과 5월’님이 연주하는 쪽이어서 두 분의 노래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intro background로 흐르던 잔잔한 드럼 소리와 건반 소리가 잦아들고 이윽고 ‘디디딩 딩딩~' 기타 울림이 터져 나왔다. ‘4월과5월’ 두 분의 노래가 시작 되었다. [바다의 여인]이었다.
지난 (2008년) 9월 2일 대학시절 좋아했던 듀엣 '4월과5월'의 데뷔 35주년 콘서트가 명동에서 있었다.
어린 시절에 소풍을 앞둔 전날 내일 비가 오지 않도록 기원했었다. 이런 아이처럼 어제는 잠을 설쳤기에 고속버스로 서울까지 가는 동안 잠시 눈을 붙였다.
공연 시간에 맞추느라 늦은 점심을 김밥으로 때운 후 헐레벌떡 공연장이 있는 명동으로 전철을 타고 갔다. 전철을 내린 곳은 명동역이었다. 다른 전철역에 비해 공연장과의 거리도 가깝지만 일부러 명동을 가보고 싶어 명동역에 내렸다.
.명동 지하철역 입구와 남산에 있는 서울 타워
때마침 화창한 토요일 오후라 人波(인파)가 그야말로 人山人海이다. 명동길을 걸어가는 데 가운데쪽 통로는 나를 향해 오는 인간 파도(人波 인파)에 어깨가 부딪힐 지경이다. 할 수 없이 마주치는 사람이 다소 적은 길 한쪽으로 걸어 갔다.
.사람의 물결( 人波 )로 어깨가 부딪치는 명동 거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곳(명동 입구)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높고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키를 재고 서 있었다. 남산에 높이 서있는 서울 타워랑 비교해 봐도 빌딩의 스카이라인이 얼추 맞는다.
명동 입구 좌우로 도열한 건물에는 얼굴을 바꿔준다는 성형외과의 간판과 화장품의 선전 간판들이 꽉 차있다. 명동에 가면 정말 마법처럼 face off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건물 입구에 타로 점집이 있었는데 연인과의 운명이나 자신의 운명은 어떤지 점괘를 보는 아가씨들이 심각하게 인생 상담(?)을 하고 있었다. 과연 언제가 인생 대박일까를 알고 싶었을까? 나도 그건 알 수는 없지만 살아 숨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대박이고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화장품, 성형의 메카 명동에서는 face off(얼굴 바꾸기)가 가능할 지도 .
일제시대 땅이 질어 '진고개'라 불렸던 충무로는 한국 최초의 洋風(양풍) 유행을 일으켰던 곳이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집결지가 되어 도시 청년 문화를 만들고 있는 듯하였다. 거리 한편에는 앰프로 소리를 키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을 호객하는 매장 종업원의 외침 소리가 귀를 울리며 명동 공간을 떠들썩하게 메우고 있었다. 길 가운데 좌판에서는 벨트나, 목걸이 등 여성용 장신구 액세서리들이 여인들을 유혹하고 있었으며, 길 한편에서는 판촉 행사하는 어떤 사람의 마임 몸짓이 또 하나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어느 통로 가운데 심어진 나무에는 얼핏 보았을 때 꽃술로 착각했던 빨간 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려 축제 기분을 내고 있었다.
필수장치: 컴퓨터 본체(LAN포함)+전원코드+키보드+마우스 +모니터 및 모니터 연결선. 스피커, 프린터
[컴퓨터 뒷 모습]
키보드와 마우스는 PS/2방식 외 USB방식도 있으며, 요즘 M/B는 그래픽+사운드+LAN 카드가 통합되어 나옴
컴퓨터 켜기: 1.전원(power)스위치를 켜고 잠시 기다리면 바이오스에서 시스템 설정 확인 후, 부팅 프로그램을 찾아 기동한다. 2.부팅 프로그램이 없으면 부팅할 수 없다는 에러메세지가 뜬다. 부팅 시스템은 하드디스크, 윈도우 CD, 부팅용 플로피 디스크 등에 있으며, 필요시 CMOS 설정을 확인해야 한다. 3.필요시 CMOS 설정 화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대부분의 컴 AMI 보드 사용=Del 키 / Award 보드는 F2키 or F4 키) 4.화면 자체가 안 보이면 모니터 연결은 제대로 되었는 지, 모니터 전원은 켜져 있는 지 확인한다. 5.BIOS 설정 화면이 뜨다가 멈춘다든지 부팅 프로그램이 더 이상 진행이 안 될 때는 Reset 눌러 다시 기동시켜 본다. 그래도 안되면 본체를 열어 하드디스크 연결이나 RAM이 잘 꽂혔는지, 마우스, 키보드가 제대로 꽂혔는지 학인한다. 윈도우가 제대로 설치 안 됐거나 윈도우 설정이 깨진 경우에는 윈도우를 다시 설치해야 한다.
컴퓨터 끄기: 1.가능하면 작업 중인 모든 창을 닫고, [시작] 버턴에서 [시스템 종료]를 선택하여 컴퓨터를 종료시킨다. 2.만약, 강제로 power를 끄거나, reset 버턴으로 부팅을 하면, 컴퓨터가 다시 켜질 때 시스템 무결성[無缺性 integrity ]유지를 위해 컴퓨터 내의 프로그램들을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하드 용량에 따라 다르나 4-5분 소요됨) 3.[시작] 버턴에서 [로그오프]나 [다시시작], [끄기] 선택가능하다.
주요 컴퓨터 용어(가나다 순) 내컴퓨터 윈도우에서 내가 사용중인 항목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하드디스크나 폴더,주변장치 목록 등이 들어 있다. 노트북 노트 모양의 컴퓨터로 크기가 작아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하기에 좋다. 더블클릭(double click =엔터 Enter) pointer를 갖다 댄 항목을 두 번 연속으로 클릭한다(해당 항목을 선택,실행). 데스크탑(desktop) 상자모양의 컴퓨터로 크기가 다소 커서 주로 사무실, 집 등 고정된 장소에서 사용한다. 드라이버 Driver (드라이버)란 하드웨어와 시스템을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어떤 하드웨어가 설치되었고, 이러한 방법으로 작동 시켜라’고 윈도우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컴퓨터의 메인 보드에 그래픽카드, 사운드카드, 프린터 등 이 연결되어 있다면, 요즘 나온 윈도우에서는 자동으로 해당 드라이버를 찾아 설정해 준다. 하지만 윈도우가 이들을 제대로 인식 못할 경우 알맞은 드라이버를 설치해 주어야 한다. 하드웨어를 사면 설치CD드라이버가 따라 오지만, 설치CD가 없더라도 하드웨어 제품 내용(이름)만 알고 있으면 인터넷에서 해당 드라이버를 다운받아 설치할 수 있다 드래그(drag 끈다) 마우스를 사용할 때 마우스 버튼을 떼지 않고 연속하여 지정한다(‘끈다’ 라고 표현) 참고: 클릭. 디렉토리(Directory)=폴더(folder) 윈도우에서 사용하는 주소(디렉토리)이며 속칭 ‘방’이라고 한다= 서류철 개념. 디스플레이 등록정보 바탕화면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고 속성을 클릭하면 설정 창이 뜬다. 그래픽카드 설정과 모니터 설정을 할 수 있다. 해상도를 조정하거나 바탕화면 그림을 바꿀 때도 디스플레이 등록 정보를 이용한다. 제어판에서 디스플레이를 실행시켜도 디스플레이 등록정보가 나온다.
램(RAM random access memory):비유하자면 작업용 책상으로 전원이 나가면 작업 중인 내용이 사라짐. cf. 롬 로그인(log in) 사용자로서 컴퓨터에 연결하는 것 또는 연결(작업)를 시작함.<->로그오프(log off) 연결을 끊음 롬(ROM read on memory- 읽기전용) : 미리 공장에서 입력해 둔 내용으로 읽기만 가능(전원에 무관) cf. 램 마더보드(mother Board) = 메인보드(Main Board) : (각 주변장치의 엄마역할) 주변장치를 연결하는 터미널 역할. 최근 그래픽카드와 사운드카드, 랜카드가 통합된 메인보드가 출시되고 있다. 마우스 : 좌측 버튼 한번 누름(click)=해당항목 지정. 2번 연속 순간누르기(double click)=해당항목 선택=Enter 우측 버튼 누름=해당항목과 관련한 안내 메시지 나옴. 예)복사, 붙여넣기, 삭제, 잘라내기, 기타 설정기능 멀티미디어 음악, 영화, 그림 등을 통털어 말하며 시청각적인 내용이나 요소를 말함. AV(audiovideo)라고도 함. 모니터 : CRT (유리모니터-가격 싸다)와 액정으로 만든 LCD모니터(가격은 같은 사이즈일 경우 CRT의 몇 배)
바로가기=단축아이콘 어떤 프로그램이나 folder 또는 기계적 장치를 한걸음에 찾아갈 수 있는 주소가 들어간 표지자. 바이오스(BIOS)=CMOS PC전원을 켜면 비디오카드의 종류, CPU 종류, 메모리 용량이 표시되고, 그 다음 하드와 CD-ROM등을 인식한다. 이어서 화면에서는 안 보이지만 부팅프로그램을 불러와서 윈도우 시작화면이 뜨기 시작한다.
이 때 운영체제(윈도우)가 뜨기까지 컴퓨터의 부팅과정을 담당하는 프로그램을 바이오스 또는 CMOS 라고 부른다.바이오스 설정은 부팅직후 대부분 DEL키(Award 회사 것은 F2키나 F4)를 누르면 바이오스 설정(CMOS셋업)을 할 수 있다.
주로 부팅순서를 바꾸거나 CPU 온도에 따른 쿨링팬 속도 지정 등 보드에 연결된 장치들을 설정함.(CMOS 설정) 주의할 점은 변경 후에 꼭 저장을 하고 종료해야 하며, 재부팅 후에 저장한 BIOS값(CMOS 설정 값)이 적용된다. 버젼(version) 프로그램의 개정이나 주변 장치 개선 내용을 표시하는 것.버젼이 높을 수록 최신 내용이나 장치이다. 부팅(booting) 컴퓨터가 기동(시동)되는 과정으로 컴퓨터(기계)에 운영체제(윈도우)를 적용 시키는 과정(시작 단계)
소프트웨어 (Software) 컴퓨터 내부 장치나 외부의 기계적 장치 또는 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스크롤 [scroll] 컴퓨터 따위에서, 모니터의 화면에 나타난 내용이 상하 또는 좌우로 움직이는 것. 시스템 컴퓨터 전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좁은 의미로 운영시스템(윈도우)를 지칭한다. 시작 버턴 컴퓨터 시작과 종료, 다시시작을 로그아웃을 할 수 있으며, 윈도우 의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시작지점. 씨디 CD와 DVD 원반 모양의 플라스틱형 컴퓨터 기록(저장) 장치. 씨모스 CMOS :메인보드의 바이오스를 CMOS라 하며 메인보드에 있는 롬(ROM)에 저장되어 있는 기초프로그램. 씨피유 CPU : CPU는 중앙처리장치, 사람의 두뇌에 해당. 연산하고 제어하는 명령을 내리는 장치
아이콘 icon : 윈도우에 사용되는 기계(하드웨어)나 프로그램이나 파일, 디렉토리 등을 상징하는 간단한 표시.
SSD (Solid State Drive) 하드디스크 기존 캔 모양의 금속성 하드디스크 보다, 작업속도가 빠르고 열발생이 적다. 영역지정=드래그(drag 끈다)된 영역 마우스 버튼을 떼지 않고 연속하여 지정한다(짙은 청색으로 표시되는 영역). USB 유에스비 : 범용 직렬 버스. 흔히 USB메모리를 지칭. 소형이라 데이터를 저장하여 옮기기 좋다. USB 포트: USB가 연결되는 네모 모양의 홈. USB외에도 외장하드나 키보드, 마우스도 USB 포트에 연결할 수 있다. 인터페이스 : 컴퓨터 내부나 기계와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서로 신호나 정보를 연결해 주는 장치나 방법을 지칭
작업표시줄 : 흔히 화면 아래쪽에 표시되며 윈도우에서 사용 중인 작업 icon들이 표시된다. 주소(Directory / Address) Directory=윈도우에서 사용하는 주소 / Address=인터넷 연결 IP 주소를 말한다.
커서 마우스의 포인터가 가르키는 곳 또는 화면에서 깜박이고 있는 지점으로 마우스나 키보드의 입력을 받는 지점. 코덱 동영상을 파일로 압축(인코딩)하고 압축된 파일을 다시 동영상으로 재생(디코딩)하는 기능. 음성, 영상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코더와 그 반대로 변환시켜 주는 디코더의 기능을 말함. 전화를 사용할 때 음성을 전기신호로 변환하고 다시 전기신호가 음성으로 출력되는 원리와 비슷한 원리이다. 클릭(click 선택한다) 마우스를 어떤 항목에 갖다 대고 잠정적으로 지정하거나 선택한다(double 클릭=엔터 Enter) 키보드(자판) 글자를 타이핑하여 입력하는 장치. 일반 문자키. 특수키, 기능키, 방향키, 숫자키 등이 있다.
트레이 아이콘 바탕화면 맨 아랫줄 오른쪽 아래에 있다. 트레이에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트레이 아이콘이라 한다. 트레이 아이콘은 컴퓨터가 부팅될 때 실행된 프로그램(시작프로그램)과 현재 실행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보여준다. 파일 윈도우의 폴더와 그 속에 있는 파일을 아울러 말 함. 파일명과 확장자 컴퓨터 주소(디렉토리) 아래(속)에 정리되어 있는 자료로, 이름(파일)과 성격(확장자)을 표시해 줌. 포인터(pointer) 마우스에 따라 다니는 화살표시. 마우스가 지정하고 있는 위치 폴더(folder) 파일들이 들어 있는 사용하는 구역으로 디렉토리(속칭 ‘방’)와 같은 역할이다. 프로그램 컴퓨터 장치나 윈도우 사용(예:음악, 영화, 문서, 인터넷, 네트워크)할 수 있도록 만든 소프트웨어(Software)
하드디스크 둥근 캔 모양의 컴퓨터의 금속성 기록(저장) 장치. 자성을 이용하여 내용을 기록함. 하드웨어 (Hardware) 컴퓨터를 구성하는 기계적 장치를 말한다. 활성창 윈도우 창들 중 맨 위에 있으며 작업 명령을 즉각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창으로 제목 줄이 짙은 파랑색임. 휴지통 바탕화면에 보이며 파일을 삭제하더라도, 일단 여기에 보관되므로 파일을 복원(되살리기) 할 수 있다.
유럽 여행기 마지막 - 끝은 또 다른 시작 - 여행일자: 2006년 01월. 글쓴 일자: 2008.01.07.(다음 블로그에서 옮김) <배경음악>:추후 링크가 끊어지면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 나올 수도 있으며, 아래 음악이나 동영상이 안보이면 https://www.youtube.com/embed/-Sv3RgQeoes<=요걸 클릭
기대하지 않았던 흥겨운 축제
베네치아에서 인스부르크까지의 旅程은 이번 여행에서 최장 시간의 버스 여행길이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노을 저물어 가는 알프스 산의 모습과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없었더라면 지루한 여행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북으로 올라 갈수록 이제까지 보기 힘들었던 눈 덮인 산과 계곡, 마을들이 나타났다.
인스부르크의 상징인 '황금 지붕'
Bierwirt 호텔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
Bierwirt 호텔 복도 통로에서
인스부르크에 도착하였을 때는 깜깜한 저녁이었다. 인스브루크는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알프스의 중심 도시로 2회에 걸친 동계 올림픽 개최지이자 스키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겨울 밤바람이 寒氣(한기)를 느끼게 하여 장갑을 꺼내 끼었다. 건물 지붕에는 눈이 쌓인 곳도 있었고 길바닥은 얼어 있는지 걸을 때마다 자박자박 소리가 났다. 시내에서는 전차 철로가 자동차 도로 위에 깔려 있고 전차용 전선이 흡사 거미줄처럼 하늘에 걸려 있었다. 마치 路面(노면) 전차가 다니는 오래된 도시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정상 내일 아침 일찍 독일로 출발해야 하므로 늦은 시간에 황금지붕(Golden Dachl)을 찾았다. 햇빛이라도 비추어졌더라면 그야말로 황금색의 지붕을 볼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깜깜한 밤에 본 황금 지붕은 더 이상의 황금 지붕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이 곳이 유럽 여행의 4대 썰렁(?)한 곳 중의 하나임을 확인해야 했다. ‘유럽 여행의 4대 썰렁(?)한 곳’이란 유명세에 비해 규모나 감동(?)이 별로인 장소를 말하는 데,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독일 라인 강의 로렐라이 언덕,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황금 지붕을 흔히 말한다.
뜻하지 않게 참여했던 오스트리아 민속 공연(?)
우리가 묵은 호텔(inns and restaurants)은 1615년부터 여행객을 받아온 Bierwirt 라는 곳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칠 즈음 식당 통로쪽 어디선가 발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들려 왔다. 잠시 후 깃털 모자를 쓰고 흰 색 셔츠 옷에 갈기가 너덜너덜한 숄을 두른 사람들이 식당으로 들어 왔다. 동물 모습으로 분장한 것 같았다. 이어서 코가 꼬부라지고 검은 속옷에 하얀 스웨터 복장을 하고 붉은 두건을 쓴 마녀와, 사냥꾼 복장에 채찍을 든 포수가 가면을 쓴 채 들어왔다.
마녀로 분장한 사람
민속 공연을 한 사람들과 함께
이들은 사냥하는 모습을 표현하는지 흥겨운 몸동작으로 춤을 추며 요란한 발 구르는 소리를 내었다. 일순 식당 안은 흥겨운 아코디언 소리와 장단을 맞춘 발 구르는 소리로 인해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장소가 그리 넓지 않은 식당이었지만 식탁과 의자를 한쪽으로 치운 약간의 공간이 플로어 스테이지가 되어 손님(여행객)과 공연단과의 오스트리아 민속춤이 벌어졌다. 흡사 삼삼칠박수를 연상케 하는 리듬과 손님들의 박수가 호흡을 맞춘다. “쿵짝짝! 쿵짝짝! 짝짝짝짝 쿵짝짝!”
유치원 아이들처럼 무릎 아래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흰 제복에 멜방을 한 것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그네들과, 오스트리아 춤을 모르던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함께 플로어에서 폴짝폴짝, 빙글빙글 돌아가며 圓舞(원무)를 추고 장단을 맞추며 흥을 즐겼다. 나도 플로어로 뛰어 나가 어설픈 손짓과 몸짓으로 이들의 공연에 참여하였지만, 몇 번 춤추며 빙글빙글 돌아가니 공연단의 모습이 불꽃놀이 때 떨어지는 불꽃 실처럼 보이며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리나요? ‘쿵짝짝 쿵짝짝 짝짝짝짝 쿵짝짝’
눈이 온 Bierwirt 호텔 앞의 예쁜 눈사람 장식
춤을 배우지 못한 것이 분명한 우리 여행팀 여자가 그네들에게 손을 내밀어 춤을 청해도 그들은 기꺼이 청을 들어 주었다. 무도회는 어느새 다 같이 빙글빙글 돌며 좁은 식당 안을 한바탕 축제의 자리로 만들었다. 잠시의 휴식을 하던 그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우리들이 고맙다고 치는 박수에도 다시 한번 음악을 연주하며 앙코르 공연과 춤을 보여 주었다.
당시의 음악과 춤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려면[춤 잠깐 보려면] 동영상▷ 클릭!
어느 누가 초빙한 팀도 아니고 호텔에서 미리 계획한 공연도 아니었다. 이들은 이 지방의 청년들로 가면 축제를 며칠 앞두고 토요일 저녁 한바탕의 마당놀이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들의 놀이에(축제 준비 연습 공연이었는데) 우리가 끼어들기 한 것이었다.
공연을 마친 그들과 기념 촬영을 마치고 아쉬움이 남아 호텔 밖을 나오니, 바닥엔 흰 눈이 쌓여 있고 호텔 입구엔 눈사람 장식이 보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가질 수 있었다. 또다시 이런 즐거운 추억의 시간을 어찌 가질 수 있을까? 또 다시 어느 때 이곳을 다시 찾아온들 오늘 같은 즐거운 한바탕의 춤 소동을 즐길 수 있을까? 이들과의 민속춤 축제 이벤트는 한마디로 각본 없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뜻밖의 흥겨운 오스트리아 민속 공연은 이번 여행의 白眉(백미)였다.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원래 오스트리아와 독일 코스는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한 두 군데 정도 관광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다음날은 마지막 일정인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가는 도중 보이는 주위 풍경은 온통 눈 덮인 산지와 구릉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하는 트리처럼 뾰족하게 생긴 검초록색 나무들이 삼림을 이루어 질서 정연하게 빼곡히 심어져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까지 버스로 가는 동안 여행 인솔자는 우리가 지나온 일정을 되짚어 주며 정리해 주었다.
프리드리히의 가족묘로 사용된 성령교회
눈위에 새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아 고즈녁하다 못해 시간이 정지된 듯한 왕궁의 안뜰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는 짙은 녹색의 숲을 배경으로 한 고풍스러운 옛 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도시인데,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 겨울은 다른 남부 지역에 비해 기간이 길고 추운 날씨들이 많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까닭에 이곳에서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과 사색을 추구하는 철학이 발달했을지도 모르겠다. 네카강 건너 언덕에는 ‘철학자의 길’이라고 이름 붙은 숲길이 있을 정도로 많은 예술가와 철학가, 신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古城에서 내려다 본 하이델베르크의 모습
네카 강의 옛 다리에서 본 古城의 모습
눈 덮인 하이델베르크 古城(고성)에 올랐다. 겨울 날씨에 코끝이 시큰하였지만, 눈 위에 새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고 바람도 미동(微動)하지 않았다. 고즈넉하다 못해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성 안에는 연분홍색의 왕궁들이 우리들을 맞이했다. 이 지역에는 붉은 砂巖(사암)이 많아 지붕과 벽돌 등이 붉은색을 띈 건축물이 많다고 한다. 시원한 겨울 공기를 마신 다음 프리드리히 궁지하에 있는 세계 최대의 맥주통을 둘러보았다. 포도주를 시음하고 기념으로 포도주잔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었다. 궁 안 다른 쪽에는 醫藥史(의약사) 박물관이 있었다고 하나 일정이 촉박하여 방문하지 못하여 아쉬웠다.
프리드리히 5세가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 세운 엘리자베스 문
세계 대전으로 파괴되고 남은 왕궁 모습
古城(고성) 전망대에서 갈색 지붕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내려다보니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도시 군데군데가 하얀 눈에 쌓여 있는 가운데, 네카 강의 옛 다리와 특히 다리 입구 쪽에 있는 쌍둥이 탑은 우리들을 동화의 나라 온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古城에서 시내로 걸어 내려오는 데 길이 얼어 있었다. 미끄러워 발에 힘을 주며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장단지가 땅겼다.고성을 내려 와 시내에 있는 면세점을 들렀다. 우리 일행들은 쌍둥이 칼과 휘슬러 밥솥 등 독일의 명품(?)을 사는 등 여러 기념품들을 샀다. 성수기 때에는 두 세 팀만 몰려도 좁게 느껴질 것 같은 매장 크기였다.
네카 강 옛 다리 입구의 쌍둥이 탑문
하이델 베르그 성 아래에 있는 마리아상(마돈나상)
이번 여행의 마무리는 네카 강의 옛 다리로 걸어나가, 쌀쌀하지만 시원한 강바람을 마시며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여행 인솔자는 좋은 일행을 만난 것과 우리들이 아무 탈없이 여행을 마쳐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 일행들도 능력있는 인솔자를 만나 여행의 모든 과정이 차질없이 잘 진행되었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던 것에 대해 박수로써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인솔자의 노련함을 볼 수 있었던 한 예를 보면, 같은 지역에 다른 한국 여행 팀이 있을 경우 남보다 한 박자 먼저 식당을 찾아가 식사를 하거나 먼저 관광을 시작하는 소위 ‘치고 빠지는 스타일’의 스케줄로 움직였다. 이 때문에 식사 대기시간이나 관광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갔다. 이탈리아에 들어오며 지금까지 줄곳 운전을 해준 기사에게 무사고 운전과 그간의 수고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운전기사는 이탈리아 남쪽 섬 시칠리아 출신이며 50세가 넘었다. 운전하면서도 휘파람을 부르고, 수시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수다를 떨며 얘기하는 활달한 사람이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
비행기가 이륙하여 그간을 일정들을 머리 속에서 되돌려 보는 동안 어느 듯 잠이 들었다. 기내식을 주는 시간이 되어 소란스러움 때문에 잠시 꿈꾸었던 회상 테이프는 끊어졌다. 회상이 끝났다고 꿈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있지만, 언젠가 다시 그곳을 찾아 가고 싶다하는 꿈(마음)이 슬슬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두고두고 꺼내 봐도 행복한 순간순간들은 어느 새 그리움이 되어 내 마음속에 남았다.
베네치아 본섬 건너편에 있는 조르지오 마조레 성당(Basilica di San Giorgio)
살인적인 베네치아의 物價
베네치아는 물가가 비싸다 한다. 상수도와 전기를 섬까지 끌어 와야 하고, 하수 처리물을 섬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 등 사회 간접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거니와, 물건이 섬까지 들어오는 운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섬 안에서는 숙박할 수 있다고 해도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한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베니스 근처 거리가 좀 떨어진 곳(차로 10~15분정도 먼 곳은 30분정도)에 지어진 숙박 시설을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 여행 팀도 베네치아 근교의 한 호텔에서 旅裝(여장)을 풀었다.
베네치아-아드리아 만에서의 일출
아침에 일어나니 마침 일출 시각이라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해뜨기 직전까지 바다 쪽은 아직 검은 빛깔이었다. 해가 솟을 무렵이 되자 수평선 쪽의 하늘과 바다 빛깔이 붉은 색을 띄더니, 곧 이어 뽀얀 얼굴의 둥근 해가 노란 목테를 두르고 수평선 위로 솟아올랐다. 쑥쑥 콩나물 자라듯이 하늘로 해가 금방금방 높이 올라갔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비행기 구름이 멋지게 한 획을 그어 영역 표시를 해놓았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중세의 한 해변 마을 같은 베네치아의 풍경
베네치아의 옛모습를 상상케하는 대운하의 건물들
여행 중 학교(?)를 다 녀오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나올 때였다. 인솔자가 호텔에서는 공짜이니 학교를 다녀오라고 말했다. 여기서 학교란 화장실을 말하는 이태리 여행하는 동안 우리 팀이 약속하여 쓰던 은어(?)였다. 수업료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내는 팁 또는 화장실 사용료를 암시한다.
우리들(여행객)이 화장실을 왜 지금 가라고 하지 어리둥절해 하자 여행 인솔자가 그 까닭을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베네치아에서는 수업료(?)가 엄청 비싸다는 것이었다. 베네치아가 섬이다보니 화장실 사용료가 비싸단다(1유로 정도-참고로 다른 이탈리아 지역은 10-20센트). 왜냐하면 오물을 pipeline을 통해 정화 처리시설이 있는 육지로 보내서 처리하니까 화장실 시설 이용료가 비싸다고 한다.
섬과 운하와 다리로 만들어진 인공 도시 베네치아(베니스) 베네치아로 들어가기 위해서 (페리)배 터미널로 가야 했다. 제법 큰 배(여기선 버스라 함)로 갈아타고 베네치아 섬으로 갔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바다에서 베네치아를 보니 흡사 그림에서 보던 중세의 한 해변 마을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대형 크레인과 큰 배가 있는 현대식 큰 항구 도시 모습으로 바뀌었다. 유럽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프랑스의 파리와 더불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도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살고 싶은 도시 중 하나인 베네치아(베니스)로 오게 된 것이었다.
시장이 열리는 공판장 건물
창틀 모양이 다양한 아름다운 저택
베니스는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섬, 크리스 털(유리) 공업이 발달한 무라노 섬 등 6개의 자연 섬과 177 갈래 운하, 400 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인공 도시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으로 유명한 이곳은 중세부터 무역업이 발달하여 이곳 사람들이 실크로드를 왕래하였고,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도 이곳 출신이라 한다.
발상의 전환으로 이루어 낸 轉禍爲福의 도시
언제부터 이 도시를 만들게 되었을까?베네치아가 처음 생길 때는 쫓겨난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했다. 살기 좋은 평원 지방에서 쫓겨나 이곳 바닷가까지 밀려온 사람들이 바닷가 개펄에 나무 파일 (pile)을 박고 땅을 다지고 개척을 했다고 한다. 바다 밑을 북돋우고 땅을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짓고 다리를 놓아 水上 도시 국가를 건설했다고 하니, 요즘으로 말해자면 간척지 개발이나 토지 개발에 해당하는 사업이었던 셈이다.
11세기 초에는 베니스 商船들이 아드리아 海를 거쳐 발칸 반도, 소아시아 등 동방으로부터 융단, 향료 등을 이곳으로 들여왔고, 반대로 이 지방의 소금, 고기, 양털을 수출했다고 한다. 이 도시의 기본 골격은 13세기에 거의 완성을 하였고 14세기까지 이곳은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였으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이탈리아 최강의 公國이 되었다 한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어느 나라도 한번은 전성기를 이룩한다. 그러나 베네치아처럼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성기를 길게 지속하면서도 형태를 달리해 여러 번 가꾸어 간 例는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베니스가 이렇게 번창하는 데는 地政學적인 위치도 중요했겠지만, 이 지방 사람들의 개척 정신과 도전 정신, 훌륭한 상술, 항해술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되었다.
CASINO VENEZIA - 대운하 기슭에 있다.
고기 모양의 지도- 무수한 섬과 水路가 보인다. (사진 출처) 인터넷
물고기 모습의 베네 치아
베네치아는 지도상으로 보면 마치 물고기 모양이다. 물고기의 창자에 해당되는 S자형의 카날 그란데 운하(大運河)가 중심 수로(水路)인데, 넓은 만곡부가 입을 벌린 모습으로 입구를 열어 도시 가운데를 관통하고, 창자의 출구 쪽에 산마르르코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베네치아의 수많은 운하는 118개 섬 사이를 이어주는 水路 역할을 한다. 대운하를 끼고 옛 수녀원, 성당, 상인 조합 건물들이 있고 리알토 다리와 레초나코 궁전을 볼 수 있었다. 16세기에는 목조 다리였던 리알토 다리를 軍船이 다닐 수 있게 가운데를 높여 재건했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명물 리 알토 다리-한편의 액자그림이다
그란데 운하 주위에는 神의 집이라 할 수 있는 교회(성당)뿐만 아니라 궁전이나 귀족 저택 등이 지어져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곳이 상류층 귀족이나 왕족이 선호했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들은 비잔틴과 고딕 또는 두 양식이 복합된 양식들로 지어졌지만 바로크 양식의 건물과 심지어 이슬람 양식(아랍風)의 건물도 볼 수 있었다.
한쪽이 약간 침하하고 대운하 기슭의 저택
그러나 1천년간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베네치아가 지반 침하와 해수면 상승, 잦은 선박 통행으로 인한 건물 벽면의 침식 등으로 섬 전체가 조금씩 물에 잠기면서 가라앉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물고기가 물 속으로 잠수하는 것은 당연하지!'라는 썰렁한(?) 농담이 사실이 아니길 빌었다.
베네치아의 중심 – 산마르코(San Marco) 성당, 산마르코 광장, 두칼레 궁전
값을 매길 수 없는 산마르코 교회(성당)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마르코 성당 dome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 산마르코 성당(Basilica di San Marco)참조 링크: 산 마르코 대성당- 나무위키
베네치아에 중심관장인 산마르코 광장 한켠에는 산마르코 성당이 있다. X선 검사기를 통과해야 하는 등 엄격한 보안검사가 있었다. 성당 안에 값진 보물이 많아서 인지는 몰라도 배낭을 메고 들어가거나 큰 백을 가지고 성당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입구에서 통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까다로왔던 보안 검사의 이유를 알것 같았다. 성당 천정과 벽에 도배된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빛에 우리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야말로 누런 것은 모두 황금으로 칠해 지거나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가격을 셈해 보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거니와 오히려 무덤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베네치아의 사회, 정치 중심지 였던 산마르코 광장
지난 수세기 동안 산마르코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엄청난 크기의 산마르코 광장은 크기가 축구장 넓이만한 규모이다. 산마르코 광장을 지키는 비둘기 떼들이 관광객을 친구처럼 여기는지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 광장에는 유명한 카페가 많은데 1720년에 개업한 유서 깊은 Florian 카페(꽃 다방)는 괴테, 바이런이 드나들었다 하며, 스탕달, 뒤마, 바이런이 자주 찾았던 카페 Quadri Venezia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 광장 주변에는 종탑, 시계탑과 법정, 산마르코 교회와 두칼레 궁전이 각기 제 모습을 봐 달라고 뽐내고 있었다. 주차 타워처럼 생긴 높이가 100미터가 넘는 종탑은 이전의 화려했던 榮華(영화)를 보여 준다. 산마르코 광장 주변의 풍물을 즐기며 카페에서 한 때를 보내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두칼레 궁전과 탄식 의 다리
불꽃모양 아치(arch) 기둥 위에는 목걸이 장식같은 tondo(벽면의 원형 돋을새김)와 로버 모양의 기둥 머리가 건물의 아름다움을 대변해준다. 두칼레 궁전 중앙 벽에는 성 마르코(St. Marco)를 상징하는 사자 문장이 걸려 있어 베네치아의 Icon(아이콘)을 알려준다.
불꽃모양 아치(arch) 기둥 위에는 목걸이 장식같은 tondo
아치(arch) 기둥이 멋진 두칼레 궁전과 분홍색의 크리스털 가로등
두칼레 궁전 옆에는 소위 ‘탄식의 다리’가 있다. 죄수(囚人)들이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려워 탄식과 한숨을 쉬었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이 다리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카사노바가 이 감옥에 갇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공업 및 유리공업이 발달하여서인지, 이곳의 가로등은 일반 유리가 아닌 크리스털로 만들어졌다. 가로등을 싸고 있는 연분홍빛 원통 부분이 크리스털이다. 아쉽게도 낮 관광이라 밤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가로등 불빛 아래 커피 한잔과 함께 멋진 음악을 들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이 곳을 다녀간 많은 시인과 음악가들의 멋진 작품이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Mime은 또 하나의 Mime을 만들고
백색 석고 분장으로 연기중인 마임 예술가.(사진 :인터넷)
베네치아 거리를 이동하는 중에 재미있는 광경을 보고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가면을 쓴 얼굴에다 얼굴 주위와 목 부위를 온통 흰색으로 칠을 하고 하얀 옷에 장갑을 낀 사람이 마임(mime)을 하고 있었다. 마치 조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이것이 과연 조각인지 아닌지 움직이는 낌새를 느껴 보려는지 그 역시 미동도 않고 보고 있었다. 데칼코마니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마임처럼 느껴졌다.
Master(匠人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유리(크리스털) 작품
마침 가면 축제를 한참 준비 중인 산마르코 광장 한 편에서는 환경 보호론자들이 데모(퍼포먼스)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 때문에 산마르코 성당 관람에 지장이 있어 크리스털(유리) 박물관을 먼저 갔다. 유리 박물관 관람은 예약제로 되어 있어 정해진 시간에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달궈진 유리를 불거나 잘라서 멋있는 병이나 유리 조각품을 만드는 유리 세공의 달인(마스터)을 볼 수 있었다. 유리를 마치 엿장수 엿 주무르듯이 하였다. 유리 공예 전시실에는 갖가지 유리 제품들이 저마다의 스타일을 뽐내면서 여행자를 유혹하였다. 으리으리한 샹들리에, 멋진 크리스털 조각품, 술잔, 거울 등 여자들 정신 빼놓기 십상인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들이 즐비하였다. 이런 크리스탈 제품 중 고가품이나 작품성이 있는 것은 장인들의 이름과 제품의 고유 넘버가 새겨져 있다.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 크리스탈 그릇도 재미있었지만, 유리 쟁반을 망치로 때려 보이며 깨지지 않음을 과시하였는데 과연 유리에 무슨 금속을 배합했길래 저렇게 단단한 지 궁금하였다.
교통수단은 전부 배이고 바퀴달린 운송이라고는 자전거조차도 볼 수 없었다. 도시 전체가 온통 섬이다 보니 교통수단은 거의 전부가 배다. 이웃집(섬)에 가는 것도 배가 더 편리하다고 하며, 배에서 내리면 바로 현관 입구인 집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배의 수송 인원이나 운송 속도에 따라 수상 버스, 수상택시(바포레또)로 나뉘고, 앰뷸런스 배, 화장실 오물 수거용 배도 있으며 야채 장사도 배에서 장사를 한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 섬 안에서 바퀴 달린 물건이라고는 유모차뿐이라고 한다. 워낙 섬이 많고 좁으니 차들이 시원하게 달릴 곳도 없겠지만 그네들의 환경 보존에 대한 열망과 관심은 본받을 만했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전형적인 다리를 지나는 곤돌라
낭만적인 곤돌라
운하의 도시 베니스를 더욱 낭만적인 곳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곤돌라다. 이탈리아어로 '흔들리다'는 뜻을 가진 곤돌라는 길이 10m 이내 너비1.2m~1.6m의 폭이 좁은 배로, 뱃머리와 선미가 휘어져 약간 삐딱한 모습이며 한쪽으로만 노를 젓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하다. 노를 젓기도 하지만 수로가 좁은 곳에서는 뱃사공이 수로 옆 건물 벽을 손이나 발로 밀어 방향을 틀거나, 지상에 튀어 나온 부분을 교묘히 발로 밀어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운하를 빠져나가는 곤돌라는 대중교통 수단이기보다는 관광선이기 때문에 탑승료가 비싸다.
곤돌라를 타면 곤돌 리오네(곤돌라 가수)가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는데, 우리는 가수가 없는 싼 배를 탔다. 그렇지만 일행 중 교회 성가대 하시는 분이 이탈리아 칸초네를 불러 주어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 때 부른 노래 곡목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행하는 도중 기대하지 않았던 이런 삽화(揷話) 같은 에피소드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다.
베네치아의 포토 포인트(사진: 인터넷) - 건너편에 보이는 것은 산 마조레 성당
수상택시(바포레또)를 타고 대운하를 다 보고 나오면 약간 넓은 바다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배를 처음 탔던 주차장(?)까지(여객선 터미널) 바포레또가 꽤 빠른 속력으로 007 썬더볼 작전에서 나왔던 장면을 연출해 보인다. 배가 빠른 속력으로 S 자나 Z를 그리며 내달리면 원심력에 사람들은 배 바깥으로 떨어질까 ‘악’소리를 지르게 댄다. 그러나 늘 그런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아니고 바포레또 운전수가 흥이 나고 해양 경찰 단속이 없을 때 그런 액션을 보여준다고 한다. 바포레또의 S 자 묘기가 이번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해 주는구나! 라고 느꼈다.
아직도 베네치아에서 볼거리가 많지만 다음 행선지인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까지 가는 여정이 남아 있어 점심 식사 후 바로 출발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이 단체 여행의 단점이라고 느꼈다. (계속)
내 배낭에 꼭 있어야 되는 것 -헤드 랜턴은 내 목숨! 헤드랜턴(보관시 배터리 분리), 수통(0.5~1ℓ물), 간식, 여벌 옷, 윈드 재킷, 비옷. * 복장은 약간 쌀쌀할 정도로 입고, 땀을 적게 흘려야 쉽게 피로하지 않음. 동절기:장갑, 모자, 귀마개, 목도리, 얼굴 마스크(바라클라바), 고글, 보온수통 아이젠, 스패츠(겨울용. 단, short스패츠:기타계절-낙엽,모래 유입 방지) * 주의: gore-tex 라도 재봉선 비닐 taping이 잘 되어 있어야 방수됨. 옷과 양말은 기능성 제품을 사용하고, 면제품은 사용하지 말 것!
등산화 반드시 발목이(mid cut 추천) 있는 것으로! - campline 추천 신발 살 때는 오후에. 신발 크기: 신고 나서 손가락 하나가 뒤꿈치 들어가야.
밑창(Sole)의 중요성 ! : 밑창만 A/S 가능함. - vibram 밑창은 딱딱하고 견고하여 요철 많은 곳에서 발바닥에 대한 충격은 줄여주나, 바위 밀착도 떨어짐. - campline 은 릿지 엣지(Ridgedge)로 접지 밀착감은 좋지만 고무 잘 닳음. - 그 외 하이퍼 그립(Hyper grip)은 트렉스타에서 개발한 밑창으로 비브람 밑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로도 유명 - 참고로 암벽화에는 스텔스창(stealth rubber)이 추천됨.
등산화 끈 묶는 법 - 끈 고리 위에서 아래로 걸고, 매듭은 2번 감아야 잘 풀어지지 않음 - 신발 신을 때 발뒤꿈치가 신발 뒤꿈치로 가게 꽉꽉 다진 다음 끈을 매야, 하산할 때 앞발 끝이 신발 끝에 닿지 않아 멍들거나 아프지 않게 된다.
배낭의 종류 30ℓ-50ℓ(겨울용은 40ℓ이상) -방수 커버 확인. 등판길이 조정 가능한 제품. osprey 추천. dana 와 mystery 는 좀 무거운 편.
배낭 꾸리기-무거운 짐을 위로, 무게는 좌우 균형 맞춰서. 덜렁거리는 것 매달지 말 것. 끈처리 잘해서 걸리지 않게. 배낭무게 : 가벼운 것 추천 1.2kg~1.6Kg
배낭 매는법- 골반 부위를 먼저 맨다-belting. (허리가 무게의 70% 지탱)
알파인 스틱 - Leki 3단 추천. 티타늄이 강하나 비싸고 두랄루민 제품을 많이 씀. spike 촉은 마모되면 갈아 주고, 바스켓은 낙엽 산행, 겨울 산행엔 필수이다.
알파인 스틱 사용법 체중의 30% 정도 분산! 손줄(strap)에 손을 걸 때는 고리 아래에서 손을 넣고 위로 빼어, 손잡이를 감아 쥔다. 참고: Leki는 (좌,우)stick의 손잡이 모양이 다르다
stick의 길이: 팔꿈치가 직각? 배꼽 높이? -(평지) 보통은 팔꿈치가 90도가 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높이를 조금 더 낮춰 손잡이가 빼꼽 높이가 되도록 맞추기도 한다. -(오르막) 올라갈 때는 길이를 조금 더 줄인다(5Cm) -(내리막) 내려갈 때는 길이를 조금 더 늘인다(10Cm)
1.보복은 작게, 일정 속도(1km/20분) 2.발 뒤꿈치가 먼저 닿게 보행 3.뒷발은 곧게 펴고, 허리도 펴고 4.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게 5.8자 걸음 말고, tiger(1자) 걸음 6.손에는 stick 외 다른 것 안 쥠 7.배낭에 덜렁거리는 물건없어야 8.숨차면 보행 속도를 줄여라! 알파인 스틱과 보행 - 발 뒤꿈치가 먼저 닿게 보행. 뒷발은 곧게 펴.
보행법-1 Walking 은 뼈로 ! 보폭은 작게, 뒷발은 곧게 펴서, 일정 속도로 평지 1Km를 20~25분 속도, 한 시간에 10분 이내 휴식.(휴식시 보온에 신경) 평지에선 8자 걸음하지 말고 tiger 걷듯 일자 걸음으로 허리 펴고 걷는다. 내리막길은 Stick 10cm 연장하고, 보폭은 작게, 주저 앉는 기분으로. 급경사 내리막: 뒤돌아서, 필요시 두 손, 두 발 모두 이용. 줄보다 바위잡아! 줄을 사용시 줄과 하체(무릅 펴)가 90도 되게 하고, 줄을 바싹 잡아야 한다.
보행법-2 호흡법: 코 또는 코와 입으로, 복식 호흡으로. 발걸음에 맞춰서. 몸 숙일때(뒷 무릎 굽힐 때) 들이 쉬고, 몸 폈을 때(뒷 무릎 펼 때) 내 쉰다. 숨이 차면 걷는 속도를 줄이고, 너무 오래 쉬지 않는다(10분 휴식/1시간). 평지에선 두 걸음에 2회 호흡하는 방법도 있지만, 경사지에선 비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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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일부 소개-
등산 장비 및 등산 기초 지식 -펌-
내 배낭에 꼭 있어야 되는 것 -헤드 랜턴은 내 목숨! 헤드랜턴(보관시 배터리 분리), 수통(0.5~1ℓ물), 간식, 여벌 옷, 윈드 재킷, 비옷. * 복장은 약간 쌀쌀할 정도로 입고, 땀을 적게 흘려야 쉽게 피로하지 않음. 동절기:장갑, 모자, 귀마개, 목도리, 얼굴 마스크(바라클라바), 고글, 보온수통 아이젠, 스패츠(겨울용. 단, short스패츠:기타계절-낙엽,모래 유입 방지) * 주의: gore-tex 라도 재봉선 비닐 taping이 잘 되어 있어야 방수됨. 옷과 양말은 기능성 제품을 사용하고, 면제품은 사용하지 말 것!
등산화 반드시 발목이(mid cut 추천) 있는 것으로! - campline 추천 신발 살 때는 오후에. 신발 크기: 신고 나서 손가락 하나가 뒤꿈치 들어가야.
밑창(Sole)의 중요성 ! : 밑창만 A/S 가능함. - vibram 밑창은 딱딱하고 견고하여 요철 많은 곳에서 발바닥에 대한 충격은 줄여주나, 바위 밀착도 떨어짐. - campline 은 릿지 엣지(Ridgedge)로 접지 밀착감은 좋지만 고무 잘 닳음. - 그 외 하이퍼 그립(Hyper grip)은 트렉스타에서 개발한 밑창으로 비브람 밑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로도 유명 - 참고로 암벽화에는 스텔스창(stealth rubber)이 추천됨.
등산화 끈 묶는 법 - 끈 고리 위에서 아래로 걸고, 매듭은 2번 감아야 잘 풀어지지 않음 - 신발 신을 때 발뒤꿈치가 신발 뒤꿈치로 가게 꽉꽉 다진 다음 끈을 매야, 하산할 때 앞발 끝이 신발 끝에 닿지 않아 멍들거나 아프지 않게 된다.
배낭의 종류 30ℓ-50ℓ(겨울용은 40ℓ이상) -방수 커버 확인. 등판길이 조정 가능한 제품. osprey 추천. dana 와 mystery 는 좀 무거운 편.
배낭 꾸리기-무거운 짐을 위로, 무게는 좌우 균형 맞춰서. 덜렁거리는 것 매달지 말 것. 끈처리 잘해서 걸리지 않게. 배낭무게 : 가벼운 것 추천 1.2kg~1.6Kg
배낭 매는법- 골반 부위를 먼저 맨다-belting. (허리가 무게의 70% 지탱)
알파인 스틱 - Leki 3단 추천. 티타늄이 강하나 비싸고 두랄루민 제품을 많이 씀. spike 촉은 마모되면 갈아 주고, 바스켓은 낙엽 산행, 겨울 산행엔 필수이다.
알파인 스틱 사용법 체중의 30% 정도 분산! 손줄(strap)에 손을 걸 때는 고리 아래에서 손을 넣고 위로 빼어, 손잡이를 감아 쥔다. 참고: Leki는 (좌,우)stick의 손잡이 모양이 다르다
stick의 길이: 팔꿈치가 직각? 배꼽 높이? -(평지) 보통은 팔꿈치가 90도가 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높이를 조금 더 낮춰 손잡이가 빼꼽 높이가 되도록 맞추기도 한다. -(오르막) 올라갈 때는 길이를 조금 더 줄인다(5Cm) -(내리막) 내려갈 때는 길이를 조금 더 늘인다(10Cm)
1.보복은 작게, 일정 속도(1km/20분) 2.발 뒤꿈치가 먼저 닿게 보행 3.뒷발은 곧게 펴고, 허리도 펴고 4.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게 5.8자 걸음 말고, tiger(1자) 걸음 6.손에는 stick 외 다른 것 안 쥠 7.배낭에 덜렁거리는 물건없어야 8.숨차면 보행 속도를 줄여라! 알파인 스틱과 보행 - 발 뒤꿈치가 먼저 닿게 보행. 뒷발은 곧게 펴.
보행법-1 Walking 은 뼈로 ! 보폭은 작게, 뒷발은 곧게 펴서, 일정 속도로 평지 1Km를 20~25분 속도, 한 시간에 10분 이내 휴식.(휴식시 보온에 신경) 평지에선 8자 걸음하지 말고 tiger 걷듯 일자 걸음으로 허리 펴고 걷는다. 내리막길은 Stick 10cm 연장하고, 보폭은 작게, 주저 앉는 기분으로. 급경사 내리막: 뒤돌아서, 필요시 두 손, 두 발 모두 이용. 줄보다 바위잡아! 줄을 사용시 줄과 하체(무릅 펴)가 90도 되게 하고, 줄을 바싹 잡아야 한다.
보행법-2 호흡법: 코 또는 코와 입으로, 복식 호흡으로. 발걸음에 맞춰서. 몸 숙일때(뒷 무릎 굽힐 때) 들이 쉬고, 몸 폈을 때(뒷 무릎 펼 때) 내 쉰다. 숨이 차면 걷는 속도를 줄이고, 너무 오래 쉬지 않는다(10분 휴식/1시간). 평지에선 두 걸음에 2회 호흡하는 방법도 있지만, 경사지에선 비추천이다.
- 부제 - 문예부흥의 꽃을 피우고, 두오모의 꽃봉오리 쿠폴라와 플로렌스(꽃) 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 피렌체
하얀색, 분홍색, 녹색의 대리석 모자이크로 된 장식된 피렌체의 두오모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의 부호(富豪)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를 위해 그 부인인 엘리자베타(Elisabetta)를 그린 초상을 그린 것이 ‘모나리자’이다. 이 ‘모나리자’ 배경 풍경이 이곳 피렌체이다. 피렌체는 아펜니노 산맥 중앙의 분지 지역 토스카나 지방에 있으며 이탈리아 교통의 要地(요지)로 영어로 표기하면 ‘플로렌스’ 즉 ‘꽃’이다.
베키오 다리 위에는 금은 세공 보석상들이 즐비하다. 연무가 끼어 도시가 신비감이 든다.
도시 이름에 걸맞게 오늘날 이 도시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전지 자동차나 자전거를 주로 이용하도록 권장하여 공해 없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피렌체는 꽃처럼 아름다운 도시라는 이름과 달리 개똥, 말똥이 거리에 많았다. 우리도 그랬지만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뒷사람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개똥!' 하고 외치고 다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보이는 피렌체 시가지와 꽃봉오리처럼 생긴 두오모 쿠폴라(지붕)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집시의 음악을 들으며
피렌체를 조망하기 위해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랐다. 마침 집시(?)들이 광장 한곳에서 바이올린과 전자 오르간으로 음악을 연주하며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언덕 아래 붉은 지붕들이 늘어선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 보니, 시가지 속에 두오모의 쿠폴라(둥근 돔지붕)가 꽃봉오리처럼 솟아 있었다. 흐릿한 날씨 속에 쓸쓸한 분위기의 노래가 붉은 갈색 두오모 지붕 색깔과 어울린다. 이색적이고 멋진 아름다운 풍광과 음악을 마음 깊은 곳에 새겨두었다. 피렌체의 여행 앨범에 꽂아 두고, 생각나면 한 번씩 꺼내보고 되뇌고 싶은 광경이었다.
르네상스(문예부흥)가 처음 꽃 핀 도시 피렌체
모든 사상과 예술이 오로지 가톨릭교회와 신을 중심(神本主義)으로 이루어져 오던 유럽의 중세문화가, 15-16세기를 거치면서 人本主義 즉 사람을 중심으로 한 철학과 예술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 르네상스(문예부흥)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림을 그려도 종교화 성화만 그리다가 이제 사람 나오는 그림도 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시작점에 바로 피렌체가 있고 단테와 다 빈치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있었다.
산 지오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복제품-
단테의 생가 앞 보도블록에 나타난 단테의 얼굴(?)
단테의 생가 앞에서 단테의 얼굴을 보다
단테의 생가 앞 보도 블록에는 누가 일부러 만들었는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물을 뿌리면 단테의 얼굴이 나타나는 곳이 있었다. 신곡을 쓴 단테는 이전의 라틴 문학보다 구어체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문학을 쉬운 언어로 평민에게 선물해 주었다. 단테 외에 괴테, 세르반테스도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다. 한편 르네상스의 3대 문학가로는 단테 외에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와 페트라르카가 유명하다. 피렌체는 단테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르네상스 3대 미술가(미켈란젤로, 다 빈치, 라파엘로)들이 활동하고 그들이 산책하며 걸었던 거리가 피렌체의 거리이다. 나도 피렌체의 거리를 걸으며 先人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문화도 그렇게...
문예 부흥이 생길 당시 토스카나는 중앙 정부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도시국가 형태였다. 그 당시 이 지방의 실권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음으로써 더욱 더 르네상스가 발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이탈리아가 유행의 첨단을 가고 있고 세계적인 명품을 많이 갖고 있지만, 르네상스 당시에만 하더라도 프랑스 귀족들은 이 곳에서 사온 물건을 사교계에 자랑하였다고 한다. 문화의 속성상 고급문화 상부 문화가 저급, 하부 문화로 전파되듯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솟아난 르네상스의 불꽃은 프랑스로 나아가 전 유럽에 큰 불길을 일으키게 되었을 것이다.
중세시대 여자들의 복장을 보면 목은 졸라매고, 귓불이 늘어지고, 가슴이 크다. 화장실이 마땅한 게 없어 치마폭을 넓게 해서 소변 통을 감추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몇 가지 발명이 있게 되었는데, 소변보는 동안 옷이 안 젖게 하이힐이 발명되었고, 처진 여성 유방을 보완하기 위해 브래지어가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소위 크라운 형태라는 보석 반지 알을 집는 기술은 반지업계의 혁명적인 기술로 피렌체의 반지 세공 기술이 최고라고 한다.
중세 시대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길드 상인조합에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서로 의논했다고 한다. casino 도 원래 귀족 고급 사교장으로 種子 돈 꿔주는 貸付業 기능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은행 업무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casino 에는 성직자들도 밤에 놀러 왔다고 하며, 남자들은 턱시도 차림만 허용되었고 여자들은 진주 목걸이 치장에 기다란 손 장갑을 끼고 출입하였다 한다. 고전 명화에서 흔히 보는 무도회에 나오는 남여 복장을 연상하면 될 듯하다.
피렌체의 명물과 명품
피노키오의 무대가 피렌체이어서인지 쇼핑 가게에서는 장난감이 제법 보이지만, 거리의 많은 상점은 단일 품목만 파는 가게들로 명장들의 명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토스카 지역에 있는 구찌 본사 규모는 그리 크기 않으나 소량 생산이지만 명품 생산을 하는 곳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보석 가공과 가죽 세공의 세계적인 명성은 몇 대를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의 명산품인 발사믹 식초는 샐러드에 사용하면 맛이 독특하다고 하여 구입해 봤는데, 생각보다 신맛이 강한 것 같았다. 또한 올리브 오일로 만든 아토피용 비누가 있어 그걸로 머리를 감아 보았는데 머리칼이 오히려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판매하는 사람 말로는 이 비누의 특성이 그렇다고 하며, 뻣뻣한 기운을 없애기 위해 린스로 행구면 아토피 효과가 없어지니까 식초 한 방울을 넣은 물로 머리를 행구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의학적, 화학적 메커니즘은 잘 모르겠다.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두오모)의 붉은 쿠폴라(지붕)가 마치 꽃봉오리처럼 아름답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두오모(대성당)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두오모(대성당)는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데 3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라고 한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형인 뾰죽한 아치들로 받쳐져 있는데 천정 원개는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심판"이 프레스코 형식으로 그려져 있고 제단 왼쪽으로는 그의 미완의 대작인"피에타"가 있다. 흰색과 핑크, 녹색의 대리석으로 된 외관은 장엄하면서도 꽃의 산타 마리아라는 명성에 걸맞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또한 두오모 옆의 조토의 종탑 또한 두오모 못지않게 훌륭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이곳에 올라가면 두오모의 모습을 잘 감상 할 수 있다 한다. 하지만 두오모나 조토의 종탑을 올라 가려면 시간 여유가 좀 더 있어야 하는데, 여행 일정상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대리석 모자이크로 장식된 두오모와 조토의 종탑
바다의 신(Neptune)조각이 있는 분수
피렌체 거리는 박물관 거리
피렌체 거리 여기저기에 유적들이 널려 있고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특히 시뇨리아 광장은 피렌체의 보석이자 조각 전시장이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전시된 조각품들 중에는 진품도 있고 모조품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다비드 조각상(모작)의 눈알이 보는 각도에 따라 돌아간다는 것이다. 조각상의 눈알이 돌아가는 느낌은 착시 현상인지는 모르지만, 착한 사람의 눈에만 그렇게 보인다는 현지 가이드의 농담을 들었다.
다비드(복제품) -진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쟘 볼로냐의 명작 ‘사비나 여인의 겁탈’은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골격과 근육의 표현이 훌륭하고 아름다우며, 각 인물들의 표정과 긴장된 자세는 압권이다. 구름이 약간 낀 날씨여서 해 그림자는 거의 없었다. 야외 조각품을 감상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쟘 볼로냐의 명작 ‘사비나 여인의 겁탈’
(세부 확대)-섬세한 근육 묘사가 놀랍다.
베키오 궁전(국기가 꽂힌 곳)과 그 옆의 우피치 미술관
시뇨리아 광장의 한쪽 옆에 있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 시대 걸작을 모아 놓은 미술관인데, 늘 인기가 많아 미술관의 입장 대기시간은 예약을 하지 않은 경우 평균 2-3시간이라고 한다. 언젠가 다시 이 곳에 와서 우피치 미술관을 보리라 생각했다.
붉게 물든 석양이 검푸른 저녁하늘로 바뀌는 동안 버스를 달려 베네치아로 들어 왔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 되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 행진곡>: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공연 중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콜로세움 앞 도로
문화 관광 산업의 한 요소인 컨텐츠(얘깃거리)
로마에 오게 되면 맨 먼저 듣게 되는 단어는 아마 ROMA와 AMOR(사랑)라는 단어이지 싶다. 우연이겠지만 이것 또한 로마에 관한 또 하나의 얘깃거리가 된다. 관광 여행할 때는 대개 그 지역의 이름난 곳이나 명승고적을 찾게 되는데, 그런 곳은 소위 얘깃거리(Episode)가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명승고적이나 거리도 좀 더 많은 얘깃거리들을 개발하여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얘깃거리를 하루아침에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오래된 우리 역사와 전통 속에는 그런 얘깃거리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얘깃거리를 찾아 개발하여 우리의 관광 상품의 모티브로 삼을 수는 없을까?
고대 로마의 건축물이나 장신구에서 영감을 얻거나 그 모양을 모방 또는 변형시킨다는 이태리의 명품 디자이너의 얘기를 들은 바가 있다. 한편 우리나라 축구 응원단의 ‘붉은 악마’의 디자인도 ‘蚩尤(치우)’의 모습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고 들었다. 이처럼 문화 속에 담겨 있는 재료들을 산업 디자인 또는 영화나 게임 산업의 캐릭터나 episode로 접목 시킨다던지 문화 관광 산업의 컨텐츠로 응용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다 수집한 우산소나무(?) 솔방울이 제법 굵다.
중세 로마 모습을 상상해 보며...
로마 시내(舊 시가)에선 큰 버스의 출입이 금지되므로 시내 관광을 하려면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 했다. 로마 거리에서는 요란한 빌딩이나 네온사인이나 전봇대를 볼 수 없고 시끌벅적한 노래나 음악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요란한 스쿠터 소리가 귀에 거슬릴 뿐이었다.
가로등이 거미줄에 매달린 벌레처럼 대롱대롱 촌스럽게(?) 거리 가운데에 매달려 있다. 가게 쇼윈도의 전등과 스테인리스 창틀, 오토바이, 자동차, 그리고 휴대폰만 보이지 않는다면 중세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
콜로세움 앞의 마차. 사진 모델 로마 병사도 있다.
건물이 오래되어서 보기 뭐하다 구시대의 잔재다 해서 때려 부수고 헐어 버린 뒤, 아파트나 빌딩을 지어 올리는 우리의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오랜 세월 王都로 훌륭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서울도 잘 개발하면 로마 못지않은 관광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램을 가져 보았다. 좋은 관광지가 되려면 풍경도 볼만해야 하겠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얘기가 풍성하고 재미있어야 할 것이다.
로마 구경을 이곳 저곳 다닐 때 여러 동선(動線)을 그려 볼 수 있겠지만 대개 무슨 무슨 언덕을 거쳐 가게 되어 있다. 이 중 오늘날의 영어의 어원이 되는 언덕들의 이름이 있다. 팔라티노 palatino에서 palace 왕궁의 어원이, 캄피돌리오 에서 capital 수도의 어원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옛사람들의 지혜
로마의 관광은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콜로세움은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로 여러 양식이 복합돼 있는데, 오늘날에 보아도 그 규모가 굉장히 크고 놀랍다. 물론 이 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순서도 신분에 따라 배정하였겠지만,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충분한 개수의 출입구와 통로 배치를 잘 만들어 놓아 수많은 군중들이 불과 15분 내에 다 빠져 나올 정도라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서울역 귀성객 압사 사건에서 보듯이, 계단이 있는 곳에 많은 사람이 서로 내려가려고 밀치다보면 넘어져서 사고가 날 개연성이 높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옛사람들의 지혜는 놀랄 만하다. 만약, 개수가 적고 조그만 출입구였다면 아무리 질서를 잘 지킨다해도 안전사고를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전쟁의 傷痕(상흔) 탄환 자국이 남아 있는 콜로세움
그리고 콜로세움의 부서진 담장에 새겨진 전쟁(세계대전)의 상흔도 놓치지 말고 봐야 한다. 전쟁 때 입은 총탄 자국들이 보는 이에게도 아픔으로 다가온다.
고대 로마의 배꼽 ‘포로 로마노’
로마의 배꼽 표지가 있는 돌판 -사진 출처:인터넷-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우측 뒤는 콜로세움의 일부
콜로세움 옆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을 지나 포로 로마노로 들어갔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 광장의 뜻’으로 고대 로마의 정치, 사법, 상업, 종교 활동의 중심지로 화려했던 고대 로마의 배꼽이자 노란 자위 터이다. 실제 ‘로마의 배꼽(UMBILICUS URBIS ROMAE)’이란 돌 판이 벽에 붙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흙먼지가 날리는 그야말로 황성 옛터의 모습이다. 포로 로마노 내부에는 아직도 발굴 중인 모습을 볼 수 있고, 비포장된 길 옆엔 유적지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좌)티투스 개선문 , (그 아래) 베스타 신전, (우) 카스트로 폴록스 신전 기둥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신성시 된 베스타 신전에선, 여섯 명의 처녀가 30년 동안 신전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했고 그 30년동안에는 처녀성을 유지해야 했다고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생매장 당했다는 얘기를 들어 보면 당시의 여성관이 어떠했는지 짐작된다.
한편, 가톨릭 성당 구조의 원형에 해당하는 바실리카를 포로 로마노에서 볼 수 있다. 학생 때 세계사 시간에 무턱대고 외웠던 단어 중 하나인 바실리카가 문득 오래된 앨범에서 끄집어낸 사진처럼 나타났다. 바실리카는 로마시대의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집회장, 때로는 궁정 등에도 사용된 직사각형 평면의 공공 건축물인데, 내부(회당 포함)는 중앙의 폭넓은 본당을 끼고 좌우로 각각 1열의 측랑을 갖춘 3랑(廊) 구성이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의 내부 구조가 대개 다 이런 모습이다.
포로 로마노에서 시저를 만나 본다.
이곳 포로 로마노는 시저를 화장한 곳으로 알려진 곳과 로마시대의 최고 정치기관이었던 원로원이 있어 시저를 빼고선 얘기가 안 된다. 고대 로마는 평민 대표 호민관 제도 도입과 12헌법을 도입하여 최초의 평민을 위한 성문법이 만들어 지긴 했었지만 여전히 귀족 중심의 국가였다.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명연설가였던 시저(카이사르)가 함께 3두 정치(트로이카) 체제로 고대 로마를 이끌었지만, 결국 황제 지배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의 세 마디로 된 간단 명료한 전쟁 보고와 함께 시저가 죽기 직전 말했다는 '브루투스 너마저도...'는 시저의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일 것이다. 시저는 人心의 향방을 정확하게 아는 민중파 정치가로서 사회 개혁의 실효를 거두었다. ‘동지 여러분!, 너와 나는 하나’, ‘시민 여러분’ 이것도 그의 말이다. 그는 명연설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중과 부하의 마음을 잘 읽고 선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 성공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의 성공의 또 다른 이유는 빠른 정보통신인 파발을 사용하였다는 것인데, 정보가 빨라야 성공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얘기일 것이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현존하는 로마의 개선문중 가장 오래된 티투스 아치와 독특한 우산 모양의 소나무(?)
개선 행진 뒤에는 숨은 뜻이 있지 않았을까?
포로 로마노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 말고도 고대 로마 당시 사용 되었던 개선문이 두 개나 더 있다. 전쟁에서 돌아 온 군인들이 로망에 입성했더라도 이 개선문을 거쳐 행진하여 군중들의 환호를 받고 황제에게 보고를 하지 않고선 아직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이 사람을 죽였던 정신적 충격을 군중의 환호 속에 다소나마 떨어내어야 했을 것이고, 이런 요란스러운 한바탕 축제가군인들에겐 씻김굿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쳐 죽이고 찔러 죽였던 끔직한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잠을 자려면 어떤 형식이 되었건 정신적 치료가 필요했으리라.
끝이 아득한 큰 규모의 전차 경주장
‘유럽 여행 4대 썰렁’ 중 ‘로마의 썰렁(?)’
포로 로마노를 나와 팔라티노 언덕을 거쳐 로마 전차 경주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곳은 소위 ‘유럽여행 4대 썰렁’ 중의 하나라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지만, 그 규모는 오늘날 보아도 만만치 않게 크고 관중석 등 시설이 잘 설계되어 있다. 아마도 썰렁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벤허 영화에서 보았던 웅장하고 멋진 전차 경주장을 상상했던 탓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방금 말한 로마의 전차 경주장 외에 ‘유럽 여행 4대 썰렁’ 에 대해 몇 개 더 언급해 보면 다음과 같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항구에 설치되어 있는 인어 공주 동상,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게 동상,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황금지붕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이름과 소문과 달리 그 규모가 작고 초라하거나, 주위 풍경이 지저분하고 조악하여 이러한 ‘썰렁’이라는 악평을 받고 있다 한다.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 ‘로마의 휴일’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일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드는데 돈을 댄 사람이 마피아들이라는 얘기도 흥미롭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1953년에 만든 이 영화에서 유럽 통합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스로 이동 중간에 인솔자가 이 비디오를 틀어 주어 감상할 수 있었다. 여행의 의미와 재미를 배가시켜 주려는 투어 인솔자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왔다.
대부분의 외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출발로 설정된다.
‘로마의 휴일’은 로마의 명승고적을 영화 배경으로 한 코믹 사랑 얘기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의 로맨스(사랑) 영화는 가슴 아픈(슬픈?) 장면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에서도 미국 서부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의 떠나가기를 보여 준다. 대개의 서부 영화의 결말은 서부의 총잡이가 마을의 평화를 이루어 낸 뒤 그를 사랑(연모) 하는 여인을 두고 떠나는 장면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옛날 얘기 같았으면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더라! 식의 해피 엔딩으로 끝났겠지만, 서부 영화는 항상 마지막 장면이 새로운 출발로 설정되어 진다.
이 ‘로마의 휴일’에서는 서로 사랑하지만 공주(오드리 헵번)와 기자(그레고리 펙)는 다시 자신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자회견 장면에서 기자 는 공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톱뉴스가 될 수도 있는 그녀의 로마에서의 여러 사건(해프닝) 사진들을 신문사에 건네지 않고 선물이라며 그녀에게 몰래 주게 된다. 결국 이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별을 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향해 나가게 된다.
‘로마의 휴일’에 소개된 명소를 몇 군데 둘러본다.
전차 경주장을 돌아보고 길을 따라 내려오면 이 영화에서 ‘진실의 입’ 으로 유명해진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틴 교회가 나온다. 교회의 입구 왼쪽 벽에 ‘진실의 입’이 있는데 실제로는 로마시대 하수구 뚜껑이었다 한다. 흉악한 얼굴 모습은 바다의 神인 트리톤의 얼굴로서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입이 다물어 진다는 전설이 있다.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로마의 휴일‘ 따라하기
영화에선 기자(그레고리 펙)가 여기에다 손을 넣고선 악! 소리를 질러 대며 빼려는 액션을 취하자 당황한 공주(헵번)가 ‘진실의 입’속에 들어간 손과 팔을 잡아당기는 모습으로 촬영되었다. 관광객들도 또한 그러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즐거워한다. 로마의 휴일 때문에 흉악한 실제 모습과 달리 로맨틱한 명소가 되어 항상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비수기에 방문한 나도 이곳에 들어가는데 대기 시간이 30분 이상이 걸렸다. 성수기에는 아침 일찍 서둘러야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선 젤라토(아이스크림)를 먹으며 동전을 던져 본다. 뒤돌아서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져넣으면 로마를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동전이야 안 던진들 어떠랴만 그래도 이곳에 와서 이런 동전 던지기와 아이스크림 먹기는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젤라토를 먹으며 트래비 분수에서 동전 던지기
로마는 곳곳에 분수가 있어 과연 분수의 도시라 할 만하다. 이런 분수들은 로마인들의 治水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여름 더위에 분수 물줄기를 뿌려댐으로써 광장을 다소나마 식히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되었다'
스페인 광장 앞의 분수. 우리가 갔을 때는 겨울이었고 보수 중이라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다
스페인 광장은 ‘로마의 휴일’에서 공주가 아이스크림 먹었던 장소로 유명해졌지만, 요즈음은 광장을 더럽힌다 해서 스페인 광장(계단)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17세기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던 곳이라 그 이름이 스페인광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바쁜 일정이 아니라면 한두 시간 잠시 일정을 접고 독서나 일광욕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계단 앞에 있는 돛단배 모양의 분수가 눈에 띄는데 유명 건축가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로가 만든 것이라 한다. 로마를 찾기 전 이 ‘로마의 휴일’ 영화를 통해 50여 년 전의 로마 모습을 한번 보고 간다면 보다 즐거운 旅程(여정)이 되지 않을까.
가을이 내려 앉아 가로수 나무에도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어 있던 며칠 전, 간송 미술관에서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書畵大展(서화 대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송 미술관은 봄가을(5월 중순,10월 중순)에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가을 전시회 소식이었던 것이었다.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은일제강점기 때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서화와 골동품 등을 수집했다. 1934년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개설하여 본격적으로 골동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는 한편, 1938년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개설하여 서화뿐만 아니라 석탑·석불·불도 등의 문화재를 수집·보존하는 데 힘썼다.참조링크:간송전형필
간송미술관 입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립던 친구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일요일 아침 고속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를 내린 후 간송 미술관이 있는 성북동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삼선교’로 가기로 했다.
나와 인연이 있던 ‘三仙橋(삼선교)’
1965년 초겨울 이제 만 12살된 시골 소년이 서울의 중학교 입학 시험을 보기위해 난생 처음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청량리역에 내리니 10시간 이상의 기차 여행 끝이라 배도 고팠지만 겨울인지라 寒氣(한기)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시골보다 서울엔 높은 건물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지만, 소년의 눈에 놀랍게 비친 것은 네온사인과 전봇대에 붙은 모 제약사의 감기약 ‘x피린’ 광고였다. 시골에서는 한번도 보지도 못했던 네온사인과 광고판이었던 것이었다. 청량리에서 전차를 타고 친척이 살던 ‘삼선교’를 가기 위해선 종로4가에서 돈암동행 전차를 갈아타야 했다. 당시 돈암동행 전차 종점은 미아리 고개 밑 태극당 빵집 앞이었다.
그 당시 ‘삼선교’에서 전차를 내려 성북동쪽 언덕을 올라가 친척이 살던 한옥집에 며칠 신세를 졌었다. 이것이 나와 삼선교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혜화동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삼선교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삼선교 남동쪽에 있는 한성대 바로 앞 동네 자취방에서 아침 저녁으로 걸어서 이곳을 지나갔다. 몇 년 후 미아삼거리 쪽으로 이사를 간 후로도 하루에 두 번씩 20번(아륙교통) 시내버스로 이곳을 지나갔기에 나의 중고 시절은 줄 곳 삼선교를 거쳐갔던 것이다. 당시에 이곳을 지나 다녔던 버스회사로는 범진여객, 승원여객, 아륙교통, 한남여객, 한진운수 등이 있었다.
.70년대에 다녔던 시내버스-이곳은 당시 '서울시민 회관' 앞. 사진 출처: 인터넷 서핑
‘三仙橋(삼선교)’에서 세분의 신선은 커녕 ‘삼선교’도 찾아볼 수가 없더라.
.지하철 입구 겨우 괄호 속에 쓰 여 있는 '삼선교' 글자
지하철 안내도에서 ‘삼선교’를 찾으니 삼선교로 써있어야 할 곳에는 ‘한성대입구역’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정작 ‘삼선교’라는 글자는 ‘한성대입구역’에 내린 다음에서야 볼 수 있었다. ‘한성대입구역’ 이름 다음 괄호 속에 (삼선교)라고 쓰인 것을 겨우 찾아내었다. 그것도 눈에 불을 켜서 열심히 찾아야 볼 수 있엇다. 삼선교역을 나와 길거리의 표지판을 보아도 여기저기에 ‘간송미술관’의 표지판이며, ‘최순우 옛집’의 표지판은 있었지만, ’삼선교‘는커녕 ’삼선‘이라는 글자도 좀체 찾아보기 어려웠다.
.城北川 (성북천) 복개도로 (위쪽이 삼청동 방향)
’삼선교‘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10시가 되기 전이었다.10시부터 미술 전시장이 열린다하니 간송미술관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갈까도 생각하였지만, 걸어서 10여분 거리이니 오랜만에 여기에 온 김에 나는 길거리를 구경하며 걸어가기로 하였다.
城北川(성북천) 복개도로 옆 인도에 누군가 국화꽃 화분을 내놓아 향기나는 꽃길이 되었다. 노란 국화와 자주빛 국화꽃들이 환한 얼굴로 반가운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城北川 (성북천=도성 북쪽을 흐르는 개천의 뜻) 의 내력.
‘城北川(성북천)’은 어디에?
그 당시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흰 泡沫(포말 ,물거품)을 띄며 흘러내리던 성북천은 이젠 복개도로가 되어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누가 ‘삼선교는 성북천을 건너는 다리’라고 설명해 주지 않으면, 이 도로 밑으로 개천(성북천)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울러 경복궁 동쪽의 복개도로 아래로 三淸川이 흐르고 있음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겹쳐지나 갔다.
.60-70년대의 모습이 그려진 담벼락 벽화 -선술집-.옛 영화 포스트를 그려 놓은 블록 담벼락
나의 옛 기억을 확인시켜주려는 듯이 도로 옆 블록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는 조악한 그림이라 할른 지 몰라도, 옛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조금 더 가다보니 길모퉁이에 이제는 보기 드문 공중 목욕탕이 나타났다. 제대로 된 시간 여행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보기드문 공중 목욕탕
그 당시 삼선동쪽 언덕 꼭대기엔 수도 펌프장(pump가압시설)이 있어 가정집 물이 잘 나오게 수압을 가압시켜 주었었다. 머리를 돌려 언덕배기쪽에 있던 친척집이 있던 자리를 떠올려보며 그 시절 시간 여행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얼기설기 얽힌 전선줄과 어지럽게 배치된 벽돌집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머릿속에 맴돌던 영상은 사라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그걸로 끝이었다.
-알림- 이하 내용은 인터넷 자료에서 가져온 것이 대부분으로 주제에 대한 설명을 요약, 편집, 수정한 것으로 필자의 실수 등으로 잘못된 정리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며, 내용 출처를 일일이 밝히지 못하였다.
[요약퀴즈] 정답은 본문 내용 및 이 글 끝에...
[퀴즈 1] 절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 좌,우 기둥이 한 개씩 한 줄로 서있는 문의 이름은?
[퀴즈 2] 부처님의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두 분의 역사(力士)가 지키고 있는 문의 이름은?
[퀴즈 3] 불국토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왕들이 지키는 문으로 보통 정면3칸, 측면1칸의 맞배집 형태이다.
좌우 각 1칸에 두 분씩 봉안되어 있고 중앙에는 출입통로가 있다. 이 문의 이름 무엇인가?
[퀴즈 4] 사찰의 문 중 가장 높은 곳(최정상) 또는 가장 깊은 안쪽에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며 서 있으며,
이곳을 지나 들어가면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忉利天)이다. 이 문의 이름은?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의 명승고적은 고궁(왕궁)을 제외하고선 대개가 절(사찰)이나 그 주변에 있는 자연 풍경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산에는 큰 절이 있어 명산대찰(名山大刹)이란 말이 있을 정도이며, 절에는 국보나 보물은 물론 불교 관련 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런 연유로 절 소유 지역(절 땅)을 지나 등산하려면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하기도 한다.
절은 규모나 크기, 교구의 분류에 따라 本寺, 末寺, 庵子(암자) 등으로 불리지만, 말사라고 하여 반드시 본사보다 규모가 작거나 덜 유명한 것은 아니다.
절은 불교 문화재가 모여 있는 곳이므로 불교 관련 용어나 건축물에 대해 알아 두면 절을 둘러볼 때 좋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다음 내용은 절의 입구에서부터 절의 내부 깊은 곳까지 만나게 되는 여러 건축물을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편집 서술하였다. 절의 門에 관련된 부분은 해인사 현우(玄雨) 스님의 글을 참고하였다. 이런 건물이나 종교 유물은 절에 따라 생략되어 없는 것도 있으며, 일부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절의 입구
절을 ‘가람’ '사찰' 또는 '산문(山門)'이라고 부른다. 대개의 사찰 입구에는 작은 개천이 있어 형식적이나마 다리를 건너게 되어 있으며 하다못해 징검다리라도 있다. 사바(娑婆;Sabha)세계에서 극락정토(極樂淨土)로 향하는 건널목인 셈이다.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나 일본의 '금각사' '은각사'의 경우 해자(垓子 물웅덩이)로 둘러싸인 곳에 절이 위치하고 있어 다리를 건너야 접근할 수 있다. 중생들이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금산과 내해를 지나고 반드시 수미산을 지나야 하는데, 이런 다리를 건넘으로써 그 피안의 세계로 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쪽 세계에서 저쪽 이상세계(理想世界)로 건넌다하여 피안교(彼岸橋), 해탈(解脫)의 경지나 극락(極樂)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다하여 해탈교 또는 극락교, 열반교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일주문을 지나 피안교가 있는 수도 있다.
사바세계에서 극락세계로 건너는 피안교 彼岸橋
좌,우 기둥이 한 개씩인 일주문(一柱門)
법주사 일주문(一柱門)
사찰의 입구에 있는 일주문은 수미산(須彌山=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산) 입구에 해당하는데, 절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 좌,우 기둥이 한 개씩 한 줄로 서있다. 보통은 'oo山 xx寺'라는 형식으로 절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세속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 간다는 상징적 의미, 즉 한마음(一心)을 의미하는 뜻을 담고 있다.
좌우 기둥에는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등의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을 붙여서 사찰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범어사 일주문, 통도사 일주문, 해인사 일주문 등이 대표적이며, 일반 건물에 비해 기둥의 직경이 매우 굵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옥개부((屋蓋部=지붕 부위)의 과중함(무거움)을 버티기 위해 기둥 앞 · 뒤에는 작은 직경의 기둥이나 부재(付材: 곁다리 재목)를 덧대어 지탱하는 형태를 취한다.
일주문은 홍하문(紅霞門)이라고도 하는데 紅霞(붉은 노을)는 붉은 광명과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세계와 부처님의 몸 빛깔을 나타낸다. 일주문을 홍하문이라고 한 것은 부처님이 계시는 불국토의 세계로 들어섬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경주 불국사의 자하문(紫霞門)도 홍하문과 통하는 이름이다.
금강문(金剛門) 또는 인왕문(仁王門)
금강문은 부처님의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두 분의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지키고 있는 문으로, 사천왕문을 대신하여 금강문이 있기도 하고 금강문과 사천왕문이 같이 있는 경우도 있다. 금강역사는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하며, 입을 벌리고 오른쪽을 지키시는 분이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입을 다물고 왼쪽을 지키시는 분이 밀적금강(密蹟金剛)이다. ‘나라연’은 힘이 몹시 세다는 뜻 이며 ‘밀적’은 자취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라연금강은 천상계(天上界)의 힘을 가진 역사로서 그 힘이 코끼리의 백만 배에 해당한다고 하며, 입을 벌려 '아' 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 '아 금강역사'라고도 한다. ‘아’는 산스크리트어의 첫 글자로서 공격, 시작, 진취적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한편 야차신(夜叉神)의 우두머리인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하는 신장(神將)으로 입을 다물고 있어 ‘ 훔 금강역사’라고도 한다. '훔'은 산스크리트어의 끝 글자로서 방어, 마지막, 소멸을 뜻한다.
두 역사(力士)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후광이 있는데, 신성한 지혜와 복덕을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들은 불법을 훼방하는 사악한 세력을 경계하기 위해 상체를 벗고 매우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형미로 볼 때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이 대표적이다. 아래 사진들은 석굴암의 금강역사를 모작한 작품으로 법주사의 대불 아래에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입을 벌리고 있는 ‘아 금강' 역사(力士)-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입을 다물고 있는 ‘흠 금강' 역사(力士)-밀적금강(密蹟金剛)
사천왕문(四天王門) 또는 봉황문(鳳凰門)
사천왕문(四天王門) 은 수미산(須彌山=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산)의 중간 지점으로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봉황문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魔軍)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졌다. 천왕문은 보통 정면3칸, 측면1칸의 맞배집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좌우 각 1칸에는 천왕을 두 분씩 봉안하고 중앙에는 출입통로가 있다.
사천왕은 고대 인도(印度) 종교에서 숭상했던 신들의 왕이었으나,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사천왕은 수미산의 정상에 있는 제석천의 권속으로, 33천 중 욕계 6천의 첫 번째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지배자로서 수미의 4주를 수호하는 신이다.
다음 사진은 법주사의 사천왕 모습이다.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용(龍)을 쥐고 있는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검을 지닌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탑(塔)을 들고 있는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동쪽을 수호하는데 온 몸에 동방을 표방하는 오행색(五行色)인 청색을 띠고 있다. 비파를 손에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거나 왼손에는 칼을 쥐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형상을 취하고, 선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는 벌을 준다.
서쪽을 수호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온 몸이 백색이며,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뜬 채 오른손에는 용을 꽉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은 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로 여의주를 살짝 쥐고 있다. 위엄으로써 나쁜 것들을 물리친다.
남쪽을 수호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몸이 붉은 색깔이며 손에는 삼지창 또는 칼(검)을 들고 있다. 자신이나 남에게 착한 마음(善心)을 일으키게 하며, 중생들에게 복과 덕을 베푼다고 한다.
그리고 비파를 잡고 비파 줄을 튕기는 모습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북쪽을 수호하며 얼굴색은 북쪽을 상징하는 검은색이다.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 준다.
이 사천왕은 보통은 조각 형태로 되어 있지만, 벽화(그림)로 되어 있는 곳도 있으며, 사천왕이 지니고 있는 물건과 역할은 경전에 따라 다소 다르게 기술되어 있기도 하다.
방위와 사천왕
색
손에 가지고 있는 것
맡은(하는) 일
동방 지국천왕(東方 持國天王)
청색 靑色
비파 또는 칼
선한 이에게 복을, 악한 자에게 벌을 줌
서방 광목천왕(西方 廣目天王)
백색 白色
용과 여의주 또는 비단끈(絹索)
악인에게 고통을 줘 구도심을 일으킴
남방 증장천왕(南方 增長天王)
적색 赤色
삼지창과 보탑 또는 칼(검)
선심을 일으키고 중생에게 복과 덕을 베풂
북방 다문천왕(北方 多聞天王)
흑색 黑色
보탑과 몽둥이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
참고로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색을 五方色(오방색) 또는 오행색(五行色)이라고 하며, 동쪽은 청색, 서쪽은 흰 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중앙(가운데)은 황색이다.
불이문(不二門) 또는 해탈문(解脫門)
사찰의 문 중 가장 높은 곳(최정상) 또는 가장 깊은 안쪽에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며 서 있으며, 이곳을 지나 들어가면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忉利天)이다. 도리천은 欲界天(욕계천)의 둘째 하늘로 그 위계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가운데에 제석천이 사는 선견성(善見城)이 있으며, 그 사방에 권속되는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는 8개씩의 성이 있다.
불교의 33천은 욕계[欲界] 10천, 색계[色界] 18천, 무색계[無色界] 4천과 도리천[忉利天]을 말한다. 욕계천[欲界天] 중에 속하는 육욕천[六欲天]의 육[六]은 범어[梵語]로 'sai'인데 사타[沙吒]의 당음[唐音]과 비슷하다. 저녁 예불 때 33번 타종하는 것은 욕계천(欲界天)의 사천왕천(四天王天)을 비롯한 33천의 법계를 깨우는 뜻이 담겨있어 모두 삼천대천세계와 관련이 있다. 참조 링크: 삼천대천세계
해인사의 해탈문(解脫門)
불이(不二)란‘둘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상대 차별을 없애고, 절대 차별 없는 이치를 나타내는 법문의 의미를 담고 있다. 승(僧)과 속(俗)이 둘이 아니요, 세간(世間)과 출세간( 出世間)이 둘이 아니며, 중생계(衆生界)와 열반계(涅槃界) 역시 둘이 아니니, 일체중생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하여 그것을 알고 이 문을 들어서면서 부처님의 이치를 깨우치라는 뜻이다. 모든 성인(聖人)이 이 법에 의하여 진리에 들어갔으므로 불이문(不二門) 또는 해탈문(解脫門)이라 하고 사찰에 따라 극락문(極樂門)이라고도 한다.
[요약퀴즈]
[퀴즈 1] 절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 좌,우 기둥이 한 개씩 한 줄로 서있는 문의 이름은?
[퀴즈 2] 부처님의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두 분의 역사(力士)가 지키고 있는 문의 이름은?
[퀴즈 3] 불국토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왕들이 지키는 문으로 보통 정면3칸, 측면1칸의 맞배집 형태이다.
좌우 각 1칸에 두 분씩 봉안되어 있고 중앙에는 출입통로가 있다. 이 문의 이름 무엇인가?
[퀴즈 4] 사찰의 문 중 가장 높은 곳(최정상) 또는 가장 깊은 안쪽에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며 서 있으며,
이곳을 지나 들어가면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忉利天)이다. 이 문의 이름은?
[요약퀴즈] 정답
[퀴즈 1] 절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 좌,우 기둥이 한 개씩 한 줄로 서있는 문의 이름은? 일주문
[퀴즈 2] 부처님의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두 분의 역사(力士)가 지키고 있는 문의 이름은? 금강문 또는 인왕문
[퀴즈 3] 불국토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왕들이 지키는 문으로 보통 정면3칸, 측면1칸의 맞배집 형태이다.
좌우 각 1칸에 두 분씩 봉안되어 있다. 이 문의 이름 무엇인가? 사천왕문 또는 봉황문
[퀴즈 4] 사찰의 문 중 가장 높은 곳(최정상) 또는 가장 깊은 안쪽에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며 서 있으며,
이곳을 지나면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忉利天)이다. 이 문의 이름은? 해탈문, 극락문